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불교회화실] 불교회화, 불교 교리를 표현한 그림

2017. 4. 17. 02:32美學 이야기



  [중앙박물관 불교회화실] 불교회화, 불교 교리를 표현한 그림

 



   불교 교리를 표현한 불교회화는 우리나라 회화(繪畵) 중 오래된 분야이다. 불교회화는 불상처럼 불전에 걸어놓고 예배를 올리기 위해 부처와 보살을 그린 불화(佛畵) 또는 탱화(幀畵)을 말하지만 넓게는 불전의 안밖 벽면을 장식하는 다양한 그림이나 경전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 등을 포함한다. 불화는 부처와 보살을 그린 그림, 수행자의 모습을 그린 나한도(羅漢圖),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신중도(神衆圖)도 다양한 대상을 그렸다.


   불교회화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존재했으며 그 성격상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석탑, 고분 벽화 등으로 유추해 볼 때 우리나라 회화 수준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호류사 벽화를 그린 ‘담징’, 황룡사 금당의 늙은 소나무를 그린 ‘솔거’ 등 그 이름을 떨친 화가들이 역사기록에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도 불화는 많이 그려졌으며 아미타삼존도(국보218호)를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수준높은 고려시대 불화들이 아직까지 여러점 남아 있으며, 대부분 전국 사찰이나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 회화의 한 분야로 불교회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대표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중앙박물관에서는 전국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는 어려운 대형 괘불들을 테마전 형태로 전시하고 있다. 이들 그림들은 일반인들이 감상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불교회화
   불교회화는 불교의 교리와 가르침을 표현한 그림이다. 좁은 의미로는 법당에 걸어놓고 예배하기 위한 부처와 보살 그림을 일컫지만, 경전의 내용을 설명적으로 나타낸 그림과 법당의 내외부를 장식하는 그림도 넓은 의미에서 불화라고 할 수 있다. 부처와 보살, 나한 또는 여러 신을 그린 그림은 예배용 불화에 해당한다. 그들은 혼자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많은 인물이 함께 나타난다.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과 인물을 표현한 영산회상도, 수행자의 모습을 그린 나한도,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을 묘사한 신중도 등이 있다. 그 밖에 부처의 전생 이야기나 일대기를 그린 불화, 경전의 내용을 묘사한 사경변상도는 어려운 불교 교리를 그림으로 나타내 쉽게 전달해 준다. 또한 법당을 엄숙하고 위엄 있는 예배 공간으로 만드는 용이나 연꽃 등의 장식 그림도 오늘날 불화로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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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2층 서화관 불교회화실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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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회화실 내부. 불교행사에 사용되었던 괘불을 비롯하여 다양한 불교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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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괘불(開巖寺 掛佛), 보물 1269호, 의겸 등, 조선 1749년, 삼베에 채색, 개암사 소장,

조선후기에 그려진 대형 괘불로 2014년 겨울에 전시했다.



   화면 중앙에는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보살이 찬란한 화염광배를 등지며 작은 연화대좌를 밟고 있다. 부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 당당함을 표현하였고, 오른손을 길게 내리고 왼손은 가슴쪽으로 들어 엄지와 약지를 모으고 있다. 부처의 옆에는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꽃 봉우리를 든 보현보살이 좌우로 협시하고 있다. 삼존(三尊) 위쪽에는 다보여래와 아미타불,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부처의 얼굴을 보며 비스듬히 서 있다. 상단의 존상(尊像)을 작게 표현하여 앞에 선 삼존을 부각시켰다. 17세기 불교의식집에 수록된 ‘거불(擧佛)’이라는 절차에 나오는 칠존(七尊)의 도상을 표현한 괘불이다. 부처의 광배 옆면에는 법신(法身) 비로자나불과 보신(報身) 노사나불을 작게 그려 중앙의 석가모니불과 함께 삼신불(三身佛)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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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괘불, 보물 제1562호, 1684년, 비단에 색. 2011년에 전시했던 작품이다.


   부석사 괘불은 70여 명의 인물이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은 대교모의 설법회를 그린 것으로, 조선시대 제작된 불화 중에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듣기 위해 영취산에 모여든 청중의 모습은 부석사 괘불의 중심 장면으로 많은 비중을 할애하여 장대하게 재현되었다. 그러나 설법회 너머로 모든 시공간의 부처를 대표하는 세 부처를 또다시 표현하였다. 인형속의 인형처럼 부처안에는 또 다른 부처가 있다. 가장 바깥에 석가모니불이 있다면, 비로자나불은 더 이상 열리지 않는 가장 중심의 부처이다. 무수히 많으면서도사실은 하나인 조선 사람들의 부처는 부석사 괘불을 통해 상징적으로 도해되었다.<출처:중앙박물관>


