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선생 시 모음

2017. 12. 28. 10:22


추사 김정희선생 시 모음 | 한시 모음 방

동암 2014.09.30 17:37


수선화-金正喜(김정희) 외 다수


수선화-金正喜(김정희) 

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한 점의 겨울 마음이 송이송이 둥글어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빼어구나.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뜰을 못 벗어나는데 

해탈한 신선을 맑은 물에서 정말로 보는구나 



●사국(謝菊)-김정희(金正喜) 고마운 국화 


暴富一朝大歡喜  폭부일조대환희

發花箇箇黃金毬  발화개개황금구 

最孤澹處穠華相  최고담처농화상

不改春心抗素秋  불개춘심항소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 너무나 기쁜데 

핀 꽃들 하나하나가 황금 구슬이구나. 

가장 외롭고 담백한 곳에 화려한 얼굴 

봄 마음 고치지 않고 가을 추위를 버틴다. 




●추모란(秋牧丹)-김정희(金正喜) 가을 모란 


紅紫年年迭變更    홍자년년질변경

牧丹之葉菊之英    모란지엽국지영

秋來富貴無如汝    추래부귀무여여

橫冒東籬處士名    횡모동리처사명 


홍색 자색 꽃으로 해마다 바꿔 피니 

모란의 꽃잎, 국화의 꽃봉오리로구나. 

가을날 부귀로는 너 같은 이 없으니 

동쪽 울타리 처사라고 함부로 부른다.



 ●중양황국(重陽黃菊)-김정희(金正喜) 중양절 국화 


黃菊蓓藿初地禪     황국배곽초지선

風雨籬邊託靜綠     풍우리변탁정록 

供養詩人須末後     공양시인수말후

襍花百億任渠先     잡화백억임거선 


누런 황금 꽃봉오리는 선의 첫 경지 비바람 

울타리 곁에서 청정한 인연 맺는다. 

시인을 공양함은 맨 마지막 일이나 

온갖 잡된 꽃에서도 가장 우두머리로다. 



●제촌사벽(題村舍壁)-김정희(金正喜) 시골집 벽에 제하다 


禿柳一株屋數椽     독류일주옥수연

翁婆白髮兩蕭然     옹파백발양소연 

未過三尺溪邊路     미과삼척계변로

玉䕽西風七十年     옥촉서풍칠십년 


한 그루 늙은 버들 두어 서까래 집에 / 禿柳一株屋數椽 

머리 하얀 영감 할멈 둘이 다 쓸쓸하네 / 翁婆白髮兩蕭然 

석자가 아니되는 시냇가 길 못 넘고서 / 未過三尺溪邊路 

옥수수 가을 바람 칠십 년을 살았다오 / 玉䕽西風七十年 


●송자하입연1(送紫霞入燕1)-김정희(金正喜) 연경에 가는 자하를 전송하며 


墨雲一縷東溟外     묵운일루동명외

秋月輪連臘雪明     추월륜련납설명 

聞證蘇齋詩夢偈     문증소재시몽게

苔岑風味本同情     태잠풍미본동정 


먹구름 한 오라기 동쪽 바닷가 

둥근 가을달 설 눈과 함께 밝았습니다 

소재의 시, 꿈,게송을 증거삼아 들어보니 

태잠의 풍기는 멋인양 본래 같은 마음이지요 



●송자하입연2(送紫霞入燕2)-김정희(金正喜) 


漢學商量兼宋學     한학상양겸송학

崇深元不露峯尖     숭심원불로봉첨 

已分儀禮徵今古     이분의예징금고

更證春秋杜歷添     경증춘추두력첨 


한학을 헤아리고 송학도 헤아려 높고 깊어 

봉우리 끝도 드러나지 않았지요 

의례를 나누어서 금ㆍ고문을 증빙하시니 

또 춘추를 증거하고 두력도 첨가하셨지요 



●송자하입연3(送紫霞入燕3)-김정희(金正喜) 


混侖元氣唐沿晉      혼륜원기당연진

篆勢蒼茫到筆尖      전세창망도필첨 

邕塔嵩陽拈一義      옹탑숭양념일의

都從稧帖瓣香添      도종계첩판향첨 


원기는 돌고 돌아 당이 진을 답습하니 / 混侖元氣唐沿晉 

자(篆字) 형세 아스라이 붓 끝에 옮겨 왔네 / 篆勢蒼茫到筆尖 

옹탑이랑 숭양이 일의(一義)란 걸 추켜드니 / 邕塔嵩陽拈一義 

모두가 계첩에서 판향을 더한 걸세 / 都從稧帖瓣香添 



●송자하입연4(送紫霞入燕4)-김정희(金正喜) 


詩境軒中風雨驚      시경헌중풍우경

南窓埽破鳳凰翎      남창소파봉황령 

江秋史去留完璧      강추사거유완벽

黃小松來搨石經      황소송래탑석경 


시경헌 가운데 바람비를 놀랬으니 / 詩境軒中風雨驚 

남녘 창엔 봉황 꼬리 발라서 깨뜨렸네 / 南窓埽破鳳凰翎 

강추사는 떠났는데 완벽은 남아 있고 / 江秋史去留完璧 

황소송은 찾아 와서 석경을 탑본했네 / 黃小松來搨石經 



●송자하입연5(送紫霞入燕5)-김정희(金正喜) 


樓前山日澹餘紅      루전산일담여홍

快雪粉箋說異同      쾌설분전설이동 

萬里許君靑眼在      만리허군청안재

曾於扇底覓春風      증어선저멱춘풍 


누대 앞 산의 해는 남은 붉빛 묽게 하고 

분전지(粉箋紙)와 쾌설이 같고 다름을 말했지요 

만리 먼 곳 그대에게 청안 있음을 인정하니 

일찍이 부채 그림 아래서 봄바람을 찾았었지요 



●송자하입연6(送紫霞入燕6)-김정희(金正喜) 


百摹雨雪摠塵塵      백모우설총진진

又一九霞洞裏春      우일구하동리춘 

顴右誌傳松下供      권우지전송하공

何如子固硏圖人      하여자고연도인 


백 번 모한 우설은 모두 다 각기 각기 / 百摹雨雪摠塵塵 

또 하나는 구하동의 막대 짚은 봄이로세 / 又一九霞洞裏春 

바른 관골 사마귀는 송하공양 전해오니 / 顴右誌傳松下供 

조자고(趙子固)의 벼루에 그린 것과 어떠하뇨 / 何如子固硏圖人 



●송자하입연7(送紫霞入燕7)-김정희(金正喜) 


東坡石銚今猶在      동파석요금유재

圖壓蘇齋書畵船      도압소재서화선 

淮泗道中明月影      회사도중명월영

松風夢罷尙涓涓      송풍몽파상연연


 동파 선생 석조, 지금도 남아 있어 

그 그림이 소재의 서화선을 눌렀다 

회사 땅의 길, 밝은 달 그림자 

솔바람에 꿈을 깨니 여전히 아른아른 


●송자하입연8(送紫霞入燕8)-김정희(金正喜) 


三百年來無此翁      삼백년래무차옹

石帆亭上聞宗風      석범정상문종풍 

團成八月生辰日      단성팔월생진일

祝嘏碧雲紅樹中      축하벽운홍수중 


삼백 년이 가는 동안 이 늙은이 또 있으리 / 三百年來無此翁 

석범이라 정자 위에 종풍을 들었다오 / 石帆亭上聞宗風 

팔월이라 생신 날에 모임이 원만하여 / 團成八月生辰日 

푸른 구름 붉은 숲 그 속에서 복빌었네 / 祝嘏碧雲紅樹中 



●송자하입연9(送紫霞入燕9)-김정희(金正喜) 


自從實際覰精魂       자종실제처정혼

底事滄浪禪理論       저사창랑선리론 

一世異才收勿騁       일세이재수물빙

十年浮氣掃無痕       십년부기소무흔 


실지를 밟아 가서 정혼을 엿보는데 / 自從實際覰精魂 

무슨 일로 창랑은 선리를 따지는지 / 底事滄浪禪理論 

한 세상의 이재(異才)는 달리려 들지 말고 / 一世異才收勿騁 

십 년의 뜬 기운은 흔적 없이 쓸어 내야 / 十年浮氣掃無痕 



●송자하입연10(送紫霞入燕10)-김정희(金正喜) 


