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5. 17:35ㆍ산 이야기
하드프리 클라이밍&볼더링.
"야니로 프로블럼(Yaniro problem)"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미국의 클라이머들 간에 통하는 일종의 은어로, 볼더링이나 하드프리 클라이밍 중에 잘 풀리지 않는 문제 - 동작이나 기술- 을 이렇게 부른다. 즉, 토니 야니로만이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어려운 문제라는 말이다. 실제 야니로는 B-2급 (註 John Gill이 정한 Boulder Grade로 5.12 정도에 해당)의 볼더링을 테니스화를 신고해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한 야니로 같은 부류의 클라이머를 가르켜 혹자는 등산가가 아닌, 그저 바위타는 기술자, 또는 운동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토니 야니로는 등산의 여러 분야, 즉 알파인 클라이밍, 히말라얀 클라이밍, 아이스 클라이밍 등을 모두 체험했거나, 이 모든 면에 뛰어난 클라이머는 아니다.
그러나 야니로가 좁고 깊게 추구해온 암벽등반의 세계, 그 세계에서 그가 거둔 성취의 무게와 그것을 거두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과 정열을 들여다 보면, 그의 행위와 정신세계에는 결코 우리가 단순히 ''기술자''라 지나쳐 버릴 수 없는 흔치않은 치열함을 발견할 수 있다. 토니 야니로는 그저 그런 부류의 바위꾼이 아니다. 현대 암벽등반 기술 및 스타일에 그가 끼친 영향과 충격은 일반적인 추측을 훨씬 넘어선 정도이다.
야니로가, 그보다 보수적인(그리고 더 유명한) 당대의 다른 일류의 클라이머들과 다른 점은 바로 그의 개성적인 노력과 창조력, 그리고 그의 원대한 비젼이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선천적인 바위 감각과 체력, 거기에 혹독한 자기단련, 부지런함, 바위에 대한 탐욕스러울 정도의 정열을 더하여 남들이 따르기 힘든 경지에 올라섰던 것이다. 그는 통산 60개가 넘는 하드 프리(hard free)루트를 초등하였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5.12가 넘는 것들이었다.
캘리포니아 남부지방에서 자란 토니 야니로는 11살때부터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그 역시 다른 초보자가 으례 거치는, 빨래줄을 가지고 동네 뒷산 바위를 기어 올라가기도 하고, 줄을 타고 내려오기도 하는 따위의 반 장난조의 수습기간을 거쳤다. 그러던 어느날 스토니 포인트(Stoney Point)라는 암장에서 다람쥐같이 바위를 오르내리는 꼬마 야니로를 눈여겨 보고있던 한 클라이머가 야니로에게 말을 건냈다.
"너 참 바위 잘하는구나. 이 코스는 네가 리드할 수 있겠다. 한번 해보지 않으련" 야니로는 이렇게 해서 정식 암벽등반에 입문하게 된다.
13세가 된 그는 이제 타키츠(Tahguitz)와 조수아 트리(Joshua Tree)의 어려운 암장으로 본격적인 암벽등반에 나선다. 한창 클라이밍에 매료되었던 그때를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나는 잠을 자면서도 새벽이 어서 오기를 기다렸으며, 자주 바위하는 꿈을 꾸곤 했다. 새벽 다섯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타키츠로 달려갔다. 거기서 5.9짜리 루트란 루트는 모조리 한번씩 등반하고 돌아와서야 학교에 가곤했다. 차차 나와 친구들은 실력이 향상되어 얼마후엔 5.10짜리, 또 얼마후엔 5.11짜리 이렇게 점점 더 어려운 루트를 아침마다 순회하곤 했다."
