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도자공예-분청사기실] 분청사기, 한국적인 미(美)를 잘 보여주는 도자기 外

2017. 4. 30. 15:30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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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도자공예-분청사기실] 분청사기, 한국적인 미(美)를 잘 보여주는 도자기


   분청사기는 고려 상감청자를 계승한 도자기제작기법으로 ‘백토로 분장한 회청색의 사기’ 라는 뜻으로 20세기에 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형상 고려청자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쇠퇴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투박하면서도 서민적인 면모를 보이는 등 한국적인 미를 잘 담아내고 있다. 분청사기는 고려말 청자의 주요 생산지였던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의 가마들이 왜구의 침략으로 피폐화되면서 장인들이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분청사기는 15~16세기에 걸쳐 약 150년의 기간 동안 만들어졌으며, 고려청자.조선백자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 청자가 주로 귀족층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소량생산을 했던 것에 비해서 분청사기는 고려말 전국적으로 확산된 가마터 덕분에 대량생산되었다.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양질의 것과 일반적인 것과는 수준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났던 것으로 보인다. 분청사기의 전성기는 15세기로 왕실에서부터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약 150여년간 생산되었던 분청사기는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광주지역에 관요가 설치되고 국가에서 백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중엽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순백의 백자를 선호했던 조류와 구리를 가공해서 만든 유기제품에 밀려서 역사의 무대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분청사기(粉靑沙器, BUncheong Ware)
   ‘분청사기’는 회청색 그릇에 흰 흙을 입혀 다양하게 장식한 도자기로 그 명칭은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인 고유섭(1905~1944년)‘분장회청사가(粉粧灰靑沙器)’ 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되었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의 상감 청자에서 비롯되어 조선 전기인 15~16세기에 걸쳐 약 150년간 만들어졌으며, 고려청자와는 달리 생동감과 자유 분방한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에서 분청사기는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졌지만 어느 도자기보다도 한국적인 미감을 담고 있다. 분청사기는 세종 연간에 해당하는 1418~1450년에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1450~1470년에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 시기에는 도장으로 무늬를 찍고 흰 흙으로 메우는 수법의 세련된 인화 분청사기가 만들어지는데, 무늬가 촘촘하게 찍혀 그릇 전체가 하얗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무늬를 새기거나 파내는 박지조화(剝地彫花) 분청사기도 활발히 제작되었다. 그러나 분청사기는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1467~1468년 경기도 광주에 관요(官窯)가 설치된 이후 국가에서 필요한 그릇을 백자로 제작하면서 지방 분청사기 가마들은 점차 지방 관청과 일반 백성을 위한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분청사기의 질은 떨어진 반면 백자의 생산량이 늘어났고,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전반에 유행한 귀얄 분청사기와 분장 분청사기를 끝으로 분청사기는 16세기 중엽에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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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무늬 자라병(粉靑沙器縛地牡丹文甁, 조선 15~16세기,국보260호),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실생활에 물병이나 술병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납작한 몸체에 주둥이가 달린 형태로 자라를 닮아 ‘자라병’이라 불린다. 무늬가 대범하면서도 백토로 남겨진 부분과 세부를 표현한 기법에 흐트러짐이 없다. 박지된 부분에는 검게 칠하여 시각 효과를 높였다.

납작한 몸체에 주둥이가 달린 형태로 자라를 닮아 ‘자라병’이라 불린다. 여행용 물병이나 술병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늬가 대범하면서도 백토로 남겨진 부분과 세부를 표현한 기법에 흐트러짐이 없다. 박지된 부분에는 검게 칠하여 대배(對比) 효과를 높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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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무늬 편병(粉靑沙器彫花魚文扁甁, 조선 15~16세기, 국보178호), 


   물고기 무늬가 크게 새겨진 이 작품은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작품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도자기를 대표한 여러 작품 중의 하나이다.

백토를 두껍게 입히고 조화 기법으로 무늬를 새겼다. 앞.뒷면과 옆면에 서로 다른 무늬와 위로 향한 두마리의 물고기를 생동감이 넘치는 선으로 나타냈다. 양 옆면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위와 중간에 4엽 모란무늬를 새기고, 배경을 긁어냈으며 아랫부분에는 파초를 새겨 넣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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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용무늬 항아리(粉靑沙器象嵌印花雲龍文壺, 조선 15세기, 국보259호). 


   투박하면서도 서민적인 모습을 잘 보이고 있는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분청사기이다.

당당한 양감과 풍만함이 돋보이는 이 항아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새롭게 만들어졌다. 인화기법과 상감 기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분청사기의 활기차고 건강한 미감이 잘 드러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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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무늬 매병(粉靑沙器象嵌魚文梅甁, 조선 15세기, 보물347호), 


   고려시대 유행했던 청자 매병의 형태를 계승하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만들어진 매병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기형은 고려 말 상감 청자에 보다 가깝지만 무늬를 표현하는데 인화 기법의 비중이 높아졌고 탁했던 유약이 향상되어 비교적 밝은 회청색으로 바뀐 점이 두드러진다. <출처:중앙박물관>



분청사기 가마터
    분청사기의 종류는 그릇을 흰 흙으로 어떻게 꾸미는가에 따라 상감(象嵌).인화(印花).조화(彫花).박지(剝地).철화(鐵畵).귀얄.분장(粉粧)의 7가지로 나누어지며, 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분청사기는 지역에 따라 특색을 보이는데 경상도에서는 인화 분청사기, 전라도에서는 박지조화 분청사기, 충청도에서는 철화 분청사기가 유행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 충남 공주 학봉리. 철화 분청사기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5세기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철화 분청사기 등 여러 종류의 분청사기와 백자를 제작하였다. ‘내자(內資)’, ‘예빈(禮賓)’이 새겨진 분청사기 조각이 출토된다.
  • 전북 고창 용산리 가마.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운영되었으며 박지.조화.귀얄.분장.인화 분청사기가 출토되었다. 일반 반상기와 더불어 병, 큰 사발, 항아리 등 대형 그릇을 대량으로 생산하였고 조화나 박지 기법이 주로 장식되었다.
  • 광주 충효동.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분청사기 가마터로 15~16세기에 운영되었다. 상감.인화.귀얄.조화.박지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 분청사기가 출토되었다.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이행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퇴적층이 발견되어 사적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 전남 고흥. 서남 해안의 대표적인 가마터로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운영되었다. 전라도 지역 특유의 조화, 박지는 물론 철화 분청사기도 생산되었으며, 25기에 달하는 대규모의 분청사기 가마터가 모여 있다.
  • 경남 밀양 용전리 가마. 15세기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운영된 가마로 질이 좋은 인화 분청사기, 귀얄 분청사기와 연질 백자 조각이 출토되었다. ‘밀양 장흥고(密陽長興庫)’, ‘장흥고(長興庫)’가 새겨진 분청사기 조각이 수집된다.
  • 경남 합천 외사리 가마. 15세기에 운영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된 합천 삼가현 중품 자기소에 해당한다. 무늬가 꼼꼼한 인화 분청사기와 귀얄 분청사기, 백자를 제작하였다. ‘삼가(三加)’가 새겨진 분청사기 조각이 출토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삼가인수부(三加仁壽府)’명 분청사기가 이곳에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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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리 분청사기(조선 15~16세기, 충남 공주시 학봉리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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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동 분청사기(조선 15~16세기, 광주 충효동 금곡 발견)




