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煎茶)에 대한 고전문헌 자료 ㅡ 25 

2018. 5. 5. 00:19차 이야기




전다(煎茶)에 대한 고전문헌 자료 ㅡ 25  




고전원문 > 동강유집 > 東江遺集 卷六 > 七言律詩 > 최종정보


東江遺集 卷六 / 七言律詩       ㅡ 신익전(申翊全) , 1690 :   

전다(煎茶)에 대한 고전문헌 자료 ㅡ 15


에 시린 시와 중복


途中逢大雪


[DCI]ITKC_MP_0362A_0060_010_0280_2015_001_XML DCI복사 URL복사


春至南荒雪轉深,那知一夜勢摧林?
旁瞻原隰渾成縞,遠挹巖巒亦列琛。
敢道征人長路澁?偏憐戍卒苦寒侵。
郵亭絶少煎茶興,吹律唯懷破涸陰。




길에서 큰 눈을 만나다〔途中逢大雪〕


[DCI]ITKC_BT_0362A_0060_010_0280_2015_001_XML DCI복사

봄이 이른 황량한 남녘에 눈이 더욱 쌓여 / 春至南荒雪轉深
야밤에 나뭇가지 부러질 줄 어찌 알았으랴 / 那知一夜勢摧林
사방을 보니 들판은 흰 비단처럼 새하얗고 / 旁瞻原隰渾成縞
멀리 이어진 바위산도 옥처럼 늘어섰네 / 遠挹巖巒亦列琛
먼 길 가기 어렵다고 어찌 감히 말하랴 / 敢道征人長路澁
추위에 고생하는 수졸이 매우 가련하네 / 偏憐戍卒苦寒侵
역정에선 차 달이는 흥취가 전혀 없으니 / 郵亭絶少煎茶
율관(律管) 불어 추위 녹이려 생각할 뿐 / 吹律唯懷破涸陰
[주-D001] 율관(律管) 불어 : 
유향(劉向)《별록(别録)》“추연(鄒衍)이 연(燕)나라에 있을 때에 땅은 비옥하나 날씨가 너무 추워 오곡이 자라지 않는 땅에 살았는데, 추연이 율관을 부니 따뜻한 기운이 이르렀다고 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浮査集 卷一 / 詩○七言絶句      ㅡ 성여신(成汝信) , 간행연도 1775년


靑谷寺四章   ㅡ 다른 "전다에 대한 고전문헌 자료 "에 수록 된 것 같으나, 찾기 어려워 다시 싣는다.


[DCI]ITKC_MP_0235A_0020_050_0070_2017_001_XML DCI복사 URL복사


誰馭泠然列子風,斜陽來訪古禪宫?
琪樹丹崖仙興足,一尊相對世緣空。
【右蕭寺尋朋】

少年磨劍此山中,暎雪啖蔬枉費功。
萬事如今成一夢,羞將白髮對秋風。
【右禪窓感舊】

故人家在碧江東,生少年同志亦同。
惆悵如今泉路隔,暮鴉啼散白楊風。
【右江東悼友】

世間平地起風波,喜喜悲悲哭又歌。
爭似老僧閒意足,白雲生處卧煎茶
【右山僧管閒】




청곡사에서 놀며 읊은 시 네 수〔遊靑谷寺四章〕



[DCI]ITKC_BT_0235A_0020_050_0070_2015_001_XML DCI복사


누가 가뿐히 열자의 바람을 몰아 / 誰馭泠然列子風
석양녘에 오래된 절을 방문하는가 / 斜陽來訪古禪宫
옥나무 붉은 언덕 신선의 흥취 충분한데 / 琪樹丹崖仙興足
한잔 술로 마주하니 세속 인연 부질없네 / 一尊相對世緣空
쓸쓸한 절에 있는 벗을 방문하다

젊은 시절 학문 닦던 곳이 이 산중인데 / 少年磨劍此山中
나물 먹으며 형설한 공 헛되이 소모했네 / 暎雪啖蔬枉費功
모든 일이 이제 한낱 꿈이 되었으니 / 萬事如今成一夢
백발로 가을바람 대하기가 부끄럽구나 / 羞將白髮對秋風
절 창가에서 옛 일을 느끼다

