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종교와 불교의 습합신앙 삼성각 外

2019. 1. 9. 18:14차 이야기










자료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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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장소 :
영광군 군남면 육창로 2 연흥사
조사일 :
2016-07-25
제보자 :
혜장스님, 연흥사 주지, 4년 되었음
조사자 :
엄수경(@), 김삼진, 김연주
구현상황
   연흥사영광연흥사목조삼세여래좌상 이야기를 듣기 위해 들렸다. 혜장스님께서 한사코 영상 찍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셨다. 가족관계도 있는데 공개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영광군 설화 조사 중이라고 했더니 반갑게 맞아주셨다.
줄거리

   우리나라는 농업국가다. 땅과 하늘을 믿는 토속신앙이 강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때가지만 하더라도 출가할 수 있는 사람이 귀족이나 왕족이다 보니 불교가 권력적이었다.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에 와서 불교가 타의에 의해 민중 속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칠성여래광부처님은 우리나라 토속종교인 일곱 개의 별 칠성신과 관련이 있다. 삼성각은 산신, 칠성, 독성을 함께 모신 사찰 당우이다. 삼성은 각각 재물과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존재다. 우리나라 전통신앙인 삼신신앙과 불교가 습합된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한다. 사찰에 따라서는 독성, 산신, 용왕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모두 불교와 우리의 전통신앙인 토속종교와 습합된 현상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산악국가이기 때문에 특히 산신을 호법신중의 하나로 삼아 불교를 보호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전각 중의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차츰 나타나기 시작하여 현재는 전국 대부분의 사찰에 건립어 있다.


내용

   그 원래 우리나라 자체 불교 다른 종교 이전에 우리나라는 농업 국가잖아요. 글다보니깐 인제 비도 와야 되고 땅도 좋아야 되고. 글다보니깐 땅을 믿거나 하늘을 믿거나 이제 각종 자연주의 관계된 신앙들이 토속신앙들이 많았다라고 합니다. 근데 인제 삼국시대, 신라시대, 백제시대, 고려시대에 불교가 들어와 가지고 그 때는 최소 굉장히 대단한 종교가 권력이었잖아요. 뭐 왕권과 귀족만 출가하고 고려시대만 해도 이제 조선시대 오면서 이제 어떤 잘못되고 해 서 전권 500년간 탄압을 받잖아요. 일제 때 한일 합방되면서 승려가 서울을 갈 수 있는 권한 그것도 허락되고 그동안 출입금지였거든요. 그래서 어쨌든 조선시대 되면서 어떤 일반 백성들한테 민중으로 파고드는 자의적으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타의적으로 그런 상황이 됐어요. 탄압받다 보니깐 큰 데서 도시에서 인제 밀려나고 백성들이 사는 산중으로 밀려나다 보니깐 백성들이 그거를 많이 믿어요. 그러니깐 그걸 받아들인거 예요. 인제 뭐 고려시대는 개경 서울 한복판에 쉽게 이야기하면 있다가 큰 마을에 있다가 한쪽으로 밀려나다 보니깐 산에는 다 산신이 있을 거라는 그런 신앙이 있잖아요. 화전민이라던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산신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리고 그 가운데 홀로 수양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느냐. 산신의 보호아래 산신은 인제 불교를 외호하고 부처님을 이렇게 지켜주는 호법신장의 어떤 그런 수준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그 가운데 홀로 수양하는 독성으로 보셨고 그리고 옛날에 우리 어머님 꼭 불교 아니더라도 장독대에서 북두칠성 향해서 빌고 그랬잖아요. 공 많이 들이잖아요. 뭐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지극한 마음하나로 공들이는 거잖아요. 종교와 법과 뭣 이런 거 다 떠나서 그래서 가운데 부처님을 칠성여래광부처님이라고 그래 요. 일곱 개 별에 부처님이다. 그런 식으로 의인화해가지고 옛날에 토속신앙 그것도 받아들인 거죠. 받아들이면서 전통불교는 아닌데 불교화가 됐죠. 이제 몇 백 년이 흐르면서 이제 포함된 녹아든 그런 상황이 된 거죠. 예불드릴 때에 삼성각, 산신각 내용은 틀리고, 삼성각도 틀리고 삼성각은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칠성여래광부처님 그 기도하는 것처럼 탄신 그 내용이 나오는 거죠. 저희 인제 법유의식에 그게 나오거든요. 그리고 이제 대웅전에는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에 대한 예경, 예불 과 인제 참탄 뭐 그런. 그리고 뭐 동백나무가 수령이 한 500년 정도 됐다고. 아 누가 저렇게 500년 저렇게 저래 이렇게 까물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분도 있는데. 뭐 저도 인자 전해들은 이야긴데 몇 년 전 저 게 죽을려고 했었는데 군에서 보호수는 아니지만은 보호수 지정까지는 안됐거든요. 근데 보호할 가치가 있다 해서 군 관계 산림 뭐 관계되는 뭐 와서 사람으로 치면 큰 링겔도 꽂고 그런 식으로 대만 안 걸었지 뭐 그렇게 했다라고.