분청사기에 새겨진 글자(명문銘文)


분청사기에 새겨진 글자의 종류에는 납품할 관청의 이름, 만든 사람과 지방, 그리고 제작연도, 등급표시 등이 있다. 각 지방 가마에서는 중앙 관청에서 사용할 그릇을 만들어 바쳤는데, 그릇들이 도난 당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조선 태종17년(1417)부터 그릇에 관청 이름을 새기도록 하였다. 만든 사람의 이름을 새기기 시작한 것은 세종3년(1421)부터인데, 그릇을 책임지고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분청사기에 보이는 관청의 종류

  • 공안부(恭安府),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 된 정종을 위해 태종이 설치한 관청. 1400년 설치되고 1420년에 폐지되었다.
  • 사선서(司膳署), 고려말부터 조선초까지 임금의 식사와 궁궐 내의 음식마련을 담당한 관청.
  • 장흥고(長興庫), 궁궐 내의 여러 관청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마련하고 관리한 관청. 관청 이름이 새겨진 분청사기 조각 가운데 가장 많이 보이며, 경상도 일대 가마터에서 주로 발견된다.
  • 경승부(敬承府), 1420년부터 1418년까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관청.
  • 인수부(仁壽府), 1418년 무렵부터 1556년 무렵까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관청. 경상도 지방 이름과 함께 새겨진 것이 많다.
  • 덕녕부(德寧府), 단종에 관한 일을 담당하기 위해 1455년에 세워진 관청. 단종이 죽은 1457년에 폐지되었다.
  • 내섬시(內贍寺), 궁궐에 바치는 토산물, 2품 이상에게 주는 술과 안주, 왜인에게 주는 음식과 직조를 담당한 관청. 내섬이 새겨진 분청사기 조각은 전라도 지방 가마터에서 많이 발견된다.
  • 예빈시(禮賓寺), 외국 사절을 대접하는 일 등을 담당한 관청. 이 관청 이름이 새겨진 분청사기 조각이 충남 공주 학봉리와 연기 금사리 가마터에서 발견된다.
  • 내자시(內資寺), 궁중에서 쓰는 쌀, 국수, 간장, 직조 등을 담당한 관청. 이 관청 이름이 새겨진 분청사기 조각이 충남 공주 학봉리 일대 가마터에서 발견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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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장흥고’가 새겨진 대접(粉靑沙器印花文永川長興庫銘大楪, 조선 1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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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라장흥’이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義羅長興銘楪匙,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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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장흥고’가 새겨진 잔(粉靑沙器印花文星州長興庫銘馬上杯, 조선 15세기, 경기 파주 봉일리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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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장흥고’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軍威長興庫銘楪匙,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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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장흥고’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密陽長興庫銘楪匙,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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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인수부’가 새겨진 대접(粉靑沙器印花文彦陽仁壽府銘大楪,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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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고’가 새겨진 대접(粉靑沙器印花文長興庫銘大楪, 조선 15세기)


   장흥고는 궁궐 내에서 사용되는 물품의 보급을 담당하는 관사(官司)로 옷감과 종이 등을 관리하였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존속했으나, 그 소멸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관청의 이름이 새겨진 분청사기에는 생산지의 이름이 함께 새겨지기도 하는데, 그릇의 품질에 대한 책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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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금산장흥고납’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金山長興庫納銘楪匙, 조선 15세기), 

2.’함안장흥고’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咸安長興庫銘楪匙, 조선 15세기), 

3.’청도장흥’이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淸道長興銘楪匙, 조선 15세기),

4.’경산장흥고’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慶山長興庫銘楪匙, 조선 15세기), 

5.’경주장흥’이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慶州長興銘楪匙, 조선 15세기), 

6.’양산장흥고’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梁山威長興庫銘楪匙,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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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인수부’가 새겨진 대접(粉靑沙器印花文蔚山仁受府銘大楪,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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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인수부’가 새겨진 대접(粉靑沙器印花文靈山仁受府銘大楪,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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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인수부’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三加仁受府銘楪匙,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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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인수부’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鎭海仁受府銘楪匙, 조선 15세기)


   조선 초기에는 상납된 도자기가 개인적 용도로 쓰이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태종 17년(1417) 법령으로 사용 관청의 이름을 새기도록 하였다. 인수부는 정종2년(1400) 세자부(世子府)로 설치된 후 경승부(敬承府), 순승부(順乘府)로 바뀌었다가, 세종1년(1418) 다시 인수부로 변경되어 명종11년(1556)가지 존속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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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인수’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善山仁受銘楪匙,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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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빈’이 새겨진 발(粉靑沙器印花禮賓銘鉢,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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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녕부’가 새겨진 대접(粉靑沙器印花文德寧府銘大楪, 조선 15세기)


   ‘덕녕부(德寧府)’는 단종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1455년부터 1457년까지 운영되었다. 분청사기 중에는 내섬(內贍), 내자(內資), 예빈(禮賓), 공안(恭安), 사선(司膳) 등 사용관청의 이름을 새긴 것이 있다. 이것은 그릇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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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자’가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內資銘楪匙,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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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이 새겨진 대접(粉靑沙器印花文司膳銘大楪,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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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부’가 새겨진 대접(粉靑沙器印花文恭安府銘大楪, 조선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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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섬’이 새겨진 접시(粉靑沙器印花文內贍銘楪匙, 조선 15세기)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청자실] 고려청자의 독창성, 상감청자


   우리나라 도자기 제작기술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 뛰어난 것으로 고려 상감청자를 꼽을 수 있다. 상감청자는 바탕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을 메워 넣는 방법으로 나전칠기나 금속공예의 입사기법에서 이전부터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이를 고려시대에 도자기에 적용한 것이다. 제작기법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감무늬를 만든 후 고온의 가마에 구워야만 했기 때문에 재질의 차이 등으로 실제로는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상감기법은 12세기에 그 기술의 절정을 보였다고 하며, 많은 걸작들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상감청자는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비색과 함께 세계적으로 그 기술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분야이다.



