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해동잡록 3 /이승소(李承召)

2018. 4. 7. 13:40차 이야기

이승소(李承召)



○ 본관은 양성(陽城)으로 자는 윤보(胤保)이며, 호는 삼탄(三灘)이다. 세종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좌익공신(左翼功臣)으로 양성군(陽城君)에 책봉되고, 벼슬은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다. 문장으로 이름나고, 시호는 문간(文簡)으로 문집이 세상에 전한다.
○ 우애가 출중하여 그의 형 승주(承周)가 나이 어려 죽자,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 옷을 벗고 살을 대고 끌어안고 누워서 밤을 지내는 것을 사람들이 말릴 수 없었다. 〈행장(行狀)〉
○ 재간과 도량이 점잖고 안정해져서, 일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는 데 대체(大體)를 따르기에 힘쓰고 모나게 하지 않았다.
○ 넓게 읽고 기억이 좋아, 예악(禮樂)ㆍ병형(兵刑)ㆍ음양(陰陽)ㆍ율력(律曆)ㆍ의약(醫藥)ㆍ지리(地理)를 다 꿰뚫었다.
○ 집에 있으면 담박하여 마당과 뜰 사이에 풀이 쌓여도 베지 않았고, 손이 오면 단지 부들 자리를 깔았을 뿐이다.
○ 장원 급제하여 즉시 집현전(集賢殿)에 들어가 수찬(修撰)에서 응교(應敎)에 이르기까지 무릇 8년을 집현전에 있었다. 동상
○ 시와 문장을 짓는 데는 온순하고 부드러웠으며 빈틈이 없어 사람들로 하여금 전송(傳誦)하여 마지않게 하였다. 사신으로 연경(燕京)에 갔을 때 학사(學士) 예겸(倪謙)이 시를 보내주기를,
보내준 시의 절묘함을 생각할 제마다 / 每念贈行詩妙絶
몇 번이나 시권을 열어 봐도 묵은 아직도 향기롭다 / 幾回開卷墨猶香
하였다. 본집(本集)
연풍(延豐) 길가 언덕 끊어진 곳 산록(山麓)에 쌍분(雙墳)이 있어 마치 높이 솟은 돈대[路堠] 같았다. 그곳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동경(東京 경주)의 한 아전이 그 집의 개와 함께 책상자[笈]를 지고 도보로 서울에 과거보러 가다가 도중에서 병이 들어 이곳에 와서 죽으니, 그 개가 집에 돌아가 나들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 마치 애절함을 호소하는 형상이었다. 그 아들이 개가 혼자 돌아온 것이 의심스럽고 이상하여 곧 개를 따라 나섰다. 개가 빨리 달려 길을 인도하여 그 아버지가 죽은 곳에 도착하자 숨이 막혀 죽어버렸다. 그 아들이 자기 힘으로 귀장(歸葬)하지 못하고 아버지 시체를 기슭 위에 가매장하고 개도 그 옆에 묻었다.” 한다. 이삼탄(李三灘)이 이곳을 지나며 지은 시에,
뉘라서 길에서 죽어 언덕에 버려진 것을 가련히 여기랴 / 誰憐道死委山阿
개만이 돌아가 주인 집에 알렸네 / 犬獨還歸報主家
그 아들과 같이 달려와서는 숨막혀 죽으니 / 與子偕來仍暍死
언덕 위에 쌍총은 대대로 전하여 자랑하네 / 隴頭雙塚世傳誇
하였다.
○ 해직되고 나서는 기꺼워 〈문부산(蚊負山 모기가 산을 지고)〉과 〈선탈망(蟬脫網 매미 그물을 벗어난다)〉 두 편의 글을 지어 벗 서강중(徐剛中 거정(居正))에게 부치기를, “매미 그물을 벗어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다시 거미줄에 오지 않는다. 매미 그물을 벗으니 누가 너를 구속하리, 건곤(乾坤) 만리(萬里)가 탕탕(蕩蕩)히 넓구나.” 하였다.
○ 한 번은 시를 지어, 날담비[蜜狗]가 도토리 열매를 먹는 그림에 쓰기를,
오래된 도토리나무 가을 깊어 잎새 성근데 / 老栩秋深霜葉稀
가지에 열매 맺어 십분 살이쪘구나 / 枝頭綴子十分肥
해마다 산중의 즐거움이 넘치니 / 年年剩得山中樂
인간 세상의 놀라운 기미 하나도 모르더라 / 不識人間有駭機
하였다. 날담비는 세속에서 담보(覃甫)라 부른다.
○ 시를 지어서 구구첩(九九帖) 위에 썼는데,
하나에서 둘 나고 둘에서 셋 나니 / 一而生二二生三
상과 수 불어날 제 교위도 깊어진다 / 象數滋時巧僞深
