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31. 09:31ㆍ잡주머니
헤글러의 텐트에 불이 커졌다. 밤 세 시인가보다.
헤글러와 같이 4조에 들어온 사람들이 숙소를 떠난 후, 장날에 맞춰 읍내에 나간 헤글러가 양손에 짐을 들고 통나무 다리를 건너왔다. 경동화물 꼬리표가 붙어있는 텐트 가방과 포장끈으로 묶은 큰 상자를 개울 옆 빈터에 놓더니 웃통을 벗고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날이 무더워서인지, 토요일이라 숙소가 조용해서인지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져 통나무다리 밑에 들어가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자 해가 어느덧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밥도 얻어먹을 겸 궁금하기도 해서 개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빈터에는 동그란 모양의 텐트가 쳐져 있었고 허물어진 집에서 본 스티로폼 두 장이 텐트 밑에 들어가 있었다. 4조 두꺼비 집에서 따온 하얀 전기선과 깊게 판 배수로도 보였다. 개울로 목욕하러 갔는지 헤글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조금 열려있는 텐트 문에 머리를 집어 넣었다. 텐트 천장에 매달려 있는 전구. 옷가지를 넣은 사과상자. 쌀봉지. 라면과 커피믹스가 들어있는 라면박스. 코펠과 휴대용 가스렌지. 침낭. 산림청에서 지급한 국방색 수통과 탄띠. 그 옆에 펴진 채 놓여있는 노트 한 권, 노트 앞으로 다가갔다.
6월 14일 월요일. 흐림.
당신, 집에만 있지 말고 선배나 대학 동기들 좀 만나봐요. 가만히 있으면 취직자리가 생겨요? 엄마, 아무리 IMF라지만 다른 애들은 제 날자에 등록금 내요. 창피해서 학교 못 가겠어. 아침이면 아내가 놓고 가는 3천 원은 항상 미납공과금 고지서 위에 놓여 있었다. 도장으로 찍은 붉은 글씨가 예전의 VIP고객에게 겁을 줄 것이라고 믿는 카드 연체대금 독촉장. 아침 9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은행의 전화.
<관리직, 소득은 많고 일은 쉬운 즐거운 직장임. < 일, 돈, 비전을 원하는 남녀 30세 이상, 명예 퇴직자 우대, 고부가가치 사업- 청정사업.> 정수기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관리직, 새 가족 모집, 경력불문, 쉬고 계신 분 환영. 정 많은 사업가임. 41세-59세, 연봉 3000만원> 다단계 회사이었다.
생산직은 45세 미만인 사람들을 뽑아 지원 자격이 안 되었고, 공공근로도 신청했지만 신청자들이 너무 많아 언제 일하게 될지 동직원들도 모른다고 했다. 매일 술을 마셨고 아내와 아이들이 힘들어 했다. 이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생활정보지에 난 <산림청시행, 숲가꾸기 공공근로사업 희망자 모집. 00조합> 이라는 광고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오늘 오후, 강원도 현장으로 떠나는 차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옷가지와 카메라를 챙겼다. 강원도로 떠난다는 메모만을 남기고, 전당포에 카메라를 맡겨 돈을 만든 후, 이발소에서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다. 이제는 머리빗도 필요 없고 머리가 날리는 일에도 신경 쓸 일이 없으리라. 승합차로 4시간 걸려 숙소라는 곳에 도착했다. 산에 둘러 쌓여서인지 휴대전화가 안 되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왔다. 총 인원은 43명이라고 한다. 낡은 작업복, 깎지 않은 수염. 더부룩한 머리. 어깨에 장총만 메면 빨치산이 따로 없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 모두, 인원이 세 명밖에 안 된다는 4조에 배치되었다.
올해 초, 단장과 총무가 작업현장을 사전답사 하면서 현장과 가까운 윗마을에 숙소를 얻으려고 했지만, 집을 빌려주지 않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숙소를 얻었다고 한다. 오래전 산사태가 났을 때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군청에서 지어준 여섯 채 중,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있는 집과 식당 할머니의 집을 빼고는, 네 채가 빈집이었는데 그나마 한 채는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6월 25일. 금요일. 맑음.