친구의 집은 푸른 강 동쪽에 있는데 / 故人家在碧江東
태어나 어린 시절 같이 하고 뜻도 같았네 / 生少年同志亦同
슬프구나 지금은 황천길이 가로막고 있으니 / 惆悵如今泉路隔
저녁 까마귀 울며 흩어지고 백양나무에 바람 부네 / 暮鴉啼散白楊風
강동의 벗을 추도하다

인간 세상 평지에서 풍파가 일어나니 / 世間平地起風波
기뻐도 하고 슬퍼도 하며 곡도 하고 노래도 하네 / 喜喜悲悲哭又歌
어찌하면 노승의 넉넉히 한가로운 뜻과 같이 하여 / 爭似老僧閒意足
흰 구름 일어나는 곳에 누워 차를 다릴까 / 白雲生處卧煎茶
산승의 한가로움을 참견하다 
[주-D001] 청곡사(靑谷寺)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琴山面) 갈전리(葛田里) 월아산에 있는 사찰이다. 해인사의 말사로, 879년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1)에 중건하였다.



  *** 성여신(成汝信) : 공실(公實), 부사(浮查), 야로(野老), 부사(桴槎)


요약  : 1546(명종 1)∼1632(인조 10). 조선 중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浮查)·야로(野老)·부사(桴槎). 홍문관교리 성안중(成安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성일휴(成日休)이고, 아버지는 경기전봉사(慶基殿奉事) 성두년(成斗年)이다.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로 충순위(忠順衛) 변원종(卞元宗)의 딸이다.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3년 8세에 신점(申霑)에게 글을 배웠다. 일찍부터 문명을 떨치다가 1609년(광해군 1) 64세로 사마양시에 합격하였다. 성여신은 불세출의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스스로 호를 ‘부사야로(浮査野老)’라 하였다. 특히 불교배척에 힘썼으며, 임진왜란 이후 투박하고 문란해져가는 풍속을 바로잡기 위하여 여씨향약(呂氏鄕約)과 퇴계동약(退溪洞約)을 본떠 이를 지방에 심는 데 힘썼다. 진주의 임천서원(臨川書院)과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부사집(浮査集)』이 있다.


참고문헌


  • 『사마방목(司馬榜目)』
  • 『부사집(浮査集)』
  • 『순암문집(順菴文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術)』
  • 『고선책보(古鮮冊譜)』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가 쌍계사에서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 <방장산선유일기>

 

새로 지은 쌍계의 절간에 뜬 밝은 달(明月雙磎新梵宇)
팔영루의 옛 신선 누각에 부는 맑은 바람이라(淸風八詠舊仙樓)
흥망이 수없이 바뀐 구름, 남으로 내려오고(興亡百轉雲南下)
누대를 돌고 돈 물, 북으로 흘러가네(世代千回水北流)


고요한 낮 단풍 숲엔 나막신 한 쌍 가지런하고(晝靜楓林雙蠟)
깊은 밤 소나무 평상엔 차 단지 하나 놓였네(松榻一)
누가 알았겠는가, 십 년 전 여산의 나그네가(誰知十載廬山)
백발이 되어 다시 악양에 오게 될 줄을(重到岳陽雪滿頭)

 

  쌍계에 뜬 달은 산뜻한 가람을 더욱 그윽하게 했을 것인데 더구나 밝은 바람이 산들 부는 팔영루, 이곳은 비경이며 선경이다. 그리고 선미가 장황한 공간이다. 그런데 누대를 흘러가고 있는 쌍계 계곡물은 예나 지금이나 흐른다. 단선의 선미는 바로 고요한 낮 단풍 숲엔 나막신 한 쌍 가지런하고(晝靜楓林雙蠟)/깊은 밤 소나무 평상엔 차 단지 하나 놓였네(松榻一茶)”일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승경지를 백발이 되어 다시 찾은 성여신은 바로 선미(禪味)에 젖은 나그네였다


cafe.daum.net/www.fragrantbuddhism/DDXe/603   향기로운 불교  에서 발췌 ......






