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정재(宮中呈才) - 향악정재(鄕樂呈才) / 넷

2017. 4. 14. 21:52율려 이야기



궁중정재(宮中呈才) - 향악정재(鄕樂呈才)  /  넷


      

*선유락(船遊樂)
    순종 때에 이르러서 궁중의 향악정재(鄕樂呈才)로 규정지어 졌다. 곱게 단장(丹粧)한 채선(彩船)을 준비해 놓고 여러 무용수들이 나누어 서서 배가 가는 모양을 하며 뱃줄을 끌고 이선가(離船歌)와 어부가(漁父歌)를 노래하며 춤을 춘다. 동기 2인이 배에 올라 닻과 돛을 잡고 여기(女妓) 2인은 뱃전 좌우에서 뱃줄을 잡고 내무(內舞)하며 32인은 밖으로 외무(外舞)한다. 집사기(執事妓)의 대청분(待聽分)에 따라 징을 세 번 요란하게 치면 어부사를 병창(竝唱)하며 춤을 춘다. 



2012 경회루 연향 - 선유락(船遊樂)


게시일: 2012. 3. 28.

2012년 경회루 연향 중
선유락은 향악무로서 발생 연대와 제작자는 미상.

신라시대부터 유래하며 순조 기축(1829) 이후 고종 신축(1901) 진연의궤이 이르기까지
궁중에 잔치가 있을 때마다 징, 북, 호적, 자바라, 나발로 구성되는 내취수의 명단이 있는데,
이는 선유락을 상연하기 위한 대령 악인이었다.



국립국악원 추천 음악 - 크고 화려한 조선의 궁중 뱃놀이 "선유락"


게시일: 2015. 7. 13.

크고 화려한 조선의 궁중 뱃놀이, "선유락"

뱃놀이는 동서고금 여러 형태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수많은 산수화 속 쪽배의 유유자적함, 김홍도의 평안감사 월야선유도의 웅장함 등은
우리에게 정서적, 시각적으로 익숙하지요.
이와 같이 조선의 궁중에도 뱃놀이를 형상화한 무용이 있었습니다.

선유락은 그 이름(船遊樂)과 같이 화려하게 채색하여 꾸민 배를
무용수들이 끌고 돌리며 어부와 고기잡이에 관한 노래(어부사)를 부르는 궁중무용 입니다.

1795년 조선 정조 때 편찬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는 신라 때 부터 유래됐다는 기록이 있으며,
실제로는 지방관아에서 전승되어 영조 이후로 궁중에서 선보인 것으로 보입니다.

국립국악원에서 현행되는 궁중무용 또는 향악정재(鄕樂呈才)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 다양한 소품,
리고 화려함이 돋보이는 선유락은 무관의 옷을 차려입은 2명 집사의 호령으로 진행되며,
반주음악은 다른 종목들과 달리 취타대가 포함된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징소리와 함께 무용이 시작되면 실제 돛단배와 비슷한 구조물인 채선(彩船)에 탑승한 동기(童伎)를 중심으로
안에서 배를 끄는 내무(內舞)와 바깥에 큰 원형으로 서는 외무(外舞)의 형태로 나뉩니다.

오늘날 국악원의 인원 구성은 주로 동기 1명, 1 내무 4명, 외부 18명이지만,
이것은 행사의 성격에 따라서 변한 것으로 각종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참고문헌
한겨레국악대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글. 국립국악원 김가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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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정보
국립국악원 가족음악회 옛 그림 속 춤과 음악[2008.12.05.]
04. 정재 ‘선유락’

ㅇ 출연/국립국악원 정악단, 무용단
- 집박/윤병천, 피리/김성진·이종무, 대금/문응관·김휘곤(단소),
해금/고수영·김용선, 가야금/이유나, 거문고/윤성혜, 양금/조유회,
장구/홍석복, 좌고/홍창남, 태평소/홍현우·김철,
나각/노붕래·최성호, 나발/채조병·김창곤,
용고/윤형욱·김형섭, 자바라/문현·한갑수, 징/임완혁,
무용지도/최경자, 집사/이종호·박준규, 동기/장민하·유재연,
협무/최연형·최형선·백진희·홍명진·김혜영·이명희·이지연·김태은·
김진정·김영신·최성희·윤은주·소정연·권문숙·이지은·백미진·
김영애·정효민·이주리·정승연·서희정·이미영·박민지·조은주·
이주희·이윤정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원행을묘정리의궤 / 선유락                     
    1. 원행을묘정리의궤 / 선유락




      기축년진찬도병 중 자경전내진찬도 己丑年進饌圖屛 중 慈慶殿內進饌圖

      궁중정재 그림 ㅡ 선유락(중앙부 원무), 아랫부분 7시 방향부터 시계방향으로 연화대, 오양선, 향발무, 장생보연지무, 헌선도, 무고,수연장, 검기무
      윗부분 시계 방향으로 ㅡ 헌선도,하황은, 몽금척,연화대무, 포구락,무고 (*** 헌선도와 무고는 그림 배치상 중복 기재됨)










































      8첩 병풍, 각  151.5×66.4cm, 비단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화성능행도병 중 봉수당진찬도 華城陵幸圖屛 중 奉壽堂進饌圖

      궁중정재 그림 ㅡ 선유락, 무고(11시 방향, 1시 방향), 수연장(봉수당 앞 부분)
          




      *관동무(關東舞)
          헌종 때 진찬의궤(進饌儀軌)에 처음으로 기록되어진 향악정재(鄕樂呈才) 이다. 춤의 내용은 "관동별곡(關東別曲)"과 비슷하며 관동산수의 아름다움을 가무로 만든 것이다. 8명의 무용수가 반으로 나누어서 들어갔다 나왔다 또는 빙빙 돌면서 춤춘다. 동작은 다른 정재무와 흡사하다.

      *첩승무(疊勝舞)
          조선 순조28년 때에 창작된 향악정재무 이다. 이 춤은 노래가 중심으로 되어졌으며 포구락(抛毬樂)을 모방한 춤이기도 하다. "태평춘지곡(太平春之曲)"을 연주하면 무녀6명이 춤추며 1첩부터 10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간씩 춤사위를 바꾸어가며 춤춘다.

      *춘광호(春光好)
          순조 때부터 상연된 향악정재무 이다. 부왕(父王)을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창제되었다. 무원(舞員)6명이 북쪽에 둘, 남쪽에 둘, 동쪽에 한사람 서쪽에 한사람씩 서서 봄처럼 화사한 춤사위를 벌인다. 내용은 봄의 따스한 햇살이 궁궐에 비추어 즐겁다는 것을 노래와 춤으로 만든 것이다. 춤은 "풍경지곡(豊慶之曲)"에 맞추어 춤춘다. 6명의 무용수로 이루어졌으며 북쪽에 2명과 남쪽에 2명 동과 서에 각 1명씩 퍼져서 춤을 춘다. 무보는 「심향춘」의 무보(舞譜)와 같다.

      *사선무(四仙舞)
          순조 때에 상연된 향악정재무 이다 . 춤의 내용은 영랑(永郞) 안상(安祥) 남석행(南石行) 술랑(述郞)이 조선의 수려한 산수를 다니며 놀다가 창작한 것으로 금강산의 무선대에서 취무(醉舞) 하였다는 전설에 근거하여 태평성대(太平聖代)의 내용을 가무(歌舞)한 것이다.


      진찬의궤 / 사선무
      진찬의궤 / 사선무




      * 참고 :
       사물놀이 - 사선무 Saseonmu


      게시일: 2014. 1. 28.

      Titile : saseon-mu for Samul-nori and orchestra

      Composer : Seunghee Hong





      *광수무(廣袖舞)
          고려 때 궁중에서 연행되던 향악정재무 이다.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2명의 무원이 "풍경곡"에 맞추어 춤춘다. 숙종 이후 1901년 무렵까지 계속 상연되었다. 

      진찬의궤 / 광수무
      진찬의궤 / 광수무

      ≪진연의궤≫의 기록 중 광수무. 광수무는 조선시대 숙종 때부터 전하는 정재 중의 하나로 9작 중 제3작에는 '초무', 제4작에는 '아박', 제5작에는 '향발', 제6작에는 '무고', 제7작에는 '광수무'를 추고, 이어 '처용무'가 상연되고 있다.



      기해기사계첩 중 경현당석연도 己亥耆社契帖 중 景賢堂錫宴圖

      궁중정재 - 광수무



























      김진여(金振汝)·장태흥(張泰興)·박동보(朴東普)·장득만(張得萬)·허숙(許俶), 1719~1720년, 비단에 채색, 52.0×72.0cm, 국립중앙박물관



      *망선문(望仙門)
          순조 연간에 제작된 춤으로 봉작선(奉雀扇) 4인 집당무(執撞舞) 2인으로 구성되었으며 음악은 향당 교주에 따라 봉작선(奉雀扇) 4인에 이어 집당(執撞) 2인이 나가면 , 작선은 곧바로 문을 지으며 상대무(相對舞) 상배무(相背舞) 좌선무(左旋舞) 우선무(右旋舞)등을 되풀이한다. 순조 28년 진작(進爵)에 예제의 창사에 실려 있다. 

         순조 기축(己丑) ≪진찬의궤 進饌儀軌≫에 의한 무동(舞童)의 복식(服飾)은 봉작선(奉雀扇) 무동은 주취금관(珠翠金冠)을 쓰고, 화금포(花錦袍)·남질흑선중단의(藍質黑縇中單衣)·남질흑선상(藍質黑縇裳)에 자사대(紫紗帶)를 띠고 그 위에 백우호령(白羽護領)과 백우엄요(白羽掩腰)에 보대(寶帶)를 하고 무우리(無憂履)를 신는다.

         집당(執幢) 무동은 주취금관을 쓰고, 자라포(紫羅袍)·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남질흑선상에 남사대(藍紗帶)를 띠고, 백우호령·백우엄요에 학정대(鶴頂帶)를 띠고, 비두리(飛頭履)를 신는다.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학무(鶴舞)
          중요 무형문화재 제40호 학의 탈을 쓰고 추는 궁중무용(宮中舞踊)의 하나이며 「학춤」이라고도 하며 향악정재(鄕樂呈才)에 속한다. 고려 때 발생하여 궁중행사나 나례의식 등에서 연희되었다. 조선 선종 때에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기록될 만큼 규모가 커졌고 연화대무(蓮花臺舞) · 처용무(處容舞)와 연이어 공연되는 궁중무용 (宮中舞踊)의 대작 중에 드는 춤이다.
      춤은〈보허자령(步虛子令)〉의 주악에 따라 청학과 백학이 지당면(池塘板) (네모진마루)앞에 동서로 갈라 서서 북향(北向)한다.


         어미 두 마리의 학은 몸을 떨거나 부리를 부딪치는 등의 무작(無作)을 벌인 뒤 지당판(池塘板) 앞으로 가서 연통을 쪼으면 연통(蓮筒)이 열리고 두 명의 동녀(童女)가 나온다. 이에 놀란 학은 뛰어 퇴장함으로써 춤은 끝난다. 우리 무용 중 조류(鳥類)의 탈의 탈춤으로는 이 춤 하나 뿐이다. 새의 탈을 쓰고 추는 춤이기에 새의 행동에 어울리는 동작과 가락을 표현하는 독특한 예술성을 지닌 춤이다. 학의 탈은 광목과 닭털을 사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근래에는 백학(白鶴) 혼자만의 독무(獨舞)로 추는 경우가 많으며 지당판과 연통도 생략하는 것이 통례이다. 1971년 한영숙(韓英淑)이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궁중무용 중 대작인 학연화대처용무합설 (鶴蓮花臺處容舞合設) 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국립국악원 토요명품공연[2015.04.25.]
      01. 학연화대합설(Hak-Yeonhwadae Hapseol)


      게시일: 2015. 4. 29.

      01. 학연화대합설

      말 그대로 학무와 연화대가 하나로 합쳐져 구성된 무용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궁중정재이다.
      정재에서 학과 연꽃은 깊은 연관을 가지며 이 때문에 학무와 연화대는 통상 연결되어 있다.
      학무는 학이 연꽃을 쪼면 그 속에서 두 여자아이가 나오고, 학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가 퇴장하면 이어서
      다른 무용수들이 등장해서 연꽃에서 나온 아이와 함께 연화대를 연행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임금을 송축하고 임금의 은덕에 감사하는 내용을 그린 춤이다.

      01. Hak-Yeonhwadae Hapseol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No. 40, this court dance is
      a combination of Hangmu (Crane Dance) and Yeonhwadae as the title indicates.

      Since cranes and lotuses are intertwined in court dances, Hangmu and Yeonhwadae are naturally linked.
      In Hangmu, a crane pecks at a lotus flower, whereupon two girls emerge, scaring the crane away.
      Then the other dancers appear and perform Yeonhwadae with the two girls.
      This dance was performed in praise of the king and in gratitude for his virtues.
      Hangmu is accompanied by Seryeongsan and Taryeong from the suite String Yeongsanhoesang,
      and Yeonhwadae by Wind Yeongsanhoesang.

      ○ 죽간자/이윤정·임동연, 악사/이혜경(준단원)·고은비(준단원), 학/김영신·이주리, 동기/최성희·유재연, 협무/최형선·이정미,
      집박/김기동, 피리/김철·김성준, 대금/이결·이오훈(단소), 해금/김용선·한갑수, 양금/김형섭, 장구/박거현, 좌고/조성욱(준단원)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신정왕후의 팔순 기념잔치, 정해진찬도(丁亥進饌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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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번째 장면: 29일 왕세자가 술을 따르는 장면(재익일회작再翌日會酌), 진찬도 당랑의 좌목(座目)
      조석진, 조선 1887년, 비단에 색
      궁중정재 그림 :학연화대합설,향발무,검기무,수연장,연화무




      학무


      게시일: 2014. 10. 6.

