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쌍검대무(雙劍對舞)

2018. 8. 21. 16:42美學 이야기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쌍검대무(雙劍對舞)| 아름다운 이야기
오똑이(조보흠)|조회 156|추천 0|2013.11.02. 00:03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제135혜원전신첩의 화첩에 들어 있는 풍속화쌍검대무(雙劍對舞)입니다.

 

그림의 전체적인 모습은 어느 대갓집 잔칫날 무희와 악공을 불러 한판 큰 춤판이 벌어져 있습니다.

그림의 중앙에 장검(長劍)을 양손에 쥔 두 무희가 음악에 맞추어 몸을 휘돌리며 검무를 추고 있으며 

그 오른쪽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사대부 최고 상전은 테두리가 푸른색인 좋은 돗자리에 등뒤로 죽부인을 기댄채 춤판을 감상하고 있고 두 무희(舞姬)를 중심으로 상단과 하단으로 양분되는데 하단을 보면 삼현육각(三絃六角)

악공 6명이 가로로 나란히 앉은채 열심히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하단의 맨 왼쪽의 사람은 사선(紗扇)을 오른손에 쥔채 악단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며,

 

   그림의 상단을 보면 긴 담뱃대를 들거나 앞쪽에 놓아 놓고 있는 두 사람의 기생이 보이고

그 옆으로 외출복인 도포를 차려 입은 두 사람이 보이는데 한 사람은 이 잔치집 사대부 어른 바로 옆에 앉아 있어 

친족으로 보이고 또 한사람은 선비 복장을 하였으나 아직 어린아이로서 시끄러운 듯 한쪽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는 모습이며 기생의 오른쪽을 보면 바로 옆에 왼쪽 무릎을 세운채 무희(舞姬)의 모습을 보고있는 도포를 입은 사람이 홀로 앉아있고 맨 오른쪽으로는 한 아동이 긴 담뱃대를 쥔채 이 춤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의 구도입니다.

  


   우선 조선후기 때 많이 성행하였던 검무(劍舞)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검무의 시초는 조선시대 현종실록에 의하며 신라시대 화랑인 관창이 황산벌에서 죽은 뒤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쓰고 군인이 칼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으며

고려말까지 전승되다가 조선초기에서 중기 시기에는 일시 단절되었다가 

18세기 때 경남 밀양출신 기생 운심(雲心)이 춤꾼으로 명성이 자자해지면서 이후 궁중무용으로 채택되어

검무(劍舞)는 여성이 추는 춤으로 위치하게 된 것이 여러 사료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검무는 춤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검을 놓아두고 어르는 동작부터 시작하여 칼을 잡고

행해지는 춤사위와 번뜩이는 칼날의 농검(弄劍)을 거쳐 검무의 절정으로서 허리를 앞뒤로

젖히며 돌아가는 춤동작인 연풍대(燕風臺)의 회선을 한 이후 칼을땅에 던지는 동작을 끝으로 하는게 일반적인데,

18세기 후반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였던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는 묘항산에서 가장 절방이 넓다는 용문사(龍門寺)에서 이 검무(劍舞)를 보고검무기(劍舞記)기록하였는데 이 기록에서 보면 


기생 둘이 검무를 춘다.

융복을 입고 전립을 쓰고 잠깐 절하고서 빙 돌아 마주선 채 천천히 일어난다.

(중략)

무릇 치는 동작, 던지는 동작, 나아가는 동작, 물러나는 동작, 위치를 바꾸어

서는 동작, 스치는 동작, 떨어지는 동작, 빠른 동작, 느린 동작이 다 음악의

장단에 따라 합치됨으로서 멋을 자아내었다.

이윽고 쟁그렁 소리가 나더니 검을 던지고 넙죽 절하였다.

춤이 끝난 것이다.

온 좌석이 텅 빈 것 같이 고요하여 말이 없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검무는 모든 행사의 최후에 최종적(最終的)인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공식행사로서

모든 관중의 관심을 집중시켜 공연을 절정으로 끌어 올렸던 행사의 핵심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 그림에서 나타나 있는 악공들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과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기녀(妓女)들을 중심으로 하여 가무(歌舞)

관장하던 기관이 있었는데 이를 교방(敎坊)이라 하였습니다.

