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차(茶) 문화 경영의 역사성 및 현상적 재발견

2018. 11. 26. 19:46차 이야기



남도 차(茶) 문화 경영의 역사성 및 현상적 재발견 | 경영사학
樂民(장달수)|조회 1153|추천 0|2018.02.28. 01:12

남도 차(茶) 문화 경영의 역사성 및
현상적 재발견*


정서경**・조영석***

요 약
본 연구는경영사적측면에서남도차(茶) 문화의역사성을분석하고발전적경영전
략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경영적 성과를 견인할 수 있는 방
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남도의차 문화는 지리적조건을갖춘차의 재배에서인적 네
트워크로형성된 차의 향유까지다양한 콘텐츠를 고루갖추고 있다. 연구의결과, 이러
한 특성을 살린 남도 차 문화의 활용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본 연구는 저자들이 아는 한 선행연구가 전혀 없는 가운데 경영사적 측면에서 남도
차 문화 경영의 역사성과 현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전략적 비전을 제시하였다는데
큰 차별성이 있다. 본 연구에서 분석된 남도 차 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경영 전략적 시
사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차의 생산, 가공, 유통의효율성을도모하여경제적활용방안을 강구하여야할
것이다. 둘째, 차문화확산을위하여도자기산업과의연관성을적극활용하여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집적화된 영산강 권역의 도자기 산업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매
우유리한방안이된다. 셋째, 차문화를 지역의고유한문화콘텐츠로활용하여 관광자
원으로 적극 개발하고, 수익창출 및지역경쟁력강화로연결하여야 한다. 넷째,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고 일자리 창출을 늘리는 전략적 자원 활용 방안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주제어> 남도 차(茶) 문화, 도자기, 차 문화 경영, 문화콘텐츠, 경영전략
* 본논문은2013년12월한국경영사학회추계학술논문발표대회에서발표한내용을바탕으로수
정되었습니다. 그리고학회발표 및논문심사과정에서조언해 주신토론자와익명의세분심
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 목포대학교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 연구교수, yugao@hanmail.net, 061-282-5279, 주저자
*** 목포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yscho@mokpo.ac.kr, 061-450-2631, 교신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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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웰빙(well-being)과힐링(healing)에대한관심이날로높아가는요즈음, 다산과초
의, 추사로 이어지는전라남도지역(이하‘남도(南道)’라함)의차(茶) 문화가다시금
주목을받고있다. 남도의차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지리적 조건을갖춘차의재배에
서 인적 네트워크로 형성된 차의 향유까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골고루 갖추고 있
다. 우리나라 차 문화의 전승적 역사에는 서민에서 최상층까지 신분의 고하와 시대
를 막론하고 차를 즐겼던 일상의 삶들이 여과 없이 담겨 있다. 이를 반영하듯 코레
일(Korail)에서는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관광열차를 확대하여 2013년 9월부터
남도해양관광열차S-트레인상품을개발하여남도의차문화를관광에활용하고있
다. 부산과 목포를잇는 S-트레인 열차는남도의 특성을살려티룸(차방)을 갖추어
다례(茶禮)를 선보이고, 차를 즐기며 여행할수 있는 프로그램을갖추고 있다. 단순
한 승무 서비스뿐만 아니라 차 전문가의 안내로 차에 대한 설명과 다례 일반상식을
전달하며 남도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코레일에서 내 놓은 히든카드이다.
경영사적 측면에서 남도 차 문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차를 상용 및 유통, 차의 기
능적 활용은 남도 지역 어디에서든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즉, 차의 재배와 생산,
유통과정과 활용, 음용 과정에서 남도의 발전과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전
남 강진에서 생산된 고려청자와 해방 이후 목포지역을 중심으로 발달된 현대의 생활
도자기에도 차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러한 것이 곧 남도 각 지역의
독특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고대부터차는약용으로 마셨던 민중 삶의 고락을 담고 있을뿐만아니라, 민간신
앙으로서신체(神體)의매개물로 사용되는 등 인간 삶의길흉화복 기능까지 담당했
다. 그러므로 차는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일생 의속으로서의 오신(娛神) 행위,
벽사(辟邪)의상징성, 치유기능을 갖기도했다. 또한 차를마시며풍류를 즐기고소
통하는 과정에서 차 문화 확장과 풍류 지향성이 나타나고 그 안에 담긴 지식인들의
유희정신이 깃들어 있다.
한편, 민간에서는 차를 사고 파는 다점(茶店)과 차 시장이 성행하였음을 발견할
수있는데, 음차풍의 유행과 변용, 차약(茶藥)으로써의 민간요법, 민속적전승양상과
차 문화의 대중화를 역사적 전승에서 확인할수 있다. 예컨대유희정신에 담긴소통
과 혁신, 창조적 전승을 위한 차 문화의 세계상은 인문경영의 상징성이 담겨 있다.
민간신앙, 차상품가공과유통, 공차(貢茶), 교유(交遊), 다도사상에이르기까지양
생과 교유, 향유의 매개물로 사용되었던 차문화는 상업적 수단과전승적 경영의 역
사를 담고 있다. 이러한 차의 전승과정에는차를재배하고 가공한후 세금으로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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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던 다세(茶稅)제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는 기존의 선행연구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경영사적 측
면에서 남도 차 문화 경영의 역사성과 현상을 통해 현대적 차 문화 경영의 전략적
비전을 제시하였다는데 중요한 차별성이 있다. 본 연구에서 고찰하는 남도 차 문화
경영의지역적범위는전남서남해권지역을 중심으로하며, 시간적범위로는고대~
고려~조선~근・현대로 이어지는 차문화전승과경영적측면을 분석한다. 그리고 차
의 재배와 제다, 가공, 유통, 차의 상품화 과정, 도자기, 차 문화의 역사성, 차 문화
전승 주체와 그들의 상업적 거래과정 및 경영 전략 등을 내용적 범위로 설정한다.
본 연구의 구성은 1장 서론에 이어, 2장에서 남도 차 문화의 역사성과 도자기 산
업을 통하여 경영사적 측면을분석하였고, 3장에서 경영적측면의 재발견을 구체적
으로 연구하였다. 4장은 남도 차 문화의 전략적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5장 결론으
로 마무리한다.


II. 남도 차 문화의 역사성과 도자기 산업
1. 남도 차 문화의 전승맥락과 쟁점
남도 차 문화는 일찍이 일본인들에 의해 조명되었다. 朝鮮の茶と禪(조선의 차와
선) 이 그것이다. 한약의 전문가이자 도자기 분야에 조예가 깊은 학자였던 나까오
만조우(中尾萬三)가 조선 도자기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중국 당나라 때의 덩어리차
(團茶)를발견하고 1938년부터 조선을 방문할 기회를 얻어 광주의 산림기사인이에
이리가즈오(家入一雄)의도움을받아사찰에서의덩어리차만들기를실제로견학하
고 조사하게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 이미 일인에 의해 중국의차 무역사에관한
고증학적 연구가 발표되었다.1) 나까오 만조우의 조선 돈차(錢茶)2)에 관한 고찰은
남도 차문화의 역사와전승을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나주불회사와 장
흥군 보림사의 제다 방법이 돈차 제다 방법과일치함을 확인하고, 보림사 부근의 유
치소학교(현, 유치초등학교) 교장 우스기네를 만났다는데 돈차의 제다 현장을찾아
조선의 차를 밝힌 것이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 침체되었던 남도의 차 문화 경
영의 역사는 이렇게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돈차는2008년 일본최대의 녹차산지인시즈오까에서세계녹차협회가주