      학무(現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1972년 | 기능보유자 : 한영숙 | 전수자 : 정재만

         학무는 고려시대 때부터 궁중의례에서 추어왔던 향악정재(鄕樂呈才 향악 반주곡에 맞추어 공연되는 궁중무용)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유물인 동시에 독특한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춤이다. 새의 탈을 쓰고 추는 춤이기 때문에 새의 행동과 유사한 동작과 가락 등이 표현되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류의 탈춤으로는 이 학무가 유일하다. 1981년1월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에는 ‘학무(鶴舞)’라 하였으나, 1993년 12월 ‘학연화대합설무 (鶴蓮花臺合設舞])’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학무는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청아하고 매우 운치있는 연무로, 두루미의 동작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독자성과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춤으로 평가된다. 이 춤은 고종 이후 단절되었다가 1935년 부민관에서 발표된 한성준의 창작학무로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당시 학무 예능보유자 한영숙은 한성준의 손녀이다. 이 영상에서 전수자로 출연한 정재만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다가 올해 7월 12일 6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Hakmu [Dance of Crane]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40, Hak-Yeon-Hwa-Dae-Hap-Seol-Mu)

      1972 | Master : Yeong-Sook HAN | Initiate : Jae-Man JEONG

         Hakmu is a Hyang-Ak-Jeong-Jae (A court dance with Hyangak) that has been performed at royal court ceremony since Joseon Dynasty. It has old history and unique artistry. Hakmu is the only birds’ masked dance in Korea, so it has the identity with __expression__ of the melody and the motion which are similar to birds’ real activity. In January, 1981, when it was selec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the name was ‘Hakmu’, but its name has been changed to ‘Hak-Nyeon-Hwa-Dae-Hap-Seol-Mu’ since December, 1993. Hakmu is noble, beautiful, pure, tasteful, and rated as the dance with originality, artistry by realistically expressing crane’s motion. This dance had died out after Go-Jong, but then since 1935, it again has handled out as Seong-Joon HAN’s creation Hakmu. The holder, Yeong-Sook HAN is a granddaughter of Seong-Joon HAN. Jae-Man JEONG, appeared as an initiate on this video, had been in furious activity as the Seungmu holder,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27, and then departed this life in 66 years old, 12th July, this year.



      원행을묘정리의궤 / 학무
      원행을묘정리의궤 / 학무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실려 있는 학무로 조선 전기부터 전하는 향악정재의 하나. 개인 소장.






      *항장무(項莊舞)
          본래 평안남도 선천의 잡극이었던 무극(舞劇)을 1873년 고종 때 궁중에 들여와 연례무(宴禮舞)로 하였다. 중국 진말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항우와 유방은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암투하던 차 홍문에서 연례를 갖게 되는데 ,이때 항우의 조카 항장(項莊)은 검무를 추다가 유 방(劉邦)을 죽이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항장무는 이 홍문연의 이야기를 무극화한 것이다. 음악은 반드시 〈대취타(大吹打)〉를 쓴다. 

         조선 후기에 상연되던 무극(舞劇)의 하나. 1873년(고종 10)에 평안남도 선천지방의 무극을 처음으로 궁중에 들여온 것으로 홍문연(鴻門宴)의 이야기를 무극화한 것이다.

      진말(秦末)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은 관중(關中)에 먼저 들어가려고 다투는데, 유방이 먼저 관중에 들어가자 항우가 노하여 군사를 홍문(鴻門)에 머무르게 하고, 다음날 아침을 기하여 유방을 치려 한다.

      항우의 계부(季父) 항백(項伯)은 유방의 부하 장량(張良)과 사이가 좋았던 관계로 이 계략을 말해주자 유방은 그 다음날 홍문에 나가 사과를 한다. 그 때 항우의 모신(謀臣) 범증(范增)은 항장(項莊)으로 하여금 칼춤을 추게 하여 유방을 찔러 죽이려 하였으나, 유방의 부하 번쾌(樊噲)의 변설(辯舌)로 무사하였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춤의 절차는 1893년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笏記≫에 전한다. 한편, <항장무>에는 <선유락 船遊樂>과 같이 반드시 <대취타 大吹打>가 연주된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도(舞圖)에는 정현석(鄭顯奭)의 ≪교방가요≫가 있다. <항장무>에 쓰던 일부의 무복과 투구 등이 국립국악원에 보존되어 있을 뿐 그 춤은 전하지 않는다.



      *아박무(牙拍舞)
         궁중무용으로 타악기의 일종인 아박(牙拍)을 두 손에 넣고 박을 맞추어 대무(隊舞)하는 춤이다. 순서는 먼저 우기 2명이 좌우로 나뉘어 춤추며 나가서 꿇어앉아 아박을 들어다 놓은 다음 일어나 염수 족도하면 〈동동만기〉를 아뢴다. 무악에 맞추어 두 기녀가 〈동동사(動動詞)〉의 서구를 부른 뒤 아박을 허리에 꽃고 족도한다.〈동동정월사〉를 부른다. 이어서〈동동중기〕에 맞추어 2월사부터 12월사 까지 노래한다. 춤은 매월 사(詞)에 따라 북향무(北向舞)·배무(背舞)·대무(對舞)·등으로 변한다. 이 춤은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의 것을 본뜬 것이기도 하다. 

         아박은 상아로 만든 박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의 것을 말하는데, 아박무는 아박을 들고 치면서 춤춘 데에서 유래되었다.

      〈고려사〉 악지 속악조에 무고·무애와 더불어 동동의 이름으로 전한다. 동동은 춤추면서 부르는 동동의 후렴 '아으 동동다리'에서 딴 이름이다.

      〈세종실록〉 권126에 보면 1449년(세종 31) 10월까지도 동동정재로 소개되는데, 〈악학궤범〉에는 아박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1518년(중종 13) 4월 아박의 동동사는 정도전이 지은 〈신도가 新都歌〉로 바뀌었으며, 조선 말기에는 7언절구의 한시로 바뀌었다.

         무원의 구성은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에 2명으로 되어 있다. 조선 말기에는 2명 또는 4명이, 〈정재무도흘기 呈才舞圖笏記〉에는 44명이 추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반주음악으로 〈악학궤범〉에서는 동동 만기와 중기가 연주되었고, 〈정재무도홀기〉에서는 정읍 만기가 쓰였다.



      국립국악원 수요춤전: 김영숙과 정재연구회[2015.09.16.] 02. 아박무(Abakmu)


      게시일: 2015. 9. 17.

      02. 아박무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동동(動動)으로 전하며,
      『악학궤범(樂學軌範)』 시용향악정재도의(時用鄕樂呈才圖儀)에는 타악기의 일종인 아박을
      두 손에 들고 박자에 맞추어 아박을 치며 대무하므로 아박무라고 전하여진다
      ○ 춤/송영인·이나윤·김희원·박수정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02. Abakmu

      Abak refers to the clapper, a musical instrument made of ivory or animal bone.
      The dancers face each other and move to percussive beats.
      The movements are recorded in old books, such as History of Goryeo and Cannons of Music.
      ○ Dance/Song Yeong-in•Yi Na-yun•Kim Hui-won•Bak Su-jeong



      아박무


      게시일: 2013. 10. 27.

      경복궁 야간공연 중 세번째 춤공연
      작은 박을 들고 두드리면서 추는 춤





      국립국악원 토요명품공연[10.10.] 05. 아박무(Abangmu)



      게시일: 2015. 10. 14.

      아박무

      '상혼’은 아박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아박무는 ‘아박’이라고 하는 작은 악기(박)를 두 손에 들고 추는
      궁중정재이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부터 기록이 등장하며, 조선후기 궁중 연회에서 자주 등장한 정재
      이다. ‘상혼’은 무대 구도, 몸짓의 반복과 변화에 중점을 두며,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이미지를
      큐브라는 이미지 속에 대입하여 구성하고자 했다. 큐브는 사각의 형식에서 변화하지 않지만 내적으로 끊
      임없이 움직이려는 모습이자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여기에 아박이 가지고 있는 소리의 변주를 시도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의 궁중무용 형상화를 보여주고자 한다.

      05. Abangmu

      Sanghon is based upon Abangmu, a court dance where the dancer holds small bak(abak) in both hands.
      Documents show that it existed as early as the Goryeo period, and was often performed in the royal court
      of the Joseon dynasty. This work focuses on the stage structure and the change of gestures,
      and projects images of “motion in stillness” and “stillness in motion” into a cube.
      Although a cube looks rectangular on the surface, it constantly moves within itself, just like we do.
      And additionally the sound of the abak is varied for a different image of court dance.

      ○ 지도/최경자
      ○ 무용/김혜자·최형선·김혜영·유재연, 후대인/이주희·정승연·서희정·이미영·권문숙·
      조은주·이윤정·박지애·이혜경(준단원)·고은비(준단원)
      ○ 집박/황규상, 피리/윤형욱·김철, 대금/이결·이종범, 해금/사현욱·한갑수,
      장구/홍석복, 좌고/안성일, 창사/이준아·박진희(준단원)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국립국악원 토요명품공연[10.10.] 06. 상혼(Sanghon)


      게시일: 2015. 10. 14.

      '상혼’은 아박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아박무는 ‘아박’이라고 하는 작은 악기(박)를 두 손에 들고 추는 궁중정재이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부터 기록이 등장하며, 조선후기 궁중 연회에서 자주 등장한 정재이다.
      ‘상혼’은 무대 구도, 몸짓의 반복과 변화에 중점을 두며,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이미지를 큐브라는 이미지 속에
      대입하여 구성하고자 했다. 큐브는 사각의 식에서 변화하지 않지만 내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려는 모습이자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여기에 아박이 가지고 있는 소리의 변주를 시도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의 궁중무용 형상화를 보여주고자 한다.

      06. Sanghon
      Sanghon is based upon Abangmu, a court dance where the dancer holds small bak(abak) in both hands.
      Documents show that it existed as early as the Goryeo period, and was often performed in the royal court of the Joseon dynasty.
      This work focuses on the stage structure and the change of gestures, and projects images of “motion in stillness”
      and “stillness in motion” into a cube. Although a cube looks rectangular on the surface,
      it constantly moves within itself, just like we do.
      And additionally the sound of the abak is varied for a different image of court dance.

      ○ 안무/이종호, 무용/박상주·김진우(준단원)·김서량·김영애·백미진·박경순·임동연·이하경·최나리(준단원)·권덕연(준단원)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기해기사계첩 중 경현당석연도 己亥耆社契帖 중 景賢堂錫宴圖


      김진여(金振汝)·장태흥(張泰興)·박동보(朴東普)·장득만(張得萬)·허숙(許俶),
      1719~1720년, 비단에 채색, 52.0×72.0cm, 국립중앙박물관










































      술잔이 모두 다섯순배 도는 제 5작연으로 개최된 이 <경현당석연>에서는
      '초무', '아박무', '향발무', '무고무', '광수무', 등의 다섯 가지 정재와
      '여민락', '낙양춘' 등의 연주곡이 공연되었다.








      藏書閣 所藏 朝鮮時代 宮中宴享樂 文獻| 한국학중앙연구원자료            
      낙민 | 조회 35 |추천 0 | 2016.07.20. 20:10


      藏書閣 所藏 朝鮮時代 宮中宴享樂 文獻
      - 純祖代(1800-1834) 儀軌 -

       

       

      첨부파일 장서각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pdf


      1)金 鍾 洙*


       

      - 목 차 -
      1. 序
      1) 進饌圖 2) 慈慶殿進爵整禮儀軌
      2) 儀註 3) 純祖 戊子年進爵儀軌
      3) 樂章 4) 純祖 己丑年進爵儀軌
      2. 解題
      1) 惠慶宮進饌所儀軌 3. 자료적 가치

       

       

      1. 序


      장서각에 소장된 궁중연향악 의궤는 다음과 같다.
      * 서울대 박사과정 수료, 국악이론.
                                                                                             - 62 藏 書 閣

       

       


      문 헌 명       도 서 번 호      편찬연도       설행 동기
      園幸乙卯整理儀軌2-2897, 2-2898 1795(정조 19) 혜경궁 환갑
      惠慶宮進饌所儀軌2-2882 1809(순조 9) 혜경궁 冠禮 60돐
      慈慶殿進爵整禮儀軌2-2858 1827(순조 27) 원손탄생과 순조․순원왕후 존호
      (戊子) 進爵儀軌2-2859, 2-2860 1828(순조 28) 순원왕후 40세
      (己丑) 進饌儀軌2-2873 1829(순조 29) 순조 40세와 등극 30년
      (戊申) 進饌儀軌2-2874 1848(헌종 14) 純元王后 육순
      (癸酉) 進爵儀軌2-2861 1873(고종 10) 神貞王后(翼宗妃) 母臨 40년
      (丁丑) 進饌儀軌2-2875 1877(고종 14) 神貞王后 칠순
      (丁亥) 進饌儀軌2-2876, 2-2877 1887(고종 24) 神貞王后 팔순
      (壬辰) 進饌儀軌2-2878, 2-2879, 2-2880 1892(고종 29) 고종 41세와 등극 30년
      (辛丑) 進饌儀軌2-2881 1901(광무 5) 孝定王后(憲宗妃) 71세
      (辛丑) 進宴儀軌2-2867, 2-2868 1901(광무 5) 고종 50세
      (壬寅) 進宴儀軌2-2869 1902(광무 6) 고종 耆老所 입사
      (壬寅) 進宴儀軌2-2870, 2-2871 1902(광무 6) 고종 51세와 등극 40년


         이와 더불어 궁중연향악의 면모를 풍부히 보여주는 문헌으로 각종 呈才舞圖笏
      記가 있는데, 이는 김영운 교수의 자세한 해제와 함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영
      인된 바 있다.1)
      궁중연향의궤는 1795년(정조 19) 園幸乙卯整理儀軌를 기점으로 형식과 체제가
      다르다.2) 숙종과 영조대의 것은 반차도(班次圖)나 행사도(行事圖)가 없고, 계사(啓
      辭)․이문(移文)․내관(來關)․감결(甘結)․일방(一房)․이방(二房)․삼방(三房)․별
      공작(別工作)․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예빈시(禮賓寺)․사축서(司畜署) 등
      의 목차로 되어 있는데, 園幸乙卯整理儀軌 이후의 것은 도식(圖式)이란 항목 아래
      진연도(進宴圖)․정재도(呈才圖)․기용도(器用圖)․악기도(樂器圖)․복식도(服飾圖)
      등이 수록되어 있고, 택일(擇日)․좌목(座目)․도식(圖式)․전교(傳敎,또는令敎)․연
      설(筵說)․악장(樂章)․치사(致詞)․전문(箋文)․의주(儀註)․절목(節目)․계사(啓辭,
      또는 達辭)․신목(申目)․이문(移文)․내관(來關)․품목(稟目)․감결(甘結)․찬품(饌品)․
      기용(器用)․수리(修理)․배설(排設)․의장(儀仗)․의위(儀衛)․진작참연제신(進爵參
      宴諸臣)․내외빈(內外賓)․공령(工伶)․악기풍물(樂器風物)․상전(賞典)․재용(財用)
      등의 목차로 되어 있다.


