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무기관련 폄글 하나

2018. 12. 3. 01:15잡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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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무기관련 펀글하나

오함마 2006-09-29 11: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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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람들은 적을 공격할 때 주로 기병을 동원했다. 그래서 말 타고 달리면서 사용하기에 편한 자그마한 활(굽은활)을 많이 사용하고, 큰 활(곧은활)은 성곽을 지키거나 멀리서 적군을 추격할 때 주로 썼다.< 남사>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에서 중국 남조인 송나라에 숙신족의 호시(싸리나무화살)와 석노를 보냈다" 는 기사가 있는데, 숙신족은 우수리강 유역에 살고 있던 읍루족의 조상이다. 그 읍루 사람은 길이가 넉 자 되는 활을 쏘는데 그 위력이 쇠뇌같고, 화살은 싸리나무를 쓰는데 길이는 한자 여덟치나 되며, 활촉은 푸른 돌로 만드는데 독물 묻은 이 활촉을 맞은 사람은 살아날 수가 없다(후한서 읍루전)고 한다. 고구려에서 이런 활과 화살을 송나라에 보내 준 만큼 고구려 사람들도 이를 썼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칼(검)은 고구려에서 집집마다 항상 갖추고 있는 비상무기의 하나다. 당나라 사람인 장초금(張楚金)이 지은 <한원(翰苑)> 고려조를 보면, 고구려 사람들이 집집마다 무기와 말을 갖추고 있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고구려 남자들은 허리에 은띠를 차는데 왼쪽에는 숫돌을, 오른쪽에는 칼 다섯 자루를 달고 다닌다고도 했다. 연개소문도 역시 칼 다섯 자루를 차고 다녔다는 기사가 <삼국사기> 연개소문전에 보인다. 칼은 대부분 1미터 남짓 되며 간혹 30센티미터 정도의 짧은 것도 있는데, 칼몸이 휘어져 있는 것은 주로 자르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기병 5천 명이 침략자인 위나라군 8천 명의 목을 잘랐다는 기사로 보아 칼을 쓸 경우 적을 찌르는 데 사용하지 않고 말을 타고 전진하면서 적의 목을 자르는 데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칼자루 끝에는 둥근 고리가 달려 있는 점이 특이하다. 고리에는 인동무늬 장식이 들어 있는 것도 있는데, 이 고리에 끈을 매달아 칼을 달고 다녔을 것이다. 창도 다양하게 있었다. <후한서> 예전에 예족 사람들은 보병전에 능하며 30자(9미터)나 되는 긴 창을 여러 사람이 함께 들고 다닌다고 했는데, 예족이 고구려에 복속된 만큼 고구려 사람도 이러한 긴 창을 분명히 사용했을 것이다. 삭(鎙) 이라는 창도 있어 그 길이는 18자(5.4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기병전에 능한 기병이 쓰는 창으로서 긴 창이 발달했을것이다. (제 의견으로는 돌진해오는 기병을 향에 비스듬히 세워서 공격하는 방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긴 창 외에 '연(鋋)'이라는 쇠자루가 달린 작은 창도 실전에 사용했다.< 주서>에 적혀 있는 '극(戟)'이란 고조선 시대부터 많이 쓰인 갈구리창과 같은 것으로 보병용은 짧은 뾰족창에 갈구리를 덧붙였다. (기병을 말 위에서 끌어내리기 위함이 아닌가 합니다.) 고구려에서 가공할 만한 공격무기는 포차(抛車)다.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군사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할 때 포차에서 날린 돌에 성가퀴와 성안의 집이 맞아 무너졌다는 기사가 있다. 돌을 날려보내는 노포(弩砲)를 장치한 포차는 자유자재로 이동하면서 성곽을 파괴하는 무기임을 알 수 있다.< 성호사설유선>에 보면, 나무로 만든 노(쇠뇌)는 화살을 1천보나 날려보내는 무기로서 고구려를 침략한 당 태종이 이 노에서 날려보낸 화살에 눈을 맞았으나 사관들이 이 사실을 숨겼다고 감춰진 사실을 들춰 내고 있다. 고구려 이전 시대 무사들은 주로 패쪽 갑옷을 즐겨입었다. 특히 말탄무사는 패쪽으로 만든 갑옷, 바지, 저고리를 입었다. 그러나 고구려에 들어오면 갑옷이 병기다. 쇠조각을 꿰메어 만든 철갑과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 있었는데, 기병들은 높은 목보호 갑옷에다 소매가 손목까지 닿는 갑옷 저고리와 발등까지 덮은 긴 갑옷바지를 입었다. 보병은 목보호구가 없으며 소매는 있다 해도 팔꿈치까지만 오는 갑옷 저고리를 입는다.< 삼국사기>에는 갑옷이 금갑, 철갑, 분개, 명광개, 금휴개 등 여러가지로 기록되어있다. 이는 갑옷을 만드는 철 재료의 질이 갑옷을 입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달랐음을 의미한다. 무사들은 갑옷에다 투구를 쓴다. 갑옷처럼 쇠조각을 꿰붙여서 만들며 윗부분은 둥글게 했으며, 차양이 달린 것도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말에도 갑옷을 입혔다. 이 말갑옷은 쇠패쪽을 이어 만들거나 가죽으로 네 발을 제외한 몸 전체를 가리게 되어있다. 역사에서 이처럼 말에게 까지 철갑옷을 입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기병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병이 마음대로 활동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말갑옷과 등자(말을 탄 사람이 두발로 디디는 걸이) 그리고 말안장이 필수다. 철갑옷으로 중무장한 무사가 말을 달리거나 말 위에서 적군과 싸울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이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해주는 마구가 등자다. 특히 쇠로 만든 등자를 높이 쳐주었다. 또한 쇠등자를 만들려면 우수한 제철 기술을 확보 해야만 한다. 당시 고구려는 제철 기술 수준이 높았다. 이들이 처음 나라를 세운 압록강과 두만강유역은 철기문화가 꽃을 피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000년 전반기로 추정되는 무산 지방에서 쇠로만든 낫, 도끼, 자귀, 반달 칼 등 다양한 도구를 발견한 것도 이 시기에 철기가 널리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미천왕릉을 포함하여 4세기에 만들어진 고구려 무덤 벽화를 보면 말등자가 그려져있다. 또한 압록강의 지류인 독로강 유역의 이른 시기 고구려시대 무덤에서도 쇠등자가 여러 점 나왔다. 이 쇠등자는 주변 국가의 그것에 비해 가장 오래되었다는 평을 받고있다. 출처 : 다음신지식에서 펌 역쉬 고구려의 남자들은 5자루는 기본이였는 듯.. 고구려도 장창병이 잘 발달했나 보오~~ 궁병말곤 야덜이 기병잡는데 최적이라던데 신라와 당나라 짱깨덜의 매소성 전투에서도 당나라의 용병 유목 경기병덜 상대로 요런 장창병덜이 효과를 봤다고 들은적도 있은지라..ㄷㄷㄷㄷ 글고보면 쥐뿔도 모르는 쇟이 대조영 사진덜 첨 공개때 기존에 알던 고구려 개마무사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철갑들이 아니라 관심을 좀 덜가졌던게 참 쪽팔리구료..ㅜㅜㄷㄷㄷㄷ 이래서 역사란 참 재밌으면서도 어려운거 같심다..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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