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정재(宮中呈才) - 향악정재(鄕樂呈才) - 여섯

2017. 4. 14. 23:54율려 이야기


궁중정재(宮中呈才) - 향악정재(鄕樂呈才) - 여섯



  조선무악[1931.06.29.]


                                    


게시일: 2015. 9. 7.


1931년 6월 20일 비원 희정당(대조전)에서 시연한 '봉래의, 보상무, 포구락, 무고' 등 정재)

수록되어 있으며, 김천흥 명인이 무동으로 출연하였다.

01. 인트로[intro]
ㅇ 출연/이왕직아악부

02. 봉래의
ㅇ 지도/이수경, 출연/이왕직아악부

03. 보상무
ㅇ 지도/이수경, 출연/이왕직아악부

04. 무고
ㅇ 출연/이왕직아악부

05. 장생보연지무
ㅇ 출연/이왕직아악부

06. 포구락
ㅇ 출연/이왕직아악부

07. 아웃트로[outro]
ㅇ 출연/미상

* 본 자료는 무성필름을 디지털변환한 것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조선왕조의 마지막 '궁중무용', 83년 만에 공개

KBS 뉴스 / 게시일: 2014. 4. 2.


앵커 멘트

조선의 마지막 궁중무용을 촬영한 귀한 영상이 80여 년 만에 공개됐습니다.
그동안 말이나 글로만 전해져온 우리의 전통무용, 어떤 모습였을까요?
심연희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통일신라 때 시작돼 조선 초기에 궁중무용으로 승격된 처용무.
나라의 액운을 막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얼굴에 먹을 찍으며 짓궂게 노는 것처럼 보이는 '보상무'는 왕을 기쁘게 하고, 태평성대를 기원합니다.
궁중에 소속된 재인들이 왕 앞에서 펼치는 조선의 궁중무용인 정재입니다.

인터뷰 박정경(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 "예전에 정재의 모습뿐 아니라 궁중연향이나 잔치에 대한

모습까지도 유추해 볼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자료인 것이죠."

이 영상의 정재는 본래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귀국을 축하하기 위해 1930년에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일제가 기록해 둘 가치가 있다며 1년 뒤 다시 공연을 요구해 영상에 담겼습니다.

그래서, 왕의 자리는 비어 있고.
왕을 잃은 무용수들의 표정도 굳어있습니다.

일본이 '조선 무악'이라 이름붙인 이 기록영화는 1979년 일본에서 발견됐고, 제작된 지 83년 만에 마침내 국내에 공개됐습니다.
국립국악원은 문헌으로 전해진 기록과 이번 영상을 토대로 조선의 마지막 궁중무용을 재현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심연희입니다.






국립국악원 수요춤전: 김영숙과 정재연구회

(Kim Yeong-suk and the Association of Court Dance Research) [2015.09.16.]




게시일: 2015. 9. 17.


김영숙은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일무 관련 최초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그리고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국 제례일무의 미학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지난 1970년부터 심소 김천흥 선생에게 춘앵전을 사사했으며

2009년에는 황옥선 선생에게도 춘앵전을 사사, 활발히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아울러 1997년부터 2001년 까지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를 역임했으며

199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일무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정재연구회와 일무보존회의 예술감독과 회장직을 맡고 있다.

01. 헌선도 (0:00)   Heonseondo
당악(唐樂) 대곡(大曲)의 하나로, 정월 보름날에 열리는 좋은 잔치모임에서 군왕의 장수를 송축하기 위하여

왕모(王母)가 선계(仙界)에서 내려와 선도(仙桃) 즉 삼천년에 한번 열리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열매라는

반도(蟠桃)를 바치는 형식으로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의 노래를 부르면서 춤추는 것이다.
○ 봉탁자/안영숙·변현조, 봉죽간자/홍민정·문경민, 선모/김영숙, 협무/김경진·이승주, 봉선도반/변현조

02. 아박무 (14:49)  Abakmu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동동(動動)으로 전하며, 『악학궤범(樂學軌範)』

시용향악정재도의(時用鄕樂呈才圖儀)에는 타악기의 일종인 아박을 두 손에 들고 박자에 맞추어

아박을 치며 대무하므로 아박무이라 전한다
○ 춤/송영인·이나윤·김희원·박수정

03. 무산향 (29:35)  Musanhyang
조선조 제23대 왕인 순조(純祖)의 사순(四旬)을 축하하기 위하여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예제한 창사를 부르며 대모반(玳瑁盤) 위에서 추는 독무로 창제된 춤이다.

무산향의 활달한 춤사위가 양강(陽剛)의 미를 표현하는 춤이라면 같은 시대에 창제된

춘앵전(春鶯囀)은 음유(陰柔)의 아름다움을 지닌 춤으로 서로 대조를 이룬다.
○ 춤/이미주

04. 검무 (39:53)
신라시대 소년 황창랑이 검무를 잘 추어 이름을 날렸으며 백제의 왕 앞에서 검무를 추다가

칼을 던져 왕을 죽이고 황창도 잡혀 죽임을 당했다.


이후로 신라사람들이 애국소년 황창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황창 모습의 가면을 쓰고

검무를 추기 시작한데서부터 유래하는 춤으로 황창랑무(黃倡郞舞)라고도 한다.


4명의 무원(無員)들이 긴 칼을 들고 대무(對舞)하여 추는 춤으로, 원래 민간에서 가면무(假面舞)로 행해지던 것을

조선 순조 때 궁중정재로 채택하여 궁중에서 연희(宴戱)되면서 칼도 무구화(舞具化)하여 길이가 짧아졌고,

가면을 쓰지 않고 여령들이 추었다.
○ 춤/안시향·안영숙·박혜연·변현조

05. 무고 (46:47)  Mugo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시중 이곤(李混)이 영해로 유배되어 지낼 때 바닷가에서 떠내려오는 나무를 얻어

북을 만들어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굉장하였으며, 북의 이름을 무고라고 하였다.

