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현의 <공순이> - 넷

2013. 7. 31. 09:41잡주머니

 

 

 

   먹으로 온 걸 보니 뱀눈, 또 서울 갔구나. 공순아, 아침 먹고 저기 보이는 임도에 올 라가 보자. 쉬는 날, 숙소에 있어 봐야 사람들이 술이나 먹자고 할 테고.”

    산림자원의 원활한 수송과 산불진화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임도는 비포장 도로임에도 트럭이 왕래할 정도로 넓었다. 길을 걸으면서 헤글러는 싸리가지 하나를 꺾어 들었지만 주인과 달리 뱀사냥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길 밑에 레이더 같이 생긴 위성 안테나와 큰 축사가 보였다.

 

   “공순아, 몇 년 전, 강원도에서 신혼부부가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추월하면서 먼지를 낸 다고 차를 갖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다투다가 신혼부부를 엽총으로 쏘았는데, 그곳도 동해안의 어느 임도이었단다.”

 

   길은 밋밋하게 이어지며 모자테처럼 산을 크게 휘감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도 없었고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계곡물이 보이는 곳에서 헤글러가 배낭을 벗어 놓았다. 차거운 물을 핥았다. 다시 한참을 걸은 후 폐광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이르자, 사람들이 작업한 결과가 한눈에 들어왔다. 밑둥이 잘라져 나무 위에서 말라죽은 넝쿨들은 갈색 반점으로 쏟아진 바둑알처럼 숲속에 뿌려져 있었다. 폐광 옆의 샛길을 타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공순아, 잡목들은 내다 팔아봐야 운반비도 안 나온다는데 굳이 임도를 만들 필요가 있을 까?”헤글러는 걸음을 멈추더니 임도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음, 유사시에 무장병력을 신속하게 이동, 매복시키기에는 훌륭한 도로다.”

일요일 밤늦게 택시에서 내린 주인이 비틀거리며 통나무 다리를 건너왔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마루에 벌렁 눕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 되는 게 없어, ㅈ또. 증말 싫다, 내가 싫어. 증말, 내가 싫다.”

 

   아침이 되어도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술병이 났다고 한다. 헤글러와 함께 통나무 다리를 건넜다. 점심을 먹고 식곤증에 빠져 있는데 무언가 어깨위로 기어갔다. 잽싸게 고개를 돌려 이빨로 깨물었다. 아작,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진저리를 쳤다. 노린재이었다. 역겨움에 고개를 흔들고, 혀를 풀에 비벼대며 침을 뱉어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속이 느글거리며 어지러웠다. 비틀거리며 헤글러를 찾아갔다. 낫으로 다래 덩쿨을 자르고 있던 헤글러의 눈이 둥그레졌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점심 먹은 게 체했냐? 아니라니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수통을 꺼내어 내 입에 갖다 대었다. 빌어먹을, 체한 게 아니라 노린재를 씹었다니까. 내가 한사코 입을 안 벌리자 강제로 입을 벌리고는 물을 부었다. 울컥거리며 곧바로 신물이 올라왔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옆구리가 아플 정도로 구역질을 했다. 뱃속에 든 것이 모두 나오자 조금 나아졌다. 짜식, 체했구나. 대꾸는커녕 서있기조차 힘들어,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은주사가 네 시 반에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여러분이 기다리던 봉급날인데, 삼십 분 일찍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기계톱조의 트럭 한 대가 읍내로 나간다고 하자, 헤글러가 나를 안고 짐칸에 올라탔다. 담뱃가게 앞에서 헤글러가 나를 내려 놓았다.

“먼저 올라가렴. 돈 찾아서 장 좀 봐오마.”

 

   후들거리는 다리로 통나무 다리를 건넜다. 총무의 에스페로 자동차 옆에 못 보던 승용차가 있다. 할머니네 막내아들 식구가 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집에 누워있는 나를 보더니, 네 살인 손녀가 개를 무서워한다며 대뜸 목사리를 채웠다. 아직도 어지럽다. 갑자기 흔들이가 방에서 튀어나와 맨발로 할머니 집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전화통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흔들이가 마루를 구르다시피 뛰어 나왔다.