상감청자(象嵌靑磁, Inlaid Celadon)


    ‘상감(象嵌)청자’는 자기의 바탕흙(胎土)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을 메워넣는 기법으로 장식한 청자이다. 다른 재료로 메워서 꾸미는 기법은 나전칠기나 금속공예의 입사(入絲)기법에서 볼 수 있는데, 이를 도자기에 응용한 것은 고려 장인의 창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고려초로 여겨지는 상감기법의 도자기 조작이 발견되며, 12세기 중엽에 이르면 상감청자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상감기법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고려가 이룬 뛰어난 업적으로, 비색 청자유약과 더불어 고려청자의 특징이 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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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학무늬 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고려12~13세기)


   유연한 선에 의한 단정한 형태, 넓은 공간에 시원스럽게 베풀어진 무늬 등, 흠잡을 곳 없는 고려청자 명품 중 하나이다. 고려청자에 자주 등장하는 구름과 학무늬는 중국청자에서는 보기 힘든 고려청자만의 독특한 무늬이다. 고고함과 장새의 상징인 학은 이를 닯고자 하는 고려인들의 염원을 대변하듯 상감청자의 문양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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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학무늬 항아리(靑磁象嵌雲鶴文壺, 고려12~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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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대나무무늬 매병(靑磁象嵌菊竹文梅甁, 고려12~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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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무늬매병(靑磁陰刻牡丹文梅甁, 고려12~13세기, 보물342호)


   매병은 뚜껑을 덮을 때 몸통과의 마찰로 인한 파손 위험을 줄이고 장식효과를 더하기 위해 아마도 어깨 위에 수를 놓은 보자기를 덮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효과를 얻고자 목을 중심으로 네모반듯한 보자기를 씌운 것 같은 무늬를 상감하였다. 상감은 어깨 부분의 보자기 무늬에만 넣었고, 중간 부분 아래에는 음각 기법으로 모란을 나타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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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무늬 항아리(靑磁象嵌牡丹文壺, 고려12~13세기, 국보98호).  


   중국 한대(韓代) 이후 많이 사용되었던 동기(銅器)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청자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우수한 조형미를 주고 있다.

청자 가운데 같은 시대에 사용된 동기(銅器)를 그대로 청자로 옮겨 만든 것이 많다. 이 청자 항아리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이며, 양쪽에 달린 동물모양 손잡이는 동기의 의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몸체 양면에 모란꽃을 상감하였는데 백상감된 모란꽃의 꽃술과 꽃잎 둘레를 매우 가는 흑선으로 처리하였고 음각선으로 세밀하게 꽃맥을 표현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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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풍경무늬 완(靑磁象嵌蒲柳水禽文盌,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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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대나무 물가풍경무늬 표주박모양 주자(靑磁象嵌梅竹蒲柳水禽文瓢形注子, 고려12~13세기)


   고려청자 특유의 곡선미를 보여주는 주자이다. 자연적인 멋과 낭만이 배어 있는 물가풍경을 장식한 무늬에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이러한 물가풍경은 고려왕실이나 귀족들에게 사랑받았던 장식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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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넝쿨무늬 표주박모양 주자(靑磁象嵌牡丹唐草文瓢形注子, 고려12~13세기,국보116호)


   고려청자 가운데는 표주박모양의 주자가 많다. 이 유형은 중국의 당.송 자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중국과는 다른 고려만의 산뜻한 조형 세계를 보여준다. 몸체 아랫부분은 약간 도안화되었으나 사실에 가까운 모란 무늬를 소담하게 역상감(배경부분을 상감으로 메워 무늬가 청자색이 나도록 하는 기법)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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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구름 학무늬 베개(靑磁象嵌牡丹雲鶴文枕, 고려13세기)


   상감청자 베개 가운데 형태나 무늬의 구성에 있어 매우 세련된 작품이다. 여섯 개의 판을 붙여 만들었다. 사각의 베갯모 마구리에서 안으로 선과 면이 휘어들어 베개로서의 기능과 장식효과를 함께 꾀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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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학 모란무늬 판(靑磁象嵌銅畵雲鶴牡丹文板, 고려13세기)


   네 귀를 다듬은 직사각형 자판이다. 테두리는 얇고 가운데로 갈수록 두께가 두꺼워진다. 중앙에 능화형 창을 만들고 그 안에 모란꽃 가지를 흑백상감하였으며 능화형 창 밖에는 운학문(雲鶴文)을 가득 배치했다. 이러한 종류의 자판은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청자 가마터에서 출토된 바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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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화무늬 병(靑磁象嵌銅畵菊花文油餠, 고려13세기), 2.국화무늬 병(靑磁象嵌菊花文油餠,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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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구름 학무늬병(靑磁象嵌雲鶴文油餠, 고려 12~13세기), 4.넝쿨무늬 병(靑磁象嵌唐草文油餠,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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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국화무늬 병(靑磁象嵌菊花文餠, 고려13세기), 6.국화무늬 병(靑磁象嵌菊花文餠,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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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국화무늬 표주박모양 병(靑磁象嵌菊唐草文瓢形甁, 고려13세기), 8.황촉규무늬 주자(靑磁象嵌黃蜀葵文注子,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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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화 넝쿨무늬 항아리(靑磁象嵌菊唐草文壺, 고려13세기), 

2.국화무늬항아리(靑磁象嵌菊花文壺, 고려13세기), 

3.국화무늬항아리(靑磁象嵌菊花文壺, 고려13세기), 

4.구름 학무늬 항아리(靑磁象嵌雲鶴文壺, 고려13세기), 

5.칠보무늬항아리(靑磁象嵌七寶文壺, 고려13세기), 

6.국화무늬항아리(靑磁象嵌菊花文壺,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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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국화 넝쿨무늬 합(靑磁象嵌菊唐草文盒, 고려13세기), 8.연꽃 넝쿨무늬 합(靑磁象嵌蓮唐草文盒,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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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거북 등갑무늬 화장상자(靑磁透刻龜甲文化粧箱子,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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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등갑무늬 화장상자


   1939년 전라남도 장흥군 모산리의 한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출토 당시 상자 안에는 청자 상감 국화무늬 합들과 청동 거울 그리고 침통 등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여성용 도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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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넝쿨무늬 합(靑磁象嵌唐草文盒, 고려12세기), 3. 봉황무늬 합(靑磁象嵌鳳凰文盒,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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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꽃넝쿨 동자무늬 합(靑磁象嵌蓮唐草童子文盒, 고려12~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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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화 넝쿨무늬 합(靑磁象嵌菊唐草文盒, 고려12~13세기), 6. 국화무늬합(靑磁象嵌銅畵菊花文盒,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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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무늬 잔과 잔받침(靑磁象嵌菊花文托盞, 고려13세기)


   고려시대에는 이 탁잔과 거의 유사한 형태와 무늬를 갖춘 금속제 탁잔이 많이 만들어졌다. 잔과 잔받침의 입 가장자리의 도드라짐은 금속제 탁잔을 틀을 사용해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났던 흔적으로 청자에 그대로 옮겨진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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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모란무늬 병(靑磁象嵌菊牡丹文甁, 고려 12~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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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늬 타호(靑磁象嵌菊花文唾壺, 고려 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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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무늬 잔과 잔받침(靑磁象嵌菊花文托盞, 고려 13세기), 국화무늬 잔과 잔받침(靑磁象嵌菊花文托盞, 고려 12~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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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모란무늬 참외모양 병(靑磁象嵌菊牡丹文瓜形甁, 고려 12~13세기, 국보114호).  


   전체적인 조형미가 뛰어나지만, 장식이 많아 약간 산만한 느낌을 준다.