唐碑宋槧萃英華      당비송참췌영화

漢畫尤堪對客誇      한화우감대객과 

拱璧河圖曾過眼      공벽하도증과안

雪鴻怊悵篆留沙      설홍초창전유사 


당비라 송참이라 영화가 다 모이고 / 唐碑宋槧萃英華 

한화는 무량사상(武梁祠像) 손들에게 더욱 자랑할 만하네 / 漢畫尤堪對客誇 

공벽 같은 하도는 진작 눈을 거쳤는데 / 拱璧河圖曾過眼 

봄 눈에 찍혀 있는 기럭 발톱 서글프네 / 雪鴻怊悵篆留沙 



●제초의불국사시후(題草衣佛國寺詩後)-김정희(金正喜) 초의의 불국사 시 뒤에 적다 


蓮地寶塔法興年     련지보탑법흥년

禪榻花風一惘然     선탑화풍일망연 

可是羚羊掛角處     가시영양괘각처

誰將怪石注淸泉     수장괴석주청천 


연지의 다보탑이 법흥의 연대라서 / 蓮地寶塔法興年 

선탑(禪榻)의 꽃바람이 한결같이 아득하이 / 禪榻花風一惘然 

이게 바로 영양이 뿔을 걸어 놓은 데라 / 可是羚羊掛角處 

어느 누가 괴석에다 맑은 샘을 쏟았는고 / 誰將怪石注淸泉 



●제담국헌시후(題澹菊軒詩後)-김정희(金正喜) 담국헌 시 뒤에 쓰다 


卄四品中澹菊如 人功神力兩相於 입사품중담국여 인공신력양상어 墨緣海外全收取 讀遍君家姊妹書 묵연해외전수취 독편군가자매서 이십사시품(詩品) 속에 담담하기 국화마냥 / 卄四品中澹菊如 사람 공과 신의 힘 둘이 서로 알 배었네 / 人功神力兩相於 해외에서 오로지 묵연을 수확하여 / 墨緣海外全收取 그대 집 자매의 글 두루 다 읽었다오 / 讀遍君家姊妹書 ●기상연천장(寄上淵泉丈)-김정희(金正喜) 연천 홍석주 어른께 부쳐 올립니다 萬壑千峯悵獨遊 白雲一抹夢中秋 만학천봉창독유 백운일말몽중추 若於此境甘枯寂 還敎人人羨八州 약어차경감고적 환교인인선팔주 만학이라 천봉을 혼자서 노닐자니 / 萬壑千峯悵獨遊 흰구름 한 가닥은 꿈속의 가을일레 / 白雲一抹夢中秋 만약에 이 경(境)에서 고적이 달갑다면 / 若於此境甘枯寂 사람마다 도리어 팔주를 부뤄하리 / 還敎人人羨八州 ●중흥사차황산1(重興寺次黃山1)-김정희(金正喜) 중흥사에서 황산의 시를 차운하다 上方明月下方燈 法界應須不已登 상방명월하방등 법계응수불이등 鍾鼎雲林非二事 名山空自與殘僧 종정운림비이사 명산공자여잔승 상방에는 달, 하방에는 등불 법계란 모름지기 쉼 없이 오르는 것 벼슬과 처사 두 가지 다른 일 아닐텐 명산은 부질없이 남은 중만 허여하네 ●중흥사차황산2(重興寺次黃山2)-김정희(金正喜) 十年筇屐每同君 衣上留殘幾朶雲 십년공극매동군 의상류잔기타운 吾輩果無諸漏未 空山風雨只聲聞 오배과무제누미 공산풍우지성문 십년이라 막대 신을 그대와 함께 하니 / 十年筇屐每同君 옷 위에는 몇 송이 휜구름이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 우리들은 모두 누(漏)가 과연 다 없어졌나 / 吾輩果無諸漏未 공산의 비바람은 다만지 성문이래 / 空山風雨只聲聞 ●송종성사군1(送鍾城使君1)-김정희(金正喜) 종성 사군을 전송하다 秋風送客出邊頭 蓋馬山光着遠愁 추풍송객출변두 개마산광착원수 天上玉堂回首處 雙旌應過幘溝婁 천상옥당회수처 쌍정응과책구루 가을 바람 객을 보내 변방으로 떠나가니 / 秋風送客出邊頭 개마산 푸른 빛에 먼 시름 엉기리다 / 蓋馬山光着遠愁 천상이라 옥당에 고개를 돌리는 날 / 天上玉堂回首處 두 깃발은 응당이 적구루를 지날 거요 / 雙旌應過幘溝婁 ●송종성사군2(送鍾城使君2)-김정희(金正喜) 苔篆剝殘漫古墟 高麗之境問何如 태전박잔만고허 고려지경문하여 尋常石砮行人得 此是周庭舊貢餘 심상석노행인득 차시주정구공여 이끼 글자 부스러진 아득한 옛 터전에 / 苔篆剝殘漫古墟 고려 나라 지경은 묻노라 어떠하뇨 / 高麗之境問何如 예사인 양 행인이 석노 촉을 주어가니 / 尋常石砮行人得 이게 바로 주 나라에 공납한 나머질세 / 此是周庭舊貢餘 ●제라양봉매화정(題羅兩峯梅花幀)-김정희(金正喜) 나양봉 화백의 매화정에 쓰다 朱草林中綠玉枝 三生舊夢證花之 주초림중녹옥지 삼생구몽증화지 應知霧夕相思甚 惆悵蘇齋畫扇時 응지무석상사심 추창소재화선시 주초의 덤불 속에 푸른 옥 한가지는 / 朱草林中綠玉枝 삼생이라 옛 꿈을 화지에게 입증했네 / 三生舊夢證花之 응당 알리 안개낀 밤 상사가 하도 한 걸 / 應知霧夕相思甚 소재에 부채 그린 그때를 그리면서 / 惆悵蘇齋畫扇時 ●남굴(南窟)-김정희(金正喜) 千秋幽怪歎燃犀 肅肅靈風吹暗溪 천추유괴탄연서 숙숙영풍취암계 彈指龍蛇皆化石 燈光猶作紫虹霓 탄지용사개화석 등광유작자홍예 남굴에 천년 숨은 괴물, 연서가 두려워 탄식하고 신령한 바람 을씨연럽게 어두운 개울로 불어온다 어느새 용과 뱀들 모두 돌로 바뀌었고 등잔 불빛은 오히려 자색 무지개를 만드는구나 ●설야우음(雪夜偶吟)-김정희(金正喜) 눈오는 밤 우연히 읊다 酒綠燈靑老屋中 水仙花發玉玲瓏 주록등청노옥중 수선화발옥영롱 尋常雪意多關涉 詩境空濛畫境同 심상설의다관섭 시경공몽화경동 술 푸르고 등 파랗다 낡아 빠진 띠집 속에 / 酒綠燈靑老屋中 수선화 중얼중얼 영롱한 옥이로세 / 水仙花發玉玲瓏 심상한 저 설의도 관계가 많이 되니 / 尋常雪意多關涉 시경은 공몽해라 화경도 마찬가지 / 詩境空濛畫境同 ●옥미인(玉美人)-김정희(金正喜) 옥미인초 裁玉方能敎性眞 美人强得艶情勻 재옥방능교성진 미인강득염정균 恰如五色羅浮蝶 放繭今朝滿院春 흡여오색나부접 방견금조만원춘 옥으로 다듬은 성정 진실게 하고 미인을 끌어다가 고운 정념을 고루었구나 흡사 저 다섯 빛깔의 나부산 나비 떼 같아 고치 뚫고 나온 오늘 아침, 집안에 가득한 봄빛 ●중양황국(重陽黃菊)-김정희(金正喜) 중양절 황국화 黃菊蓓蕾初地禪 風雨籬邊託靜緣 황국배뢰초지선 풍우리변탁정연 供養詩人須末後 襍花百億任渠先 공양시인수말후 잡화백억임거선 망울 맺은 노란 국화 초지의 선인 듯이 / 黃菊蓓蕾初地禪 비 바람 울타리 가 정연을 의탁했네 / 風雨籬邊託靜緣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 供養詩人須末後 백억의 잡화 속에 널 먼저 꼽을밖에 / 襍花百億任渠先 ●봉령사제시요선(奉寧寺題示堯仙)-김정희(金正喜) 봉선사에서 요선에게 써 보임 野寺平圓別一區 遙山都是佛頭無 야사평원별일구 요산도시불두무 虎兒筆力飛來遠 淸曉圖成失舊樵 호아필력비래원 청효도성실구초 들판에 있는 절, 평평하고 둥글어 특별한 이구역 먼 봉우린 도무지 불두라고는 전연 없도다. 송나라 호아의 필력이 멀리도 날아 와서 청효도가 이뤄지니 옛 무본 무색하도다 ●[戲題示優曇 曇方踝腫]김정희(金正喜) 희제하여 우담에게 보이다. 담이 지금 복숭아뼈에 종기가 났다 抹却毗邪示疾圖 佛瘡祖病一都盧 말각비사시질도 불창조병일도로 法華藥草還鈍劣 不是藥者採來無 법화약초환둔열 불시약자채래무 비야의 병을 없애고 병 그림을 보여주니 불의 창조의 병이 하나의 돌림병이 되었도다 법화의 약초에조차 도리어 우둔열등하니 약 캐는 자가 약을 캐오지 않아서가 아닐까 ●용원효고사담병재천우희속시담(用元曉故事曇病在腨又戲續示曇)-김정희(金正喜) 담 병이 장딴지에 있기에 원효 고사를 쓰고 또 장난으로 적어서 담에게 보이다 四百四病無是病 八十毒草無渠藥 사백사병무시병 팔십독초무거약 可是今日拭瘡紙 金剛三昧經的的 가시금일식창지 금강삼매경적적 사백 네 가지 병에 이 병은 없거니와 팔십 가지 독초에도 저놈의 약은 없도다. 도리어 오늘날에 부럼 닦은 종이에는 금강의 삼매경이 뚜렷이 적혀있도다 ●희증만허(?贈晩虛)-김정희(金正喜) 만허에게 재미삼아 주다 涅槃魔說送驢年 只貴於師眼正禪 열반마설송려년 지귀어사안정선 茶事更兼叅學事 勸人人喫塔光圓 차사경겸참학사 권인인끽탑광원 열반이라 마설로 여년을 다 보내니 / 涅槃魔說送驢年 다만 스님에겐 눈 바른 선이 귀해 / 只貴於師眼正禪 차 일에다 아울러 학의 일을 참하노니 / 茶事更兼叅學事 마시거든 둥그런 저 탑광을 마셔다오 / 勸人人喫塔光圓 ●희차아배희우(?次兒輩喜雨)-김정희(金正喜) 희롱삼아 아배의 “희우”에 차운하다 村橋呑漲汎村流 上下濃靑處處柔 촌교탄창범촌류 상하농청처처유 太守力能廻野色 婆娑數樹効神休 태수력능회야색 파사수수효신휴 마을 물 크게 불어 마을 다리 삼켰어라 / 村橋呑漲汎村流 위아래로 짙고 푸러 곳곳마다 부드럽네 / 上下濃靑處處柔 원님의 힘이 능히 들 빛을 돌려 노니 / 太守力能廻野色 우쭐대는 두어 나무 아름다움 바치누나 / 婆娑數樹効神休 ●즉사(卽事)-김정희(金正喜) 즉흥적으로 짓다 日見過橋幾百人 何曾橋力減橋身 일견과교기백인 하증교력감교신 丁之畚土添橋者 荒落山川報政新 정지분토첨교자 황락산천보정신 몇 백 명이 날마다 다리를 지나는데 / 日見過橋幾百人 다리 힘이 언제 한 번 줄어든 일 있었던고 / 何曾橋力減橋身 장정이라 흙 담아 다리에 붓는 자는 / 丁之畚土添橋者 황락한 산과 내[川]에 새론 정사 알려주네 / 荒落山川報政新 ●혜백장귀병회심무료취기수중구백호서증(蕙百將歸病懷甚無?取其袖中舊白毫書贈)-김정희(金正喜) 혜백이 돌아가려 하므로 병이 난 마음 무료하여 그 소매 속에서 예전의 백호필을 취하여 써서 주다 山川時雨兩? 晴 五色毫光漫去程 산천시우양공청 오색호광만거정 料得世間無熱處 一千里洽萬蟬聲 요득세간무열처 일천리흡만선성 때때로 산천에 비 지나가니, 두 지팡이 깨끗하고 오색 붓털 광채 일어, 가는 길에 가득 차는구나. 헤아려보니 세상에는 더운 곳이 없을 것 같아 일천리 기나 긴 길에 수만 마리 매미소리 가득 하다 ●과우촌사(果寓村舍)-김정희(金正喜) 과천에 있는 초가집 寒女縣西擁病居 溪聲徹夜甚淸虛 한여현서옹병거 계성철야심청허 羸牛劣馬橋前路 畫科蒼茫也屬渠 리우렬마교전로 화과창망야속거 兩山靑綠夾晴開 村氣泥醺盡野獃 양산청녹협청개 촌기니훈진야애 不覺平生牛後耻 城中日日販柴廻 불각평생우후치 성중일일판시회 한녀라 고을 서쪽 병을 끼고 사노라니 / 寒女縣西擁病居 밤을 새는 시내 소리 몹시도 청허하네 / 溪聲徹夜甚淸虛 다리 앞 한길가의 여윈 소랑 조랑말은 / 羸牛劣馬橋前路 창망한 그림 재료 저 들의 차지로군 / 畫科蒼茫也屬渠 양쪽 산 파릇파릇 갠 날 끼고 트였는데 / 兩山靑綠夾晴開 마을 기운 무더워라 모두가 흐리멍텅 / 村氣泥醺盡野獃 우후의 부끄럼을 평생에 모르는 듯 / 不覺平生牛後耻 성안에 가 날마다 땔감 팔고 돌아오네 / 城中日日販柴廻 ●도망(悼亡)-김정희(金正喜) 죽음을 슬퍼하다 那將月姥訟冥司 來世夫妻易地爲 나장월모송명사 래세부처역지위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 아사군생천리외 사군지아차심비 어쩌면 저승에 가 월로에게 애원하여 / 那將月姥訟冥司 내세에는 그대와 나 땅을 바꿔 태어나리 / 來世夫妻易地爲 나 죽고 그대 살아 천리 밖에 남는다면 / 我死君生千里外 이 마음 이 슬픔을 그대가 알리마는 / 使君知我此心悲 ●희증오대산창렬(?贈吳大山昌烈)-김정희(金正喜) 대산 오창렬에게 재미로 주다 未窺一字岐軒書 白喫人間酒麵猪 미규일자기헌서 백끽인간주면저 慾速他年地獄罰 陽陽跨馬又騎驢 욕속타년지옥벌 양양과마우기려 다른 해에 지옥에 빨리 가고 싶은지 버젓이 말을 타고 또 나귀를 타는구나 ●설제창명서철규선(雪霽窓明書鐵?扇)-김정희(金正喜) 눈이 개어 창이 밝아 철규의 부채에 글을 쓰다 雪後烘晴暖似還 夕陽漫漫小窓間 설후홍청난사환 석양만만소창간 稻堆庭畔高於塔 直對西南佛鬘山 도퇴정반고어탑 직대서남불만산 눈 개자 해 쪼이니 다슨 철 돌아온 듯 / 雪後烘晴暖似還 눈부신 작은 창에 석양이 느릿느릿 / 夕陽漫漫小窓間 뜨락의 나락 벼눌 탑보다 더 높아서 / 稻堆庭畔高於塔 바로 저 서남쪽 불만산을 마주쳤네 / 直對西南佛鬘山 ●戲贈浿妓竹香2(희증패기죽향2)-金正喜(김정희) 패성 기생 죽향에게 鴛鴦七十二紛紛 畢竟何人是紫雲 원앙칠십이분분 필경하인시자운 試看西京新太守 風流狼藉舊司勳 시간서경신태수 풍류낭자구사훈 원앙새 일흔인데 두 마리가 어지러워 필경에 어느 사람이 바로 곧 이원의 자운인가 서경의 새 태수님 한번 보게나 풍류 소문 낭자한 옛날의 두목이란다 ●戲贈浿妓竹香1(희증패기죽향1)-金正喜(김정희) 패성 기생 죽향에게 日竹亭亭一捻香 歌聲抽出綠心長 일죽정정일념향 가성추출녹심장 衙蜂欲覓偸花約 高節那能有別腸 아봉욕멱투화약 고절나능유별장 햇빛 아래 정정한 저 대나무 일념향이라 노랫소리가 푸른 마음에서 길게도 뽑혀 나왔구나 장 보는 벌들이 꽃 훔칠 기약을 찾고자하나 높은 절개라한들 어찌 다른 특별한 마음 있을까 ●咏棋(영기)-金正喜(김정희) 바둑판을 읊다 局面南風冷暖情 古松流水任縱橫 국면남풍냉난정 고송유수임종횡 蓬萊淸淺非高着 橘裏丁丁鶴夢輕 봉래청천비고착 귤리정정학몽경 바둑 판 위의 남풍은 차고도 따뜻한데 고송에 흐르는 물은 종횡으로 마음대로구나 봉래 바다 맑고도 옅으니 높은 곳이 아니니 유자 속의 바둑돌 부딪는 소리 학의 꿈이 가볍구나 ●憶吳秀才1(억오수재1)-金正喜(김정희) 오수제를 생각하다 顯節祠前記舊遊 百年世事不勝愁 현절사전기구유 백년세사불승수 淡雲微雨依然處 佳菊衰蘭又一秋 담운미우의연처 가국쇠란우일추 현절사 사당 앞의 옛 놀이를 기억하니 백 년 세상일에 시름을 못 이긴다. 