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내 정․사․당․재의 주련조사현황

2018. 8. 18. 01:33차 이야기


昌德宮內 亭․榭․堂․齋의 柱聯 調査 現況| 문화재연구

樂民(장달수) | 조회 43 |추천 0 | 2018.08.16. 00:19



昌德宮內 亭․榭․堂․齋의 柱聯 調査 現況
(창덕궁내 정․사․당․재의 주련조사현황)



첨부파일 昌德宮內 亭·謝·堂·齊의 柱聯調査現況.pdf



李 廷 燮

(文化財專門委員)


가. 창덕궁 건치연혁(昌德宮 建置沿革)

   창덕궁(昌德宮)울특별시 종로구(鐘路區) 와룡동(臥龍洞) 2-27번지에 위치해 있는 조선왕조(朝鮮王朝) 초기(初期)(1405)에 세워진 궁궐(宮闕)로서, 조선역대(朝鮮歷代)의 왕(王)이 여기에서 정치(政治)하고 상주(常住)하든 곳이다. 1963년에 사적(史蹟) 122호로 지정되었다.
   당초 조선 태조(朝鮮太祖)가 한양(漢陽)(서울)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경복궁(景福宮)을 왕궁(王宮)으로 삼았으나 제2대왕 정종(定宗)이 개성(開城)으로 환도(還都)하였고 제3대왕 태종(太宗)은 다시 한양(漢陽)에 돌아온 후, 태종(太宗) 5年(1405)에 별궁(別宮)을 짓게 하였는데, 이것이 창덕궁(昌德宮)이며 일명(一名) 동궐(東闕)이라고도 한다.


   태종(太宗) 12年(1412)에는 돈화문(敦化門)(보물(寶物) 383호)이 건립(建立)되고, 이어서 인정전(仁政殿)․선정전(宣政殿)․보경당(寶慶堂) 등 많은 전각(殿閣)들이 건립(建立)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으로 소실(燒失)되고, 광해군(光海君) 3年(1611)에 중건(重建)되었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1623)으로 수정당(壽靜堂)충묵당(冲黙堂) 및 인정전(仁政殿)을 제외하고는 또다시 소진(燒燼)되어, 인조(仁祖) 25年(1647) 가을에 인경궁 전각(仁慶宮 殿閣)을 철거하여 중건(重建)하였는데, 명호(名號)만은 옛날 그대로였으나 규모(規模)나 제도(制度) 등이 전부 변경(變更)되었다. 그 뒤에도 많은 화재가 있었으며, 일정시(日政時)에는 대조전(大造殿)이 소실(燒失)되자 경복궁(景福宮)의 교태전(交泰殿) 등의 건물을 뜯어다가 영조(營造)하는 등 많은 변천(變遷)이 있었다.

   창덕궁(昌德宮)의 총면적(總面積)은 후원(後苑)인 비원(秘苑)(금원(禁苑))을 포함하여 129,453평(坪)이다. 이 궁내(宮內)에는 현재(現在)에도 정전(正殿)인 인정전(仁政殿), 편전(便殿)인 희정당(熙政堂)을 비롯하여 별궁(別宮)인 낙선재(樂善齋) 등 전각(殿閣) 13동(棟)과, 그리고 비원(秘苑)의 명당(明堂)에 자리잡은 부용정(芙蓉亭)․연경당(演慶堂) 등 25개소의 정사(亭榭)를 포함하여 많은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어,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옛 모습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는 유일(唯一)한 궁궐(宮闕)이다.<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攬)․창덕궁안내도(昌德宮案內圖)․궁궐지(宮闕誌) 참조>


나. 주련 조사경위(柱聯 調査經緯)
   이 궁내(宮內)의 건물(建物) 중에 부용정(芙蓉亭)․연경당(演慶堂) 등 16개 건물에는 주련
(柱聯)이 부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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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련(柱聯)이란 기둥이나 바람벽에 장식으로 그림이나 글씨를 넣어 걸치는 물건이다. 글씨는 판각(板刻) 또는 저지(楮紙)에 묵서(墨書)로 써서 붙이는 것이 통례(通例)이며, 대체로 대련(對聯)의 시구(詩句)로 이루어졌다.

   이 궁내(宮內)에는 묵서(墨書)로 쓰여진 저지주련(楮紙柱聯)이 연경당(演慶堂) 행랑(行廊)채의 기둥에 더러 부착되어 있기는 하나, 대부분 판각주련(板刻柱聯)이다. 묵서(墨書)로 쓰여진 저지주련(楮紙柱聯)은 퇴색하거나 찢겨져서 판독이 불가능할 뿐더러 간혹 몇 글자씩 보이는 것이 있어도 전구(全句)를 알 수가 없다. 이 저지주련(楮紙柱聯)이 어느 시대(時代) 누구의 필적(筆跡)인지 알 길은 없으나, 출입(出入)이 제한된 금궁(禁宮)의 주련(柱聯)이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왕자(王子)나 각관(各官)의 필적(筆跡)으로 추측된다. 이의 보존(保存)에 진작 착안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판각주련(板刻柱聯)들은 부용정(芙蓉亭) 등 16개 건물에 부착되어 있다. 이 주련(柱聯)들이 언제 누구의 손에 의해 부착되었는지 고증(考證)할 수는 없지만, 대련(對聯)이 맞지 않고 불합리하게 부착된 것이 상당수 발견되었다. 이는 아마 건물을 보수할 때에 다소 이용된 듯하다.

   조사자(調査者)는 현재 부착된 주련(柱聯)을 기준으로 삼아 동일건물내(同一建物內)에서 대련(對聯)을 맞추어 정리하였다. 단(但), 농수정(濃繡亭)에서는 인접건물(隣接建物)인 선향재(善香齋)의 주련(柱聯) 1점으로, 낙선재(樂善齋)에서는 연와창고(煉瓦倉庫)에 보관된 주련(柱聯) 2점으로 대련(對聯)을 찾아 맞추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향재(善香齋)․ 취한정(翠寒亭)․ 낙선재(樂善齋) 등에는 대련(對聯)이 찾아지지 않는 주련(柱聯)이 각각 1점씩 부착되어 있다. 이들을 임의(任意)로 이동(移動)하기란 미안(未安)하므로 편의상(便宜上) 현재 부착된 건물 후미(後尾)에 지정하여 두고, 본고(本稿)에서도 당해 건물의 후미에 두었다.


   위에 열거(列擧)한 3점의 주련(柱聯)을 제외하고는 유사(類似)한 것끼리 대련(對聯)을 찾아 맞추기는 하였으나 염법(簾法)(평측(平仄))에 맞지 않는 것이 더러 있다. 그리고 한정당 방내(閒靜堂 房內) 장지문에 부착된 판각용 모사주련(板刻用 模寫柱聯) 10구
(句)도 이번 조사(調査)에서 같이 포함시켰다.

   각 건물별(建物別) 주련현황(柱聯現況)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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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건물명
수 량
비 고
조사이전 조사이후


1. 부 용 정
(芙 蓉 亭)
2. 연 경 당
(演 慶 堂)
3. 선 향 재
(善 香 齋)
4. 농 수 정
(濃 繡 亭)
5. 애 연 정
(愛 蓮 亭)
6. 승 재 정
(勝 在 亭)
7. 폄 우 사
(砭 遇 榭)
8. 존 덕 정
(尊 德 亭)
9. 관 남 정
(觀 纜 亭)
10. 청 심 정
(淸 心 亭)
11. 취 한 정
(翠 寒 亭)
12. 소 요 정
(逍 遙 亭)
13. 태 극 정
(太 極 亭)
14. 청 의 정
(淸 漪 亭)
15. 낙 선 재
(樂 善 在)
16. 한 정 당
(閒 靜 堂)
연와창고내
(煉瓦倉庫內)
소 계
(小 計)
17. 한정당방내
(閒靜堂房內)
장지문
총 계
(總 計)
10
40
16
7
8
4
8
6
6
4
11
4
4
4
19
18
2
171
10
181
10
40
15
8
8
4
8
6
6
4
11
4
4
4
21
18
171
10
181


「춘추풍일장정신(春秋風日長精神)」 1점은 농수정(濃繡亭)으로 이송(移送), 

「각대진산간화도(却對眞山看畵圖)」 1점은 무대(無對) : 1점이 선향재(善香齋)에서 이래(移來)
「불수류화천만점(佛水柳花千萬點)」은 무대(無對)
연와창고내(煉瓦倉庫內) 소장 2점 추가(追加). 