고려시대 때는 교방(敎坊)에서 주로 속악(俗樂)과 당악(唐樂)을 맡았었는데 1010(고려

현종 1) 교방에 속해 있던 100여 명의 궁녀를 풀어주었으나 충렬왕(忠烈王) 때 다시

각 지방에서 기예에 뛰어난 창기(倡妓)들을 뽑아 교방을 충실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장악원(掌樂院) 소속의 좌방(左坊)과 우방(右坊)을 합칭(合稱)하여 교방이라

하였는데 1458(세조 4) 종래의 전악서(典樂署)를 장악원으로 개편하고 좌방과 우방을

딸리게 하여 좌방은 아악(雅樂), 우방은 속악(俗樂)을 맡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에 보이는 악공들과 무희들은 아마도 이 교방 소속의 예인(藝人)으로서

조정에서 높은 벼슬자리(당산관급 이상)에 앉아 있는 저 그림속의 주인공인 사대부 대감의

생일잔치나 회갑연(回甲宴) 등의 경사에 공연을 나온 것입니다.

 

조선시대 인형극, 무용, 탈춤, 가면극 등 민속놀이에서 향악(鄕樂)의 기본적인 악기편성을

삼현육각(三絃六角)이라 하였는데 향피리 2, 젓대 1, 해금 1, 1, 장고 1인으로

구성되는 형태로서 이는 대풍류(大風流)의 편성과 같으나 춤과 함께할 경우 삼현육각이라

하고 감상의 성격을 띌 경우 대풍류라 하였습니다.

그림에서는 전형적인 삼현육각(三絃六角)의 편성으로서 이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풍속화(風俗畵)무동(舞童)에서도 이와 동일한 악기 편성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음악에서 우리의 고유 장단은 3분박을 기본으로 하여 경쾌한 2분박과 혼합하여 구성되는데

특히 장고의 장단은 음악의 종류에 따라 8종에서 17종까지 있으며 주로 농악(農樂) 등에서는

8종 장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과 같은 검무(劍舞)에서도 처음에는 느린 박자인 진양조와 중모리, 세마치 장단으로

시작하여 좀 더 빠른 리듬인 중모리와 중중모리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휘몰이와 엇모리장단

등으로 절정에 이르도록 구성될 것입니다.

 

   그림에서 이와같은 삼현육각(三絃六角)으로 편성된 악단의 현재 연주상태를 들여다보면

악공들은 오른쪽에서부터 북과 장고를 치는 사람이 있고 그 옆으로 젓대를 부는 사람이

있으며 또다시 왼쪽으로 등만 보이는 사람은 향피리를 불고있는 두사람이며 맨 마지막으로

해금을 연주하는 사람이 한사람 있는데, 악공들의 시선이 오른쪽에서 두 번째 앉아 장고를

치고 있는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현재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의 진행을 보면 해금은 잠시 쉬고있고 두사람의 향피리는 연주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젓대를 부는 사람은 장고와 북의 장단에 맞추어 간간히 반주음을

넣고 있는 상황으로서

장고와 향피리를 부는 두 사람이 빠른 리듬으로 음악을 주도하고 있고 북과 젓대가 간간히

이 리듬에 양념을 가미하듯 음악의 흥을 돋구고 있는 모습이고

악단의 맨 오른쪽 북을 치고 있는 사람은 다른 악공들과는 약간 떨어져서 장고뿐만 아니라

다른 악공들도 지켜보고 있고 북의 한가운데에 태극무늬가 선명히 보이니 이는 북을 치는

사람이 이 악단의 리더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림의 상단 왼쪽에서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아이를 보면 얼굴을 찡그리면서 왼쪽 손으로

한쪽 귀를 틀어막고 있고 검무를 추는 두 무희의 모자와 양손에 쥔 칼 그리고 치마가

서로 반대반향으로 휘날리고 있으니 현재 음악은 이 춤판의 최고 절정 상태로서

장고를 중심으로 가장 리듬이 빠른 휘모리와 엇모리 장단이 연주되고 있고 그에 맞추어

두 무희의 춤동작도 가장 빠르고 역동적인 상태에 있는 모습으로서 아마도 이 장면 이후로

두 무희가 양손에 쥔 쌍칼을 땅에 던지면서 두사람이 동시에 땅에 엎드리며 춤판은 끝이

날 것입니다.

 


   이제 그림의 장면들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춤을 추고 있는 두 무희(舞姬)의 모습을 보면 두 무녀는 공작 깃털을 단 벙거지를 쓰고

 군복을 입은채 양손에 칼을 쥔채 검무를 추고 있는데

두 무녀의 모자와 치마저고리의 색깔을 보면 푸른색과 검은색, 연두색과 회색, 붉은색과

푸른색으로서 각각 상호 대비되는 색깔을 띄고 있으며

두 무녀가 쥐고 있는 칼이 두 이()자와 여덟 팔()자를 나타내고 있으니 이는 주역(周易)

적으로 보아 이()는 우주 만물의 근본인 양()과 음() 이체(二體)를 말함이며 팔()

삼라만상의 본질인 팔궤(八卦)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역경(易經)계사전(繫辭傳)에서 "()에 태극(太極)이 있으며, 이것이 양의(兩儀)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는다."라고 하였으니 이 팔궤는

