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려청자

2019. 1. 14. 12:10美學 이야기

고려청자의 탄생

 

 

 

자기는 표면이 유리처럼 매끄럽고 장식적인 면에서도 뛰어나,

자기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일은 인류의 커다란 숙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흙과 불을 조화롭게 조절하여 아름다운 광택의 유리질 자기를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찍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자기는 발전을 거듭하여 안정적인 생산 단계에 접어들게 되지만

여전히 중국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자기를 만들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중국과 더불어 자기 문화를 꽃피운 우리나라는

 '언제, 어떻게 도자기를 제작하게 시작했을까?' 라는 물음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도자문화의 시작을 간단하게나마 되짚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자기 생산 단계 이전에는 도기 문화를 일구었다.

이미 삼국시대 말기부터 저화도(低火度), 연유(鉛釉) 도기를,

통일신라시대에는 고화도(高火度) 회유(灰釉) 도기를 제작했던 환경에서

유리질의 자기를 만들 수 있는 제작 여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왕족과 귀족을 비롯한 특정계층은 이미 중국의 명요(名窯)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을 수입하여

도자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다.

 

또한 통일신라 마에는 음다(飮茶)의 확산과 더불어 표면이 거칠고 수분을 흡수하는 도기보다는

자기를 선호하는 풍조가 확산되어 자기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통일신라에서 후삼국시기를 거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후백제와 고려를 중심으로 하여 한반도 중서부 지역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지속함으로서

중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처럼 고화도 도기 제작에 자신감이 있었고, 자기에 대한 수요가 꾸준하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중국 절강성의 월요(越窯)로부터 청자 제작기술이 도입되면서

한반도 내 요업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요지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그동안 용인 서리, 북한의 황해도 원산리, 봉암리의 요지 발굴조사에서

전축요(塼築窯)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시흥 방산동에 위치한 고려 초기의 청자가마 조사는

중국 월요(越窯)와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흥 방산동 가마는 우리나라 초기 청자의 제작 상황을 알려준다.

가마의 길이는 40m 에 이르며 벽돌을 쌓아 만든 전축요로,

측면에 출입구를 만들어 사람이 드나들고 자기를 적재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이러한 가마 구조는 이전까지 한반도에는 없는 새로운 것이었지만

대신 중국의 월요 구조와는 매우 유사하였다.

시흥 방산동 요지와 같이 초기 전축요의 유형으로 볼 수 있는 가마로는

경기도 용인시 서리, 시흥시 방산동, 양주군 부곡리, 고양시 원흥동,

황해도 봉천군 원산리, 봉천군 봉암리, 충남 서산시 오산리 등이 있다.

 

이 시기의 전축요가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중서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이유는

당시 정치적 환경이 혼란스러운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려라는 틀 안에서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요업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공간은

경기도 중심의 중부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으로부터의 기술 도입에 있어서도 지리적으로 근접하였으며,

주 소비 계층이 개경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도 생산지의 입지조건에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자기 양식은 꾸준한 발굴조사로 인해 자료가 축적되어 있어 이해가 비교적 쉽다.

용인 서리의 요지 발굴 결과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초기 청자의 표식 유물로 볼 수 있는 완(碗)은

내저원각이 없고 굽지름이 넓으며, 접지면이 좁은 형식인 선해무리굽완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완은 만당(晩唐) 말기부터 오대(五代) 전기 사이에 유행한

월요(越窯)의 옥환저완(玉環低碗) 계통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자 완, 고려 10세기, 높이 5.7

 

청자 병, 고려 11세기, 높이 21.5

 

이와 같이, 한국 청자는 9세기 말에서 10세기 전반에 중국의 청자기술을 도입하여 자기 문화를 열었다.

물론 자기 제작 기술의 도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반도 내에서 활발했던 도기 생산이 밑거름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후 고려는 꾸준하게 자기 제작 기술을 발전시켜

상감청자(象嵌), 동화청자(銅畵), 금채청자(金彩)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도자 문화를 꽃 피우며

고려인만의 미감을 유감없이 표현한 아름다운 청자를 제작하게 된다.

-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청자실, 강경남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85회>, 2008년 4월 23일

청자 주전자



332 청자상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국보66호

 


333 청자상감연당초류문정병(靑磁象嵌蓮唐草柳文淨甁)

 


334 청자상감국화모단문과형병(靑磁象嵌菊花牡丹文瓜形甁),국보114호

 


335 청자과형병(靑磁瓜形甁)(청자과형병)

 


336 청자철화모단문병(靑磁鐵畵牡丹文甁)

 


337 청자연판문광구병(靑磁蓮瓣文廣口甁)

 


338 청자상감포도동자문동채주자(靑磁象嵌葡陶童子文銅彩注子)및승반(承盤)



339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국보116호

 



340 청자상감운학국문표형주자·승반,보물1033호



341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

 


342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국보133호



343 청자비룡형주자,국보61호

 


344 청자퇴화문석류형주자(靑磁堆花文石榴形注子)

