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육의 『동양화가 말을 걸다』⑯혜허, <수월관음도>  

2017. 5. 7. 19:01美學 이야기



      


-조정육의 『동양화가 말을 걸다』⑯혜허, <수월관음도>

 

 


‘우리가 찾는 모든 문제의 해답은 전통 속에 있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작품 1순위는 무엇일까. 고려시대 때 혜허가 그린 <수월관음도>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작품만 직접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술사를 공부했었다. 어느 누구도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소장 국가인 일본에서조차 전시된 적이 없었다. 그저 흐릿한 도판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같은 작품이었다. 죽을 때까지 영영 보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이 작품이 공개됐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700년의 세월을 가로 질러 온 명화 앞에 서는 순간, 내가 그동안 복을 많이 지었다고 생각했다. 일본,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고려 불화(佛畵) 대표작과 중국, 일본의 작품 108점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색이 조금 빛을 잃었지만 원판이 워낙 훌륭하다보니 그 정도 흠이야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나머지 107점을 본 감동을 다 합해도 이 한 작품에서 받은 감동에 비하면 가벼울 정도였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 작품에 열광하는 걸까.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혜허, <수월관음도>, 비단에 색, 142×61.5cm,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고려를 대표하는 그림

   물방울 같은 광배(光背: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 장식) 속에 관음보살이 서 있다. 몸에 화려한 천의(天衣)를 걸친 관음보살은 오른쪽을 향해 살짝 몸을 틀었다.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왼손에는 정병(淨甁:부처님께 올리는 맑은 물을 담는 병)을 들고, 화면 왼쪽 아래에서 합장한 채 서 있는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내려다보고 있다. 정치(精緻)한 사라(紗羅:비단) 속에 감추어진 몸매는 더 이상 붓질이 필요 없을 만큼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다. 대부분의 고려불화가 작가미상인데 반해 이 작품은 혜허(慧虛)라는 승려 화가의 이름이 명문으로 기재되어 있다. 고려 불화의 양식을 고찰하는 데 중요한 기준작이다. ‘수월관음도’라는 정식 명칭 대신 ‘물방울관음’으로 부르기도 한다. 광배는 빛을 형상화한 것이므로 불꽃 모양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특이하게 물방울처럼 생겨 붙여진 별칭이다.

 

  소장처는 일본의 센소지(淺草寺)로 작년 고려불화 전시회 때 처음 공개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작년 전시회 때도 사연이 많았다. 센소지 측에서는 작품을 대여해달라는 한국 박물관 측의 요청을 계속 거절했다. 결국 작품을 대여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 소재만이라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한국 박물관 측의 끈질긴 설득을 받아들였다.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 관계자들이 일본에 건너가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외의 결과가 발생했다. 작품이 펼쳐지는 순간 박물관 관계자들이 <수월관음도>를 향해 정성스럽게 삼배를 올린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센소지측에서 조건 없이 전시회에 대여해주기로 한 것이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그린 불화를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라 부른다. 보살(菩薩)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上求菩提 下化衆生)’ 존재로 부처와 중생을 연결하는 중간자적인 존재이다. 수월관음도가 그려지게 된 근거는『화엄경(華嚴經)』「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음보살은 ‘보타락산(補陀落山)이라는 바위산에 머물고 있는데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는 선재동자를 맞아 법을 설한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각 분야의 멘토들을 찾아가 어떻게 살아야 훌륭하게 살 수 있는 지를 묻는 젊은 후배에게 삶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는 의미다. 관세음보살은 53명의 멘토 중 한 분이다.