「의사산경편대황(擬寫山經徧大荒)」 1점은 무대(無對) : 낙선재(樂善齋)로 이송(移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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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주련(柱聯)들은 오언(五言) 또는 칠언(七言)의 한시(漢詩)로 구성(構成)되었는데, 고시(古詩)를 일련(一聯)씩 그대로 인용전사(引用轉寫)한 것도 상당수 있었으며, 대부분 초서체(草書體)로 쓰여져 있다.
이의 이해나 판독은 전문가(專門家)가 아니면 불가능한 실정이므로 이번 조사를 계기로 초서체(草書體)로 쓰여진 이 주련(柱聯)들을 모두 해서체(楷書體)로 옮겨 적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였으며, 특히 난해(難解)한 구절(句節)이나 고사(故事)들은 주석을 붙였다.


   그리고 주련(柱聯)이 부착된 각 건물명 아래에 간략한 해설을 아울러 붙였는데, 이의 해설에서 특히 건물의 구조․양식 등에 관한 설명들은,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攬)》․《창덕궁안내도(昌德宮案內圖)》에 게재(揭載)된 내용을 많이 참고 원용(遠用)하였음을 밝혀둔다.


1. 부용정(芙蓉亭)
    비원(秘苑)의 주합루(宙合樓) 남쪽 연못 위에 위치해 있는데, 조선숙종(朝鮮肅宗) 23年(1677)에 건립(建立)택수재(澤水齋)정조(正祖) 때에 개건(改建)하여 부용정(芙蓉亭)로 명명(命名)하였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말한다. 이 정자는 정자형(丁字形)집에 아자형(亞字形)집 일부가 복합(複合)하여 이루어진 다각(多角)집이다. 건물 일부가 물에 떠 있는 형상(形象)이며, 공포(栱包)는 2익공(翼工)이고 4분합(分閤)을 달아 개방(開放)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긋기 단청(丹靑)을 하였고, 건물 밖으로 죽 돌려가며 쪽마루를 만들고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다. 정조어제(正祖御製)‘부용정상량문(芙蓉亭上樑文)’과 ‘부용정상화균어시(芙蓉亭賞花鈞魚詩)’ 등이 전한다.


천총염색하유채(千叢艶色霞流彩) 천 떨기 고운 자태 아름다운 놀 흐르고
십리청향사열제(十里淸香麝裂臍) 십리에 퍼진 맑은 향기 사향을 터트린 듯.
낭원열선장취개(閬苑列仙張翠蓋) 낭원(閬苑)1)의 신선들 푸른 일산 펼친 듯
대라천불옹향성(大羅千佛擁香城) 대라천(大羅天)2) 일천 부처 향성(香城)에 싸여 있듯.
취단교영임명경(翠丹交暎臨明鏡) 붉은 색 푸른 색 어리 비쳐 맑은 물에 드리웠고
화엽구향투화렴(花葉俱香透畵廉) 꽃도 잎도 향기로와 발 속에 스며드네.
청악삼천궁검취(晴萼三千宮臉醉) 활짝 핀 꽃봉우리 삼천궁녀(三千宮女) 취한 볼이요
우하오백불주원(雨荷五百佛珠圓) 연잎 위 빗방울은 오백나한(五百羅漢) 염주알이라.
귀희어유추수리(龜戱魚游秋水裏) 거북이 놀고 고기 헤어치는 맑디맑은 가을물 속이요

노번풍선조량시(露繁風善早凉時) 이슬 짙고 바람 좋은 서늘한 초가을일레.

2. 연경당(演慶堂)
   비원(秘苑)에 위치해 있는 이 건물은 순조(純祖) 28年(1828) 익종(翼宗)(추존왕(追尊王))이 세자(世子)로서 대리청정(代理聽政)할 때 개건(改建)하였는데, 당시 사대부(士大夫)들의 저택(邸宅)을 모방한 속칭(俗稱) 99간(間)집이다. 궁(宮)의 후원(後苑)에 있으면서 단청(丹靑)을 하지 않고 민가(民家)를 모방하였으며, 왕(王)도 이곳에 올 때에는 꼭 사대부(士大夫) 차림을 하였다 한다. 정문(正門) 장락문(長樂門)을 들어서면서 사랑(舍廊)채를 통하는 장양문(長陽門)이 있고 내당(內堂)으로 통하는 수인문(脩仁門)이 있다.


1) 閬苑(낭원) : 仙人이 사는 곳

2) 大羅天 : 하늘의 이름, 三界의 위에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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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앞마당에 본채가 있고 나직한 흙담을 경계로 삼아 또 한 채의 집이 있는데, 이도 동일건물로서 단형(短形)의 평면(平面)을 가진 건물이다. 두 집 모두 정문(正門)을 널찍이 잡고 앞에는 좁은 퇴간(退間)을 두는 형식이며, 뒤로 쪽마루를 깔아 내왕(來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내당(內堂)은 정면(正面) 6간(間), 측면(側面) 2간(間), 팔작(八作)지붕 굴도리집이며, 문비(門扉)는 2분합(分閤)을 달았다.


  이들 건물 좌우에는 행랑(行廊)이 각기 연속하여 지어졌는데, 간마다 온돌을 들인 납도리집이다. ‘연경(演慶)’이란 자손이 복을 장구히 누림을 뜻한다. 이 연경당(演慶堂)의 판각주련(板刻柱聯)에는 주련(柱聯)을 쓴 필자(筆者)의 호(號)와 성명(姓名)이 좌측(左側) 중․하부(中․下部)에 새겨져 있다.


진성루각연화리(秦城樓閣烟花裏) 진성(秦城)의 누각(樓閣)3)은 놀 속에 묻혀 있고
한제산하금수중(漢帝山河錦繡中) 한제(漢帝)의 산하(山河)4)는 수목(樹木)에 싸여 있네.
임사무의지도력(臨事無疑知道力) 일에 임해 의심없으니 도력(道力)을 알겠고
독서유미각심한(讀書有味覺心閒) 글 읽음에 맛있으니 마음 한가로움 깨닫겠네.
운리제성쌍봉궐(雲裏帝城雙鳳闕) 구름 속의 황성(皇城)은 한쌍의 봉궐(鳳闕)이요
우중춘수만인가(雨中春樹萬人家) 비 속의 봄 숲에는 만인의 집일레.5)
서기형부청옥안(瑞氣逈浮靑玉案) 서기는 아스라히 청옥 책상에 떠오르고
일화요상역상포(日華遙上亦霜袍) 햇빛은 아득히 붉은 도포에 어른거리네.
운근봉래상오색(雲近蓬萊常五色) 봉래산 가까운 구름 언제나 오색이요
설잔지작역다시(雪殘鳷鵲亦多時) 지작관(鳷鵲觀)6) 남은 눈은 오래도록 쌓여 있네.
산중노숙의연재(山中老宿依然在) 산중의 고승(高僧)은 의연히 앉아 있는데
안상능엄기불간(案上愣嚴己不看) 책상 위 《능엄경》은 보지 않은 지 오래이네.7)
명장존심유지리(名將存心惟地理) 명장(名將)의 마음 둠은 오직 지리(地理)요
성문전업지관서(聖門傳業只官書) 성문(聖門)의 업 전함은 다만 관서(官書)일세.
구천일월개신운(九天日月開新運) 구천(九天)의 일월(日月)이 새로운 운수 열어주니
만리운하취태평(萬里雲霞醉太平) 만리(萬里)의 운하(雲霞)가 태평에 취해 있네.
천리춘풍회벽만(千里春風回碧巒) 천리(千里)의 봄바람이 푸른 메에 돌아오고
남극상광조길창(南極祥光兆吉昌) 남극성(南極星)의 서광이 길상(吉相)을 조짐하네.
청어상고무위세(請於上古無爲世) 아득한 옛날 요순(堯舜) 시대에
장작천가재야신(長作天家在野臣) 길이 천자국(天子國) 신민(臣民) 되어지이다.
공숭육자곽중령(功崇六字郭中令) 온 누리에 우뚝한 공으로는 곽중령(郭中令)이요8)