참외모양의 몸체는 세로로 된 골을 내어 여덟 면으로 나누었고, 각 면마다 국화와 모란꽃을 한 줄기씩 교대로 흑백 상감하였다. 몸체 아래에는 역삼감 기법의 연꽃잎무늬 띠를 돌렸으며, 어깨에는 여의두무늬로 띠를 돌렸다. 고려 인종의 장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참외모양병과 유사하지만, 선의 유려한 흐름이나 단아한 맛은 줄어든 느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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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넝쿨무늬 대접(靑磁象嵌菊唐草文大楪, 고려12세기, 국보115호),


   고려청자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는 청자이다.

고려 의종13년(1159)에 죽은 문공유의 무덤에서 묘지(墓誌)와 함께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연대를 짐작할 수 있는 상감청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물로, 상감기법의 발전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 대접의 안쪽 바닥에 국화꽃잎을 백상감하고 안쪽면 전체를 넝쿨무늬로 역상감하였으며 입구 둘레에도 넝쿨무늬 띠를 장식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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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무늬 대접(靑磁象嵌菊花文大楪,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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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무늬 대접(靑磁象嵌荔枝文大楪, 고려12~13세기, 명종 지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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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무늬대접(靑磁象嵌牡丹文大楪,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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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무늬꽃모양대접(靑磁象嵌牡丹文花形大楪,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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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학무늬대접(靑磁象嵌雲鶴文大楪,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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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학무늬대접(靑磁陽刻雲鶴文大楪,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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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학무늬대접(靑磁象嵌雲鶴文大楪,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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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넝쿨무늬대접(靑磁陽刻牡丹唐草文大楪, 고려12세기)


  초기의 상감기법은 제한된 일부분에만 사용되었다. 이 완은 중국 송나라 정요나 경덕진요의 도자기 형태와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은 고려청자 고유의 특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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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모란무늬 대접(靑磁陽刻蓮牡丹文大楪, 고려 12세기, 국보253호).


   바깥에는 상감기법으로 모란무늬를 그려놓고 있으며, 안쪽에는 양각기법을 연꽃무늬를 새겨놓고 있다. 상감청자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그릇의 안쪽 면에는 연꽃 넝쿨을 압출양각으로 양감있게 표현하였고 바깥 면에는 세 군데에 걸쳐 간결한 모습의 모란꽃을 상감하였다. 특히 그릇 안팎의 문양장식을 서로 다른 기법으로 표현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인데, 이것은 상감청자의 양식적 혼합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장식기법인 상감의 발생과 전개과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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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무늬합(靑磁象嵌牡丹文盒, 고려12세기)


   그릇의 전면에 음각기법과 상감기법을 사용하여 모란무늬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고려시대 금속기의 영향이 엿보이는데, 뚜껑의 윗부분이 마치 접시를 엎어 놓은 듯 넓은 굽처럼 생긴 형태는 통일신라시대 금속기에서도 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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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무늬합(靑磁陰刻牡丹文盒, 고려12세기)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청자실] 고려청자의 변화


   고려후기에는 몽골의 침입으로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적으로 경제가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이다. 이는 청자제작에도 영향을 미쳐 전반적으로 전성기의 청자에 비해서 고려후기에는 그 제작수법의 단순해졌으며, 이전의 세련된 기술들이 많이 쇠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 중기 청자기술의 발달이 남송과의 교역 등을 통해서 크게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 경제적 기반이 약해짐으로써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후기 해안지역에는 일본의 왜구가 서남해안 지방을 침입하여 고려청자를 만들던 가마들이 있었던 전남 강진과 전북부안의 장인들이 내륙으로 피난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도자기 생산의 새로운 거점이 생기고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고려청자의 변화
    13세기의 고려는 중국 원나라와 전쟁을 오래 치르면서 국가 경제가 어려워졌고, 이는 청자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릇의 모양은 우아한 곡선을 대신하여 단순해지고, 그릇의 두께가 두꺼워졌다. 또 아름다운 비취색 청자 유약은 녹갈색이나 황갈색을 띠게 되고, 섬세한 상감 무늬는 점점 생략되거나 표현이 조잡해졌다. 이 과정에서 상감 무늬를 새기지 않고 도장으로 찍는 인화 기법이 새롭게 등장했다. 고려청자는 14세기에 들어서 빠르게 쇠퇴하였다. 특히 14세기 후반에 왜구가 침입하여 바닷가와 가까운 강진과 부안 지방의 사기 장인들은 내륙으로 피난하였다. 이 때문에 청자 가마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상감청자(象嵌靑磁, Inlaid Celadon)
    끝이 뾰족한 도구로 무늬를 새긴 후 그 파인 부분을 흰흙이나 붉은 흙으로 메우고 유약을 입혀서 구우면 흰흙은 흰색으로 붉은 흙은 검은색으로 무늬가 나타나는 청자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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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버들 갈대무늬 매병(白磁象嵌牡丹柳蘆文梅甁, 고려 12~13세기, 보물345호),


   이 백자 매병은 동체를 여섯 면으로 나누고 각각의 중심에 모란.갈대.버드나무가 들어간 능화창을 상감기법으로 시문하였다. 능화창과 어깨 및 굽 주변에 돌아간 연꽃잎 안을 청자 흙으로 채워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매병을 굽는 과정에서 동체 일부가 틀어졌으나,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철화청자(鐵畵靑磁, Celadon with iron-brown decoration)


   산화철 성분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유약을 입혀서 구워 무늬가 검게 나타나게 한 청자이다. 철화청자에는 사물의 특징을 간결하면서 생동감있게 묘사한 예들이 많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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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무늬병(靑磁鐵畵草花文甁,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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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넝쿨무늬매병(靑磁鐵畵蓮唐草文梅甁,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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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무늬잔(靑磁練理文盞, 고려13세기), 연리무늬꽃모양잔(靑磁練理文花形盞, 고려13세기),


   청자토와 백토, 자토를 반죽하여 그릇을 성형한 뒤, 투명한 청자유약을 입혀 구워내면 세가지 흙색이 섞여 대리석과 같은 무늬를 나타낸다. 이러한 무늬를 ;연리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제작기법은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흙의 색이나 유색에 있어서 중국과는 다른 고려만의 감각을 나타낸다. <출처:중앙박물관>



동화청자(銅畵靑磁, Celadon with copper-red decoration)


   구리성분 안료를 사용하여 무늬를 그리고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적갈색 무늬의 청자로 진사(辰沙)청자라고도 한다. 구리성분 안료를 사용하여 청자를 구워낸 것은 고려의 장인이 세계 최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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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모양합(靑磁銅彩花形盒, 고려12~13세기), 잔과 잔받침(靑磁銅彩托盞, 고려12~13세기)



퇴화청자(堆花靑磁, Celadon with slip-painted)


   붓을 이용하여 무늬를 그리는 점에서는 철화청자와 같다. 다른 점은 안료를 그릇 표면에 두껍게 발라서 무늬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중심무늬의 주변을 꾸밀 때 많이 이용된다. 퇴화기법 자체만으로 무늬를 표현한 경우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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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잎무늬매병(靑磁鐵彩堆花三葉文梅甁, 고려12세기, 보물340호).