체계적인 트레이닝 프로그램 개발
당시 타키츠 암장에는 요세미테의 토박이들로 이미 명성을 날리고 있던 존 롱(John Long), 토빈 소렌슨(Tobin Sorenson), 존 바커(John Bachar) 등이 자주 찾아와, 많은 하드프리 루트의 문을 열어 놓고 있던 때였다. 야니로는 그들이 바위타는 것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그들의 동작을 눈여겨 보며 자기 나름대로 응용해보기도 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그는 어느날 토빈 소렌슨이 패사노 오버행(Paisano Overhang : 타키츠의 유명한 Roof형 오버행 루트로 천정의 off width crack이 유일한 등로)을 프리로 시도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4세가 된 그는 이제 타키츠의 대부분의 5.11 루트를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게 되었고, 드디어는 그 어린 나이에 슈사이드 록(Suicide Rock)에 「Gates of Delirium」이라는 5.11d급 루트를 초등반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인공등반(Aid Climbing)과 빅월 클라이밍(Big Wall Climbing)을 시작한 것은 15세부터였다. 요세미테에 찾아들은 그는 엘 캐피탄, 하프 돔, 워싱톤 칼럼 등의 많은 기존 루트들을 섭렵하였다. 그는 주로 랜디 리빗(Randy Leavitt)과 등반을 많이 했지만,같이 등반할 뜻이 있는 클라이머라면 누구라도 기꺼이 로프를 묶었다.
그때 가장 기억될만한 등반은 데일 바드(Dale Bard)와 둘이서 노즈(Nose : 註 엘캡의 가장 대표적인 루트로 당시 5~6일이 소요되는 긴 코스)를 최초로 하루만에 완등한 기록이다. 이것은 당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빌 프라이스(Bill Price)와 함께 요세미테 계곡에서 가장 길고 어려운, 12피치에 이르는 하드프리 루트, 애스트로맨(Astroman : 註 워싱턴 칼럼 동벽을 말하는데, 원래 인공등반으로 개척된 이 루트를 All free로 등반하면 ''애스트 로맨을 등반했다''라고 바꿔 말한다.)을 등반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듯 파트너를 수시로 바꾸어가며 등반했다는 것은 그의 등반의 욕을 같이 나눌 파트너를 만나기가 어려웠다는 얘기가 된다. 요세미테 클라이머들은 대부분이 게으르기고 정평이 나 있다. 오후 한시가 되도록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아침 나절 내내 담배(또는 마리화나)를 피우며 건들대느라고 등반을 못나가곤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야니로는 그때 쯤이면 이미 등반을 끝냈을 시간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 등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위는 차가울 때 잘 된다는 것이다. 바위가 차면 땀도 덜나고, 암벽화의 고무창도 차가워야 크랙에 더 잘 재밍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야니로가 전형적인 요세미테 클라이머와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이 철저한 근면함과 청교도적인 자제력에 있다. 야니로는 술, 담배는 물론 커피조차 마시지 않는다. 소위 많은 ''하드 맨(hard man)''들이 아직 캠프에서 어슬렁거리며 커피를 즐길 시간에 야니로는 또 다른 5.11, 또는 5.12의 과제를 찾아 나서서 거기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는 클라이머로서 활동하는 동안 내내 철저한 ''주말 클라이머''로서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의과대학생으로 학교에 바삐 다니면서도 많은 풀타임 클라이머(full time climber)들의 수준을 앞지를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이러한 그의 근면함과 자제력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독특한 그의 트레이닝 방법도 한 요인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 학업이던 직업이던, 등반까지 - 매우 분석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는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훈련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통해 등반에 필요한 특정한 부위의 근육과 힘줄을 강화시키며 등반 중 손상당하는 일이 없도록 단련시켰다. 그는 자신이 등반하려하는 루트에 따라, 그에 알맞는 훈련방법과 기구 등도 고안했는데, 이는 당시에는 거의 생각지도 못하던 것이었다. 토니 야니로는 자신이 본격적으로 암벽등반을 위한 트레이닝을 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타키츠이 드레인 파이프(Drain Pipe)라는 루트를 등반하려고 했다. 이 루트는 처음부터 핑거 크랙(finger crack)으로 시작되는 매우 어려운 루트였다. 어느날 나는 에릭 에릭슨(Eric Ericson)과 그 루트에 관해 얘기하다가 그로부터 하루에 열 차례씩, 문턱 턱걸이(doorjam pull up: 註 손가락 한마디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문턱을 잡고 턱걸이를 하는 것으로 손가락을 단련시키기에 최적) 열번을 하면 2주 후에는 할 수 있을 거야하는 농담조의 말을 들었다. 그는 아마 내가 해내지 못하리라고 여긴 모양인데, 나는 그대로 했고 결국 그 다음 주말의 첫시도에 그 루트를 무난히 등반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훈련의 성과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는 곧 체계적인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세우고 실천했는데 주로 턱걸이(하루에 200번씩을 통해 팔힘을 길렀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자 그는 한손으로 아홉번까지 턱걸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그후 그는 손가락과 팔의 특정한 부위의 근육을 강화시키기 위해 갖가지 훈련기구를 만들어 사용해보곤 햇다. 크랙머신(crack machine), 죽음의 기계(Death machine) 등 비장한 이름의 도구와 굵은 로프 두 가닥을 교대로 잡고 올라가는 훈련방법, 사다리를 비스듬히 세워 그 오버행쪽을 손으로 잡고 오르내리기, 판자를 걸쳐놓고 그 오버행 쪽에 손끝이 간신히 걸린 쫄대를 붙여 그것을 잡고 오르내리기 등등, 주로 손가락과 등의 근육을 기르는 훈련을 계속했다.