이 북을 두드리며 춤을 추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나비가 펄렁펄렁 날며 꽃을 감도는 것 같고,

용이 용맹스럽게 여의주를 다투는 것 같다고 했다.
○ 춤/이나윤·김희원·박수정·송영인

06. 춘앵전 (1:02:38)  Chunaengjeon
조선조 순조(純祖) 때 효명세자(孝明世子)가 모친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의 보령(寶齡) 40탄신(誕辰)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창사를 노래하며 춤추는 독무이다.


이른 봄날 아침에 버드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자태를 무용화한 것이다.

같은 시대에 창제된 무산향의 활달한 춤사위가 양강(陽剛)의미를 표현하는 춤이라면

춘앵전(春鶯囀)은 음유(陰柔)의 아름다움을 지닌 춤으로 서로 대조를 이룬다.
○ 춤/김영숙

07. 처용무 (1:15:59)  Cheoyongmu
신라 헌강왕(憲康王)때 발생된 춤으로 궁중무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음양오행 사상을 표현하며 액운을 쫓는 벽사(辟邪)의 의미가 담겨 있다.
○ 춤/이지연·이승주·박혜연·송영인·안시향

* 음악/국립국악원 정악단
* 출연자 정보
- 김영숙/정재연구회 예술감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일무 전수교육조교
- 이미주/정재연구회 화동정재예술단 단장
* 정재연구회 회원
- 김경진·안시향·이승주·이지연·안영숙·박혜연·변현조·송영인·김희원·이나윤·박수정·홍민정·문경민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한국민족문
화대백과사

당악정재

다른 표기 언어 唐樂呈才

요약 테이블
유형 개념용어
분야 예술·체육/무용

요약 고려시대 송나라의 교방악에서 유래한 궁중무용.

당악정재 / 죽간자와 의문들

당악정재 연주 때 좌우에 늘어서는 죽간자와 의물들.

             

개설

   향악정재의 대칭어이다. 송나라의 교방악 곧 궁중무용을 총칭하는 당악정재는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에도 향악정재와 더불어 궁중무용의 쌍벽을 이루었다. 『고려사』 악지에는 당악정재라는 용어가 없고, 당악 항목 아래 정재종목이 기재되었다. 여기서의 당악은 넓은 의미에서 중국의 악(樂)을 뜻한다.


   당악과 구분하기 위해 우리 음악을 향악(鄕樂)이라고 하였고, 춤에도 당악정재와 향악정재로 구분하게 되었다. 원래 정재(呈才)는 기예를 드리는 것이었으나, 이후 궁중무용의 대명사처럼 사용하였다.


연원 및 변천

   당악정재가 상연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 악지에 나온다. “1073년(문종 27) 을해일에 교방여제자(敎坊女弟子) 진경(眞卿) 등 13인이 전한 「답사행가무(踏沙行歌舞)」를 연등회(燃燈會)에 쓸 것을 아뢰었더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그해 11월 신해에는 팔관회를 베풀어, 임금이 신봉루(神鳳樓)에 나아가 악무를 관람했는데, 교방여제자 초영(楚英)이 새로 전해 온 「포구락(抛毬樂)」과 「구장기별기(九張機別伎)」를 공연하였다. 「포구락」 여제자는 13인이, 「구장기별기」 여제자는 10인이 공연하였다.”라고 하였다.


   또한 1077년(문종 31) 2월의 기사에는 “임금이 중광전(重光殿)에 나아가서 악무를 관람했는데, 교방여제자 초영이 「왕모대가무(王母隊歌舞)」를 공연하였다. 이 가무는 일대(一隊)가 55인이며, 춤으로 네 글자를 만드는데, ‘군왕만세(君王萬歲)’ 혹은 ‘천하태평(天下太平)’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교방의 여제자 진경과 초영이 전한 「답사행가무」·「포구락」·「구장기별기」·「왕모대가무」는 고려조정에 파견된 송나라의 교방악사가 가르친 당악정재다. 1071년 송나라의 신종이 고려조정에 파견한 교방악사가 그런 당악정재를 고려의 교방여기에게 가르쳤다고 『송사(宋史)』 권15에 전한다.


   1076년(문종 30) 대악관현방(大樂管絃房)의 관원에게 녹봉을 주는 내용이 『고려사』 식화지(食貨志)에 전하는데, 당무업사(唐舞業師) 겸 창사업사(唱詞業師) 1인, 당무업사교위(唐舞業師校尉) 1인이 있었으니, 당악정재를 학습하는 체계를 이 시기에 이미 갖추었다.


고려시대의 당악정재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당악정재는 「헌선도(獻仙桃)」·「수연장(壽延長)」·「오양선(五羊仙)」·「포구락」·「연화대(蓮花臺)」 등 5종목으로, 춤추는 절차와 반주음악 및 창사가 소개되어 있다.


   다섯 당악정재 중에 「포구락」이 제일 먼저 1073년(문종 27) 11월 팔관회에서 공연되었다. 교방여기가 춤을 추면서 포구문에 공을 던져 넣는 놀이형태인데, 무용수들이 차례로 공을 넣으면 상으로 꽃을 주고, 넣지 못하면 벌로 얼굴에 먹점을 찍어 준다. 송나라 심괄의 『몽계필담』에 의하면, 「포구락」은 이신언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명 석지무라고 하는 「연화대」는 포구락과 함께 1123년(인종 1)에 공연되었음이 『고려도경』에 전한다. 당나라 때 서역의 석국(石國, 지금의 중앙아시아 타슈겐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나라 현종 때 중국에 전래하여 송대에도 유행했다가 춤의 일부가 고려에 전래된 듯하다. 두 동녀(童女)가 합립(蛤笠)이라는 서역풍의 모자를 쓰고 연꽃 안에서 나와 춤추는 형태이다.


