◉조선시대 화가 집안들 (2회) ※여기에 기록된 가족은 모두 화원(화가)임 ★표는 가족중에 이름이 알려진 화가임.
*공재 윤두서 (1668-1715) 선비화가 ★장남 연옹(筵翁) 윤덕희(1685- 1766) ★손자 청고(靑皐) 윤용(1708-1740) *손자 범재(泛齋) 윤위 (1725-1756)
| ◉공재 윤두서 *한국최초의<자화상> 국보 제240호 *절파화풍을계승, 남종화풍을 소극적으로 받아 들였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으로 26세 1693년(숙종19)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당쟁의 심화로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과 시,서,화로 생애를 보냈다. *1774년(영조50)에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추증함. *삼대에 4명의 화가가 배출되었으나 외손 정약용까지 하면 5명의 문인화가의 집안이 됨. 매조서정 *윤두서는 18세기 풍속화의 효시이며, 조선후기 문인화가로 겸재(謙齋) 정선, 현재(玄齋)심사정과 더불어 삼재(三齋)라 한다.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동물화, 화조화 등 다양한 화목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장남 연옹(筵翁) 윤덕희 ★손자 청고(靑皐) 윤용은 윤덕희의 아들 *손자 범재(泛齋) 윤위 (1725-1756)은 7남 윤덕현의(화가 아님) 아들 *외손 정약용까지 |
| ☜윤두서 <자화상>17c 종이에 담채 38.6×20.5cm 개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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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인왕제색도> 종이에 수묵. 79.2×138.2cm *호암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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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 1759) 문인화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개척 *손자 손암(巽庵)정황 (1737-1800)
|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금강전도> 국보 제240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개척 *손자 손암(巽庵) 정황 화가 *정선은 관직에 위수(衛率)를 시작으로 1745년 1월까지 양천의 현령을 지냈다. *1756년에 가선대부지중추부사라는 종2품에 제수되었다. *정선은 안동 김문(김창업,김창협)의 후원과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조선후기 최대 산수화가로 실경산수화 개척 *남종화법을 토대로 하여 한국적 화풍으로 그려낸 것으로 진경산수화의 개척자 정선 이전의 실경산수화는 북종화풍(안견파화풍)으로 그렸다.
*정황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대표작<노적만취도>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화원화가 한국적 풍속화의 창출자 *부 김희겸 (?) *아들 김양기(?)
| ◉단원 김홍도 ◉<군선도팔곡병>국보 제139호 ◉<단원화첩> 보물 제782호 ◉<단원풍속도첩> 25폭. 보물 제527호 <무동> *한국적인 화풍으로 풍속화 부분에서 창출함. *생부모와 형제관계, 본처와 자녀관계에 대한 기록이 없다 *강세황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천거로 화원이 되었다. *1771년 왕세손의 초상화. 1781년 정조어진 제작에 동참화사로 임명되었다. *찰방(察訪)을 제수 받았다. 충청도 연풍 현감에서 파직됨 *18세기의 풍속화를 비롯 모든 분야에서 대표적 화가 *풍속화의 특징은 산수의 배경 없이 풍속장면을 부각시키는 시각적 효과가 크다. *김홍도의 외가(인동張씨)가 대대로 화원을 배출한 미술가 집안이었다고 함. ★김홍도는 산수화·인물화·화조화 등 각 방면에서 19세기의 화원들은 대부분 김홍도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부 김희겸 (?) <석천한유도> *아들 김양기(?) <귀인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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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득신 <풍속화첩> 18c말 ⇫ 종이에 수묵. 22.4×27cm 호암미술관 소장
| ⇦ 김홍도 <무동 > 18c말 종이에 수묵, 27.0×22.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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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 화원화가 <밀희투전> *서양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 ◉도화서 화원출신 집안
| ◉<도화서 화원출신 집안> ◉긍재 김득신 <투전도><파적도> *서양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 *화원으로 초도 첨절제사를 지냈다. *스승인 김홍도에 버금가는 훌륭한 풍속화가이며 도석화, 영모화도 잘 그렸다. *특징은 앞면 인물보다 뒤편 인물들을 크게 부각시켜 역원근법을 나타낸 것은 새로운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반영해 준다. *1791년 정조 어진 제작에 참여함
*부(父) 김응리 *큰 아버지 김응환(1742-1789) *동생 김석신(1742-?), 김양신 *아들 김하종, 김건종, 김수종 *외조부 한중흥 ◉외가, 처가, 사돈집 쪽 역시 많은 화원을 배출판 집안들이다.
| 혜원 신윤복 (申潤福) (생졸 미상) 화원화가 한국적 풍속화의 새 장을 염 ★부(父) 신한평
| ◉혜원 신윤복 <미인도> ◉<혜원전신첩> 국보 제135호 <단오풍경> *김홍도의 화풍의 영향 *김홍도의 화풍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독특한 풍속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우리나라의 회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속화를 즐겨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짐. *특징은 인생의 즐거움과 남녀 간의 애정을 추구한 점과 한량과 기녀들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주력함. 그리고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항상 배경설정을 중시하였다.