 

 





 

 

저작권
상업적 사용 금지

토속종교와 불교의 습합신앙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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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스님이 들려주시는 불교이야기_ 삼성각은 어떤 분을 모신 전각인가요? -1 | 사랑방(공부방)

心 印 | 조회 0 |추천 0 | 2014.10.02. 09:25




34-13. 삼성각과 <치성광여래도> / 삼성각은 어떤 분을 모신 전각인가요? -1
 

① 삼성각의 의미와 변천
   사찰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사연이 많은 건물이 삼성각三聖閣이다. 필자가 처음에 삼성각을 봤을 때 뭐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3성三聖이란 3분의 성인을 의미하는데, 안에 모셔진 대상에는 신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각에 모셔지는 존상은 중앙의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중심으로, 내륙에서는 좌우로 독성獨聖과 산신이 모셔지고, 해안가에서는 독성과 용왕이 안치된다. 즉, 산과 바다의 영향 차이에 따라 산신과 용왕이 선택적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는 나름 합리적이지만, 동시에 산신과 용왕은 삼성각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즉, 이들은 삼성각의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추가된 신격인 것이다. 특히 삼성각과 별도로 산신각山神閣이나, 산령각山靈閣과 같은, 산신을 모시는 전각이 따로 있는 경우들도 다수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삼성각에 산신이나 용왕과 같은 신격이 들어간다는 것은, 삼성이라는 의미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통도사의 삼성각에는 한 켠에 삼성각의 본래 의미를 알 수 있는 진영眞影이 모셔져 있어 흥미롭다. 세 분의 배치는 중앙의 지공화상指空和尙을 중심으로, 좌우에 나옹혜근懶翁惠勤과 무학자초無學自超의 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분들은 여말선초 불교계의 가장 핵심적인 분들이다.
 
   지공화상 인도의 108대 조사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와서 고려 불교계에 쇄신의 충격을 던진 분이다.
나옹혜근은 지공의 제자이자 중국 임제종 평산처림平山處林의 법을 이은 분으로, 고려 말 조계종의 중천조인 태고보우太古普愚와 『직지直指』로 유명한 백운경한白雲景閑과 더불어 명성을 떨친 고려의 왕사王師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라는 게송이 이분의 작품이다.
 
   끝으로 무학자초는 이성계와의 관계로 유명한 무학대사이다.
이 세 분을 3화상이라고도 하는데, 삼성각은 이분들을 모신 사당이었던 것이다.
여말선초 불교계는 3화상에 의해 주도된다. 특히 세 분 중 가장 주도적이며 역할이 컸던 것이 나옹혜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선종은 나옹혜근을 시조로 모시기에 이른다. 이런 점 때문에 조선의 사찰에 이분들을 모시는 삼성각이라는, 조사전祖師殿과 같은 사당이 건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사산대사의 세력이 급성장하게 되고, 서산대사 쪽에서 이분들의 위치를 넘보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서산대사의 주도로 이분들을 끌어 내리는 움직임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나옹혜근을 상대하는 대항마로 태고보우를 내세우는 전략이었다. 이러한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3화상은 점차 삼성각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서산대사는 이 분들의 빈자리를 메우며, 조사와 같은 위치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조계종의 중천조로 태고보우를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서산대사의 역할 때문이라고 하겠다.
 
   삼성각에서 3화상이 밀려나기는 했어도 삼성각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하는 신앙체계가 들어오게 된다. 그것이 바로 중앙아시아와 도교에 의한 북극성과 칠성신앙 및 신선신앙, 그리고 산신과 용왕이라는 우리의 토속신앙과 인도의 전통신앙인 것이다. 삼성각은 이러한 다소 복잡한 전개과정을 거치면서, 세 성인의 집이라는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신앙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3화상과 같은 경우는 점안의식點眼儀式이나 증명단證明壇의 건립과 같은 측면에서,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질곡의 변화를 묵묵히 말해주고 있다.




자현스님이 들려주시는 불교이야기_ 삼성각은 어떤 분을 모신 전각인가요?- 2 | 사랑방(공부방)
心 印 | 조회 1 |추천 0 | 2014.10.03. 11:22




34-13. 삼성각과 <치성광여래도> / 삼성각은 어떤 분을 모신 전각인가요? -2
 
② <치성광여래도>와 별 숭배
   북극성과 칠성신앙은 불교와 합해져 중국에서 치성광여래로 변모한다. 이는 북극성과 칠성신앙을 수용하기 위한 불교적인 합리화라고 하겠다.
 