         의궤에서 음악과 관련된 주항목은 정재와 악기 및 진연상황이 그려져 있는 ‘도식
      (圖式)’, 의식절차와 그에 따른 음악이 기술된 ‘의주(儀註)’, 연향에서 노래불린 ‘악
      장’, 악기연주와 노래 및 정재를 공연한 시람들의 역할이 기록된 ‘공령(工伶)’3)이다.
      이외에 이문(移文)․내관(來關)․감결(甘結) 등에서 정재와 의물(儀物)을 담당하는
      여령(女伶)을 어떻게 선발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 실려있고, 상전(賞典)에 여령과
      악공에 대한 시상(施賞)이 실려 있다.


      1) 呈才舞圖笏記, 韓國學資料叢書 제1권(성남: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2) 박정혜, 「<水源陵幸圖屛>硏究」, 美術史學硏究 189호(서울:한국미술사학회, 1991. 3.) 47쪽.
      3) 공령은 악인(樂人)을 뜻하는 공인(工人)과 영인(伶人)에서 나온 말이며, 악기연주․노래․춤을 공연하는 사
      람을 가리킨다.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63


         본고에서는 순조대(1800-1834) 연향의궤인 惠慶宮進饌所儀軌 慈慶殿進爵整禮儀
      軌 (戊子) 進爵儀軌 (己丑) 進饌儀軌 중 음악(정재 포함)과 관련된 사항을 살펴
      보고자 한다. 각 의궤의 해제에서 연향을 베풀게 된 동기․의식절차에 따른 음악 ․
      악기편성․악가무차비(樂歌舞差備)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룰 것이다. 해제하기에 앞서
      각 의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문제를 우선 설명하려고 한다.


      1) 進饌圖
         권수(卷首)의 진찬도(進饌圖) 또는 진작도(進爵圖) 등을 보면, 악기 연주는 악공이
      하고 있는데 어떤 경우는 악공 앞에 휘장이 드리워 있고, 정재는 여기(女妓) 또는
      무동(舞童)이 추고 있다. 이에 대해 설명하기로 하겠다.
      연향은 외연(外宴)과 내연(內宴)으로 크게 나뉜다. 외연은 군신(君臣)이 주축이 되
      는 연향으로 대비․왕비․명부(命婦)등의 여자가 참여하는 일이 없지만, 내연은 대
      비․왕비․세자빈․공주․명부 등의 여자가 참여하는 연향으로 왕을 비롯한 종친
      (宗親)․의빈(儀賓)․척신(戚臣)등 왕실 친인척의 남자가 참여하기도 한다.


         내연에는 왕비와 명부(命婦) 등이 참여하므로, 조선전기 이래 내연의 악가무(樂歌
      舞:악기연주 노래 춤)는 모두 여기(女妓)가 하였다. 여기들의 악기연주가 능숙하지
      못할 경우는 앞을 못보는 관현맹인(管絃盲人)이 보충할지언정, 정상적인 남자악공이
      내연에서 연주할 수는 없었다. 조선은 내외(內外)가 엄격한 유교사회였기 때문이다.
      이와 반면에 외연에서는 악기연주는 악공이 하고 노래와 춤은 여기가 하였다.


         그런데 세종대(1418-1450) 성리학적 문물제도를 마련하면서 1433년(세종15)에 여
      기로 인해 마음이 방탕해지고 남녀간의 분별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막고자, 외연에
      여기 대신 남자아이들인 무동이 정재를 추는 제도를 태동시켰다. 그러나 아직 성리
      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조선전기에는 외연에 무동을 쓰는 제도가 정착되지 못
      했고, 성리학을 자기화(自己化)하여 사회전반에 뿌리내린 인조반정(1623) 이후의 조
      선후기에 이르러 완전히 정착되었다. 즉 인조반정 이후 외연에서 여기가 정재를 춘
      경우는 없다.


         한편 조선전기에는 외방에서 재예가 뛰어난 여기를 서울로 뽑아올려 서울에 머물
      며 악가무 활동을 하게 했는데, 인조반정 이후에 서울에 악가무를 전업으로 하는 장
      악원 여기를 혁파했으므로, 내연에 임하여 외방 여기를 뽑아올려 쓰고, 연향을 마
      치면 곧 내려보냈다.


         정조대(1776-1800) 전반(前半)까지만 해도 내연의 악가무를 여기가 담당했는데,
      1795년(정조 19) 윤2월 내진찬 이후 악공이 악기연주를 하고, 의녀(醫女)와 침선비
      (針線婢)가 외방여기(外方女妓)와 함께 정재를 추는 새로운 전통이 형성되었다. 이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녀와 침선비가 정재에 참여하는 수 만큼 선상(選上)하는
      외방 여기를 줄일 수 있고, 그에 따라 백성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악기연주는 정재와 달라서 한두달 연습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부득이 내


                                                                                                      - 64 藏 書 閣


      외하는 휘장 또는 주렴(朱簾)을 드리우고 악공들이 연주하도록 했다.


         다음의 그림은 1829년(순조 29) 2월 명정전 외진찬과 자경전 내진찬이다. 내진찬
      에는 악공 앞에 내외하는 휘장이 드리워있고 여자들이 정재를 추고 있지만, 외진찬
      에는 휘장이 드리워있지 않으며 무동이 정재를 추고 있다.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65
      1829년 2월 외진찬. 己丑 進饌儀軌 卷首11b-12a 明政殿進饌圖
                                                                                                      - 66 藏 書 閣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67
      1829년 2월 내진찬. 己丑 進饌儀軌 卷首13b-14a 慈慶殿進饌圖
                                                                                                      - 68 藏 書 閣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69


      2) 儀 註
         의궤의 ‘의주(儀註)’ 항목에 의식절차에 따른 악곡과 정재 이름이 나오는데, 대개
      한 정재에 한 악곡이 기술되어 있다. 혹 이를 근거로 ‘조선전기에는 정재의 진행과정
      에 따라 악곡이 달라졌지만 조선후기에는 정재의 전 과정에 한 악곡이 연주되었다.’
      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4) 그러나 의주는 의식절차를 중점적으로 기술한 것이므로,
      연향에서 연주된 음악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한
      정재에 여러 악곡이 연주됐을지라도 의주에는 한 악곡만 실려있다. 정재공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呈才舞圖笏記에 실려있다.


         순조대(1800-1834)의 정재무도홀기가 전하지 않으므로 부득이 고종 신축년(1901)
      進宴儀軌와 外進宴時舞童各呈才舞圖笏記5)를 비교하도록 하겠다.
      고종 신축년(1901) 進宴儀軌 권1 함녕전외진연의(咸寧殿外進宴儀)에는 ‘전하에게
      소선(小饍)을 올릴 때, 등가에서는 천년만세지곡(千年萬歲之曲)을 연주하고 무동(舞
      童)은 봉래의(鳳來儀)를 춘다.’6)고 하여 봉래의정재에 천년만세지곡 한 곡만 연주하
      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外進宴時舞童各呈才舞圖笏記에는 봉래의정재에 ‘천
      년만세지곡(여민락령)․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보허자령)․치화평지곡(致和平之曲
      :향당교주) 등이 연주되고 용비어천가 악장을 가곡인 농(弄)․계락(界樂)․편(編)에
      맞추어 부른다.’7)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순조 기축년 진찬의궤 권1 명정전 진찬 의주에는 ‘제2작을 올린 후 전악(典
      樂)이 가자(歌者)와 금슬(琴瑟)을 이끌고 자리에 나아가는 절차’8)가 있는데, 이들이
      어떤 음악을 연주했는지에 대해서는 기술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연향에서 연주된 음악이 의주(儀註)에 다 기록되지는 않았음을 유념해야
      한다.


      4) 고방자, 「朝鮮時代 呈才伴奏樂曲名의 歷史的變遷에 대한 硏究」, 韓國音樂學論集(경산, 한국음악학연구회,
      1994) 제2집, 405․411쪽.
      5) 外進宴時舞童各呈才舞圖笏記(藏 2-2889)가 고종 신축년 외진연에 공연된 정재홀기임이 김영운에 의해
      呈才舞圖笏記 해제에서 밝혀졌다.
      6) 高宗 辛丑年 進宴儀軌 卷1, 50b1-2. “登歌作千年萬歲之曲 舞童入作鳳來儀(原舞曲) 提調進小饍 樂止” 규
      장각 도서번호 14464. 韓國音樂學資料叢書(서울:국립국악원, 1989) 제24권, 92쪽.
      7) 高宗 辛丑年 外進宴時舞童呈才舞圖笏記 (辛丑) , “鳳來儀··· 樂奏千年萬歲之曲(與民樂令) ○ 拍竹竿子二人
      足蹈而進立 樂止 口號···訖 ○ 拍奏五雲開瑞朝(步虛子令) ○ 拍舞八人舞進而立 樂止 唱海東章...連奏根深
      章···源遠章···昔周章···今我章···訖 ○ 拍奏致和平之曲(鄕唐交奏) ○ 拍竹竿子二人 先導 次舞八人次次相連右
      旋回舞 隨樂節唱狄人章···連奏野人章···千世章···子子章···嗚呼章···訖 ○ 拍竹竿子二人 如初列而進立 舞八人作
      四隊而進立 樂止 ○ 拍奏醉豊亨之樂(歌曲弄樂) 舞八人竝唱弄歌海東章···連奏根深章至源遠章···○ 拍(鄕唐交
      奏) ○ 拍舞八人四方作隊而舞···○ 拍俱北向而舞 樂止 ○ 拍(界樂) 舞八人竝唱界樂周國章···連奏狄人章至野
      人章···訖 樂止 ○ 拍(鄕唐交奏) ○ 拍舞八人各各左右旋轉而舞···○ 拍(歌曲編調) 舞八人竝唱編歌商德章···連
      奏赤島章···太子章···奉天章···一夫章···聖孫章···千世章···訖 樂止 ○ 拍(鄕唐交奏) ○ 拍舞八人竝以袖高低而舞···
      ○ 拍舞進而立 樂止 竹竿子二人口號···訖 ○ 拍奏賀昇平之曲(鄕唐交奏) ○ 拍竹竿子二人 足蹈而退舞八人舞
      退 樂止” 장서각 도서번호 2-2889. 韓國學資料叢書(성남: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제1권, 184-189쪽.
      8)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25b6-7.

                                                                                                                        - 70 藏 書 閣


      3) 樂 章
         의궤의 ‘악장’ 항목에 순한문으로 기록된 악장이 실려있는데, 실제로는 의궤에 기
      록된 것처럼 순한문으로 불리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악보가 전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악장을 보고 악곡을 추정해야하는데, 현토가 달린 악장 및 한글악
      장을 노래부르는 양식은 순한문 악장의 그것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순조 기축년 진찬의궤 권1의 예제내진찬선창악장(睿製內進饌先唱樂章)과 예제내진찬
      후창악장(睿製內進饌後唱樂章)은 翼宗文集에서도 똑같이 순한문으로 되어 있지만, 예제
      야진찬선창악장(睿製夜進饌先唱樂章)과 예제야진찬후창악장(睿製夜進饌後唱樂章)은 翼宗
      文集에는 현토가 달려 있고 ‘아으’ 등의 조흥구(助興句)도 삽입되어 있다.9)


      己丑 進饌儀軌 야진찬후창악장10)


      小臣 奉杯南山壽 千秋萬年 永无疆
      朱絃玉管 法曲獻仙音 承天奏聖人
      千重繡香 百隊綺羅 歌檀舞袖 競紛華
      寶殿深彤墀高 神京瑤臺 神京瑤臺




      翼宗文集 야진찬후창악장11)


      小臣이 奉杯南山壽니 千秋萬年에 永无疆이쇼셔
      朱絃玉管에 法曲獻仙音이 承天奏聖人이로이다
      千重繡香과 百隊綺羅아와 歌檀舞袖ㅣ 競紛華ㅣ로다
      寶殿深彤墀高니 神京瑤臺이로이다 아으 神京瑤臺이로이다 아으


         또 연향에서 불린 노래가 의궤의 ‘악장’ 항목에 다 실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1829년(순조 29) 2월 진찬에서 木覓山․漢江․春塘臺․今日樂․祝聖壽․頌聖德․獻
      天符 등의 국문악장도 노래 불리웠는데,12) 순조 기축년 進饌儀軌에는 이중 今日樂
      한 곡만 한문으로 실려있을 뿐이다.


      己丑 進饌儀軌 「今日樂」13)


      今日今日 千秋長若斯
      未央宮上壽宴
      慈慶殿奉歡 魚且樂
      昇平盛世今復覩


      9) 이종묵, 「翼宗 文集 解題」, 翼宗文集,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 제1권, 8-12쪽.
      10)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12a7-11.
      11) 翼宗文集 2권, 245쪽.
      12) 이종묵, 앞의 글.
      13)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12b10-13a2.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71



      翼宗文集 歌詞 「今日樂」14)


      오날이 어인낤고 즐거움도 즐거올샤
      小臣이 盞을 바다 南山壽비오니
      天顔이 有喜 近臣이 알앗거다
      아으 千秋萬歲가 長若斯ㅣ쇼셔


         정재악장도 마찬가지로 국문악장은 실려있지 않다. 예를 들면 1828년(순조 28) 6
      월에 창제된 만수무(萬壽舞)에는 한문창사(漢文唱詞)와 국문창사가 불리웠는데, 의궤
      에는 한문창사만 실려있다.15) 국문창사는 정재무도홀기 를 통해 알 수 있다. 따라
      서 궁중연향악의 전모를 살피려면, 의궤에 실린 궁중연향의 전반적인 자료와 함께
      정재무도홀기 와 문집 등의 세부자료를 참조해야 할 것이다.


      2. 解 題
      1) 惠慶宮進饌所儀軌
      (1) 서지적 고찰


      장서각도서번호 2-2882
      禮曹(朝鮮) 編. 原本. 純祖 9(1809) 寫.
      1冊(64張). 四周單邊. 半郭 31.4 × 21.3 cm.
      烏絲欄. 半葉 12行 24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 42.5 × 27.8 cm. 線裝.
      卷首: 嘉慶 十四年 己巳(1809) 二月 日.
      版心上: 禮曹上.
      印: 藏書閣印.
      紙質: 楮紙.