옅은 구름 보슬비 아득한 그곳은 아름다운 국화 시들은 난초 또 가을이겠지 ●憶吳秀才2(억오수재2)-金正喜(김정희) 木正西風菊正霜 一簾秋影澹詩坊 목정서풍국정상 일렴추영담시방 翻憐佳境還愁絶 却向天涯欲斷腸 번련가경환수절 각향천애욕단장 飴山風雅幷蓮洋 明月寒江聽佛香 이산풍아병련양 명월한강청불향 那識觀音閣裏夜 一燈秋夢久回皇 나식관음각리야 일등추몽구회황 나무에는 서녘 바람 국화에는 하얀 서리 / 木正西風菊正霜 발에 가득 가을 영자 담담한 시방(詩坊)일레 / 一簾秋影澹詩坊 가련타 좋은 곳이 도리어 시름차니 / 翻憐佳境還愁絶 하늘가를 바라보면 애가 정히 끊기련다 / 却向天涯欲斷腸 이산의 풍아에다 연양마저 아울러라 / 飴山風雅幷蓮洋 밝은 달 차운 강에 불(佛)의 향을 들었다오 / 明月寒江聽佛香 뉘라서 알았으리 관음각 한밤중에 / 那識觀音閣裏夜 외론 등불 가을 꿈이 오래도록 서성댈 줄 / 一燈秋夢久回皇 ●憶吳秀才3(억오수재3)-金正喜(김정희) 五日難於十載離 酒風詩雨亂愁思 오일난어십재리 주풍시우란수사 奚囊定與雲囊滿 持贈猶堪自悅怡 해낭정여운낭만 지증유감자열이 닷새 동안 이별이 십 년 이별보다 어려워 술의 바람과 시의 비에 내 근심 어지럽히네 해낭은 반드시 운랑과 가득 찼으리니 갖져다 주면 혼자서 즐기고 기뻐하리네 ●金仙臺1(금선대1)-金正喜(김정희) 訣十六條自正陽 熙川之郭復堂堂 결십육조자정양 희천지곽복당당 西山法印元同偈 去證臺前一炷香 서산법인원동게 거증대전일주향 십육 조의 비결은 정월부터인데 희천의 곽이 있어 다시금 당당하다 서산의 법인은 원래 같은 게이니 가거들랑 누대 앞에 일주향을 피우게나 ●金仙臺2(금선대2)-金正喜(김정희) 萬木森沉古逕苔 韓無畏後幾人來 만목삼침고경태 한무외후기인래 山中知有餘丹在 直攝神光鶴背廻 산중지유여단재 직섭신광학배회 온갖 나무 우거져라 이끼 쩔은 묵은 길에 / 萬木森沉古逕苔 한 무외 지나간 뒤 몇 사람이 찾아왔노 / 韓無畏後幾人來 알괘라 이 산 속에 금단이 남아 있어 / 山中知有餘丹在 신광을 곧장 끼고 학 등에서 돌아오니 / 直攝神光鶴背廻 ●金仙臺3(금선대3)-金正喜(김정희) 一筇一屐禮金仙 的的誰傳弘正禪 일공일극예금선 적적수전홍정선 試放毗盧峯頂眼 空山雨雪摠眞詮 시방비로봉정안 공산우설총진전 나막신 막대 하나 금선에 예배하니 / 一筇一屐禮金仙 홍정 선사 도력을 뉘 분명히 전한다지 / 的的誰傳弘正禪 비로봉 꼭대기서 눈 한번 내쳐보소 / 試放毗盧峯頂眼 공산의 비와 눈이 무두가 진전인 걸 / 空山雨雪摠眞詮 ●題泛?圖(제범사도)-金正喜(김정희) 범사도의 화제를 붙이다 秋靜天門兩扇開 千年又見一槎來 추정천문양선개 천년우견일사래 女牛莫敎無端犯 此老新從五嶽回 여우막교무단범 차로신종오악회 고요한 가을 하늘 두 짝 문이 열렸는데 / 秋靜天門兩扇開 뗏목 하나 떠오는 걸 천년에 또 보겠구려 / 千年又見一槎來 견우 직녀 무단히 범접했다 생각 마소 / 女牛莫敎無端犯 이 늙은이 새로 저 오악에서 돌아왔네 / 此老新從五嶽回 ●玉筍峯(옥순봉)-金正喜(김정희) 照映空江月一丸 如聞萬籟起蒼寒 조영공강월일환 여문만뢰기창한 人間艸木元閒漫 不學芙蓉與牧丹 인간초목원한만 불학부용여목단 둥그른 저 달 한 덩이 빈 강에 비쳐오니 / 照映空江月一丸 창량(蒼涼)한 그 가운데 만뢰가 들리는 듯 / 如聞萬籟起蒼寒 인간의 초목들은 본래가 수다라서 / 人間艸木元閒漫 부용이랑 모란 따윈 배우지 않았구려 / 不學芙蓉與牧丹 ●隱仙臺(은선대)-金正喜(김정희) 黃葉空山打角巾 長歌何處采芝人 황엽공산타각건 장가하처채지인 鞭鸞駕鶴還多事 旣是神仙又隱淪 편란가학환다사 기시신선우은윤 빈 산의 누른 나뭇잎 각건을 두들기며 떨어지고 긴 노래 들리는데 어느 곳에 지초 캐는 사람 이 있는가 난새 몰고 학을 타는 것도 도리어 귀찮은 일 이미 신선이 되었는데 또 숨어살기조차 하는구나 ●詠雨1(영우1)-金正喜(김정희) 비를 노래함 入雨山光翠合圍 桃花風送帆風歸 입우산광취합위 도화풍송범풍귀 春鴻程路無遮礙 纔見南來又北飛 춘홍정로무차애 재견남래우북비 빗속에 든 산빛이 푸르러 에웠는데 / 入雨山光翠合圍 도화 바람 돛바람을 보내어 돌아가네 / 桃花風送帆風歸 봄 기러기 노정은 걸릴 게 전혀 없어 / 春鴻程路無遮礙 남으로 오자마자 북으로 또 나는구만 / 纔見南來又北飛 ●詠雨2(영우2)-金正喜(김정희) 時雨山川破久慳 東風力斡曉雲還 시우산천파구간 동풍력알효운환 一絲一點皆膏澤 草木心情恰解顔 일사일점개고택 초목심정흡해안 철 비 만나 산천이 오랜 침묵 깨뜨리니 / 時雨山川破久慳 샛바람이 새벽구름 힘껏 몰고 돌아오네 / 東風力斡曉雲還 한 오라기 한 방울도 모두가 고택이라 / 一絲一點皆膏澤 풀과 나무 심정도 일제히 우쭐우쭐 / 草木心情恰解顔 ●詠雨3(영우3)-金正喜(김정희) 春雨冥濛夕掩關 一犁田水想潺湲 춘우명몽석엄관 일리전수상잔원 任他笑吠黎家路 坡老當年戴笠還 임타소폐여가로 파노당년대립환 봄비는 아득아득 사립 닫힌 저녘 나절 / 春雨冥濛夕掩關 한 쟁기의 논 물은 아마 좔좔 흐르겠군 / 一犁田水想潺湲 웃건 짖건 내 맡겨라 여가의 마을길에 / 任他笑吠黎家路 당년의 동파 노인 삿갓 쓰고 돌아오네 / 坡老當年戴笠還 ●喚風亭(환풍정)-金正喜(김정희) 喚風亭接望洋臺 俯見紅毛帆影來 환풍정접망양대 부견홍모범영래 眼界商量容一吸 兩丸出入掌中杯 안계상량용일흡 양환출입장중배 환풍정 올라보니 망양대와 맞닿고 굽어 보니 붉은 돛단배 그림자 떠오네 눈 앞의 물을 보니 단번에 마실 것 같은데 손 가운데 술잔에 해와 달이 떠고 진다네 ●秋日晩興1(추일만흥1)-金正喜(김정희) 가을철 늦은 흥취 稻黃蟹紫過京裏 秋興無端鴈□邊 도황해자과경리 추흥무단안□변 最是漁亭垂釣處 任放沙禽自在眠 최시어정수조처 임방사금자재면 누런 벼와 자색 개 나는 좋은 철을 서울에서 지내자니 기러기 날아가는 물가에 가을 흥이 끝이 없도다. 고기 잡는 누이라, 저기 저 낚싯줄 늘인 곳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모랫가 새는 저절로 졸고 ●秋日晩興2(추일만흥2)-金正喜(김정희) 銀河當屋柳旗斜 喜事明朝占燭華 은하당옥유기사 희사명조점촉화 佳客來時多酒食 夜光生白吉祥家 가객래시다주식 야광생백길상가 은하수 지붕에 이르니 버들 깃대 빗겨서고 좋은 일 아침에 있다고 촛불이 아려주는구나. 좋은 손님 오실 때는 술과 밥이 많아야지 상서롭고 길한 집엔 밤 빛도 희게 비치는구나 ●秋日晩興3(추일만흥3)-金正喜(김정희) 碧花無數出堦頭 占斷山家第一秋 벽화무수출계두 점단산가제일추 榴後菊前容續玩 壯元紅是竝風流 류후국전용속완 장원홍시병풍류 이끼 꽃 수도 없이 댓돌머리 솟아 나니 / 碧花無數出堦頭 산 집의 제일 가을 짐작하고 남겠구만 / 占斷山家第一秋 석류 뒤 국화 앞에 구경거리 잇따르니 / 榴後菊前容續玩 장원홍 저게 바로 풍류를 아울렀네 / 壯元紅是竝風流 ●鵲巢(작소)-金正喜 (김정희) 까치집 喜鵲喳喳繞屋茆 窓南直對一丸巢 희작사사요옥묘 창남직대일환소 新來不唾靑城地 透頂恩光敢自抛 신래불타청성지 투정은광감자포 기쁜 까치 째작째작 띠 집을 맴돌아라 / 喜鵲喳喳繞屋茆 창 남쪽의 한 덩이 둥지를 마주했네 / 窓南直對一丸巢 청성 땅을 새로 오면 침도 감히 못 뱉는데 / 新來不唾靑城地 정상 뚫는 은광을 언감히 포기하리 / 透頂恩光敢自抛 ●上仙巖(상선암)-金正喜(김정희) 상선암 行行路轉峯廻處 一道淸泉天上來 행행로전봉회처 일도청천천상래 縱使有方能出世 異時歸海亦蓬萊 종사유방능출세 이시귀해역봉래 걷고 또 걸으니 길은 굽고 산봉우리 돌아드는 곳 한 가닥 맑은 샘물 천상에서 흘러오네 아무리 방법이 있어 세상에 나간다 하더라도 훗날 바다로 나간다면 또한 봉래이리라 ●北壁(북벽)-金正喜 (김정희) 兩山斧劈一孤亭 步屧何曾到石屛 양산부벽일고정 보섭하증도석병 十載縱令趨紫陌 看人從此眼常靑 십재종령추자맥 간인종차안상청 짜개진 두 산 사이 외로운 정자 하나 / 兩山斧劈一孤亭 어느제 발걸음이 돌병풍에 이르렀노 / 步屧何曾到石屛 십 년을 제아무리 번화장에 달린대도 / 十載縱令趨紫陌 사람 보면 이제부터 눈이 항상 푸르리라 / 看人從此眼常靑 ●庭草(정초)-金正喜(김정희) 뜰에 난 풀 一一屐痕昨見經 蒙茸旋復被階庭 일일극흔작견경 몽용선복피계정 機鋒最有春風巧 纔抹紅過又點靑 기봉최유춘풍교 재말홍과우점청 하나 하나 신발 자국 어제 지난 나머진데 / 一一屐痕昨見經 덥수룩이 그새 자라 섬 뜰을 입혔구나 / 蒙茸旋復被階庭 기봉은 가장 이 봄바람이 교묘하여 / 機鋒最有春風巧 붉은 색 발라 놓고 또 푸른 색 점을 찍네 / 纔抹紅過又點靑 ●村舍(촌사)-金正喜(김정희) 시골집 數朶鷄冠醬瓿東 南瓜蔓碧上牛宮 수타계관장부동 남과만벽상우궁 三家村裏徵花事 開到戎葵一丈紅 삼가촌리징화사 개도융규일장홍 장독대 저 동쪽에 맨드라미 두어 송이 / 數朶鷄冠醬瓿東 호박 넝쿨 새파랗다 소 외양을 타올랐네 / 南瓜蔓碧上牛宮 서너 집 마을 속에 꽃 일을 찾아보니 / 三家村裏徵花事 융규라 일장홍이 활짝 피어 있군그래 / 開到戎葵一丈紅 ●鷄鳴(계명)-金正喜(김정희) 닭이 울다 年少鷄鳴方就枕 老年枕上待鷄鳴 년소계명방취침 전두삼십여년사 轉頭三十餘年事 不道銷磨只數聲 전두삼십여년사 불도소마지수성 젊어서는 닭 울어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늙어지니 베개 위서 닭 울음을 기다리게 되네 삼십여 년 지난 일을 고개 돌려 생각해보니 없어졌다 말하지 않는 것은 오직 저 소리뿐이네 ●二樂樓(이락루)-金正喜(김정희) 紅樓斜日拜三字 二百年中無此君 홍루사일배삼자 이백년중무차군 想見當時洗硯處 古香浮動一溪雲 상견당시세연처 고향부동일계운 붉은 누각에 지는 해가 세 글자에 절 하니 이백 년 동안에 이 분 밖에 아무도 없으리라. 당시에 벼루 씻던 그곳을 생각해보니 옛 향기 온 개울에 물안개 속에 떠 흐른다 ●涵碧樓(함벽루)-金正喜(김정희) 綠蕪鶴脚白雲橫 取次江光照眼明 녹무학각백운횡 취차강광조안명 自愛此行如讀畫 孤亭風雨卷頭生 자애차행여독화 고정풍우권두생 푸른 벌 학 다리에 흰구름 빗겼는데 / 綠蕪鶴脚白雲橫 눈부셔라 비추이는 저 강빛도 장관일세 / 取次江光照眼明 그림을 읽는 듯한 이 걸음이 대견하니 / 自愛此行如讀畫 외론 정자 비바람이 책머리에 생동하네 / 孤亭風雨卷頭生 ●南窟(남굴)-金正喜(김정희) 千秋幽怪歎燃犀 肅肅靈風吹暗溪 천추유괴탄연서 숙숙영풍취암계 彈指龍蛇皆化石 燈光猶作紫虹霓 탄지용사개화석 등광유작자홍예 천 년 동안 숨은 괴물도 무소뿔 태워 찾아내고 쓸쓸한 영묘한 바람 어둔 개울로 불어온다.. 용과 뱀을 퉁기어 가리키니 모두 돌로 바뀌어 등 불빛 오히려 자색 무지개를 만드는구나 ●寄野雲居士(기야운거사)-金正喜(김정희) 야운거사에게 古木寒鴉客到時 詩情借與? 情移 고목한아객도시 시정차여화정이 煙雲供養知無盡 笏外秋光滿硯池 연운공양지무진 홀외추광만연지 고목나무에 갈가마귀가 나그네 당도하니 시정을 빌려주어 정을 그림에 옮기었네. 자연의 공양이 무궁함을 알았으니 홀 밖의 가을 빛깔 벼루못에 가득하네. ●果寓?事(과우즉사)-金正喜(김정희) 庭畔桃花泣 胡爲細雨中 정반도화읍 호위세우중 主人沈病久 不敢笑春風 주인침병구 불감소춘풍 뜨락에서 복사꽃이 눈물 흘린다. 어찌 가랑비 속에서 울고 있는가. 주인이 병든 지 오래라 봄바람에도 감히 웃지를 못한다네. ●夏夜初集(하야초집)-金正喜(김정희) 여름 첫 모임 閉戶常存萬里心 雲飛水逝有誰禁 尙憐夏日孤花在 閱罷春山百鳥吟 已看靑眸回白眼 曾將一字易千金 詩家衣鉢傳來久 自是宗何與祖陰 문 닫고 있어도 마음은 만 리 먼 곳 구름 날고 물은 흘러나 누가 말리랴 여름은 홀로 남은 꽃 있어 예쁘고 봄은 산의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 다 듣는다. 푸른 눈이 백안으로 돌아가는 것 보았으니 한 글인들 천금으로 바꾸리오. 시가의 도통 전해진 지 오래인데 대개는 하손과 음갱을 스승으로 삼았다네 ●棲碧亭秋日(서벽정추일)-金正喜(김정희) 서벽정의 가을 孤亭同菌小 佳境似蔗甘 고정동균소 가경사자감 將身欲入石 人語出碧嵐 장신욕입석 인어출벽람 외로운 정자는 버섯처럼 닥은데 좋은 경치 갈수록 더 아름다워라. 