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팔자 좋은 곽분양.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2017. 4. 16. 20:23美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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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정조 때 활약한 궁중화원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곽분양행락도>. 조선시대 궁중회화의진수를 보여주는 명품이다.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143.9x123.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팔자 좋은 곽분양

Gwak Bunyang; A Man of Fortune


글。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세상에서 가장 팔자 좋은 사람은 누구일까?

당나라 때 분양왕 곽자의(郭子儀, 687~781)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살아 생전 자손과 부귀, 공명등 오복五福을 다 구비하여 중국에서 가장 다복한사 람으로 이름이 드높았다.

“곽분양팔자”, “팔자 좋은 백자천손百子千孫 곽분양” 이란 말도 그를 지칭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그의 생애를 소설화한『곽분양전』이란 국문소설도 발간되었다. 이 소설은 그의 명성을 높이는데 한몫을 하였다.『 곽분양전』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곽자의는 명문의 후손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러나 일찍 부모를 여의는 바람에 방랑과 고난을 겪게 된다. 어느 날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 보검寶劒과 신서神書 3권을 얻는다. 그는 이것으로 오랑캐를 물리치고 장원급제하면서 높은 지위에 오른다. 하지만 안녹산安祿山등의 모함으로 낙향하여 산천을 유람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절에서 만난 요괴로부터 다시 강태공이 사용했던 은 갑옷과 금 투구를 얻어, 이것으로 안사의 난을 평정하고 높은 공을 세운다. 그 보상으로 그는 분양왕에 봉해져서 영화를 누리다가 일생을 마친다.


실제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났을 때, 조정에서 그를 영무군 태수太守로 임명하여 난을 진압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가 팔자 좋은 사람으로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이유는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8명의 아들과 7명의 사위를 두고 그 아들들과 사위들이 모두 높은 관직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는 궁궐 같은 집에서 자식들과 손자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는데, 이 잔치를 모사한 그림을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라한다.


곽분양행락도는 병풍으로 제작되어 궁중행사용으로 쓰였다. 임금의 즉위나 세자의 책봉과 혼인 등 경사스러운 잔치인 가례嘉禮 때 이 병풍을 치고 행사를 치렀다.

궁중용으로 제작된 곽분양행락도 병풍 중에서는 정조 때 활약한 화원 김득신이 그린 작품이 유명하다. 지금 전하는 곽분양행락도 중 비교적 작품이 뛰어나다고 하면 거의 김득신의 낙관이 있다.

물론 그 낙관은 대부분 후에 쓰고 찍은 것이다. 그만큼 그는 곽분양행락도에 뛰어난 화가로 명성이 높았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곽분행락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 쓰여 있는 김득신의 호인 ‘긍재兢齋’ 라는 낙관도 그 진위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중후한 배경에 짜임새 있는 인물 구성, 품위있는 채색, 그리고 유려한 필선의 묘사를 보건대, 김득신의 진작일 가능성이 높고 아울러 18세기 궁중회화의 명품으로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곽분양행락도> 중 곽자의 모습


작품 가운데 있는 평상에 곽자의가 앉아 있다. 그의 품에서 노는 어린 손자를 비롯하여 아들, 사위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앞에는 두 사람이 쟁반에 금관과 작을 받쳐 들고 곽자의에게 바친다.

오른쪽 사랑채에는 부인이 앉아서 흥겨운 잔치를 함께 즐기고 있다. 이 장면은 마치 목왕이 서왕모 옆에 앉아 생일잔치를 즐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마 서왕모처럼 곽자의의 권위를 높이려는 배려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잔치를 위해 베푼 춤이다.

작은 융단 위에서 무희가 긴 소매와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발돋움하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호선무胡旋舞를 연상케 한다. 호선무는 좌우로 빙빙 도는 춤인데, 빠르기가 바람 같다고 했다. 소그드인이 살았던 사마르칸트 지역의 무용인 호선무는 돈황 막고굴이나 유림굴의 당나라 벽화에서 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호선녀 胡旋女>에서“호선의 여인, 호선의 여인, 마음은 현을 따르고, 손은 북을 따른다.”라고 읊었다.
호선무를 추는 무희를 중심으로 양쪽에서 약기를 연주하는 여인들을 보면, 세련된 필치로 휘날리는 동감과 화려한 장식성을 섬세하게 나타내었다.


작은 융단 위에서 무희가 긴소매와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발돋음하며 춤을 추고 있다. 우리나라 회화 가운데 호선무가 그려진 작품 가운데 가장 시대가 이른 것이다. <곽분양행락도> 중 호선무 장면


榆林窟 第25窟 观无量寿经变 中唐


서역인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지역에 시작된 소그드인의 호선무가 당나라에서 유행하였다.