오늘 저녁, 지원이와 성만이가 보름도 안 되어 서울로 올라갔다. 텐트가 도착하면 같이 지내자고 했지만, 돈 만원 덜 받더라도 서울에 가서, 마음 편하게 공공근로를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한다. 지원이와 성만이가 사는 동네는 공공근로를 신청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동안 체구가 작은 지원이가, 나 모르게 뱀눈에게 많이 시달렸나보다. 한번은 뱀눈이 서울 올라가면서, 공순이 목욕을 시키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지원이는 왜 이제야 그 이야기를 하는지, 지원이는 내가 싸움에 휘말리까봐 말을 안 했나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날, 한 사람이 말을 붙였다. 4조로 배치되었다면서요? 조금 힘드실 겁니다. 이 말뜻을 알아 차리는데는 며칠이 안 걸렸다. 웃기지도 않는 녀석들 때문에 여기를 떠나지는 않겠다. 저녁때, 한 통화에 천 원인 할머니네 전화를 처음 썼다. 국제전화요금 수준이다.
아직 텐트를 못 부쳤다는 아내의 말. 퉁명스런 말이 내 입에서 나간다. 그러나 할머니네 마루를 나오기도 전에, 따뜻한 말 한마디 못 건넨 내 자신이 미워졌다. 때늦은 직장생활에 아내도 힘들 텐데.....
7월 5일 월요일. 비.
오전에 삼림청에서 돈을 입금시켰다고 한다. 오후 늦게 비가 그쳐, 사람들과 함께 읍내로 나가 돈을 찾았다. 28만8천 원이었지만 근 일 년 만에 내가 번 돈이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벌었는지 궁금했다. 50만 원 정도였다. 6월초에 내린 비 때문에 일을 못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하자고 하였지만 사양하고 헤어졌다.
내가 받는 일당은 2만7천 원과 5천 원(식대+교통비)을 더한 3만2천 원이다. 아랫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기계톱 조는, 삼림청에서 기계톱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보다 5천 원을 더 받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닷새를 결근 없이 근무하면, 주차수당으로 하루치 2만7천 원이 붙고, 한 달 동안 만근을 하면 하루치 월차수당이 더해지지만, 이것은 한 달 내내 비가 안 온다는 가정하에 계산한 것이다. 만약 주중에 비가 와서 하루를 쉬었다면, 그 주의 주차수당과 그 달의 월차수당은 없다. 비오는 날, 마을회관에서 하는 안전교육이 있지만, 그나마 오전교육이었고 한 달에 한번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말대로, 한 달에 받을 수 있는 임금은 기껏해야 60만 원이다. 지출 항목을 뽑아보았다. 조합비 5천 원, 숙소운영비(방세 및 전기값) 만 원, 밥값이 15만 원(2500원X 3X 20일), 토요일과 일요일에 먹을 쌀과 부식비로, 주마다 5천 원씩 들어가니까, 한 달에 2만 원. 합해보니 18만5천 원이었다. 여기에 담뱃값과 술값을 넣으면 한 달에 25만 원은 나가야 할 돈이다. 교회 때문에 매주 금요일마다 서울에 올라가는 3조 조장의 이야기로는 왕복차비로 5만 원이 든다고 한다. 추석이 9월말이니까, 그때나 집에 가야지.
사람들과 헤어진 후 읍내 버스터미널에 서있는, 텅 빈 버스에 올라 앉았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는데 나를 힐끗 보고는 아무도 내 옆자리에 오지 않는다. 자리가 부족했는데도 말이다. 내가 입은 황색 천을 덧댄 녹색 작업복 때문이리라. 한번은 삼림청에서 지시사항이 내려왔는데, 며칟날, KBS전국노래자랑이 읍내에서 열릴 예정이니까, 그날, 숲가꾸기 팀은 읍내에 나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들을 노숙자로 알고 있........
인기척에 놀라 텐트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헤글러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이놈 봐라. 걸레질까지 해놓았더니, 발자국 좀 봐. 요놈, 혼 좀 나봐라.”
헤글러는 비누 냄새가 나는 손가락으로 나의 콧수염을 하나씩 잡아당기며 약을 올렸다. “요눔아, 암놈이 수염은 왜 기르냐?”