무위사 극락보전의 벽화
    전라남도 강진에 자리한 무위사의 중심전각인 극락보전은 간결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을 갖춘 조선 전기의 대표적 건축물로 내부에는 많은 벽화가 남아 있다. 극락보전의 주존인 아미타삼존불상의 후불벽에는 아미타삼존벽화가 있다. 1476년에 그려졌으며, 높은 연화대좌에 앉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이, 오른쪽에 지장보살이 서 있는 구도이다. 아미타삼존벽화의 뒷벽에는 백의관음도가 있는데, 옷자락을 날리며 물결 위에 서 있는 백의관음의 발치에는 관음을 우러러보는 비구가 있다. 후불벽의 벽화들 외에도 극락보전의 내부에는 총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보존을 위해 분리되어 벽화보존각으로 옮겨졌다. 이 중 삼존불화는 동쪽벽에 있던 벽화로, 본존불이 좌우에 보살과 비구들을 거느리고 설법하는 모습을 그렸다. 서쪽 벽의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불이 여덟 보살과 함께 죽은 사람을 맞이하러 가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의 벽화들은 전각의 벽화와 함께 남아 있어 더욱 귀중한 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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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사 극락보전 백의관음도(모사도), 1476년, 보물 1314호. 

조선전기에 그리진 벽화이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표현이 삼국시대 벽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에는 앞뒷면에 모두 벽화가 있다. 이 백의관음도는 벽의 뒷면에 그려진 불화로, 현재 전시된 것은 1938년에 그려진 모사도이다. 관음보살은 달처럼 크고 둥근 원광을 등지고 일렁이는 물결 위에 서 있으며, 휘날리는 옷자락과 고요한 표정이 대비를 이룬다. 손을 뻗어 예배하는 노비구의 등에는 관음보살을 바라보는 새가 앉아 있어 흥미롭다. 여백에는 관음보살을 찬탄하며 참배하기를 원하는 내용의 시가 적혀 있다. 벽 앞면에 그려진 아미타삼존도와 함께 조선 전기 불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회화(佛敎繪畵)
    불교회화, 즉 불화는 불교에서 숭배하는 대상이나 불교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부처와 보살의 모습, 읽기 어려운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표현함으로써, 불화는 신앙심을 두텁게 하고 불교 교리를 보다 쉽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불전이나 불교의식의 장소를 아름답고 법식에 맞도록 장식하는 데도 불화가 이용되었다. 불교회화는 예술품으로서의 아름다움도 지니고 있지만, 종교적 목적을 위해 제작되었기에 일반적인 감상용 그림과는 다르다. 따라서 불교에서 설하는 어떤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 등을 아는 것은 불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한편 불화에는 그림이 제작된 배경이나 후원한 사람들, 그린 사람들 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의 사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 주기도 한다. 불교회화는 추상적이고 심오한 불교의 세계를 눈으로 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줄 뿐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삶과 신앙을 담은 귀중한 문화적, 예술적 자산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교회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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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를 베풀어 아귀를 구해냄, 감로도(甘露圖), 1648년, 삼베에 색, 보석사(寶石寺)


   감로란 ‘단 이슬’이란 뜻으로, 부처가 내리는 천상의 음료이다. 화면 아래에는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영혼의 전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위에는 일곱 부처가 감로를 베풀어 이 영혼들을 구제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가운데에는 영혼의 극락천도를 비는 의식 장면과 음식을 차린 단을 그렸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회화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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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가 들어온 4세기 이후 삼국은 많은 절을 지었다. 이에 따라 불교회화도 많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매우 드물다. 5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고구려 무덤벽화에는 부처에게 예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불화가 걸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화엄경 그림>은 신라의 연기법사가 발원한 사경의 표지그림으로, 신라시대 불화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솔거가 황룡사 금당에 그렸다는 늙은 소나무 벽화도 생동감 있고 우아한 모습에 채색을 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불교가 국가 종교였던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귀족을 위한 절이 수도인 개경에만도 수십 개가 있었다고 한다. 절 내부에는 수많은 불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화려한 색채로 귀족적인 기풍을 잘 표현한 수월관음도는 고려시대 불화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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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는 불교가 억압되고 새로운 이념인 유교가 권장되던 시기이다.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무위사 극락전의 <아미타불과 두 보살>이 있다. 이 작품은 부처와 보살을 엄격히 구분해 나타내던 고려 불화와 달리 조선 불화의 구성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회암사(檜巖寺)에서 제작한 <약사불과 두보살>은 채색없이 선묘만으로 그린 것으로 왕실 발원 불화의 우수성을 대표한다. 조선후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불에 타 사라진 절이 새로 건립되었다. 많은 불화가 새로 제작되면서 지역별로 독특한 화풍이 형성되었다.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은 원형의 단정한 구도로 절제된 색채로 극락세계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지장보살과 무리>는 바탕천이 비쳐 보이는 밝고 투명한 색채와 안정된 구도로 이 시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법당에 거는 불화
   절의 법당에 거는 불화는 앞에 놓인 불상을 보조하여 불교의 교리를 설명한다. 대웅전과 대적광전은 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법당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그린 그림을 건다. 영취산은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에 있는 산으로,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강의한 곳이다. 영취산에서의 설법은 부처의 가르침 중 뛰어난 것으로 이상적인 설법 모임을 의미하며 그 광경이 빈번하게 그려졌다. 세 폭의 불화를 거는 경우에는 석가모니불 양쪽으로 설법하는 약사불을 그린 그림과 설법하는 아미타불을 그린 그림을 건다. ‘큰 빛’이라는 의미의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봉안한 법당으로 부처의 세가지 모습을 의미하는, 설법하는 세 부처를 그린 그림을 건다. 중앙에 진라, 곧 빛을 의미하는 법신 비로자나불을 두고 왼쪽에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었음을 상징하는 보신 노사나불, 오른쪽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난 화신 석가모니불의 설법 장면을 그린 불화를 건다. 이러한 불화에는 예배의 대상이 되는 부처를 중심으로 설법회에 참석한 보살과 제자, 사천왕과 천신 등 여러 인물을 표현한다. 부처와 보살이 지닌 특정한 물건, 손갖춤 또는 함께 그려진 인물을 통해 불화의 종류와 불화에 표현된 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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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조선 1742년.