1) 야노 진이찌(矢野仁一), 1936, “茶の歷史にて就て”, 「茶道全集」卷の一, 大阪, 創元社, 33-114.
2) 중국의 보이차와 제조 공정과 같이 바짝 말려서 만든 차로 모양이 엽전 꾸러미와 비슷하여 돈
차라고 하며, 전차, 단차, 병차(餠茶, 떡차), 청태전 등 모양에 따라 부르던 이름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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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여열린 ‘세계녹차 콘테스트2008’에서장흥군의 청태전(靑苔錢)이최고상인 금
상을 수상하는 등오늘날에활발하게재현되고있다.3) 청태전은 1,200여년 전통일
신라 때 당나라로부터 전해 온 후 우리 고유의 전통차로 삼국시대부터 장흥을 중심
으로 강진, 영암 해남 등지에 전래되어 온 떡차의 일종으로 조선후기까지 선조들이
즐겨 마시고약용으로도사용되었던전통발효차이다. 장흥지역은 차를만드는제다
소가 전국에 19곳 뿐이었던 고려시대에 13곳이 있었을 정도로 차로 유명했던 지역
이다.
이와 같이 그 역사적 현장과 전승 맥락을 분석해 보면 남도 차 문화가 오늘날의
현대적경영방법으로재탄생하고있음을 발견할 수있다. 무엇보다 남도 차문화의
역사적전승과정에서가장 중요한것은차의생산과가공,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향
유한 주체들의 활동이었다. 그들의 사상, 즉 차 정신과 함께 차를 가공하고 유통하
는 단계에서도 경영적 측면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먼저 근대까지의 차 문화의
전승양상들, 그 큰축이되는 차문화 전승 공간과 중추적 향유 주체로서의 인물들
을종과 횡으로이어보면전체적인전승의맥락은더욱분명해진다. 1801년다산정
약용이 강진으로 유배 오면서 우리나라 차 문화의 중흥은 이루어진다. 학(學)・예
(藝)・차(茶) 거장들로 일컬어지는 다산, 초의, 추사가 차를 매개로 활발하게 교유했
던 곳이 바로 남도 지역이었다. 여기에서 남도 차 문화의 맥락을 주체와 그들이 생
산하고 가공한 차, 또는 상품화 하여 유통된 차와 그러한 역사를 담고 있는 유적,
그리고 전승과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경영사적 현상을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의
<표 1>과 같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차 문화의 전승과 맥을 짚어 보면 남도 차 문화의 전승은 한
국 차문화사의 쟁점과지향그것이모두남도에서발흥, 교유하고발전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3) 콘테스트에서는 일본, 중국, 한국 등세계각국의녹차산지에서87여개 제품을 출품하여 일본,
중국, 프랑스의 심사위원들이차의 품질뿐만아니라 창조성, 기능성, 콘셉이 명확한차를 평가
기준으로하여선정하였으며, 중국명차인보이차와유사한색과질감을갖고있으면서도맛과
품질 면에서는 더 우수하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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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남도 차 문화의 경영사적 쟁점과 지향
차와 주제 시대 경영사적 쟁점과 지향
전승 주체
고대 일본에 차씨를 가지고 간 백제의 행기스님
고려 고려 차시 작자의 진각국사
조선 다산과 초의의 인연을 만들어 준 아암 혜장
초의와 추사 사이에서 차심부름을 했던 소치(小癡)
근・현대 건강한 청년육성, 농업교육과 근대의 藝・茶의 거장 의재(毅齋)
문화진흥책과 차 문화 부흥의 구심점이었던 우록(友鹿)
생산된 차
고대 화엄사주지를 지낸 만우(曼宇) 정병헌의「해동호남지리산대화엄사
사적」(1936)에 대밭(長竹田)에 차 씨를 심어 재배한 죽로차
고려
남도에서 생산된 우리나라 최초의 차-뇌원차
우리나라에 다례가 번성하였던 고려시대 장흥의 13개 茶所에서
생산하여 궁중에 공납했던, 호남 일대의 약차 녹태전(綠苔錢)
조선
남도 도서와 해변지역의 약차, 청태전(靑苔錢)
전다박사가만들고사다(謝茶)한장흥보림사의죽로차와보림백모차
천은사의 죽전차, 연곡사 작설차, 용천사 작설차, 다보사 야생차, 백
양사 죽로차, 송광사 옥로차, 불갑사 작설차, 선암사 청량차
근・현대 차의 최초 상품화, 백운옥판차과 금릉월산차
天・地・人의 삼애다원에서 만든 무등명차 춘설차(春雪茶)
차 문화
유적
고대 원효(元曉)스님과 사포성인이 참선을 마친 후 차를 마신 원효방
고려 진각국사와 월남사지
조선
다산의 유배문학이 꽃을 피운 강진, 다산초당
다산과 아암의 애틋한 인연의 기억, 백련사
초의의 차벗 다산과 시회, 백운동 별서
차 문화사의 발흥지, 차 문화의 성지 일지암
초의의 발자취-운흥사, 도갑사, 대흥사, 일지암
보림백모차의 보림사
근・현대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 학생들이 가꾸던 삼애다원
일제강점기 일인들에 의해 조성된 대한다원
한국전쟁 이전에 차나무를 심어 일군 한국제다
차 문화
현상 현대
끈질긴 집념과 향유의 본능, 그리고 차 문화 공간과 차밭
조선 후기 지성사의 교류와 차 문화의 중흥
조선 후기 學・藝・禪・茶지성사의 근・현대로의 맥
근대 차의 보급과 현대 차 문화의 부흥
해남이 낳은 우록, 그의 차 문화 인식과 지향
차가 발달시킨 한국 도자사와 차 문화사
교유의 정과 사유의 멋이 있어 더 아름다운 호남의 차 문화
자료: 정서경, 2012, “한국 차 문화 기능의 전승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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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도 차 문화와 도자기의 발달
차 문화의 형성과 확산으로 인하여 함께 발달한 것이 바로 전남의 도자기 산업이
다. 그래서 “도자기를 발달시킨 차”라는등식이 만들어졌다.4) 차와 도자기는 전통적
으로 전라남도의 대표브랜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호남의 기층문화를 대표해 왔
다. 우리나라 전체도자기산업을살펴보면, 생활도자기를 포함한 전통 도자기의경
우, 2009년도자센서스에의하면, 전국의도자기지업체는1,878개사6,328명이근무
하고 있는데, 지역별로는 경기도에 895개(전국의 47.6%)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
다. 전남은 업체 수 126개사로6.7%이지만, 근로자수는 924명으로 14.6%를차지하
고 있다. 도자기 업체의 경우 95.8%가 개인사업자형태로 50평이하의 소규모가 대
부분이지만, 전남의 경우 산업화된 생활도자기 분야는 전국에서 가장 집적화(특히
영산강 권역)되어 있으며 경쟁력은 최상위 수준에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전국 1,878개 도자기 업체 중 10명 이상 고용한 기업 77개중
1/4에해당하는19개(24.7%)가영산강권역에입주하고있으며, 2012년10월말현재
무안군에만68개업체500여명이도자기업종에 종사하고있다. 영산강권역은도자
기 산업에 최적의인프라 여건을 갖추고있으며, 도자기산업전공정 일관체계를 갖
춘 전국 유일, 최적의 입지로 지역 특성화 여건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또한 세라
믹 산업도 매우 발달한 지역으로 관련 산업에서 많은 일자리와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 볼 때 세라믹 산업은 호남 서남권 전략산업으로 적합하며,
특히 도자산업 분야는 여성 및 저학력 근로자에게도 맞춤형인 단순작업자부터 디자
인 등 고급 전문인력까지 수요가 다양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영산강 권역의 도자
기산업은지역기반의 토착산업으로 음식, 디자인, 액세서리, 화장품, 도자제품, 패션
소품 등과의 연관 및 확장성이 매우 높은 분야이다.5)
한편, 남도에서 생산된 차에 대한 거래가 국내 및국제무역에등장하기 시작한 것
은9세기장보고가완도(1896년완도군이신설되기이전에는강진현)에설치한청해
진의 활동시기부터 나타나고 있다.6) 이후 고려청자의 명성이 높아지며 차와 도자기
는 고려, 조선시대의 중개무역 활동과 그 궤를 같이한다. 이어 15세기부터 강진의
병영상인에 의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거래되기 시작하였다.