  「헌선도」는 1167년(의종 21) 4월 연흥전에서 공연되었다고 『고려사』 권18에 전한다. 한 개만 먹어도 천 년을 넘게 살 수 있다는 복숭아 쟁반을 봉탁(奉卓)에 올리는데, 봉탁이 육각으로 된 까닭은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인 ‘남두육성’의 의미라고 한다. 「헌선도」는 귀한 분께 선도를 바치며 태양처럼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춤이다.


  「오양선」은 군왕의 장수를 소망하는 내용의 당악정재이다. ‘양을 탄 다섯 신선’의 고사를 춤으로 재현한 것이다. “조고라는 사람이 초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다섯 신선이 오색 양을 타고 내려왔는데, 이때 한줄기에 여섯 개의 이삭을 갖는 ‘육수거’를 가져와 효성이 지극한 백성에게 주었다.”는 내용이다. 「수연장」은 음력 정월 보름날 군왕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당악정재의 공연양식은 향악정재와 비교할 때 세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는 향악정재에 없는 죽간자(竹竿子)와 여러 중류의 의물이 무대에 등장하는 점이다. 붉은 식을 칠한 깃대 끝에 빗자루처럼 생긴 가는 대나무가지를 엮어 만들었고, 나뭇가지는 붉은 실로 묶고 수정 구슬을 다는데, 이것은 언젠가 태평성대에 날아들 봉황의 보금자리와 그 먹이를 상징한다. 죽간자를 든 기녀가 무용수를 무대로 이끌고 나오는 점이 당악정재의 특징이다.


   당악정재의 공연 때 사용되는 의물로는 용무늬를 그린 용선(龍扇), 봉황을 그린 봉선(鳳扇), 공작의 꼬리깃으로 장식한 미선(尾扇), 공작 모양으로 만든 작선(雀扇), 깃발대의 끝 복숭아 모양으로 장식한 인인장(引人仗), 인인장의 장대에 많은 수술을 달아서 만든 정절(旌節) 등이 사용되었다.


   둘째는 정재공연의 시작과 끝에서 기녀가 부르는 한문가사의 치어(致語)와 구호(口號)가 나오는 점이다. 구호와 치어는 당악정재의 앞과 뒤에서 부르는 송축의 뜻으로 된 내용의 치사(致辭)와 시(詩) 일장으로, 치어는 대체로 변려체(騈儷體)로 되어 있고, 구호는 칠언사구(七言四句)로 되어 있다.


   셋째는 춤추는 도중에 기녀가 노래부르는 창사(唱詞)가 한시인 점이다. 향악정재가 향악 반주에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부르는 데 반하여, 당악정재는 당악 반주에 한문 가사를 노래한다.


조선 전기의 당악정재

   조선 전기의 당악정재는 모두 14종목으로, 『악학궤범』 권4에 도설(圖說)되었다. 고려 때 공연된 당악정재 5종목이 그대로 전승되었고, 9종목이 새로 창작되었다. 조선 전기에 창작된 종목은 「금척(金尺)」·「수보록(受寶籙)」·「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하황은(荷皇恩)」·「하성명(賀聖明)」·「성택(聖澤)」·「육화대(六花隊)」·「곡파(曲破)」이다. 그 중에서 「육화대」와 「곡파」는 송나라의 대곡에서 유래되었고, 나머지 7종목은 태조와 태종의 공덕을 찬양한 내용의 악장을 근거로 조선 초에 창제되었다.


   여섯 명의 기녀가 꽃을 들고 추는 「육화대」는 송나라의 대곡에 나오는 화무를 본떠서 창작되었다. 그리고 『고려사』「악지」 소재의 석노교곡파와 관련된 「곡파」는 1425년(세종 7) 10월 고려 때 공연된 곡파의 절주를 기억하는 노기가 재현한 당악정재이다.


   몽금척의 준말인 「금척」 및 「수보록」은 1393년(태조 2) 정도전이 창작한 악장을 바탕으로 만든 당악정재이다. 두 당악정재는 모두 태조의 건국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근천정」과「수명명」은 1402년(태종 2) 하륜의 악장을 근거로 창제되었다. 두 당악정재는 모두 태종이 명나라에 가서 황제의 오해를 풀고 황제로부터 왕의 인준을 받아 기뻐하는 내용이다.


 「하황은」은 세종이 명나라의 황제로부터 왕의 인준을 받아 온 백성이 기뻐한다는 내용의 악장을 근거로 창제한 당악정재이다.  「하성명」은 1419년 변계량이 지은 하성명 악장을 바탕으로 창제되었는데, 명나라 황제가 등극한 이래 여러 상서가 나타나 우리나라 백성들이 기뻐한다는 내용이다. 「성택」은 명나라 황제가 보낸 사신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조선 초에 창제된 7종목은 모두 죽간자를 든 기녀들이 한문으로 된 구호와 치어 및 창사를 불렀다. 당악정재의 외적 형식만 갖춘 것이 아니라, 7종목의 반주악곡은 고려 때 당악곡을 차용했다. 조선 후기의 연향 관련 의궤와 『정재무도홀기』의 기록을 보면, 조선 후기까지 전해진던 당악정재는 「헌선도」·「수연장」·「오양선」·「포구락」·「연화대」·「몽금척」·「하황은」·「육화대」의 8종목이었다. 순조대에는 당악정재의 형식으로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제수창(帝壽昌)」·「최화무(催花舞)」의 4종목이 새롭게 창작되었다.