 

<수월관음도>, 고려, 1310년, 비단에 색, 430×254cm,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수월관음도의 도상은 반가부좌한 관음보살이 오른쪽으로(혹은 왼쪽으로) 살짝 몸을 틀어 바위 위에 앉아 있고, 합장한 선재동자가 화면 오른쪽(혹은 왼쪽) 아래에 서서 관음보살을 올려다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위 위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인다. 뒷 배경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는 대략 160여 점 정도다. 그 중에서 수월관음도는 약 30여 점도가 알려져 있다. 1310년에 제작된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 <수월관음도>를 비롯하여 1323년 서구방(徐九方)이 그린 <수월관음도>(泉屋博古館 소장),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 2점의 <수월관음도> 등 대부분의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모두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센소지에 소장된 이 <수월관음도>는 좌상이 아니라 입상이다. 그렇다면 혜허는 어디서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영감을 얻었을까?

 



물방울관음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을까

   그 해답은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에서 찾을 수 있다. <아미타삼존도>는 서방극락정토의 주불(主佛)인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세지보살(勢至菩薩)을 협시보살(脇侍菩薩)로 거느린 그림 형식이다. 협시보살은 보처보살(補處菩薩)이라고도 부른다. 중앙의 본존불 곁에 ‘보디가드’처럼 서서 중생구제를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협시보살은 본존불에 따라 다르다. 석가모니부처를 모신 대웅전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행원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협시보살로 등장한다.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등장할 때도 있다. 약사여래부처를 모신 약사전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뒤따른다. 아미타부처를 모신 극락전에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배치하는데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대신할 때도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보면 우리나라에서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이 매우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는 염불에서도 알 수 있듯 관음보살은 단연 많은 중생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작자미상, <아미타삼존도>, 14세기 중반, 비단에 색, 109.5×55.7cm, 마쓰오지(松尾寺) 소장

 


   관음보살의 인기를 반영하듯 <아미타삼존도>의 왼쪽에도 관음보살이 서 있다. 그런데 관음보살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혜허가 그린 <수월관음도>의 도상과 똑같다. 머리 위의 보관(寶冠)에는 화불(化佛)이 그려져 있고, 천의 위에는 부드러운 사라를 걸치고 있다.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고,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이 모습은 ‘아미타삼존도’뿐만 아니라 8명의 보살이 함께 등장하는 ‘아미타팔대보살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수월관음도>가 사실은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수월관음도>는 어떻게 명화가 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월관음도>를 명화라 부른다. 아무도 인용작이라고 폄하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혜허가 <수월관음도>를 그리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관음보살을 ‘독존도(獨尊圖)’로 그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협시보살로만 바라 봤을 뿐이다. 그런데 혜허가 관음보살의 진가를 알아봤다. 만년 2인자로만 있던 조연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에 머물지 않고 톱스타에 어울리는 의전을 갖춰 주었다. 바로 광배다. 혜허는, 광배는 둥근 원형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물방울 모양으로 전환시켰다. 관음보살이 손에 들고 있는 버드나무 잎사귀를 형상화한 것인 지도 모른다. 혹은 촛불을 보고 영감을 얻었을까? 머리에 빛나는 두광(頭光) 대신 몸을 감싸는 타원형의 신광(身光)때문에 <수월관음도>는 불멸의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뛰어난 심미안을 가진 혜허의 손에 의해 안정된 이등변삼각형의 광배에 둘러싸인 관음보살이 고려를 넘어 세계미술사에 빛나는 작품이 된 것이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가 찾는 문제의 해답이 선배들의 작품 속에 전부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전통이라 부른다. 고리타분해서 그다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선배들의 작품이 사실은 모든 영감의 원천이다. 다만 그것을 보아내는 눈이 없을 뿐이다. 새롭게 자기 식으로 해석해내려는 고민이 부족할 뿐이다. 고민 속에서 역사는 발전해 왔다. 후발업체가 선발업체를 뛰어넘으려면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림 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핸드폰 등 제품을 만드는 데도 필요한 고민이다. 물론 그 고민의 바탕은 선배들의 작품일 것이다. <수월관음도>는 우리가 전통에서 무엇을 배우고 자기화해야하는 지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모범답안이다. (/조정육)

 

*이 글은 『주간조선』2180호(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80100031&ctcd=C09&cpage=1)에 실렸습니다.

blog.daum.net/sixgardn/15770438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