영산회상도에서는 다양한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여러 부처와 보살들을 볼 수 있다.


   인도 영취산에서 열렸던 석가모니불의 설법회(靈山會)를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일상의 미혹에서 벗어나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이 있고, 영산회에 모인 이들은 그 가르침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 7년간의 사찰 재건을 마친 영취사에 봉안하였던 불화로, 가야산에서 초청해온 혜식(慧式)을 비롯하여 7명의 화사가 그렸다. 상단에는 천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는 땅위를 덮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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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 아미타불회도(阿彌陀佛會圖), 1828년, 비단에 색, 중흥사, 


   극락은 고통이 없고 즐거움만이 가득한 땅이란 의미로, 사람들이 가장 태어나고 싶은 정토이다.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 아래에 흰 천의를 걸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서방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그린 불화이다. 아미타불이 위치한 불단의 아래로 흰 천의를 걸친 관음보살과 대세비보살이 자리를 잡았다. 이 그림은 19세기 전반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한 신겸(信謙)을 비롯해 7인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영산회상도, 약사불회도와 함께 세폭의 불화가 동시제 조성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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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하는 약사불(藥師佛會圖), 조선 1828년, 비단에 색, 중흥사.  


   약사불을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없애는 부처로 전쟁이 많았던 삼국시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부처이다. 손에 약병을 들고 있다.

약사불의 세계인 유리광정토(瑠璃光淨土)에서 약사불이 설법하는 장면이다. 약사불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는 부처이다.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으며,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함께 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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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19세기.


   보살 중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관세음보살을 그린 그림이다. 중성적이 표현이 특징이다.

진리의 법문을 듣고자 여러 명의 선지식(善知識)들을 찾아다니던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에게 다라라 법을 든는 모습을 그린 불화이다. 파도치는 물결 위에 솟아오른 편평한 암반으로 관음보살이 거하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을 표현하고, 그 위에 편안히 앉아 법을 설하는 관음보살을 그렸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용왕이 나타나 관음보살에게 예배하고 있으며, 오른쪽 아래에는 선재동자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관음보살의 법문을 듣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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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밑그림, 18~19세기, 종이 위에 선묘,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 그리고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천상의 세계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현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을 그린 불화의 밑그림이다. 수면 위로 올라온 암좌는 『화엄경』에서 관세음보살이 산다고 하는 보타락가산을 상징한다. 그의 좌우편에는 중생의 질병을 치료해준다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淨甁)과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관세음보살 주위에는 우주의 광할한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데,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 그리고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천상의 세계가 아름답게 표현된다. 초본이지만 도상의 이해와 필력을 느끼게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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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조선 1725년, 비단에 색


   관세음보살의 아래에는 파도치는 물결 위로 구도의 길을 찾아 온 선재동자가 합장하고 있다. 뒤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과 대나무를 그렸다. 관세음보살의 화려한 보관에는 아미타불이 작은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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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과 무리(地藏十王圖),조선, 비단에 색.

지장보살은 죽은 명복을 비는 목적으로 조선시대 이후 오늘날 많은 사찰에서 모셔지고 있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세계에 떨어진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의 보살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지장보살이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다. 젊은 승려 모습의 도명존자(道明尊者)와 왕의 모습을 한 무독귀왕(無毒鬼王)이 지장보살의 양쪽 아래에 서 있다. 지옥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과 중생의 구제를 돕는 여섯 보살이 화면 가득 나타난다.<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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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그림(大方廣佛華嚴經), 고려, 푸른 종이에 금선묘.