도자기와 관계된기록을살펴보면,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신라에서 주・군을둘
4) 강순형, 1989, “도자기를 발달시킨 차”, 월간 「다담」, 월간다담사.
5) 조영석 외, 2013, 「전남 서・남권 인력양성및 일자리창출을 위한 고용여건 조사연구」, 국립목
포대학교 산학협력단, 5-6.
6) 주희춘 외, 2010, “강진 병영상인에 관한역사적재조명”, 「경영사학」, 제25집제4호, 한국경영
사학회,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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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그田丁戶口가현이되지못한것은향(鄕)이나부곡(部曲)을두어소재지의읍에
속하게하였다. 이제도는고려시대에도이어져향・소・부곡의소는金所(금소), 銅所
(동소), 鐵所(철소), 絲所(사소), 紬所(유소), 紙所(지소), 瓦所(와소), 炭所(탄소), 塩
所(염소), 墨所(묵소), 藿所(곽소), 瓷器所(자기소), 魚梁所(어량소), 薑所(강소)의구
별이 있어 각각 그물품을 공급하였다는기록에서도그 분포도를 반영하고있다. 고
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도・자기소의 분포와 함께 1980년대
한국지명총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도・자기소를 살펴보면 전남이 상당히 많은 비중
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전남을 중심으로 도자기
가 활발하게 성행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입증한다.7)
현대에 이르러 1980년대 한국지명총람을 바탕으로 전남 해안지역으로 도자기의
기초 발전 단계인 옹기를 만드는 가마가 있었던 마을을 조사한 결과,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한 전남지방에는 295개의 粘(점)마을이 산재해 있다.8) 옹기 마을은 粘
(점)・匵(독)・甕(옹)・陶(도)・沙(사)・土(토)가 들어간 마을 지명은 거의도・자기소와
관계된지명이다. 여기서는흙(질)과관계되는 도・자기소로서 지명은 반드시옹기점
이 있었음이라는 정확한 부연설명이 붙어 있는 지명만 목록화 한 것이다. 옹기점이
나 사기점 또는 독점이 있었다는 지명을 제외하고도 점과 독, 옹, 토, 도와 관련이
있는지명들은무수히많았다. 그러한 지명들까지포함하면약500개소에이르고있
다. 더욱이한국지명총람의초판이 1982년이라는것을감안하면그러한지명은훨씬
더 많을것이다. 전남이 도자기문화의중심이었다는 것도 여기에근거를 두고있으
며우리나라에서최초로현대식도자기산업으로성장한(주)행남자기도목포에서시
작되어 오늘날 영산강 권역에서 활발하게 도자기 산업이 차 문화와 함께 발전하고
있다.


7) 위에서빠진茶所, 陶器所, 船所등의기록은 世宗實錄地理志 와 新增東國輿地勝覽 에서확인
할 수 있다.
8) 강진 19개소, 고흥 16개소, 광양 11개소, 광주 4개소, 광산 13개소, 곡성 20개소, 구례 9개소,
나주 11개소, 담양 12개소, 무안 9개소, 보성 24개소, 승주 19개소, 신안 2개소, 영광 12개소,
영암25개소, 완도 2개소, 장성23개소, 장흥 23개소, 진도2개소, 함평7개소, 해남25개소, 화
순 7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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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남도 차 문화 경영의 재발견
1. 남도 차 문화의 전래와 배경
남도는 우리나라에서 차의 전래와 기원의 역사를 함께 한다. 화엄사 주지를 지낸
만우스님의《해동호남지리산대화엄사사적(海東湖南地異山大華嚴寺事蹟)》(1936)
에도 신라진흥왕5년(554년) 연기조사가화엄사를 세울때, 화엄사 부근과 뒤편긴
대밭에 차 씨를 심었으며 “이 긴 대밭의 죽로차는 나라 안에 이름이 났으니 호남일
대는조선차의고향이다(此由是長竹田竹露茶名于國中湖南一帶朝鮮之茶鄕也).”라는
내용이 있다.9)
이와더불어 청해진은신라 흥덕왕 3년4월(서기828년)에장보고의 요청에 의해
지금의완도(당시에는강진현)에설치하였던 진이다. 이 연대는 현재차 문화계에서
차의 전래를정사로서인정하고 있는 연대와같다. 차문화는차의기원에서유입의
문제를다양하게설정하고 있지만828년대렴공이차 종자를중국에서 가져와지리
산 자락에 심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적용되고 있다.10) 장보고가 해상을 누비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삼각무역을 할 당시 당나라에 갔다 온 사신 대렴공이 차 종자
를 가져오자 흥덕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일본의 엔인(圓仁)
스님이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에서 노자로 얻은 것이 차이고 보면 청해진과 전남
의 차가거래되었다는역사적근거자료를 보여주기도 한다. 차가이 땅에서자생됐
건 수입이 되어 확산이 됐건 차의 생산지는 예로부터 남도지역이 그 중심이라는 사
실은 틀림이 없다.11)
우리나라 차의 기원과 역사를 지닌 남도의 차 문화는 조선시대 당쟁의 틈바구니
에서도 오히려 차를 마시며 초연했던 선인들이 조선조 후기까지 그 맥을 이어왔던
것이다. 특히 이러한 차 문화의 맥은 유독 전남에서 면면히 이어왔다.
전남의육지에는어디에서나차가자생하고있고, 한국전쟁 전까지도당대의명물
인 돈차가 남해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선비의 후예들은 집에서 손수 만든 차를
곧잘 마시며, 일제하에서 망국의 한을 달래기도 했던 것이다. 또 강진군 대구면의
고려자기도요지를비롯하여 무등산기슭의분청사기요지, 장흥군 용산면조선백자


