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하남 고골.춘궁리 백제 초기 도읍지 추정 外

2018. 12. 29. 18:20우리 역사 바로알기



 

백제 초기 왕도를 찾아서. (하남 춘궁리 고골)|역사산책
운영자 | 등급변경 | 조회 38 |추천 0 |2016.06.07. 17:18 http://cafe.daum.net/koh1700/ShYa/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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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백제 건국>

 

BC18   고구려 고주몽왕 아들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 한성백제를 세운후   21대 개로왕까지 473년간 도읍하였다.

AD 475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풍납/몽촌토성 전투에서 패전 개로왕이 붙잡혀 처형당함으로  아들 문주왕은 남하하여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 우리가 주로 알고있는 웅진 부여 시대는 176년간이다.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춘궁리 고골일대는 남한산성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데 전부터 등산중 궁안/고골등의 지명과 시골풍경이 고풍스러워 관심이 많았다,    

이곳은 왼편에 이성산성,금암산,오른편엔 객산,검단산이 있어. 좌청용 우백호지형이며 뒷편으로는 남한산성 북문이 있어 외적의 침입을 막기쉬운 천혜의 요지이다.


온조왕과 모친 소서노 일행은 맨먼저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국을 세운 하남 위례성으로 본다.

풍납토성,몽촌토성은 나라가 커지면서 백성들이 일상 셍활하던 도성이며,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외곽 군사기지 였을것이다.

이 일대에는 현재 많은 고대유적들이 방치되어 있어 안타깝다.

 

하남 위례성 지역

한성 백제 광역도

 

 백제 건국 초기 온조왕과 모친 소서노의 왕궁터로 추정함,



궁터 외곽 토루 (흙 울타리 )

 

 

 

 

 

 

궁안 능너머 고분

 

궁안 능너머 고분 (가장 가까운 고분이므로 온조왕묘 ?)

 

지금은 향교터.

 

광주 향교
 

桐 寺 址

3층/5층 석탑


원형 목탑 터

 


마애 석불

善 法 寺

 

 

 

 

 

선법사 마애불/객산폭포

 

 

 


객산폭포와 온조왕 어용샘

 

 

 

 


하사창동 만평규모의 건물터 


하사창리 연자방아 (군량미 저장소 유적)

 

 

이성산성

 

풍납토성 (춘궁리 고골과  8 km only)

방이동고분군

석촌동고분 (백제 최강시의 근초고왕묘로 추정)

 


























출처 : 역사산책k
글쓴이 : 고 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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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백제 유적에 대해서 - 고고학자들이 유물발굴 사실을 숨겨서야.|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김용만 | 조회 500 |추천 0 | 2003.10.03. 11:00
  백제 초기 수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제는 풍납토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몽촌토성을 줄기차게 외치는 박순발 선생 등이 있으나,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또 하나의 관건은 바로 하남시다. 백제 초기 수도가 하남시 춘궁동 일대라는 주장은 아주 오래된 주장이다.
필자 역시 풍납토성을 백제의 초기 수도로 보려는 입장이 강하기는 하지만, 남들처럼 100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60정도로 보고, 나머지 40은 하남지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하남지역에 있는 유적 가운데 중요한 것은 역시 춘궁동 왕궁터와 이성산성인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입수한 정보들에 의하면, 고고학계의 동향이 영 이상하다. 최몽룡 서울대 교수가 이성산성 발굴 현장에 가서 그곳을 발굴한 **대 ***교수팀에게 화를 낸 것도 왜 유물을 숨기느냐는 것이었고, 현장에 간 ###가 &&&에게 왜 저기 빤히 보이는 백제 유물은 내놓지 않고 그냥 방치하느냐, 그것이 없어져서 이곳이 너희들 주장대로 신라성이라고 주장되기를 바라느냐며 따진 이야기 등. 무엇인가 하남지역의 유적 발굴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춘궁동에 아무런 백제초기 유물이 없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상식으로 되어 있어서, 하남지역은 백제초기 도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발굴을 해보았는데, 없더라. 이것이다. 그런데 발굴현장에 간 사람들은 오히려 발굴팀이 층위를 교란시키고, 깨끗하게 치워버려서 다음 발굴팀이 발굴을 제대로 못하게 했으며, 하위 층위를 발굴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또 아래 신문기사에 나오듯이 하남지역에 나온 4세기 백제 토광묘의 발견조차 쉬쉬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넘어가는 것은 대체 무슨 속셈인가.
특정 학파의 학설을 위해, 아니면 개발이익을 노리는 사람들의 목적에 마추기 위해서.

고고학이 과학이고, 학문이기 위해서는 발굴하는 사람 자체가 우선 공정하고 솔찍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조차 어떤 목적을 갖고 유물을 감추거나 유물의 중요성을 폄하한다면, 대체 누가 고고학보고서를 사실로 믿겠는가.