   철화 안료를 바른후 무늬를 파내고 백토를 입힌 퇴화기법으로 만들어진 흔치 않은 청자이다.

청자 태토로 매병 형태를 만든 후 철화 안료를 칠하고, 다시 몸체 양면에 잎무늬 부분만을 얇게 파낸 뒤 그 위에 백토를 바르고 청자유약을 입혀 구운 작품이다. 이처럼 여러번 공정을 거치는 철채 상감기법은 12세기 전반기부터 나타나고 있으나 그 예가 매우 드물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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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넝쿨무늬 참외모양 병(鐵彩象嵌蓮唐草文瓜形甁, 고려12~13세기)


   바탕흙에 역상감기법으로 백토를 감입하고 백토 상감부를 제외한 전체에 철분이 다량 함유된 철유를 발라 구워낸 꽃병이다. 사당리 가마터에서 이와 유사한 파편이 출토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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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에 다양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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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새무늬항아리(靑磁鐵彩象嵌花鳥文扁壺, 고려13세기)



금채청자(金彩靑磁)


   상감청자의 유약 표면에 선을 새기고 금을 붙인 청자이다. 자세한 방법은 알수 없으나 접착제를 사용하여 금분(金粉)을 발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에는 중국 원나라에 수차례 선물로 금채 청자를 가지고 갔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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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토끼무늬항아리(靑磁象嵌金彩樹下猿兔文扁壺, 고려13세기)


  『고려사』에는 충렬왕23년(1297) 원에 금으로 채색한 옹기를 바쳤다는 기록과 사신 조인규가 원 세조에게 ‘화금자기(畵金磁器)’를 진상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항아리는 이러한 기록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로 상감무늬 가장자리에 선을 가늘게 음각하고 파인 부분에 금가루를 발랐다. 1933년 개성 만월대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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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넝쿨무늬 대접(靑磁象嵌金彩牡丹唐草文大楪,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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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봉황 넝쿨무늬 항아리(靑磁象嵌龍鳳唐草文扁壺, 고려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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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 인물무늬 항아리(靑磁象嵌山水人物文扁壺, 고려13세기)


   동체 양쪽을 편평하게 눌러 만든 항아리로, 이 같은 기형은 고려 후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넓은 면을 능화창으로 구획하고 회화적인 무늬를 시문하였다.건물 안 또는 밖에 인물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는 대나무와 국화가 심어져 있고 앞에는 물새가 노닐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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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학무늬 잔(靑磁象嵌雲鶴文馬上杯, 고려14세기), 국화 넝쿨무늬 잔(靑磁象嵌菊唐草文馬上杯, 고려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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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국화 넝쿨무늬 잔(靑磁象嵌雲鶴菊唐草文馬上杯, 고려14세기), 봉황무늬 잔(靑磁象嵌鳳凰文馬上杯, 고려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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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풍경무늬 귀때발(靑磁象嵌蒲柳水禽文片口鉢, 고려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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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용무늬 병(靑磁象嵌銅畵雲龍文甁, 고려 14세기)


  입이 밖으로 벌어지고 동체 하부가 풍만한 형태의 병이다. 기물 전체에 상감기법으로 다양한 무늬를 빽빽하게 장식하였고, 특히 원 안에 위치한 용이 주목된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서있는 용이 여의주를 붙들고 있으며, 상감기법과 동화기법을 함께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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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용무늬 접시(靑磁象嵌雲龍文楪匙, 고려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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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봉황무늬 꽃모양 대접(靑磁象嵌雲鳳文大楪, 고려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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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용무늬 대접(靑磁象嵌雲龍文大楪, 고려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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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봉황 학무늬 합(靑磁象嵌雲鳳鶴文盒, 고려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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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새겨진 꽃 새무늬 대접(靑磁象嵌花卉鳥蟲文己巳銘大楪, 고려1329년)


   고려 후기에 이르면 간지(干支)가 상감된 청자가 많이 제작된다. 현재까지 ‘기사(己巳)’, ‘경오(庚午)’, 임신(壬申)’, ‘계유(癸酉)’ 등 60간지 중 11개가 알려져 있다. ‘기사’(1269)-’을미’를 13세기 후반, ‘정해’를 1347년으로 규정한 견해와 ‘기사’(1329.1389)-’을미’(1355)를 14세기로 보는 견해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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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가 새겨진 물가풍경무늬 대접(靑磁象嵌柳蘆水禽文庚午銘大楪, 고려 13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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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 새겨진 구름 학무늬 대접(靑磁象嵌雲鶴文壬申銘大楪, 고려 13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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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이 새겨진 연꽃 넝쿨무늬 대접(靑磁象嵌蓮唐草文正陵銘大楪, 고려 1365~1374년)


   그릇의 내면 바닥에 뚜렷하지는 않지만 ‘정릉’이라는 글자가 상감되어 있다. 정릉은 공민왕의 비인 노국공주의 능호로 노국공죽 사망한 공민왕 14년(1365)에 축조하였다. ‘정릉’이 새겨진 청자는 1365년부터 1374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분명한 사용처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과 일반적인 그릇의 형태지만 예기(禮器)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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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사온서(乙酉司醞署)’가 새겨진 매병


   몸체에 흑상감으로 ‘을유사온서’를 새겨 넣었다. 사온서(司醞署)는 술과 감주 등의 공상을 담당하던 곳으로, 관서의 명칭 변화와 ‘을유’라는 간지를 함께 고려할 때 1345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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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무늬 통모양 병(靑磁鐵畵楊柳文筒形甁, 고려12세기, 국보113호)


   철화청자의 특징인 대담한 의장과 구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다른 철화청자에 비하면 무늬가 비교적 간결하지만 버드나무를 재구성하여 다른 차원의 세련미를 만들어냈다.이렇게 독특한 형태의 통형병은 청자의 기형 가운데 이례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청자실] 고려청자 전성기 걸작, 상형청자

   전성기 고려청자 중에는 인물이나 동물, 특정한 기물을 형상화한 상형청자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들 상형청자들은 예술적으로 조형미가 빼어난 수작들이 여러 점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상형청자의 형태로 종교행사에 사용되는 향로나, 물이나 술을 담는 병, 문방구의 하나인 연적 등이 있다.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칠보무늬 향로(국보95호)를 비롯하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원숭이모양 연적(국보270호),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거북모양 주자(국보96호), 어룡모양주자(국보61호) 등이 고려청자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상형자기라 할 수 있다.


상형청자(像型靑磁, Sculptural Celadon)
    인물이나 각종 동식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청자를 말한다. 대표적인 특징만을 살려서 간결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실물보다 강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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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걸작들이 청자실 중앙에 전시되어 있다. 좁은 공간에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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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무늬향로(靑磁透刻七寶文香爐, 고려12세기, 국보95호).

투각, 상감, 음각, 양각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만들어진 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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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룡모양주자(靑磁魚龍形注子, 고려12세기, 국보61호).

용머리와 물고기 모양 몸통을 하고 있는 상상의 동물을 표현 상형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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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모양향로(靑磁獅子形香爐, 고려12세기, 국보60호). 