하향풍흥성지청(荷香風興聖之淸) 연꽃 위의 맑은 기상 백이(伯夷)의 바람일레.9)

3) 秦城의 樓閣 : 秦城은 秦나라가 五嶺을 防守할 때에 쌓은 城. 여기서는 秦나라의 영토 안에 있는 樓閣을 뜻한다.
4) 漢帝의 山河 : 漢帝는 漢나라의 天子. 漢高祖가 建國한 漢나라의 영토를 말한다.
5) 구름 속의……집일레 : 이 對聯은 唐의 詩人 王維의 <奉和聖製從蓬萊向興慶閣道中留春雨中春望之作應制>의 제5∼6句이다. 鳳闕은 宮城의 御門. 양쪽 樓觀 위에 銅으로 만든 鳳이 있었으므로 鳳闕이라 한다.
6) 鳷鵲觀(지작관) : 甘泉苑에 있는 樓觀 이름. 漢武帝 때에 營造하였는데, 陝西省(협서성) 淳化縣에 있다.
7) 산중의……오래이네 : 이 對聯은 宋의 文豪 蘇軾의 <贈惠山僧惠表詩>에서 인용한 것이다.
8) 온 누리에……郭中令이요 : 郭中令은 唐의 玄宗∼德宗 때의 名臣 郭子儀를 말한다. 그는 安錄山의 亂을 平定하였고, 吐藩을 大破하였으며, 德宗 때 大尉․中書令에 올라, 天下의 安危가 그의 一身에 달려 있은 지가 20여 년이었다. ‘中領’은 中書令을 말한다. 흔히 그를 廓汾陽(곽분양) 또는 廓令公이라 부른다. 《唐書券一百三十七》

9) 伯夷의 바람일레 : 伯夷는 殷 末期의 處士. 周武王이 殷을 치려는 것을 말리다가 듣지 않으므로 周의 곡식을 먹기를 부끄럽게 여기어 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다가 굶어 죽었다. 아우 叔齊와 함께 高潔한 人物로 竝稱된다. 《孟子 萬章下》“伯夷의 風節을 듣는 사람은 미련하게 탐욕한 자는 廉潔해지고 유약하게 겁많은 자는 立志함이 있다. [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하였고, 또 “伯夷는 聖人 중에 가장 淸高한 사람이다. [伯夷 聖之淸者也]”하였다. ‘淸聖’은 伯夷의 별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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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명조개고사(兩京名詔皆高士) 양경(兩京)의 내린 조서(詔書) 고사(高士)를 초치(招致)하10)
사시화기급창생(四時和氣及蒼生) 사시의 화한 기운 창생에게 미치네.
산정일장인자수(山靜日長仁者壽) 긴긴해 고요한 산은 인자(仁者)가 장수하고11)
월명인영경중래(月明人影鏡中來) 밝은 달 아래 사람 그림자 거울 속에 오도다.
반창소영매화월(半窓疎影梅花月) 반창(半窓)의 성근 그림자 달 아래 매화요
일탑청풍백자향(一榻淸風柏子香) 자리 밑 맑은 바람 잣나무 향기로다.
산경요촌송엽암(山逕繞村松葉暗) 산길이 마을 두르니 솔잎이 짚푸르고
자문임수도화향(紫門臨水稻花香) 사립문이 물에 임했으니 벼꽃이 향기롭네.
어차간득소가취(於此間得少佳趣) 이 중에서 조그마한 흥취를 얻어서
역족이창서유정(亦足以暢敘幽情) 그윽한 이내 정회 펼칠 만하이.
청흥고어장상월(淸興高於將上月) 맑은 흥취는 돋아올 달보다 높고
심정일비욕개존(深情溢比欲開尊) 깊은 정희는 개봉하려는 술두루미마냥 넘치네.
동약루신송국경(僮約屢伸松菊徑) 사환 아이와 약속은 송국(松菊) 길에서 이루어지고12)
수조선보기하주(水祖先報芰荷洲) 수신(水神)은 먼저 연꽃 피는 물가 알리네.
춘우행화우학사(春雨杏花虞學士) 봄비와 살구꽃은 우학사(虞學士)13)의 글이요
주기산곽두사훈(酒旗山郭杜司勳) 주기(酒旗)와 산곽(山郭)은 두사훈(杜司勳)14)의 시일레.
낙의상관금대어(樂意相關禽對語) 즐거운 뜻 서로 연함은 새들의 지저귐이요

생향부단수교화(生香不斷樹交花) 향내가 끊이지 않음은 나무와 꽃이 어울림일세.

3. 선향재(善香齋)
   연경당(演慶堂)의 사랑으로 서재(書齋)를 겸한 문인(文人)들을 접대하던 곳이다. 서재(書齋)를 운각(芸閣) 또는 운향각(芸香閣)이라고 하는데, 옛사람이 장서(藏書)할 때 좀의 방지를 위해 운초(芸草)(향초(香草))를 넣은 데서 유래한 것이며, 독서(讀書)하는 기풍을 서향(書香)이라 한다. 선향(善香)은 ‘좋은 향기’로 독서를 뜻한다. 정면(正面) 7간, 측면(側面) 1간, 맞배지붕, 납도리집이며, 전면에는 일본인(日本人)이 만든 함석 지붕 전퇴(前退)가 있다. 박공측벽(朴工側壁)은 기하문(幾何文)의 문양(文樣)으로 이루어졌다.


10) 兩京의……招致하니 : 兩京은 漢의 西京(長安)東京(洛陽)인데, 즉 西漢東漢을 말한다. 詔書는 天子가 國民에게 布告하는 글. 漢나라 때 詔書를 내려 高士들을 招致하여 관직에 임용하였다.
11) 긴긴해……장수하고 : 《論語 雍也》에 “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知者는 動的이고 仁者는 靜的이며, 知者는 成功하여 항상 즐겁고 仁者는 恬淡하여 항상 장수한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하였다.
12) 사환 이이와……이루어지고 : 晉의 處士 陶淵明(潛)의 <歸去來辭>의 글귀를 따다가 쓴 것이다. <歸去來辭> 陶淵明이 벼슬을 버리고 田園으로 돌아올 때의 정경을 읊은 글이다. <歸去來辭> “사환 아이는 반갑게 맞이하고 어린 자식은 문에서 기다린다. 옛날 노닐던 세 길은 황무해졌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도 남아 있다「僮僕歡迎 侈子候門 三徑就荒 松菊猶存」”하였다.
13) 虞學士 : 唐太宗 때 弘文館學士를 지낸 虞世南을 말한다. 德行․忠直․博學․門司․書翰(글씨) 등 五絶로 일컬어진다. 《北堂書抄》가 있다. 《唐書卷一百二》
14) 杜司勳(두사훈) : 唐의 詩人 杜牧. 杜牧이 司勳員外郞을 지냈으므로 이른 말. 杜牧의 <江南春詩> “물가 마을 산 가까운 성곽에 酒旗가 흩날리네. 「水村山郭酒旗風」”라는 詩句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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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마륵과(道德摩勒果) 도덕은 마륵향의 과일이요
문장발담화(文章鉢曇花) 문장은 우담발라의 꽃일레.
장자야사백(張子野詞伯) 장자야(將子野)15)는 詞의 대가이고
이장군화사(李將軍畵師) 이장군(李將軍)16)은 그림의 사표이네.
여남심맹박(汝南尋孟博) 여남(汝南)에 범맹박(范孟博)을 찾아가고17)
고밀방강성(高密訪康成) 고밀(高密)에 정강성(鄭康成)을 찾아가네.18)
세독사천집(細讀斜川集) 소과(蘇過)19)의 사천집(斜川集)을 자세히 읽고
신팽고저차(新烹顧渚茶) 고저산(顧渚山)20)의 명차를 새로 달이네.
양죽불제당로순(養竹不除當路筍) 대를 기르자니 길에 나온 죽순 벨 수 없고
애송유득애문지(愛松留得礙門枝) 솔을 사랑하니 문에 걸린 가지 남겨 두었네.
사편작감추군실(史編作鑑推君實) 역사 편찬은 《자치통감(資治通鑑)》 지은 군실(君實)을 추중하고21)
부필능운의자허(賦筆凌雲擬子虛) 부(賦) 솜씨는 자허부(子虛賦) 지은 사마상여(司馬相如) 비기리.22)
폭포지여운진수(瀑布之餘雲盡水) 폭포 끝의 구름은 물에서 다하였고
복령기상수교화(茯笭基上樹交花) 복령 위의 나무는 꽃과 서로 어울렸네.