몸 일으켜 돌 속으로 들려하니 사람소리 안개 속에서 들려온다. ●楊州途中(양주도중)-金正喜(김정희) 양주가는 길 霜晨搖落歎征衣 極目平原秋草稀 상신요락탄정의 극목평원추초희 天地蕭蕭虛籟合 山川歷歷數鴻歸 천지소소허뢰합 산천역역수홍귀 淡煙喬木圍孤墅 流水平沙易夕暉 담연교목위고서 유수평사이석휘 淮北江南何處是 二分明月夢依微 회북강남하처시 이분명월몽의미 잎 지는 서리 새벽 길손이 처량한데 / 霜晨搖落歎征衣 눈 끝진 저 한벌에 가을 풀이 드물구나 / 極目平原秋草稀 천지는 으시으시 허뢰가 어울리고 / 天地蕭蕭虛籟合 산천은 역력한데 두어 기럭 돌아가네 / 山川歷歷數鴻歸 묽은 연기 솟은 나무 외딴집을 에웠는데 / 淡煙喬木圍孤墅 흐르는 물 백사장에 언뜻하면 석양일레 / 流水平沙易夕暉 회북이라 강남이라 어디메가 그곳인고 / 淮北江南何處是 이분의 밝은 달이 꿈속에 가물가물 / 二分明月夢依微 ●山寺(산사)-金正喜(김정희) 側峯橫嶺箇中眞 枉却從前十丈塵 측봉횡령개중진 왕각종전십장진 龕佛見人如欲語 山禽挾子自來親 감불견인여욕어 산금협자자래친 點烹筧竹冷冷水 供養盆花澹澹春 점팽견죽냉냉수 공양분화담담춘 拭涕工夫誰得了 松風萬壑一嚬申 식체공부수득료 송풍만학일빈신 기운 봉 비낀 고개 여기가 진경인데 / 側峯橫嶺箇中眞 열 길이라 홍진 속에 잘못 들어 헤매었네 / 枉却從前十丈塵 감불은 사람보고 얘기를 하자는 듯 / 龕佛見人如欲語 산새는 새끼 낀 채 절로 와서 가까운 양 / 山禽挾子自來親 흠대의 맑은 물에 차를 끓여 마신다면 / 點烹筧竹冷冷水 분화를 공양해라 담담한 봄이로세 / 供養盆花澹澹春 눈물 닦는 그 공부를 어느 누가 터득했노 / 拭涕工夫誰得了 만 골짝 솔바람에 한번 길게 한숨 쉬네 / 松風萬壑一嚬申 ●甁花(병화)-金正喜(김정희) 병 속의 꽃 安排畫意盡名花 五百年瓷秘色誇 안배화의진명화 오백년자비색과 香澤不敎容易改 世間風雨詎相加 향택불교용이개 세간풍우거상가 화의로서 안배해라 모두가 이름 난 꽃 / 安排畫意盡名花 오백 년 묵은 자기 신비한 빛깔마저 / 五百年瓷秘色誇 향과 윤이 쉽사리 가시지도 않겠거니 / 香澤不敎容易改 세간의 비바람이 어찌 서로 가해하리 / 世間風雨詎相加 ●松京道中(송경도중)-金正喜(김정희) 송도 가는 길 山山紫翠幾書堂 籬落勾連碧澗長 산산자취기서당 리락구련벽간장 野笠卷風林雨散 人蔘花發一村香 야립권풍림우산 인삼화발일촌향 산마다 푸른데 서당이 몇이나 있나 울타리는 닿아있고 푸른 시내 길게 흘러단다. 갓이 바람에 날리고 숲에는 비가 흩날리니 인삼꽃 피어나니 온 마을이 향기롭다. ●水雲亭(수운정)-金正喜(김정희) 秋雨濛濛鶴氣橫 松針石脈滿山明 추우몽몽학기횡 송침석맥만산명 試從一笠亭中看 環珮泠泠樹頂生 시종일립정중간 환패령령수정생 가을비 아득아득 학의 기운 비꼈어라 / 秋雨濛濛鶴氣橫 솔잎 침 돌 맥박이 산에 가득 분명하이 / 松針石脈滿山明 일립정 가운데서 시험삼아 바라보니 / 試從一笠亭中看 환패소리 선들선들 나무 끝에 생동하네 / 環珮泠泠樹頂生 ●舍人巖(사인암)-金正喜(김정희) 怪底靑天降畫圖 俗情凡韻一毫無 괴저청천강화도 속정범운일호무 人間五色元閒漫 格外淋漓施碧朱 인간오색원한만 격외림리시벽주 괴이하다 한폭 그림 하늘에서 내려왔나 / 怪底靑天降畫圖 범속한 정과 운은 털끝 하나 없군그래 / 俗情凡韻一毫無 인간의 오색이란 본시가 한만한 것 / 人間五色元閒漫 임리한 붉고 푸름 정말로 격 밖일세 / 格外淋漓施碧朱 ●龜潭(구담)-金正喜(김정희) 石怪如龜下碧漣 噴波成雨白連天 석괴여구하벽련 분파성우백련천 衆峯皆作芙蓉色 一笑看來似小錢 중봉개작부용색 일소간래사소전 돌 모양은 거북 같고 푸른 물결 흘러 물결 뿜어 비가 되어 흰 기운 하늘까지 뻗쳤다. 봉우리들 모두 부용색이 되었으니 한번 웃고 바라보니 돈 닢과 같아 보인다. ●石門(석문)-金正喜(김정희) 百尺石霓開曲灣 神工千缺杳難攀 백척석예개곡만 신공천결묘난반 不敎車馬通來跡 只有煙霞自往還 부교거마통래적 지유연하자왕환 백 척의 돌 무지개가 물굽이를 열었네 아득한 신의 공력 따라잡기 어렵구나 말과 수레가 오간 자국 남기지 않게 하니 안개와 노을만 스스로 오락가락하누나. ●島潭(도담)-金正喜(김정희) 徒聞海外有三山 何處飛來學佛鬟 도문해외유삼산 하처비래학불환 格韻比人仙骨在 恰如中散住塵寰 격운비인선골재 흡여중산주진환 바다 밖에 삼신산이 있다고만 들었더니 / 徒聞海外有三山 어드메서 날아와 부처머리 배웠는고 / 何處飛來學佛鬟 사람에게 견준다면 운과 격이 선골이라 / 格韻比人仙骨在 이야말로 중산이 속세에 사는 걸세 / 恰如中散住塵寰 ●重陽黃菊(중양황국)-金正喜(김정희) 중양절 노란 국화 黃菊蓓蕾初地禪 風雨籬邊託靜緣 황국배뢰초지선 풍우리변탁정연 供養詩人須末後 襍花百億任渠先 공양시인수말후 잡화백억임거선 망울 맺은 노란 국화 초지의 선인 듯이 / 黃菊蓓蕾初地禪 비 바람 울타리 가 정연을 의탁했네 / 風雨籬邊託靜緣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 供養詩人須末後 백억의 잡화 속에 널 먼저 꼽을밖에 / 襍花百億任渠先 ●紫霞洞(자하동)-金正喜(김정희) 小谿幽洞自層層 一道名泉雨後勝 소계유동자층층 일도명천우후승 夕照近人松籟起 老身石上聽泠泠 석조근인송뢰기 노신석상청령령 작은 길 깊은 고랑 스스로 층층인데 / 小谿幽洞自層層 한 가닥 이름난 샘 비 뒤에 아름답네 / 一道名泉雨後勝 석양이 가직하자 솔소리 일어나니 / 夕照近人松籟起 반석 위 낡은 몸이 시원시원 들리누나 / 老身石上聽泠泠 ●午睡1(오수1)-金正喜(김정희) 낮잠 一枕輕安趁晩涼 眼中靈境妙圓光 일침경안진만량 안중령경묘원광 誰知夢覺元無二 蝴蝶來時日正長 수지몽각원무이 호접래시일정장 서늘 바람 알맞고 베개자리 편안하니 / 一枕輕安趁晩涼 안중의 영한 지경 신묘한 원광일레 / 眼中靈境妙圓光 뉘라 알리 꿈과 깸이 본래 둘이 아니란 걸 / 誰知夢覺元無二 범나비 날아 올 때 해조차 정히 기네 / 蝴蝶來時日正長 ●午睡2(오수2)-金正喜(김정희) 苽花離落粟風涼 住在玲瓏怳惚光 고화리락속풍량 주재영롱황홀광 富貴神仙饒一轉 炊煙漫敎枕頭長 부귀신선요일전 취연만교침두장 오이 꽃 울타리에 서속 바람 산들산들 / 苽花離落粟風涼 영롱하고 황홀한 그 가운데 집이 있네 / 住在玲瓏怳惚光 부귀라 신선이라 한 마당이 느긋한데 / 富貴神仙饒一轉 밥짓는 내 부질없이 베개맡에 감도누나 / 炊煙漫敎枕頭長 ●午睡3(오수3)-金正喜(김정희) 松風分外占恩涼 攝轉葡萄現在光 송풍분외점은량 섭전포도현재광 特地家鄕成尺咫 靑山一髮未曾長 특지가향성척지 청산일발미증장 은혜로운 솔 바람 분수 밖에 서늘하여 / 松風分外占恩涼 포도 시렁 현재의 빛깔을 끼고 도네 / 攝轉葡萄現在光 특별히 내 고향이 지척을 이뤘으니 / 特地家鄕成尺咫 청산의 한 터럭이 과히 먼 게 아니로세 / 靑山一髮未曾長 ●初涼(초량)-金正喜(김정희) 초가을 楞楞山出瘦靑意 瑟瑟波明經縠流 릉릉산출수청의 슬슬파명경곡류 的的遙天孤夢直 頭頭露地百蟲秋 적적요천고몽직 두두로지백충추 능각진 봉우리는 여위고 푸르다면 / 楞楞山出瘦靑意 슬슬한 가는 물살 깁 무늬 흐르누나 / 瑟瑟波明經縠流 또렷또렷 먼 하늘에 외론 꿈 꼿꼿한데 / 的的遙天孤夢直 여기저기 이슬 땅엔 온갖 벌레 가을 소리 / 頭頭露地百蟲秋 ●立秋(입추)-金正喜(김정희) 野情老去最宜秋 冷逕蓬蒿少熱流 야정노거최의추 냉경봉호소열유 卽看曳履歌商處 已放?蟬出一頭 즉간예이가상처 이방금선출일두 시골 사는 맛은 늙으니 가을이 가장 좋아 찬 오솔길의 다북쑥에는 열기가 적어졌네. 신 끌고 상성을 노래하는 곳으로 나가보면 한 마리 매미가 이미 목을 뽑아 노래하네. ●義林池(의림지)-金正喜(김정희) 濃抹秋山似畫眉 圓潭平布碧琉璃 농말추산사화미 원담평포벽유리 如將小大論齊物 直道硯山環墨池 여장소대론제물 직도연산환묵지 짙게 바른 가을산 그린 눈썹 흡사한데 / 濃抹秋山似畫眉 둥근 못은 푸른 유리 골고루 깔았구려 / 圓潭平布碧琉璃 작고 큰 것 끌어들여 제물을 논한다면 / 如將小大論齊物 꼭 연산이 묵지를 감돌았다 말을 하리 / 直道硯山環墨池 ●下仙巖(하선암)-金正喜(김정희) 陰陰脩壑似長廊 流水浮廻日月光 음음수학사장랑 유수부회일월광 一點緇塵渾不着 白雲深處欲焚香 일점치진혼불착 백운심처욕분향 그늘진 깊숙한 골짜기 긴 행랑 같아 흐르는 물에 해와 달이 떠돈다. 검은 먼지 한 점 전혀 붙지 않아 흰 구름 깊은 곳에 향불이나 피우고 싶어라. ●仙遊洞(선유동)-金正喜(김정희) 碧雲零落作秋陰 唯有飛泉灑石林 벽운령락작추음 유유비천쇄석림 一自吹簫人去後 桂花香冷到如今 일자취소인거후 계화향냉도여금 푸른 구름 흩어져 가을 그늘 이루어 날아내리는 샘물만이 돌 숲에 뿌려진다. 옥퉁소 불던 그 사람 떠난 뒤로 계화향기 차가운 것 오늘까지 왔구나. ●看山(간산)-金正喜(김정희) 산을 보며 山與大癡寫意同 匡廬詩偈杳難窮 산여대치사의동 광려시게묘난궁 都無冬夏靑蒼氣 陡壑脩林一樣紅 도무동하청창기 두학수림일양홍 산은 대치와 하냥 사의는 동일하나 / 山與大癡寫意同 광려산 시게처럼 다 찾기는 어렵구려 / 匡廬詩偈杳難窮 여름 겨울 청창한 기운은 전혀 없고 / 都無冬夏靑蒼氣 험한 골짝 긴 숲은 한 양으로 붉은 빛이 / 陡壑脩林一樣紅 ●庭草(정초)-金正喜(김정희) 뜰의 풀 一一屐痕昨見經 蒙茸旋復被階庭 일일극흔작견경 몽용선복피계정 機鋒最有春風巧 纔抹紅過又點靑 기봉최유춘풍교 재말홍과우점청 하나하나 신발 자국 어제 지난 나머진데 / 一一屐痕昨見經 덥수룩이 그새 자라 섬 뜰을 입혔구나 / 蒙茸旋復被階庭 기봉은 가장 이 봄바람이 교묘하여 / 機鋒最有春風巧 붉은 색 발라 놓고 또 푸른 색 점을 찍네 / 纔抹紅過又點靑 ●驟雨(취우)-金正喜(김정희) 소나기 樹樹薰風葉欲齊 正濃黑雨數峯西 수수훈풍엽욕제 정농흑우수봉서 小蛙一種靑於艾 跳上蕉梢效鵲啼 소와일종청어애도상초초효작제 나무마다 더운 바람 불어 잎들은 가지런하고 산봉우리들 서쪽은 비 짙어 어두워진다. 작은 청개구리 한 종류가 쑥보다 더 푸른데 파초 잎 끝에 뛰어 올라 까치 울음 흉내 낸다. ●秋牡丹(추모란)-金正喜(김정희) 가을 모란 紅紫年年迭變更 牡丹之葉菊之英 홍자년년질변경 모단지엽국지영 秋來富貴無如汝 橫冒東籬處士名 추래부귀무여여 횡모동리처사명 해마다 홍색 자색 바꿔가며 꽃 피어 모란의 잎은 국화의 꽃봉오리와 같도다. 가을이 되면 부귀가 너 같은 것이 없으니 동쪽 울타리 처사란 명칭은 걸맞지 않구나. ●配所輓妻喪(배소만처상)-金正喜(김정희) 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함 那將月老訟冥司 來世夫妻易地爲 나장월로송명사 내세부처역지위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 아사군생천리외 사군지아차심비 어찌하면 매파가 저승 관리에게 송사하여 내세에는 우리부부 바꾸어 태어나게 할 수 있을 까 내가 죽고 당신이 천리 밖에 태어나 나의 이 마음의 슬픔을 알게 하고 싶소 棲碧亭秋日(서벽정추일)-金正喜(김정희) 서벽정의 가을 孤亭同菌小 佳境似蔗甘 고정동균소 가경사자감 將身欲入石 人語出碧嵐 장신욕입석 인어출벽람 외로운 정자는 버섯처럼 닥은데 좋은 경치 갈수록 더 아름다워라. 몸 일으켜 돌 속으로 들려하니 사람소리 안개 속에서 들려온다. 行人下馬短碑前 金煥心家舊躅傳 一酌橘林明志事 至今彈淚種薑年 길 가는 사람들도 단비 앞에 말 내리니 / 김환심의 집에서 옛 자취를 전해오네 / 귤림에 잔 올려 심사를 밝혔으니 / 생강 심던 그 해는 지금도 눈물짓네 / 春日(추사 김정희선생 시) 翰墨情緣重 彌深竹栢眞 한묵정연중 미심죽백진 梅花銅坑雪 杯酒玉山春 매화동갱설 배주옥산춘 明月千金夜 靑眸萬里人 명월천금야 청모만리인 篆煙曾結就 槎屐不迷津 전연증결취 사극불미진 붓을 들어 한묵(文筆)의 정 매우 중하니 죽백의 참된 마음 더욱 깊어라. 매화 가득한 저산에 아직 눈도 녹지 않았는데 (銅坑:매화가 많이 나는 곳) 한 잔 술에 취한 나에게 봄은 벌써 와 있구나. (玉山: 사람의아름다운 풍채 비유) 밝은 달 금빛 같은 밤. 젊은 날의 아름다운 청년은 아득한 추억 이제는 붓 가는 대로 내 마음도 가기에 (香煙이 篆字형으로 만들어짐을 이름) 나막신을 신고서도 나루를 건널 수 있는 마음이네. 庭畔桃花立 胡爲細雨中 정반도화립 호위세우중 不敢笑春風 主人沈病久 불감소춘풍 주인침병구 뜰에서 울고 있는 복사꽃 어찌하여 가랑비 속에 있는가? 주인은 오랫동안 병이 들어 따스한 봄바람에도 웃지 못하노라. 함벽루(涵碧樓) 綠蕪鶴脚白雲橫 取次江光照眼明 록무학각백운횡 취차강광조안명 自愛此行如讀畵 孤亭風雨卷頭生 자애차행여독화 고정풍우권두생 푸른 벌 학 다리에 흰구름 빗겼는데 눈부셔라 비추이는 저 강빛도 장관일세 그림을 읽는 듯한 이 걸음이 대견하니 외론 정자 비바람이 책머리에 생동하네