조선 후기의 당악정재

   조선 후기에 나타난 당악정재의 특징은 반주음악으로 당악 대신 향악을 사용한 점이다. 창사의 곡조에서 가곡의 농·계락·편을 쓰기도 했다. 형식적으로 죽간자와 의장을 쓰기도 했지만, 연향에 따라 죽간자가 생략되기도 하는 등 당악정재의 형식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당악정재가 향악정재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 후기까지 궁중에서 공연된 당악정재의 무보(舞譜)는 『정재무도홀기』에 전한다. 당악정재는 궁중뿐만 아니라 지방의 교방에서도 지속적으로 공연되었다. 고종대 의 기록인 『교방가요(敎坊歌謠)』에서 진주 교방에서 공연된 당악정재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공연된 당악정재로는 「연화대」·「육화대」·「포구락」·「헌반도(獻蟠桃, 헌선도)」였는데, 모두 죽간자가 생략되었으며, 춤 절차와 무대도구 및 의상도 궁중에 비해 간소한 형태였다.

현황

   현재 대부분의 당악정재가 『정재무도홀기』를 토대로 재현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시대 당악정재의 등장의 역사적 의미는 다음의 네 가지다. 첫째로 당악정재의 반주음악은 고려 당악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둘째로 당악정재가 고려 조정에 뿌리를 내림으로 말미암아 궁중공연예술을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셋째, 당악정재는 향악정재의 등장을 위한 촉매재가 되었다. 넷째로 고려의 당악정재가 조선 후기 지방의 교방까지 확대되었으며, 현재까지 국립국악원에서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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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교방가요(敎坊歌謠)』
  • 『악학궤범(樂學軌範)』
  •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 『진작의궤(進爵儀軌)』(1828)
  • 『진찬의궤(進爵儀軌)』(1829)
  • 『진연의궤(進爵儀軌)』(1901, 1902)
  • 『증보 한국음악통사』(송방송, 민속원, 2007)
  • 『청소년을 위한 한국음악사:국악편』(송혜진, 두리미디어, 2007)
  • 『정재연구』Ⅰ(정은혜, 대광문화사, 1996)
  •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 『당악연구』(차주환, 범학도서, 1976)





  당악 정재| 한국무용에 대해            
박지영 | 조회 7 |추천 0 | 2003.02.11. 16:14

   

   중국에서 내려지는 궁중무용의 한 갈래로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는 몽금척(夢金尺), 장생보연지무 (長生寶宴之舞) 와 같이 조선시대에 당악정재 (唐樂呈才) 의 양식에 따라 창작된 춤이다. 조선 전기에는 향악정재 (鄕樂呈才) 는 향악에 의해 추어졌고 당악정재는 당악에 의해 추어졌다.

   조선후기에 와서는 이런 구분이 없이 향악정재 (鄕樂呈才) 라고 하면서도 당악을 연주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춤사위도 별다른 구별없이 혼용되고 있는 상태로 변천되었다. 구호(口號), 치어(致詞) 또한 조선후기에는 대부분 쓰지 않았으며 이 시기에 당악정제 (唐樂呈才) 로 창작된 무용은 사실상 향악정재 (鄕樂呈才) 라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한국무용 > 궁중무용 > 당악정재


  향악정재(鄕樂呈才)에 대응하는 말이며 정재(呈才)란 원래 헌기(獻技), 즉 춤 뿐만 아니라 모든 재예(才藝)를 드린다는 뜻이었는데 차차 궁중무용의 대명사처럼 사용하게 된 것으로, 신라 이후 고려에 걸쳐 유입된 당나라의 음악 ·무용을 기존의 음악 ·무용과 구분하기 위하여 붙인 이름이다. 당악(唐樂)이 그러하듯 당악정재도 당나라의 무용과 송나라의 무용을 일괄하여 부르는 말이다. 


   당악정재가 상연된 최초의 기록은 1073년(문종 27)의 일이다. 《고려사(高麗史)》(1451)에 “문종 1027년 2월 을해(乙亥) 에 교방(敎坊) 여제자(女弟子) 진경(眞卿) 등 13인이 답사행가무(踏沙行歌舞)를 연등회(燃燈會)에 쓰도록 아뢰어 임금이 허락하였다. 11월 신해(辛亥)에는 팔관회(八關會)를 베풀고 임금이 신봉루(神鳳樓)에 나아가 관악(觀樂)하였는데, 교방 여제자 초영(楚英)이 새로 전해온 포구락(抛毬樂)과 구장기별기(九張機別伎)를 아뢰었다…”라 하였고, 《고려사》 <악지(樂志)> 당악조(唐樂條)에는 헌선도(獻仙桃) ·수연장(壽延長) ·오양선(五羊仙) ·포구락 ·연화대(蓮花臺) 등 당악정재의 춤추는 절차가 소개되어 있다.

   《악학궤범》(1493) 무렵에 이르면 《고려사》에 수록된 5가지 춤 외에 금척(金尺) 이하 9종이 더 있으며, 조선 후기로 오면서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등 더욱 많은 작품이 당악정재의 형식을 빌려 창작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당악정재는 향악정재와 구분되는 여러 특징들이 서로 혼용되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악정재에는 대체로 악사(樂師) ·무기(舞妓) ·창사(唱師)와 죽간자(竹竿子)를 비롯하여 인인장(引人仗) · 황개(黃蓋) · 정절(旌節) · 용선(龍扇) · 작선(雀扇) · 미선(尾扇) 등의 의물(儀物)이 사용된다



*헌선도(獻仙桃)
    중국 당대에 있던 동명의 춤을 고려 때 최충헌이 개작(改作)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 말까지 연행되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악학궤범》의 당악정재설에 헌선도는 죽자간 (竹竿子) 2명과 왕모 (王母) 1명 협무 (挾舞) 2명으로 구성되며, 선도를 올리면서 군왕을 송수(頌壽)하기 위한 노래를 곁들인다 .