각대진산간화도(却對眞山看畵圖) 도리어 진산(眞山) 대하니 그림 보는 듯하이.

4. 농수정(濃繡亭)

   연경당(演慶堂) 깊숙이 들어 앉은 후원별정(後苑別亭)으로 정․측면(正․側面) 1간에 익공계(翼工系) 사모지붕이다.

15) 張子野 : 宋 仁宗 때의 詞의 大家 張先 그의 得意作의 詞에 모두 影字가 있어서 ‘長三影’이라 불렀고, 또 그의 詞에 心中事․眼中事․意中人이 있어서 ‘張三中’이라 부른다.
16) 李將軍 : 唐中宗 때의 畵家 李思訓. 北宗畵의 始祖. 玄宗 때 右武衛大將軍에 올랐다. 그를 大李將軍, 그의 아들 昭道小李將軍으로 부른다. 특히 山水畵에 능하여 ‘李將軍山水’로 일컫는다.
17) 汝南……찾아가고 : 范孟博은 後漢 桓帝․靈帝 때의 名士 范滂(범 방). 孟博은 그의 字다. 汝南 征羗 사람. 젊어서부터 淸節을 지켰고, 천하를 맑게 하려는 뜻을 가졌다. 汝南太守 宗資가 그에게 功曺벼슬을 시켜 정사를 위임하고 매사를 그의 의견대로 승낙해 주었다. 당시 名士였던 李膺․竇武 등과 명성이 비등하였다. 뒤에 黨禍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었다. 《後漢書卷九十九》
18) 高密에……찾아가네 : 鄭康成은 後漢靈帝 때의 학자 鄭玄. 康成은 그의 字다. 北海 高密 사람. 馬融을 師事하였고, 靈帝初에 黨禍가 일어나자 학업에만 열중하였다. 門徒가 수천 명이나 되었다. 國相 孔融이 鄭玄에게 찾아가 제자가 되고, 그의 고장을 ‘鄭公鄕’으로 지정하였다. 大將軍 何進․袁紹 등도 사신을 보내어 그를 초빙하였《後漢書卷三十五》
19) 蘇過 : 宋나라 眉山 사람. 字는 叔黨. 호는 斜川居士. 東坡 蘇軾의 아들. 文章과 書畵에 능하였다. 당시 ‘小坡’ 일컬었다. 그의 詩文集 《斜川集》이 전한다. 《宋史卷三百三十八》
20) 顧渚山 : 中國 浙江省 長興縣에 있는 山名으로 차의 産地이다. 그래서 명차로는 ‘顧渚茶’를 꼽는다.
21) 역사 편찬은……추중하고 : 《資治通鑑》 지은 宋代의 名臣 司馬光이 역사의 대가로 추앙을 받는다는 뜻이다. 君實은 司馬光의 字다. 《資治通鑑》은 294권, 目錄 30권, 考異 30권으로 司馬光의 奉詔撰인 編年史. 戰國時代부터 五代時代까지 1천 3백년간의 사실이 기록되었다.
22) 賦 솜씨는……비기리 : 司馬相如는 漢武帝 때 司賦의 대가. 字는 長卿. 賦를 지어 바친 것으로 郞官이 되었고, 그의 작품 중에 子虛賦․上林賦․大人賦 등이 있는데, 이는 漢代의 詞宗으로 꼽는다. 司馬相如가 大人賦를 지어 바치자, 天子는 크게 기뻐하여, ‘구름을 타고 훨훨 높이 나는 기상이 있었다「飄飄有凌雲之氣」’한다. 《史記 司馬相如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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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柱間) 4면(面)에는 벽(壁)이 없이 만자(卍字)무늬 4분합(分閤)이 달렸다. 천장은 우물 천정(天井)이며, 내부는 마루로 되어 있고 정자 기둥 밖으로 쪽마루를 깔고 법수(法首) 모양이 있는 조그만 난간을 돌렸다. 지붕은 겹처마이고 정상(頂上)에 절병통(節甁通)을 놓았다. ‘농수(濃繡)’수목(수(繡))이 울창하게 우거져(농(濃)) 비단을 펼친 듯함을 말한다.

오색천서사현란(五色天書詞絢爛) 오색의 어필(御筆)은 문장도 찬란하고
구중춘전어종용(九重春殿語從容) 구중궁궐 봄 전각엔 말씨도 조용하네.
춘수방생화래경(春水方生華來鏡) 막 불어난 봄물에 꽃이 비쳐 오고
오려가애주만상(吾廬可愛酒滿床) 사랑스런 내 집엔 술이 상에 가득하이.
여사가회지난득(如斯嘉會知難得) 이러한 좋은 모임 얻기 어려움 알겠거니
상주시인약유연(常駐詩人若有緣) 언제나 머무는 시인 인연 있는 듯하이.
한위문장다고질(漢魏文章多古質) 한위(漢魏)23)의 문장은 예스럽고 질박하고

춘추풍일장정신(春秋風日長精神) 춘추(春秋)의 필법24)은 장구한 정신일세.

5. 애련정(愛蓮亭)
   어수당(魚水堂) 동쪽, 애련지(愛蓮池) 위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조선 숙종 18년(1692)에 건립(建立)되었다. ‘애련(愛蓮)’이란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연꽃은 군자(君子)를 상징하는 꽃으로 송대(宋代)의 광풍제월(光風霽月)처럼 고매한 인품을 지닌 주렴계(周濂溪)(돈이(惇頤))가 특히 사랑하였으며, 그의 애련설(愛蓮說)이 있다. 정․측면(正․側面) 1간의 익공계(翼工系) 4각(角)지붕이다. 난간의 쪽마루는 계자각(鷄子脚)으로 받았고, 전면(前面) 두 기둥은 4각(脚) 장초석(長礎石)을 사용, 연못까지 내려왔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정상(頂上)에는 절병통(節甁通)을 얹고, 목부(木部)에는 단청(丹靑)을 하였다. 숙종어제(肅宗御製) 애련

정기(愛蓮亭記) 정조어제(正祖御製)애련시(愛蓮詩)가 전한다.

우엽진주산(雨葉眞珠散) 비맞은 연잎 위에 진주알 흩어지고
청화분검명(晴花粉臉明) 활짝 핀 연꽃은 단장한 고운 볼일레.
정근여래좌(亭近如來座) 정자는 여래(如來)25) 자리에 가깝고
지용태을주(池容太乙舟) 못은 태을주(太乙舟)26)를 띄웠네.
화애칭군자(花愛稱君子) 꽃이 사랑스러워 군자(君子)라 일컫고27)

귀령헌성인(龜齡獻聖人) 거북이 나이28)를 성상(聖上)께 바치네.