한시 모음 방 (456) - 추사 김정희선생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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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생애와 작품들  ┃조선시대


출처 : http://cafe.cha.go.kr/brd/viewClubBrdArt.vw?artNo=6602&clubId=yum4908&brdCatNo=3283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영정(影幀)보물 제547-5호
조선 후기의 서화가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1786∼1856)선생 종가에서 보관해 오고 있는 선생의 초상화이다. 김정희 선생은 순조19년(1819)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고 고증학과 금석학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말년에독창적인 서체인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이 초상화는 머리에 사모를 쓰고 관복을 입고 있으며, 호랑이 가죽이 깔린 의자에 앉아 있는전신상이다. 두 손은 소매 속에서 마주잡고 있어 보이지 않으며 두 발은 여덟 팔(八)자로 벌리고 발받침 위에 가지런히올려놓았다. 그림의 위쪽에는 “추사 김공상(秋史 金公像)”이란 그림의 주인공 이름과 영의정을 지낸 권곽인이 쓴 글이 있고,아래쪽에는 이한철이 철종 8년(1857) 베껴그린 그림임을 알려주는 문장이 남아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자화상(自畵像)

생애(生涯)

원래 충청도(忠淸道) 서산(瑞山) 대교리(大橋里 : 한다리)에 자리를 잡아 ‘한다리 김문(金門)’으로 통하던 추사(秋史)의 집안은고조부(高祖父) 김흥경(金興慶 : 1677~1750)의 벼슬이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렀고, 증조부(曾祖父)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은 영조(英祖)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지면서 더욱 명문(名門)으로발전하였다.

그러다가 김한신(金漢藎)이 39세에 후사(後嗣)도 없이 세상(世上)을 떠나고 화순옹주(和順翁主)도 남편을 따라 같이 세상(世上)을떠나자 조카 김이주(金頤柱 : 1730~1797)를 양자(養子)로 들여 집안을 이어가게 했으니 추사(秋史)의 조부(祖父)였고,김이주(金頤柱)는 외할아버지인 영조(英祖)의 비호(庇護) 아래 출세(出世)를 거듭해승지(承旨)․광주부윤(光州府尹)․대사헌(大司憲)․형조판서(刑曹判書) 등 높은 벼슬을 지냈고, 아들을 넷 낳아 집안을 안팎으로크게 일으켰는데, 장남(長男)이 김노영(金魯永 : 1757~1797)으로 추사(秋史)의 양부(養父)이고, 막내인 넷째 아들김노경(金魯敬)이 생부(生父)이다.


 출생(出生)

정조(正祖) 10년(1786) 6월 3일 충청도(忠淸道) 예산(禮山) 용궁리(龍宮里), 오늘날 ‘추사고택(秋史古宅)’이라고 부르는경주 김씨(慶州 金氏) 월성위(月城尉) 집안의 향저(鄕邸)에서 훗날 판서(判書)를 지낸 유당 김노경(酉堂 金魯敬 :1766~1837)과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지낸 유준주(兪駿柱 : 1746~1793)의 딸인 기계 유씨(杞溪 兪氏 :1766~1801) 사이에 장남(長男)으로 출생(出生)하였다. 출생(出生)과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어머니가 회임(懷妊)한 지 24개월 만에 낳았다고 하는데, 추사(秋史)의 어머니는 본래회임 기간(懷妊 期間)이 비정상(非正常)이었던 듯 아우인 산천 김명희(山泉 金命喜 : 1788~1857)도 18개월 만에낳았고, 막내 동생 금미 김상희(琴麋 金相喜 : 1794~1861)는 약간 빨라서 12개월 만에 낳았다고 한다. 

성장기(成長期)

추사(秋史)는 신동(神童)답게 어려서 기억력(記憶力)이 뛰어났고 일찍 글을 깨우쳐 여섯 살 때는 벌써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글씨를 써서 대문(大門)에 붙일 정도였다고 하는데, 하루는 북학파(北學派)의 거두(巨頭)인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 :1750~1805)가 지나가다가 이 글씨를 보고 추사(秋史)의 부친(父親)을 찾아뵙고는 “이 아이는 앞으로 학문(學問)과예술(藝術)로 세상(世上)에 이름을 날릴 만하니 제가 가르쳐서 성취시키겠습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또 하나의 전설(傳說)은 치당 강효석(痴堂 姜斅錫 : ?~?)이 펴낸『대동기문(大東奇聞)』에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일곱 살 때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대문(大門)에 붙였다.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 1720~1799)이 지나가다 이것을 보고들어와 누구 집이냐고 물으니 참판(參判) 김노경(金魯敬)의 집이라 했다. 본래 번암(樊巖)과 김노경(金魯敬) 집안은 세혐(世嫌: 남인(南人)과 노론(老論)의 질시(嫉視))이 있어서 만나지 않는 사이였다. 그런데도 특별히 방문하니 김노경(金魯敬)은 깜짝 놀라 “각하(閣下), 어이해서 소인(小人)의 집을 찾아주셨습니까.”하니, 번암(樊巖)이 말하기를 “대문(大門)에 붙인 글씨는 누가 쓴 것이요.”하고 묻는 것이었다. 노경(魯敬)이 우리 집 아이의 글씨라고 대답하자, 번암(樊巖)이 말하기를 “이 아이는 필시 명필(名筆)로서 이름을 한세상(世上)에 떨칠 것이요.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명(運命)이 기구할 것이니 절대로 붓을 잡게 하지마시오. 그러나 만약 문장(文章)으로 세상(世上)을 울리게 하면 크게 귀하게 되리라.” 하였다고 한다.