무신년진찬도병 중 통명전내진찬도 戊申年進饌圖屛 중 通明殿內進饌圖
궁중정재 - 좌로부터 포구락, 몽금척, 헌선도, 처용무, 무고, 향발































8첩 병풍, 139.0×384.0cm, 비단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근현대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 01. 헌선도


게시일: 2016. 6. 10.

이 영상은 2015년 12월 10일, 2016년 1월 13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실연한 정재 기록영상입니다.
2016년 6월, ‘근․현대 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에 수록되었습니다.

01. 헌선도(獻仙桃)


헌선도는 서왕모(西王母: 중국 신화에 나오는 불사약을 가진 여신)가 불로장생의 열매인

선도(仙桃: 선경에 있다는 복숭아)를 군왕에게 바침[獻仙桃]으로써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려 때부터 연행된 당악정재.


○ 출연/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한명옥, 구성 및 지도: 최경자)
- 죽 간 자: 조은주, 이윤정
- 봉선도반: 김진정
- 선 모: 김혜자
- 협 무: 유재연, 백미진
- 의 물: 최형선, 김혜영, 이정미, 김영신, 윤은주, 이지은, 김영애, 이주희, 이주리, 정승연, 서희정,

이미영, 권문숙, 박경순, 박지애, 임동연, 이하경, 이혜경, 고은비, 최나리, 권덕연

○ 연주: 국립국악원 정악단(예술감독: 정재국, 음악구성 및 지도: 이영)
- 집박: 김기동
- 피리: 홍현우, 윤형욱
- 대금: 김영헌, 이승엽
- 해금: 류은정, 고수영
- 가야금: 고연정
- 거문고: 윤성혜
- 장구: 홍석복
- 좌고: 조성욱
- 창사: 이준아, 조일하, 박진희, 장명서, 이윤진


* Korean Traditional Music Recording Series 5: National Gugak Center’s Jeongjae I
The National Gugak Center has been recording Korean traditional music since 1972

and has published thirty-four volumes of Selection Of Korean Classical Music.

Within the forty-four years of its recording history, the LP recordings of the early years were replaced with CD albums in 1992.

In 2011 the NGC presented Korean Traditional Music Recording Series with a new playing method and high quality sound.

Korean Traditional Music Recording Series produced so far include Julpungnyu, Gajeunhoesang, Gwanakyeongsanhoesang,

and Gagok. These music projects are major vocal and instrumental pieces and are being transmitted until today.

In Jeongjae I of the National Gugak Center five Dangak Jeongjae pieces emerged in the Goryeo dynasty were selected.

These pieces are revivals, led by Kim Chunheung, of the 1970s and 80s refering to Jeongjaemudoholgi.

In this recording, the NGC provides recordings of sections that are not frequently performed due to time restrictions.

Jeongjae is a precious performing art asset, which presents elegant dance movements, various topics, magnificence

and formality, literary movements (chapters), ceremonial aspects of court banquets, and characteristics of the court art.
Music and dance that ar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sometimes disappear, or other times, transform and develop.

Thus, we hope, with the recordings from each period, that a new beauty and value of traditional art will be found

and broadly used throughout the coming generations.

Kim Haesook (Director-General National Gugak Center)

○ 기획 및 제작: 국립국악원(Natioanl Gugak Center)
○ 영상제작: 향&AMS






헌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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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선도

고려 때 들어온 당악정재의 하나.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그림.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유남해) | 이미지 사이즈 541x800 |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용

   고려 때 들어온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우리 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대개 문종 때로 추정된다. 정월 보름날 밤 가회(嘉會)에 군왕을 송도(頌禱)하기 위하여 왕모(王母)가 선계(仙界)에서 내려와 선도(仙桃)를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춤은 선모(仙母) 1명, 협무(挾舞) 2명, 죽간자(竹竿子) 2명, 봉탁(奉卓) 1명, 봉반(奉盤) 1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의장대(儀仗隊)가 따로 있다. 반주음악은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에는 당악곡(唐樂曲)만을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 말기의 ≪고종계사정재무도홀기 高宗癸巳呈才舞圖笏記≫에는 <보허자령 步虛子令>·<여민락령 與民樂令>·<향당교주 鄕唐交奏> 등의 음악을 사용한 것으로 전한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보(舞譜)로는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궁중정재무도홀기≫가 있다.




근현대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 02. 수연장



게시일: 2016. 6. 9.

이 영상은 2015년 12월 10일, 2016년 1월 13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실연한 정재 기록 영상입니다.
2016년 6월, ‘근․현대 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에 수록되었습니다.

02. 수연장(壽延長)


수연장은 군왕의 장수를 기원[壽延長] 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무원 여덟 명이 2대 혹은 4대로 나누어 회무하거나 서로 상대하는 등 대형을 바꾸어가며 춤을 춘다.

고려 때부터 연행된 당악정재이다.

○ 출연/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한명옥, 구성 및 지도: 최경자)
- 죽간자: 박지애, 임동연
- 협 무: 백진희, 이지연, 김태은, 김영애, 이주희, 정승연, 이미영, 권문숙
- 의 물: 최형선, 홍명진, 김혜영, 이명희, 김진정, 이정미, 김영신, 유재연, 윤은주, 이지은, 백미진, 이주리, 서희정, 박민지, 조은주, 박경순, 이윤정, 이하경, 이혜경, 고은비, 최나리, 권덕연

○ 연주: 국립국악원 정악단(예술감독: 정재국, 음악구성 및 지도: 이영)
- 집박: 김기동
- 피리: 홍현우, 윤형욱
- 대금: 김영헌, 이승엽
- 해금: 류은정, 고수영
- 가야금: 고연정
- 거문고: 윤성혜
- 장구: 홍석복
- 좌고: 조성욱
- 창사: 이준아, 조일하, 박진희, 장명서, 이윤진

○ 기획 및 제작: 국립국악원(Natioanl Gugak Center)
○ 영상제작: 향&AMS



수연장

                                        수연장

                                               고려 때부터 전하는 당악정재의 하나. 국립국악원 제공.