곧장 지금부터 만고로 돌아갔으면 하나 / 直欲從今回萬古
순박한 결승을 찾아보기 아득하이 / 結繩淳朴杳難尋
하였다. 동상(同上)
○ 경연에서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을 강의하고, 이어 아뢰기를, “임금의 마음에 좋아하고 미워함에 치우침이 있으면 곧 좌우 신하들로부터 백 집사(執事)에 이르기까지 모두 따라서 한쪽에 치우침으로 마음을 맞추려 합니다. 만약 토공(土功)을 좋아하면 토공으로 맞추려 하고, 전렵(田獵)을 좋아하면 전렵으로 맞추려 하고, 불노(佛老)를 좋아하면 불노로 맞추려 하는 것입니다. 임금은 여기에 마음을 두고 조심하여 조금도 호오(好惡)의 편벽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국조보감》
○ 성종 때에 하루는 경연에서 《시경》〈억편(抑篇)〉을 강하였다. 이승소(李承召)가 나아가 아뢰기를, “사람이란 늙으면 기운이 쇠약하여 경계심이 게을러지기 마련이온데 무공(武公 위(衛) 나라 무공)은 나이 95세이면서도 잠경(箴儆), 존양(存養), 성찰(省察)의 공부를 추구하여 마지않았습니다. 근심과 근면이 의당 수(壽)를 해치는 것 같은데 무공(武公)이 이렇게 오래 살았습니다. 임금이 안일하게 즐기면 주색에 빠지고 전렵과 황음(荒淫) 등 못하는 것이 없게 되어 성정을 해쳐서 수를 손상시키는 것이 실로 이 때문이오니 경계하여 안일에 빠지지 않으면 덕성(德性)을 함양하고 혈맥(血脈)을 안정시키기 때문에 장구하게 천수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공(周公)은 무일(無逸 《서경》의 편 이름)에서 공경하고[寅] 두려워하고[畏], 나아가고[迪] 현철한[哲] 것을 나이를 오래 누리는 근본이라 하였으니 바로 이러한 의미인 것입니다.” 하였다. 동상
○ 집에 있으면서 친한 벗이 오면 반드시 부들 자리를 펴고 술을 주고받았다. 〈묘지(墓誌)〉
십년 나그네 형편에 천 줄기 눈이요 / 十年旅况千莖雪
만호 다듬이 소리에 한 잎 지는 가을이라 / 萬戶砧聲一葉秋
〈추만(秋晩)〉
불거진 눈은 누구의 원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 不知睅目緣誰怨
우선 옆으로 기는 것은 무엇에 놀랐나 묻고 싶다 / 且問橫行有底驚
〈게를 노래함[詠蟹]〉
○ 연경(燕京)에 갔다 오는 길에 한 절구를 지어 이정(里程)을 적은 첩지(帖紙) 뒤에 적기를,
스물 아홉의 정거장을 이미 두루 갔었는데 / 卄九郵亭行已遍
사천 리 노정은 하마 얼마 남았는고 / 四千里路除幾何
미간에 도는 황색 그대여 기억하라 / 眉間黃色君須記
향관이 가까워지니 희색 점점 더해 간다 / 漸近鄕關喜漸多
하였다. 《시격(詩格)》
○ 시와 문이 모두 아름다워, 밖은 담박하나 안은 살쪘고 말은 지금 말이나 뜻은 옛 그대로여서, 마치 솜씨 좋은 장인이 새긴 것같이 도끼와 끌의 흔적이 없었다. 동상
○ 내(서거정)가 집현전에 있으면서 한번은 이승소(李承召)와 함께 앉았는데 동료 유성원(柳誠源)이 이목사(李牧使)의 만장(挽章)을 지어 달라 청하며 말하기를, “이랑(李郞)은 쌍매학사(雙梅學士)의 후손이다.” 하므로, 문간공(文簡公)이, “그가 쌍매의 후손이라면 어찌 향기로운 덕망이 없나?” 하니, 유성원이, “사람이 고죽지향(孤竹之鄕)에 산다고 모두 맑은 절개가 있는 건가?” 하였으니, 이는 해주(海州)의 별호가 고죽(孤竹)이었으며 문간공의 부모가 해주(海州)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원잡기》
○ 예조판서로 있을 때, 한 낭관(郞官)이 매일 술만 마시고 다른 일은 하지 않아 공무에 지장이 많았다.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축출하려 하였으나 문간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옛날 허승(許丞)은 귀가 먹어 다시 듣는 경우가 많았으나, 장관(長官)이 차마 끊어버리지 못하였다. 지금의 낭관도 비록 오래 취해 있긴 하지만, 깨어 있을 때도 역시 많으니 어찌 그만두라 하겠는가.” 하였다. 동상


