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가 唐家

2017. 4. 11. 16:19美學 이야기



       궁궐 장식

당가

동의어 궁궐의 중심, 최고의 권위 다른 표기 언어 唐家


       궁궐에서 위상이 가장 높은 전각이 정전이고, 정전 안에서 가장 격이 높은 곳은 북쪽에서 남향하여 앉는 자리다. 바로 이곳에 당가(唐家)가 설치되어 있다. 궁궐 안에서 당가보다 높고 권위적인 공간은 없다. 모든 궁궐 장식은 당가의 어좌에 앉은 임금의 권위와 성덕을 우러르고 칭송하는 데 집중되어 있고, 당가를 중심으로 분화·확산된다.



    당가

                 

    궁궐 장엄의 절정 

       당가를 불교 법당의 닫집각주1) 처럼 생각하여 천장 장식의 일부로 보기도 하지만, 지붕과 하부구조 전체를 통틀어 당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늘에 뜬 당가, 즉 천장의 일부를 밀어 올려 포를 짜고 중심에 용이나 봉황을 달아 놓은 보개 형식의 부당가와 구별하기 위해 특별히 좌탑당가(坐榻唐家)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좌탑이란 당가에서 어좌가 배치되는 단을 말한다.


       현재 각 궁궐에 남아 있는 당가를 보면, 사방에 층계가 설치돼 있으며(창경궁 제외), 청판(좌탑) 위에 임금이 직접 앉는 어좌, 어좌를 등 뒤에서 받치는 등널, 그 뒤쪽을 감싸듯 펼친 곡병(曲屛), 그리고 해와 달과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일월오봉병 등이 배치되어 있다. 당가 지붕은 운궁(雲宮)각주2) 과 머름각주3) , 풍련(風蓮)각주4) , 허주(虛柱)각주5) 등으로 짜여 있는데,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 문양은 주로 운궁과 풍련에 집중돼 있다.


       조선 후기 유도원(柳道源)의 『퇴계선생문집고증』에 당가에 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이를 통해 당시의 당가 모습을 더듬어볼 수 있다.

    "당가는 어탑 위에 설치하는 것으로, 백목판(栢木板)으로 만든다. 연꽃봉오리와 모란꽃을 조각하고 휘장을 달며 처마를 만들고 네 모퉁이에 기둥을 세우며, 반자를 설치하고 쌍금봉(雙金鳳)을 새기고 동·서·북쪽 삼면에 그림을 그린다. 오봉산을 그리되 북면에 오봉을 그리고 좌우에 여록(餘綠)각주6) 을 그린다."


       당가는 정전을 완공한 후에 들여놓는 독립된 구조물이 아니라 본 건물과 동시에 지어지는 실내 건축물이기 때문에 틀이나 제도 면에서 정전과 상호 유기적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정전의 규모는 월대의 크기에, 월대의 크기는 전정(殿庭)의 면적과 범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유기적 공간체계 속에서 당가는 궁궐 중심으로서의 의미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정교(政敎)의 근원이자 궐내로 들어오는 복명(復命)의 구심점으로서의 상징성을 얻게 된다.


    최고의 품격을 자랑하는 덕수궁 중화전 당가

       정전 당가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은 품격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중화전 당가다. 어좌단은 상중하 3단 높이로 구성돼 있는데, 하단에는 파도, 권초(당초), 연화문 등이 시문되어 있으며, 중단에는 격간마다 파련화(꽃잎이 버선코처럼 말려들어 있는 모양의 연꽃)가 얕게 부조되어 있다. 상단에는 구름 문양이 이방연속으로 베풀어져 있고, 그 위쪽의 청판 네 변에는 연잎 장식의 계자난간각주7) 이 둘러져 있다.



    덕수궁 중화전 당가

    청판 위에 어좌를 등 뒤에서 받치는 등널, 그 뒤쪽을 감싸는 곡병,

    해와 달과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일월오봉병이 배치되어 있다.



       사방에 설치된 계단의 문로주(門路柱)각주8) 에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조각상이 있다. 그중에는 연꽃봉오리를 조각한 것도 있고 신수를 조각한 것도 있는데, 신수는 파도 위에 올라앉은 것과 연꽃 위에 올라앉은 것 두 종류가 있다.