내용

고려 때부터 전하는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고려사≫ 악지(樂志) 당악조(唐樂條)에 전하는 대곡(大曲)의 하나로, 상원(上元)에 군왕(君王)에게 진주(進酒)·축수(祝壽)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고려사≫ 악지에는 16인이 4대(隊)로 나뉘어 추는 것으로 되어 있고, 순조 무자(戊子) ≪진작의궤 進爵儀軌≫에는 원무(元舞) 4인에 협무(狹舞) 16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고종 계사(癸巳)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忽記≫에는 좌무(左舞) 4인, 우무(右舞) 4인 모두 8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춤의 반주 음악은 ≪고려사≫ 악지에 의하면 <연대청인자 宴大淸引子>·<중강령 中腔令>·<파자령 破子令>이 쓰인 것으로 되어 있고, ≪악학궤범≫ 시절에는 <중강령>·<청평악 淸平樂>·<파자 破子>의 순 당악이 사용되었다.


   조선 말기 ≪정재무도홀기≫에 와서는 향악화(鄕樂化)된 <보허자령 步虛子令>과 <향당교주 鄕唐交奏>가 연주되고, <중강 中腔>의 곡 이름이 보이지만, 그 이름만 당악명(唐樂名)이고 내용은 향악곡으로 판단된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보(舞譜)로는 ≪고려사≫악지·≪악학궤범≫·≪궁중정재무도홀기≫가 있다.




임인진연의궤 중 함녕전외진연도 壬寅進宴儀軌 중 咸寧殿外進宴圖






























『임인진연의궤(壬寅進宴儀軌)』 중 「함녕전외진연도(咸寧殿外進宴圖)」,
1902년 4월, 목판인쇄, 고려대학교도서관




*오양선(五羊仙)
   고려 때 송나라로부터 들여온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로 군왕을 송수(頌壽)하는
내용의 가무이다. 죽간자(竹竿子) 두 사람이 좌우에 서고 선모 한 사람은 가운데에 서며, 좌우협(左右挾) 네 사람이 네 귀에 서서 주악에 맞추어 사(詞)를 부르며 춘다.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전래된 당악무의 일종으로 중국 오양선 전설에서 구성되었다.


   즉, 고주(高周)가 고대중국 초(楚)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다섯 신선이 다섯 빛깔의 양(羊)을 타고 한 줄에 여섯 이삭이 달린 수수, 즉 육수거를 가지고 나타나서 대순(大順)에게 전해 주었다는 고사(故事)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볼 때 전해 준 벼이삭과 같이 곡식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뜻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며, 왕조의 앞날의 상서로운 기운을 노래하며 추는 정재무로서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당악정재-오양선|작성자 마레


악학궤범 4권(4) / 오양선초입배열도

악학궤범 4권(4) / 오양선초입배열도

≪악학궤범≫ 권4에 실려 있는 오양선초입배열도로 고려 때부터 전하는 당악정재 중의 하나. 규장각도서.


내용

   고려 때부터 전하는 당악정재(唐樂呈才) 중의 하나. ≪태평환우기 泰平寰宇記≫에 전하는 중국 고사(古事)에 따르면 “다섯 명의 신선이 오색의 양(羊)을 타고 한 줄기에 여섯 개의 이삭을 가진 육수거(六穗秬)를 효성이 지극한 백성에게 주었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고려사≫악지에 전하는 <오양선> 정재의 입대치어(入隊致語)와 <보허자령 步虛子令>에 맞추어 부르는 창사(唱詞)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헌선도 獻仙桃>·<수연장 壽延長>·<포구락 抛毬樂>·<연화대 蓮花臺>·<석노교 惜奴嬌>·<곡파 曲破>·<만년환만 慢年歡慢>과 더불어 대곡(大曲)들이고 그 형태는 대개 가무희(歌舞戱)에 든다.

내용은 군왕(君王)을 송축하는 것으로 왕모(王母) 1명, 협무(挾舞) 4명으로 구성된다. 춤 중간에 부르는 창사로는 <벽연농효사 碧烟籠曉詞>와 <표묘삼산사 縹渺三山詞>가 있다. 이 중에서 <보허자령>가락을 따라 부르는 <벽연농효사>는 영조 때의 ≪대악후보 大樂後譜≫와 그뒤의 ≪속악원보 俗樂源譜≫에 그 음악이 전한다.


   조선 말기에는 <벽연농효사> 대신 새로 지은 <천문해일선홍사 天門海日先紅詞>와 <구중춘일번도연사 九重春日蟠桃宴詞>로 바꾸어 부르고 있는데, 이를 ‘수악절창사(隨樂節唱詞)’라 하며, 지금도 전창(傳唱)되고 있는 유일한 노래이다.

이 춤의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에는 <오운개서조인자 五雲開瑞朝引子>·<보허자령> 등 당악(唐樂)을 사용했고, 조선 말기의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笏記≫에는 <보허자령>과 <향당교주 鄕唐交奏>를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보(舞譜)로는 ≪고려사≫악지·≪악학궤범≫·≪궁중정재무도홀기≫ 등이다.



근현대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 03. 오양선

게시일: 2016. 6. 10.

이 영상은 2015년 12월 10일, 2016년 1월 13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실연한 정재 기록 영상입니다.
2016년 6월, ‘근․현대 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에 수록되었습니다.