         惠慶宮進饌所儀軌는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이 관례(冠禮)한지 60돐이 된 것을 경
      축하여 1809년(순조 9) 정월 22일에 치사(致詞:축하문)와 표리(表裏:안팎 옷감)를 올
      리고,16) 2월 27일에 진찬(進饌)을 올린 것에17) 대한 기록이다.
      혜경궁진찬소의궤 는 규장각에는 없고 장서각에만 있다. 영국 국립도서관(British
      Library) 소장의 어람용(御覽用) 己巳進表裏進饌儀軌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나,
      혜경궁진찬소의궤 와 편찬체제가 다르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 는 원행을묘정리의궤 이후의 체제를 따르고 있고, 혜경


      14) 翼宗文集 제2권, 249쪽.
      15)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附編, 2a4. “睿製萬壽舞···各隊竝唱進諺相雜故不載”
      16) 純祖實錄 卷12, 9a14-10b7: 純祖 9年 正月 壬午.
      17) 純祖實錄 卷12, 13b4-15a8: 純祖 9年 2月 丁巳.
                                                                                                  -   72 藏 書 閣


      궁진찬소의궤는 그보다 소략하며 목차의 순서도 다르다. 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己巳進表裏進饌儀軌와 惠慶宮進饌所儀軌의 목차 비교
      己巳進表裏進饌儀軌惠慶宮進饌所儀軌
      擇日
      座目1
      圖式
      傳敎2
      筵說
      樂章6
      致詞5
      箋文4
      儀註9
      啓辭3
      移文7
      來關8
      甘結10
      饌品
      器用
      排設
      儀仗
      參班
      儀衛
      工伶12
      賞典11
      13 實入秩


         혜경궁진찬소의궤 에 아무런 숫자도 적혀있지 않은 것은 그 항목이 없음을 뜻하고,
      숫자는 목차의 차례를 뜻한다. 실입질(實入秩)은 혜경궁진찬소의궤 에만 있다. 두 의궤
      에 다같이 있는 항목일지라도 기록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무진년 12월 13
      일, 기사년 정월 8일 20일 24일의 전교는 혜경궁진찬소의궤 에만 실려 있고, 기사년 2
      월 27일 28일과 3월 19일의 전교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에만 실려있다.


         또 진표리(進表裏) 악공은 두 의궤가 똑같지만, 진찬(進饌) 악공은 두 의궤가 서로 다르다.
      진찬 악공으로 혜경궁진찬소의궤 에는 고악헌가고취공인(鼓樂軒架鼓吹工人)이 실려 있고,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에는 등가와 헌가공인이 실려 있다. 그런데 다음의 표에서 보듯이 혜
      경궁진찬소의궤 의 고악헌가고취공인은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의 등가공인과 똑같다.


      혜경궁진찬소의궤 進饌 고악헌가고취공인18)


      18) 惠慶宮進饌所儀軌 54a10-56b4. 쪽수는 원본에는 없으나 마이크로필름 제작시 쪽수를 매겨
      놓았다.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73


      교방고 1 함흥국
      방향 1 김현순
      거문고 2 차성은 고성엽
      가야금 2 유건무 안경민
      아쟁 2 김춘국 김윤신
      비파 2 유관득 강지수
      피리 10 이석득 장계손 신경록 함성학 전후근 신대득 김보광 신경국 이국충 박성익
      대금 10 강도흥 신광우 차성돌 박용완 장재량 강순갑 유양득 정치갑 차성철 유수한
      당적 4 안윤득 박성번 안윤풍 권후득
      퉁소 2 한우철 변창갑
      해금 4 홍삼득 김도경 김종식 한길록
      생 2 문명신 박경완
      방향 드는 사람 2 주경원 김응수
      교방고 드는 사람 2 김한상 김복철
      장고 2 서계신 김도성
      서기 2 오대겸 이수창
      집사전악 2 김응삼 박보완
      집박전악 1 유경윤
      기사진표리진찬의궤 進饌 등가 공인19)
      집사전악 김응삼 박보완
      집박전악 유경윤
      교방고 1 함흥국
      방향 1 김현순
      거문고 2 차성은 고성엽
      가야금 2 유건무 안경민
      아쟁 2 김춘국 김윤신
      비파 2 유관득 강지수
      피리 10 이석득 장계손 신경록 함성학 전후근 신대득 김보광 신경국 이국충 박성익
      대금 10 강도흥 신광우 차성돌 박용완 장재량 강순갑 유양득 정치갑 차성철 유수한
      당적 4 안윤득 박성번 안윤풍 권후득
      퉁소 2 한우철 변창갑
      해금 4 홍삼득 김도경 김종식 한길록
      생 2 문명신 박경완
      방향 드는 사람 2 주경원 김응수
      교방고 드는 사람 2 김한상 김복철
      장고 2 서계신 김도성
      서기 2 오대겸 이수창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진찬 헌가 공인20)


      19) 己巳進表裏進饌儀軌 92b9-93a4. 원본에는 쪽수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전북대학교 국악과 임미선 선생
      이 영국에 가서 복사를 하고나서 쪽수 표시를 하였고, 필자는 임미선 선생이 해 온 복사본을 참조하였다.
      20) 己巳進表裏進饌儀軌 93a5-12.
                                                                                                             -    74 藏 書 閣


      집사전악 2 김대건 안경인
      집박전악 1 서종신
      풍물차지전악 1 성시문
      피리 10 신광훈 배복상 김흥철 오대완 한순봉 김인택 김보병 함석봉 이순대 이영근
      대금 10 명희달 박성완 김복대 강도성 김필영 한사흥 임희창 함풍숙 황인득 유성득
      편종 2 김덕로 김완손
      편경 2 신덕인 오길원
      당적 4 임세풍 유계손 전홍근 임복한
      퉁소 2 손복득 오대순
      비파 2 유관득 신흥복
      해금 4 김수암 최완득 강수빈 차성갑
      방향 1 신오주
      장고 2 이석진 김경손
      건고 1 김삼득
      삭고 1 김천우
      응고 1 김광옥
      축 1 안경태
      어 1 안경문
      생 2 문기특 임창빈
      서기 2 함성관 김흥세


         그런데 진찬의식을 실은 의주에 등가와 헌가 악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21) 혜경
      궁진찬소의궤 보다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의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다. 혜경궁진
      찬소의궤 의 고악헌가고취공인은 등가공인의 오류이며, 또 헌가공인이 빠져있다.



      (2) 내 용


      ① 의식과 음악


      1809년(순조 9) 정월 景春殿 進致詞箋文表裏儀22)


      21) 惠慶宮進饌所儀軌 31a1-42b3.
      22) 惠慶宮進饌所儀軌 25a1-30a6.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75


         장악원에서 軒懸을 外庭에 진설한다.
      承文院官과 濟用監官이 치사․전문․예물을 받들고 集瑞門에 이를 때 세장(細仗) 고취(鼓吹)가 앞에서
      인도한다.
      혜경궁 陞座樂作
      왕․왕비 再拜. 命婦․儀賓․戚臣 再拜樂作 樂4成
      典言이 왕의 치사를 대신 아룀
      전언이 제자리로 감. 왕 이하 재배 樂作
      讀箋女官이 왕의 전문 읽음
      왕이 치사․전문․예물함 올림
      왕 이하 재배 樂作
      혜경궁이 宣旨함(좋은날 전하와 더불어 같이 하리라)
      典言이 왕비의 치사를 대신 아룀
      전언이 제자리로 감. 왕비 이하 재배 樂作
      왕비가 치사․예물함 올림
      왕비 이하 재배 樂作
      혜경궁이 宣旨함
      典言이 좌명부 치사를 대신 아룀
      전언이 제자리로 감. 좌명부 재배 樂作
      좌명부가 치사함 올림
      좌명부 재배 樂作
      혜경궁이 宣旨함
      典言이 우명부 치사를 대신 아룀
      전언이 제자리로 감. 우명부 재배 樂作
      우명부가 치사함 올림
      우명부 재배 樂作
      혜경궁이 宣旨함
      典言이 의빈 치사를 대신 아룀
      전언이 제자리로 감. 의빈 재배 樂作
      讀箋女官이 의빈 전문 읽음
      의빈이 치사․전문․예물함 올림
      의빈 재배 樂作
      혜경궁이 宣旨함
      典言이 척신 치사를 대신 아룀
      전언이 제자리로 감. 척신 재배 樂作
      讀箋女官이 척신 전문 읽음
      척신이 치사․전문․예물함 올림
      척신 재배 樂作
      혜경궁이 宣旨함
      왕 이하 三叩頭. 山呼
      왕 이하 재배 樂作
      혜경궁 降座. 還內樂作
      왕․왕비 出
      좌명부이하 出
                                                                                                                  -  76 藏 書 閣


      1809년(순조 9) 2월 경춘전 진찬의(進饌儀)23)


      23) 惠慶宮進饌所儀軌 31a1-41b3.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77


         하루 전에 장악원에서 헌현을 외정에 진설하고, 등가와 고악을 외정의 섬돌 위에 진설한다.
      당일날 승문원관이 치사함을 받들고 갈 때 세장고취가 인도한다.
      혜경궁이 자리에 올라감 헌가 여민락령 등가 여민락령
      왕대비가 혜경궁에게 再拜헌가 여민락 4成등가 여민락
      왕과 왕비가 혜경궁에게 재배 헌가 여민락 등가 여민락
      왕과 왕비가 왕대비에게 四拜헌가 여민락 등가 여민락
      명부․의빈․척신이 혜경궁에게 재배 헌가 낙양춘
      명부이하가 왕대비․왕․왕비에게 사배 헌가 낙양춘
      혜경궁에게 꽃 올림 헌가 여민락령
      휘건 올림 등가 여민락령
      鹽水 올림 헌가 여민락령
      別行果 올림 헌가 和明之樂
      饌案 올림 헌가 雍熙之樂
      小膳 올림 헌가 淸和之樂
      왕대비․왕․왕비에게 꽃 올림 헌가 여민락
      휘건 올림 헌가 여민락
      饌案과 술 올림 헌가 여민락
      명부․의빈․척신에게 頒花헌가 여민락
      여집사가 악장을 唱함
      등가 慶雲延之樂
      헌가 慶雲延之樂
      혜경궁에게 饅頭 올림 헌가 여민락
      왕대비가 혜경궁에게 제1爵 올림 등가 千年萬歲
      致詞
      혜경궁이 왕대비에게 宣旨함
      혜경궁 술잔을 듬 헌가 淸平樂등가 청평악
      왕이 혜경궁에게 제2작 올림 등가 五雲開瑞朝
      致詞
      혜경궁이 전하에게 宣旨함
      혜경궁 술잔을 듬 헌가 桓桓曲등가 환환곡
      왕비가 혜경궁에게 제3작 올림 등가 보허자령
      致詞
      혜경궁이 왕비에게 宣旨함
      혜경궁 술잔을 듬 헌가 夏雲峯등가 하운봉
      왕이 왕대비에게 술잔 올림 등가 여민락
      왕대비 술잔을 듬 헌가 여민락
      왕대비에게 치사함 올림
      왕비가 왕대비에게 술잔 올림 등가 여민락
      왕대비 술잔을 듬 등가 여민락
      왕대비에게 치사함 올림
      왕․왕비․명부이하가 왕대비에게 四拜 헌가 여민락
      좌명부가 혜경궁에게 제4작 올림 등가 정읍만기
      致詞
      혜경궁이 좌명부에게 宣旨함
      혜경궁 술잔을 듬 헌가 維皇曲등가 유황곡
                                                                                                 -   78 藏 書 閣


      우명부가 혜경궁에게 제5작 올림 등가 步虛子令
      致詞
      혜경궁이 좌명부에게 宣旨함
      혜경궁 술잔을 듬 헌가 千年萬歲등가 千年萬歲
      의빈이 혜경궁에게 제6작 올림 등가 井邑慢機
      致詞
      혜경궁이 의빈에게 宣旨함
      혜경궁 술잔을 듬 헌가 청평악 등가 청평악
      척신이 혜경궁에게 제7작 올림 등가 여민락령
      致詞
      혜경궁이 척신에게 宣旨함
      혜경궁 술잔을 듬 헌가 太平年之樂등가 태평년지악
      왕대비․왕․왕비․명부이하 三叩頭
      山呼
      왕대비․왕․왕비․명부이하 혜경궁에게 재배 헌가 여민락 등가 여민락
      혜경궁에게 탕 올림 헌가 낙양춘
      왕대비․왕․왕비에게 別行果 올림 헌가 낙양춘
      탕 올림 헌가 낙양춘
      혜경궁이 내린 술을 왕대비가 마심 등가 順安之樂
      혜경궁이 내린 술을 왕이 마심 등가 태평년지악
      혜경궁이 내린 술을 왕비가 마심 등가 태평년지악
      典膳과 여집사가 명부․의빈․척신에게 음식과
      술드림
      등가 태평년지악
      小膳을 물리고 大膳을 올림 헌가 태평년지악
      여집사가 악장을 唱함
      헌가 太安之樂등가 太安之樂
      혜경궁․왕대비․왕․왕비의 상을 물림 헌가 낙양춘 등가 낙양춘
      좌우명부․의빈․척신의 상을 물림
      왕대비가 혜경궁에게 재배 헌가 여민락 등가 여민락
      전하와 왕비가 혜경궁에게 재배 헌가 여민락 등가 여민락
      좌우명부․의빈․척신이 혜경궁에게 재배 헌가 낙양춘
      혜경궁 자리에서 내려옴 헌가 여민락령 등가 여민락령
      왕대비․전하․왕비 나옴
      좌우명부․의빈․척신이 나옴


      ② 악기편성과 차비(差備)
         진표리와 진찬의식에서 정재는 추지 않았다. 진표리에서는 헌가만 진설하고 진찬
      에서는 헌가와 등가를 진설했는데, 두 의식의 헌가 악기편성은 똑같다.24) 혜경궁진
      찬소의궤 에는 도식(圖式)이 없으나,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에는 도식이 있다. 기사
      진표리진찬의궤 의 진표리도(進表裏圖)와 진찬도(進饌圖)에 의하면 악공들이 휘장
      밖에서 연주하고 있다.25) 혜경궁․왕비․명부 등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③ 기 타


      24) 惠慶宮進饌所儀軌 52a1-54a7.
      己巳進表裏進饌儀軌 92a1-10; 93a5-12.
      25) 己巳進表裏進饌儀軌 11b-13a.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79


         의식에 정재(呈才) 추는 절차가 없으므로 외방 여기를 부르지 않고, 혜민서․공조․상
      의원 소속 관비(官婢)인 의녀와 침선비가 각 차비의 일을 맡도록 했다.
           