“썩을 눔의 시키가 내 통장이랑 현금카드를 훔쳐갔어. 초, 초, 총무, 어디 있어? 통장 뒤 에 비밀번호를 적어 놓았는데.... 노, 노, 농협에 가야돼.”

목사리를 벗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쇠줄이 묶여있는 말뚝을 빼보려고 몸을 날렸다가 목이 꺾여 나동그라졌다. 목사리가 한 구멍만 넓었어도.... 지쳐서 숨을 헐떡이었다.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총무야?” 단장의 목소리.

“CCTV로 확인했다고? 경찰에 고발하고 들어온다구? 알았어.”

가슴 속에 숯불을 피워 놓은 듯하다. 입안이 바싹 말라 들어갔다. 달아나야 하는데, 달아나야 한다. 쇠줄을 물어뜯었다.

“썩을 눔의 개새끼, 죽어봐라.”

경찰서에서 돌아온 흔들이는, 목사리 대신 굵은 철사로 내 목을 조이고는 빨랫방망이를 들었다. 나는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댔지만, 흔들이의 매질을 모질게 할 뿐이었다. 총무가 흔들이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얼굴에 닿는 둔탁한 충격과 함께‘쏴아’하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칼로 찌르는 듯한 옆구리의 통증과 함께 눈을 떴다. 밤하늘의 별빛이 뿌옇게 보였고, 불 켜진 식당에서는 술 취한 흔들이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집으로 기어 들어가 어둠 속에서 숨을 헐떡였다. 목을 바짝 조이는 꺾인 철사줄. 입안의 비릿한 피 맛과 부러진 채 잇몸에 매달려 있는 송곳니.

흔들이의 고함 소리.

 

“개ㅈ 같은 썩을 눔 시끼가 통장에 천4백 원 남겨놓고 3백20만 원 다 꺼내갔더라구. 훔쳐 갈 돈이 없어 구렁이 알 같은 내 돈을 훔쳐가?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동갑내기끼리 잘 해보자고? 단장, 총무, 이 개새끼들, 이리 오라고 해. 8개월 동안 모은 내 돈, 어떻게 책임질 거야?”

 

   병신같은 놈, 책임은 무슨 책임, 통장 뒤에 비밀번호를 적어놓은 놈이 병신새끼지. 그때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주인의 행동을 눈치 못 챈 나도 병신이구. 왜 하필, 오늘, 할머니가 목줄을 걸었을까. 그래, 죽으려고 이렇게 되었나보다. 그래서 노린재도 깨물었고..... 흔들이가 나를 매달 테지. 삽으로 내 머리를, 아니. 숨이 끊어질 때까지 쳐다보겠지. 차라리 지금 매달았으면, 아니다. 아까 정신을 잃었을 때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흔들이의 고함소리가 그쳤다. 발자국 소리. 부어오른 코를 벌름거렸으나 피가 뭉쳐 막혔는지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누군가 내 집 앞에 섰다. 대뜸 두 손이 들어오더니 내 목을 잡았다. 다가올 고통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뚝, 소리와 함께 목을 죄던 아픔이 사라졌다.

“어서 가거라.”

눈물이 쏟아졌다. 헤글러의 손을 핥고 또 핥았다.

 

 

 

 

               단편소설 <공순이>

                                 이 태현

 

 

 

 

 

 

              당선 소감

 

   물색 고은 정선의 한 골짜기.

영출이와 함께 오랜만의 여름휴가를 즐기면서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재용이에게 당선자 발표 소식을 부탁했다.

얼마 안 되어 손전화의 벨이 울렸다.

 

   조금은 빨라진 목소리로 재용이는 모니터의 당선자 명단을 보고 있다며 퀴즈를 냈다.

무슨 상을 탄 것 같으냐고.

   이어진 전화통화에서 집사람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상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내 글을 읽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상금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처음 쓴 글에, 심사위원님들이 과분한 상을 주신 이유는 채찍질임을.

적의 공격을 기다리며, 실탄이 떨어진 소총에 착검하는 병사의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

아이들을 잘 키워준 아내와 통일 선봉대의 일원으로 도보순례를 하고 있는 정원이, 직장에서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을 예쁜 선미,

 

   밤늦게 집으로 찾아와 축하를 해준 강한피부과의 강진수 원장.

친우들과 나를 아껴 주시는 안 영등 형님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상을 주신 근로복지공단과 심사위원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