고전원문 > 송암집 > 松巖集 卷二 > > 최종정보


松巖集 卷二 / 詩       ㅡ 권호문(權好文) , 1680년


烏川後凋軒戲作 【此下,遊淸涼山吟。】   ㅡ 다른 "전다에 대한 고전문헌 자료 "에 수록 된 것 같으나, 찾기 어려워 다시 싣는다.



[DCI]ITKC_MP_0189A_0030_010_1560_2017_001_XML DCI복사 URL복사


文華之山可晩眺,所以遊人有四好。
一好群峯雲影明,一好列庵月色皎。
一好携老僧煎茶,一好與上仙鍊道。
今看衆嶠鳥外橫,不欲裁詩自成稿。





烏川後凋軒戲作 【此下,遊淸涼山吟。】


오천 후조헌에 이르러 장난삼아 짓다〔到烏川後凋軒戲作〕 이 아래는 청량산으로 유람 갈 때 읊은 것이다.


[DCI]ITKC_BT_0189A_0030_010_1560_2016_001_XML DCI복사


문화산은 저물녘에 바라볼 만하니 / 文華之山可晩眺
유람객이 네 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네 / 所以遊人有四好
하나는 봉우리마다 구름이 밝은 것이고 / 一好群峯雲影明
하나는 늘어선 암자에 달빛이 흰 것이고 / 一好列庵月色皎
하나는 노승과 함께 차를 달이는 것이고 / 一好携老僧煎茶
하나는 신선과 도를 단련하는 것이네 / 一好與上仙鍊道
지금 나는 새 너머로 봉우들이 늘어서 있으니 / 今看衆嶠鳥外橫
시를 다듬으려 하지 않아도 절로 이루어지네 / 不欲裁詩自成稿


[주-D001] 오천(烏川) 후조헌(後凋軒) : 
안동시 예안면 오천리에 있었던 김부필(金富弼, 1516 ~1577)의 정자이다. 오천은 일명 ‘외내’라고 하고, 광산(光山) 김씨 세거지로 산남(山南) 김부인(金富仁), 후조당 김부필, 양정당(養正堂) 김부신(金富信), 읍청정(挹淸亭) 김부의(金富儀),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 형제들이 모여 살았으므로 ‘군자리(君子里)’라 하였다. 김부필의 자는 언우(彦遇), 호는 후조당(後凋堂),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진사시에 합격한 후 이황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전심하였다. 이조 판서에 추증되고, 예안의 낙천사(洛川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후조당집(後凋堂集)》이 있다. 후조당 건물은 1973년 안동댐 수몰지역에 들어가 광산 김씨 여타 건축물과 함께 2km 떨어진 곳으로 이건하여 ‘군자리’라 하였다. 행정구역은 안동시 와룡면(臥龍面) 오천1리이다.
[주-D002] 문화산(文華山) : 
청량산(淸凉山)의 이칭이다.


  *** 권호문(權好文) : 중(章仲), 송암(松巖)


요약  : 532(중종 27)∼1587(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학자.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 안주교수(安州敎授) 권규(權稑)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9년(명종 4) 아버지를 여의고 1561년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어머니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그곳에 은거하였다.

   이황(李滉)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이들로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내시교관(內侍敎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56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묘지는 안동부 서쪽 마감산(麻甘山)에 있다.

   안동의 송암서원(松巖書院)에 제향되었다. 그는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는데, 이황은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하였고, 벗 유성룡도 강호고사(江湖高士)라 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경기체가의 변형형식인 「독락팔곡(獨樂八曲)」과 연시조인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이 『송암집』에 전한다.

참고문헌

  • 『송암집(松巖集)』
  •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조윤제, 박문출판사, 1937)







권호문 필적

1532(중종 27)∼1587(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 학자.

출처 이미지 사이즈 960x629 |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락팔곡 / 송암집

출처 이미지 사이즈 725x960 | 한국학중앙연구원



권호문 한거십팔곡 해석과 요점정리 문학

2018. 3. 26. 7:00

복사 http://blog.naver.com/ssamiae/221230303160



한거십팔곡

권호문 : 조선 중기(16세기, 중종-선조) 학자. 이황의 제자이며 유성룡의 친구. 30세인 1561년 진사시에 합격하나 1564년 어머니상을 당한 뒤 벼슬을 버리고 은거함. 평생 자연에 묻혀 살며 벼슬에 나가지 않다가 56세로 일생을 마침.

