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休’의 의미와 가치
조선 초기의 선비 강희맹이 쓴 <만휴정기萬休亭記>≪속동문선續東文選≫의 한 대목이다. 녹봉을 탐하여 불안한 지위에 올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아첨하며 사는 것보다, 인간의 본성을 지키며 쉬는 것이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일임을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쉼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겨 볼만한 것이다.
쉼을 나타내는 몇 가지 말이 있다.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휴식休息’이다. 여기서 ’휴休‘는 사람이 큰 나무에 의지해 있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로, 일을 그만두고 나무 그늘 아래서 쉬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식息’은 들숨과 날숨 사이의 공백 상태로, 한 숨 놓았다고 하는 말에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휴게休憩라는 말도 있는데, ‘게憩’는 ‘설舌’과 ‘식息’의 합자로, 혀로써 음식을 맛보기도하고, 남과 이야기도 하면서 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아호나 누정 이름을 ‘휴휴休休’, ‘삼휴三休’, ‘사휴四休’, ‘칠휴七休’, ‘만휴萬休’, ‘만휴晩休’ 등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만큼 ‘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휴’는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쉬거나 움직임을 멈춘다는 뜻 외에도 ‘담담하다’, ‘한가롭다’, ‘비어있다’는 등의 의미도 가지고 있는데, 이 말들은 모두 지止 또는 정靜의 개념에 귀결되는 공통점을 지닌다.
정靜은 음陰이고 동動은 양陽이다. 음과 양이 서로 대립하면서 서로 의지하는 원리처럼 정과 동 역시 서로 상대하면서도 서로를 근거로 하고 있다. 쉬는 것은 정이고 일하는 것이 동이므로, 쉼이 없으면 일도 없고 일이 없으면 쉼도 따라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쉬는 것은 일하는 것과 더불어 다 같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선비들의 ‘휴休’
예전의 선비들은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서 스스로 쉬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당나라 시인 사공도는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중조산 계곡에 휴휴정休休亭을 짓고 살면서 “재주를 헤아려 보니 쉬는 게 마땅하고, 분수를 헤아려 보니 쉬는 게 마땅하고, 귀 먹고 노망했으니 쉬는 게 마땅하다. (蓋量其才一宜休 )”(≪구당서舊唐書≫ 문원열전文苑列傳 사공도司空圖)는 내용의 <휴휴정기>를 남겼다.
또, 스스로를 사휴거사四休居士라 칭했던 송나라 사람 손방은 자호의 뜻을 묻는 지인에게 답하기를, “거친 차와 싱거운 밥에 배부르면 곧 쉬고, 해진 옷 기워 입어 추위 가려서 따스하면 곧 쉬고, 평평하고 온온하게 지낼 만하면 곧 쉬고, 탐하지 않고 시기 하지 않고 늙으면 곧 쉬는 것이다.(茶淡飯飽卽休 補破遮寒暖卽休 三平二滿過卽休 不貪不妬老卽休)”(≪산록집山谷集≫ 사휴거사시병서四休居士詩幷序)라고 답했다. 삶의 치열한 욕망을 잠재우고 한적함 속에서 안분지족하는 것이 ‘휴’의 진면목이라 여긴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선비들은 인생의 거취문제에 있어서 ‘출처의 도리(출처지의出處之義)’를 가장 중시했다. ‘출’은 출사出仕를 의미하고, ‘처’는 사직하고 물러나 은거하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숨거나 나타남에 있어서 그것이 의리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또한 도리로 보아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먼저 헤아렸다. 대의에 맞으면 벼슬길로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 쉬었다. 그런데 낙향하여 쉬는 일도 세상에 나아가 벼슬하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하는 것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명분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대부大夫가 되어 관직에 몸담고 있을 때도 ‘휴’의 시간을 가졌다. 벼슬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세속과 타협하고, 끝없는 변화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인성人性이 황폐해질 우려가 생긴다. 이 때 일의 멍에를 잠시 벗어버리고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맑은 풍월 기운을 쐬며 답답한 회포를 풀기도 했던 것이다. 그들이 즐긴 ‘휴’의 시간은 인위적 허식을 벗고 인간의 근원적 행복을 찾는 창조적 쉼의 시간이었다.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이르기를, “활줄을 당겨 놓기만 하고 풀어 두지 않는 것은 문왕과 무왕의 도道로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고 했다. 긴장과 이완으로 일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교훈이다. 옛 학인들은 학문에 대한 생각을 항상 간직하고 늘 익힘과 동시에 한가로이 노닐며 쉬기도 했다. 대개 서원처럼 공부하면서 수신하는 곳에는 휴식하고 소요하는 공간이 있기 마련인데, 경남 거창 구연서원의 관수루를 비롯해서 소수서원 등 각 서원의 누각이 바로 그런 목적에서 세워진 ‘휴休’의 공간이다. 선비들은 나아가고 쉬는 도리를 지키기 위해 관직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했고, 자신의 능력과 처지를 미리 간파하고 스스로 사직하는 길을 택하기도 했으며, 또한 현직에 있을 때에도 인간 본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그들이 항상 오르고 싶어 했고, 오래 머물고자 했으며, ‘휴’의 여유를 즐기려 했던 곳이 바로 강호 산수 간의 누각과 정자였다.