비색청자가 절정기였던 12세기에 만든 상형청자이다. 청자 빛깔이나 조형적인 면에서도 작품성이 뛰어난 향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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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룡모양 주자(靑磁龜龍形注子, 고려12세기, 보물452호).  

거북이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주전자이다. 얼굴은 용의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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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풍경무늬정병(靑磁陽刻薸柳水禽文淨甁, 고려12세기, 보물344호). 


   불교의식에서 사용하던 청동으로 만든 정병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제작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나다. 버드나무 아래 원앙 1쌍이 헤엄치고 있는 장면과 갈대 기러기 1쌍이 노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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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모양주자(靑磁石橊形注子, 고려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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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모양주자(靑磁竹筍形注子,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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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넝쿨무늬베개(靑磁透刻蓮唐草文枕,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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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넝쿨무늬베개(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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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래로 제례의식에 사용되었던 제기들을 모방해서 만든 상형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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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무늬향로(靑磁陽刻饕餮文香爐, 고려12세기), 


   고대 중국의 제기인 정(鼎)을 모방해서 만든 향로이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의식이나 제사에 향을 피워 놓기 위한 청자 향로가 많이 제작되었다. 이 가운데 중국의 청동기인 정을 모방한 청자 향로가 많다. 이 향로의 안쪽 면에는 글자기 있지만 읽기는 어렵다. 그 아래쪽에는 파도와 배를 탄 인물상이 음각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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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무늬향로(靑磁陽刻饕餮文香爐, 고려12세기),  


   또한 고대 제기인 발이 3개달린 솥인 정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당시에 이른 형태의 향로가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려청자 향로에는 동식물 형상을 한 것도 있지만 이처럼 중국의 청동기인 방정을 충실히 모방한 것도 많다. 몸체에 양각된 도철은 중국 청동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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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잎무늬향로(靑磁陽刻蓮瓣文香爐,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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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모양 향로 뚜껑(靑磁鴛鴦形香爐蓋, 고려12세기)


   이와 같은 형태의 향로는 상형물이 장식된 뚜껑이 있어 뚜껑의 상형물을 통해 향을 피우도록 구성되어 있다. 향로의 기본적인 조형은 중국 당대 금속기에 있으며, 북송대에 운영된 하남성 청량사 가마터에서도 청자향로편이 출토되었다. 비록 상형장식 뚜껑은 없지만 실용기와 감상용기의 성격을 모두 갖춘 수작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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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용품으로 만들어졌던 상형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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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두무늬병(靑磁陽刻如意頭文甁,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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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잎무늬 대접(靑磁陽刻蓮瓣文大楪, 고려12세기),


   연잎무늬가 양각된 대접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부드러운 선과 단정하게 깎은 굽 등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장인의 솜씨가 분명하다. 꽃잎 끝에 꽃술처럼 표현된 하얀 퇴화(堆花) 점은 시선을 모으는 중요한 요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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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동자무늬주자(靑磁透刻蓮花童子文注子,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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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류모양 연적(靑磁石榴形硯滴, 고려12세기), 2.3.원숭이모양 먹 항아리(靑磁猿形墨壺,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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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거북이모양 연적(靑磁龜形硯滴,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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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오리모양 연적(靑磁鴨形硯滴, 고려12세기)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중앙박물관
4. 문화재청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청자실] 고려의 자기문화


   비색청자로 불렸던 고려 청자는 은은한 녹색을 띠는 도자기로 우리나라을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예술작품이다. 고려청자는 도자기 종주국인 송나라 사람들조차도 그 빛깔이 중국 청자보다 뛰어나다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비색청자는 유약이 반투명하며 그릇표면에 금이 생기지 않고 광택이 은은한 것이 특징으로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에 절정기를 이루며 12세기에는 상감기법이 도입되어 그 빛깔과 함께 예술적 조형미까지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일신라 말기인 9~10세기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이전에 청자가 만들어졌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말에서 일부 만들기 시작하였으나 크게 발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에서는 도자기들이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황소의 난에서 시작된 당나라 말에서 오대에 이르는 혼란기에 중국 도자기 기술자들이 한반도로 넘어오면서 월주요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들이 고려초기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초기의 가마들은 수도 개경을 부근에서 중국 월주요의 자기들을 생산했다고 하며, 11세기에 들어서는 중국 송나라와 일본과의 중요한 교역거점이었던 전북 부안과 전남 강진이 청자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 청자 제작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비취색으로 대변되는 고려청자 특유의 색과 장식기법으로 고려만의 자기를 만들게 된다. 현재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자기와 문화재로는 고려청자를 첫손가락에 꼽고 있을 정도로 그 제작수법과 예술성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고려의 자기문화


   도자기는 흙과 불, 그리고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예술이다. 특히 “자기(磁器)”의 제작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유약을 입혀 1,200도 정도의 높은 온도로 구워내는 자기는 최상의 기술로 완성된 섬세한 예술품이다. 한국에서 자기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초 무렵이다. 그동안 쌓아온 토기 제작 기술과 중국 월주요(越州窯) 자기의 영향으로 청자나 백자 같은 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가마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현재의 개성)에 가까운 중서부 지역에 있었다. 1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두 지역을 중심으로 청자가 제작되었고, 초기에 비해 제작기술이 정교해졌다. 고려자기는 11세기 중엽부터 눈에 띄게 발전하며 12세기에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다. 특히 청자는 다양한 무늬로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그릇과 같은 일상용품을 비롯해서 기와나 타일같은 건축자재까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유약이 은은한 비취색을 띠는 ‘비색(翡色)청자’의 완성과 도자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연 ‘상감(象嵌)’기법의 개발이다. 고려는 13세기에 중국 원나라와 전쟁을 오래 치르면서 나라 안 사정이 매우 어려워졌는데, 이런 상황은 청자를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색 청자의 우아한 형태와 아름다운 빛깔은 점점 사라지고, 청자의 질도 눈에 띄게 변화했다. 특히 14세기 후반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남부지방이 황폐해지자 강진과 부안의 장인들 또한 살길을 찾아 내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때문에 자기 생산이 널리 확대되고 자기를 사용하는 계층의 폭도 넓어져 고려말의 상감 청자는 조선시대 ‘분청사기(粉靑沙器)’로 이어지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려청자의 시작과 발전


    한국에서 언제부터 자기를 생산했는지에 대해선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대체로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청자를 직접 만들게 된 것은 중국 청자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부터이다. 삼국시대에는 약간의 중국 청자가 무덤에 넣는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으나,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중국 청자와 백자가 실생활에 쓰였다. 초기의 가마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이 위치한 중서부 지역에서 중국 월주요 청자의 영향을 받은 자기를 생산하였다. 11세기에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이 청자의 중심 제작지가 되었으며, 점차 완성도 높은 청자를 생산하게 되었다. 12세기 전반에 이르면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비취색과 다양한 장식기법으로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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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관련 주요 연표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은은한 녹색은 흔히 비취색, 곧 ‘비색(翡色)’에 비유된다. 비색을 띤 청자에 고려 사람들은 깊은 애정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도자기의 종주국인 중국 송나라 사람들도 중국 청자보다 뛰어나다고 칭송하였다. 비색 청자 유약은 반투명하며, 그릇 표면에 갈라진 금이 생기지 않고 광택이 은은한 것이 특징이다. 비색 청자는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까지 가장 세련된 색을 띤다. 12세기 중엽부터는 상감 청자가 유행하여 비색 유약에서 상감무늬가 잘 드러나는 맑고 투명한 유약으로 바뀌게 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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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화의 발달과 함께 월주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11세기 비색청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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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靑磁大楪, 고려 11세기),  