경전의  내용을 잘 설명하기 위해 경전에 그려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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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그림(大方廣佛華嚴經神衆合部), 고려 1350년, 푸른 종이에 금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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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그림(妙法蓮華經), 고려 1385년, 종이에 금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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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그림(妙法蓮華經), 조선 1442년, 푸른 종이에 금선묘



불법을 지키는 여러신
    여러 신을 의미하는 신중은 부처나 보살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불교의 신들을 말한다. 이들은 석가모니불 이전부터 있었던 인도의 토속신으로, 부처의 자비심에 감화되어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 신들은 본래 부처와 경전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으나, 점차 국가를 수호하거나 재앙을 막고 복을 주는 신이 되었다. 불교가 전파된 지역의 신들이 포함되면서 신의 종류도 늘어났다. 여러 신의 그림에는 대체로 상단에 하늘의 신을, 하단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무장신을 그린다. 인도 힌두고의 고대 신인 브라마와 안드라는 불교에서 범천, 제석천이라는 이름으로 하늘 신의 우두머라가 되었다. 무장신의 으뜸을 차지하는 이는 위태천이다. 그는 머리에 깃털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으며 인도 신화에 등장한는 용맹스러운 신, 스칸다에 기원을 두고 있다.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사천왕과 그 무리도 인도에서 유래한 신이다. 이 밖에 한국의 민간신앙에서 유래한 산신, 부엌신도 여러 신을 그린 불화에 등장한다.<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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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 조선 1855년.

인도 전통종교와 결합된 점을 잘 보여주는 불법을 수호하는 다양한 신들이다.

이들 신들은 중국 남북조시대 도교를 체계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상단에는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의 세계를, 그 아래에는 위태천(韋駄天)이 이끄는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의 세계를 그린 신중도이다. 제석천과 범천은 거의 같은 모습이지만, 제석천은 풍성한 모란꽃 가지를 들고 있는 반면 범천은 손을 맞잡고 있으며 이마에는 제 3의 눈이 그려져 있다. 위태천은 화면 하단의 중심을 차지하고 일렁이는 불꽃을 광배로 삼고 있다. 손에 풀포기와 영지버섯을 든 산신과 오색 목편을 든 조왕신(俎王神)의 도상은 우리나라 토착신앙의 영향을 받아 조선후기 신중도에 등장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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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과 여러신, 제석신중도(帝釋神衆圖), 조선, 비단에 색.

불교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을 그린 불화이다.


   불교에 유입된 신 중 천신의 우두머리인 제석천과 여러 신을 그린 불화이다. 제석천을 중앙에 두고 악기를 연주하는 천상의 인물을 주변에 배치하였다. 구름이 피어오르는 화면 아래에는 용왕을 중심으로 갑옷을 입고 무기를 지닌 무장신이 있다.<출처:중앙박물관>



명부를 그린 불화
    명부란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머물러야 하는 세계이다. 그곳에서 죽은 이는 생전의 행적에 따라 심판과 형벌을 받고 다음 생으로 태어난다. 심판은 죽은 후 49일까지 7일에 한 번씩 그리고 100일, 1년, 3년에 이르기까지 총 10번에 걸쳐 진행된다. 절에 있는 명부전은 세상을 떠난 영혼이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라며 마련한 공간이다. 명부전의 중심에는 지옥에 떨어진 중생까지 구제하겠다고 맹세한 지장보살을 모신다. 지장보살의 양쪽에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시왕의 그림을 건다. 시왕을 그린 그림은 보통 한 폭에 한 왕씩 그려 열 장면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화면을 2단으로 구성하여 상단에는 왕이 심판하는 장면을, 하단에는 전생에 저지른 죄에 따라 처참한 형벌을 받는 모습을 그린다. 이런 명부를 그린 불화에는 저승사자들에게 이끌려 지옥에 도착한 영혼이 왕의 심판을 받고 다음 생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설명적으로 묘사된다.<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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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저승사자, 조선후기, 비단에 색.


   불교에서 말하는 4명의 저승사자 중 태어난 년을 다스리는 연직사자(年直使者)와 태어난 달을 다스리는 월직사자(月直使者).

사람이 죽었을 때 염라대왕을 비롯한 지옥 왕들이 파견하는 사자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해, 월, 일, 시를 각각 다스리는 네 명의 사자가 있다고 한다. 그 중 사람이 태어난 년을 다스리는 사자가 연직사자이다. 담채계열의 밝은 색조로 그려졌는데, 두 뺨과 이마에 가해진 분홍 선염은 먼 길을 달려온 사자의 인상을 전해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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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두번째 왕(오른쪽,초강대왕)과 세번째왕(왼쪽,송제대왕) , 비단에 색, 19세기, 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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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네번째 왕 , 오관대왕, 비단에 색, 19세기, 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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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아홉번째 왕 , 도시대왕, 비단에 색, 19세기, 태고사.