    파도 위에 앉은 것은 온몸이 비늘로 덮인 네발 달린 짐승 모양이다. 머리 양쪽에 풍성한 갈기가 있고, 정수리에 뿔 하나가 나 있는 점으로 봐서 해치가 아니면 천록(天祿)일 가능성이 크다. 연꽃 위에 앉은 것은 머리에 연주(聯珠) 장식이 있고, 몸은 물방울 무늬로 덮여 있으며, 턱 밑에 수염이 나 있다. 목 아래쪽에 방울이 달린 점으로 봐서 벽사 기능을 가진 당사자(唐獅子)가 아니면 사자개일 것으로 추측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계단 측면을 가린 삼각형 판자(『중화전영건도감의궤』에는 연화수조고색판〔蓮花水鳥古索板〕으로 표기되어 있다)에 새겨진 연꽃과 새 그림이다. 풍성한 연꽃과 연잎, 갈대, 연밥을 쪼는 새 등이 그려져 있는데, 소재와 표현기법이 민화를 빼닮았다. 이곳에 민화풍의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덕수궁 중화전 당가 전면 계단 측면에 있는 고색판의 연화수조도

    삼각형 판자에 연꽃, 연잎, 갈대, 새 등을 민화풍으로 그렸다.




    덕수궁 중화전 당가 전면 계단 문로주의 동물상


                           
    덕수궁 중화전 당가 후면 계단 문로주의 연봉

    파도 위에 앉은 동물상은 온몸이 비늘로 덮인 네발 달린 짐승으로,

    정수리에 나 있는 뿔로 보아서 해치 아니면 천록으로 여겨진다.



       민화의 경우 연꽃은 일로연과(一路連科, 한 길로 과거에 급제함), 또는 연생귀자(連生貴子, 연이어 아들을 얻음) 등의 세속적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 반면에 유교의 입장에서 보는 연꽃은 신거고위(身居高位, 높은 자리에 올라 있음), 일품청렴(一品淸廉,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 염결봉공(廉潔奉公, 청렴결백하게 공공을 위해 봉사함)의 상징이자 군자를 의미한다.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이 염(廉)이고, 오점이 없는 것이 결(潔)이다. 이것은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때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어좌단 층계에 연꽃을 장식해 놓은 것을 이질적인 것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결한 형식의 창경궁 명정전 당가

       명정전은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었지만 현존하는 건물들은 임진왜란 후 1616년(광해군 8)에 중건되었다. 창덕궁 인정전이 1804년(순조 4), 경복궁 근정전이 1867년(고종 4), 덕수궁 중화전이 1906년(고종 43)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니까, 창경궁 명정전이 현존 정전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셈이다.



    창경궁 명정전 당가

    다른 궁궐에 비해 간략하고 소박한 편이다.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이 없는 모습이 사찰 불단 위의 닫집을 연상시킨다.




    창경궁 명정전 당가 전면 계단 문로주의 연봉

    전면 계단에 연봉이 장식된 것은 이곳뿐이다.



       명정전은 다른 궁궐 정전과 달리 동향하고 있다. 물론 당가도 동향하고 있는데, 이곳에 어좌·일월오봉병 등이 설치되어 있다. 지금 곡병은 없으나 원래는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면인 동쪽 그리고 북쪽과 서쪽에 계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사방에 계단이 있는 궁궐과 다른 경우다. 계단 옆면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이 선각돼 있고, 어좌 전면 밑창에는 두 마리씩 짝을 이룬 용 네 마리가 묘사돼 있다. 당가 장식은 전반적으로 다른 궁궐에 비해 소박한 느낌이며, 형식은 간결하고 내용은 소략하다. 창경궁이 이궁(離宮)으로 지어진 때문으로 생각된다.


       명정전 당가 장식 중 매력적인 것은 문로주 위에 장식된 연봉이다. 따로 조각해 얹지 않고 기둥 윗부분을 직접 조각해 만들었다. 소박 단정한 분위기가 궁정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연꽃봉오리는 불교에서 미부연화(未敷蓮花)각주9) 라 해서 깨달음을 얻기 전의 상태를 상징하지만, 유교적 관점에서 보는 연꽃은 군자의 상징형으로 간주된다. 그러니 유교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왕이 임하는 당가에 연꽃봉오리 장식을 했다고 해서 어색한 일은 아니다.