        이문(移文). 무진(1808) 12월 15일26)
         예조에서 상고한 일. 이번에 내전(內殿)에서 친히 전문(箋文)․치사(致詞:축
      하문)․표리(表裏:안팎 옷감)를 혜경궁께 올릴 때와 진찬할 때 여령 각 차비
      의 수효가 많은데, 의녀와 침선비가 궐원이 많아 분배하기 어려우므로 공문
      을 보냄. 궐원을 빨리 뽑아서 경례(慶禮) 전에 대령하는 것이 마땅하니 심상
      하게 하지 말고 기일에 맞추어 뽑아 올려보내도록 해당 읍에 알리는 것이
      마땅함.(공조 상의원 혜민서)



         내관(來關). 무진(1808) 12월 16일27)
         공조에서 상고한 일. 받아본 공문에 ‘이번에 혜경궁께 내전(內殿)에서 친히
      전문․치사․표리를 올릴 때와 진찬할 때 여령 각 차비의 수효가 많은데, 침
      선비가 궐원이 많아 분배하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폐조(弊曹)의 침선비 궐
      원을 채우는 일로 전에 이미 각도에 공문을 보내어 뽑아 올려 쓸 수 있도록
      조치하였는데, 보내온 공문이 이와 같으니 다시 각 도에 엄칙하여 시행하도
      록 하겠음.


      2) 慈慶殿進爵整禮儀軌
      (1) 서지적 고찰


      장서각 도서번호 2-2858
      禮曹(朝鮮) 編. 整理字版. 純祖 27(1827).
      卷首 1卷, 本編 2卷, 합 1冊. 圖. 四周雙邊, 半郭 23.8 × 16.7 cm.
      有界. 半葉 12行 22字. 註雙行. 上黑魚尾. 34 × 21.9 cm. 線裝.
      表題: 進爵整禮儀軌
      印: 藏書閣印.
      紙質: 楮紙.


         1827년(순조 27) 7월 18일에 세자빈이 원손(元孫)을 낳는 경사가 있자,28) 22일에
      왕세자가 ‘내가 대리청정한 후에 곧바로 존호(尊號)를 올리겠다고 청하고 싶었으나
      감히 하지 못하였다. 지금 나라의 경사가 있으니 성덕(聖德)을 선양하는 것이 합당
      할 듯하다.’라며, 임금께 존호 올릴 것을 대신들과 상의하여,29) 9월 9일에 왕과 왕비


      26) 惠慶宮進饌所儀軌 20a9-b2.
      27) 惠慶宮進饌所儀軌 23a12-b5.
      28) 純祖實錄 卷29, 20b8-11: 純祖 27年 7月 辛酉.


                                                                                                           -   80 藏 書 閣


      에게 각각 연덕현도경인순희(淵德顯道景仁純禧)와 명경(明敬)이란 존호(尊號)를 올리
      고,30) 이어 9월 10일에 자경전(慈慶殿)에서 왕과 왕비에게 진작례(進爵禮)를 행하였
      다.31) 慈慶殿進爵整禮儀軌는 바로 순조 27년(1827) 9월 진작에 대한 기록이다.


         의궤제작을 위해 의궤소(儀軌所)가 설치되었으며, 진작정례당상(進爵整禮堂上)인
      행예조판서 조종영(趙鐘永)과 호조판서 박종훈(朴宗薰)이 의궤교정당상으로 임명되
      고, 호조정랑 이겸수(李謙秀)․예조정랑 임백능(任百能)․예조좌랑 심계석(沈啓錫)
      등이 낭청으로 임명되어, 1827년(순조 27) 10월경에 의궤편찬을 시작하여 1828년
      (순조 28) 5월 10일에 한문본 6부와 한글본 3부를 왕에게 바쳤다.32) 한문본(奎14536)
      을 1988년에 국립국악원에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13권으로 영인하였고, 한문본(奎
      14535)과 한글본(古 4256.5-2)을 96년에 서울대 규장각에서 규장각자료총서로 영인
      하였다. 장서각에 소장된 것은 한문본이다.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 363쪽에는 ‘순조의 母后 金氏(慈慶殿)을 爲한 進爵整禮
      儀軌이다.’ 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순조의 모후인 효의왕후(孝懿王后:金時黙의 女)는
      1821년(순조 21)에 이미 승하했으니,33) 위의 설명은 ‘순조와 순조비를 위한 進爵整禮
      儀軌이다’라고 수정되어야 한다.


      (2) 내용
      ① 의식과 음악


      1827년 9월 慈慶殿 進爵儀34)


      29) 純祖實錄 純祖 27年 7月 乙丑.
      30) 純祖實錄 卷29, 40a8-41a10: 純祖 27年 9月 辛亥.
      31) 純祖實錄 卷29, 41b4-42a4: 純祖 27年 9月 壬子.
      32) 慈慶殿進爵整禮儀軌 解題 (서울:서울대규장각, 1996)
      33) 純祖實錄 卷23, 26a10: 純祖 21年 3月 己未. “午時 王大妃殿昇遐于慈慶殿”
      34) 慈慶殿進爵整禮儀軌 卷1, 12a1-22b9. 大殿 中宮殿上尊號翌日 王世子自內進爵行禮儀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81


         장악원에서 軒懸을 자경문 外庭에 진설하고, 登歌를 자경문 外階 위에 진설한다.
      承文院官이 致詞函을 받들고 萬八門에 이를 때 세장고취가 앞에서 인도한다.
      공주․좌우명부․종친․의빈․척신이 拜位에 나아감
      왕세자빈이 拜位에 나아감
      왕세자가 拜位에 나아감 헌가 五雲開瑞朝之樂
      왕 陞座. 왕비 陞座헌가 여민락령 등가 여민락령
      왕세자․세자빈 四拜헌가 여민락 4成등가 여민락 4成
      공주이하 四拜헌가 낙양춘
      왕과 왕비에게 꽃 올림 헌가 낙양춘
      揮巾 올림 등가 여민락
      鹽水 올림 헌가 여민락령
      別行果 올림 헌가 和明之樂
      饌案 올림 헌가 雍熙之樂
      왕․왕비․왕세자․세자빈에게 꽃 올림 헌가 여민락
      왕세자와 세자빈에게 揮巾 올림 헌가 여민락
      別行果 올림 헌가 여민락
      공주이하에게 꽃 나눠줌 헌가 여민락
      선창악장을 唱함
                                                                                               -   82 藏 書 閣


      왕세자가 왕에게 제1작 올림 등가 천년만세지곡
      致詞(축하문)
      傳敎(술잔을 드는 때에 세자와 함께 하리라)
      왕이 술잔을 듬 헌가 淸平樂등가 淸平樂
      왕세자가 왕비에게 제1작 올림 등가 천년만세지곡
      致詞
      傳旨
      왕비가 술잔을 듬 헌가 淸平樂등가 淸平樂
      왕세자빈이 왕에게 제2작 올림 등가 천년만세지곡
      致詞
      傳敎
      왕이 술잔을 듬 헌가 淸平樂등가 淸平樂
      왕세자가 왕비에게 제2작 올림 등가 천년만세지곡
      致詞
      傳旨
      왕비가 술잔을 듬 헌가 淸平樂등가 淸平樂
      공주가 왕에게 제3작 올림 등가 천년만세지곡
      致詞
      傳敎
      왕이 술잔을 듬 헌가 淸平樂등가 淸平樂
      공주가 왕비에게 제3작 올림 등가 천년만세지곡
      致詞
      傳旨
      왕비가 술잔을 듬 헌가 淸平樂등가 淸平樂
      좌명부가 왕에게 致詞 올림
      좌명부가 왕비에게 致詞 올림
      우명부가 왕에게 致詞 올림
      우명부가 왕비에게 致詞 올림
      종친이 왕에게 致詞 올림
      종친이 왕비에게 致詞 올림
      의빈이 왕에게 致詞 올림
      의빈이 왕비에게 致詞 올림
      척신이 왕에게 致詞 올림
      척신이 왕비에게 致詞 올림
      공주․세자빈․왕세자가 拜位에 나아감 등가 보허자령
      세자․세자빈 三叩頭. 공주이하 三叩頭. 山呼
      세자․세자빈 四拜. 공주이하 四拜헌가 여민락 등가 여민락
      왕세자와 세자빈에게 饌案 올림 헌가 낙양춘
      왕이 내려준 술을 왕세자가 마심
      왕비가 내려준 술을 왕세자가 마심
      등가 順安之樂
      왕이 내려준 술을 세자빈이 마심
      왕비가 내려준 술을 세자빈이 마심
      등가 太平年之樂
      등가 太平年之樂
      공주에게 饌卓․별행과․술을 드림
      좌우명부이하에게 饌卓과 술을 드림
      등가 太平年之樂
      후창악장을 唱함
      왕․왕비, 왕세자․세자빈의 상을 물림 헌가 낙양춘 등가 낙양춘
      공주이하 상 물림
      왕세자와 세자빈 四拜헌가 여민락 등가 여민락
      공주 이하 사배 헌가 낙양춘
      왕․왕비 降座. 還內헌가 여민락령 등가 여민락령
      致詞函 안에 들임
      왕세자 出. 還內헌가 오운개서조
      왕세자빈 出. 還內
      공주이하 出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83


      ② 악기편성과 차비
         卷首 27a-29a에 악기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통해서 비파는 당비파임을 알
      수 있으나, 피리는 그림만 가지고는 당피리인지 향피리인지 구분할 수 없다.
      악기편성에 대해서는 권수8b-9a에 악기이름을 적은 외보계등가도(外補階登歌圖)
      ․외보계헌가도(外補階軒架圖)가 있고, 권수14b-15a에 악기연주 모습을 그림으로 그
      려 놓은 외보계등가도․외보계헌가도가 있다. 악기연주자에 대해서는 권2.36b-37a
      공령(工伶)에 실려 있다. 권수8b-9a와 권수14b-15a의 등가․헌가도는 서로 꼭 일치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권수 8b의 등가도에는 교방고 1, 방향 1, 편종1, 편경1이
      있는데, 권수 14b에는 교방고 3, 방향 2이 있고, 편종 편경이 없다. 그런데 권2공령
      에 나오는 악기와 권수8b-9a의 악기가 정확히 일치하니, 권수8b-9a의 편성으로 연
      주됐으리라 생각한다.


      권수 8b-9a의 외보계등가도(外補階登歌圖)․외보계헌가도(外補階軒架圖)
                                                                                                      -  84 藏 書 閣
      권수14b-15a의 외보계등가도(外補階登歌圖)․외보계헌가도(外補階軒架圖)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85

      권2. 36b-37a 공령(工伶)


      등가
      박1 교방고1 방향1 거문고2 가야금2 아쟁2 당비파2 피리10 대금10
      당적4 퉁소2 해금4 생2 장구2 편종1 편경1 축1 어1
      헌가
      박1 피리10 대금10 편종2 편경2 당적4 퉁소2 당비파2 해금4 방향1
      장구2 건고1 삭고1 응고1 축1 어1 생2


      ③ 기타
         존호와 진작을 올릴 때 필요한 각 차비여령을 외방의 관비와 기생 및 형조․공조
      ․통례원․내의원․상의원․혜민서의 관비로 충당했다.
                                                                                                                -   86 藏 書 閣


       권2 이문. 정해년(1827) 8月 18일35)
         상고할 일. 이번 존호와 진작을 올릴 때 각 차비여령의 수가 심히 많은데, 이와 같은 경우
      전에는 각 도에 나누어 배정하였으므로 전례(前例)에 따라 공문을 보내니, 공충도 15명,
      황해도 15명, 강원도 15명을 영(營)․본관(本官)․근읍(近邑)을 따지지 말고 나이 어린 기
      생을 각별히 뽑아서 옷을 조촐하게 갖추고 이달 25일안으로 배정한 수대로 색리(色吏)를
      정해 인솔하여 본 도감에 도착하게 해서 연습하는 기한에 맞출 것.(공충감영 황해감영 강
      원감영)


         상고할 일. 이번 존호와 진작을 올릴 때 각 차비여령의 수가 심히 많아서 다음과 같이 나
      누어 배정하였으니, 개성부 15명, 강화부 12명, 화성부 12명을 영(營)에 있는 나이 어린
      관비(官婢)를 각별히 뽑아서 옷을 조촐하게 갖추고 이달 22일안으로 배정한 수대로 색리
      (色吏)를 정해 인솔하여 본 도감에 도착하게 해서 연습하는 기한에 맞출 것.(개성부 강화
      부 화성부)


       권2 내관. 정해년 9월 7일36)
         강원도 관찰사가 보낸 공문. 이번 존호와 진작 올릴 때에 각 차비여령 15명을 보내라는
      공문이 왔기에 본 영(營)의 妓 3명, 원주 기생 2명, 영월기생 2명을 기한에 맞추어 보냈
      으며, 강릉 삼척 간성 춘천의 기생 각 2명을 서둘러 보내라는 뜻으로 엄칙하는 연유를
      치보하였음.


          

        권2. 감결. 정해년 8월 17일37)
         의장봉지가여령(儀仗奉持假女伶)은 전례대로 대령하되 1명이라도 탈을 내는 폐단이 있으
      면 이를 맡은 각 사(司)의 서리를 처벌할 것임.(형조 공조 통례원 내의원 상의원 혜민서)


      3)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1) 서지적 고찰


      장서각 도서번호 2-2859
      儀軌廳(朝鮮) 編. 整理字版. 純祖 28(1828).
      卷首 1卷, 本編 2卷, 附編 1卷, 合 2冊. 圖.
      四周雙邊, 半郭 18.7 × 16.6 cm.
      有界. 半葉 12行 22字. 註雙行. 上黑魚尾. 36.3 × 24.2 cm. 線裝.
      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本, 李王家圖書之章.
      紙質: 楮紙.


      장서각 도서번호 2-2860
      禮曹(朝鮮) 編. 整理字版. 純祖 28(1828).
      卷首 1卷, 本編 2卷, 附編 1卷, 合 2冊. 圖.


