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밖 전라도사람 5] 29년째 단군제로 무교행(無敎行) 실현하는 지승스님


  우리는 한밝나라 자손…한반도 통일로 비상하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고구려(高句麗)의 동맹(東盟), 동예(東濊)의 무천(舞天)을 아시리라. 그날은 온 백성이 몇날 며칠을 음주가무(飮酒歌舞)로 지새웠다고 한다. 기리 이어졌어야 할 우리의 난장(亂場)같은 의식이 끊어짐을 안타깝게 여겨 악착같이 계승한 스님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지승(智勝). 속가의 성은 정(鄭)씨. 이미 ‘정지승’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와 관련한 굵직굵직한 저작들을 펴냈다. 연변대학 조선문제연구소에 적(籍)을 두고 민족의 시원을 찾아 중국 흑룡강일대와 대흥안령 일원 등 동북3성, 바이칼 등을 5년 동안 수도 없이 발품을 팔았다. 역저(力著) ‘삼신과 한국사상’(학민사 2004년) ‘삼신과 동양사상’(학민사 2004년) ‘한밝나라 이야기‘(다산글방 2001년) 등은 피 땀흘려 쓴 소산물이다. 80년 유례없는 법난(法難)에 분기탱천하여 쓴 ’피야 피야 三神피야‘(전예원 1985년), 6·29 거짓선언을 질타한 ’역사의 북극성을 찾아서‘(대원출판사 1990년), 국토 가정풍속의 급속한 변화를 염려한 여성론 ’해는 서에서 동으로 온다‘(고려원 1990년) 등은 부산물일 뿐이다.


   전남 해남에서 1947년 태어났다. 한국전쟁 때 전북 정읍으로 이사, 그곳에서 성장했다. 4308년(1975)년 문학수업을 작심하고 속리산으로 출가하여 이듬해 중이 되었다. 탈속한 종교인인지라 속가 인연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지만, 스님을 따르는 팬들 중엔 유난히 전라도 출신이 많다. 욕도 잘 하신다. ‘저런 호랭이 물어갈 인사가 있나’ 벌써 설법부터가 맛깔스런 전라도 사투리 일색인 것을. 운수행각을 거듭 하다 90년대초 충북 옥천채운산록(彩雲山麓) 가산사(佳山寺) 주지(住持)로 주석하게 된다. 산중턱의 커다란 도녀수(倒女樹·세세년년 ‘가산사 단군제’의 상징목이 될 것이다)를 발견한 것과 임진왜란 ‘금산 7백의총’의 의병대장 중봉 조헌(趙憲)·승병장 기허당 영규(靈圭)대사 사당이 있는 절이 마음에 들었던 때문이었던 듯하다. 가산사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됐다는 기록이 있으니 물경 1300년이 되었으나, 피폐된 지 오래여서 자그마한 암자같았다. 하지만 기(氣)가 유난히 센 절 주변은 임진왜란때 승병들의 호국도량(護國道場)이었다. 최근에야 없는 살림에 요사채를 짓느라 분주하다.


   지승스님은 가산사 주지로 두 가지 ‘엄청난 족적’을 남긴다. 해마다 10월초 무박2일로 거행하는 ‘단군제’(檀君祭) 조헌·영규대사 제향이 그것이다. 스님의 말에 의하면 금산 연곤평전투에서 승병 600명이, 일주일 전 청주성 탈환전투에서 200명이 더 순국했다. 검증된 순국의병 700명과 함께 모두 1500명의 순국충혼을 위하여 당시 호국도량 2만여평의 땅에 ‘위령탑’과 사당을 세워 국가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기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미 조계종 중앙종회 의결을 거쳐 국회에 청원 중인데, 언제나 그렇듯이 의롭고 뜻깊은 일에는 지지부진 소식이 없다. 고군분투하는 스님에게 하루빨리 반가운 소식이 당도하기를.


   이제 처음의 단군제 이야기로 돌아가자. 지승스님이 단기 4313년(1981년) 충북 금수산 정방사에서 박정만, 이윤기, 조영호, 김준일, 정양 등 막역한 지인(한 달 300여편의 시를 술과 함께 쏟아부은 박정만 시인과 그리스·로마신화 전문가이자 일류 번역가인 이윤기씨는 고인이 됐다) 몇 사람과 처음 제사를 지낸 것으로 시작된 단군제는 99년부터 시월 첫째주 토요일 채운산 중턱 당산나무 밑에서 다음날 해맞이굿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유림, 무교(巫敎) 등 이 땅의 모든 종교인이 ‘1년에 딱 한번’ 한 자리에 모여 국조(國祖) 단군할아버지를 기리며 ‘무교행’(無敎行)을 실현하고 있는 21세기의 유일한 ‘신시’(神市)가 바로 그곳.