   초강대왕(初江大王)은 지옥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중 두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은지 14일째 되는 날 심판한다. 지옥왕의 심판 장면 아래에는 옥졸이 죽은 영혼을 끓는 물에 집어 넣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송제대왕(宋帝大王)은 지옥을 다스리는 열명의 왕 중 세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은지 21일째 되는 날 심판한다. 지옥 왕의 심판 장면 아래에는 지옥사자가 죽은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오는 모습과 얼음산에 갇히는 형벌을 받는 죄인들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오관대왕(五官大王), 시왕 중 제4대왕인 오관대왕은 죽은 사람의 네번째 칠일(28일)을 맡아보는 왕으로 다섯가지 형벌을 주관한다. 도산(刀山) 지옥에서 중생들이 입으로 지은 죄를 다스리는데, 업(業)의 경중을 다는 저울인 업칭(業秤)에 사람들의 죄업을 달고 그 무게에 따라 벌을 내린다. 그림에는 지상으로부터 칼날이 솟아나는 지옥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도시대왕(都市大王), 시대왕은 지옥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가운데 아홉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은지 1년이 되는 날 심판한다. 지옥 장면에는 죽은 사람의 죄의 무게를 달고 있는 장면과 불길 위의 쇠기둥에 매다는 장면, 정으로 온몸을 찍는 장면 등을 묘사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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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중 감재사자, 감재사자도(監齋使者圖), 조선 19세기


   말고삐를 잡은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사자는 저승사자 중 감재사자이다. 감재사자는 망자의 영혼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사자의 위쪽에는 시왕의 재판을 보좌하는 판관(判官)과 명부전을 수호하는 장군이 묭맹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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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現王圖), 조선 19세기


   현왕도는 사람이 죽어서 3일만에 만나게 되는 염라대왕을 여래화한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와 그의 권속드을 그린 불화이다. 현왕의 양쪽 옆에 시립한 인물들은 전륜성왕(轉輪聖王)과 대륜성왕(大倫聖王)으로 보인다. 염라대왕은 원래 시왕 중 다섯번째 왕이었는데, 현왕 신앙이 인기를 얻으면서 독립된 불화로 그려지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복을 비는 마음, 삼성각(三聖閣)의 불화
    삼성(三聖)은 칠성(七星), 독성(獨聖), 산신(山神)을 가리키는 말로, 불교가 민간의 토착신앙을 흡수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칠성도는 불교와 별자리 신앙이 결합하여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여래 등을 그린 것이다. 독성도는 불교의 성자 중 하나인 독성을 복을 비는 대상으로서 그린 것이고, 산신도는 전통적인 산신 신앙을 수용하여 불화로 그린 것이다. 주로 절 뒤편에 작은 전각을 마련하여 봉안하는데, 한 전각에 모두를 봉안하면 삼성각, 나누어 봉안하면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이라 부른다. 칠성, 독성, 산신은 불교 본래의 부처나 보살보다 위계가 낮아 전각도 작고 불화도 비교적 간소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수명장수, 득남, 재복, 소원성취 등 현실적인 기원을 들어주는 친근한 존재였고, 사찰에게는 일반 대중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삼성각의 불화는 한국 불교의 민간신앙 포용 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기복의 마음이 불교신앙을 통해 표출된 흥미로운 불화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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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도(七星圖), 조선, 1873년.

불교와 도교가 결합되어 토착화된 모습알 잘 보여주는 불화이다.


   불교와 도교가 결합된 칠성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중심에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불교 존격인 치성광여래와 그에 상응하는 도교의 자미대제가 있다. 치성광여래는 상단에서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철성여래를, 자미대제는 하단에서 그에 상응하는 도교의 칠원성군을 거느려 불교와 도교의 세계를 한 화면에 담고 있다. 그림의 가장자리는 복숭아와 석류 등 상서로운 과일 무늬를 그려 꾸몄는데, 수복을 비는 불화라는 점과 어울려 흥미롭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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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도, 1920년


   20세기 초에 활동한 화사 보경보현과 호윤기정이 그린 칠성도이다. 그림의 아래 부분에는 밝은 채색이 잘 남아 있으나, 윗부분은 검게 변색되어 있어, 실제 사찰에서 사용되면서 초.향 등의 연기를 쐰 흔적으로 보인다. 가운데의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상단에는 칠성여래, 하단에는 칠원성군을 그리되 칠원성군의 한 명을 위로 올려 양쪽의 인물수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였다. 오른쪽 위에는 머리가 솟아오른 수노인을 그렸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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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도, 1923년


   화면 가운데에는 금륜을 든 치성광여래가 푸른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좌우에는 각각 붉은 해를 든 일광보살, 흰 달을 든 월광보살이 시립해 있다. 각 보살의 뒤편에는 관에 해와 달이 그려진 인물이 있는데, 이들은 일광.월광보살에 대응되는 동시에 주변의 관을 쓴 인물들과 합하여 칠원성군을 이루고 있다. 칠성여래는 생략되었다. 화면 왼쪽에 그려진 머리가 솟아오른 노인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수노인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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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광여래와 북두칠성, 칠성도(七星圖), 1924년


   칠성도는 밤하늘의 여러 별들을 부처의 모습으로 그린 불화이다. 화면 중앙에는 북극성의 상징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가 금륜(金輪)을 들고 앉아 있고, 좌우에는 각각 붉은 해를 든 일광보살(日光菩薩), 흰 달을 든 월광보살(月光菩薩)이 시립해 있다. 각 보살의 뒤편에는 북두칠성을 의인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 등이 묘사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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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광여래와 북두칠성, 1850년,


   칠성도의 여러 도성을 여섯폭 화면에 배치한 드문 형식의 불화이다. 각 화면 안에 여러 존상의 존명을 적어 놓아 명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화폭의 가장 끝 쪽 두 면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 성중을 14명씩 나누어 배치하였으며, 중간 네면의 폭에는 치성광여래, 칠여래(七如來)와 칠원성군(七元星君) 등을 배치하였다. 은진(恩津) 쌍계사에 봉안되었던 불화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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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존자(獨聖圖)와 산신도, 조선 19~20세기.