그는 상체뿐 아니라 온몸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매일 아침 탈루스 러닌(Talus running : 註 퇴석지대나 돌무더기 지대를 뛰는 것으로 순발력과 평형감각을 익히는 훈련으로 좋다)을 했으며,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산악 자전거는 선수로도 출전할 정도였다. 이렇듯 워낙 운동량이 많은 토니 야니로에게는 일부 게으른 클라이머들이 고심하는 다이어트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고 싶을만큼 먹었다고 한다. 아령이나 바벨 등 무게를 이용하는 웨이트 트레이닝 역시 전혀 등반에 소용없다하여 하질 않았다. 클라이밍을 위한 트레이닝에 대해 그의 견해는 이렇다.
"많은 클라이머들이 등반하는 자체가 곧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바위 옆에 살지 않는 한 어려운 얘기다. 물론 가능하다면 오로지 등반에 의해서만 트레이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근육이나 힘줄을 다치기 십상이다.효율적으로 힘을 기르려면 잘 조화된 환경 하에서 훈련을 해야 한다. 조화된 환경이란 나의 근육을 얼만큼 단련시킬 것인가, 또 얼마나 풀어줄 것인가를 정확하게 조절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말한다. 그런 방법을 통해 우리는 보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 어려운 루트를 등반하고자 하는 클라이머들은 세심하고도 규칙적인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벼락치기식 트레이닝은 결국 부상만 초래한다. 훈련은 꾸준히 해야함은 물론 너무 과도하게 해서도 안된다. 특히 크랙 클라이밍은 페이스 클라이밍보 다 한결 다른 힘이 쓰이고 더 많은 훈련을 요한다."
암벽등반사 새 장을 연 그랜드 일루젼(5.13) 초등
토니 야니로는 특히 크랙등반에 뛰어났다. 그를 가르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크랙 클라이머''라고 할 정도로 그는 특히 크랙 등반만큼은 다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가 이렇듯 크랙에 강하게 된 이유 역시 그가 고안한 독특한 트레이닝 기구 덕택이다. 그는 크랙머신(crack machine)이라는 넓이가 조정되는 크랙 모양의 기구를 만들어 거기에 재밍을 한 채, 하루에 500번에서 1,000번까지 자신의 팔이 완전히 녹초(pumping out : 註 근육이 최대팽창하여 마비가 됨. 등반용어로 자주 쓰임)가 되도록 턱걸이를 하였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루트를 하지 않을 때면 5.11급 정도되는 한 피치짜리 기존 하드프리 루트 - 요세미테의 ''버터 볼(Butter Ball)''등-를 셀 수 없을 만큼 반복 등반하며 다음과 같은 자신이 세운 기가막힌 좌우명
을 지켰다고 한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펌핑(팔이 녹초가 됨)될 기회를 놓치지 말자."