   29회째인 지난해에도 전국에서 소리소문을 듣고 꾸역꾸역 올라오는 사람들이 초저녁에는 200여명이더니 만신굿이 열리는 자정쯤에는 얼추 400여명을 웃돌았다. 이청준 소설 ‘비화밀교’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지승스님의 총주관 아래 한국굿연구소 박흥주소장 연출로 진행되는 단군제는 풍물패의 들당산굿, 잡귀잡신굿이 벌어진 후 각 종교를 대표하는 참석자 중 한 분이 강신분향을 하고 참석자들의 참신재배, 초헌에 이어 고천문(告天文)이 낭송되고 아헌, 쑥과 마늘의 하사의식, 종헌과 첨잔이 덧붙여진다. 조영호시인의 고천문을 들어보자. 시대적 의미가 얼마나 깊고 유장한가.


          
               -단군제에 바칩니다

난 흐르고 싶다
세월처럼 유장하게 가두지 마라
목숨은 오로지 흐름일 뿐
삶에 주어진 이 신성함을
무섭게 파헤칠 때마다
통곡의 피눈물 흐르고
살아 있는 생명체들 죽어간다
본성이 맑은 어머니
달빛이고 젖줄인 것을
모롱이 여울목 어디쯤
올 고운 풀벌렛가락 사라지고
꽃떨기 하나 무수히 져 수놓던
물봉선, 뒤돌아 밟히는구나
평생을 함께 살아온
농지와 채소밭이 스러지는구나
이 땅의 우리 모두의 것
자라나는 미래의 것
제발 학살의 삽질을 멈춰라
살아 굽이치는 곡선을 죽여
직선되게 둑을 쌓는
허황한 뱃길이어선 안된다
살아 있는데 살리겠다고 죽이는
그 거짓과 오만함
순리를 거스리지 말라
재앙의 홍수가 범람하리니
난 죽어가고 있다
처참하게 파괴되고 있다
진실을 말하라
역사는 너희를 수장하리니 


   참석자 전원이 각자 소원을 비는 소지(燒紙)의식이 있고, 곧장 쾨쾨하게 삭은 홍어냄새가 진동한 가운데 음복(飮福)으로 이어진다. 군데군데 놓여 있는 10여개의 독(항아리)에는 막걸리가 그득그득 넘쳐난다. ‘수호지’의 노지심같은 외모의 헌출한 지승스님은 연신 술(그날만큼은 곡차라고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을 국자로 듬뿍듬뿍 들이켜신다. 영락없이 땡초(돌팔이중)같건만, 허술한 부분은 하나도 없다. 수녀, 목사, 청학동 유도갱정회 훈장들과 밤새 돌고 돌아간다. 한 아름이 넘는 나무둥지 불꽃이 널름거리는 가운데. 하나의 거대한 축제는 계속된다. 비원(悲願)인 한반도 통일의 꿈도 영글어간다.


   스님은 배달나라 환웅시대의 18대 임금 1565년과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기치를 높이 들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서 단군조선시대를 연 47대 임금 2096년을 합쳐 3661년(1년은 왕권이 교체되는 시기여서 뺀다)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스란히 멸실돼 있다고 통탄한다. 그 이전 환인천황이 이끈 7대 임금의 시대는 사료로 입증이 불가능하지만 ‘환단고기’ 등서 엄연히 확인되는 우리의 역사를 를 제외시키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혀를 끌끌 찬다. 아니 분노를 넘어 핏대를 엄청 높이신다. ‘환단고기’ ‘천부경’ ‘부도지’가 어찌 몽땅 위서(僞書)일 것인가. 그러기에 단군제 마당에는 72명의 임금 명호를 담은 깃발이 울긋불긋 나부끼며 보란 듯이 빛을 더하고 있다.


   한편 가산사에는 외항선원 생활 10년만에 어느날 고구려 역사에 미쳐 연변에서 자료를 5년 동안 수집하고 돌아와 200자 원고지 6300장에 살수대첩과 멸망 직후의 진실을 복원한 대하소설 ‘고구려’ 7권(세움 2005년)을 펴내 동북공정 놀음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 작가 인허(印虛) 정수인이 또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인허는 지승스님 속가의 아우이다. 오는 10월 어김없이 열리는 가산사 단군제에 동참해보지 않으시겠는가.


                                         글 : 최영록<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사진 : 윤상천<서울 삼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