칠성과 함께 스스로 도를 깨친 독성존자와 산을 수호하는 산신은 불교가 도교와 결합되어 토착화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존재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들은 이들을 모신 삼성각이나 별도의 불전을 두고 있다. 불전내부에는 칠성도나 산신도, 독성도 등이 모셔져 있다.


   산신도와 함께 조성된 독성도이다. 편안히 앉아 머리를 긁적거리는 듯 자유로운 독성의 자세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자의 자세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한도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한편 독성 주변의 사슴, 거북이 등은 소나무, 산, 물 들 독성도 본래의 배경요소와 결합하여 민화의 삽장생도 구성을 연상시키며 이는 다시 독성 신앙의 현세구복적인 성격과 자연스러운 연결을 이룬다. 칠성, 독성, 산신은 한 전각에 셋 모두를 봉안하기도 하고, 간혹 한 전각에 둘을 봉안하기도 한다. 이 독성도는 산신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같은 전각에 함께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칠성도가 함께 조성되었다면 칠성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독성도와 산신도를 배치하였을 것이나, 현재 칠성도의 존재는 알 수 없다. 우둘투둘한 껍질이 강조된 소나무의 표현과 유사한 구도의 배경이 두 그림으 동질성을 잘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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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도(獨聖圖), 1878년


   독성은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 흔히 부르며 십육나한 중 하나인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로도 여겨진다. 독성은 성격이 까다로우나 신통력이 크고 소원을 신속히 성취해 준다고 믿어져 중요한 기복의 대상이 되었다. 이 독성도는 1878년 제작되었는데 1839년생인 만 서른아홉 살의 동갑내기 부부가 아들 낳기를 기원하며 시주한 것이어서, 독성 신앙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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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도, 1891년


   독성에게 예배하는 의식문에 따르면 독성이 거하는 곳은 남인도의 천제산으로, 독성은 산이 깊고 물이 흐르며 꽃이 피어나고 새가 지저귀는 곳에서 선정을 닦고, 늘어진 소나무 사이를 마음대로 오간다고 한다. 대부분의 독성도가 배경에 산수, 화초, 소나무를 그리는 것은 이러한 의식문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이 그림은 산과 물결의 표현이 도식적이고, 소나무에는 인화문이 짙으나 독성도의 배경 요소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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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도, 19~20세기


   비교적 작은 화면이지만 독성신앙의 내용을 짜임새 있게 표현하였다. 화면 왼쪽의 산악과 폭포는 독성이 있는 천태산의 모습이며, 화면 오른쪽의 작은 집은 독성이 머무는 한 칸의 수행처를 나타낸다. 길고 흰 눈썹, 유유자적한 자세 또한 독성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독성은 예를 갖추어 공양하면 반드시 신통을 내려 감응한다고 믿어졌는데, 화면 아래의 작은 인물과 동자는 그러한 믿음을 반영하듯 허리를 굽혀 공손한 자세로 공양물을 바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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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도, 20세기


   이 독성도는 충청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인 화사 금호당 약효가 보응.문성.동화와 함께 그렸다.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물과 솟아오르는 물결, 소나무, 꽃과 새 등 배경을 비교적 단순히 처리한 반면, 독성은 눈처럼 흰 눈썹과 수염, 어깨를 드러내며 흘러내린 옷자락, 뾰족하고 긴 손톱과 발톱 등 세간을 초월한 존재로서의 면모를 부각시켜 표현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금호당 약효의 다른 독성도에서도 나타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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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도(山神圖), 19~20세기


   산신도는 토착적인 산신 신앙이 불교와 결합하면서 사찰 내에 모셔지게 되었다. 불교에서도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神衆)의 하나로 주산신(主山神)이 있으나, 대부분의 산신도는 민간신앙적인 산신의 모습을 더욱 강하게 반영한다. 이 산신도 역시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신령한 분위기의 노인이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전형적인 민간 신앙 속 산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신곁에는 동자가 시중을 들고 있으며, 호랑이는 민화풍으로 그려졌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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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도, 1920년


   호랑이와 동자들을 거느린 산신의 모습이다. 산신은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들어올려 족두리처럼 생긴 치포관을 썼다. 산신의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하게 표현되었으나, 아래에는 호랑이가 산신의 허리를 둥글게 감은 채 복종하듯 얌전히 앉아 있어 산신의 초월적 힘을 암시한다. 산신을 모시는 동자 역시 호랑이 꼬리를 가지고 노는 등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산신에게 속한 특별한 존재임을 드러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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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도, 1905년