하물며 우리가 이럴진데, 중국의 발굴보고서는 대체 어찌 믿으란 말인가.
저 홍산문명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문화의 원류일 것으로 기대를 하지만, 현장 발굴을 한 중국인들은 이것을 자꾸 중원문화와 연계를 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연계된 유물만을 대표유물로 소개하고, 중원과 관계없는 유물은 감추거나, 발표도 하지 않거나, 비중을 축소해서 말한다.

이러니 제대로 역사연구가 되겠는가. 우리가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하기에 앞서서 우리 학계부터 비판받지 않을 만큼 공정한 학자의 정신으로 돌아가 있는 그래도의 역사라는 랑케의 말에 우선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랑케를 그렇게 신봉하던 선생들은 다 어디로 가고, 자기 학설을 위해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유물을 감추는 이상한 인간들만 남았느냐는 말이다. 참 답답해서 말해본다.


*** 다음은 문화일보 기사다.
하남 유적발굴 왜 ‘쉬쉬’ 하나
[속보, 생활/문화] 2003년 07월 04일 (금) 10:54

“서울 인근에서 4세기 백제 토광묘가 발견된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언론에 알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지난달 중순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 유적 발굴지도위원회 개최 사 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조차 문화 재청 홈페이지에 띄우지 않은 데 대한 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 담 당 학예연구사의 답변이다.
현장설명회는 발굴조사단인 기전문화재연구소(기전) 관계자와 발 굴지도위원, 발굴조사 의뢰기관인 하남시 관계자등의 자체설명회 로 마무리됐다고 한다. 과연 덕풍동 유적 발굴지에서 4세기 백제 토광묘가 발굴된 사실이 “별로 중요치 않은 일”인가. 뒤에 나 온 발굴조사보고서는 도리어 이 유적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 명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하남 미사리유적 발굴이후 주변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확인돼 하남시 일대 선사시대 문화상을 살 필 발판을 마련했다’‘하남지역 일대에 백제시대 분묘유적이 존 재할 근거가 제시됐다’ 등의 이 일대 유적의 중요성을 적시하는 문장이 도처에 있다.

‘언론에 알릴 가치조차 없는 별볼일 없는 발굴’이라는 문화재 청 직원의 답변은 도리어 문화재청 직원의 무지를 증명하는 것으 로 다가온다. 아니면 별볼일 없는 발굴로 몰아가며 정보공개마저 차단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남시 일대는 한성백제 도성 근거지로 고고학계의 첨예한 쟁점 이 돼온 곳. 덕풍동 유적지에는 최초의 백제 토광묘 외에도 신라 석곽묘 등이 발견돼 ‘통일신라 9주5소경 중 가장 큰 주’였다 는 신주(한주)가 하남일 수 있다는 학계 일부의 학설을 뒷받침할 고고학적 근거가 나오는 등 성과가 만만찮았다. 교산동유적지 등 하남시 일대 유적을 수차례 발굴해온 기전측은 ‘하남시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전 유물은 나오지 않는다’고 공언해 논란을 빚 기도 했다.

비공개리에 열린 이번 덕풍동 유적발굴지도위원회 과정을 보면 어쨌든 덕풍동 일대 백제 유적현황이 공개되지 않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비밀리에 진행된 유적발굴지도위원회는 도 리어 많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 의혹 중에는 하남시 일대 개발욕구와의 타협의 산물이란 지적도 있음을 문화재청 관계자 들은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런 의혹을 잠재우려면 모든 것을 공개하 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마침 문화 외에도 신라 석곽묘 등이 발견돼 ‘통일신라 9주5소경 중 가장 큰 주’였다 는 신주(한주)가 하남일 수 있다는 학계 일부의 학설을 뒷받침할 고고학적 근거가 나오는 등 성과가 만만찮았다. 교산동유적지 등 하남시 일대 유적을 수차례 발굴해온 기전측은 ‘하남시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전 유물은 나오지 않는다’고 공언해 논란을 빚 기도 했다.

비공개리에 열린 이번 덕풍동 유적발굴지도위원회 과정을 보면 어쨌든 덕풍동 일대 백제 유적현황이 공개되지 않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비밀리에 진행된 유적발굴지도위원회는 도 리어 많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 의혹 중에는 하남시 일대 개발욕구와의 타협의 산물이란 지적도 있음을 문화재청 관계자 들은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런 의혹을 잠재우려면 모든 것을 공개하 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마침 문화연대측은 최근 문화재청에 ‘발굴지도위원회 개최 일주일전 사전예고제’를 요구하고 있다.

정충신기자
                                         하남백제 유적에 대해서 - 고고학자들이 유물발굴...
200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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