      35) 慈慶殿進爵整禮儀軌 卷2, 2b7-3a6.
      36) 慈慶殿進爵整禮儀軌 卷2, 10b6-10.
      37) 慈慶殿進爵整禮儀軌 卷2, 14b12-15a2.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87


      四周雙邊, 半郭 23.6 × 16.6 cm.
      有界. 半葉 12行 22字. 註雙行. 上黑魚尾. 37 × 24. cm. 線裝.
      表紙上: 戊子年(1828) 禮曹上.
      印: 藏書閣印.
      紙質: 楮紙.


         순원왕후(純元王后:純祖妃) 40세를 경축하여 1828년(순조 28) 2월 12일에 자경전
      (慈慶殿)에서 왕과 왕비에게 진작례(進爵禮)를 행하였고, 같은 날 저녁에 별반과(別
      盤果)를 올렸으며, 2월 13일에는 왕세자가 회작례(會酌禮)를 거행하였다. 또 5월에
      있은 순원왕후(純元皇后) 사순(四旬)생신을 기념하여 연경당(演慶堂:창덕궁 후원에
      있음)에서 6월 1일에 진작례를 행하였다. 순조 무자년 진작의궤 는 1828년 2월과 6
      월의 진작에 관한 기록이다.


         서울대 규장각도서번호 14364는 장서각소장의 것과 활자와 내용이 똑같으며, 국립
      국악원에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3권으로 영인하였다.


      (2) 내 용
      ① 의식과 음악


      1828년 2월 慈慶殿 進爵儀38)


      38)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卷1, 11b4-22b2.
                                                                                                         -   88 藏 書 閣


         장악원에서 殿의 南階 위에 細吹樂과 呈才舞를 진설한다.
      閣臣이 왕세자와 세자빈 致詞箋文函 받들고 만팔문에 이를 때 細仗鼓吹가 前導
      의빈․척신․좌우명부․공주가 자리에 나아감
      왕세자빈이 拜位에 나아감
      왕세자가 배위에 나아감 세취 梅花引(五雲開瑞朝 唐)
      왕비 大次에서 나옴 세취 天香鳳韶之曲(향당교주) 광수무(廣袖舞)
      왕이 대차에서 나와 陞座. 왕비 陞座 세취 五雲駕六龍之曲(향당교주) 광수무
      왕세자 세자빈 四拜. 공주 이하 사배 세취 萬壽永無疆引(여민락만 4성)
      세자가 進爵褥位에 나아가 꿇어 앉음 세취 聖人無憂之曲(향당교주)
      왕세자가 잔을 받아 壽酒亭에 놓고 욕위에 돌아옴
      왕․왕비에게 揮巾函 올림 세취 萬年樂之曲(향당교주)
      御饌 올림 세취 慶豊年之曲(향당교주)
      꽃 올림 세취 金殿萬年歡之曲(향당교주)
      왕세자․빈에게 꽃 올림 세취 鶯穿柳之曲(향당교주)
      세취 簾外花之曲(향당교주)
      공주이하에게 꽃 나눠줌
      선창악장을 창함
      세자가 왕에게 제1爵 올림 세취 帝壽昌之曲(정읍만기 향) 아박무(牙拍舞)
      致詞 箋文 읽음
      왕이 술잔을 듬 세취 殿前歡之曲(환환곡 여민락 향)
      傳敎
      왕세자가 꿇어 앉음 函 올림
      왕세자가 잔을 받아 수주정에 놓고 욕위에 돌아옴
      왕세자가 왕비에게 제1작 올림
      致詞 箋文 읽음
      왕비가 술잔을 듬
      傳旨
      세취 萬年樂之曲(향당교주)
      세취 慶豊年之曲(정읍만기 향)
      세취 千秋歲之曲(환환곡 여민락 향)
      아박무
      왕․왕비에게 小膳 올림 세취 獻天花之曲(향당교주)
      탕 올림 세취 慶宣和之曲(향당교주)
      大膳 올림 세취 豊新年之曲(향당교주)
      만두 올림 세취 長生樂之曲(향당교주)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89
      왕세자빈 褥位에 나아가 꿇어 앉음 세취 如山之曲(향당교주)
      왕세자빈이 잔을 받아 수주정에 놓고 욕위로 돌아옴
      왕세자빈이 왕에게 제2爵 올림 세취 萬方寧之曲(보허자 당)
      향발무(響鈸舞)
      致詞
      왕이 술잔을 듬 세취 壽齊天之曲(향당교<주>)
      傳敎
      왕세자빈이 꿇어 앉음 세취 坤寧之曲(향당교주)
      왕세자빈이 잔을 받아 수주정에 놓고 돌아옴
      왕세자빈이 왕비에게 제2작 올림 세취 慶太平之曲(보허자 당) 향발무
      致詞
      왕비가 술잔을 듬 세취 慶壽樂之曲(향당교주)
      傳旨
      왕․왕비에게 茶 올림 세취 天仙子之曲(향당교주)
      세자․세자빈에게 휘건 올림 세취 柳初新之曲(향당교주)
      세자․세자빈에게 饌案 올림 세취 太平春之曲(향당교주)
      공주가 전하 앞에 나아가 꿇어앉음 세취 瑞日和之曲(향당교주)
      잔을 받아 수주정에 놓고 돌아옴
      공주가 왕에게 제3작 올림 세취 萬壽長樂之曲(향당교주) 壽延長之舞
      致詞
      왕이 술잔을 듬 세취 昇平樂之曲(향당교주)
      傳敎
      공주가 왕비 앞에 나아가 꿇어앉음 세취 慶萬年之曲(향당교주)
      잔을 받아 수주정에 놓고 돌아옴
      공주가 왕비에게 제3작 올림 세취 수연장지곡(향당교주) 수연장지무
      치사
      왕비가 술잔을 듬 세취 청평악지곡(향당교주)
      傳旨
      왕세자 이하 三叩頭 山呼
      왕세자 이하 사배 세취 萬歲聲之曲(낙양춘 당)
      왕세자․세자빈 坐席으로 감
      공주이하 좌석으로 감
      세취 感皇恩之曲(향당교주)
      공주 명부 의빈 척신 찬탁 진설
      왕이 내리는 술 세자가 마심 세취 長生寶宴之樂(향당교주) 첨수무(尖袖舞)
      왕비가 내리는 술 세자가 마심 세취 壽千春之曲(향당교주) 첨수무
      왕이 내리는 술 세자빈 마심 세취 堯階樂之曲(향당교주) 무고(舞鼓)
      왕비가 내리는 술 세자빈 마심 세취 慶芳春之曲(향당교주) 무고
      세자․세자빈에게 탕 올림 세취 喜新春之曲(향당교주)
      만두 올림 세취 昌運頌之曲(향당교주)
      茶 올림 세취 賀聖朝之曲(향당교주)
      왕․왕비에게 별행과 올림 세취 永南山之曲(향당교주) 포구락
      세자․세자빈에게 별행과 올림 세취 萬花新之曲(향당교주)
      세취 취태평지곡(향당교주)
      공주․명부․의빈이하에게 술 돌림
      後唱樂章을 唱함
      왕․왕비의 饌果案 물림 세취 聖壽永之曲(여민락만 당)
      세자․세자빈 饌果案 물림 세취 落梅春曲(武桓之曲 鄕)*
      공주․명부․의빈․척신 찬탁 물림
      왕세자이하 사배 세취 泰階平之曲(여민락만 당)
      왕이 대차에 들어감 세취 凝和之曲(향당교주) 처용무
      왕비 대차에 들어감 세취 鳳吹之曲(향당교주) 처용무
      치사 전문함 받들어 모심
      왕세자 소차에 들어감 세취 水龍吟 (原樂 唐)
      세자빈 還內. 공주이하 나감


                                                                                                    -   90 藏 書 閣


      * 무환곡(武桓曲)은 각조홀기초(各條笏記抄에 따르면 군악(軍樂)이라고 한다.39)
      세취라는 악대 이름이 여기에서 처음 보이는데, 등가․헌가의 두 악대가 아닌 한
      악대만 있는 것을 세취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한다.



         1828년 2월 慈慶殿 夜進別盤果儀40)


      장악원에서 세취악과 정재무를 珠簾 밖 남계 위에 진설한다.
      왕세자가 拜位에 나아감 세취 玉堂香曲
      왕 陞座세취 堯天舜日之曲초무
      왕비 陞座세취 壽母千歲之曲초무
      왕세자 사배 세취 玉燭春曲아박무
      왕과 왕비에게 휘건 올림 세취 樂千秋之曲향발무
      別盤果 올림 세취 醉豊亨曲첨수무
      왕세자가 수주정에서 술을 따른 잔을 가지고 왕 앞에 옴 세취 八千爲春之曲수연장지무
      司唱이 致語 아룀
      왕에게 제1작 올림. 왕이 술잔을 듬 세취 如日昇之曲 포구락
      왕세자가 수주정에서 술을 따른 잔을 가지고 왕비 앞에 옴 세취 箕疇五福之曲 무고
      司唱이 致語 아룀
      왕세자가 왕비에게 제1작 올림. 왕비 술 마심 세취 如月恒之曲 광수무
      산호(山呼)
      왕과 왕비에게 탕 올림 세취 萬千春之曲첨수무
      왕세자에게 휘건 올림 세취 春光好之曲포구락
      小盤果 올림 세취 康衢烟月之曲광수무
      술 올림 세취 天下太平之曲아박무
      탕 올림 세취 細浪魚吹之曲향발무
      왕과 왕비에게 차 올림 세취 萬斯年之曲수연장지무
      왕세자에게 차 올림 세취 一剪梅之曲초무
      別盤果 물림 세취 長春不老之曲광수무
      小盤果 물림 세취 落梅春曲
      예를 마쳤음을 아룀 세취 簾玉燭之曲
      왕세자 사배 세취 祝聖人之曲
      왕 降座. 還內 세취 凝安之曲처용무
      왕비 降座. 還內세취 文祥之曲처용무
      왕세자 還內세취 瑞和之曲


      1828년 2월 慈慶殿 翌日王世子會酌儀41)


      39) 植村幸生, 「朝鮮後期 細樂手의 形成과 展開」, 韓國音樂史學報(경산:한국음악사학회, 1993) 제
      11집, 486쪽.
      各條笏記抄 (奎12238) 6a.
      40)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卷1, 22b3-25a1.
      41)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卷1, 25a2-27a2.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91


      장악원에서 세취악과 정재무를 주렴 밖 南階 위에 진설한다.
      공주와 명부가 拜位에 나아감
      왕세자가 소차에서 나와 陞座세취 彩雲駕鶴之曲(보허자 당) 무고
      공주․명부가 왕세자에게 再拜세취 离明之曲(낙양춘 당)
      공주와 명부가 좌석으로 나아감
      왕세자에게 揮巾 바침 세취 日重光之曲(여민락만 당) 아박무
      세취 萬點紅之曲(향당교주)
      명부에게 꽃을 나눠 줌
      왕세자에게 饌案 올림 세취 月重輪之曲(향당교주) 포구락
      술잔 올림 세취 星重輝之曲(향당교주) 향발무
      왕세자가 술잔을 듬 세취 盡日之曲(향당교주) 첨수무
      왕세자에게 탕 올림 세취 海重潤之曲(향당교주) 포구락
      차 올림 세취 文華之曲(향당교주) 광수무
      공주가 致詞 올림
      傳令(경사를 형제와 같이 하리라)
      명부가 치사 올림
      傳令
      공주․명부 再拜세취 萬年樂之曲
      공주에게 찬탁을 진설하고 술 드림 세취 行葦之曲(여민락만 당) 무고
      명부에게 찬탁을 진설하고 술 드림 세취 賓初筵之曲(여민락만 당) 첨수무
      악장을 唱함
      왕세자 饌案 물림 세취 落梅春曲(武桓之曲 鄕)
      공주와 명부 찬탁 물림
      공주․명부 再拜세취 承華之曲(여민락만 당)
      왕세자 降座. 還內세취 蒼龍之曲(향당교주) 처용무
      공주․명부 出



      순조 28년 6월 演慶堂進爵儀42)


      42)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附編, 5a5-7a11.


                                                                                                      - 92 藏 書 閣


         악관이 細吹樂과 呈才舞를 南階 위에 진설한다.
      왕세자 拜位에 나감
      왕․왕비 陞座 . 왕세자 四拜세취 선인자(先引子)
      왕․왕비에게 휘건 올림 세취 제천악(齊天樂) 망선문무(望仙門舞)
      왕․왕비에게 어찬 올림 세취 옥촉신(玉燭新) 경풍도무(慶豊圖舞)
      악관이 詞를 아룀
      왕․왕비․세자에게 꽃 올림. 세자가 왕
      에게 술잔 올림
      세취 다려(多麗) 만수무(萬壽舞)
      악관이 致語를 아룀
      왕이 술잔을 듬 세취 경춘궁(慶春宮) 헌천화무(獻天花舞)
      악관이 詞를 아룀
      왕세자가 왕비에게 제1작 올림 세취 보살만(菩薩慢) 춘대옥촉무(春臺玉燭舞)
      악관이 치어를 아룀
      왕비가 술잔을 듬 세취 기라향(綺羅香) 보상무(寶相舞)
      왕․왕비에게 별미 올림 세취 옥련환(玉聯環) 향령무(響鈴舞)
      탕 올림 세취 성성만(聲聲慢) 영지무(影池舞)
      차 올림 세취 만정방(滿庭芳) 박접무(撲蝶舞)
      왕세자에게 휘건 올림 세취 청평악(淸平樂) 침향춘무(沈香春舞)
      찬반(饌盤) 올림 세취 천향(天香) 연화무(蓮花舞)
      술 올림 세취 춘앵전(春鶯囀) 춘앵전무(春鶯囀舞)
      탕 올림 세취 자고(鷓鴣) 춘광호무(春光好舞)
      차 올림 세취 목란화만(木蘭花慢) 첩승무(疊勝舞)
      어찬(御饌) 물림 세취 염노교(念奴嬌) 최화무(崔花舞)
      찬반(饌盤) 물림 세취 탐춘령(探春令) 가인전목단무(佳人剪牧丹舞)
      왕세자가 배위에 나가 四拜세취 춘효요(春曉謠) 무산향무(舞山香舞)
      왕 왕비 降座 還內. 왕세자 出세취 후인자(後引子)