 

한거십팔곡 : 19수의 연시조. 충효와 자연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사대부의 태도가 나타남. 자연의 아름다움 자체를 노래하기보다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심회가 나타남.


한거십팔곡 해석

 

<1>

평생에 원하나니 다만 충효뿐이로다 (평생 원하느니 다만 충효뿐이다)

이 두 일 말면 금수(禽獸)나 다라리야 (이 두 일 안하면 짐승과 다르겠는가)

마암에 하고져 하야 십재황황하노라 (마음에 하려고 하여 십년을 허둥지둥하노라)

충효를 실천하려고 십년간 허둥지둥했다.

 

<2>

계교(計較) 이라터니 공명이 느저셰라 (견줌이 이러니 공명이 늦었구나)

부급동남(負東南)하야 여공불급 하난 뜯을 (스승을 찾아 헤매며 (공명을)이루지 못할까 걱정하였는데)

세월이 물 흘아닷 하니 못 이롤가 하야라 (세월이 너무 지나서 못 이룰까 하노라)

공명을 이루려고 스승을 찾아 헤맸지만 세월만 흘러가 버렸다.

 

<3>

비록 못 일워두 임천이 됴하니라 (비록 못 이루어도 숲과 내가 좋더라)

무심어조(無心魚鳥)난 자한한 하얏나니 (무심한 물고기와 새는 스스로 한가로우니)

조만(早晩)에 세사(世事) 닛고 너랄 조차려 하노라 (머지않아 세상사 잊고 너를 따르려 하노라)

공명을 못 이루어도 세상사를 잊고 자연을 좇으려 한다.

 

<4>

강호에 노쟈 하니 성주를 바리례고 (자연에서 지내자니 임금을 저버리겠고)

성주를 셤기자 하니 소락(所樂)애 어긔예라 (임금을 섬기려니 즐기는 일을 어기겠구나)

호온자 기로(岐路)에 셔셔 갈 대 몰라 하노라 (혼자 갈림길에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자연을 즐길 것인가 임금을 섬길 것인가,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5>

어지게 이러그러 이 몸이 엇디할고 (어쩌랴 이럭저럭 세월 가버렸으니 이 몸이 어찌 할까)

행도(行道)도 어렵고 은처(隱處)도 정티 아냣다 (도를 실천하기도 어렵고 은신처를 정하지도 않았다)

언제야 이 뜯 결단하야 종아소락 하려뇨 (언제나 이 뜻 결단하여 즐거움을 좆을 것인가)

충효 실천도 어렵고 은신처도 정하지 않아, 언제쯤 자연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6>

하려 하려 하대 이 뜯 못 하여라 (하려 하려 하되 이 뜻 실천 못 했구나)

이 뜯 하면 지락이 잇나니라 (이 뜻 실천하면 지극한 즐거움이 있느니라)

우읍다 엊그제 아니턴 일을 뉘 올타 하던고 (우습다 엊그제 안하던 일을 누가 옳다 하던가)

자연 속에서 지내기를 실천하지 못했는데, 이제껏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우습다.

 

<7>

말리 말리 하대 이 일 말기 어렵다 (말겠다 말겠다 하지만 이 일 말기 어렵다)

이 일 말면 일신이 한가하다 (이 일 안 하면 내 몸이 한가하다)

어지게 엊그제 하던 일이 다 왼 줄 알과라 (어쩌랴 엊그제 하던 일이 다 틀린 줄 알겠도다)

벼슬을 그만두지 못했으니, 이 일이 틀린 줄 알겠더라.

 

<8>

출하면 치군택민 처하면 조월경운 (나가면 임금 섬기고 백성 다스리며, 머무르면 달 낚고 구름 경작한다)

명철 군자는 이랄사 즐기나니 (현명한 군자는 이것을 즐기니)

하믈며 부귀 위기라 빈천거를 하오리라 (하물며 부귀가 위기라 가난하게 살리라)

현명한 군자는 나가서 벼슬하고 머물러 자연을 즐기니, 부귀없이 가난하게 살리라.