9) 최계원, 1983, 우리 차의 재조명 , 삼양출판사, 47.
10) 삼국사기 , 권 10, 신라본기, 흥덕왕 3년 12월條.
11) 단종2년(1454년)에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 에는전남의19개부・군・현, 전북의8개부・군・
현, 경남의6개군・현에서차가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1940년의조사는 전남에서만19개시・
군 50개, 읍・면에 차산지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의 조사는 10여 년에 걸친 한국제다
(주)의 자생차 분포지 조사에 의하면 전남에 22개 시・군, 전북 5개 시・군 등 27개 시・군 등
모두 1백 57개 마을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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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 등은 차 문화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차의 종주국은 중국이라고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차의 권위자들이 찾아와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별종의 차나
무가 한국에서 자라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선암사에서 차밭을 경영하고 있는 신광
수씨는 이 차밭에서 6백년이나 되는 야생 차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12)
한편오늘날우리나라차재배지의분포를분석해보면, 대부분(약70~80%)이수
작업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근에 조성된 다원으로 기계화 작업이 가능한
지역은제주도와강진 성전, 보성 회천일부, 장성 남면, 해남 등이다. 연간 생산량은
건엽으로약 2,155톤 정도이며, 단위 면적당 생산성은 ha당 전국평균이 약 1,040㎏
이다. 제주도와강진성전지역은 장원산업에서평야지에 재배하기 때문에생산성이
높은 반면, 그외 지역은 산간이거나 경사도가 높아 생산량이 낮은 편이다. 재배 지
역별 주품종은 광주를 중심으로 보성, 강진, 영암, 광양, 구례, 하동, 산청, 제주에서
재래종(실생), 야부기다 종으로 나타나고 있다.13) 일반적으로 남도 지역의 차나무
재배수령은 광주, 보성및 경남하동일부는대체로30~50년, 강진과 제주도는 15~
20년 정도 경과 되었다. 차밭 관리는 제주도, 강진, 보성 일부를 제외하고는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못하고 있으며, 특히 경남 하동, 산청과 전남의 광양, 구례에서는 야
생 상태에 가깝게 관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차재배면적은 1995년667ha에서꾸준히증가하여2002년 2,072ha로
크게늘었다. 이는 차 시험장 개장 이후 차 재배기술의 확립과 기능성차 제품이 다
수 개발되었고, 국제적으로 차의기능성이알려지면서 재배면적이 늘어난데 기인하
였다. 우리나라 차최대 산지로는전남보성이전체 재배 면적의 25%인518ha로우
리나라최대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전남이1,307ha로 전국 재배면적의 63%로가장
많고, 경남 하동 제주도 순으로재배되고있다. 최근에는 순천, 구례, 장흥에서 새로
운 차 재배지가 증가하고 있다.


2. 다소제도와 차 문화
남도의차문화는삼국시대부터조선시대까지차의생산기지는다소(茶所)라는지
방제도14)로경상도에3개소와전라도에18개소가운영되었다. 고려시대에장흥도호


12) 김대성,1999, “조왕신, 차부뚜막, 전통차살아숨쉬는승주선암사”, 「차문화유적답사기상」,
불교춘추사, 1999, 259.
13) 김주희 외, 2007, “보성차의 자생지 뿌리 찾기 고증”, 「보성차의 역사 및 자생차 실태연구」,
보성군, 남도전통문화진흥원, 11.
14) 다소(茶所)란염소(鹽所), 자기소(瓷器所)와같이서민집단이거주하는특수행정구역으로삼
국시대부터고려, 조선시대까지 있었던 지방제도이다. 당시 현이나 군이못되는작은 부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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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는13개소의다소가있었는데, 요량(요良), 수태(守太), 칠백유(七百乳), 정산(井
山), 가을평(加乙坪), 운고(雲高), 정화(丁火), 창거(昌居), 향여(香餘), 웅점(熊岾), 가
좌(加佐), 안칙곡(安則谷)을말한다. 장흥도호부는 지금의전남 장흥으로 본래백제
의오차현(吳次縣)인데신라경덕왕때오아현(烏兒縣)으로고쳐졌고이후보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장흥은 차 재배의 적지로서 일찍부터 차 산업이 정착되었으며 서남
해안을 끼고 바닷가에 인접해 있어 예로부터 해상항로가 발달하여 해상을 통해 중국
이나 일본과도 문물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고려시대의 다소는 차를 궁중에 진상하는 기관으로 그 제도는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되었다. 한편민중에서는 차에 대한과세가 민중의 피폐로 나타났고, 그 정도는
매우 심각하여 차세를 내는 일이 부담스러워 차 나무를 불태워버리는 폐단이 일어나
기도 하였다. 이렇게 궁중에서 사용되는 차의 생산과 가공을 위해 민간에서는 끊임
없이 차를 진상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고려시대에는 차와 관련된 제도가 완비
되었는데, 궁중내의관청으로다방(茶房)과다원(茶院)이그것이다. 다원(茶院-왕이나
귀족들이 먼 길을 가다가 도중에 쉬어 가는 집으로 차 마시기에 좋은 샘물이나 정자
또는차가유명한 원), 다점(茶店-일반백성들이돈이나 물건으로 값을 치르고마른
차를사거나사마시는집), 다소(茶所-포로등의천민집단이거주하는행정구역으로
차를만들어나라에바친 곳) 등차를취급하는곳들이다양하였으며 조정의의례나
국제간의 예물 및 왕의 하사품으로 활용되었다. 조정의 국가적인 행사인 다례는 공
식적이고 의식적인 절차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외국의 사신을 맞
는 의례와 국가 간의 공물에 차가 오고 갔다. 이 제도는 조선시대까지 계승되어 조
선시대차는귀중한 예물로써왕실의 크고 작은 행사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왕이 신
하에게 차를 하사하였으며, 궁중의 여러 행사를 준비하는 다방이란 관청을 두었다.


3. 인물을 중심으로 한 근・현대 남도 차 문화의 재발견
한국의 차문화는고려시대부터전국적으로확산되었다가, 16세기 말에 임진왜란,
정유재란을겪으며피폐해진 민간에서는거의쇠퇴하였다. 이후일부의선승과문인
들에의해서 주로계승되어 오던 우리나라고유의차 문화는 18세기에이르러호남
을 중심으로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사라져가던 조선 후기의 우리나라 차 문화를
일거에되살려낸인물이초의선사(艸衣, 1786~1866) 였다. 그의앞뒤로중요한차인
들이 없지 않았으나 초의를 빼고는 말하기 어려운 인물들이요, 초의의 동다송 과
는향이나 부곡이나 소를 두어관리하였는데특히특산물이 산출되는 지역에는소(所)를두
어 관리 하였다. 이에 차가 생산되는 지역에는 다소제도를 두었다.