      ② 악기편성과 차비
         1828년 2월과 6월의 내진작(內進爵)에서 악기연주는 악공이,43) 정재는 무동(舞童)이 추었
      다.44) 외연에서는 무동이, 내연에서는 여기가 정재를 추는 것이 일반적이나, 1828년 2월과
      6월, 1829년 6월의 내연에서는 특이하게 무동이 정재를 추었다. 조선시대에 무동이 내연에
      서 정재를 춘 것은 이 세 경우 뿐이다. 무동이 정재를 춤으로써 외방 여기를 부르지 않고
      행사를 치를 수 있었으므로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순조 28년(1828) 2월 慈慶殿進爵 악기편성45)
         박. 피리6 대금4 당적4 퉁소2 당비파4 해금4 방향4 장구2 생(笙)4 거문고2 가야금2 아쟁2 양금
      (洋琴)2 당금(唐琴)2 부구(浮漚)1 교방고2 운라(雲鑼)2 가(笳)2 태평소2 징(鉦)1 요(鐃)1


      순조 28년 6월 演慶堂進爵 악기편성46)


      43)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卷2, 34b4-35a1.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附編, 19a3-8.
      44)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卷2, 35a2-10.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附編, 19a9-20a2.
      45)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卷2, 34b4-35a1.
      46)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附編, 19a4-8.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93


      박1 피리4 대금2 당비파1 해금1 방향1 장구1 거문고1 가야금1 아쟁1 당금1 교방고1 갈고1


      ③ 기타
         1828년(순조 28) 2월과 6월의 진작에 악공과 무동이 악가무를 담당하고, 여관(女
      官)과 내시(內侍)가 시위(侍衛)를 했으므로, 외방에서 여령(女伶)을 부르지 않았다.47)
      1828년 6월에 공연된 정재는 망선문․경풍도․만수무․헌천화․춘대옥촉․보상무․향
      령무․영지무․박접무․침향춘․연화대․춘앵전․춘광호․첩승무․최화무․가인전목단․
      무산향정재인데, 이중 연화대를 제외한 나머지 정재가 1828년에 새로 창제된 것이다. 의
      주(儀註)상으로는 공연되지 않았지만, 무동들은 고구려무․공막무․무고․향발․아박․포
      구락정재도 준비했다.48) 이중 고구려무는 새로 창제된 것이고, 공막무는 검기무의 다른
      이름이다. 기존의 것에는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고, 1828년 6월에 처음 공연된 것에는
      ○ 표시를 하였다.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정재악장을 지은 것에는 예제라고 적었다.49)



      순조 28년 6월 演慶堂進爵時 정재


      망선문 ○ 예제(睿製) 춘광호 ○
      경풍도 ○ 예제 첩승무 ○ 예제
      만수무 ○ 예제 최화무 ○
      헌천화 ○ 예제 가인전목단 ○
      춘대옥촉 ○ 예제 무산향 ○ 예제
      보상무 ○ 예제 고구려무 ○
      향령무 ○ 공막무
      영지무 ○ 예제 무고
      박접무 ○ 예제 향발
      침향춘 ○ 아박
      연화대 포구락
      춘앵전 ○ 예제


      4)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1) 서지적 고찰


      장서각 도서번호 2-2873
      儀軌廳(朝鮮) 編. 整理字版. 純祖 29(1829).
      卷首 1卷, 本編 3卷, 附編 1卷, 合 4冊. 圖. 四周雙邊, 半郭 23.6 × 16.6 cm.


      47)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卷2, 28a11-31b5.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附編, 18a5-b2.
      48)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附編, 19a9-20a2.
      49) 純祖 戊子年 進爵儀軌 附編, 1b6-5a4.
                                                                                                        - 94 藏 書 閣
      有界. 半葉 12行 22字. 註雙行. 上黑魚尾. 37 × 24.2 cm. 線裝.
      印: 李王家圖書之章.
      紙質: 楮紙.


         순조의 보령(寶齡) 40세와 즉위(卽位) 30년을 경축하여 1829년(순조 29) 2월 9일에
      명정전에서 외진찬(外進饌)을 행하고, 12일에 자경전에서 내진찬(內進饌)과 야진찬
      (夜進饌)을 행하고, 13일에 왕세자 회작(會爵)을 행했다. 6월 19일 자경전에서 사순
      생신 내진찬과 야진찬을 거행했다. 순조 기축년 進饌儀軌는 이에 대한 기록이다.
      서울대 규장각도서번호 14367과 14370의 進饌儀軌는 장서각 소장본과 활자와
      내용이 똑같다. 奎14367을 1981년에 국립국악원에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3권으로
      영인하였고, 奎14370을 1996년에 서울대 규장각에서 규장각자료총서로 영인하였다.




      (2) 내 용
      ① 의식과 음악


      1829년(순조 29) 2월 明政殿進饌儀50)


         장악원에서 헌현을 殿庭에, 등가를 殿階 위에 진설한다.
      왕세자 輿를 타고 明政門에 이르를 때 고취 진작
      왕이 내전에서 여를 타고 명정문에 이르를 때 고취진작
      왕이 輿에서 내려 陞座 헌가 여민락령
      왕세자 이하 四拜 헌가 낙양춘
      進酒器헌가 여민락만
      進揮巾헌가 여민락령
      進饌案. 進別行果헌가 여민락만
      進花헌가 여민락령
      전악이 전상공인과 무동을 거느리고 자리에 나아간다.
      전악 2인이 존숭악장 惟天之曲을 唱한다.
      왕세자가 제1작 올림.
      致詞
      왕이 술잔을 듬 등가 보허자령 초무
      進湯. 進饅頭등가 여민락만
      班首 제2작 올림
      致詞
      傳敎
      왕이 술잔을 듬 등가 정읍 아박


      50)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22a6-28a3.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95


      왕세자 이하 三叩頭. 山呼
      왕세자 이하 사배 헌가 낙양춘
      전악이 歌者와 금슬을 이끌고 자리에 나아간다.
      왕세자에게 揮巾․饌案․別行果․꽃 올림.
      종친․문무관에게 찬탁과 꽃 드림.
      왕세자에게 술․탕․만두 올림.
      종친․문무관에게 술 돌림
      제3작 등가 오운개서조 향발
      제4작 등가향당교주 무고
      제5작 등가 향당교주 광수무
      제6작 등가 향당교주 첨수무
      제7작 등가 정읍악 아박
      제8작 등가 향당교주 향발
      제9작 등가 오운개서조 무고
      왕․왕세자이하 상 거둠 등가 여민락만
      왕세자이하 사배 헌가 낙양춘
      왕 降座헌가 여민락령
      왕이 輿를 타고 내전으로 들어갈 때 고취 진작
      왕세자 輿를 타고 내전으로 들어갈 때 고취 진작


      1829년(순조 29) 2월 慈慶殿 進饌儀51)


      51)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28a4-40a8.96 

                                                                                              -   藏 書 閣


         장악원에서 악기와 정재를 殿의 南階 위에 진설한다.
      왕세자와 세자빈의 致詞函을 받들고 만팔문에 이르를 때 細仗鼓吹가 前導
      왕세자빈 拜位에 나아감
      왕세자 拜位에 나아감 重明之曲(井邑慢機)
      왕 陞座 風雲慶會之樂 (原舞曲) 몽금척
      왕세자 이하 四拜 萬壽永無彊引(여민락만 4成)
      왕세자 褥位에 나아감 太平年之曲(향당교주)
      왕세자가 잔을 수주정에 놓고 拜位에 옴
      왕에게 휘건함(揮巾函) 올림 致和平之曲(향당교주)
      御饌 올림 慶豊樂之曲(향당교주)
      꽃 올림 瑞雲曜日之曲(향당교주)
      왕세자와 세자빈에게 꽃 올림 慶春光之曲(향당교주)
      艶陽春之曲(향당교주)
      명부와 종친․의빈․척신에게 꽃 나누어 줌
      先唱樂章
      왕세자가 제1작 올림 長生寶宴之樂(菩薩蠻) 장생보연지무
      치사와 전문 읽음
      왕이 술잔을 듬 壽齊天之曲(향당교주)
      전교(傳敎)
      왕에게 염수(鹽水) 올림 殿前歡之曲(향당교주)
      소선(小膳) 올림 萬波停息之曲(향당교주)
      탕을 올림 壽曜南極之曲(향당교주)
      대선(大膳) 올림 景籙無疆之曲(향당교주)
      만두 올림 綏安之曲(향당교주)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97


      왕세자빈이 욕위에 나아감 日升月恒之曲(향당교주)
      세자빈이 잔을 수주정에 놓고 拜位로 돌아옴
      왕에게 제2작 올림 帝壽昌之曲(原舞曲) 헌선도
      치사
      왕이 술잔을 듬 應天長之曲(향당교주)
      전교
      차 올림 金殿樂之曲(향당교주)
      세자와 빈에게 휘건 바침 樂昇平之曲(향당교주)
      세자와 빈에게 饌案 올림 瑞安之曲(향당교주)
      좌명부 班首가 進爵位에 나아감 乾淸坤寧之曲(향당교주)
      잔을 수주정에 놓음
      왕에게 제3작 올림 壽寧之曲(原舞曲) 향발무
      치사
      왕이 술잔을 듬 岡陵之曲(향당교주)
      전교
      우명부 班首가 進爵位에 나아감 祝華之曲(향당교주)
      잔을 수주정에 놓음
      왕에게 제4작 올림 賀聖朝之曲(原舞曲) 아박무
      치사
      왕이 술잔을 듬 樂千春之曲(향당교주)
      전교
      종친 班首가 進爵位에 나아감 獻天壽之曲(향당교주)
      잔을 수주정에 놓음
      왕에게 제5작 올림 千年萬歲之曲(原舞曲) 포구락
      치사
      왕이 술잔을 듬 天籙永昌之曲(향당교주)
      전교
      의빈 班首가 進爵位에 나아감 長春不老之曲(향당교주)
      잔을 수주정에 놓고 位에 돌아옴
      왕에게 제6작 올림 演百福之曲(原舞曲) 수연장
      치사
      왕이 술잔을 듬 萬斯年之曲(향당교주)
      전교
      척신 班首가 進爵位에 나아감 禎祥之曲(향당교주)
      잔을 수주정에 놓음
      왕에게 제7작 올림 萬壽長樂之曲(原舞曲) 하황은
      치사
      왕이 술잔을 듬 堯階樂之曲(향당교주)
      전교
      왕세자 이하 三叩頭․山呼
      왕세자 이하 四拜昌運頌之曲(낙양춘)
      왕세자 이하 좌석에 나아감 嘉樂之曲(향당교주)
      명부 이하 찬탁 진설
      왕이 내려준 술을 왕세자 마심 慶太平之曲(原舞曲) 무고
      왕이 내려준 술을 세자빈 마심 喜新春之曲(原舞曲) 연화대
      왕세자와 빈에게 탕 올림 慶芳春之曲(향당교주)
      만두 올림 樂萬歲之曲(향당교주)
      차 올림 淸平樂之曲(향당교주)
      왕에게 別行果 올림 天保之樂(향당교주)
      왕세자와 빈에게 별행과 올림 天仙子之曲(향당교주)
      武寧之曲(향당교주) 검기대(劒器隊)
                                                                                           -   藏 書 閣


      명부이하에게 술 돌림
      後唱樂章
      왕의 饌果之案 물림 萬方寧之曲(향당교주) 선유락(船遊樂)
      세자와 빈의 饌果之案 물림 長生樂之曲(향당교주)
      명부 이하의 饌卓 물림
      왕세자 이하 四拜慶成之曲(여민락만)
      왕이 대차로 들어감 飛龍引(原舞曲) 오양선
      致詞函 안으로 들임
      왕세자 소차로 들어감 五雲仙鶴引子(보허자령)
      세자빈 還內. 명부이하 出




      1829년(순조 29) 2월 자경전 夜進饌儀52)


      52)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40a9-42b11.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99


         장악원에서 악기와 정재를 殿의 南階에 진설한다.
      왕세자 拜位에 나아감 祥雲之曲(보허자령)
      왕 陞座 大明之曲(原舞曲) 포구락
      왕세자 四拜 永南山之曲(여민락만 4成)
      酒器를 壽酒亭에 놓음 樂萬年之曲(향당교주)
      왕에게 揮巾函 올림 太平春之曲(향당교주)
      饌案 올림 豊康之曲(향당교주)
      선창악장
      왕세자가 왕에게 제1작 올림 聖壽無疆引(原舞曲) 무고
      치사
      집박여집사가 歌者를 인도하여 계단을 올라와 좌석에 나아간다.
      왕이 술잔을 듬
      祝聖人之曲(羅古舊曲. 삼현삼죽대고 박
      판 합주)
      歌者가 나간다
      산호
      왕세자 사배 萬歲聲之曲(여민락령)
      왕에게 탕 올림 泰寧之曲(향당교주)
      왕세자에게 휘건 올림 和安之曲(향당교주)
      饌案 올림 維豊之曲(향당교주)
      술 올림 萬年長歡之曲(향당교주) 춘앵전
      탕 올림 長生樂之曲(향당교주)
      왕에게 차 올림 吉祥之曲(향당교주)
      왕세자에게 차 올림 春長日之曲(향당교주)
      후창악장
      御饌 물림 天下太平之曲(향당교주)
      왕세자 饌案 물림 樂千秋之曲(향당교주)
      사배 玉燭春之曲(여민락령)
      왕 降座. 還內凝祥之曲(原舞曲) 검기무
      왕세자 還內瑞和之曲(보허자령)




      1829년(순조 29) 2월 자경전익일 왕세자회작의53)


      53)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42b12-44b12.
                                                                                           -  藏 書 閣


      장악원에서 악기와 정재를 西階 위에 진설한다.
      命婦들이 배위에 나아감
      왕세자 陞座 鳳笙曲(原曲) 하황은
      명부 再拜 熙安之曲(낙양춘)
      왕세자에게 휘건 올림 吉安曲(原曲) 첨수무
      酒器 올림 凝天香之曲(原曲) 연화대. 보상반*
      꽃 올림 萬年春之曲(原曲) 몽금척
      慶春和之曲(향당교주)
      명부에게 꽃 나눠 줌
      饌案 올림 慶豊曲(原曲) 헌선도. 가인전목단*
      선창악장
      왕세자에게 술 올림 醉仙香之曲(原曲) 무고. 춘앵전. 처용*
      탕 올림 樂康樂之曲(原曲) 향발
      만두 올림 多寶子令(原曲) 검기무
      별행과 올림 豫豊亨之曲(原曲) 수연장
      명부 좌석에 나아감 嘉讌之樂(향당교주) 포구락
      명부에게 宴卓 진설 慶安之曲(향당교주) 선유락
      명부에게 술 돌림
      왕세자에게 차 올림 玉香曲(原曲) 아박
      후창악장
      왕세자 찬안 물림 長生寶宴之樂(原曲) 장생보연지무
      落梅春曲(武桓曲)
      명부 宴卓 물림
      재배 獻仙音之曲(정읍만기)
      왕세자 降座. 還內仙呂曲(原曲) 오양선
      命婦 出