03. 오양선(五羊仙)


오양선은 오색의 양을 타고 온 다섯 신선[五羊仙]이 이삭을 전해주고
장수를 축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려 때부터 연행된 당악정재이다.

○ 출연/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한명옥, 구성 및 지도: 최경자)
- 죽간자: 이미영, 권문숙
- 중 무: 백진희
- 협 무: 김혜영, 김진정, 이정미, 유재연

- 의 물: 장민하, 이명희, 이지연, 김태은, 김영신, 윤은주, 이지은, 김영애 , 이주희, 백미진, 이주리, 정승연,
서희정,

조은주, 박경순, 이윤정 , 박지애, 임동연, 이하경, 이혜경, 고은비, 최나리

○ 출연/국립국악원 정악단(예술감독: 정재국, 음악구성 및 지도: 이영)
- 피리: 김철, 김성준
- 대금: 박장원, 김백만
- 해금: 공경진, 김용선
- 가야금: 강효진
- 거문고: 고보석
- 장구: 안성일
- 좌고: 조성욱
- 창사: 이준아, 조일하, 박진희, 장명서, 이윤진

○ 기획 및 제작: 국립국악원(Natioanl Gugak Center)
○ 영상제작: 향&AMS



*포구락

〈고려사〉에 의하면 1073년 11월 팔관회를 열고 왕이 신봉루에서 악무를 보았는데, 교방 여제자 초영이 새로 전래한 포구락과 구장기별기를 추었다고 한다. 이 춤은 당나라 때부터 유행하던 놀이춤이 송나라 때까지 전래된 것으로 〈송사〉 권142 악지에 의하면 153명이 추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이 포구락은 고대 경기 중 하나인 축국에서 시작된 듯하며, 송나라 심괄의 〈몽계필담〉에 의하면 포구놀이가 민간에서 많이 유행했던 듯하다. 포구락은 글자 그대로 편을 갈라 공을 구멍에 던져 넣으며 즐기는 일종의 놀이춤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차례로 공을 던지는데 구멍에 공을 넣으면 상으로 꽃을 주고, 넣지 못하면 벌로 얼굴에 먹점을 찍어준다. 춤을 추는 사람은 조선 말기에 6·8·10·12명으로 달라지고 있다.


  〈고려사〉 악지에 의하면 1073년(문종 27) 11월에 팔관회를 열고 왕이 신봉루에 서 악무를 보았는데, 교방 여제자 초영이 새로 전래한 포구락과 구장기별기를 추었다고 한다. 이 춤은 당나라 때부터 유행하던 놀이춤이 송나라 때까지 전래된 것이다.


  〈송사 宋史〉 권142 악지에 의하면 이 포구락은 153명이 추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이 포구락은 고대 경기 중 하나인 축국에서 시작된 듯하며, 송나라 심괄(沈括)의 〈몽계필담 夢溪筆談〉에 의하면 포구놀이가 민간에서 많이 유행했던 듯하다. 포구락은 글자 그대로 편을 갈라 공을 구멍에 던져 넣으며 즐기는 일종의 놀이춤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차례로 공을 던지는데 구멍에 공을 넣으면 상으로 꽃을 주고, 넣지 못하면 벌로 얼굴에 먹점을 찍어준다.


   1432년(세종 14) 3월에 포구락은 잡기인데다 곡절이 너무 길다고 했으며, 9월에는 상정소의 조건에 따라 회례악장 중 제7장의 포구락지기를 오양선지기로 고쳤다. 다시 1449년 10월에 종묘조회공연의 악(樂)을 정했는데 공연악에 포구락을 포함했다. 1657년(효종 8)에 다시 악제가 제정되어 정재를 익히게 되었는데, 내연정재에 포구락이 있었다. 죽간자 2명, 봉화 1명, 봉필 1명과 무원으로 구성된다. 무원의 수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고려사〉 악지에는 12명, 〈악학궤범〉에는 무원 16명과 봉위의 2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기에는 6·8·10·12명으로 달리 보이고 있다.





근현대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 04. 포구락




게시일: 2016. 6. 10.

이 영상은 2015년 12월 10일, 2016년 1월 13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실연한 정재 기록 영상입니다.
2016년 6월, ‘근․현대 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에 수록되었습니다.


04. 포구락(抛毬樂)


포구락은 포구문(抛毬門: 공을 던지는 문)에 공을 던져 넣으면 상을 받고,

넣지 못하면 벌칙을 받게 되는 놀이[樂]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 때부터 연행된 당악정재이다.


○ 출연/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한명옥, 구성 및 지도: 최경자) - - 죽간자: 김영애, 이주희
- 봉 화: 홍명진
- 봉 필: 백진희
- 협 무: 김혜자, 최형선, 김혜영, 이명희, 이지연, 김태은, 이정미, 윤은주, 이지은, 서희정, 박경순, 이윤정
- 의 물: 유재연, 백미진, 정승연, 이주리, 이미영, 권문숙, 조은주, 박지애, 임동연, 이하경, 이혜경, 고은비, 최나리, 권덕연

○ 출연/국립국악원 정악단(예술감독: 정재국, 음악구성 및 지도: 이영)
- 피리: 김철, 김성준
- 대금: 박장원, 김백만
- 해금: 공경진, 김용선
- 가야금: 강효진
- 거문고: 고보석
- 장구: 안성일
- 좌고: 조성욱
ㅍ창사: 이준아, 조일하, 박진희, 장명서, 이윤진

○ 기획 및 제작: 국립국악원(Natioanl Gugak Center)
○ 영상제작: 향&AMS





제1회 창신제 - 궁중무용 (포구락) (13분9초)



게시일: 2016. 3. 29.
2004년 10월1일(금)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4 토요명품공연[08.02.] '포구락'


게시일: 2015. 1. 1.