 양자(養子)로 입적(入籍)

  김노영(金魯永)과 김노경(金魯敬)은 모두 대과(大科)에 급제(及第)하여 출세(出世)를 했으나 백부(伯父)에게 뒤를 이을 아들이없자 추사(秋史)는 8살 때 백부(伯父)의 양자(養子)로 들어가 월성위(月城尉) 집안의 종손(宗孫)이 되었으며, 12세에양부(養父)가 갑자기 세상(世上)을 떠나고 뒤이어 조부(祖父)마저 타계(他界)하면서 가장(家長)이 되었고, 15세 때에는이희민(李羲民)의 딸인 한산 이씨(韓山 李氏)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결혼(結婚) 1년 만인 1801년 친모(親母)가 34세에 갑자기 세상(世上)을 떠났고 스승 박제가(朴齊家)는 윤가기 흉서사건(尹可基 凶書 事件)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拷問) 끝에 함경도(咸鏡道) 종성(鐘城)으로 유배(流配)를 가게 됐으며, 4년후에는 부인(夫人)이 20세의 나이로 사망(死亡)하고 스승이 유배(流配)에서 풀려났다가 이내 사망(死亡)했으나, 그 해 가을부친(父親)이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는 집안의 경사(慶事)가 생겼으나, 다시 1806년 양모(養母)인 남양 홍씨(南陽洪氏)마저 서거(逝去)하였으며, 23세 때인 1808년 둘째 부인 예안 이씨(禮安 李氏)와 결혼(結婚)하는 등 많은곡절(曲折)을 겪었다.

청년기(靑年期)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해 생원(生員)이 된 1809년 겨울, 호조참판(戶曹參判)이던 아버지가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연경(燕京 :지금의 ‘북경(北京)’)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동행(同行)하였고, 두 달 정도 머무는 동안 평생 가슴에서 떠나지않은 두 분의 선생, 즉 담계 옹방강(覃溪 翁方綱 : 1733~1818)과 운대 완원(芸臺 阮元 : 1764~1849)을 만나게되었는데, 담계(覃溪)로부터 보담재(寶覃齋 : ‘담계 옹방강(覃溪 翁方綱)을 보배롭게 받드는 서재(書齋)’란 뜻으로, 이는옹방강(翁方綱)이 자신의 서재(書齋)를 ‘소동파(蘇東坡)를 보배롭게 받드는 서재(書齋)’라는 뜻에서 ‘보소재(寶蘇齋)’라 한것에서 본 따 지은 것이며, 나중에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집도 ‘보정산방(寶丁山房)’이라 명명)라는 당호(堂號)를얻고, 운대(芸臺)로부터는 완당(阮堂)이라는 아호(雅號)를 얻었다.특히 담계(覃溪)는 추사(秋史)와 마주 앉아 필담(筆談)을 나누었는데, 담계(覃溪)가 지향(志向)하던 경학(經學)은 청대(淸代)의다른 학자(學者)들처럼 한대(漢代)의 경학(經學)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의 입장(立場)에서 송대 경학(宋代經學)에 비중을 두었으며, 추사(秋史)를 비롯한 조선 유학자(朝鮮 儒學者)들 역시 송대 철학(宋代 哲學)에 관심이 많았기에담계(覃溪)는 추사(秋史)의 학식(學識)이 마음에 들었고, 또 대화(對話)를 나눌수록 그의 박식(博識)과 총명(聰明)함에 놀라“해동(海東)에 아직도 이와 같은 영물(英物)이 있었는가?”라며 “경술문장 해동제일(經術文章 海東第一)”이라 칭찬하는 한편,구양순(歐陽詢) 글씨의 진수(眞髓)로 일컬어지는 ‘화도사비(化度寺碑)’ 진본(眞本)을 보여주고 그 모각본(模刻本)까지선물(膳物)하는 등 각별한 애정(愛情)을 보임으로써 추사(秋史)가 금석학(金石學)과 고증학(考證學)에 전념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리하여귀국(歸國) 후에는 ‘추사(秋史)’라고 부르는 것보다 ‘완당(阮堂)’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의 행적(行蹟)에 더 어울리며, 또한실제로 중년(中年)에 들어서면 ‘추사(秋史)’라는 낙관(落款)은 거의 쓰지 않고 ‘완당(阮堂)’을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장년기(壯年期)

  34세 때인 1819년 대과(大科)에 급제(及第)하면서 출세가도(出世街道)를 달리기 시작해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를 거쳐동부승지(同副承旨)에 이르렀으며. 65세의 부친(父親) 또한 평안감사(平安監司)를 마치고 막 물러난 때인 1830년에 부사과(副司果) 김우명(金遇明)이 비인현감(庇仁縣監) 시절 당시 암행어사(暗行御史)였던 김정희(金正喜)에게 파직(罷職)당한구원(舊怨)에 대한 앙갚음으로 거짓 상소(上疏)를 올렸다가 순조(純祖)의 분노(忿怒)를 사서 삭탈관직(削奪官職)을 당했다.

  이일이 있은 지 이틀 만에 역시 부사과(副司果) 윤상도(尹尙度 : 1768~1840)가 호조판서(戶曹判書)박종훈(朴宗薰)․전(前) 유수(留守) 신위(申緯)․어영대장(御營大將) 유상량(柳相亮) 등을 탄핵(彈劾)하다가 오히려추자도(楸子島)로 귀양을 가는 일이 발생하면서, 임금은 사주(使嗾)하는 자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여겨 엄한 비답(批答)을내렸으나 김우명(金遇明)의 상소(上疏)로 시작된 정쟁(政爭)은 요원(遼遠)의 불길처럼 번져 김노경(金魯敬)이 그 해 10월 8일강진현(康津縣) 고금도(古今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당하는 결과(結果)를 낳았다.

  55세이던 1840년 6월, 병조참판(兵曹參判)이던 추사(秋史)는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임명(任命)되기도 했으나, 김우명(金遇明)이대사간(大司諫)이 되고 경주 김씨(慶州 金氏)와 악연(惡緣)이 있던 안동 김씨(安東 金氏)들이 양사(兩司)를 장악하자, 10년전의 ‘윤상도 사건(尹尙度 事件)’을 다시 끄집어내어 고인(故人)이 된 김노경(金魯敬)을 공격하고 나섰고, 이리하여대리청정(代理聽政)하던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추자도(楸子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돼 있던 윤상도(尹尙度)를 다시 국문(鞠問)하는한편, 김노경(金魯敬)에게도 마땅한 처분(處分)을 내리겠다고 하교(下敎)하여 추사(秋史)의 관직(官職)을 빼앗고 죽은부친(父親)의 관직(官職)까지 삭탈(削奪)하였다.윤상도(尹尙度)는 국문(鞠問) 도중 전(前) 승지(承旨) 허성(許晟)이 시켜서 한 일이라 했고, 허성(許晟)은 건옹 김양순(健翁金陽淳 : 1776~1840)의 위협(威脅)과 사주(使嗾)를 받았다고 자백(自白)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추사(秋史)를 줄기차게모함해온 안동 김씨(安東 金氏)가 얽혀든 꼴이 되었지만, 궁지에 몰린 김양순(金陽淳)은 추사(秋史)가 시킨 일이라고발고(發告)하였다가 양자간(兩者間) 대질 심문(對質 審問)에서 거짓말임이 드러나자 다시 죽은 이화면(李華冕)을 끌어들이는 등집요하게 추사(秋史)를 물고 늘어지던 중, 계속된 국문(鞠問)으로 인한 고문(拷問)으로 8월 27일에 사망(死亡)했고,허성(許晟)과 윤상도(尹尙度) 또한 역적모의(逆賊謀議)에 참여한 죄(罪)로 죽임을 당하니 추사(秋史)만 남아 국문(鞠問)을 받게되었는데, 관련자(關聯者)들이 모두 죽을 정도의 혹독한 고문(拷問)으로 추사(秋史)도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추사(秋史)와 절친했던 우의정(右議政) 조인영(趙寅永 : 1782~1850)의 “관련자(關聯者)들이 모두 죽고 없는 상황에서의고문(拷問)은 잘못이라”는 상소(上疏) 덕택에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해 1840년 9월 2일 제주(濟州) 대정현(大靜縣)에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벌(罰)을 받아 기약없는 귀양살이를 떠나게 되었다.

말년기(末年期)

1842년 11월 13일 둘째 부인이 지병(持病)으로 세상(世上)을 떠났고, 헌종(憲宗) 14년(1848) 12월 6일 8년 3개월간의유배(流配)에서 풀려나게 되었으며, 철종(哲宗) 2년(1851) 철종(哲宗)의 4대조(四代祖)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형(兄)인 진종(眞宗)의 위패(位牌) 문제로 안김 세력(安金 勢力)과 반김 세력(反金 勢力) 간에 권력투쟁(權力鬪爭)이 벌어져이재 권돈인(彝齋 權敦仁 : 1783~1859)이 패배(敗北)하자, 권돈인(權敦仁)의 둘도 없는 친구(親舊)였던 추사(秋史)는북청(北靑)으로 2차 유배(流配)를 떠나게 됐다가 1년 만인 철종(哲宗) 3년 8월 13일 다시 해배(解配)되어 돌아온 후,1837년 72세의 나이로 임종(臨終)한 친부(親父)의 묘소(墓所)가 있는 과천(果川) 주암리 과지초당(瓜芝草堂)에 묻혀 살다가1856년 10월 10일 임종(臨終)하였다.

학문적(學問的)․예술적(藝術的) 평가(評價)

서예(書藝) ‘조선시대 4대 명필(朝鮮時代 四大 名筆)’ 중 한 사람이자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서예가(書藝家)’로 평가(評價)받을 수 있을뿐 아니라, 동양 서예사(東洋 書藝史)라는 세계사적(世界史的) 지평에서 평가(評價)할 때도 추사(秋史)가 활동하던 19세기전반(前半), 즉 청(淸)나라 가경(嘉慶 : 1796~1820)․도광(道光 : 1821~1850)․함풍(咸豊 :1851~1861) 연간에 청(淸)나라 서예가(書藝家)로서 추사(秋史)에 필적(匹敵)할만한 인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

청조학(淸朝學) 실학(實學) 중에서도 금석학(金石學)과 고증학(考證學)에서 당대(當代) 최고(最高)의 석학(碩學)으로 일본인(日本人)동양철학자(東洋哲學者) 후지츠카 지카시[등총린(藤塚鄰 : 1879~1948)]는 추사(秋史)가 연경(燕京)의 학자(學者)들과얼마나 깊이있게 그리고 열정적(熱情的)으로 교류(交流)하였는가를 치밀하게 고증(考證)한 후, “추사(秋史)는 청조학 연구(淸朝學硏究)의 제일인자(第一人者)”라고 결론(結論)을 내렸는데, 특히 추사(秋史)는 단지 국제적(國際的)인 사조(思潮)에 휩싸여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소화하여 체화(體化)․육화(肉化)․토착화(土着化)시킨 진실한 의미(意味)의국제파 학자(國際派 學者)였다.

 시문(詩文) 추사 시대(秋史 時代)의 시인(詩人)인 위사 신석희(韋史 申錫禧 : 1808~1873)는 “추사(秋史)는 원래 시문(詩文)의 대가(大家)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名聲)이 천하(天下)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고 평(評)했다. 

 경학(經學) 경학(經學)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 성리학(朝鮮 性理學)의 정도(正道)로서 실제로 추사(秋史)가 쓴『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역서변(易筮辨)』같은 논문(論文)이나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에게 경학(經學)에 대하여 진지하게물음을 구한 글, 또는 추사(秋史)가 제주도(濟州道) 유배(流配)시절에 이재 권돈인(彝齋 權敦仁 :1783~1859)과『주역(周易)』에 대해 깊이 토론(討論)한 서찰(書札) 등은 경학자(經學者)로서의 추사(秋史)의 모습을 잘보여주고 있다.

 불교(佛敎) 불교학자(佛敎學者) 신암 김약슬(薪菴 金約瑟 : 1913~1971)은『추사(秋史)의 선학변(禪學辨)』이라는 논문(論文)에서추사(秋史)의 학문(學問)과 예술(藝術)은 그 핵심(核心)이 모두 불교(佛敎)에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실제로 추사(秋史)는 당시해동(海東)의 유마거사(維摩居士)라 불릴 정도로 불교 교리(佛敎 敎理)에 밝았고, 초의(艸衣 : 1786~1866)를 비롯한많은 스님들과 교유(交遊)하면서 백파(白坡 : 1767~1852)같은 당대(當代) 대선사(大禪師)와 한 차례 논쟁(論爭)을벌이기도 했으며, 그 뿐 아니라 추사(秋史)의 시(詩)․서(書)․화(畵)에는 불교 정신(佛敎 精神)이 매우 깊이 서려있어 “추사(秋史)는 유(儒)를 학(學)하고 석(釋)에 입문(入門)한 진실한 애불(愛佛)의 제일인자(第一人者)였다”고 평가(評價)하였다.