정서경・조영석 남도차(茶) 문화경영의역사성및현상적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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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전 을 빼 놓고는 우리의 차 문화 자체를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우리
차의 중흥을 이끌었던 초의선사가 머물던 곳이 전남 해남의 대흥사요, 일지암이다.
초의 이후 해남은 우리 차의 성지가 되었다. 초의의 차와 차 정신은 그의 사후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해남을 중심으로 한 호남 지역이 그 핵이었다. 다산과 혜
장, 초의와추사(秋史金正喜)의차 정신은조선후기소치로이어졌다. 초의에게차
와 예술을 익힌 소치(小癡, 許鍊)의 차맥과 화맥은의재(毅齋許百鍊)를 거쳐오늘
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의는 차의 중흥을 일구었고, 그가 이루어낸우리나라의차
문화는사후에도그 열기가 식지 않았으니, 이 모든 일어남과이어짐의중심에남도
의 차 문화가 있었다.
모두가 어려웠던 광복 이후 오랫동안, 음차풍속을 찾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차를
좋아해서보급하고계승하고자하는이들이늘어나기시작했다. 그나마의지하고기
댈 곳은우리문화라는편안함이 있었기에 차츰 그바람이유지되었다. 한국전쟁 이
후의 한국의차 문화는일부의선각자들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맞이하게 된다. 새로
운 차밭 조성과 다도 교육의 시작, 차인회의 결성, 국제적 교류의 본격화를 시도했
던 것이다. 이러한 부흥 활동은크게 해남과 진주를 선두로 일어나게 되고, 그 기운
의 여파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차 문화 인구의 저변확대로 이어지고 차 문화의
유적 발굴과 더불어 음차 문화의 유행이 사회적으로 급격히 고조되면서 활발하게 진
행되었다.
이러한 우리나라 차 문화의 맥은 근・현대의 가교 역할로 호남과 영남의 양대 산
맥을 이루면서확산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광주 무등산의 삼애다원에서 의재가 호남
에서그 활동을 나타내며 현대까지 이르렀고, 응송(應松, 朴暎熙)과효당(曉堂崔凡
에이르기까지 남도지역 차인들의 활발한 활동 속에차 문화의 역사를 발전시켜 ) 述
온 것이다. 이들은 차 생활을 실천하며 그 중요성을 전하는 데 앞장선 사람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중추적 역할을 했던 남도 차문화 주체들의활동이 주목된다. 자
연 상태에서벗어나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정신이
었다. 생활양식의과정, 그 과정에서이루어진 물질적, 정신적소산을통틀어재정비
하고자 하는 의식들이 집결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유입된
황실다례나 일본식 차실 등 일본 다도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민간에서 한국
에 차 문화가 정착하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차의 소비량은 20톤에 불과했고,
차마시는사람도고작 5만에불과하던시기였다. 우리의 차나무는 일반대중들에게
외면을 면치 못하고 시대적 푸대접을 받았고, 호남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주민들은
차를 약용으로만 사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일제의 강점과 동족의 상잔으로 다시 기진해진 우리의 차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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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두팔을 걷어 붙인 사람들역시해남의차인들이었다. 잊혀져가던 초의선사의 저
작들을 되살려내고, 그 터전조차 묻혀버린 일지암의 복원을 견인하였다. 이들의 노
력이 없이는 오늘날의 일지암, 오늘날의 차인회 조직, 오늘날의 우리 차 산업과 문
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 차 문화의 이런 부흥을 가장 앞장서서 견인한 단체가
해남다인회고, 그 중심에 우록 김봉호가 있었다. 작가이자 언론인이요, 예술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우록은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가 낳은 가장 걸출한 차인이었다.
그가 없는 해남다인회를 상상하기 어렵고, 그가 없는 우리 시대의 차 문화 또한 헤
아리기 어렵다. 초의가 우리 차 문화의 중흥조라면, 우록은 현대 차 문화의 부흥조
가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는 우리 시대의 대표 차인이었다.15)


4. 남도 차 문화의 경영적 관점
일반적으로 차 산업 경영의 적지는 차잎 생산이 가능하고 유통구조가 발달한 지
역이라야 한다. 먼저 차나무는 기후와 토양의 영향을 크게 받고, 표고는 품질에 영
향을미치므로산이많고서늘한기온이면서도겨울에는영하15도이하로내려가지
않는 지역이라야 한다. 이러한 특성상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남도와 제주도 전지역,
경남 일부와 전북의 일부해안에서만 차 재배가 가능하며, 따라서 남도는 차 생산의
최적지라할 수있다. 이러한 지리적범위내에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차의 생산, 유
통, 소비여건이 갖추어진 하동, 구례, 보성, 강진, 해남, 장성, 영암, 제주도 등지에서
생산되고 인근의 대도시인 광주, 목포 등지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차 산업은 다른 농작물에 비해 안정도가 높은 편인데, 경영적 측면에서 보
면다음과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차의재배과정에서 동일차나무에서 연2~4회의
새로운 싹을 수확할 수 있고 심근성 작물로 흉작이 거의 없다. 둘째, 장기 저장에
유리하다. 셋째, 경지이용범위가넓고, 건강지향성소비자의 특성으로소비가안정적
이다. 차밭의경우관광 상품화의 가능성이 높다. 넷째, 차는다른농작물에비해 품
질간의 가격 차이가 크고, 다원 경영자의 기량과 재능(제다기술)에 의해 다업 수입
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차는 재배와 제조(생산)가불가분의관계에 있으며, 장
기재배에 적합하여 경영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있다. 또한 자본의고정성이 높은 편
이다.16)
차 산업은 차잎 뿐만 아니라, 차 도구의 창작, 생산, 유동 등의 단계에서 고용과
부를 창출하고있으며, 다도의전승과교습과정에서도고용창출효과를달성하고있


15) 정서경, 2013, 「현대 차 문화의 부흥조 독철신 우록 김봉호」, 이른아침.
16) 기민정, 1993, “국산차의 유통개선에관한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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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최근 전남지역에서 차를 통한 부가가치
를높이려는다양한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초의선사의 탄생지인 무안에서 사회적
기업을설립하여지역의노동력 및자원, 차를 결합하여초의차를생산판매하고 있
고, 장흥 청태전, 순천의 명인 신광수차 등은 해외에서도 이름이 높은 대표적 차 명
품 브랜드로 성장하며 차 문화의 대중화를 선도해 오고 있다.


<그림 1> 우리나라 차나무 재배지역 분포도
자료: 한국차문화연구회. 기민정(1993) 재인용
차 문화에서 또 다른 중요 역할을 하는 차 도구는 차인의 창의력과 장인의 기술력
의 의해 공동으로 이루어지면서 차와 예술의 문화적 소통이 포함되므로 다른 예술품
의 제작과정과 크게 다른 특징이다. 이러한 차 문화의 대표적 작품이 바로 다기(도
자기 제품) 들인데 전남 목포 및 무안군 일대는 전국에서 가장 집적화되고 차 문화
와 직결된 다양한 제품들이 생산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일본에서 센케짓쇼쿠(千家十職)17)를 통하여 유명한차 도
구 장인제품을 우대하고 취향에 맞추어 소비하는 과정에서 일본 전통문화를 상업화