    모든 시설이 완비된 경복궁 근정전 당가

       근정전 당가의 기본구조는 덕수궁 중화전 당가와 대동소이하다. 네 개의 계단을 갖추고 있으며, 삼단으로 구획된 좌탑(어좌단) 측면의 각 격간마다 화려한 파련화가 안상(眼象) 속에 부조돼 있다. 당가 동쪽 계단 문로주의 법수에는 동물 형상이 장식되어 있는데,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으나 길상과 벽사의 능력을 가진 동물로 여겨진다. 단상에는 등널과 곡병이 둘러져 있고, 그 뒤에 일월오봉병이 설치돼 있다. 그 위쪽을 덮고 있는 지붕의 운궁, 머름, 풍련에 장식된 문양이 화려하다. 방승(方勝), 연환(連環) 등 장구·영원의 의미가 있는 길상 문양을 비롯하여 정(錠, 돈), 천의(天衣) 등이 호화롭다.



    경복궁 근정전 당가

    당가가 갖추어야 할 모든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하지만 2003년 보수공사 때 다시 올린 고채도의 원색 단청이 당가 본래의 품격을 떨어뜨린 감이 있다.




    경복궁 근정전 당가 동쪽 계단 문로주 위의 신수상

    물결대좌 위에 앉은 상과 연꽃대좌 위에 앉은 상 두 종류가 있다.




    경복궁 근정전 당가 머름에 장식된 화려한 원색 문양

    방승, 연환 등 장구·영원의 의미가 있는 길상 문양이 그려져 있다.



    팔보문이 화려한 창덕궁 인정전 당가

       인정전 당가 역시 계자난간과 네 개의 계단을 갖추고 있다. 어좌단 청판 위에 어좌 등널과 곡병이 놓여 있고, 그 뒤쪽으로 일월오봉병이 높이 설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자리에 봉황도가 걸려 있었던 사실을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좌 등널 정상부에 서일상운문(瑞日祥雲紋)이, 곡병 정상부에 정면을 바라보는 상룡(祥龍)이 새겨져 있는 점은 중화전의 경우와 같으며, 격간에 모란꽃 문양을 투각한 것도 마찬가지다. 운궁에 장식된 화려한 팔보문(八寶紋)이 당가의 위엄과 장식성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창덕궁 인정전 당가

    일제시대에는 일월오봉병 자리에 봉황도가 걸려 있었다.



    창덕궁 신선원전 당가 — 조상숭배 사상의 그림자

       신선원전(新璿源殿)은 1921년 순종 때 구선원전 후신으로 지어진 건물로, 역대 임금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다. 내부에는 열한 개의 신실(神室)이 있고 신실마다 곡병과 교의(交椅)가 놓여 있다. 곡병에 서일상운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정전의 곡병과 달리 상부가 아닌 중앙부에 장식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곡병 좌우에는 망룡(望龍)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쪽 널판에도 용두가 조각되어 있다. 당가 앞쪽에 설치된 풍련의 투각 연당초문이 화려한데 비해, 뒤쪽에 보이는 일월오봉병의 분위기는 오히려 적막하다.


       벽 세 면에는 다양한 문양들이 장식되어 있다. 북쪽 벽에는 석류, 복숭아, 불수감, 연당초문, 작약, 모란이, 동·서쪽 벽면에는 영지, 괴석, 서일상운으로 구성된 문양판이 장식되어 있다. 선대왕의 초상을 모신 선원전에 정전 못지않은 격식을 갖춘 당가를 설치한 배후에는 유교 전통의 조상숭배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창덕궁 신선원전 당가 천판에 장식된 황룡

    오색구름과 황룡의 모습이 신비롭다.



    창덕궁 신선원전 당가

    정전 당가의 격식과 제도를 취하고 있으나 장식은 그보다 더 풍부하고 화려하다.

    그 배후에는 유교 전통의 조상숭배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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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 전체항목 집필자 소개

    사대부들이 누렸던 누정 생활의 풍류를 이해하기 위해 지난 수년 동안 전국에 있는 수많은 누정을 유람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 우리문화연구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감정위원..펼쳐보기

    출처

    궁궐 장식
    궁궐 장식 | 저자허균 | cp명돌베개 전체목차 도서 소개

    조선왕조의 이상과 위엄을 상징하는 궁궐 장식. 유교정치의 이상과 옛사람들의 미의식과 세계관이 담긴 다양한 조각상과 그림, 문양, 건축물 등을 통해 궁궐장식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본다.



    Daum  과사전  당가

    (궁궐의 중심, 최고의 권위, 唐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