추사(秋史)의 인재론(人材論)

추사(秋史)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신분(身分)에 대하여 매우 개방적(開放的)이고 진보적(進步的)인 생각을 갖고 있어 신분(身分)이아니라 인간(人間)의 능력(能力)과 노력(努力)을 중시(重視)하였는데, 이런 생각은 추사(秋史)가 지은「인재설(人材說)」의 다음내용(內容)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하늘이 인재(人材)를 내리는 데는 애당초 남북(南北)이나 귀천(貴賤)의 차이가 없으나, 누구는 이루고 누구는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아이 적에는 대개는 총명한데, 겨우 제 이름을 기록할 줄 알 만하면 아비와 스승이 전주(傳注)와 첩괄(帖括)로 그를미혹(迷惑)시키어, 종횡무진(縱橫無盡)하고 끝없이 광대한 고전적(古典的)인 글을 보지 못하고, 한번 혼탁한 먼지를 먹음으로써다시는 그 머리가 맑아질 수 없게 되는 것이 그 첫째이다. 그리고 다행히 제생(諸生)이 되었더라도 머리가 둔하여 민첩하고 통달하지 못함으로써 아무런 보람도 없이 어렵사리과거시험(科擧試驗)에 출몰하다가 오랜 뒤에는 기색(氣色)조차 쇠락(衰落)해져 버리니, 어느 겨를에 제한된 테두리 밖을 의논할 수있겠는가. 이것이 그 둘째이다. 사람이 비록 재주는 있다 하더라도 또한 그의 생장(生長)한 곳을 보아야 한다. 궁벽하고 적막한 곳에서 생장하여산천(山川)․인물(人物)․거실․유어(遊御) 등에서 크고 드러나고 높고 웅장함과 그윽하고 특이하고 괴상하고 호협(豪俠)한 일들을직접 목격하지 못함으로써, 마음이 세련된 바가 없고 흉금(胸襟)이 풍만해지지 못하여 이목(耳目)이 이미 협소(狹小)함에 따라수족(手足) 또한 반드시 굼뜨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그 셋째이다. 이상의 세 가지가 사람으로 하여금 재능[재력(才力)]이 꺾여 버려서 비통한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이 왕왕 이와 같다.훌륭한 문의 묘(妙)는 남의 것을 따라 흉내나 내는 그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自然)의 영기(靈氣)가 황홀하게 찾아오고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와서 그 괴괴하고 기기함을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주요 제자(主要 弟子)들
첫번째는 양반(兩班) 출신의 문인(文人)들로 이당 조면호(怡堂 趙冕鎬 : 1803~1887)․위당 신관호(威堂 申觀浩 :1811~1884, 나중에 ‘헌(櫶)’으로 개명(改名)하였음)․유재 남병길(留齋 南秉吉 : 1820~1869, 뒤에상길(相吉)로 개명(改名))․추당 서상우(秋堂 徐相雨 : 1831~1903)․표정 민태호(杓庭 閔台鎬 :1834~1884)․자기 강위(慈屺 姜瑋 : 1820~1884)․이재 유장환(頤齋 兪章煥 : 1798~1872)․묵란(墨蘭)에능했던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興宣大院君 石坡 李昰應 : 1820~1898) 등이 있고, 두 번째인 역관(譯官)들로는 우선이상적(藕船 李尙迪 : 1804~1865)․역매 오경석(亦梅 吳慶錫 : 1831~1879)․소당 김석준(小棠 金奭準 :1831~1915) 등이고, 세 번째 유형(類型)은 서화가(書畵家), 특히 화가(畵家)들로 매화(梅花)를 사랑했던 우봉조희룡(又峯 趙熙龍 : 1797~1859 또는 1789~1866)․추사(秋史)가 가장 아꼈던 제자(弟子)이나 스물아홉에요절(夭折)한 고람 전기(古藍 田琦 : 1825~1854)․소당 이재관(小塘 李在寬 : 1783~1837)․나이 삼십이 넘어추사(秋史)댁 사랑에 머물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던 소치 허련(小痴 許鍊 : 1809~1892)․초상화(肖像畵)를 잘 그렸던희원 이한철(希園 李漢喆 : 1808~?)․청조(淸朝) 문인화풍(文人畵風)과 전통적(傳統的)인 조선(朝鮮) 고유(固有)화풍(畵風)을 더불어 갖춘 혜산 유숙(蕙山 劉淑 : 1827~1873)․학석 유재소(鶴石 劉在韶 :1829~1911)․화풍(畵風)이 간결 담박했던 북산 김수철(北山 金秀哲 : 1800(?)~1862(?)) 등이 있다.

대표적(代表的) 문인화(文人畵)

추사(秋史)의 문인화(文人畵)에서는 직업화가(職業畵家)인 북종화가(北宗畵家)처럼 생계(生計)를 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사상(思想)이나 철학(哲學) 등 내면(內面)의 정신세계(精神世界)를 표출(表出)하기 위해 수묵(水墨)과 담채(淡彩)를 사용하여그린 격조(格調) 높은 그림을 일컫는 이름 그대로인 남종 문인화(南宗 文人畵)의 진면목(眞面目)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 

이 그림은 제주도(濟州道)에 유배(流配)온 지 5년이 지난 추사(秋史) 나이 59세(1844년) 때 그린 최고(最高)의 명작(名作)이자 우리나라 문인화(文人畵)의 최고봉(最高峰)으로 손꼽히는 그림으로, 당시 집권 세력(執權 勢力)이던 안동 김씨(安東 金氏)일파(一派)의 미움 때문에 이미 10년 전에 종결(終結)된 사건(事件)인 ‘윤상도(尹尙度)의 옥(獄)’에 관련되어 헌종(憲宗)6년(1840)부터 9년동안 제주도(濟州道)에서의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처음엔 자주 찾아주던 제자(弟子)들의 방문(訪問)도 점차뜸해졌지만, 그래도 역관(譯官)이었던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 : 1804~1865)만큼은 귀양살이 4년째인 1843년에계복(桂馥)의『만학집(晩學集)』과 운경(惲敬)의『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槀)』를 북경(北京)에서 구해 보내주었고, 이듬해에는또다시 하우경[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총 120권, 79책의 방대한『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보내주자, 제자(弟子)의마음 씀씀이에 감동(感動)하여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려준 작품(作品)이다.

이그림의 가치(價値)는 실경(實景)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추사(秋史)의 마음 속 이미지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그림에 서려 있는격조(格調)와 문기(文氣)가 생명(生命)으로, 추사(秋史)는 갈필(渴筆)과 건묵(乾墨)의 능숙한 구사로 문인화(文人畵)의최고봉(最高峰)을 보여주었던 원(元)나라 황공망(黃公望)이나 예찬(倪璨) 류(類)의 문인화(文人畵)를 따르고 있는데, 구도만을본다면 집과 나무를 소략히 배치한 것은 전형적(典型的)인 예찬(倪璨)의 필법(筆法)이지만, 필치(筆致)는 추사(秋史)특유(特有)의 예서(隸書) 쓰는 법(法)으로 고졸미(古拙美)를 한껏 풍기고 있어 매력이 있다.

 이그림이 사람을 감격(感激)시키는 것은 그림 그 자체보다는 아름답고 강인한 추사체(秋史體)의 발문(跋文)과 소산한 그림의 어울림에있는데, 추사(秋史) 해서체(楷書體)의 대표작(代表作)으로 예서(隸書)의 기미(氣味)가 남아 있는 반듯한 이 해서체(楷書體)는글씨의 울림이 강하면서도 엄정(嚴正)한 질서(秩序)를 유지하고 있어 심금(心琴)을 울리는 강도(强度)가 아주 진하다. 그리고 이 그림에 더욱 감동(感動)케 되는 것은 그러한 서화(書畵) 자체의 순수(純粹)한 조형미(造形美)보다도 그 제작 과정(製作過程)에 서린 처연(悽然)한 심정(心情)이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인데, 그림과 글씨 모두에서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강조한 추사(秋史)의 예술 세계(藝術 世界)가 이 소략한 그림과 정제된 글씨 속에 흥건히 배어 있는 것이 이 그림의본질(本質)이라 할 수 있다.  

우선[藕船]에게 그려준 세한도[歲寒圖]와 화제(畵題)

 藕船是賞 阮堂[우선에게 그려 줌. 완당] 화제(畵題)

 개인(個人)이 소장(所藏)하고 있는 크기 23.7×70.2㎝의 이 그림은 선비의 지조(志操)와 의리(義理)를 상징적(象徵的)으로표현하고 있어 추사(秋史)의 회화관(繪畵觀)이 잘 드러난 작품(作品)이며, 그림 뒤에는 장문(長文)의 화제(話題 : 크기23.7×38.1㎝)가 붙어 있는데, 다음은 이 화제(話題)의 전문(全文)이다.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上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지난 해에 두 가지 <만학>, <대운> 책을 부쳐왔고, 금년에는<우경문편>이라는 책을 부쳐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요. 머나먼 천리 밖에서 구한 것이며, 여러해를 거쳐 얻은 것이요, 일시적인 일이 아니다.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稿之人 如世之趨權利者

더구나, 세상은 물밀듯이 권력만을 따르는데, 이와 같이 심력을 써서 구한 것을 권력 있는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밖의 한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게 주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추세하는 것과 같구나.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 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력으로 합한 자는 권력이 떨어지면 교분이 성글어진다고 하였는데, 군도역시 이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일텐데, 권력에 추세하는 테두리를 초연히 떠나서 권리를 좆아 들어가지 않으니, 나를 권력으로 대하지않는단 말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이 잘못된 것인가?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栢也 歲寒以後一松栢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잣나무는 시들지 않음을 알게된다" 고하였다. 송백은 사철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으로서, 세한 이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세한 이후에도 하나의 송백이다. 성인이 특히세한을 당한 이후를 칭찬하였는데, 지금 군은 전이라고 더한 것이 없고, 후라고 덜한 것이 없구나.

 
然由前之君 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세한 이전의 군을 칭찬할 것 없거니와, 세한 이후의 군은 또한 성인에게 칭찬받을 만한 것 아닌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한갖 시들지 않음의 정조와 근절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세한의 시절에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烏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如下如下비(丕+邑)榜門 迫切之極矣 悲夫 阮堂老人書

아! 서한의 순박한 세상에 급암,정당시 같은 어진 이에게도 빈객이 시세와 더불어 성하고 쇠하곤 하였으며, 하비의 방문같은 것은 박절이 너무 심하였으니 슬픈 일이다. 완당(阮堂) 노인(老人)이 쓰다.

한편, 이 화제(話題) 속에『논어(論語)』「자한(子罕)」편에 나오는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 날씨가 추워진뒤에야 소나무와 전나무가 더디 시듦을 안다)’라는 유명한 경구(警句)가 등장해 그림의 주제(主題)를 함축적(含蓄的)으로 표현하고있는데, 참고로『논어(論語)』에 나오는 원문(原文)은 ‘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여기서‘조(凋)’와 ‘조(彫)’는 ‘시든다’는 같은 의미(意味)이다.

 대표적(代表的) 서예작품(書藝作品)

추사(秋史)는 ‘조선시대 4대 명필(朝鮮時代 四大 名筆)’ 중 한 사람이자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서예가(書藝家)로평가(評價)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양 서예사(東洋 書藝史)라는 세계사적(世界史的) 지평에서 평가(評價)해볼 때도추사(秋史)가 활동했던 19세기 전반(前半), 즉 청(淸)나라 가경(嘉慶 : 1796~1820)․도광(道光 :1821~1850)․함풍(咸豊 : 1851~1861) 연간에 청(淸)나라 서예가(書藝家)로서 추사(秋史)에 필적(匹敵)할만한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31.9㎝×137.8㎝ 크기에 개인(個人)이 소장(所藏)하고 있는  이 작품(作品)은 “다 떨어진 책과 무뚝뚝한 돌이 있는 서재(書齋)”라는 뜻으로 제주도(濟州道) 유배(流配) 후 강상(江上) 시절의 대표작(代表作)인데, 추사(秋史) 글씨 중 추사체(秋史體)의 멋과 개성(個性)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최고 명작(最高 名作)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글씨 전체(全體)의 구도(構圖)를 보면 위쪽은 가로획을 살려 가지런함을 나타냈고, 하부는 여러 가지 형태(形態)의 세로획을들쭉날쭉하게 써서 마치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듯한 변화를 주고 있어 고르지는 않지만 전체(全體)의 조화(調和)가 잘 이루어져있는데, 이런 구도(構圖)는 일찍이 다른 서예가(書藝家)들이 상상(想像)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形態)이며, 또한전서(篆書)․예서(隸書)․해서(楷書)․행서(行書)의 필법(筆法)이 다 갖추어져 있어 중후(重厚)하면서도 호쾌(豪快)하고멋스러우면서도 기발(奇拔)한 작품(作品)이다.

 


                              봉은사(奉恩寺) 판전(板殿)

  77.0㎝×181.0㎝ 크기에 봉은사(奉恩寺)에서 소장(所藏)하고 있는이 작품(作品)은 봉은사(奉恩寺) 경판전(經板殿)을 위해 추사(秋史)가 세상(世上)을 떠나기 3일 전에 쓴 대자 현판(大字 懸板)이기에 추사(秋史) 최후(最後)의 작품(作品)인데, 고졸(古拙)한 가운데 무심(無心)의 경지(境地)를 보여주는 명작(名作)으로 칭송(稱頌)되고 있다.당시 봉은사(奉恩寺)에는 남호 영기(南湖 永奇 : 1820~1872) 스님이『화엄경수소연의본(華嚴經隨疎演義本)』80권을 직접손으로 베껴 쓰고, 이를 목판(木板)으로 찍어 인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1856년 9월 말 경판(經板)이완성(完成)되어 경판전(經板殿)을 짓고 보관하게 되니 현판(懸板)글씨가 필요하여 추사(秋史)에게 부탁했던 것이다.추사(秋史)는 병든 몸임에도 불구하고 글자 하나의 크기가 어린애 몸통만한 대자(大字)로 ‘판전(板殿)’ 두 글자를 욕심 없는필치(筆致)로 완성(完成)하였고, 그 옆에 낙관(落款)하기를 “칠십일과 병중작(七十一果 病中作)”이라 하였는데,추사체(秋史體)의 졸(拙)함이 극치(極致)에 달해 있어 어린아이 글씨 같기도 하고 지팡이로 땅바닥에 쓴 것 같기도 하지만,졸(拙)한 것의 힘과 멋이 천연(天然)스럽게 살아 있어 불계공졸(不計工拙,:잘 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는다)도 뛰어넘은 경지(境地)로 보인다.