   고려시대에 크게 성행했던 차를 마시는 다도문화와 관련됫 찻그릇인 완이다. 단순하면서 아름다운 색과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해무리굽완은 초기 청자의 양식적 변화를 나타낸다. 굽의 형식은 선해무리굽에서 중국식 해무리굽, 한국식해무리굽, 퇴화해무리굽의 단계를 거치며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초경에 사라진다. 이 해무리굽완은 좁은 내저원각에 굽 안바닥까지 시유하였고, 내화토받침으로 번조한 한국식해무리굽 단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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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잎무늬 합(靑磁陰刻蓮瓣文盒, 고려 11세기), 잔(靑磁盞, 고려1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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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靑磁楪匙, 고려11세기), 접시(靑磁楪匙, 고려1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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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잎무늬대접(靑磁陰刻蓮瓣文大楪, 고려1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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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모양접시(靑磁花形楪匙, 고려10~11세기), 꽃모양접시(靑磁花形楪匙, 고려10~1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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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색청자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2세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기형의 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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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靑磁甁, 고려 11~12세기),


   청자제작 초기단계에는 무늬가 없는 청자가 주로 만들어졌으며, 색의 시대에 들어와 고려만의 비색으로 꽃을 피운다. 이후 장식의 시대에 들어서도 무늬없는 청자는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무늬없이 광택이 밝은 반투명 유약을 시유한 이 병은 고려 초 금속기를 모방하였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균형잡힌 조형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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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병(靑磁梅甁, 고려 11~12세기), 병(靑磁甁, 고려 11~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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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모양접시(靑磁花形楪匙, 고려12세기). 


   고려 고분에서 출토된 아름답고 완벽한 12세기 전반 절정기의 순청자이다. 이와 유사한 접시가 중국 송나라 접시에도 보이지만, 이 접시는 꽃잎의 표현과 유약의 아름다움에서 고려청자 고유의 세련된 멋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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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靑磁鉢, 고려11~12세기), 반(靑磁盤, 고려11~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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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모양발(靑磁花形鉢,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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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靑磁甁, 고려 12세기), 항아리(靑磁壺, 고려12세기)



시작과 전개


   고려는 10세기 경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청자 제작에 성공하였는데,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도기 제작의 전통 위에 중국의 월주요(越州窯)와 같은 선진기술의 영향과 차 문화의 유행 및 확산 등으로 청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가마들은 벽돌가마(塼築窯) 형태로 고려의 수도인 개경과 가까운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 있었지만, 11세기에는 남서부 지역에서 진흙가마(土築窯)가 본격적으로 운영되면서 요업의 중심이 점차 전남 강진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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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방산동 가마터 출토품,


   경기도 시흥 방산동 가마는 초기 고려청자의 표식유물인 해무리굽완과 화형접시를 비롯하여 주구가 긴 주자, 뚜껑, 잔탁 등을 제작하였는데, 출토유물의 형태와 유색이 중국 오대(907~960년) 오월국 월주요 청자와 매우 흡사하여 그 시기를 10세기 중반 경으로 추정하였다. 발형(鉢形)과 통형(筒形)의 갑발, 갑발 받침과 고리형 받침 등의 요도구가 사용되었다. 갑발에 새겨진 ‘봉화(奉化)’라는 글씨는 오월국 봉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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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서리(중덕, 상반) 가마터 출토품


   경기도 용인 서리 중덕 가마는 처음에는 장방형 벽돌을 사용하여 쌓았지만 이후 진흙을 쌓아 만든 형태로 전환하여 주목된다. 가마와 가마 좌우측 퇴적 구릉의 4개의 자연층위가 확인되었고, 해무리굽완과 화형접시, 주자, 잔탁 등의 기종 뿐 아니라 해무리 굽완보다 앞서는 선해무리굽완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다. 한편 용인 서리 상반 가마는 폐기장에서 벽돌편이 수습되었으나 진흙 가마의 구조만이 확인되었고, 출토유물은 중덕 가마의 3,4기층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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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용운리 가마터(63호, 9호, 10호1층) 수습품.출토품,


   고려의 자기 생산지가 남부로 이동한 후 가장 활발한 생산이 이루어진 곳은 전라남도 강진이다. 강진에서는 대구소(大口所, 현 대구면 용운리.사당리)와 칠량소(七樑所, 현 칠량면 삼흥리)  두곳이 자기소 체제로 운영되었다. 강진의 진흙가마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된 바 가장 시기가 이른 것은 용운리 63호이다. 해무리굽완, 화형접시, 옥연접시 등이 발견되었고, 번조 시 구멍 뚫린 갑발이 사용되었다. 용운리 9호와 10호 1층에서도 초기 청자가 제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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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화4년’이 새겨진 항아리



절정과 확산


   고려청자는 11세기 중후반부터 눈에 띠게 발전하여 12세기에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의 두 지역을 중심으로 절정의 경지에 이른다. 다양한 무늬로 아름답게 꾸며진 그릇과 같은 일상용품을 비롯해서 기와나 타일같은 건축자재까지 만들었다. 특히 고려청자는 중국 자기의 양식을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려만의 독특한 미감을 살려 색과 장식기법, 무늬, 그리고 기형 등에서 중국과는 다른 면모를 뚜렷하게 나타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유약이 은은한 비취색을 띠는 ‘비색(翡色)’의 완성과 도자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연 ‘상감(賞鑑)’기법의 개발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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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사당리 가마터 출토품


   전라남도 강진 사당리 가마는 고려청자 전성기 가운데서도 정품 중의 정품을 생산해 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1960년대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조사한 사당리 당전마을 가마터는 고려시대 대구소 자기소 체제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바 기종과 기형, 문양장식이 가장 다채롭고 정교하며 유색 또한 매우 좋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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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유천리 가마터 출토품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는 강진 용운리.사당리 가마와 더불어 전성기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생산지이다. 강진에 비해 개요(開窯)시기가 다소 늦는 점을 빼고는 생산품의 양상이 거의 비슷하다. 1960년대 유천리 12호 가마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 이후 1990년대에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7구역을 발굴한 바 있다. 일제강점기 후카다가 12호 가마에서 도굴하였다고 하는 상당량의 파편이 국립중앙박물관과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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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보정동 가마터 출토품