.★부(父) 신한평 *신한평은 1791년 수종화사(隨從畵師)로 정조어진 제작에 참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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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복<혜원전신첩>의 <단오풍경> 18c말 종이에 담채 28.2×35.2cm 간송미술관 소장
| ☞신위 <묵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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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신위 (1769- 1847) 문인서화가 *아들 신명준 *아들 신명연 | ◉자하 신위(申緯) <묵죽도> 강세황의 묵죽법을 배움 *아들 신명준 *아들 신명연 : 남종화 진경산수화 ◉신위(申緯)는 조선의 3대 묵죽(墨竹) 화가로 유덕장(柳德章), 이정(李霆)과 함께 이른다. *영조 때 참관을 지냄 *조선 후기의 문인이다 시서화에 모두 능해 삼절(三絶)이라 불렀다. *강세황의 묵죽을 배워 조선 후기 남종화의 꽃을 피웠다. *묵죽화풍은 두 아들과 조희룡 등 추사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침 |
◉남리(南里) 김두량 (金斗樑) (1696-1763) 화원화가 <월야산수도> *동물화에서 태서법(泰西法) 즉 서양화법을 수용함 <흑구도>
| ◉< 화원 집안 > *외조부 함제건(화원교수) *외숙 함세휘 *아버지 김효경 *형 김두기 *아들 김덕하 *조카 김덕성 *김덕성의 아들 김종희 ◉남리(南里)는 영조가 하사한 사호(賜號)이며, 삽쌀개 그림의 제발(題跋)을 영조가 친히 쓴 작품이다. 김두량은 윤두서의 제자이며 도화서 별제를 지냈다. *전통적인 북종화법을 따르면서 남종화법과 서양화법을 수용하였다. 태서법이라고 하는 음영법(陰影法)이 사용하였다. *산수, 인물, 풍속, 영모 등 여러 방면의 소재를 능숙하게 다루었다.
*아들 김덕하는 1748년에 장득만과 함께 숙종어진을 모사했으며, 아버지 김두량과 <사계산수도권(四季山水圖卷)>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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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살개〉 김두량(金斗樑)(1696-1763)
| 김두량(金斗樑)의 <흑구도(黑狗圖):> |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 (1711-1775) 문인화가 <극락암도> <영남기행화첩> *진경산수화풍의 영향
| *화가인 김창업(金昌業) (1658-1722)의 서자 ◉아버지 김창업(金昌業)은 영의정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9- 1689)의 사남이며, 김창업(金昌業) 의 제자로는 정선. 이병연 등이다. *김윤겸은 종6품의 진주 동쪽 소촌도찰방을 지냈으며 이 때 <영남기행화첩>을 그렸다. *김윤겸은 집안의 진경 문화사상의 영향으로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이어받아 강희언, 김응환 등과 함께 겸재파(謙齋派)를 형성하였다 *정선이 안동 김문에서 공부를 하였고 가난속에 살다가 서른살 무렵에 김창업의 천거로 도화서에 들어갔다. 김윤겸은 정선과의 접촉의 기회가 많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희원(希園) 이한철(李漢喆) (1808-1889) 화원화가 대표작으로 *김정희의 초상 (보물 제547호) *정형화된 남종화법과 김홍도의 화풍의 영향.
| *종6품 아문인 도화서 화원이었던 아버지 이의양(李義養)은 1811년 12차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쓰시마에 다녀왔음. ◉이한철은 도화서 화원으로 벼슬은 감목관과 군수를 지냈다. *헌종, 철종, 고종 등 네 차례에 걸쳐 어용화사로 선발되어 어진을 그렸으며 대표작으로 철종 어진과 흥선대원군 초상이 있다.
*아버지 이의양은 산수화와 송호도(松虎圖)에 뛰어 났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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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睡隱). 장득만(張得萬) (1684-1765) 화원화가 *숙종의 입기로소 친림사연. <기사계첩(耆社契帖> *1735년에 세조어진 모사에 주관화사로 활약함
| ◉도화서 화원집안 *부 장자욱(張子旭) 숙부 장자성, 숙부 장자준, *아들 장경주(張敬周) (1710-?) *아들 장사주 손자 장륜 증손 장한종(張漢宗) <어해도(魚蟹圖)>를 잘 그렸다.