17) 일본의 다도유파인 센케(千家) 집안에독점적으로납품하는10개 집단다 도구장인 제품을
말하며 오늘날에는 일본의 고급취향에 맞추어 차 도구를 제작하는 장인집안을 집단적으로 칭
하는말이다. -박전열, 2007, “일본다도의문화산업적 의미에관한연구”, 「한국차학회지」, 제
13권 2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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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대중화를 촉진한 일본다도의 특징을 우리나라의 차 문화 경영적 차원에서 접목
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가치 뿐만 아니라 다도를 통해 얻는 정신적 가치와 문화적
공유와 소통의 의미는 창의성과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최근 몇 년간 차 문화의 저조는 커피 체인점이 급증하는데 반비례하며 차의 급속
한 수요 감소로 인해 차 산업 분야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어 생산성마저 낮아지고
있다. 전남녹차가 ‘날개없는추락’을이어가면서녹차산업전반에도 위기감이 고조
되고 있다. 잇단 동해(凍害) 피해에다 원두커피와 대용차의 위세에 시장을 절반 이
상 잠식당했다. 농정 당국과 농가들은 신품종을 개발하고 홍차 상용화에 나서는가
하면 학교급식에도 노크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대응으로 당면했다. 전남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산하 식품경영연구소가도내 54개 작목을 대상으로 2012년산
농산물소득을 조사한 결과 녹차는 10a당 소득액이 19만 4564원으로 2011년(87만
7028원)에 비해 77.8%나 감소했다. 필요한 경비를 빼지 않은 조수입은 10a당 90만
9000원으로 경영비71만4000원을빼고나면소득은 20만원이하로 떨어지고 소득
률은20%대초반에그쳤다. 30개노지재배 작물과24개 시설재배작목 가운데감소
율이 가장 컸다.18)
차의 본향 전남에서 녹차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우선 수요 감소가 1차적
요인이되고있다. 원두커피와대용차시장이급성장하면서최근3~4년새소비량기
준판매량이30~40%가량줄었다. 여기에2010년부터해마다계속된동해로재배농
가 상당수가 피해를입으면서한때1,600~2,000t 가량을 생산해 전국의절반가량을
차지하던 생산량도 700~800t 수준으로 뚝떨어졌다. 위상이 크게 추락하자농정당
국과 농가들은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동해에강한10여 가지신품종개발에주력하
는 한편, 제조과정이단순하면서도 커피와의 혼용이 가능하고 아이스티, 과일차로도
사용할 수 있는 홍차를 내수 부진의 대안으로 개발하고 있다. 세계 차 소비시장의
80%를 차지하는 홍차를 만들 경우 녹차 대용은 물론 수출을 통해 연간 200억원에
이르는 홍차 수입 대체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도는 여전히 차의 본고장이다. 전남 구석구석 어디를 가 봐
도 차나무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가히차의 고장 전남이라 할 만하다. 지
도를 펴 놓고 보면 남도의 어디 한 곳을 보더라도 차 문화 유적이 아닌 곳이 없다.


18) 심각한작황부진을겪은월동배추(-34.9%),태풍피해로생산량이급격히줄어든무화과(-52%),
포도(-30%), 배(-24%),단감(-23%)에비해서도감소율이훨씬큰것으로나타났다.시간당노
동생산성도6096원으로가장낮았다. 하우스무(4만8327원)에비해서는8배, 쪽파(4만6498원)
보다는 7.6배, 가을배추(4만2440원)에 비해서는 7배나 생산성이 낮았다.
19) 송창헌, 2013, “전남녹차‘끝없는추락’ 생존몸부림”, 뉴시스미디어다음, 6월17일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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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우리나라 최대의 차 문화 유적지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근
대이후 도자기발달사와 도자기판로의 물길・뱃길과 더불어차와차 문화의시대적
역사성과 연관성을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남도는 이 지역의 정체성, 대표성, 역사성을 포함하고 있다. 각기 다른 지역의 특
징을 가지고 발달한 차 문화는 각 지역의 고유성과 창의성을 나타내 주는 문화유산
으로 예술성, 풍류성, 민중성이 잘 드러나 있다.
문화콘텐츠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문화산업의 측면에서 민속문화 특히 무형문화
유산의 보존과 전승, 그 안의 맥락들을 살펴 볼 당위성을 현 단계 문화산업의 흐름
속에서 찾을수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와직간접적으로 관계된 문화산업은, 그 관심
의증폭뿐만아니라대형축제등의활용빈도, 나아가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중심
으로 추진되고 있는 문화원형사업을 포함하여재고해 볼수 있는 것들이다. 경제전
쟁에서 문화전쟁의시대로 접어들었다고하는현재의시대상황을전제한다면, 차문
화 또한적극적인자세로 받아들일필요가 있다. 차 문화를 새로운경영적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다양한 성공사례를 찾아낼 수 있다.


<표 2> 보존・육성이 가능한 도자기와 차의 관계성
지역 도자기문화 차 문화 유적 역사성 상품화 (차) 이동뱃길
나주 청자 초의선사, 운흥사 7, 12C 녹차 영산강
무안 옹기, 분청 초의생가 7C 초의차 영산강
목포 생활자기 소치와 남농 현대 홍차 영산강
영암 도기 도갑사, 8C 감농, 설록 상대포
해남 녹청자 녹우당, 일지암 9C 반야차, 설아차 어란포
강진 청자(상감) 다산초당, 이한영 10~12C 백운옥판차 구강포
장흥 백자 도림사 13C 청태전 보림백모차 탐진강
보성 보성덤벙이 한국차박물관 14C 녹차 보성강
순천 분청 한상훈 15C 토부차 순천만
광양 초벌덤벙이 차민요 16C 황차 득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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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남도 차 문화의 전략적 미래비전
1. 차의 경제적 가치와 무역론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의 차는 전매품이자 교역품목으로 국가에는 주요 세원이자
일반인에게는 부의 축적수단이었다. 문화사적 논점에서는 동북아시아 지배 질서의
상징물로서 대외적으로는 조공과 하사품이라는 형태로 대내적으로는 공납과 하사품
이라는 형태로 표상되었다.20)
우리나라에서 조선후기 실학자들에 의한 차 무역론 주장에서 차의 경제적 기능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실학자들은 차가 국책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대두되
었다. 차 무역에 관한 논의는 우리보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나, 개화기 때 중국인
들의 입에서 늘 먼저 거론되었다. 이 좋은 자산을 왜 썩히느냐는 것이 그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었다. 다산의 「각다고(榷茶考)」는 중국의 차에 관한세금과 전매제도를
역사적으로 고찰한 것으로 명나라 때 쓸모없이 버려지는 차를 오랑캐의 말과 교역하
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경세유표 에서 차를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차
나무를 심고 가꾸어 차를 만들고 또 경제적인 안목에서수익성까지 내다보았다. 즉,
차와 중국의 말을 바꾸어 나라 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교역을 주장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차를 배로 서북 개시(開市)로 운송해서, 표류선에서 팔던 차 값을
기준해서 차 한 냥에 2전의 은을 받는다면, 10만 근의 차로 2만 전의 은을 얻을 수
가 있다. 이는 돈으로 환산해서 60만 전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이를 재원으로 해
서 둔전을 설치한다면, 한두 해만에 45개의 둔전을 설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
량한 들판의 구석진 땅에 절로 피고 지는 평범한 초목에서 차를 얻어, 이것으로 국
가를 돕고 민생을 넉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차를 중국의 은이나
말 또는 비단과 교역한다면 민간에 혜택을줄 수 있고, 나라 살림이 넉넉해 질것이
라고 지적했다.21) 그리고 실학자 이덕리는 동다기 를지어실제로 엄청난 부가가치
를 지닌 차를 국가가 전매함으로써 국방에 소요되는 재원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고 주장하며 차 무역론을 제안했다.
국가적차원의재원으로 차는민생안정에크게기여하였다. 그것은가난한백성들
은 아직 농사가 시작되지않았을 때 야생 찻잎을 따서 생계에 보탬이 되어 좋고, 국
가는 이를 북방에 팔아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북방 사람들은 중국 남방