야니로가 재밍하지 못하는 사이즈의 크랙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그는 손끝이 약간 걸리는 아주 얇은 크랙부터 머리가 들어갈 정도로 넓은 오프 위드 크랙(Off width crack : 註 주먹보다는 넓고 침니보다는 좁은 15~20cm정도로 등반하기 매우 까다로운 사이즈의 크랙)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이즈의 크랙이라도 효과적으로 재밍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좋은 예로 패사노 오버행(Paisano Overhang)의 천정의 오프위드 크랙을 들 수 있다. 그는 이 대책없는 루트를 프리로 등반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주차장 천정에서 유사한 넓이의 홍통을 발견하여 친구 랜디 레빗과 함께 연습했다.
여기에서 그는 ''레비테이션(Leavittation)이라고 명명한 희한한 오프 위드 크랙 등반기술을 레빗과 함께 창안했다. 즉. 마치 자벌레가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듯, 손(팔)과 발(다리) 어느 한쪽이 몸을 지탱하는 사이에 다른 한쪽은 전진하는 기술이었다. 오프위드 크랙에서 이들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손과 주먹을 겹쳐 끼우기도, 무릎, 허벅지를 끼워 두 손을 놓기도 하는 등 실로 경탄할 만한 등반 자세를 보여 주었다.
1979년, 17세가 된 야니로는 미국 암벽등반사의 새로운 장을 연, 그의 가장 유명한 루트 - 그랜드 일루젼(Grand Illusion)을 초등하였다. 물론 자유등반으로 리드를 한 것이다. ''그랜드 일루젼''은 당시 단일 핏치로는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는 오버행이 진 데드르 상태의 벽으로써 그레이드는 5.13c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야니로가 초등할 당시 미국에선 5.12가 최상급의 그레이드였다. 그리하여 ''그랜드 일루젼'' 역시 처음에는 5.12d로 등급이 매겨졌으나 다른 5.12 루트들과는 너무 큰 난이도의 차를 보여 마침내 최초로 5.13이라는 가공할만한 난도의 문을 열게된 것이었다. 당시의 야니로의 수준이 얼마나 시대를 앞섰는가는 이 그랜드 일루젼이 그후 5년간이나 재등되지 못했다는 것으로 보아도 짐작할 수 있겠다. 엄청난 난이도의 벽을 껑충 뛰어 넘은 토니 야니로는 그랜 일루젼 초등에 얽힌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해준다.
"그랜드 일루젼은 원래 맥스 존즈(Max Jones)와 마크 하든(Mark Hudon)이 해보려고 애를 쓰던 루트였는데, 어느날 나도 한번 시도해 보았다. 그때 우리는 이 루트를 자유등반한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생각될 정도로 루트는 등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집에 와서 곰곰히 궁리해보고 다시 가서 자세히 관찰해보니 잘하면 어찌될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침내 ''이것을 오를 수 있다.''고 단정짓고 등반하기로 했다. 운좋게도 나는 학교 건물의 계단에서 그랜드 일루젼과 비슷한 크랙을 찾아내어 거기에 죽어라고 매달렸다. 그랜드 일루젼은 실로 힘이 절대적인 문제가 되는 루트로서, 두 세번만 매달리다 보면 온몸에 맥이 빠져 더 이상 등반을 시도할 수 없게 된다. 나는 5주에 걸쳐 매 주말 그곳에 가 매달렸고 매번 혼신의 힘을 들여 해봤으나 번번히 떨어졌다. 그리고는 주중에는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 훈련을 거듭했다."
야니로는 결국 해내었다. 그는 등반을 마치고 헐떡거리며 다음과 같이 내뱉었다. "누구라도 그랜드 일루젼 등반을 마치면 곧 토하고 싶을 게다."
이어서 야니로는 이퀴녹스(equinox : 註 존 배커가 톱로핑으로 초등한 5.13급 루트), 스핑크스 크랙(Sphinx crack ; 註 스티브 롱이 여러 핏치로 끊어서 초등, 5.12) 등 다른 톱클라이머들에 의해 초등된, 그러나 좋은 스타일로 리드(lead)되지 못했던 하드프리 루트를 연달아 초등(first lead) 함으로서 미국 클라이밍계를 경악케 했다. 극도로 어려운 루트만을 추구하는 그에게는 자연히 라이벌들의 비난이 따르기 시작했다. 그의 초인간적인 에너지와 새로운 루트에 대한 탐욕은 예사로운 정도를 넘어, 이제 그는 캘리포니아의 보수적인 클라이머들로부터 경원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클라이머들은 자존심이 강한 편이다. 그리하여 누군가 시대에 앞서가는 성과를 거두면 그에 대해 대개는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톱 클라이머 일수록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쉽다.
