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우리 조상들의 독특한 공간감각을

2019. 1. 3. 15:12집짓기

 

 

 

 

 

우리 조상은 집을 지을 때나 자연을 상대할 때, 아주 독특한 공간감각을 가지고 접근했습니다. 그 가장 큰 특징으로는 인위적인 손길은 가능한 한 배제하고 적극적으로 자연과 소통하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친자연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구조적으로는 대칭적인 것보다 비대칭적인 것을 좋아했습니다. 호방하고 자유분방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향은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보면 잘 드러납니다.

 

 

우리 조상들의 독특한 공간감각을 정리하면, 호방함과 자유분방함

예를 들어볼까요? 그런 예가 하도 많아 엄선해서 보아야 하겠습니다. 한옥의 두드러진 점 중의 하나는 창호가 많다는 것입니다. 창호란 창(문)과 문을 말합니다. 창호가 많다는 것은 한옥이 밖으로 개방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창호와 관련해 한옥에는 다른 나라의 건축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장치가 발견됩니다. 그것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창호마다 있는 걸쇠입니다. 이 사진은 제가 부석사에 갔을 때 찍은 무량수전의 걸쇠입니다.

 

한옥은 창이든 문이든 떼어서 이 걸쇠에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집안의 공간은 더는 인위적인 공간이 아닌 게 됩니다. 그냥 자연에 기둥만 세워 있는 것이지요(물론 지붕은 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있어도 자연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인위적인 건물을 순식간에 자연으로 변하게 하는 그런 장치는 다른 나라의 건축에서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장치를 하는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집안에서 큰 행사를 할 때 방 사이에 있는 창호를 다 걷어 올리면 아주 큰 공간이 나옵니다. 잔치 같은 것을 할 때 이런 공간이 필요했겠지요.


부석사 무량수전의 걸쇠. 창과 문을 떼어 걸쇠에 올려 놓으면, 방안은 더 이상 인위적인 공간이 아니게 된다.

 

 

한국 건축에서는 기둥만 가지고 집을 짓기도 한다

병산서원의 만대루, 기둥만 가지고 단순하게 하는 한국 특유의 건축물


창호를 들어 올려서 자연과 교감하려 했던 과거의 한국인들은 아예 기둥만 가지고 집을 짓기도 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 같은 누(樓)가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병산서원의 만대루라는 건물인데 이렇게 기둥만 가지고 단순하게 하는 건물은 한국 건축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이 서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난이 필요할 정도로 할 말이 많아서 여기서는 이 누와 관계해서만 보겠습니다.

 

서원 안은 인위적인 공간이고 밖은 자연입니다. 여기서 이 누는 밖에 있는 자연을 가능한 한 손상하지 않고 건물 안쪽인 인위적인 공간 안으로 들여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가공되지 않은 채로 인위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오면 너무 ‘허방’하고 거칠 수 있습니다. 반면 인위적인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자연을 넣으면 인간이 받아들이기에 편할 뿐만 아니라 훨씬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밖에 있는 산(병산)과 강(낙동강)을 그냥 감상하기보다 누의 기둥 사이의 틀을 통해 보면 훨씬 아름다운 경치가 됩니다.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면 자연의 경광은 절제되어서 아주 단아해집니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건축은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갇힌 느낌을 줘

이에 비해 중국이나 일본의 건축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답답하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들의 전통 민가는 사합원(四合院)이라 불리는 것으로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사방이 막혀 있습니다. 사방이 건물로 되어 있어서 사합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벽도 높습니다. 그래서 밖의 세계와는 단절됩니다. 그에 비해 한옥의 벽은 어떻습니까? 한옥은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만 담을 쌓지 중국의 집처럼 안이 전혀 보이지 않게끔 높이 쌓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한옥은 소통을 강조한 인본주의적인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건축할 때 인간이 자연을 이끌고 나가면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자연에 맞추어 짓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건물의 구조가 중국과 많이 다릅니다. 중국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 건축의 구조는 대체로 똑같습니다. 정문에서부터 맨 끝에 있는 건물까지 일직선상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좌우는 엄격한 대칭을 이룹니다.


사방을 건물로 둘러 싸서, 답답한 느낌을 주는 중국의 전통 민가 사합원

 

이에 대한 예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북경에 있는 자금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금성은 정문부터 맨 뒤에 있는 건물까지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고 좌우가 대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궁궐 가운데 중국처럼 좌우 대칭으로 지은 건축물은 경복궁밖에 없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제1궁)이기 때문에 중국의 법도에 맞게 지었습니다.

 

궁궐의 배치가 대칭적으로 되어 있는 중국의 자금성

 

 

우리의 궁궐과 종묘, 절도 자유분방하게 지어졌으나, 나름의 질서는 있다

그러나 창덕궁부터는 이런 양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창덕궁을 보십시오. 정문인 돈화문이 왼쪽 아래의 구석에 있는 것부터가 파격적입니다. 그리고 정전인 인정전에 가기 위해서는 두 번이나 꺾여야 하는 등 매우 자유분방하게 지었습니다. 창경궁이나 다른 궁들도 사정은 같습니다.

 

창덕궁의 위성 사진, 왼쪽 하단에 위치한 정문 돈화문부터 정전인 인정전까지 두 번이나 꺾여야 한다.
<출처 : 네이버 위성지도 (http://map.naver.com)>

 

 

게다가 종묘는 어떻습니까? 종묘는 선왕의 영혼을 모신 곳이라 대단히 장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곳이야말로 좌우대칭을 엄숙하게 지켜 건물을 짓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종묘는 정전으로 가기 위해 축이 몇 번이나 꺾입니다. 만일 이런 건축이 중국에 있다면 정문에서 정전까지 일직선으로 되어 있어 정문 앞에서도 정전이 어디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묘는 축이 자꾸 꺾이는 바람에 아무리 걸어도 정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절은 정문부터 법당까지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이런 절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절은 들어가는 길이 항상 굽어 있거나 꺾여 있습니다. 또 정문과 법당의 축이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각 건물의 위치가 대단히 자유분방합니다. 송광사통도사 같은 절들이 다 이렇게 건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건물들이 아무 질서 없이 나열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나름대로 질서는 있답니다.

 

 

틀이나 격식을 거부하는 한국인의 성향을 공간배치에서도 볼 수 있어

그러면 한국인들은 왜 이런 식으로 공간을 디자인할까요? 제가 그동안 공부한 바로는 한국인들은 틀이나 격식을 거부하는 성향이 대단히 강합니다. 태생적으로 자유분방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유전적으로 좌우대칭 같은 엄격한 규율을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자연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런데 자연은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그런 자연을 따르다 보니 한국의 건축들은 창덕궁처럼 매우 친자연적이 됩니다.

 

그런데 현대 한국의 건축에는 이런 조상의 탁월한 조형 원리가 잘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울을 이렇게 무지막지한 건물의 밀림으로 만들어놓았을 리가 없습니다. 하루빨리 현대의 한국인들이 선조의 공간감각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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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그림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원문출처 - http://navercast.naver.com/geographic/heritage/2480

 

출처 : 한브랜드(한스타일) 전략연구소
글쓴이 : 한지를 세계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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