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령의 한국 정원 이야기 22] 경북 예천 초간정원림

2018. 10. 7. 01:54집짓기



      오마이뉴스

'미스터 션샤인' 애기씨 살던 그 집 가볼까

김종길 입력 2018.10.0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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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령의 한국 정원 이야기 22] 경북 예천 초간정 원림

[오마이뉴스 글:김종길, 편집:이주영]


▲ 초간정 계곡 물이 휘돌아 흐르는 높은 언덕 위에 나는 듯 서 있는 정자의 비현실적인 풍경은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 김종길

   주말,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었던 <미스터 션샤인>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무엇보다 영상미가 압권인 드라마였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명소들이 드라마에 나올 때마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드라마에선 한국의 아름다운 정자를 많이 소개했다. 단지 소개에 그친 게 아니라 정자를 중심으로 한 한국 정원의 특징, 즉 원정(園亭)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애신(김태리)과 유진(이병헌)이 애틋한 사랑을 나누던 강가의 고산정, 도공의 집이자 다리 위에서 유진이 애신에게 "나랑 합시다, 러브"라고 선언했던 만휴정, 애신 집안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나온 정여창 고택과 초간정 등이 그것이다.

그중 초간정은 애신이 글을 읽거나 작업을 하는 곳으로 화면에 잠깐씩 나왔지만 그 아름다움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계곡물이 휘돌아 흐르는 높은 언덕 위에 나는 듯 서 있는 정자의 비현실적인 풍경은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초간정에서 촬영한 <미스터션샤인> 방송 장면(함안댁과 고애신)
ⓒ tvN
▲ 초간정 초간정은 오랜 고목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다.
ⓒ 김종길

시냇가의 별천지

초간정은 경북 예천에 있다. 예천(醴泉)은 말 그대로 물이 좋은 고장이다. 지금도 감천(甘泉)이라는 샘이 남아 있다. 예천에서도 예천 권씨의 종가가 있는 용문은 오랜 내력을 가진 마을이다. 초간정은 권씨 종가에서 개울가에 지은 별서 정원으로 북두루미산을 사이에 두고 서북쪽으로 약 5리(2km) 떨어져 있다.

노거수들이 숲을 이룬 암반 위에 맵시 좋은 정자 하나가 계곡 저편으로 보이는데, 그곳이 초간정이다. 지금이야 도로에서 곧장 보여 그윽한 맛은 덜하지만 종손의 이야기로는 예전엔 종가에서 산길을 따라 갔다고 하니 그 깊숙함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여전히 초간정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우뚝 솟은 바위 위에 한 마리 새처럼 날렵하게 앉은 그 자태도 빼어나거니와 정자를 휘감아 도는 계곡 또한 웅숭깊다. 게다가 기름한 노송들이 하늘로 솟아 있고, 기암괴석이 계곡 여기저기 솟아 신비롭기 짝이 없는 데다, 어느새 끝을 알 수 없는 물길이 울창한 수림 사이로 아득히 흘러가는 풍경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 초간정 시내 끝을 알 수 없는 물길이 울창한 수림 사이로 아득히 흘러가는 풍경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 김종길

   정자에 이르려면 개울을 건너야 한다. 개울을 건너는 순간 세속과는 절연되고, 고목들에 둘러싸인 돌담을 돌아서면 시간을 거슬러간 듯 별세상이 펼쳐진다. 작은 사주문을 열어젖히면 햇빛 넘치는 작은 마당이 나오고 그 끝에 정자가 있다. 마당 한편에는 작은 화단이 있으나 주위 자연이 모두 정원이라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존재를 놓치게 된다. 그 옛날에는 난을 심어 즐겼을 것이다.
결국 정자에 올라서야 초간정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정자의 뒤태는 평범한 삼 칸 한옥으로 별다를 바 없으나 살짝 열린 마루 너머로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다. 얼핏 풍경이 어른거리지만 마루를 통과하기 전에는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사뭇 궁금해하며 한 발 한 발 마루 끝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 초간정사 초간정에는 뒤편에 초간정사, 앞에 초간정, 옆에 석조헌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 김종길
▲ 초간정 풍경 기둥과 난간이 액자틀이 되어 그 사이로 보는 풍경(View)이 압권이다.
ⓒ 김종길

   통로 같은 마루를 통과하면 형체 없던 풍경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정자 앞 삼 면은 모두 자연으로 열려 있는 개방된 마루이다. 점점 완성되는 풍경들. 계곡 물소리가 갈수록 세차게 들리는가 싶더니 노송들이 하나씩 장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멀리 산과 들이 굽이쳐 들어오기 시작한다. 속이 후련해지는 풍경에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마루에 털썩 주저앉아 난간에 기대어 보면 그제야 무릎을 치게 된다. '아, 이거였어.'
정자가 높으니 계곡은 더욱 깊고, 물이 흘러온 곳도 흘러간 곳도 아득하다. 그 아득함을 잠시 잊게 하는 것이 정자 건너편의 괴석들이다. 이 괴석들은 원래 있던 자연석인데 마치 조각을 한 듯 괴이하다. 겹겹이 쌓인 괴석들은 단조로운 초간정의 풍경에 파격을 부여한다. 부러 조성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이 준 최고의 정원이 된 셈이다. 그러니 괴석이야말로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물 중 단연 으뜸이다.
 