 


345 청자음각초화문표형주자(靑磁陰刻草花文瓢形注子)

 

346 청자퇴화연당초문주자(靑磁堆花蓮唐草文注子)

 


347 청자주자(靑磁注子)및승반(承盤)

 


348 청자상감연당초문주자(靑磁象嵌蓮唐草文注子)

 


349 청자퇴화연화형연적(靑磁堆花蓮花形硯滴)



350 청자상감모란문주자,보물1029호,호암미술관


351 청자상감모단문주자(靑磁象嵌牡丹文注子)

 


352 청자상감동자당초문주자(靑磁象嵌童子唐草文注子)

 


353 청자상감포도동자문주자(靑磁象嵌葡萄童子文注子)

 


354 청자양각만과문주자(靑磁陽刻蔓瓜文注子)

 


355 청자양각죽절문주자(靑磁陽刻竹節文注子)

 


356 청자음각연화문과형주자,서울박물관13

 


357 청자죽순형주자(靑磁竹筍形注子)

 


358 청자상감앵무문표형주자,보물1036호,호암,


359 청자상감국화문탁잔(靑磁象嵌菊花文托盞)


360 청자상감국화문탁잔(靑磁象嵌菊花文托盞)


361 청자음각초화문화형탁잔(靑磁陰刻草花文花形托盞)

 


362청자탁잔(靑磁托盞)

 


363 청자상감(靑磁象嵌) '귀(鬼)'자 잔(盞)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靑瓷)

상감 (象嵌)청자는 자기의 바탕흙 (胎土)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종류의 흙을 메워 넣는 기법으로 장식한 청자이다. 다른재료로 메워서 꾸미는 기법은 나전칠기 (螺鈿漆器)나 금속공예의 입사 (入絲)기법에서 볼수있는데 이를 도자기에 응용한것은 고려장인의 창의적인 발상에서 나온것이다. 이미 9 세기말 10 세기 초로 여겨지는 상감기법의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어 12 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상감청자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상감 기법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고려가 이룬 뛰어난 업적으로 비색 청자 유약과 더불어 고려청자의 특징이 되고 있다. 

 

 

 

 

사자장식주전자와받침 (靑磁獅子裝飾注子.承盤)

고려 11세기

 

 

참외모양병 (靑磁瓜形甁) 국보 94호

고려 17 대 인종 임금의 무덤인 장릉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양의 병은 중국고대 청동기인 준 이아는 병의 기원에 둔다, 뛰어난 색과 완벽한 균형미로 널리 알려진 고려청자의 대표적 명품이다.

 

 

연꽃모양향로 (靑磁陽刻蓮花形香爐)

이와같은 형태의 향로는 상형물이 장식된 뚜껑의 상형물을 통해 향을 피우도록 구성되어 있다. 향로의 기본적인 조형은 중국당대 금속기에 있으며 북송대에 운영된 하남성 청량사 가마터에서도 청자 향로편이 출토되었다. 비록 상형장식 뚜껑은 없지만 실용기와 감상용기의 성격을 모두 갖춘 수작이다.

 

 

 

석류모양주전자 (靑磁石溜形注子)

이 주전자는 자손번창 특히 아들을 상징하는 석류를 소재로 하였다. 4개의 석류를 서로 맞붙여 새롭게 재구성 하였다. 각각의 석류에는 하얀 퇴화점으로 씨 알갱이를 표현하여 석류의 상징적인 의미가 강조되었다. 

 

 

사자장식향로 (靑磁獅子香爐) 국보60호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 에는 사자향로에 대하여 위에 쭈그리고 있는 짐승이 있고 아래에는 연꽃이 있어 그것을 받치고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12세기 청자 사자향로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룡장식향로 (靑磁魚龍蓋蓮花形香爐)

고려 12세기

 

 

 

칠보무늬향로 (靑磁透刻七寶文香爐) 국보95호

뚜껑 향을 담는 연꽃대좌 받침으로 구성된 향로이다. 여기에 다양한 기법으로 정교하게 장식하였다. 특히 돋보이는 점은 향로를 받치는 안증맞은 세마리 토끼이다. 최소한의 크기로 향로무게를 지탱하도록 만든 장인의 솜씨가 뛰어나다.

 

 

 

도철무늬향로 (靑磁陽刻陶鐵文香爐)

고려시대에는 불교의식이나 제사에 향을 피워놓기 위한 청자 향로가 많이 제작되었다. 이 가운데 중국의 청동기인" 정"(正) 을 모방한 청자 향로가 많다. 이 향로 안쪽 면에는 글자가 있지만 읽기가 어렵다. 그 아래쪽에는 파도와 배를 탄 인물상이 음각되었다.

 

 

도철무늬향로 (靑磁陽刻陶鐵文香爐)

고려청자 향로에는 동식물 형상을 한것도 있지만 이처럼 중국의 청동기인 방정을 충실히 모방한것도 많다. 몸체에 양각된 도철은 중국 청동기에서 영향을 받은것이다.