   산 속의 소나무와 바위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산신을 그렸다. 배경을 단순화하는 대신 산신을 크게 그려 부각시켰다. 산신은 눈꼬리를 치켜올리고 미간에 힘을 주어 눈을 부릅떴으며, 성성한 수염 속에 감추어진 입은 굳게 다물고 있어 엄숙하고 두려운 인상을 준다. 반면 산신의 무릎 앞에 작게 그려진 동자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듯 천진하게 웃으며 제각기 공양물인 주전자를 들거나 영지가 든 항아리를 메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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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도, 1885년


   1885년에 조성된 기록이 있는 산신도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어두운 절벽과 멀리서 굽이치며 떨어지는 물은 이곳이 심산유곡임을 나타낸다. 신선은 눈을 번뜩이는 호랑이를 옆구리에 끼고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부채를 들고 앉아 있는데, 이러한 유형의 산신 도상은 부채가 영지로 바뀌는 등 약간씩의 변형을 보이며 다른 산신도에서도 여러 번 반복되어 불화 밑그림의 반복적 사용과 전파를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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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과 동녀상,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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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羅漢), 조선, 나한은 부처의 제자로서 수행하여 해탈을 얻은 존재이다.

이 소형 나한상은 나한전.영산전 등에 봉안했던 십육나한상 또는 오백나한상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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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대사(華潭大師) 진영, 조선, 비단에 색.


   사찰에는 뛰어난 고승의 초상화를 모시는 불전인 조사당(祖師堂) 을 두고 있다. 이는 초상화를 모시는 사당인 영당(影堂)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초상화와는 달리 화려한 색감을 하고 있다.

화담대사(1786~1848)는 조선후기 불교의 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하는 뛰어난 선승이다. 18세에 양주 화양사에 출가하였고, <화엄경>을 어려 번 강설하였다. 이 그림에서도 <화엄경> 등의 경전과 안경을 함께 그려 대사의 높은 학식을 암시하였다.<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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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 진영, 조선, 종이에 색. 조선중기 김명국이 그린 달마대사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달마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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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당 관주(無鏡堂 關周) 진영(眞影), 조선 19세기


  무경당 관주는 19세기 중엽 경기도 양주와 충청도에서 활약한 불화승이다. 19세기 불화는 음영법 등 서양화법의 요소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 많은데 관주 또한 전통적인 불화에 음영법을 적용하였다. 승려의 초상화인 진영은 학문과 덕이 높은 승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불화를 그리는 화승의 진영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유존 예가 적은 불화승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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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대사(華岳堂) 진영, 1838년


   화악당이라는 당호를 가진 승려로는 화악 문신(文身, 1629~1707)과 화악 지탁(知濯, 1750~1839) 두분이 있는데, 이 진영의 주인공은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 화악 지탁은 청허 휴정(1520~1604)에서 편양 언기(1581~1644)로 이어지는 조선후기 불교계의 가장 유력한 문파에 속한 승려였다. 화악 지탁 문중의 승려로는 화담 경화가 이름이 높았고, 인원 체정과 무경 관주 등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의식과 불화
불전(佛殿)은 부처의 세계를 재현한 공간이자 불교의식을 행하는 장소다. 따라서 불전 안을 장엄하는 불화는 예배의 대상으로서 뿐 아니라 불교의식의 주체로서 의식의 거행을 위해 봉안된다. 조선시대 불교의식은 전각 안에 삼단(三壇)을 설치하여 각 단에 예배하고 공양(供養)을 올리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불화도 어느 단에 봉안하는가에 따라 상단, 중단, 하단 불화로 명명하면서, 각 단에 맞는 불화를 조성.봉안하였다. 상단은 불단(佛壇)으로 영산회상도 또는 아미타불도, 비로자나불도 등을 봉안하였으며, 중단은 의식의 실질적인 주존을 위한 단(壇)으로 삼장보살도와 지장보살도, 신중도 등을 봉안하였다. 맨 아래 하단은 영혼의 천도(遷都)를 위한 영단으로, 수륙재용 불화인 감로도를 봉안하였다. 야외의식에서는 괘불과 함께 파금강도(八金剛圖)와 사보살도(四菩薩圖), 사직사자도(四直使者圖) 등을 번(幡)의 형태로 걸어 도량(道場)을 장엄하게 보호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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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념미타도량참법 (禮念彌陀道場懺法), 보물949호, 조선 14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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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식집(예념미타도량참법, 禮念彌陀道場懺法), 보물 949호, 1474년,

불교의식집은 승려와 신도들이 의식을 진행할 때 사용하는 지침서이다.