20) 김완주, 2008, “차문화가동아시아인의공예문화관및조형성에끼친영향연구”,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1) 정민, 2010,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김영사.
정서경・조영석 남도차(茶) 문화경영의역사성및현상적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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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올라온 찻값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차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으니 경
제적 효과는 상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한 차 무역론은 차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국제 무역을 통해 국부 창출의 중요한 재원으로 활용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 구
체적 시행의 세부 절차와 방법까지 제시했다. 당시 상황에서 과감하고 획기적으로
차의 가치성을 강조한 것이다. 영남과 호남에서 생산되고 있는 차를 국가가 채취하
고 거두어 국가적 재정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야생 차밭에서 차잎을 채취하여 제
품으로만들고, 이를다시외국에내다팔아엄청난 국익을 창출하는 구체적방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또한 활용도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공납에 충당하기 위해 무명이나 쌀로 차를 바
꾸기도하고차를파는차시장과 찻집도있었으며, 관청에서중국사신에게 차를 대
접하는 사신맞이 다례를 행하였으며 왕실의 제사나 상례 때에도 차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하에 전개된 차 문화의 경제성은 현대까지 이어져 오늘날 우
리나라 차 산업의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차생산은 전체
공급량의95% 정도를 기업형 제다업체가담당하고 있으며그외, 도・소매업체의유
통마진은 생산농가제품이 30~40%, 기업 제품이 20~30%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현대 차 문화 흐름 속에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국산차보다 중국의 차를 더 많
이 음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 차 문화의 전략적 활용 방안
최근 우리나라 차 소비시장이 안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차의 생산과 소
비의 관점에 있다. 이는 차 산업의 경영적 측면과 깊은 연관성이 있어 상당한 어려
움을 동반하고 있다. 매년 생산되는 차 재고량 적재와 중국차 선호 문제가 바로 그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전략적 활성화를 위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로 그 해결점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중 차 생산과 소비에서 보
면, 중국에서는 녹차가 우등차 가운데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장성도 좋아
서 녹차 취향의 소비가 갈수록 많아지고, 소비수준도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
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와 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녹차 인구보다 발효차 인구가
훨씬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차 제다와 차 생산의 측면에서 전략의 발전 방안
의 모색이 필요하다. 더불어 차소비 문제에대비한 효과적인판매방법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때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차의 경제성과 시장적 활용으로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차세로서 차를 진상하고 남은 차를 시장에 내다 팔아 화폐로서 교환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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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차의 경제적 환금성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들에 의한 차 무역론으로까지 발전하
였다. 차는 현금과 같은 기능으로 세금을 대신하였으며, 차마무역과 오랑캐들과의
차 교역으로 확산되는 근거가되고 있음을알 수 있다. 서민의 차재배는 차의대중
화와 더불어 차의 상업화 기반이 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차 무역론을 현대사회에 적용하는 기획과 전략이 절실하다.
특히 남도 차 문화를 대표하는 전통차의 제다는 구두로 전승되거나 개인의 경험
에 의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온 역사이다. 일부는 일제의 강점기를 지나고, 근래
일본의기계를 수입하면서 그들의제다법이 혼용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없다. 그
런중에도 다산의 제다법이나, 장흥의청태전, 금릉의 월산차, 강진의백운옥판차등
많은 차들의 제다법이 오늘날에 재현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요, 경영적
측면에서도 큰 의의를 갖는다.
1970년대 후반 사실이때까지우리나라 차산업계엔이렇다 할만한 회사가거의
없었다. 의재가 경영하는 춘설차, 사원의 승려들이 만드는 죽로차, 반야차, 화개 주
민이 만드는 쌍계차, 화개차 등이 있었지만 모두 가내수제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
는 것이었고 그 양도 보잘 것 없어 유통이라는 단어를 쓸 형편도 못 되었다.22) 그러
나 1970년대 후반 현대 해남을중심으로차 문화 부흥의움직임이 전국적으로전개
되면서차 문화와차 산업은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거치면
서 전승되어 온 국가제도권의 의례차의 형식은 지자체별로 실시하는 차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차산업분야지원이나 정책으로 바뀌었다. 이후 우리나라의차 산업이 활
기를 띠고 도자기 산업과 연관되어 점차 발전하고 성장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전통 민속과 문화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이 표상되고 있는 현상은 우리나
라 남도 차 문화의 특성에 잘 나타나 있다.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분청, 백
자는 세계의수많은 도자기 가운데서도뚜렷한독창성을지니며, 그 하나 하나가 지
니는 아름다움 역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남도문화의 특징과상징성을파악하고자할때, 우선지역의 전통문화를 주목하기
마련이다. 한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논하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이 살아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표출한 행위와 정신성의 유형을 읽어내야 한다.23) 남도문화의 특징을 집
중적으로 다룬 지춘상(1985)에 의하면, 그특징은 예술성, 풍류성, 서민성이며, 남도
민들이 지닌 인성은 징한 기질, 숫한 심성, 보듬는 포용성이라고 주장하였다.


22) 이기윤, 2000, 「한국의 차 문화」, 개미, 181.
23) 최협, 1994, “호남문화론의 모색”, 「한국문화인류학」제25집, 한국문화인류학회, 42.
정서경・조영석 남도차(茶) 문화경영의역사성및현상적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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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시・군별 남도 차 문화의 맥락
시・군 구분 세부 내용
나주
차 불회사 떡차, 나주차
도자기 분청사기
차인 초의선사
유적 초의선사 첫 출가지 운흥사, 불회사, 금성산 차밭, 금성명다원
무안
차 천연차, 연잎차, 초의차, 연화차, 초의신차
도자기 무안 옹기, 무안 분청사기, 무안요, 윤도예, 몽강요, 사곡요, 우후요
차인 초의선사, 석용운
유적 초의선사 생가, 다성사, 성산과 사찰이 많다
목포
차 녹차
도자기 전통 옹기, 산업도자기
차인 정만조
유적 목포 시사
영암
차 일본의 에히메현으로부터 차의 모종을 사들여 시험 재배
차인 진각국사와 월남사지
도자기 영암 도기
유적 도갑사, 한국제다 영암다원
해남
차 천연차, 4월차, 해록
차인 윤선도, 초의선사, 우록 김봉호
도자기 조선 후기 學・藝・禪・茶지성사의 근・현대로의 맥
유적 일지암. 녹우당, 대둔사, 대흥사, 녹청자 가마터, 한국제다 해남다원
강진
차 천연차, 백운옥판차, 금릉월산차
차인 원묘, 행호, 아암 혜장, 정약용, 이시헌, 황상, 이한영, 윤재주, 윤재찬
도자기 칠량옹기, 고려 청자
유적 옴천, 작천, 도암, 성전, 월남리, 월남사지, 백운동, 만덕산 백련사
장흥
차 돈차(錢茶) 청태전
차인 원표대사, 고당 고성호
도자기 백자, 월송요
유적 유치, 부산, 관산 다원, 보림사, 평화다원,
보성
차 천연차, 봉록, 징광차
차인 한창기, 한상훈
도자기 보성 덤벙이(호조 고비끼), 징광옹기, 미력옹기, 보성요, 청광도예
유적 문덕, 득량, 고동, 회천, 가을평다소, 웅점다소
순천
차 야생차 재배, 명인 신광수차
차인 석지허, 신광수
도자기 조선 분청사기, 흙과 불
유적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광양
차 천연차, 도선선차
차인 민중을 위시한 차 음용자들-차 민요에서 발견
도자기 광양분청
유적 다압, 진월, 옥곡, 쌍암, 외서, 주암 다원, 광양 차민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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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특징들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전남 해안지역의 도자기 문
화와차 문화를 대표 문화소로설정해볼 수 있다. 여기에바탕을두고 세라믹로드
를 따라 지역적으로 구분하여 차와 도자기 문화의 보존・전승 현황을정리하면 <표
3>과같다. <표3>은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 의 기록과1938년부터일인에의해
조사된 朝鮮の茶と禪 의기록을 바탕으로오늘날까지 전승되고있는 시・군별 남도
차 문화의 맥락을 필자가 정리한 것이다.
이처럼 남도의곳곳에서 전승, 발전되어 오고있는차 문화를지속하고 경제적 효
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효과적인 경영전략을 통하여 강화해 나갈 필
요가 있다.