   북극성은 별들의 왕으로 도교에서는 자미대제紫微大帝라고 칭한다. 또 북두칠성과 같은 경우는 죽음의 신[死命神] 역할과 더불어,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의 4대 전설 중 하나인 견우직녀의 칠석과 결합되면서, 그 신앙체계가 상당히 강력하게 전개된다. <치성광여래도>는 이러한 별 숭배의 불교적인 재정립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중앙에 북극성의 불교적 표현인 치성광여래가 소 수레를 탄 채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덕德과 정복의 상징인 금륜金輪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보처로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시립한다. 그 주변으로는 북두칠성의 변형인 7여래가 위치하고 있다. 7이라는 숫자는 좌우의 짝이 맞지 않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생명의 신인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 들어가기도 한다.
 
   탱화의 하단에는 도교의 복장을 한 북극성과 칠성이 묘사된다. 즉, 도교의 신 위로 불교의 재규정된 불보살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상단에는 3태6성三台六星과 28수二十八宿가 배치되는데, 이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요한 별자리들을 의미한다.
 
   3태6성과 같은 경우는 북두칠성의 외곽에 있는 3별이 쌍으로 있는 것을 말하며, 28수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4방위의 중요한 별자리들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의 4신四神을 말하는데, 이러한 사신이 다름 아닌 28수의 별들이 만들어내는 별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고구려의 고분벽화 등에서 발견되는 4신도四神圖는, 별자리의 군집에 대한 상징적 재해석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치성광여래도>는 전체적으로 별 숭배와 관련된 신앙적인 천문도인 것이다.
 
③ 독성의 이해와 문제점
   독성과 같은 경우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흔히 불교적으로 독성을 16나한 중 신통이 탁월한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로 비정하지만 이의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
 
   빈두로존자는 신통을 함부로 사용했다고 해서 붓다에게 영원히 열반에 들지 않고 중생들을 구원해주라는 징벌을 받게 된다. 그래서 북구로주에 살며, 남섬부주 중생들의 바람을 들어준다고 한다. 그러나 독성은 빈두로로 불리우는 것이 아니고, 나반존자那畔尊者로 불린다. 또 <의식문> 등에 등장하는 독성의 주처는 북구로주가 아닌 천태산天台山이다. 천태산은 북극성의 기운이 비친다는 중국 도교의 성지이자, 천태종의 발상지이다. 이쯤 되면 문제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삼성각에 모셔지는 대상들을 보면, 치성광여래가 북극성인 자미대제의 불교적인 변형이며, 산신과 용왕은 각각 우리와 인도의 토착신앙에서 기인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삼성각의 존상들은 공히 불교 밖의 신앙체계가 불교로 수용된 측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독성만을 불교적인 관점에서보기 보다는 발해만 쪽의 신앙체계인 신선사상과 연관 지어 이해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신선사상은 후일 도교에 수용되기는 하지만, 그 근본은 도교와는 다른 산악적인 가치이다. 그래서 선仙이라는 글자가 ‘人+山’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이 많은 우리와 보다 더 밀접하다. 이는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이나 신라의 국선國仙제도와 같은 것을 통해서 단적인 인식이 가능하다.
 
   독성탱화를 자세히 보면, <16나한도> <500나한도> 등과는 다른 양상이 느껴진다. 이는 <나한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기 보다는 신선도의 양상과 오히려 더 유사하다. 그러므로 독성 역시 빈두로로 규정하기 보다는, 본래는 신선신앙에서 연유한 가치로 파악된다. 다만 이것이 후일 불교적인 입각점을 가지기 위해 빈두로신앙과 결합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자현스님이 들려주시는 불교이야기_ 삼성각은 어떤...

2014.10.03

cafe.daum.net/bonho66/7jWr/318   겨울가고 봄이 오니





질문

삼성각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의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사찰 당우 중 하나.


내용


   삼성은 각각 재물과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존재로서, 전통신앙인 삼신신(三神信仰)과의 습합현상을 살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이 삼성각 안에 고려 말의 삼대성승(三大聖僧)인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의 삼성(三聖)과 칠성·독성 등을 봉안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主君)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불리는 독성은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이치를 홀로 깨달아서 성인의 위치에 올라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고 한다. 또, 사찰에 따라서는 독성과 산신과 용왕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모두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들로서, 하근기(下根機) 중생을 위한 방편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그 건물의 이름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으로 일컬은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성각 [三聖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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