23) 漢魏 : 두 王朝의 이름. 은 劉邦이 秦을 몰아내고 建立하였고,는 漢末 三國의 하나로, 曹操가 魏公에 봉해졌고, 그의 아들 曺丕가 漢을 簒奪하였다. 漢文, 唐詩, 宋詞, 元曲으로 흔히 일컫는다.
24) 春秋의 필법 : 魯의 歷史書《春秋》의 문장에는 孔子의 역사의 비판이 나타나 있다고 한 데에서, 중국의 《春秋》와 같은 비판 태도를 말한다. ‘春’ 봄에 만물을 生育하듯 善을 襃揚하는 것, ‘秋’가을에 만물을 肅殺하듯 惡을 벌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25) 如來 : 석가모니 여래. 佛世尊. 정자 이름이 愛蓮亭이요, 佛菩薩이 앉는 자리를 ‘蓮華座’라 하기 때문에 ‘如來자리에 가깝다‘한 것이다.
26) 太乙舟 : 太乙을 무늬 놓은 배. 太乙은 神靈한 별. 하늘 북쪽에 있어 兵亂․災禍․生死를 맡아 다스린다 한다.
27) 꽃이……일컫고 : 宋의 學者 濂溪 周惇頤가 연꽃을 특별히 사랑하여, 꽃 중의 ‘君子’라 명명하였는데, 그 뒤부터 연꽃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28) 거북이 나이 : 장수를 뜻한다. 거북이는 천년을 산다 한다. 거북이의 장수를 임금에게 바쳐 축수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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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통공어주(碧筒供御酒) 푸른 연대로 어주(御酒)를 드리고

하기산천향(霞綺散天香) 찬란한 놀 천화(天花)29)의 향기 흩도다.

6. 승재정(勝在亭)
   반도지(半島池)의 남안(南岸), 존덕정(尊德亭)의 동남암(東南岸)에 위치해 있는데 건립연대(建立年代)는 미상(未詳)이다. ‘승재(勝在)’경승(景勝)이 있다는 뜻이다. 정․측면(正․側面)이 각(各) 1간(間)에 익공계(翼工系) 4각(角)지붕이다. 8각형초석(角形礎石) 위에 세장(細長)한 원주(圓柱)를 세우고 주간(柱間)에 만자(卍字)무늬의 분합(分閤)을 달았다. 정자 기둥 밖으로도 쪽마루를 깔고 아자교란(亞字交欄)을 달았으며, 전후(前後)로 통로(通路)가 났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정상(頂上)에는 절병통(節甁桶)이 있고 모루단청(丹靑)을 하였다.


태액지변송옥배(太液池邊送玉杯) 태액지(太液池)30) 못가에서 옥술잔 보내고
피향전상유주련(披香殿上留朱輦) 피향전(披香殿)31) 전각 위에 붉은 연(輦) 머물도다.
용사난획천장목(龍蛇亂擭千章木) 천 그루 나무에는 용과 뱀이 휘감긴 듯

환패쟁명백도천(環珮爭鳴百道泉) 백 갈래 샘물은 패옥(佩玉)이 울리는 듯.

7. 폄우사(砭愚榭)
   어수당(魚水堂) 북쪽, 존덕정(尊德亭) 남린(南隣)에 위치해 있는데, 건립년대(建立年代)는 미상(未詳)이나, 순조(純祖)의 세자(世子) 익종(翼宗)<추존(追尊)>이 독서(讀書)하든 곳이기도 하다. ‘폄우(砭愚)’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쳐준다는 뜻이다. 이를 송대(宋代)의 학자(學者) 장횡거(張橫渠)<재(載)>가 서실(書室)의 현판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정면(正面) 3간(間), 측면(側面) 1간(間)의 맞배지붕 익공(翼工)집이다. 기포(棋包)는 초익공(初翼工)이나 합각머리쪽의 창방머리는 초각(草刻)되어 소로를 받았고, 3간(間)이 모두 판상(板床)이나, 1간(間)은 3면(面)을 개방(開放)하고 2간(間)은 방을 꾸몄다. 전면(前面)에는 쪽마루가 있고 개방간(開放間)과 방 사이에는 정자(正字)살창의 분합문(分閤門)을 달아 벽으로 삼았으며, 각부재(各部材)는 모루단청(丹靑)을 하였다. 정조어제(正祖御製)사영시(四詠詩)익종(翼宗)운시(次韻詩)가 전한다.


남원초방안금치(南苑草芳眼錦雉) 남원(南苑)에 풀 꽃다우니 수꿩이 졸고 있고
협성운□하예모(夾城雲□下霓旄) 협성(夾城)에 구름 따스하니 예모(霓旄)가 내려오네.32)
절벽과운개금수(絶壁過雲開錦繡) 절벽에 구름 지나가니 비단이 펼쳐지고
소송격수주생황(疎松隔水奏笙簧) 성근 솔 물에 가리니 생황이 연주되네.
임하수성훤소어(林下水聲暄笑語) 숲 아래 물소리는 왁자한 웃음소리

엄간수색은방롱(嚴間樹色隱房櫳) 바위 사이 나뭇빛은 은은한 방안이네.

29) 天花 : 불교에서 말하는 天上界에서 피는 靈妙한 꽃.
30) 太液池 : 못 이름. 漢代에는 建章宮 북쪽, 未央宮 서남쪽에 있었고, 唐代에는 大明宮 含凉殿 뒤에 있었다.
31) 披香殿 : 漢代의 宮殿 이름. 長安에 있었다. 朱輦은 임금이 타는 수레.
32) 南苑에……내려오네 : 이 對聯은 唐의 詩人 杜牧<長安雜題詩>에서 引用한 것이다. 南苑은 궁중 남쪽에 있는 동산, 霓旄(예모)는 儀仗의 일종으로 깃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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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각조풍초불류(畵閣條風初拂柳) 화각(畵閣)의 실바람은 버들가지 스쳐가고

은당곡수반함태(銀塘曲水半含苔) 은당(銀塘)의 물굽이는 이끼 반쯤 머금었네.

8. 존덕정(尊德亭)
   반도지(半島池) 서안(西岸)에 위치해 있는데, 인조(仁祖) 22年(1644)에 건립(建立)하여면정(六面亭)으로 부르다가, 뒤에 존덕정(尊德亭)으로 개명(改名)하였다. ‘존덕(尊德)’이란 을 존숭함을 뜻한다. 조선시대의 정자는 일반적으로 4각정(角亭), 또는 8각정(角亭)인데 반해, 이는 보기 드물게 6각정(六角亭)으로 지어졌다. 주심포계(柱心包系)의 기포(棋包)로 짜여졌고, 주간(柱間) 창 아래로는 빗살문과 꽃무늬 교창(交窓)이 전후 각(各) 반반씩 만들어져 있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며 정상(頂上)에는 절병통(節甁桶)이 놓였다. 바닥은 판상(板床)이고 각기 주간(柱間)에 난간을 돌렸으며, 퇴간(退間)은 만자란간(卍字欄干)이고 본건물은 풍혈판(風穴板)이 짜여지는 형식이다. 본 건물의 퇴(退)를 다는 형식은 보기 드문 것이다. 옛날에는 다리 남쪽에 일영대(日影臺)를 설치하여 귀각(晷刻)을 측량했다 한다. 숙종어제(肅宗御製) ‘존덕정우금시(尊德亭偶昑詩)’가 전하고, 편액은 현종어필(顯宗御筆)이다. 정조어제(正祖御製)<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현판(懸板)이 걸려 있다.


성세오유화일장(盛世娛遊化日長) 태평성세 즐겁게 노니 봄날이 길고
군생함약춘풍창(群生咸若春風暢) 온갖 생명 득의(得意)하니 봄바람이 화창하네.
서속일령추수역(庶俗一令趨壽域) 뭇 백성들 한결같이 수역(壽域)에 나아가고
종관개허연봉산(從官皆許宴蓬山) 관원들은 모두가 봉래산(蓬萊山) 잔치 참여하네.
염일기라향상원(艶日綺羅香上苑) 화려한 봄날 비단 차림 상림원(上林菀)33)에 향그럽고

비천소고동요대(沸天簫鼓動瑤臺) 들끓는 풍악 소리 요대(瑤臺)34)를 뒤흔드네.

