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화가 집안들 (1회)
조선의 유교사회에서 국가 미술기관인 도화서 출신 화원들의 사회적 지위는 중인(衆人)보다 낮게 취급되었으며, 장인(丈人)과 같은 대우를 받았지만, 그들은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며, 반면 사회적으로 불리한 화가의 분위기였지만 사대부 출신의 선비들도 상당수 문인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조선초기와 중기초 까지는 문인화가가 많았으며, 중기이후 말기로 오면서 도화서 화원출신 화가가 많아진 현상을 볼 수가 있다. 즉 사대부의 선비화가들과 도화서 출신 화원화가와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 기술한 내용 중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기하며, 내용상 1, 2회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 (2회)의 마지막 뒷편에는 추가로 첨가해 두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가족은 모두 화원(화가)임 ★표는 가족 중에 이름이 알려진 화가임 *인재 강희안 (1417-1464) 사대부 화가 부 강석덕 동생 강희맹 | ◉인재 강희안 <고사관수도> *원체화풍과 절파화풍을 수용 *삼부자는 시,서,화에 뛰어났던 인물이다. ◉강희안은 심온의 외손자이자 소헌왕후의 이질이 되고 세종은 이모부이며, 문종과 세조와는 이종사촌이 된다. *1438(세종20년)에 진사시 합격, 1441년 식년문과에 급제. 사섬서주부의 벼슬길에 올랐다. *강희안의 필묵법은 직업화가의 솜씨와는 다른 문인적 취향을 잘 보여준다. 강희안의 높은 솜씨의 수준이 승화되어 조선 중기의 화단으로 전승되어 졌다. |
| ☜강희안 <고사관수도> 15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23.4×15.7cm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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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좌☞ <송하보월도>. 15세기 말. 비단에 담채. 79.2×138.2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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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 이상좌 (생년 미상) 노비출신 화원화가 *장남 이숭효(?) *차남 이흥효 (1537-1593). ★손자 나옹 이정(李楨) (1578-1607) | ◉학포 이상좌 <송하보월도> *남송원체화풍 *산수화는 마하파화풍 *장남 이숭효(?) <어부도> *차남 이흥효 <산수도> ★손자 나옹 이정(李楨) <한강조주도> 절파화풍 ◉이상좌는 노비출신이었으나 발군의 그림 솜씨를 지니고 있으며. 중종의 특명을 내려 종의 신분을 특별히 면천해 주고 도화서 화원의 직을 내렸다. *손자 이정(李楨)은 1606년 원접사의 수행화원으로 활약, *당대 최고화가로 일컬었으나 30세에 죽음 *절파 화풍을 가미, *손자 이정은 <父,>이숭효 부모를 일찍 여의고 숙부 이흥효 밑에 자람 | *낙파 이경윤 (1545-1611) 왕실출신 문인화가 *동생 이영윤 (1561-1611) ★서자 이징(李澄)(1581-1645?) | ◉낙파 이경윤 <고사탁족도> *안경화풍을 토대로 절파화풍 *동생 이영윤 <화조도> 남종화풍 ★서자 이징(李澄)은 인조때 화원으로서 문신직 6품에 임명됨. *이징은 안견화풍과 절파화풍을 토대로 자신의 양식을 형성. *<연사모종도> ◉이경윤은 성종의 아들 이성군 이관(李慣)의 종증손자임. * 조선 중기 절파 화풍의 정착에 주도적 역할을 함. * 1609년 원접사 수행화원으로 의주에 다녀옴. * 인물, 영모, 묵죽, 화훼 등 두루 뛰어남. * <태조 어진>개수 작업 참여 |
| ☜ 이경윤 <송하대기도> 16세기말 비단에 수묵. 31.2×24.9cm 고려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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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시 ☞ <동자견려도> 16세기후반. 111×46cm. 비단에 채색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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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송당 김시(金禔) (1524-1593) 사대부화가 *형 김기 ★증손자 퇴촌(退 村) 김식(金埴) (1579-1662). *증손 김집 | ◉양송당 김시(金禔) <동자견려도> *안경화풍을 계승, 절파화풍 ★증손자 퇴촌(退村) 김식(金埴) <수하모우 > ◉좌의정 김안로는 1537년(중종32)에 정치적 사건으로 유배 후 사사되었으며, 김안로의 아들 김시는 일생을 독서와 서화로 보냈다. *김시는 안견화풍을 계승하고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자기 화풍을 형성하는 경향은 김시로부터 시작되어 조선 중기의 여러 화가들 사이에 널리 풍미하게 되었다. *최입(崔岦)문장, 한호(韓濩) 글씨, 김시(金禔) 그림을 삼절로 일컬어진다. *증손자 김식은 1606년 진사가 되었고, 벼슬은 찰방을 지냈다. 조선 중기의 가장 유명한 증조부에 이어 물소 그림 전문 화가였다. 절파화풍과 영모 화픙 | *월담 윤의립 (1568-1643) 믄인화가 *동생 윤정립 (1571-1621) | ◉월담 윤의립 <탁족도> <하경산수도 > *안경화풍을 토대로 절파화풍 *동생 윤정립: 선비화가 <관폭도> ◉윤의립은 공조판서를 지낸 윤국형의 아들이다. 1594(선조27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에 등용됨. 의정부 좌참판 까지 이르렀다. 현존 작품은 드물다. 남송의 마하파와 안견파적인요소가 담긴 <산수화첩>이 중앙박물관에 소장 *동생 윤정립은 1605년에 3등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천거로 관직에 임용됨. 화가로 행적이나 기록이 거의 없다. |
| 윤의립 ☞ <하경산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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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속 <노숙서작도> 17세기 전반 비단에 수묵 113.5×58.3cm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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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강 조속 (1595-1668) 문인화가 *아들 조지운 (1637 -?) | ◉창강 조속 <노숙서작도> *절파화풍을 계승 *아들 조지운 <수묵사의화조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음 ◉조속은 인조반정에 가담 공을 세웠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평생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시,서,화, 묵매. 화조화에 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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