유림굴(楡林窟) 제25굴 남벽 <관무량수경변상도> 부분


이 춤을 호선무로 보는 이유는 그의 경력과 연관이 깊다. 그는 황태자 광평왕廣平王:뒤의 代宗밑에서 부원수副元帥가 되어 관군의 총지휘를 맡고, 위구르Uigur:回紇의 원군을 얻어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을 수복한다.

그 공으로 그는 왕으로부터 분양군에 봉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환관宦官 어조은魚朝恩등의 배척으로 한때 실각한다. 지금의 티베트인 토번吐蕃이 복고회은僕固懷恩등과 연합하여 장안을 치려고 할 때, 그가 다시 기용되어 위구르를 회유하고 토번을 무찔러 당나라를 구한다.

이처럼 그가 서역과 밀접한 교류를 한 점으로 보아,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춤이 호선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호선무와 유사한 중국 무용은 요지연도, 구운몽도처럼 주로 중국을 무대로 한 조선시대의 그림에 등장한다.


그림의 어느 한 구석을 보아도 완성도가 높은 조형과 짜임새 있는 구성이 돋보인다. 건물은 입체감 있는 표현
으로 웅장함을 나타내고, 괴석은 중후하면서 견고하며, 귀한 그릇들과 기물은 입체적이면서 장식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가운데 춤의 반주로 여악사들이 연주하는 모습은 일품이다. 이러 저리 휘날리는 옷자락과 장신구에서는 조선후기 궁중회화 특유의 “경쾌한 동감” 을 맛볼 수 있다.

횡적, 당비파, 박, 종적, 소라, 생황,교방고 등의 악기 편성은 중국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식의 당나라의 무용과 음악을 표현한 것 일게다. 이 작품은 좌우의 일부가 없어진 점이 아쉬울 뿐, 조선시대 궁중회화의 절정에 다름 아니다.



백동자도와 결합된 민화 곽분양행락도. 이것은 민화에서 볼 수 있는 과감한 도상의 조합이다.

<곽분양행락도> 중 부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궁중 <곽분양행락도>에 비한다면, 민화로 그려진 <곽분양행락도>국립민속박물관 소장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우선 제재가 순수한 곽분양행락도가 아니라 비슷한 기능의 백동자를 결합시켰다.

민화에서는 백동자의 표현이 궁중회화에 비하여 급증했다. 민간에서 곽자의를 “백자천손” 의 상징으로 이해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백동자도는 곽자의보다는 백 명의 아들이 있었다는 주周나라 문왕과 관련이 깊은데, 여기서는 곽분양행락도에 비슷한 염원을 가진 백동자도를 조합하여 행복과 다산의 기능을 배가시켰다.

또한 민화에서는 중국 이야기를 한국식으로 변용시켰다.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 등장하고, 곽자의 뒤에는 조선시대 특유의 풍속인 병풍이 둘러져 있다. 춤도 호선무가 아니라 조선의 무용인 무고舞鼓이다.


또한 민화의 표현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대상을 클로즈업하여 장대한 스케일의 공간이 축소되고 잔치도 간소화되었다. 더불어 늘씬한 여인들의 몸매가 다소 땅딸해지고 춤사위도 유려함보다 과장된 동작으로 묘사하였다. 민화의 캐릭터는 김득신의 그림에 비하여 따뜻하고 부드럽다. 덕분에 민화에서는 궁중회화와 달리 소박함과 친근함이 돋보인다.


같은 제재라 하더라도 궁중 곽분양행락도와 민화곽분양행락도는 이처럼 다르다. 궁중회화는 화려무비하다면, 민화는 소박하다. 궁중회화는 이상적이라면, 민화는 현실적이다. 더욱이 궁중회화는 도상의 순수함을 견지했다면, 민화에서는 백동자도와 적절하게 결합하여 자손에 대한 염원을 강화하였다. 궁중의 소망과 서민의 소망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난다.




국악누리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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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분양행락도 郭汾陽行樂圖 국립고궁박물관. 4폭 부분도


이 《곽분양행락도》는 8폭 병풍으로 진한 색채로 그려져 있다. 제1폭과 제2폭은 정자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을 표현하였다. 제3폭, 제4폭, 제5폭은 곽자의가 차일 아래에 앉아 무희ㆍ기녀들의 춤과 연주를 감상하고 있고, 그 주위에 아들ㆍ사위ㆍ신하들이 기립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제6폭, 제7폭, 제8폭은 곽자의 집안에서 여성들과 아이들이 노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 병풍은 2014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되었던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구입하여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한 것이다.



궁중화원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곽분양행락도>.  좌 부분도


궁중화원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곽분양행락도>. 우 부분도


국립문화재 연구소 해외문화재. 부분도


국립문화재 연구소 해외문화재. 부분도


楡林窟 舞踊菩薩・西夏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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