 


 

한거십팔곡 속 함축적 의미와 표현법 알아보기.

 

<1>

평생에 원하나니 다만 충효뿐이로다

이 두 일 말면 금수(禽獸)나 다라리야

마암에 하고져 하야 십재황황하노라

중장 이 두 일의미하는 바는 충효.

 

<2>

계교(計較) 이라터니 공명느저셰라

부급동남(負東南)하야 여공불급 하난 뜯을

세월이 물 흘아닷 하니 못 이롤가 하야라

종장 못 이롤가는 공명을 못 이룬다는 의미. 공명은 1수의 충효와 상통.

 

<3>

비록 못 일워두 임천이 됴하니라

무심어조(無心魚鳥)난 자한한 하얏나니

조만(早晩)에 세사(世事) 닛고 랄 조차려 하노라

종장 의미하는 바는 임천.

 

<4>

강호에 노쟈 하니 성주를 바리례고

성주를 셤기자 하니 소락(所樂)애 어긔예라

호온자 기로(岐路)에 셔셔 갈 대 몰라 하노라

초장,중장은 대구법 통해 서로 다른 태도 표현.

4수는 정철 관동별곡 중, 王程(왕뎡)有限(유한)하風景(풍경)이 못 슬믜니, 幽懷(유회)도 하도 할샤, 客愁(객수)도 둘 듸 업다.’ 와 주제 상통.

초장, 중장은 시어가 연쇄적으로 연결됨.

 

<5>

어지게 이러그러 이 몸이 엇디할고

행도(行道)도 어렵고 은처(隱處)도 정티 아냣다

언제야 이 뜯 결단하야 종아소락 하려뇨

중장 행도는 사대부로서의 도리를 실천하는 삶으로서 충효(1), 공명(2)과 상통하고, ‘은처는 임천(2), (3), 종장의 종아소락과 상통. 종장 이 뜯은 종아소락과 연결됨.


<6>

하려 하려 하대 이 뜯 못 하여라

이 뜯 하면 지락이 잇나니라

우읍다 엊그제 아니턴 일을 뉘 올타 하던고

이 뜯은 자연 속에서 즐기는 것을 뜻하며, 5수의 종아소락과 상통하고, 종장의 아니턴 일로 연결됨.

초장, 중장은 시어가 연쇄적으로 연결됨.

* 종장은 질문의 형식으로 화자가 가진 걱정,고민을 강조.   


<7>

말리 말리 하대 이 일 말기 어렵다

이 일 말면 일신이 한가하다

어지게 엊그제 하던 일이 다 왼 줄 알과라

이 일은 공명을 좇아 벼슬살이함을 뜻하며, 종장의 엊그제 하던 일과 상통.

초장, 중장은 시어가 연쇄적으로 연결됨.

 

*6수와 7수의 초장, 중장은 대구를 이루면서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대비시킴.  


<8>

출하면 치군택민 처하면 조월경운

명철 군자는 이랄사 즐기나니

하믈며 부귀 위기라 빈천거를 하오리라

이랄사는 치군택민과 조월경운을 모두 가리킴.

 

조선전기 시조는 양반,사대부층이 주로 향유하여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충효나 자연동화를 주제로 삼았다.

한거십팔곡 또한 그 경향에 따른다.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삶과 관련 있는 시어, 1수 충효, 2수 공명, 부급동남, 3수 세사, 4수 성주, 5수 행도, 7수 이 일, 엊그제 하던 일, 8수 치군택민.

자연동화에 바탕을 둔 삶과 관련된 시어, 3수 임천, 무심한 어조, , 4수 강호, 소락, 5수 은처, 이 뜯, 종아소락, 6수 이 뜯, 엊그제 아니턴 일, 8수 조월경운, 빈천거 등이 있다.

blog.naver.com/ssamiae/221230303160   나답게 기분 좋게

 
*** 참고 자료

cafe.daum.net/dnflemftks/DCQT/92   우.리.들.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