○ 죽간자/박지애·박경순, 봉화/이정미, 봉필/홍명진, 협무/장민하·백진희·최성희·윤은주·백미진·권문숙
○ 집박/김기동, 피리/김성준·김인기, 대금/이승엽·이오훈, 해금/류은정·전은혜, 장구/안성일, 좌고/조성욱(준단원)

○ 출처/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 국악아카이브 사이트/ http://archive.gugak.go.kr/ArchivePortal

○ 영상촬영/국악방송



화성능행도병 중 봉수당진찬도 華城陵幸圖屛 중 奉壽堂進饌圖

궁중정재 그림 : 선유락, 무고, 수연장
- 학연화대합설무에 쓰이는 연꽃이 큰북 좌우에 보인다.

    







*연화대무(蓮花臺舞)
두 여자아이가 고운 의모(衣帽)에 금방울을 흔들며 추는 춤인데, 처음에는 연꽃에 숨었다 꽃을 꺾고 나타난다. 무원(舞員) 32명이 보허자(步虛子)와 그 밖의 세 곡조의 반주에 따라 춤을 추며, 두 개의 연화관(蓮花冠)을 중심으로 4인의 여기(女妓)가 상대(相對)·상배(相背) 또는 도약(跳躍) 등으로 춤을 추면, 협무(挾舞)는 이에 따라 추고, 왕화(王花)인 연꽃의 정(精)이 나타나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근현대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 05. 연화대무


게시일: 2016. 6. 9.

영상은 2015년 12월 10일, 2016년 1월 13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실연한 정재 기록 영상입니다.
2016년 6월, ‘근․현대 국악기록시리즈 5. 국립국악원 정재Ⅰ’에 수록되었습니다.

05. 연화대(蓮花臺)

연화대는 대(臺: 높고 평평한 곳) 위에 있는 연꽃[蓮花] 속에서 나온 동녀(童女) 두 명이
방울이 달린 합립을 쓰고 협무와 함께 춤을 춘다. 고려 때부터 연행된 당악정재이며, 
조선 이후로는 학무, 처용무와 함께 '학․연화대․처용무 합설'로 구성되기도 한다.

○ 출연/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한명옥, 구성 및 지도: 최경자) - 죽간자: 조은주, 이윤정
- 악 사: 최형선, 홍명진
- 동 기: 유재연, 백미진
- 협 무: 김혜자, 이명희
- 의 물: 김진정, 김영신, 윤은주, 이지은, 김영애, 이주희, 이주리, 정승연, 서희정, 이미영,
권문숙, 박민지, 박경순, 박지애, 임동연, 이하경, 이혜경, 고은비, 최나리, 권덕연

○ 연주: 국립국악원 정악단(예술감독: 정재국, 음악구성 및 지도: 이영)
- 집박: 김기동
- 피리: 홍현우, 윤형욱
- 대금: 김영헌, 이승엽
- 해금: 류은정, 고수영
- 가야금: 고연정
- 거문고: 윤성혜
- 장구: 홍석복
- 좌고: 조성욱
- 창사: 이준아, 조일하, 박진희, 장명서, 이윤진

○ 기획 및 제작: 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 영상제작: 향&AMS



악학궤범 4권(9) / 연화대초입배열도
악학궤범 4권(9) / 연화대초입배열도

연화대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는 당악정재 중의 하나로 조선 말기까지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춤이다. ≪악학궤범≫ 권4에서. 규장각도서.

        




국립국악원 토요명품공연[2016.03.05.] 03. 연화무



게시일: 2016. 3. 15.

03. 연화무

연화무는 ‘연화대무(蓮花臺舞)’에 기원을 두고 조선 후기 순조(純祖) 때 창작된 춤이다.
이 때의 기록인 '진작의궤'에 따르면 ‘6개의 연화병을 앞에 두고, 무동(舞童) 6인이 각기 병의 꽃을 한 가지씩 취하여,
전후좌우로 나뉘어 춤춘다’고 기록되어 있다. 1993년에 발견된 ‘정재 무도홀기’로 재현하였다.

○ 지도/최경자, 무용/장민하·김혜자·최형선·김혜영·이명희·김태은
○ 집박/이정규, 피리/홍현우·민지홍, 대금/박장원·이승엽, 해금/고수영·공경진, 장구/홍석복, 좌고/안성일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국립국악원 토요명품공연[2016.04.16.] 05. 학연화대 처용무합설


게시일: 2016. 4. 19.

05. 학연화대 처용무합설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은 “학무·연화대무·처용무”의 3가지 춤을 한 자리 모아서 구성한 궁중 무용으로,

궁중에서 잡귀(雜鬼)와 사신(邪神)을 쫓아내는 “나례(儺禮)의식”에서 추던 춤이다.
학이 등장하여 학무를 추다가 학이 연꽃의 봉우리를 터뜨리면 연화대무가 시작되고, 후에 처용무가 더해지면서 장관을 이루는 춤이다.

신성함과 장수를 상징하는 학과 연꽃, 그리고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벽사의 처용이 함께 노래하고 춤춘다는

의미로 합설(合設)이라고 부른다.

○ 처용무/최병재·김태훈·박성호·안덕기·박상주, 학무/이지은·이윤정,

협무/김혜자·최형선·백진희·김혜영·이지연·김태은·최성희·박민지
○ 집박/김기동, 피리/민지홍·김인기, 대금/박장원·이결(단소), 해금/김용선·한갑수, 양금/정지영, 장구/박거현, 좌고/안성일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현대 창작무용 :   한국예술종합학교-초무招舞-무용원 개원20년 기념공연

                                             

게시일: 2016. 12. 14.
http://kmc.karts.ac.kr/
https://youtu.be/2vnfNcIPbiU




2016 KBS 국악대상-무용상-초무招舞 -안덕기


 

게시일: 2017.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