1) 차의 생산, 가공, 유통의 효율성 도모
우리나라의 차 문화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차의 생
산과가공(제다)을일관화하여 그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있다. 특히차 생산의대부
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도에서 생산과 관리 효율화를 위하여 최신식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기업형 다원이 그 선두에 나서서 생산비를 절감하고 경영효율을 높여야 할 것
이다.
한편으로는 차의 특성상 품질과 브랜드에 따라 판매가격의 차이가 매우 크므로
경영 전략적차원에서지속적인 브랜드가치를강화할 필요가있다. 이를 위해오랜
전통과 문화를 담은 고품질의 제품을 개발, 육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
서 장흥청태전은성공적인 출발점에 서있는것으로판단된다. 이처럼국제적인 경
진대회에서 우수한 품질로 인정받은 브랜드를 활용하여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을 강
화해 나가며, 각 지역마다 고유한 특성을 활용한 제품화를 지속하여야 할 것이다.


2) 차 문화 확산을 위한 도자기 산업과의 연관성 적극 활용
전남은 남도 차 문화의 특성을 잘 갖추고 있으면서 도자기 산업과의 연계성이 매
우 높다. 또한 남도 차문화와 도자기의연관성은시대별 도자기의발달사와더불어
오늘날에는 웰빙과 힐링의 정서적 문화가치를 고취시키고 공유하는 대표적 아이콘이
다. 따라서 차문화와 도자기 연관 산업을 큰 산업단위로 벨트화 한다면, 차와 도자
기산업 그리고관광 산업이더불어발전할것으로본다. 더욱이전남은2010년부터
7년간개최되는 세계적인 자동차경주대회(F1 코리아그랑프리)와 2012년여수엑스
포, 2013년 순천정원박람회 등 국제적인 행사를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영산강 권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차 문화와 도자기 문화를
결합하여국제공항이 있는무안과 나주에서출발해 국도 2호선을따라순천여수까


정서경・조영석 남도차(茶) 문화경영의역사성및현상적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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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차와 도자기라는 연계하여 다양한 형태로 개발한다면 남도의 대표적인 문화 관
광지로 부상할 수있을 것이다. 남도차 문화와 도자기 문화 탐방코스는 강진의 청
자와 목포의생활자기, 남도의 곳곳에분포되어있는 차문화를 연결하는 우수한 관
광상품으로 그 산업화 전략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3) 문화 콘텐츠를 통한 관광자원화 활용
고대 사회에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남도는 차 문화의 정점에서 차를 산업
화하고 경제적가치를 창출하였으며, 문화적 가치로는 남도문화콘텐츠의 대표성을
띠고 있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차 문화의 발전사이기도 하며, 도자기 문화가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 남도의 문화적 특성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즉, 문화를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적극 개발하고 활용하자는 것이다.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향토적 문화자원이 남도의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으므로 이를 어떻게 경제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부의 창출로 연결시키느냐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과제다. “구슬
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이들 우수한 지역자원을 관광 자원화 하고,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우리의 책임이자 역할이다.


4) 전략적 자원 활용 방안 강화
최근 전남의 자원적 특성에 부합되는 농촌체험, 생태학습 등 자연체험 위주의 가
족 단위 여행이 인기를 모으고 있어 향후 전남을 찾는 관광객 수가 크게 증대될 것
으로 기대되고 있다.24) 이러한 현상은 문화 교류를 통한 전남 고유의 비교우위 자원
을개발하고문화관광레저를한꺼번에 향유할수있는 지리・공간적 개발을선도하
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전남 해안지역의 차 문화와 세라믹 로드의 문화관광 산업화는 현재 전남
이 사회인구학적 구조, 지리공간적 구조, 경제생산 특성구조 및 복지적 특성이라는
4가지를기준으로유형화하고있는지역개발과발맞춰개별적인농촌사회의구조적
유형에 부합되는 맞춤형 일자리창출의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개별 프로그램 개발에 머무르지 않고
전남이라는 큰 구획 단위의 통합 개발이 우선되어야 하고 전략적 자원활용 방안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24) 전남발전연구원, 2011, 「2015 전남 비전과 전략」, 전남발전연구원,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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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결 론
본연구는경영사적측면에서 남도차(茶) 문화의역사성을분석하고발전적 경영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경영적 성과를 견인할 수 있
는 방안을 모색하고자하였다. 남도의차 문화는지리적조건을 갖춘 차의 재배에서
인적 네트워크로 형성된 차의 향유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고루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을 살린 남도 차문화의 활용 가능성은 매우 풍부하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보면 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세금을 부과할 정도로 중요한 경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차의 경제적 가치와 유통 과정에서 보여주는 차의 경제성
과 시장적 활용은 매우 크다. 이것은 오늘날 차 문화를 확산시키고 경영 전략적 활
용이 필요한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남도 차 문화의 경제적 활성화를 위해 본 연구에서 도출한 경
영 전략적 시사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도 차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차의 생산, 가공, 유통의 효율성을 도모하
여 경제적 활용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차 문화 확산을 위하여 도자기
산업과의연관성을적극활용하여야한다. 특히우리나라에서가장 집적화된 영산강
권역의 도자기 산업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매우유리한 방안이 된다. 셋째, 차 문화
를 지역의 고유한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여 관광자원으로 적극 개발하고, 수익창출
및 지역 경쟁력 강화로 연결하여야 한다. 넷째,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고 일자리 창
출을 늘리는 전략적 자원 활용 방안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하여 남도의 차 문화가 지역발전과 전체의 경제적 효과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만 연구가 역사적, 문화적 측면을 바탕으로 하여
경영 전략을 도출한 것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본 논문은 다른 학술지 또는 간행물에 게재되었거나 게재 신청되지 않았음을 확인함.
정서경・조영석 남도차(茶) 문화경영의역사성및현상적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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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경・조영석 남도차(茶) 문화경영의역사성및현상적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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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Research and Managerial Characteristics of the
Namdo Tea-culture
Seo-Kyoung Chung*・Yeong-Suk Cho**
25)
Abstract
This paper focused on historical perspective of business management Tea-culture of
Jeonnam (the Namdo Tea-culture), and developmental analysis of management strategies
are presented. Also we suggested to find ways that the Korean tea culture and related
industries to lead the business performances. We realized that there are many possibilities
to use the characteristics of the Namdo Tea-culture.
The strategic implications for the management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it should be taken economic advantages of Korean tea, while the process of
production, manufacturing, distribution of Tea, and promote the efficiency of tea industry.
Second, in order to spread and promote the culture of tea, we shall utilize of the
integration of Youngsan-river districts of the ceramic industry. It will be very favorable.
Third, the unique contents of the Namdo Tea-culture must be connected to the regional
competitiveness by utilizing actively developing tourism resources.
Fourth, it should be strengthened to increase regional income and better job utilizing
local resources.
<Key Words> Namdo Tea-culture, Pottery, Management of Tea-culture, Cultural Contents,
Business Strategy
* Ph. D, Research Professor, International Tea Culture & Research Institute of Mokpo
National University.
** Professor, College of Business Administration, Mokpo National University

 
                                     남도 차(茶) 문화 경영의 역사성 및 현상적 재발견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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