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약선의 발전역사

2018. 12. 7. 13:56차 이야기



우리나라 약선의 발전역사

후니! 2018.11.28 23:27


  

   우리나라 약선의 역사는 중국의 맹아시기와 함께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문헌기록의 부재로 인해 그 역사적 가치를 가늠할 저서와 활동은 대개 조선시대에 집중해 있다.


1. 상고시대

    우리나라에서 약선식료학의 시초라 볼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에서 환웅천왕이 곰과 호랑이를 인신으로 화하게 하기 위해 사용한 영애일주와 산이십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군시대부터 이미 사용되어 오던 쑥과 마늘은 (신농본초경)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후한으로 부터 위진시대에 이르러 차차 이용되어 왔으며 도홍경(명의별록)에 처음 기재되어 있다. 또한 음식에는 작,조,두를 사용하였고, 제천행사 때에는 작을 사용하여 음주하고 유고의 예법에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삼국시대

   삼국시대는 대략 중국의 한나라에서 위진남북조를 거쳐 수,당나라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있다. 이댸는 중국의 많은 의서들이 수입되고 인도의 불교가 중국본토를 지나 한반도로 유입되었으며 이들이 다시 일본으로 전해진 시기로 의학이나 약선에 관한 사료들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및 중국이나 일본의 기록에 의존해서 살펴볼 수 있다.당시의 고구려 및 백제에서 산출된 많은 약재의 왕래로써 본초에 관한 지식의 교류가 상당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도홍경(본초경집주) (신수본초) 등에서 품질의 우수성이나 우리나라가 유일한 산지로 지목된 약재들에는 인삼과 세신,오미자,곤포,무이,관동화 등이 있으며 이들은 지금까지도 약선의 재료로 빈용되는 것들이다.


3.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는 당의 학문과 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많은 유학생을 당으로 파견하였고 의학에 있어서도 다의 교육체계와 제도를 많이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약선이 중국에서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를 잡아 대성하게 되는 때가 바로 이때로 당시 간행되었던 (천금방),(외대비요),(식료본초),(식의심감)등의 내용도 신라에 전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통일신라 때 저장식품으로서 주,유,밀장,시,포,갑을 기록하고 있고, 대렴 당에서 차의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후 음차풍습이 성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4.고려시대

   고려는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계승한 국가로서, 인도의학 또는 아라비아의학 등의 지식을 받아들였으며, 이론서적보다는 방서와 같은 임상의학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태평성혜방)도 두 차례에 걸쳐 수입되었다. 음식에 있어서는 연등회,팔관회와 같은 국가지정 연회와 송과 기타국가와 빈번한 사신왕래 등으로 인해 연회음식이 발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5.조선시대

   조선시대는 명,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자주적인 민족문화를 고취하고 정비하려는 노력에 의해 의학에 있어서도 (세종실록지리지),(향악집성방),(의방유취),(동의보감),(동의수세보원) 등의 괄목할 만한 의서들이 간행되어 약선식료학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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