클라이밍이란 워낙 개인 중심적인 행위이고, 클라이머들의 경험이라던가 등반 동기 등은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서로의 아이디어나 기술, 등반의 성과 등에 관한 정보는 서로 교환되거나 공유되기 힘들다. 이렇듯 정보교환의 기회가 드물기 때문에 어떤 등반, 또는 등반가에 대한 진실은 입에서 입을 통해 왜곡되거나 잘못 이해되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야니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야니로와 그가 해낸 등반의 성과를 깎아 내리려는 비난의 종류는 정말 여러가지였다. "그는 사실 오르지 못 했어", "그는 셀수도 없이 미리 연습하고 했어'', "그는 키가 너무 작아'', "그는 손이 너무 작아", "그는 너무 힘이세", "그는 그 루트를 미리 해 보았어'', "그는 프렌드를 사용했어'', "그는 볼트와 고정하켄을 이용했어'', "그는 확보물을 너무 많이 설치해", "그는 등반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그는 바위에 미쳤어", "그는 이태리 놈이야" 따위 등이다.
이 온갖 종류의 루머는 대부분이 그의 등반방식에 관한 것으로, 즉 그가 등반윤리적인 반칙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퀴녹스, 스핑크스 크랙등반에 대해서는 미리 루트를 보았느니(previewing : 註 미리 관찰하고 등반함 on-sihgt와 상대적), 행도깅(hangdogging : 註 등반스타일에 관한 용어로 등반중 추락,또는 휴식하기 위해 프로텍션에 매달렸다가 다시 등반을 계속하는 것. Yo- Yoing과 유사)을 했는니 하는 논란이 많이 따랐다.
이런 평판에 야니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옆에서 보는 사람은 언제나 남들의 성과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은 법이다. 프리 클라이밍에서는 물론 한번도 추락하지 않고 루트를 오르는 것이 백번 낫다. 그렇지만 등반 중 한번 떨어졌다고 해서 그 등반이 무효가 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렇다면 그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등반방식의 차이를 두고 큰일이나 난듯이 쓸데없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실로 클라이밍이란 자유로운 행위이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 행위에서 즐거움이 솟구쳐야 한다. 나는 요요잉(Yo-Yoing : 註 등반스타일에 관한 용어로 등반중 추락시, 내려왔다가 중식을 취한 후 다시 등반함)이건, 행도깅이건, 프리뷰잉이건 간에 하나도 잘못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런 방식으로 등반하고
서 달리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않는다면..."
클라이머를 크게 두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면, 즉 등반에서 순수하게 즐거움을 추구하는 클라이머와 남과 경쟁을(자기 자신하고일 수도 있다)하기 위한 클라이머로 나눌 수 있겠다. 토니 야니로야말로 즐거움을 위해 등반했던, 등반을 즐겼던 클라이머가 아니었나 한다. 그는 가장 바위를 즐길 줄 아는 클라이머였으며 또한 자신의 단련에 더없이 독재적이고 완고하였다. 그를 아는 친구들은 야니로가 그보다 못한 클라이머를 깔보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친절하고, 건방지지 않았다. 같이 등반하는 친구와 주위사람들은 그와 있으면 큰 격려감을 느낄 수 있었다.
행위는 말보다 웅변적이다. 틀림없이 로얄 로빈스(Royal Robins)나 라인홀드 메스너(Rlinhold Missner), 토니 야니로 같은 클라이머들이 이루어 놓은 등반업적은 그대로 산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어떠한 책보다 그 누구의 비평보다 오래도록 진실을 증거해 줄 것이다. 행위와 철학은 결코 따로가 아니므로
www.gsan.co.kr/san3/145032
늦뫼산악회
Jaguar F.A.
https://youtu.be/aq7vyanmY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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