9. 관람정(觀纜亭)
   반도지(半島池)에 위치해 있는데, 선형(扇形) 기와지붕을 한 굴도리집이다. 건물의 일부가 물에 뜨는 형상이며, 6개의 원주(圓柱)를 세우고 난간을 돌렸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추녀마루 6개가 각각 3개씩 모이고 그 사이에 용마루를 설치하였다. 각 부재(部材)는 단청(丹靑)을 하였다. ‘관람(觀纜)’닻줄 즉 배 띄움을 구경한다는 뜻이다.


주렴수주위황곡(珠簾繡柱圍黃鵠) 구슬 발, 비단 기둥에 황곡(黃鵠)이 에워 싸고
금람아장기백구(錦纜牙檣起白鷗) 비단 닻줄, 상아 돛대에 백구(白鷗)가 날아가네.
채앙정점은당수(彩鴦靜點銀塘水) 원앙새 조용히 은당수(銀塘水)를 쪼으고
유연량비옥우풍(乳燕凉飛玉宇風) 새끼 제비 시원스레 전우(殿宇)의 바람에 날으네.
교전채홍당기전(橋轉彩虹當綺殿) 무지개 다리 돌아서 비단 전각(殿閣)에 닿았고

함부화익근봉래(艦浮花鷁近蓬萊) 그림배 물에 뜨니 봉래산에 가깝네.

33) 上林園 : 漢代 宮闕 안의 동산 이름.

34) 瑤臺 : 옥으로 만든 樓臺로 곧 화려한 누대를 말한다.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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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청심정(淸心亭)
   폄우사(砭愚榭)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원래 천수정(淺愁亭)의 구기(舊基)인데 숙종(肅宗) 14年(1638)에 건립(建立)하여 청심정(淸心亭)으로 개명(改名)하였다. 청심(淸心)이란 마음을 맑게 함을 뜻한다. 정․측면(正․側面) 1간(間), 사모지붕에 굴도리집이며, 난간을 둘렀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각연(角椽)이며, 정상(頂上)에 절병통(節甁桶)을 얹었고 긋기 단청(丹靑)을 하였다. 이 정자의 남쪽에 빙옥지(氷玉池)가 자리하고 있으며, 석귀(石龜)의 등에 어필(御筆) 「빙옥지(氷玉池)」 3자(字)가 새겨져 있다. 숙종어제(肅宗御製) 사시제영시(四時題詠詩), 청심완월시(淸心玩月詩), 청심정기(淸心亭記)와, 정조(正祖)․순조(純祖)의 시가 전한다. 이 정자는 편액(扁額)이 없다.


송배산면천중취(松排山面千重翠) 산앞에 늘어선 솔은 천 겹이나 푸르르고
월점파심일과주(月點波心一顆珠) 물 가운데 찍힌 달은 한 알의 진주일레
암계고응선장로(巖桂高凝仙掌露) 암혈(巖穴)의 계수나무 이슬은 선인장(仙人掌)35)의 이슬이
원란청영옥호빙(畹蘭淸映玉壺氷) 밭두둑에 핀 난초꽃은 옥병의 얼음일레.


11. 취한정(翠寒亭)
   소요정(逍遙亭) 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소요(逍遙)하던 왕이 어정(御井)의 약수(藥水)를 든 후, 감로(□露)에 잠깐 쉬어가던 정자로 건립연대(建立年代)는 미상이다. ‘취한(翠寒)’이란 림(松林)이 울창하게 우거져 여름에도 한기(寒氣)가 감돌 정도의 경승(景勝)을 뜻한다. 정면(正面) 3간(間), 측면(側面) 1간(間)의 팔작(八作)지붕 납도리집이다.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으며, 겹처마이고 단청(丹靑)을 하였다. 숙종(肅宗)․정조어제(正祖御製) 취한정시(翠寒亭詩)가 전한다.


일정화영춘유월(一庭花影春留月) 온 뜨락의 꽃그림자는 봄 밤에 머문 달이요
만원송성야청도(滿院松聲夜聽濤) 정원 가득한 솔 소리는 밤에 듣는 파도일레.
구천로담금반중(九天露湛金盤重) 구천(九天)의 이슬 고여 금반(金盤)36)에 무겁고
오색운수취개응(五色雲垂翠蓋凝) 오색 구름 드리워 푸른 일산에 엉기었네.
보선초개이옥좌(寶扇初開移玉座) 화려한 부채 처음 펼쳐 옥좌(玉座)로 옮기고
화등착출영주진(華燈錯出映朱塵) 꽃등 번갈아 들어 주진(朱塵)37)에 비치네.
난여형출천문류(鸞輿逈出千門柳) 천자(天子) 어가(御駕)는 아득히 천문(千門) 버들 길로 나오고
각도회간상원화(閣道廻看上苑花) 도(閣道)에서 머리 돌려 상림원(上林苑)의 꽃 보누나.38)
종성화로도천수(種成和露桃千樹) 이슬 젖은 복숭아나무 천 그루를 심어서


35) 仙人掌 : 漢武帝가 만든 銅盤. 仙人이 손바닥으로 銅盤을 받쳐 들고 甘露를 받는 상태를 상징하고 있다. 漢武帝
는 이 甘露를 받아 먹고 長生하려 했다.
36) 金盤 : 漢武帝가 仙人掌을 만들어 甘露를 받든 銅盤.
37) 朱塵 : 붉은 빛깔의 먼지. 여기서는 불빛에 어린 꽃그림자를 말한다.
38) 天子 御駕는……꽃 보누나 : 이 對聯은 唐의 詩人 王維의 <奉和聖製從蓬萊向興慶閣道中留春雨春望之作應制>의
제3․4句에서 引用한 것이다. 閣道는 複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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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여마소학수군(借與摩霄鶴數群) 하늘 높이 날으는 학떼들에게 빌려 주리.
불수유화천만점(拂水柳花千萬點) 물에 스치는 버들개지 천만 점이네.


12. 소요정(逍遙亭)
   취한정(翠寒亭)의 서쪽, 옥류천(玉流川) 앞에 위치해 있는데 인조(仁祖) 14年(1636)에 창건(創建)하였다. 처음에는 탄서정(歎逝亭)이라 부르다가 뒤에 소요정(逍遙亭)이라 개명(改名)하였다. 구명(舊名) 탄서정(歎逝亭)의 ‘탄서(歎逝)’란, 물처럼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한다는 뜻다. 정․측면(正․側面) 1간(間)의 익공계(翼工系)사모지붕으로 섬처럼 대(臺)로 쌓아 만든 기단(基壇) 위에 지어졌다. 방형평면(方形平面)의 건물 대부분이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다. 숙종(肅宗)․정조(正祖)․순조(純祖)의 어제시(御製詩)와, 순조(純祖)어제방란정계서(御製倣蘭亭稧序)가 전한다.


일원유화춘서영(一院有花春書永) 온 궁원 꽃이 피니 봄날이 길고
팔방무사소서희(八方無事昭書稀) 팔방이 일없으니 조서(詔書)가 드물도다.
노기효연청계월(露氣曉連靑桂月) 이슬 기운은 새벽에 청계궁(靑桂宮) 달과 연했고
패성요재자미천(珮聲遙在紫微天) 패옥 소리 아스라히 자미천(天)에 들려오네.