   아미타불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악업을 참회하는 내용을 수록한 불교 의식문이다. 책 끝에는 1474년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이 쓴 글이 실려 있는데, 판각에 참여한 당시의 유명한 승려와 왕실 종친, 간해에 참여한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서 왕실에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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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妙法蓮華經), 조선 1434년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천태종 뿐 아니라 한국불교의 근본경전으로 불교 강원의 중요한 교재이다. 1434년(세종16) 세번째로 개주한 동활자로 찍은 ‘초주 갑인자본’이다. 이 갑인자본은 세종의 즉위 초기 서적간행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경전으로 글씨가 명정하고 부드럽고 유려하다. 발문에 의하면 일본종이를 바탕종이로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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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妙法蓮華經), 보물950호, 조선 1488년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천태종 뿐 아니라 한국불교의 근본경전으로 불교 강원의 중요한 교재이다. 1470년에 선대 왕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판각하였던 것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1488년 정현왕후(1462~1530)가 발원하여 다시 간행하였다. 조선초기 왕실의 불교신앙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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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 조선,


『능엄경』은 한국불교 근본경전 중의 하나로 『금강경(金剛經)』 등고 함께 불교 전문강원의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채택되어 학습되었던 경전이다. 출가자의 수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였으며, 선정(禪定)을 강조하여 선가(禪家)에서 중요시하였다. 소화엄경이라 불리면서 널리 독송되었던 이 경전은 한국불교의 신행(信行)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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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川老金剛經), 보물 1127호, 고려 1387년


  『금강경』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간행된 불교 근본경전 중의 하나로 『능엄경』과 함께 불교 전문강원의 사교과 과목으로 채택되어 학습되었다. 『금강경』의 많은 주석서 중, 1161년 중국 송나라 천노(川老)가 해설하고 송(訟)을 붙인 본(本)이다.  이색(李穡)의 발문에 의하면 1387년 우왕(禑王, 재위 1374~1388)의 왕비가 우왕과 원자의 장수와 건강을 위해 간행하였다고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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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보물 1126년, 고려 1387년


   불교의 대표적인 보살인 보현보살의 행원(行願)을 기록한 책으로, 40권본 『화엄경』안에 수록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보현보살의 행원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 품은 『화엄경』에서 별도로 간행하였다. 이색이 지은 발문에 의하면 1387년 우왕의 왕비가 우왕과 원자의 안녕과 건강을 빌기 위해 간행하였다고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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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경(涅槃經), 고려 1241년


   석가모니불의 열반을 종교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편찬한 경전으로, 대승불교의 중요한 사상을 담고 있다. 『열반경』은 중국 담무참(曇無讖, 385~433)이 번역한 40권본과 혜엄(慧嚴, 363~443) 등이 번역한 36권본이 있는데, 이 경전은 40권본 중 권29이다. 절첩본의 형태로 고려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간행된 유일한 본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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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외여래도(離怖畏如來圖, 왼쪽), 보승여래도(寶勝如來圖, 오른쪽), 조선후기, 종이에 색


   일곱 부처를 각 한폭에 그린 의식용 불화 가운데 하나이다. 두 손은 합장한 채 좌측을 바라보는 이포외여래이다. 이포외여래는 모든 영혼이 놀라거나 두려운 감정을 버리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도록 돕는다. 두 손은 합장한 채 우측을 바라보는 보승여래이다. 그는 모든 영혼이 지옥.아귀.축생의 세가지 나쁜 길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다.<출처:중앙박물관>


불교 의식구(儀式具)
    불교 의식이란 부처와 보살을 예배하고 죄업을 참회하며, 소망을 비는 등 불교의 교리에 따라 행하는 각종 의식을 말한다. 그 절차를 상세히 밝힌 것이 불교 의식집이며, 의식을 실제로 행하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물품이 불교 의식구이다. 불교 의식에서 부처와 보살에게 각종 향, 음식, 춤 등을 바쳐 예배하기 위한 도구로서 향완(香椀), 법고(法鼓), 바라 등이 있다. 의식의 장소를 장엄하게 꾸미기 위해서는 각종 깃발과 번(幡) 등을 사용하며, 부처.보살.금강.십이지신을 그린 작은 불화들을 걸기도 한다. 영산재(靈山齋)와 같이 규모가 큰 불교 의식에서는 야외에 불단을 마련하여 괘불을 걸고 다양한 의식구를 사용하여 장엄하게 의식을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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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받침이 있는 북, 조선후기, 나무, 불교 악기 중 하나인 북이다.


   소리를 통해 불법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법고라고 불린다. 늠름한 사자 모양의 북 받침과 한조로 만들어졌다. 불교 의식과 예불에 사용된다.<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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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조선후기, 바라는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악기 중 하나이다.


   중앙의 구멍에 끈을 맨 후 서로 맞부딪히면 큰 울림이 있는 소리가 난다. 불교 의식 무용의 하나인 바라춤을 출 때도 사용된다.<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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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패(圓牌), 조선 1701년,


   축원물을 ‘세자저하수천추’라 적은 이 원패는 1701년 세자를 위해 만든 것이다. 축원문판 주위에는 모란무늬를 정교하게 투각하였다. 대좌와 상단에는 용을 조각하였는데, 모두 측면을 향하고 있다. 이는 중앙에 놓이는 왕의 원패를 바라보도록 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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