◉3대가 어진화사를 배출한 가문이다 *장득만은 세조영정 모사와 숙종어용 도사. 숙종영정 모사에 동참화사로 활동하였다. *부친 장자국은 1688년 태조어진 모사에 추후동참서화사로 참여 하였음 *아들 장경주는 1744년 김두랴와 조창희 등과 함께 영조어진 도사에 참여하였음. *장득만은 도화서 화원으로 동지중추부사와 조지 별제(造紙別提)를 지냈다. *1728년 김두량(金斗樑) · 박동보(朴東普) 등과 양무 원종 공신(揚武原從功臣)의 훈호를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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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心水) 이정근(李正根) (1531-?) 문인화가 경주이씨 조선중기의 화가 안견화풍의 <실경산수도>와 남종화풍의〈미법산수도〉를 들 수 있다.
| ★도화서 화원 집안 *부 이명수(李明修) *동생 이정식 *사위 유성업(柳成業) *조카 이수형 (정식의 아들) *손자 이홍규 *증손 이기룡 *고손 이형정 *이정근의 화풍상의 다양성뿐 아니라 우리 나라 남종화의 수용과 관련하여 주목된다 *이홍규는 1607년 정미사행에 수행화원에 선발된 인물이다. *이기룡은 1643년 계미사행에 수행화원으로 선발되어 일본에서 <송암비우도(松巖飛羽圖>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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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蘇齋). 이성린(李聖麟) .(1718-1777) 화원화가 도화서 화원으로 주부(主簿)와 첨사
| *부친 이종현 화원 *아들 이수민(李壽民) (1783-1839)은 *이성린외증조 함제건(咸悌健) *이성린(李聖麟)은 1748년(영조24년)에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오사카에서 문인화가 오키슈운보쿠(大同春朴)와 서로 그림 교환함. *아들 이수민은 1811년(순조11) 쓰시마까지 따라감, <樹下讀書圖>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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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각(韓時覺) (1602- ?) 화원화가 *도화서 화원 교수. *6차 사절단 수행화원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 *부친 한선국(韓善國) 通政을 지낸 화원교수 *사위 이명욱(李明郁) *도화서 교수로 지낸 한선국(韓善國)의 아들임, *도화서 교수로 1655-1626년(효종6-7)에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옴.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는 기록화로 임금님이 함경도까지 베풀어 준 은혜를 뜻함. ‘*사위 이명옥은 인물화를 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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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東巖). 함제건(咸悌健) (생몰연대?) 도화서 화원 교수
| ★아들함세휘(咸世輝) *외손 김두량(金斗樑) *외증손이성린(李聖麟)
★함제건(咸悌健)은 1682년(숙종8)에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가서 <竹菊圖>를 그렸다. *아들 함세휘(咸世輝)는 도화서 별제(別提)를 지냈다. 1719-1720년(숙종45-46)에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옴. <부사산도(富士山圖)>) *외증손 이성린은 1748년(영조24)에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옴. ★아들함세휘(咸世輝)는 1718년에 《경종선의후가례도감의궤 景宗宣懿后嘉禮都監儀軌》의 제작에 참여. 1733년에 영조어진도사(英祖御眞圖寫)에 참여. 1774년에 〈장조헌경후가례반차도 莊祖獻敬后嘉禮班次圖〉를 제작하였다.
| 21. 홍세섭(洪世燮) (1511-1884) 이색화풍을 이룸 <유압도(遊鴨圖)> 1)가족 화가 *아들, 홍병희(洪秉禧)(1832-1892) *홍석창(洪石窓) *수묵위주의 화조화(花鳥畵), 수묵사의화조화(水墨寫意花鳥畵) 의 전통이 새롭게 태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22.이신흠(李信欽)(1570-1631) 초상화를 잘그림 * 부 이희햘 (화원) 23. 심정주(沈廷冑)(1678-1750) 선비화가 *아들 심사정(沈師正) :남종화의 대가 *장인 정유점: 정인지의 후송 24. 정유승(鄭維升) ( ? -1738) *부 정경흠의 4남 *형 정유복, *정유겸 *정유점 모두 그림에 뛰어남 *셋째형 정유점의 사위가 심정주(沈廷冑)이며 그의 아들이 심사정(沈師正)이다. 25. 이인문(李寅文)(1745-1824) 중인집안 출신의 화원가족 아들 이희식 *이방식. 형 이인휘 , 조카 이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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