▲ 초간정의 괴석 이 괴석이야말로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자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물 중 단연 으뜸이다.
ⓒ 김종길
▲ 초간정의 괴석 초간정 건너편에 겹겹이 쌓인 괴석들은 단조로운 초간정의 풍경에 파격을 부여한다.
ⓒ 김종길

   계곡은 태극 형상의 S자 모양이지만 초간정 앞에서 ㄱ자로 크게 휘어진다. 졸졸졸 바위 사이를 흐르던 상류의 여울이 초간정 앞에선 깊은 소를 이루었다가 정자를 90도 돌아나가면서 넓은 시내가 되어 흘러간다.
밖에서 바라보면 정자는 한 폭의 동양화 같고, 정자 마루에서 보면 계류, 암반, 노송, 산의 모습이 차례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같다. 기둥과 난간이 액자틀이 되어 그 사이로 보는 풍경(View)이 압권이다. 회화적이면서 심미적이고, 상징적이면서 추상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 초간정 기암괴석이 여기저기 솟아 신비롭고 초간정 앞에선 계곡이 깊은 소를 이룬다.
ⓒ 김종길

모든 아름다움을 갖춘 자연 정원

초간정은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 1591)가 49세 되던 해인 1582년(선조 15)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지은 별서 정원이다. 권문해는 솔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 사이로 계류가 흐르는 경치 좋은 곳에 별서를 조성하고 초간정사(草澗精舍)라 부르며 심신을 수양했다. 당시엔 정사로 불렀으니 풍류를 즐기기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강학과 집필을 위한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권문해는 "북룡문(北龍門)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골짜기는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학가산(鶴駕山)의 신선이 놀던 것이라 알려져 있는" 이곳에 지팡이를 짚으며 가봤다. 그랬더니 "물고기가 뛰어놀고, 경치가 기묘하며, 또한 수려하여 아침저녁으로 찬탄해 마지않다가(권용의 <초간정사사적>)" 결국 이곳에 별서를 조성했다.
 
▲ 초간정 사진과는 달리 삼면이 개방된 마루에서 보면 실제 계곡은 더욱 깊다.
ⓒ 김종길

   권문해는 퇴계 이황의 문하생으로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동강 김우옹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동문수학했다.

그는 역사에 남을 불후의 명저를 완성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보물 제878호)이다. 중국 원나라의 음시부가 지은 '운부군옥(韻府群玉)'의 체제를 빌려 단군부터 선조 때까지의 우리나라(대동大東)의 역사와 문화를 20권 20책으로 정리했다. 그는 "중국의 역사에는 어제 일처럼 밝으면서 한민족(동국)의 일(역사)은 외면하는" 당시의 선비들을 비판하며 이 책을 썼다.

초간정에는 뒤편에 초간정사, 앞에 초간정, 옆에 석조헌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권문해는 초간정을 짓기 전부터 자신의 호를 초간이라 했다. '초간(草澗)'이라는 이름은 권문해의 현손인 선계 권용(權墉)이 지은 <초간정사사적>이나 박손경이 쓴 <초간정중수기>를 보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 초간정 바깥벽에 달린 석조헌(夕釣軒)이라는 편액에선 저녁에 낚시를 드리우며 여유와 풍류를 즐기는 주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 김종길

   이곳의 경관이 당나라 시인 위응물의 '저주서간'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 "시냇가에 자란 그윽한 풀포기가 홀로 애처롭다獨憐幽草澗邊生"를 연상하게 하여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또한, 송나라의 염계 주돈이가 말한 "수면에 이는 잔잔한 물결의 흔들림"을 즐기려 했다는 것이다. 석조헌(夕釣軒)이라는 편액에선 저녁에 낚시를 드리우며 여유와 풍류를 즐기는 주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초간정은 어느 것이 자연이고 어느 것이 인공인지 분간할 수 없는 우리 원림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위와 정자는 원래 한 덩어리였던 것처럼 보인다. 바위 위에 높이 솟은 정자는 쉽게 눈에 띄지만 특별히 도드라지진 않는다. 높이 있으면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스스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 초간정의 겨울 풍경 우뚝 솟은 바위 위에 한 마리 새처럼 날렵하게 앉아 있다.
ⓒ 김종길

   그 앉음새 또한 자연스럽다. 그리하여 정자를 올려다보는 풍경,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정자에서 건너다보이는 풍경, 정자 안의 풍경,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주변 산수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외부에 대해 독립적이고 완결된 공간을 이루어 그 자체로 작은 세계를 이루도록 조성한 것이 초간정이다.
한편, 옛 기록을 보면 초간정을 중건할 때 승려를 모집했고, 그 후에도 승려에게 정자의 관리를 계속 맡긴 것으로 나온다. 또한 버려진 못을 메우고 돌을 깎는 등 인공적인 조원 기술도 더해졌다고 적고 있다. 원래 초간정 일대에는 정자 외에 강학의 장소였던 광영대, 서고였던 백승각, 화수헌, 하인들이 기거했던 살림방, 마당에는 방지(연못) 등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살림집만 남았다. 지금의 정자는 1870년(고종 7)에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 살림집 초간정 옆 살림집 마당의 장독들
ⓒ 김종길

<초간정술회>
   초간정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표현한 글이 있다. 그 옛날 초간정의 풍경을 읊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이 지은 <초간정술회>는 지금에 봐도 초간정을 이보다 잘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말을 타고 비탈진 길을 가는데, 숲과 골짜기가 어찌나 아득한지. 새로 지은 정자는 선대의 자취를 잇고, 시내에는 풀포기가 우거졌네. 들창은 고요히 티 없이 깨끗하고 사람 하나 없는데, 초가을 달은 밝고 서늘한 기운이 옷깃을 스민다. 늙은이와 젊은이가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밤이 깊어 개울을 베개 삼아 누우니 정신이 오히려 맑아진다. 들판 밖으로는 광대하고, 골짜기 안으로는 그윽하기만 하네.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물은 고여 푸른 소를 만들었다네. 물고기가 즐거이 놀고 새가 지저귀니 이것이 본디 공(公)의 뜻이 아닐까. 이로써 집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길게 휘파람을 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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