   경기도 용인 보정동 가마는 고려 중기 지방 청자 생산지로, 매우 다양한 기종과 기형, 장식문양으로 주목할 만하다. 강진 청자의 전국적 확산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차가 크지 않은 예로 보인다. 품질은 떨어지나 강진 용운리 10호 가마 2층과 유사한 맥락이며, 나한상과 보살상 등 불상과 화분, 의자 등을 제작하여 주목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인종 장릉 출토품


   고려 17대 임금인 인종(재위 1122~1146년)의 능인 장릉 출토품으로 전해지는 이 일괄유물은 <참외모양 병>, <사각받침대>, <잔과 뚜껑>, <국화모양 합> 등 순청자와 <청동도장>, <은제수저>, <청동내함>, <석제외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종 장릉 출토품을 통해 12세기 전반 고려 왕실의 공예문화와 고려청자가 절정기로 접어드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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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7대 인종의 장릉에서 출토된 전성기 고려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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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대(靑磁方形臺, 고려12세기, 전 인종 장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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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靑磁盞, 고려12세기, 전 인종 장릉 출토), 국화모양합(靑磁菊形盒, 고려12세기, 전 인종 장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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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모양병(靑磁瓜形甁, 고려12세기, 전 인종 장릉 출토, 국보94호,


   이러한 모양의 병은 중국 고대 청동기인 준이라는 병에 기원을 둔다. 뛰어난 색과 완벽한 균형미로 널리 알려진 고려청자의 대표적 명품이다.

고려 17대 인종(재위 1122~1146년)의 장릉에서 ‘황통 6년(1146)’의 기록이 있는 인종의 시책(諡冊)과 함께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양식은 중국 송대(宋代)부터 유래하였으나, 중국 것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단정한 곡선미를 보인다. 단아한 기형과 함께 고도로 정선된 유약과 태토는 고려청자의 최성기 작품 수준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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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표주박모양주자(靑磁瓢形注子, 고려12세기), 2.참외모양주자(靑磁瓜形注子, 고려12세기), 3.참외모양주자(靑磁瓜形注子,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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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모란무늬합(靑磁陰刻牡丹文盒,고려12세기), 5.연잎무늬합(靑磁陰刻荷葉文盒,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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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구름넝쿨무늬병(靑磁陰刻雲唐草文油甁,고려12세기), ), 7.병(靑磁油甁,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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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상약국’이 새겨진 용무늬 합(靑磁陰刻雲龍文尙藥局銘盒,고려12세기, 보물1023호),

고려시대 존재했던 의료기관인 ‘상약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합이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조형미와 빛깔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음각청자(陰刻靑磁, Incised Celadon)


    조각칼과 같은 도구로 그릇 표면에 홈을 내어 무늬를 새기는 가장 초보적인 기법의 청자이다. 조각칼을 옆으로 늬어 새기면 선이 굵어지고 반쯤 양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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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넝쿨무늬매병(靑磁陰刻蓮唐草文梅甁, 고려12세기,국보97호), 청자 음각연꽃넝쿨무늬매병(국보97호),


   좁은 아가리 넓고 풍만한 어깨와 몸통, 잘록한 허리 등 청자 매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연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무늬의 윤곽선은 조각칼을 뉘여서 음각하였기 때문에 반쯤 양각된 것처럼 보인다. 고려청자에 사용된 음각기법은 초기에는 가늘고 예리한 음각무늬이지만,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중엽이 되면 이처럼 선이 굵어지고 반양각된 것처럼 처리하는 특징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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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화무늬대접(靑磁陰刻寶相華文大楪, 고려 12세기), 앵무무늬대접(靑磁陰刻鸚鹉文大楪, 고려 12~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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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무늬대접(靑磁陰刻波魚文大楪, 고려 12~13세기), 동자무늬꽃모양대접(靑磁陽刻童子文花形大楪, 고려 12세기),



양각청자(陽刻靑磁, Celadon with Decoration in Relief)


    무늬주변을 조각칼로 파내어 도드라지게 만든 청자이다. 무늬틀로 찍어서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압출양각 또는 인각(印刻), 양인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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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촉규무늬꽃모양대접(靑磁陽刻黃蜀葵唐草文花形大楪, 고려 12세기), 모란무늬꽃모양대접(靑磁陽刻牡丹文花形大楪, 고려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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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무늬꽃모양대접(靑磁陽刻牡丹文花形大楪, 고려 12세기), 용무늬대접(靑磁陽刻龍文大楪, 고려 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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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무늬대접(靑磁陽刻牡丹文大楪, 고려 12세기), 연꽃넝쿨무늬발(靑磁陽刻蓮唐草文鉢, 고려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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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잔과 잔받침(靑磁 托盞, 고려12세기),                     2.접시(靑磁楪匙, 고려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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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모란넝쿨무늬타호(靑磁陰刻牡丹唐草文唾壺, 고려12세기), 4.모란무늬접시(靑磁陰刻牡丹文楪匙,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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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꽃잎무늬대접(靑磁陰刻蓮瓣文大楪,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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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자(靑磁注子, 고려12세기),


   연꽃잎모양을 한 승반과 금속기형태의 기형을 지닌 주자가 한쌍을 이루고 있다. 주자의 뚜껑에는 연꽃좌대 위에 사자모양 상형장식이 올려져 있다. 이러한 기형은 중국 당말(唐末)오대(五代)의 청동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미 북송대 자기류에서 비슷한 양식들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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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구름용무늬숟가락(靑磁陰刻雲龍文匙, 고려12~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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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잔과 잔받침(靑磁托盞, 고려12세기), 9.접시(靑磁楪匙,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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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잔받침(靑磁托盞, 고려12세기), 2.부용무늬꽃모양잔(靑磁陰刻芙蓉文花形盞,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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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풀꽃무늬부용모양잔(靑磁陽刻草花文芙蓉形盞, 고려12세기),  4.연꽃잎무늬잔(靑磁陽刻蓮瓣文盞, 고려12세기),

  

   틀을 이용하여 무늬를 찍어내는 기법을 ‘압출양각(壓出陽刻)’ 또는 ‘인각(印刻)’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늬의 섬세한 세부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어 대체로 음각기법이 함께 사용된다. 이 작품도 모란무늬를 틀로 찍어낸 후 윤각을 음각선으로 선명하게 만들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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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잎무늬귀때발(靑磁陰刻荷葉文片口鉢,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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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이룡무늬꽃모양접시(靑磁陰刻螭龍文花形楪匙, 고려12세기), 7.꽃무늬잔(靑磁陽刻花文盞, 고려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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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잔받침(靑磁盞托, 고려12세기)



투각청자(透刻靑磁, Openwork Celadon)


    무늬의 바깥부분을 도려내어 만드는 청자이다. 작업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12세기 전성기 청자에서 많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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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자무늬주자(靑磁透刻蓮花童子文注子, 고려12세기)



상형청자(像型靑磁, Sculptural Celadon)


   인물이나 각종 동식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청자를 말한다. 대표적인 특징만을 살려서 간결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실물보다 강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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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류모양 연적(靑磁石榴形硯滴, 고려12세기), 2.3.원숭이모양 먹 항아리(靑磁猿形墨壺, 고려12세기)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중앙박물관
4.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