陽城人。字胤保。號三灘。我 英廟朝登魁科。參佐功封陽城君。官至禮儀判書。以文章名世。謚文簡。有集行于世。 友愛出性。其兄承周年少而死。冀其復蘇。解衣親膚。抱之而臥。至於竟夕。人不得禁。行狀 局度凝定。凡事遇物接。務從大軆。不露廉隅。 博覽强記。凡禮樂兵刑陰陽律曆醫藥地理。靡不通貫。 居家淡素。庭除之間。積草不翦。客至則惟設蒲茵而已。 擢嵬科。卽入集賢殿。自修撰至應敎。在集賢凡八年。同上 爲詩文。溫淳和潤而無瑕。令人傳誦不休。嘗奉使于燕。倪學士謙贈之以詩云。每念贈行詩妙絶。幾回開卷墨猶香。本集 延豐路傍斷麓上有雙壟。纍纍若路堠。土人相傳。昔人東京吏獨與一家狗。負笈徒步。赴擧于京。道病至此而死。其狗還家。出入悲鳴。若有哀訴之狀。其子疑狗獨還。且怪異常。卽隨狗而去。狗疾造先導。遂至死所。氣暍而死。其子力不能歸葬。擧父屍厝于麓上。並瘞狗于其傍。李三灘嘗過此有詩云。誰憐道死委山阿。犬獨還歸報主家。與子偕來仍暍死。隴頭雙塚世傳誇。 旣解職。喜作蚊負山蟬脫網兩篇。寄友人徐剛中。蟬脫網所恣往。更不回來蛛網裡。蟬脫網誰汝拘。乾坤萬里廣蕩蕩。 嘗作詩。題蜜狗食橡實圖云。老栩秋深霜葉稀。枝頭綴子十分肥。年年剩得山中樂。不識人間有駭機。蜜狗俗云覃甫。 作詩題九九帖上云。一而生二二生三。象數滋時巧僞深。直欲從今回萬古。結繩淳朴杳難尋。同上 於經筵講范浚心箴。仍啓曰。人君心有好惡之偏。則自左右至百執事。各因偏處而中之。如好土功。則以土功中之。如好田獵。則以田獵中之。如好佛老。則以佛老中之。人君尤當操存此心。不可少有好惡之偏。寶鑑 成廟一日御經筵。講詩抑篇。李承召進曰。人凡年老則氣衰。而儆戒怠。武公年九十有五。而猶求箴儆存養省察之功。無時而息。憂勤宜若損壽。而武公享年如此。蓋人君逸樂。則沈於酒色。遊田荒淫。無所不爲。伐性損壽。職此之由。儆戒無逸。則可以涵養德性堅定血脉。故享年長久。周公於無逸。以寅畏迪哲。爲享年之本。亦此意也。同上 嘗於燕居。親朋至則必設蒲茵。置酒酬酢。墓誌 十年旅況千莖雪。萬戶砧聲一葉秋。秋晩 不知睅目緣誰怨。且問橫行有底驚。詠蟹 嘗朝京。於路上作詩一絶。書記里帖背云。廿九郵亭行已遍。四千里路除幾何。眉間黃色君須記。漸近鄕關喜漸多。詩格 詩文俱美。外淡而中腴。辭今而意古。如巧匠雕鐫。自無斧鑿痕。同上 徐居正嘗在集賢殿。與李承召同坐。有同僚柳誠源。請作李牧使挽章。柳曰。李郞雙梅學士之後。文簡公曰。此是雙梅之後。何無馨德也。柳應聲曰。人居孤竹之鄕。盡有淸節乎。蓋海州別號孤竹。文簡之父母在海州。筆苑 爲禮曹判書時。一郞官日飮無何。公務多闕。同列有欲黜者。文簡笑曰。許丞多時耳聾重聽。長官不忍絶之。今之郞官雖長醉。然醒時亦多。又何廢焉。同上




출처 :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글쓴이 : 樂民(장달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