13. 태극정(太極亭)
   소요정(逍遙亭)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인조(仁祖) 14年(1636)에 건립(建立)하였다. 처음에 운영정(雲影亭)이라 부르다가 뒤에 태극정(太極亭)으로 개명(改名)하였다. 태극(太極)이란 하늘과 땅이 아직 나뉘어지기 전의 세상 만물의 원시(元始)의 상태. 정측면(正側面) 1간(間)의 사모지붕으로 내부에 마루를 깔고 퇴(退)를 달아 난간(欄干)을 둘렀고 4면에 들쇠를 달아 문을 들어올려서 개방(開放)하도록 하였는데 유리를 끼웠다. 우물 천장(天井)에 겹처마이고, 정상(頂上)에 절병통(節甁桶)을 얹고 단청(丹靑)을 하였다. 숙종(肅宗) 어제(御製)상림삼정기(上林三亭記) 정조(正祖) 어제(御製)태극정시(太極亭詩)가 전한다.


격창운무생의상(隔窓雲霧生衣上) 창을 통해 보니 운무(雲霧)는 옷위에서 피어나고
권만산천입경중(捲幔山川入鏡中) 휘장 걷으니 산천은 거울 속에 들어오네.
유변누각효문앵(劉邊樓閣曉聞鶯) 버들가 새벽 누각에 꾀꼬리 소리 들려오고
화리염롱청방연(花裏簾櫳晴放燕) 꽃속의 비 갠 처마 끝에 제비가 날으네.


14. 청의정(淸漪亭)
   태극정(太極亭) 서쪽 작은 연못가에 위치해 있는데, 인조(仁祖) 14年(1636)에 건립(建立)하였다. 청의(淸漪) 맑고 잔잔한 물결이라는 뜻이다. 정․측면(正․側面) 1간(間)의 익공계(翼工系) 삿갓모양의 4모초가지붕으로 4각형 평면(平面)에 8각형 옥개(屋蓋)로 구성(構成)되었다. 세장(細長) 원형(圓形)의 기둥을 세워 축부(軸部)를 짰고, 기둥 윗몸에 창방과 2익공(翼工)을 결구(結構)하였다. 정상(頂上)에는 절병통(節甁桶) 모양 볏짚으로 상투를 틀어 놓았다. 궁내유일(宮內唯一)의 초정(草亭)이다. 정조어제(正祖御製)청의정시(淸漪亭詩)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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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장응요초벽(僊露長凝瑤草碧) 신선 이슬은 길이 요초(瑤草)에 엉겨 푸르르고
채운심호옥지선(彩雲深護玉芝鮮) 채색 구름은 깊이 옥지(玉芝)를 감싸 고와라.
어약문파시발자(魚躍文波詩撥刺) 물고기 물에 뛰니 때마다 발랄하고
앵유심수구배회(鶯留深樹久徘徊) 꾀꼬리 깊은 숲에 머물러 오래 배회하네.


15. 낙선재(樂善齋)
   창덕궁(昌德宮)의 인정전(仁政殿) 동쪽에 별궁(別宮)처럼 자리잡고 있는데, 헌종(憲宗) 12年(1846)에 창건(創建)하였다. 본시 후궁(後宮)을 위해 세웠다 하며, 국상(國喪)을 당한 왕후(王后)들이 소복(素服)차림으로 거처하던 곳이다. 궁중(宮中)에 있는 건물이면서도 단청(丹靑)을 하지 않은 것은 상중에 근신하는 왕후(王后)의 거처이기 때문이다. 1926년 순종(純宗)이 승하(昇遐)한 후 윤비(尹妃)도 이곳에서 거처하다 승하했고, 1963年 일본(日本)에서 환국(還國)한 영친왕 이은(英親王李垠)도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정면(正面) 6간(間), 측면(側面) 2간(間), 팔작(八作)지붕에 익공(翼工)집으로 겹처마이다. 정면(正面) 6간(間), 측면(側面) 2간(間)의 석복헌(錫福軒)과 접속(接續)되었고, 석복헌(錫福軒)은 수강재(壽康齋)와 이어졌는데, 이 3개 건물을 통칭(通稱)하여 낙선재(樂善齋)라 한다. 그 후원(後苑)에는 취운정(翠雲亭) 한정당(閒靜堂)․상량정(上凉亭)<육각정(六角亭)>․승화루(承華樓)․삼삼와(三三窩)․의신각(儀宸閣) 등이 자리잡고 있다. ‘낙선(樂善)’이란 선(善)을 즐긴다는 뜻이다. 이 건물의 주련(柱聯)에는 좌측(左側) 중․하부(中․下部)에 필자(筆者)의 성명(姓名) 또는 호(號)가 새겨져 있다.


와당문연년익수(瓦當文延年益壽) 와당(瓦當)에는 「연년익수(延年益壽)」 무늬놓고39)
동반명부귀길상(銅盤銘富貴吉祥) 동반(銅盤)에는 「부귀길상(富貴吉祥)」 새겼네.40)
산수수곡취무진(山隨水曲趣無盡) 산은 물따라 굽으니 흥취가 무진하고
죽여란기좌유정(竹與蘭期坐有情) 대는 난과 기약하니 그 자리 정이 있네.
경학정연무기이(經學精硏無嗜異) 경학(經學) 정밀히 연구하면 이단(異端) 즐길 리 없고
예림박종내봉원(藝林博綜乃逢原) 문예(文藝) 널리 종합해야 본원을 만나리.
만금화기춘여해(滿襟龢氣春如海) 옷깃 가득한 화기는 봄 바다와 같고
만경문란월재천(萬頃文爛月在天) 만 이랑 물 질펀한데 달은 하늘에 걸려 있네.
가균가경반곡서(可鈞可畊盤谷序) 낚시질도 좋고 농사일도 좋은 것은 반곡서(盤谷序)41) 쓰여 있고
감시감화망천도(堪詩堪畵輞川圖) 시도 좋고 그림도 좋은 것은 망천도(輞川圖)42)일레.


39) 瓦當에는……무늬 놓고 : 秦․漢 때에 宮殿의 門觀의 기와 마구리 끝에 새겨진 文字를 ‘瓦當文’이라 한다. ‘瓦當’은 기와 마구리. 「延年益壽」는 나이를 늘이고 수를 더 보탠다는 뜻이다.
40) 銅盤에는……새겼네 : 銅盤은 銅으로 만든 소반. 옛날 사람들은 浴器, 소반, 솥 등의 기구에 문자를 새겨 스스로 경계하는 자료로 삼았다.
41) 盤谷序 : 唐代의 文章家 韓愈가, 盤谷으로 은둔하는 李愿을 전송하기 위해 지은 서문. 그 글에서 隱居하기에 적합한 盤谷의 지리조건을 설명하고 있다.
42) 輞川圖 : 唐代의 詩人 王維가 그의 別莊이 있는 輞川의 경치를 그린 그림. 輞川 20景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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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벽도서공소오(四壁圖書供嘯傲) 서벽(西壁)의 도서 속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반창풍월임금탁(半窓風月任昑啄) 반창(半窓)의 풍월(風月)을 멋대로 읊조리네.
한안동각수화사(閒眼東閣修花史) 동각(東閣)에 한가로이 졸며 화사(花史)를 편수하고43)
우좌남지주수경(偶坐南池注水經) 남지(南池)에 마주 앉아 수경(水經)을 주석하네.44)
명지승어구조벽(名紙勝於求趙壁) 명지(名紙)는 조벽(趙壁) 구하기보다 낫고45)
이서혼사차형주(異書渾似借荊州) 이서(異書)는 형주(荊州) 빌리는 것과 흡사하네.46)
한장서촉단과금(閒將西蜀團窠錦) 서촉(西蜀)의 단과금(團窠錦)47)을 한가로이 가지고
목송동파억설시(目誦東坡憶雪詩) 동파(東坡)의 억설시(憶雪詩)48)를 눈으로 읽도다.
태사문장신찬주(太史文章臣瓚注) 태사(太史)의 문장은 신찬(臣瓚)이 주내었고49)
상서효우군진편(尙書孝友君陳篇) 《상서(尙書)》의 효우(孝友)는 군진편(君陳篇)에서 말하였네.50)
의사산경편대황(擬寫山經大荒) 《산해경(山海經)》 쓰기 위해 대황(大荒)51)을 두루 다니네.