      * 원문에는 凝天香之曲蓮花臺(原曲寶相盤)으로 되어 있는데, 보상반이 정재 이름
      이라서 정재로 표시하였다. 가인전목단과 처용도 마찬가지다.54)



      1829년(순조 29) 6월 자경전 진찬55)


         歌者와 樂舞位를 朱簾밖의 南階 위에 진설한다.
      왕세자 拜位에 나아감 重明之曲
      왕 陞座 演百福之樂 演百福之舞
      왕세자 사배 應天長之曲 4成
      왕에게 酒器 올림 瑤桃春之曲 아박
      揮巾 올림 演慶年之曲 무애(無㝵)
      饌案 올림. 別行果 올림 豊康年之曲
      花函 올림 玉殿春之曲 최화무(催花舞)
      왕세자에게 꽃 올리고 참석자에게 꽃 나눠줌 照殿紅之曲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존숭악장(惟天之曲)을 창함
      왕세자가 술잔 올림 長生寶宴之樂 長生寶宴之舞
      치사
      전교
      왕이 술잔을 듬 帝壽昌之樂 帝壽昌之舞
      왕에게 탕 올림 太平樂之曲


      54)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3, 7a8-11.
      55)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附編, 5b6-8a9.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101


      三叩頭 山呼
      왕세자 사배 萬歲聲之曲
      집박전악이 歌者와 금슬을 이끌고 階로 올라감
      왕세자에게 휘건․찬안․별행과 올림 九如恒之曲
      參宴者 찬탁 차림
      왕세자에게 술 올림 都春之曲무고(舞鼓)
      왕세자에게 탕 올림.
      만두 올림. 참연자에게 술 드림
      왕에게 차 올림 山河玉曆長之曲향발(響鈸)
      왕세자에게 차 올림
      賀聖朝之曲(歌者가 노래하고
      금슬이 반주한다)
      饌果案 물림. 왕세자 찬과안 물림. 참연자 卓 물림 四仙曲(慢) 四仙舞
      사배 康成之曲
      왕 降座. 入大次 萬壽無疆引 보상반(寶相盤)
      치사함 奉入
      왕세자 出小次 彩雲仙鶴引
      1829년(순조 29) 6월 자경전 야진찬의56)
      집박전악과 세취악 정재무를 南階 위에 진설한다,
      왕세자 배위에 나아감 세취 壽星輝之曲
      왕 陞座 세취 大明之曲
      왕세자 사배 세취 玉燭光之曲
      휘건 올림 세취 萬歲春之曲
      饌案 올림 세취 豊慶之曲가인전목단
      왕세자가 술잔 올림 세취 長生寶宴之樂장생보연지무
      치사
      왕이 술잔을 듬 세취 萬年歡之曲무애
      삼고두. 산호
      사배 세취 萬斯年之曲
      왕세자에게 휘건․찬안․술 올림 세취 萬波停息之曲
      왕 찬안 물림 세취 泰階平之曲
      왕세자 찬안 물림 세취 殿前歡之曲
      왕세자 사배. 왕 降座 還內 세취 祝有餘之曲
      왕세자 還內 세취 重光之曲


      ② 악기편성과 차비


      1829년(순조 29) 2월 명정전 외진찬 악기편성57)


      56)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附編, 8a10-9b8.
      57)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3, 4b11-5b2.


                                                                                                                   -  藏 書 閣


      헌가
      박1 노래3 피리7 대금6 편종2 편경2 당적2 퉁소2 당비파2 해금2 방향2 장구4 건고1 삭고1
      응고1 축1 어1 생2
      등가
      박1 노래4 笳4 피리7 대금6 당적2 퉁소1 당비파2 해금2 방향1 장구4 생2 거문고2 가야금2
      아쟁2 교방고1
      1829년(순조 29) 2월 자경전 내진찬 악기편성58)
      등가
      피리6 대금4 당적4 퉁소2 당비파4 해금4 방향4 장구2 생(笙)4 거문고2
      가야금2 아쟁2 양금(洋琴)2 당금(唐琴)2 부구(浮漚)1 교방고2 운라(雲鑼)2 가(笳)2
      태평소2 징(鉦)1 요(鐃)1
      내취 징(鉦)1 고(鼓)2 태평소6 자바라4 나발4
      1829년(순조 29) 2월 외진찬에는 무동(舞童)이 정재를 추고, 내진찬에는 여기(女
      妓)가 정재를 추었으나,59) 음악연주는 외진찬과 내진찬 모두에 악공들이 연주하였
      다.60)



      1829년 6월 자경전 진찬 악기편성61)


      박1 노래4 피리4 대금2 당비파1 해금2 방향1 장구1 거문고1 가야금1 아쟁1 교방고1 갈고1
      1829년(순조 29) 6월 내진찬은 악공이 음악연주를 하고 무동이 정재를 추었다.62)


      ③ 기타
      1829년 6월 내진찬에 악공과 무동이 악가무(樂歌舞)를 맡았고, 시위(侍衛)를 내시
      가 하였으므로 외방 여기를 부르지 않았다.63) 그러나 2월 내진찬에는 여령이 정재를
      추고, 여관(女官)과 여령(女伶)이 시위(侍衛)를 했으므로,64) 내의원(內醫院)․상의원
      (尙衣院)․혜민서(惠民署)․공조(工曹)․형조(刑曹)의 관비(官婢)와 외방 여기를 불
      러서 썼다.


      권1 이문(移文). 무자년(1828) 11월 27일65)
         상고할 일. 이번 진찬할 때 각 차비여령을 적은 수의 경기(京妓)로 배정할


      58)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3, 5b10-6a8.
      59)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3, 5b3-7a12.
      60)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3, 4b11-7a12.
      61)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附編, 23a3-8.
      62)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附編, 23a3-b11.
      63)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附編, 22a5-b10.
      64)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2, 73a9-77b9.
      65)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54b10-55a2.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103


      수 없으므로 전례(典例)에 의거하여 후록(後錄)으로 공문을 보내니, 각 해당
      읍에 확실하게 알려서 반드시 오는 12월 초10일 안으로 명단을 만들고 담당
      관리를 정해서 인솔하여 올려 보낼 것. 만약 늙고 병들고 가무(歌舞)를 잘
      못하는 자를 숫자만 채워 올려 보내는 폐단이 있으면 해당 지방장관을 철저
      히 문책할 것이니, 심상하게 하지 말고 유념하여 거행하여 일체 시행할 수
      있게 할 것. (경상도 21명. 이중 6명은 처용무 잘 추는 자로 경주․안동에 분
      배할 것. 평안도 20명. 강원도 5명. 공충도 7명. 황해도 17명. 전라도 15명)


      권1 이문(移文). 무자년(1828) 12월 26일66)
         상고할 일. 하전(下典)이 의장(儀仗)을 잡는 것은 칭경도감(稱慶都監) 때부터
      행하게 된 사례이고, 하전을 귀조(貴曹:형조)에서 대령하는 것도 으례 행하는
      고례(古例)입니다. 지금 배정된 수가 많아서 보내기 어렵다고 누차 말하는데,
      그렇다면 수가 적으면 대령하고 많으면 대령하지 못합니까? 많고 적은 것을
      막론하고 본소에서는 다만 고례대로 귀조에 배정했을 뿐이니 어찌 다른 도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에 와서 달리 변통할 수 없으니 전의 공문대로 62명
      외에 42명을 더해서 보내도록 하시오.(형조)

        권1 이문(移文). 기축년(1829) 2월 20일67)
         상고할 일. 이번 진찬할 때 하달된 별단에 의거하여 상을 주는 규정대로 각
      차비여령에게 명주와 포목을 지급해야하는데, 외방 여령이 이미 내려갔으므
      로 여령의 이름과 명주와 포목의 수효를 후록(後錄)으로 공문을 보내니, 각
      해당 읍에서는 후록에 의거하여 일일이 지급하고, 명주와 포목은 국가의 곡
      식으로 회계한 상황을 보고하여 증빙할 수 있도록 하되, 일을 지체하지 말
      것.(평안감영․황해감영․강원감영․공충감영․전라감영․경상감영)


         평양의 현옥에게는 백목(白木) 2필․ 포목[木] 3필․명주[紬] 1필. 차심에게
      는 백목 2필․포목 3필․명주 1필. 월영에게는 백목 1필․포목 2필. 차옥에
      게는 백목 2필․명주 1필. 춘심에게는 백목 2필․명주 1필. 안주의 일지매에
      게는 포목 2필․백목 1필. 매향에게는 포목 2필․백목 1필···(중략)···


      권2 감결(甘結). 무자년(1828) 11월 27일68)
      이번 진찬할 때 각 차비여령은 경기의 수효를 미리 다 안 뒤에 배정할 수
      있으므로 이에 공문을 보내니, 경기의 수효를 성화같이 명단을 작성하여 본
      소에 보고할 것.(내의원․상의원․공조․혜민서)
      1829년(순조 29) 2월에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가 창제되어 공연되었는데, 효명세자
      가 지은 한문악장이 창사로 쓰였다. 아박과 무고 정재는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것


      66)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57a11-b5.
      67)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61a8-62b1.
      68)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2, 17a5-7.
                                                                                                                     -  藏 書 閣


      인데, 1829년 2월 진찬에서는 전부터 내려오는 국문악장 대신 효명세자가 새로 지은 한문
      악장이 창사로 쓰였다.69)

         1829년 6월 진찬에는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제수창지무(帝壽昌之舞)․사선무(四仙舞)
      가 창제되어 공연되었다. 불교에 관계된다 하여 조선전기에 금지했던 무애(無㝵) 정재70)가
      1829년 6월에 다시 공연된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기축 진찬의궤 에는 무애 창사(唱
      詞)가 실려 있지 않으나,71) 고종 계사년(1893) 정재무도홀기 에 의하면 왕의 장수를 비는
      내용이다.72) 왕의 장수를 비는 축사는 1829년에 새로 지어졌으리라 추정된다.


      3. 자료적 가치
       
         진찬의궤 ․ 진작의궤 등에는 해제에서 살펴본 음악에 관한 내용 이외에, 잔치상에 차
      리는 음식에 관한 찬품(饌品), 잔치에 쓰이는 그릇과 탁자 등에 관한 기용(器用), 행사에
      필요한 물품의 보수와 조달에 관한 수리(修理), 물건의 배치에 관한 배설(排設), 의물과 시
      위에 관한 의위(儀衛),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 잔치를 벌이는데 든 비용에 관한 재
      용(財用) 등이 기록되어 있어서 궁중연향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순조대(1800-1834)에는 20여종의 정재가 새로 창제되고, 아박과 무고 등의 국문창
      사가 한문창사로 바뀌고, 불교와 관련된다하여 조선전기에는 금지되었던 무애가 다시 공연
      되는 등 정재 공연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으며, 이것이 조선조말까지 전승되었으므로, 순조
      대 연향의궤는 그만큼 궁중연향악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래에는 내연(內宴)을 ‘왕대비나 중궁전 또는 내명부 등의 여자를 위한 잔치’ 라고 정의
      했었으나, 기축 진찬의궤 에 왕세자․왕세자빈․좌명부․우명부․종친․의빈․척신이 왕
      에게 술잔을 올린 1829년(순조 29) 2월 12일 자경전 잔치를 내진찬이라고 명시한 기록이
      있어서,73) 종래의 내연개념을 수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즉 왕비 없이 왕만 참여했는
      데도 내진찬이라 했기 때문에, 내연 개념을 ‘왕비․세자빈․명부 등의 여자가 참여하는 연
      향으로 왕을 비롯한 종친․의빈․척신 등 왕실 친인척의 남자가 참여하기도 한다.’라고 수


      69)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13b3-18b2.
      70) 世宗實錄 卷65, 21b11-15 : 世宗 16年 8月 壬戌. “禮曹啓···(中略)···且無㝵呈才 其歌辭專用佛家
      之語 足爲誕妄 況年前昌盛亦欺之 今後凡諸賜樂 乞罷無㝵呈才 復用蓮花臺 去其微臣詞 則鄕唐樂
      俱全 而臣下用樂節次有序矣 從之”
      71)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附編 5a3-4.
      72) 高宗 癸巳年 呈才舞圖笏記 舞㝵舞( 韓國音樂學資料叢書 제4권, 172쪽).
      “舞㝵舞···(中略)···南山松栢빛치 長春코 不老탓다. 비로니 聖人壽를 도모라 누리쇼셔. 아으 萬年
      萬萬年에 皇圖가 永鞏이쇼셔.···(中略)···빗나온 壽星이 南極이 아니신가 가업슨 크온 壽가 佛慈
      가 아니신가. 恒沙가튼 數에 寶籌를 더고져. 玉燭 발근 빗치 壽域에 빗나시니어와 우리들이
      太平을 노라셰라. 百年이 이것고야. 千年이 이것고야. 萬年又億萬年이 年年이것고야. 玉曆千秋
      長을 비라와 드리노다.···”
      73)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 卷1, 52b1-6. “(己丑 正月 初一日) 進饌所郞廳以堂上意達曰 賀儀已擧 內外進饌
      以二月旬前旬後擇入事令下矣 令日官朴周煥推擇 則來二月初九日十二日俱吉云 外進饌以何日定行 內進饌亦
      以何日定行乎敢稟 令曰外進饌以初九日爲之 內進饌以十二日爲之”


                                                                         - 장서각 소장 조선시대 궁중연향악 문헌 105


      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 무동이 내연에 정재를 춘 기록이 순조 무자년 진작의궤 에 처음으로 나오고 기축년
      진찬의궤 에 마지막으로 나온다. 순조대에 유일하게 내연에 무동이 춘 기록이 있는 것이
      다.
      등가와 헌가는 대개 번갈아 연주하는데, 혜경궁진찬소의궤 와 자경전진작정례의궤 의
      의주는 등가와 헌가가 동시에 연주하는 형태도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순조대 연향의궤는 궁중연향문화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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