자연계 구성의 기본이 되는 하늘····지진·바람··등을 상징하면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말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이()와 팔()의 의미는 주역적으로 바라보는 자연계와

인간세계의 본질을 말함이며 춤추는 두 무녀 중 오른쪽 무희의 머리 부분을 보면 두개의

칼이 두 이()자인데 그 가운데에 모자와 칼 손잡이 끝의 장식줄이 어우러지면서 분명한

태극(太極) 문양이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82역학(易學)에서 후천수 8은 목()이고 선천수 2는 화()이니 이는 木生火

상호간 상생(相生)의 의미가 있는데 오색(五色)의 의미로 보면 8()이고 2는 적()으로

나타나며

두 무희의 모자를 보면 왼쪽 무희의 모자는 청색이니 오행에서 목()에 해당하고 오른쪽

무희의 모자는 흑색이니 이는 수()에 해당하는 바 이는 水生木으로서 또한 상호

상생(相生)의 관계에 있고

칼과 모자를 보면 水生木 木生火로서 남()에서 동()으로 움직여 다시 북()으로 순환하는

형태를 보이고

두 무희의 허리띠를 보면 왼쪽 무희의 허리띠는 청색이고 오른쪽 무희는 적색으로서 이는

木生火의 관계이고 치마의 색을 보면 왼쪽 무희는 적색이고 오른쪽 무희는 청색이니

이 또한 木生火로서 서로간 상생(相生)의 관계에 있다고 보여지는데

두 무희가 입은 옷이 상호간 색깔이 바뀌어 있으니 이는 두 무희가 서로 하나가 되어 어우러져

있는 것이며 물아일체(物我一體)로서 태극(太極)의 상태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음양의 기()가 작용하는 것은 바로 태극의 이()를 구현하는 것이니 상회(相會),

상응(相應), 상감(相感), 상합(相合) 에 의한 통일(統一)의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춤추는 무희(舞姬)를 중심으로 그림의 상단과 하단을 살펴보면 상단과 하단의사람의

수가 일곱명으로 같은 동수(同數)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상호 균형(均衡)맞추고 있고

남녀의 성비(性比)로 살펴보아도 남자가 7명인데 여자가 5명에 아동이 2명으로서 힘이 강한

성인남자 7명에 상대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이 7명으로서 이 또한 음양(陰陽)의 상호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 그림의 사각 귀퉁이 각 모서리를 보면 상단의 맨 오른쪽 담뱃대를 쥔 아동 한사람, 상단

맨 왼쪽 한쪽 귀를 틀어막고 있는 아동 한사람, 그리고 하단의 왼쪽 사선(紗扇)을 쥔 한사람

그리고 하단의 맨 오른쪽 북을 치고 있는 벙거지를 쓴 한 사람 이렇게 네 사람이 상호

대각(對角)을 이루고 있는데

상단의 아동 두 사람은 각각 양반(兩班)과 상민(常民) 그리고 하단의 두 사람은 중인

계급으로서 문인(文人)과 예인(藝人)으로 구분되어 있으니 각각 당시 사회의 각 계급을

대표하는 상징성(象徵性)을 상호 대립시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사선(紗扇)이란 손수건 크기의 사()조각 양쪽에 자루를 대어 만든 것으로 보통(普通)

부채보다 크고 네모진 형태인데 벼슬아치가 외출할 때에 얼굴을 가리던 제구(諸具)로 사용된 물건으로서

그림에서는 좌 하단에 앉아 북과 장고를 치고 있는 사람쪽을 넌즈시 바로보고 있는 사람이

왼손으로 이 사선을 들고 있으니 아마도 이 사람은 이 행사의 주인공인 고관 사대부가

관장하는 기관에 소속된 대감의 부하로서 인사차 조금 전에 이 행사장에 들어와 방금

자리에 앉은 상태라 생각되며

 

그림의 좌측 중앙부에 별도의 고급스러운 돗자리에 죽부인을 등에 기댄채 왼손에

고급스러운 부채를 쥐고 있는 사람은 이 행사의 주최자로서 도포를 두른 허리띠가

자색(紫色)을 띄고 있으니 이는 현재 조정에서 당상관 (堂上官)이상의 벼슬을 하고 있는

실세 권력자인 것입니다.