얼마나 따가운지 눈물이 핑 돌았다. 나쁜 자식, 머리를 빡빡 민다고 대머리가 감추어지냐? 어떤 놈이 헤글러라고 별명을 지어주었어? 중놈이라고 짓지 말이야. 다시는, 헤글러의 텐트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밤, 잠결에 무슨 소리를 들었다. 공순아. 헤글러의 목소리이었다. 또 콧수염 뽑으려고? 다시 그가 불렀을 때, 바시락거리는 포장지 소리를 들었다. 한걸음에 뛰어갔다. 텐트 앞에서 헤글러가 새우깡 봉지를 흔들고 있었다.
“공순아, 텐트 안에는 들어오지 말아라, 알았지? 이리 와라. 별을 보면서 새우깡 먹는 맛 도 괜찮을 게다.”나는 귀를 바짝 붙이고 꼬리를 흔들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흔들이와 멍석이가 점심 밥통과 찌개거리가 든 반찬통을 보자기에 싸고 있었다. 헤글러를 찾아 보았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가는 검은 팔각모가 보인다. 흔들이의 볼멘 소리,
“썩을 눔의 시끼가 지 혼자 남으니까 텐트 생활 한다고 싸악 빠져나가드니, 아침이랑 저녁 만 식당밥 먹고 점심은 도시락 싸갖고 다니겠다고 총무에게 얘기했대요. 썩을 눔의 시끼가 점심 밥통 들고 다니기 싫어서 그런 거야. 이 새끼, 손 좀 봐줘야 되는 거 아니야? 그리구 내가 밥통 들고 다닐 군번이야? 언제 쫄따구 새끼들이 들어오는 거야?”
산에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숲가꾸기 팀을 감독하는 서른 한 살이고 총각인 은 주사이었다.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도시락을 먹던 은 주사가 헤글러의 도시락을 반가워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헤글러의 반찬은 포장김 하나, 참치캔과 아침식사 때 나온 김치가 전부이었지만 참치는 나에게 별미이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헤글러에게 뛰어가 캔에 남아있는 참치 부스러기를 깨끗이 핥아 먹었다. 간혹, 은 주사가 던져주는 계란말이도 맛보았다. 흔들이와 멍석이는 4조에 충원인원이 들어올 때까지 휴대용 가스렌지와 도시락통을 들고 다녔다. 그동안 흔들이는 헤글러를 얼마나 씹어댔는지 모른다. 4조방에 있을 때 걸레질 한번 안 하던 새끼라는 둥, 은 주사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는 둥.... 직위가 없어 편의상 주사라는 호칭이 붙은, 도시락을 갖고 다니는 말단 공무원인 은주사에게 무얼 잘 보인다는 말인가? 여하튼 흔들이가 헤글러를 씹은 효과는 있었다.
“아저씨. 4조 아저씨들이 벼르고 있어요. 조심하세요.” 은 주사의 말에 헤글러는 대답 대 신 계란말이를 집어들었다
중복이 일요일로 다가오자 담뱃가게 아저씨가 주인을 만나고 돌아갔다.
“복날, 나를 잡는다고?”
담뱃가게의 숫놈 발바리는 그늘에 누워 고개 들기도 귀찮은 듯 옆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 주인 아줌마, 절에 다녀. 그것보다 네가 더 이상한 놈이야.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너나 조심해. 애송아.”
그러나 개를 팔겠다고 먼저 이야기 한 사람은 담뱃가게 아저씨였고 이번에는 암놈을 사서 새끼를 내보겠다고 하였지만 아홉 살인 녀석이 주인을 볼 때마다 옆눈으로 흘려보는 것과 이빨이 다 빠져버린 탓에 끼니때마다 죽을 쑤어주어야만 하는 것이 진짜 파는 이유였다. 주인은 4만 원에 개값을 흥정한 후, 만원씩 추렴할 사람들을 많이 모으려고 했지만 흔들이, 멍석이, 다른 조의 두 명을 합쳐 네 명밖에 못 모았다. 오죽하면 헤글러에게도 이야기를 했을까마는 내가 들은 소리는, 돌아서면서 빈 지갑 주은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주인의 목소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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