                                        일로향실(一爐香室)

  해남(海南) 대둔사(大芚寺) 일지암(一枝庵) 소장(所藏)의 이 작품(作品)은 추사(秋史)가 초의(艸衣) 스님을 위해 써준현판(懸板)으로 ‘화로(火爐) 하나 있는 다실(茶室)’이라는 뜻인데, 예서체(隸書體) 중에서도 전한 시대(前漢 時代)의고졸(古拙)하면서도 힘있는 글씨체를 기본으로 하면서 글자의 구성(構成)을 현대적(現代的)인 감각(感覺)으로 디자인해추사체(秋史體)의 참 멋을 느끼게 하며, 뜻도 좋고 글씨도 아름다워 추사(秋史) 현판(懸板) 중 명품(名品)으로 손꼽히고 있다.


산숭해심(山崇海深)  유천희해(遊天戱海)

산숭해심(山崇海深)은 폭42㎝․길이 207㎝의 호암미술관(湖巖美術館) 소장(所藏)으로 현존(現存)하는 추사(秋史) 작품(作品) 중 최대(最大)일 뿐만아니라 전서(篆書)․행서(行書)․예서체(隸書體)가 함께 어우러져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아 마치 홀리는 듯한 귀기(鬼氣)까지느껴지는 추사(秋史)의 대표작(代表作)인데, 혹자(或者)는 이 글씨가 추사(秋史) 글씨의 졸(拙)한 맛보다 ‘괴(怪)’가 강한작품(作品)이라고 평(評)하기도 한다.“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라는 이 글귀의 근거(根據)는 옹방강(翁方綱)이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精神)을 풀이한 글 속의 한 구절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란?***사실토대두어 진리탐구하는 . 공리공론떠나서 정확한 고증바탕으로 하는 과학적·객관적 학문 태도이른 으로, 중국 청나라 고증학학문 태도에서 있다. 조선 시대 실학파학문 영향주었다.

유천희해(遊天戱海)는 본래 ‘산숭해심(山崇海深)’과 한 작품(作品)이거나 또는 대련(對聯)의 쌍폭(雙幅)으로 씌어진 것을 각각 따로 주인(主人)을 달리하다가 결국은 호암미술관(湖巖美術館)에서합쳐진 추사(秋史)의 기념비적(記念碑的)인 명작(名作)으로 역시 폭 42㎝․길이 207㎝로 산숭해심(山崇海深)과 크기가 같은데,추사(秋史)의 기괴(奇怪)한 글씨가 얼마나 웅혼(雄渾)한 기상(氣像)으로 넘쳤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화제(畵題) “하늘에서 놀고 바다에서 노닌다”는 글은 원래 운학유천(雲鶴遊天) 군홍희해(群鴻戱海), 즉 “구름과 학이 하늘에서 노닐고 갈매기 떼가 바다에서 노닌다”는 구절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양무제(梁武帝)가 종요(鍾繇)의 글씨를 평(評)한 말이다.


                           명선(茗禪) 간송미술관 소장

115.2㎝×57.8㎝ 크기에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소장(所藏)의 이 그림은 추사(秋史) 작품(作品) 중 가장 사랑스럽고 또 가장가지고 싶은 작품(作品)으로 추사(秋史)의 ‘입고출신(入古出新)’ 정신(精神)을 잘 보여주는 기념비적(記念碑的)인작품(作品)인데, 특히 중후(重厚)하고 졸(拙)한 멋의 ‘명선(茗禪)’ 두 글자 양 옆에 작고 가늘며 흐름이 경쾌한행서(行書)가 치장(治粧)되어 있어 작품(作品)의 구성미(構成)도 가히 일품(逸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경지(境地)는‘명선(茗禪)’이 다선일치(茶禪一致)를 말하듯 서선일치(書禪一致)라고 말해도 될 듯하다. 초의선사(艸衣禪師)가 보내준 차(茶)에 대한 답례(答禮)로 쓴 이 글씨의 필의(筆意)는「백석신군비(白石神君碑)」에 있음을 협서(脇書)로 정확히 밝혀두었는데, 그 내용(內容)은 다음과 같다.초의(艸衣)가 스스로 만든 차(茶)를 보내왔는데 몽정차(蒙頂茶)나 노아차(露芽茶) 못지 않았다. 이 글씨를 써서 보답(報答)하는데「백석신군비(白石神君碑)」의 필의(筆意)로 쓴다.

백석신군비(白石神君碑) (漢)나라 광화(光和) 6년(183)에 하북성(河北省) 직례현(直隷縣) 원씨(元氏) 마을 백석산(白石山) 산신(山神)의 덕(德)을칭송(稱)하기 위해 세운 비(碑)로서 지금은 원씨여자고등학교(元氏女子高等學校) 교정(校庭)에 있다고 하는데, 이 비문(碑文)의글씨는 위․아래로 조금 긴 형태(形態)이지만 용필상(用筆上) 기괴(奇怪)함이 전혀 없고 포치(布置)가 정연하여 지순(至純)한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 글씨에 순후(淳厚)하면서도 예스러운 멋이 넘쳐 졸(拙)한 가운데 교(巧)한 맛이 숨어 있음에 착안하여추사(秋史)가 ‘명선(茗禪)’ 두 글자를 쓴 것이다.

후학(後學)들의 모방 열풍(模倣 熱風)

 추사(秋史)로부터 뜻하지 않게 천하(天下)의 명작(名作)을 선물(膳物)받은 우선(藕船)은 너무도 기뻐, 그 해 10월연경(燕京)에 갈 때 가지고 가서 이듬해(1845) 정월(正月) 22일, 그의 벗인 오찬(吳贊)의 장원(莊園)에서 벌어진 잔치에초대받아 간 자리에서 좌객(座客)들에게 내보이니 그곳에 참석한 17명 모두가 격찬(激讚)을 아끼지 않으며 다투어 제(題)와찬(讚)을 혹은 시(詩)로, 혹은 문(文)으로 붙였는데, 이것이「세한도(歲寒圖)」에 붙어 있는 ‘청유 십육가(淸儒 十六家)의제찬(題讚)’이다. 이렇게 귀국(歸國)한 우선(藕船)이 이재 권돈인(彝齋 權敦仁 : 1783~1859)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자, 권돈인(權敦仁)은 이 그림의 이미지를 본받아「세한도(歲寒圖 : 22.1㎝×101.0㎝로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소장(所藏))」한 폭을 그린 것이 전하는데, 이것은「세한도(歲寒圖)」를 방작(倣作)한 것이 아니라 화제(畵題)에서도밝혔듯이「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로 바꾸어 송죽매(松竹梅)가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인간미(人間美) 넘치는소재(素材)로 바뀌었다.

또한 소치 허련(小痴 許鍊)도 추사(秋史)의「세한도(歲寒圖)」를 방작(倣作)한 아담한 산수화(山水畵)를 그렸는데,「방완당의산수도(倣阮堂意 山水圖 : 31.0㎝×37.0㎝로 대림화랑 구장(舊藏))」가 그것으로서 화제(畵題)에 “추사(秋史)의필의(筆意)를 본받았다”라고 써놓아 더욱 이 그림의 뜻이 살아나고 있다.


                                     불이선란(不二禪蘭)

 제목 수정 이유(題目 修訂 理由)추사(秋史)의 난초(蘭草) 그림이 파격(破格)을 넘어 ‘불이선(不二禪)’의 경지(境地)에 다다른 작품(作品)으로 그림의화제(畵題)가 “부작란화(不作蘭畵)……”로 시작되어「부작란(不作蘭)」이라고 불렀지만, 이 말이 어법(語法)에 맞지 않아근래(近來)에는 화제(畵題)의 내용(內容)에 따라「불이선란(不二禪蘭)」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작품(作品)에 쓰여진 다양한 화제(畵題)와 낙관(落款)

화제(畵題) 이작품(作品)은 오른쪽 아래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뻗어 오른, 꺾이고 굽고 휘고 구부러진 담묵(淡墨)의 난엽(蘭葉) 열두어 줄기에화심(花心)만 농묵(濃墨)으로 강조한, 아주 간결한 구도로서 대지(大地)를 나타내는 풀이나 돌도 그려 넣지 않았고, 난초(蘭草)그림에 늘 나오는, 잎과 잎이 어우러져 만드는 이른바 ‘봉의 눈’․‘메뚜기 배’ 같은 형상도 없이, 오직 거친 풀포기 같은조야한 멋과 그로 인한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 뿐이지만, 추사(秋史)는 오히려 바로 이 그림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난초(蘭草)그림의 이상(理想)을 비로소 구현(具顯)한 대만족(大滿足)을 느껴 그런 감정(感情)을 한껏 담아 제시(題詩)를 썼는데, 이제시(題詩)는 글씨 자체도 파격(破格)이지만 화제(畵題)를 왼쪽에서 시작하는, 정판교식 역행법(逆行法) 또한 파격(破格)이다.다음의 내용(內容)은 이 작품(作品)에 담겨진 각종 시제(詩題)의 내용(內容)들이다.

              不作蘭畵二十年 (부작란화이십년)  

              난초(蘭草)를 안 그린 지 스무 해인데

              偶然寫出性中天(우연사출성중천)  

              우연히 그렸더니 천연(天然)의 본성(本性)이 드러났네

              閉門覓覓尋尋處  (폐문멱멱심심처) 

              문(門) 닫고서 찾고 찾고 또 찾은 곳

              此是維摩不二禪  (차시유마불이선) 

              이게 바로 유마거사(維摩居士)의 불이선(不二禪)이라네.

하지만 추사(秋史)는 이 자화자찬(自畵自讚)의 시(詩)만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파격적(破格的)인 화제(畵題)는 다시 이어졌다.

若有人强要 爲口實又當以毘耶 無言謝之. 曼香. 

(약유인강요 위구실우당이비야 무언사지. 만향.)  만약 누군가가 강요한다면, 또 구실을 만들고 비야리성(毘耶離城)에 있던 유마(維摩)의 말없는 대답(對答)으로 거절(拒絶)하겠다. 만향

그리고는 또 그 아래 난(蘭) 잎이 꺾이며 만든 여백(餘白)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以草隸奇字之法爲之 世人那得知 那得好之也. 漚竟又題.  

(이초예기자지법위지 세인나득지 나득호지야. 구경우제.) 

초서(草書)와 예서(隸書)의 기자(奇字)의 법(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를 알아보며, 어찌 이를 좋아할 수 있으랴. 구경이 또 제하다. 

왼쪽하단에 또 화제(畵題)를 달았는데 그내용(內容)은 다음과 같다.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 仙客老人.

(시위달준방필 지가유일 불가유이. 선객노인.)   

처음에 달준에게 주려고 그린 것이다. 런 그림은 한 번이나 그릴 일이지, 두 번 그려서는 안 될 것이다. 선객노인.

끝으로 나중에 얼마간 시기(時期)를 달리해서 또 한 번 화제(畵題)를 달았다.

吳小山見而豪奪. 可笑. (오소산견이호탈. 가소.)    

오소산(吳小山)이 이를 보고 얼른 빼앗아가니 가소롭다.

*.낙관(落款):이 작품(作品)은 이처럼 많은 화제(畵題)가 씌어 있어 더욱 유명한데, 낙관(落款) 또한 그에 못지않아, 마치 명작(名作)이라는 징표(徵標)를 더 얻은 듯한 분위기도 있다.


                                    고사소요도(高士逍遙圖)

24.9㎝×29.7㎝의 크기에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소장(所藏)인 이 그림은 원(元)나라 문인화풍(文人畵風) 이래의 간일(簡逸)한필치(筆致)와 문징명(文徵明 : 1470~1559)․심주(沈周 : 1427~1509)․동기창(董其昌 : 1555~1636)이즐겨 쓴 수지법(樹枝法)으로 그려졌으며, 마른 붓질[갈필(渴筆)]과 까실까실한 초묵(蕉墨)이 구사되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특징(特徵)이 없는 작품(作品)인데, 그래도 추사(秋史)의 그림다운 일격(逸格)의 명품(名品)이자 추사(秋史)의 산수화(山水畵)중 인물(人物)이 묘사된 유일(唯一)한 그림으로 갈필(渴筆)의 구사가 유현(幽玄)한 분위기(雰圍氣)를 자아낸다.


                                     번상촌장(樊上村庄)

완당이 제주 시절에 권돈인을 위해 그린 작품으로 '번상촌장'(樊上村庄)은 번리(樊里)에 있던 권돈인의 별서이름이다. 또한 이 작품을 받아든 권돈인은 너무도 흡족한 지라 다음과 같은 시로 작품 상단 넓은 여백을 메웠다.
                        蘭花蘭葉在山房

                        난초꽃과 난초잎이 산중 서재에 있는데
                        何處秋風人斷腹

                        어디에서 부는 가을 바람이 사람의 애를 태우네
                        若道風霜易摧折
                        바람과 서리에 쉽사리 꺽인다면                  
                        山房那得長留香
                        어찌 오래도록 산중 서재에 향기를 남기겠는가!

                                2007년 6월 5일[화요일]
                            ♧진주성회 염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