16. 한정당(閒靜堂)
   석복헌(錫福軒)의 뒷뜰에 있는 낙선재(樂善齋)의 별당(別堂)이다. 정면(正面) 3간(間), 측면(側面) 2間, 팔작(八作)지붕에 굴도리집이며, 좌우(左右) 후면(後面)에 퇴(退)를 돌리고 난간 만들었다. 한정(閒靜)이란 한가롭고 조용함을 뜻한다.



43) 東閣에……편수하고 : 東閣은 동쪽으로 열어놓은 작은 문인데, 漢의 丞相 孔孫弘이 東閣을 열어 賢士를 맞이하였으므로 宰相이 賢人을 초빙하는 곳을 ‘東閣’이라 한다. 花史는 花草에 대해 기록한 책.
44) 南池에……주석하네 : 南池는 못 이름. 중국 湖南省 零陵縣 등에 있다. 《水經》은 河川의 源流를 기술한 책. 40권인데 撰者는 未詳. 일설에는 漢의 桑欽이 撰하였다 하고, 혹은 晋의 郭璞이 撰하였다 한다. 北魏 사람 道元(역도원)《水經注》를 찬술했다 한다.
45) 名紙……낫고 : 宋代의 詩人 陸遊의 詩에는 ‘名酒勝於求趙壁’으로 되었다. 趙壁은 戰國 때 趙惠文王이 소장하고 있든 寶玉 和氏壁을 말한다. 이 寶玉을 秦昭王이 15城의 領地와 바꾸자고 청한 일이 있다. 《史記 藺相如傳》 

  名紙는 姓名을 적은 종이 즉 名御.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主司에게 人事하러 갈 적에 먼저 名紙를 올리고나서 相見하였다. 科擧合格을 뜻한다.
46) 異書는……흡사하네 : 荊州 빌리는 일은, 中國 三國 때 蜀의 劉備諸葛亮의 獻策으로 荊州를 당분간 吳에 빌리는 조건으로서 그 땅을 점거한 일을 말한다. 異書는 기이한 일을 적은 책으로 즉 《論衡》을 말한다. 《論衡》은 漢의 王充이 지은 것이다. 後漢 蔡邕(채옹)이 이 책을 얻어서 혼자 감추어 보았다 한다.
47) 西蜀의 團窠錦 : 團窠錦은 비단 이름. 西蜀은 지금의 四川省. 비단의 名産地. 이 詩句는 宋의 詩人 陸游<齋中雜題詩>에서 인용한 것이다.
48) 東坡의 憶雪詩 : 宋의 文章家 蘇軾이 눈을 그리며 지은 시. 東坡는 蘇軾의 號다.
49) 太史의……주내었고 : 太史는 官名으로 즉 史官을 말한다. ‘臣瓚은 後漢 班固가 지은 《漢書》를 주낸 사람로 姓은 未詳이다. 일설에는 于瓚, 또는 薛瓚, 傳瓚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그러나 秘書校書郞中 벼슬을 지 傳瓚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당시 傳瓚이 校書郞中 벼슬을 하였으므로 ‘臣瓚’이라 한 것이다. 즉 史官 班固가 지은 《漢書》의 注는 臣 傳瓚이 지었다는 말이다.
50) 《尙書》의……말하였네 : 君陳篇은 《尙書》의 篇名. 周成王 때의 臣下인 君陣이 東郊를 맡아 다스릴 적에, 王이 그에게 정치의 方策을 이른 내용이다. <君陳篇>“君秦아! 그대는 美德으로 효도하고 공손하다. 효도하며 형제에게 우애를 다하여야 나라에 정치를 시행할 수 있다[君陣 惟爾令德 孝恭 惟孝 友于兄弟克施有政]”였다. 이 편에 효도와 우애를 특히 강조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51) 大荒 :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해와 달이 넘어가는 곳. 《山海經》중국 夏나라 禹王이 지었다는 책으로 山川․草木․鳥獸의 奇談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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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죽매일보신(平安竹每日報信) 평안한 대는 날마다 좋은 소식 알려 주고
무고화사시상춘(無羔花四時賞春) 무고한 꽃은 사시로 봄경치 구경하네.
만년지상화천타(萬年枝上花千朶) 만년 가지 위엔 천 떨기 꽃이요
사해운중월일감(四海雲中月一鑑) 사해의 구름 속에 한 거울 달이라.
춘유도실삼천세(春留桃實三千歲) 봄에는 삼천 년 천도복숭아 머물러 두고
추견영화팔백년(秋見靈花八百年) 가을에는 팔백 년 신령한 꽃을 보네.
와당문연년익수(瓦當文延年益壽) 와당(瓦當)에는 「연년익수(延年益壽)」 무늬 놓고
동반명부귀길상(銅盤銘富貴吉祥) 동반(銅盤)에는 「부귀길상(富貴吉祥)」 새겼네.
미앙색춘중견(未央樹色春中見) 미앙궁(未央宮)52) 나뭇빛을 봄날에 보고
장락종성월하문(長樂鍾聲月下聞) 장낙궁(長樂宮)53) 종소리를 달 아래에서 듣노라.
운리제성쌍봉궐(雲裏帝城雙鳳闕) 구름 속의 황성(皇城)은 한쌍의 봉궐(鳳闕)이요
우중춘수만인가(雨中春樹萬人家) 비속의 봄 숲에는 만인의 집일레.
장낙종성화외진(長樂鍾聲花外盡) 장낙궁(長樂宮) 종소리는 꽃 밖에서 다하고
용지유색우중심(龍池柳色雨中深) 용지(龍池)54)의 버들빛은 비속에 깊으네.
일정화영삼경월(一庭花影三更月) 온 뜨락 꽃 그림자 삼경의 달빛이요
천리송음백도천(千里松陰百道泉) 천리의 솔 그늘 밑 백 갈래 샘물이네.
부지봉소림초제(否知鳳沼霖初霽) 봉소(鳳沼)에 장마비 처음 갬을 모르고

단각요천일전명(但覺堯天一轉明) 요순(堯舜)의 일월(日月)55)이 더욱 밝음만 깨닫겠네.


17. 한정당 방내 장지문 모사주련(模寫柱聯)

춘회우전산하외(春回禹甸山河外) 봄은 우(禹)임금의 산하(山河)56)에 돌아오고

인재요천우로중(人在堯天雨露中) 사람은 요(堯)임금의 우로(雨露)에 젖도다.57)
능운수유천심세(凌雲樹有千尋勢) 하늘 높이 솟은 나무 천 길 뻗은 형세이고
영일화개백화향(映日花開百和香) 해에 비친 고운 꽃은 온갖 향기 풍기도다.
채호한시금호묵(彩毫閒詩金壺墨) 금병(金甁)의 먹으로 간간이 시를 쓰고
청안시간옥자서(靑案時看玉字書) 청옥 책상에서 때때로 주옥같은 글을 보네.
백척누대담자기(百尺樓臺膽紫氣) 백 길 누대에 상서로운 붉은 기운 보고
삼춘화조취동풍(三春花鳥醉東風) 삼춘의 꽃과 새는 동풍에 취하네
기석진함천고수(奇石盡含千古秀) 기괴한 돌은 천고의 빼어남을 다 머금었고

이화장점사시춘(異花長占四時春) 이상한 꽃은 길이 사시의 봄을 차지했네.

52) 未央宮 : 漢代의 宮殿 이름. 漢의 城 서쪽에 위치해 있다.
53) 長樂宮 : 漢代의 宮殿 이름. 漢의 城 동쪽에 위치해 있다.
54) 龍池 : 못 이름.
55) 堯舜의 日月 : 中國 上古의 太平盛代인 堯舜時代를 말한다.
56) 禹임금의 山河 : 中國의 9州 즉 천하를 말한다. 禹임금이 治山治水하여下를 9州로 정하고 정치를 베풀었다.
57) 사람은……젖도다 : 堯임금의 仁政에 젖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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