누정에서의 생활
한낮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주변이 물속처럼 고요할 때 풍류객들은 정자 위에서 오수를 즐겼고, 달 밝은 밤이면 난간에 의지하여 달과 교감하는 풍류에 젖기도 했다. 때로는 지인들과 함께 청담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고, 취흥이 시흥詩興으로 이어지면 유현한 문학의 세계로 빠져 들기도 했다. 신선이 자고 있는 누각이라는 뜻의 수선루睡仙樓(전북 진안)는 낮잠 자는 풍류를 떠올리게 하는 누각 중 하나이다. 선비들은 누각에서 낮잠 자기를 즐겼는데, 그들에게 낮잠은 밤잠과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밤잠은 인간의 습성화된 생리 현상 그 이상의 의미가 없지만 낮잠은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처럼 세상의 영욕을 잊고 자유롭고 거리낌 없는 세계로 잠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낮잠을 잔다고 하지 않고 즐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달뜨는 밤에 맑은 바람 쐬며 명월을 감상하는 데는 누정만한 곳이 없다. 경남 함양의 농월정弄月亭도 달과 함께 풍류를 즐기기 좋은 장소 중 하나이다. 농월은 달을 실없이 놀리거나 멋대로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달과 능숙하게 교감하면서 그와 일체되는 낙을 즐기는 경지를 말한다. 달 밝은 밤이면 풍류객들은 누정에서 맑은 바람과 찬 이슬에 취해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한편, 청담淸談은 담론을 통해 자연의 철리를 드러내고, 노장老莊의 고고한 사상을 토론하면서 도가의 도를 체득하는 한 방법으로, 선비들 사이에 널리 애호됐던 고상한 대화 취미였다. 선비들은 삼삼오오 누정에 모여앉아 벼농사를 묻기도 하고, 날씨를 헤아리고 철서를 따지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청담은 굳이 어떤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을 주고받는 그 자체를 즐기는 데 의의가 있는데, 이것은 마치 목적도 지향도 없이 산길을 소요하며 즐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누정은 세속을 떠나 혼자 독서하기 좋은 곳이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송시열은 남의 비어있는 정자를 빌려 몇 달 동안 조용히 앉아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사람이 많은 곳에 있자니 날마다 듣는 것이라곤 다만 시비와 승침(昇浸:벼슬의 오르내림)에 관한 일들뿐이니 이렇게 몇 년을 덧없이 보낸다면 비록 책을 보고자 하나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송자대전宋子大全≫ 그에게 정자는 숨어 살며 독서하기 좋은 은둔처였던 것이다. 선비들은 누정에서 풍류의 동반자로 술을 즐겨해 마지않았다. 음주는 난잡과 주망을 일으킬 우려도 있으나 인생의 덧없음과 자연의 섭리를 관조하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선약이 될 수도 있고, 풍류적 서정을 자극하는 매체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와 문장을 필수적 교양으로 여겼던 그들에게 있어 음주는 도잠, 두보, 이백 등 역대 시성들의 행적과 비견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시흥詩興이 술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누정은 때로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집단 풍류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지방 유지들은 누각에서 계회會나 연회를 베풀면서 나름의 이유와 명분을 내세웠다. 연회를 통해 마음을 유쾌하게 하면 화기和氣에 의해 정신이 맑아지고, 사리분별이 공평해져서 일을 처리하는 데에 마땅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탁淸濁의 구별을 엄정히 하고, 정도正道를 잃지 않게 되므로 결국 그 혜택이 여러 사람들에게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누정은 대자연과 함께 하는 고상한 모임의 장소였으며, 독서 취미와 유거幽居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은거지였고, 문학의 산실이자 개인과 집단 풍류의 주무대였다. 한 마디로 누정은 선비들의 정신적 휴식을 위한 이상적인 공간으로서, 쉼의 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쉼의 문화
동양 전통의‘휴休’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함께 하는 쉼의 문화라는 것을 한자‘휴休’가 암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날숨과 들숨 사이에 빈 ‘息’이 있어 사람의 기운과 숨이 끊이지 않고 유지된다. 결국 참다운 휴식은 자연과 벗하면서 한가롭고 유연한 마음으로 정신을 맑게 하고 영욕·애락 등 인간 본성을 해치는 것들을 비울 때 얻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쉬는 데에는 마땅한 때와 도리가 있다. 붕새는 남쪽 바다로 옮겨갈 적에 물결을 치는 것이 삼천리이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올라가 여섯 달을 가서야 쉰다고 한다.(≪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 아무 때나 쉬는 것은 나태한 것이고, 꼭 쉬어야 할 때 쉬지 않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가장 어리석은 것은 쉰다고 하면서 몸을 괴롭히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일이다.
글·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출처 : 월간문화재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