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단전호흡의 일반적 이해를 위하여 - 6

2018. 3. 9. 01:27병법 이야기

 

                      -활과 단전호흡, 궁아일체(弓我一體)의 세계

 

집중과 이완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생명현상이 집중과 이완에 의해 이루어진다.

숨쉬고 밥 먹고 똥 싸는 것이 바로 집중과 이완의 대표적 모습이다.

가만히 느끼면서 숨을 쉬어 보라.

숨을 들이키는 것은 집중이고 내 쉬는 것은 이완이다.

텅 비어있는 자기 내부로 우주의 생명력인 대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미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는 호흡을 통해서 우주의 생명력인 대기를 아무런 대가의 지불 없이 무심코 나의 내부로 받아 들였지만, 나의 내부로 밀려들어 온 생명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흡기를 하는 순간 인간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 속에 형성된 탁한 기운을 밖으로 내 보내는 호흡 즉 숨을 내 쉬는 순간 우리는 깊은 이완을 하게 된다.

아주 평화로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좋든 싫든 우주와 거래를 마친 안도감에서 느끼는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과 우주의 거래가 바로 호흡현상이다.

우리는 우주로부터 우리의 생명력을 살리는 에너지를 매 순간 받아들이고 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과 식물들에게 유익한 것을 매 순간 내 주는 교환을 하는 것이 바로 호흡현상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우주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서로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우아일체(宇我一體)의 삶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활과 우리는 어떤 관계 위에 있는 것일까?

필자는 금년 여름 울산에 있는 고헌정에서 개최된 영남동해지구대회에 참가한 일이 있었다.

단체전 8강에 올라 4강으로 가기 위한 비교전에서의 일이다.

나는 첫째 矢와 둘째 矢를 놓친 후 셋째 시를 내기 위해 사대에 섰을 때다.

갑자기 등 뒤에서 따뜻한 어떤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호흡수련을 할 때처럼 독맥이 더워지면서 마음이 참 편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시합에 따른 긴장감도 사라지고 그저 아늑한 어떤 기쁨이 전신을 싸고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과녁이 아주 선명하면서도 평소보다 더 크고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활을 내면서 그런 상태를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 날 나는 남은 세 개의 시를 모두 관중시킬 수 있었다.


활을 낼 때 당신은 당신과 활, 화살 그리고 과녁이 하나로 느껴진 적이 있는가?

사대에 서서 활에 살을 먹인 후 거궁, 만작을 하면서 과녁을 향해 겨누고 있을 때,

당신의 실체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실체는 활을 들고 사대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실체는 과녁에 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활을 만작하여 과녁을 향해 겨누고 있다면 당신의 몸은 사대에 활과 함께 있겠지만 당신의 마음은 과녁에 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활과 당신과 과녁은 하나가 되어져 있는 것이다.

이 상태야 말로 바로 궁아일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는가?

그런 상태에서 쏜 화살이 날아 갈 곳이 과녁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활 꾼이 사대에 서는 순간 긴장하기가 쉽다.

만약 자기의 힘에 겨운 강한 활을 가졌다면 제대로 만작할 수가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설 것이다.

또 자기가 내는 화살이 과녁에 맞을까 아닐까하는 자신에 대한 불 확신으로 걱정이 앞설 수 있다.

옆 사람의 시수가 좋은 경우 나도 그 만큼 관중시킬 수 있을까하고 주위를 의식하면 자신도 모르는 상이에 긴장이 되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시합에서라면 아마 그 긴장도는 더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긴장시키고 몸도 따라서 긴장하게 된다.

이 긴장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야 한다.

순간적으로 긴장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호흡뿐이다.

하단전까지 깊이 숨을 들이 마시면서 마음을 단전에 집중하면 우리의 몸은 스스로 쉽게 이완이 되면서 긴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 충분히 이완된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가 있게 되고

활을 만작하면서 아무의심 없이 마음을 과녁까지 보냄으로서 활과 과녁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전호흡이 이루어지는 활 쏨 세야 말로 얼마나 값진 수련의 대가인가?


우리의 옛 수련법을 선조들은 風流道라고 했었다.

풍류란 무엇인가? 바로 자연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 즉 우주의 참 뜻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 왔다.

그 시작이 바로 자연과 내가 교환하는 호흡이었던 것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함께 교환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우아일체의 삶이라고 했다.


활을 배우면서 우리는 지형을 살피고 풍세를 바로 보는 것을 배운다.

자연을 바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인 것이다.

활을 쏘는 사람이 활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바라는 바 일 것이다.

온갖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의 현재의식 구조로서는 결코 진정한 활과의 하나 됨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현재의식이 아니라 자기의 본성이 자연과 하나 되는 상태, 활과 하나 되어 활을 내는 모습이야 말로 온전한 활 꾼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 실체를 찾아가는 문이 바로 호흡에 있다.

올바른 호흡을 하면서 활과 내가 하나 되는 것, 나는 그것을 진정한 “弓我一體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수가 다른 이 보다 조금 앞선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바로 훌륭한  활 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하듯이,

우리가 활을 바르게 내기 위해서는 활과 내가 하나 되는 궁아일체의 자세가 바로 서야 하지 않을까?

 

활을 낸다는 것은 동적명상(動的瞑想)의 세계에 드는  선경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고 싶다.(和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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