 

   이 주최자의 바로 옆에서 한쪽 무릎을 세운채 손 가락지를 끼고 있는 사람은 이 주최자의

길일(吉日)을 축하하려 온 가까운 친인척으로 보이는데 느낌상 이 주최자의 친동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이 사람의 시선이 검무를 추고 있는 두 무희(舞姬) 왼쪽의 무희를 집중하여 보고 있으니

이는 이 사람이 무희가 춤동작에서 펼친 팔()자에 대해 뭔가 의미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 바로 옆에 있는 도포와 갓을 쓴 아동은 주최자의 친 아들로서 이미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앉아 양반이기에 한손에 부채를 들고 위엄을 갖추려고 하고 있으나

아직 아동이라 이러한 행사가 재미가 없고 음악 소리가 시끄러워 인상을 찡그린채 한쪽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양반 아동을 지나 대감들 옆에 앉아 있는 여성 두 사람을 보면 악공들과 함께 교방(敎坊)

소속된 기생으로서 긴 곰방대를 오른손으로 들고 있는 여인은 주최자의 인척을 모시는 역할을

하고 그 옆의 여인은 이 행사의 주인공을 모시는 임무로 두 양반의 측근에 앉아 있는데

두 여인의 시선과 눈빛은 모두 칼을 옆으로 돌리고 있는 오른쪽 무희를 바라보고 있는가운데

왼쪽의 기생은 이 춤이 즐겁다는 듯 웃는 얼굴이나 오른쪽 기생은 저 무희(舞姬)의 춤사위가

부럽다는 얼굴표정이 엿보이면서 나도 저 무희와 같은 예인(藝人)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제 그 기생을 지나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져서 흰색 도포에 황색 갓을 쓴 채 이 유흥을

감상하며 왼쪽 무릎을 세워 한손을 그 무릎에 올려놓고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은

쓰고 있는 갓이 검은색이 아니라 황색의 갓을 쓰고 있는데 그 갓의 창의 길이가 양반이

쓰고 있는 갓보다 현저히 작으니 이는 말총으로 만든 양반이 쓰는 갓이 아니라 쇠털로 만든

평민(平民)이 쓰는 벙거지로서 저 사람의 신분이 평민임을 암시하며 무릎을 세운 다리사이에

줌치(호주머니)가 살짝 드러나 있으니

 

이 사람은 오늘의 이 유희를 전개하는 총 지휘자이자 행사의 주관자인데 이 사람의 시선은

죽부인을 등에 기댄 이 연회의 주인공에게 가 있으니 이는 이 춤판의 단장으로서 공연이

거의 끝나가니 소요 비용을 받을 궁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에서 마지막으로 오른쪽 상단에 긴 담뱃대를 왼손에 쥔채 홀로 우뚝서서 이 춤판을

지켜보고 있는 아동이 하나 보이니 이는 아마도 이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주최자의

친척이 데려온 하인으로 느껴지며 담뱃대의 주인은 아마도 주최자 옆에 앉아 있는 흰색

도포를 입은 사람일 것인데 이 아동의 시선과 눈빛은 두 무희의 춤에 흠뻑 빠져있는

눈빛이고, 발을 보면 오른발로 장단을 맞추고 있으니 이는 이 아이가 이 춤과 음악에 빠져

새로운 예술적 감각에 눈이 뜨이는 시발점(始發點)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검무(劍舞)를 추고 있는 두 무희(舞姬)의 자세와 형상(形狀) 들여다 보면

두 무희 중 왼쪽의 무희가 쥐고 있는 양 칼과 사람의 몸을 종()으로 보았을때 임금 왕()자의

형상이고 오른쪽의 무희는 몸이 비틀린 형상과 두 개의 쌍검을 서로 합쳐보면 달 월()자의

느낌이 있으니 월()을 장수(長壽)와 기원(祈願) 또는 부귀(富貴)영화(榮華)의 의미가

있으니 작가 신윤복의 생전 당대 임금인 정조(正祖)장수와 태평성대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며,

이때 좋은 돗자리에서 죽부인은 등에 받힌 채 부채를 쥐고 있는 사람은 정조일 것이고

그 옆에 앉은 사람은 명재상 채제공(蔡濟恭)이고 그 옆에서 부채를 펼쳐 든채 귀를 막고있는

아동은 정조 38세때에 후궁 수빈박씨로부터 어렵게 아들을 얻은 순조 일 것인데 세자로

책봉되고 일찍 결혼시켰으나 아직 철이 없다라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이며

 

오른쪽 상단에 긴 담뱃대를 쥐고 있는 하인의 담뱃대는 체재공의 것이니 이 아동은 작가

신윤복(申潤福) 자신으로서 작가 신윤복이 이 담뱃대를 채제공(蔡濟恭)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은 생각이니, 곧 체재공이 정조를 잘 보필하여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루게 해 달라는

희망을 표현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이 그림은 정()과 동(), ()과 양()이 서로 어우러지고 음양팔궤(陰陽)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계급적 차별이 없는 사회, 서로 화합하고 어우러지는 사회(社會)

이루어지기를 바라있으며

그 핵심의 단추는 정조가 쥐고 있으니 현 임금이 오랫동안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에 제목(題目)을 붙여본다면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社會)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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