 

 

연꽃넝쿨무늬주전자와받침 (靑磁透刻蓮唐草文注子承盤)

고려 12세기

 

 

 

 

 

   

모란무늬항아리 (靑磁象嵌牡丹文壺)  국보98호

상감청자의 무늬는 대부분 가는선 으로된 선상감이 많고 이 항아리처럼 넓은 면을 섬세하게 상감한 예는 매우 드물다. 그릇의 형태는 당시 유행하던 동기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릇의 단정한 모양과 양면의 시원스런 모란무늬가 잘 어울린다. 

 

 

 

연꽃넝쿨무늬매병 (靑磁象嵌複沙牡丹文梅甁) 국보 97호

둥근 어깨부터 허리와 굽에 이르는 부드러운 선의 흐름은 고려청자가 가진 특유의 곡선미를 잘보여준다 몸체에 음각된 화사한 연꽃넝쿨무늬가 매병의 우아한 곡선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있다.

 

 

매화대나무학무늬매병 (靑磁象嵌梅竹鶴文梅甁) 보물1168호

경남 하동군 우계리 에서 출토되었으며 전형적인 고려청자 매병형태를 갖추고있다. 대나무는 바람에 날려 한쪽으로 쏠려있고 양쪽으로 길게 뻗은 매화나무는 전체적인 구도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활을 한다. 회화적 이면서도 귀족적인 멋이 느껴진다.

 

 

모란무늬매병 (靑磁象嵌銅畵牡丹文梅甁)  보물346호

청자에 구리성분 안료를 이용하여 무늬를 나타낸것은 드문데 색이 붉게 나타나므로 이를 진사 라고도한다. 특히 매병장식으로 붉은색이 사용된 예는 매우 드물다.비슷한 청자조각이 부안 유천리와 강진 사당리 가마터에서도 출토되었다.

 

 

 

보자기무늬매병 (靑磁象嵌茯紗牡丹文梅甁)  보물342호

매병의 뚜껑을 덮을때 몸체와 마찰을 줄이고 장식을 더하기 위해 주둥이와 어깨 위에 보자기를 덮었던것 같다 이와같은 장식효과를 얻고자 주둥이를 중심으로 네모난 보자기를 씌운것 같은 무늬를 상감하였다.

 

 

  

모란넝쿨무늬조롱박모양주전자 (靑磁象嵌牡丹唐草文瓢形注子)  국보116호

모란넝쿨무늬를 역상감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기법이란 나타내고자 하는 무늬 이외의 바탕 부분에 상감을 하는것이다. 그릇 표면에 상감 무늬를 가득 장식할 경우 표면이 변잡스럽게 보이는것을 피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꽃무늬정병 (靑磁陰刻花文淨甁)                           국화대나무무늬매병 (靑磁象嵌菊竹文梅甁)

고려 12세기

 

 

                     시가있는병 (靑磁象嵌詩銘甁)                            원숭이모양묵호 (靑磁猿形墨壺)

                                          何處難忘酒   어느 곳인들 술 잊기 어렵구나                                             고려 12세기

                                          靑門送別多   청문에 이별도 많네

 

 

용머리장식붓꽂이 (靑磁透刻龍頭飾筆架)

필가는 붓을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연적과 함께 필수적인 문방구이다. 용머리 장식과 투각,음각,앙각,철화등 다양한 장식 기법이 어울려 조형적으로 아름답다.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국화무늬조롱박모양작은병 (靑磁象嵌菊文小甁)                                             복숭아연적 (靑磁桃形硯滴)

                               고려 13세기                                                                                                           고려 12세기

 

 

구름학무늬기름병 (靑磁象嵌雲鶴文油甁)

무늬의 표현이 매우 단순하지만 날개를 활짝펴고 창공을 나는 학의 모습이 매우 시사적 이다.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여백을 많이주어 넓고 푸른 하늘을 나는 학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

 

 

            

국화넝쿨무늬항아리 (靑磁象嵌菊唐草文小壺)

                                   고려 13세기

 

 

국화넝쿨무늬합 (靑磁象嵌菊唐草文盒)

국화무늬는 상감청자에 자주등장하는 소재 이지만 이처럼 국화꽃을 큼직하게 상감한 예는 흔하지않다. 중심 무늬로 국화넝쿨 무늬가 시원스럽게 돌려졌고 백상감된 꽃중심으로 격자무늬를 두어 꽃술을 표현 하였다.

 

 

잎무늬매병 (靑磁三葉文梅甁)  보물340호

철사 안료로 전체를 칠한 후 무늬 부분을 긁어내고 그 부분에 붓으로 백토를 발랐다. 이러한 방법은 과정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여러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완성할수 있는 어려운 제작 방법이다.

 

 

버드나무무늬병 (靑磁鐵畵柳文甁)  국보113호

원통모양의 청자병은 매우 드물다. 비슷한 형태의 병이 일본의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술에관한 시가 상감되어 있어 술을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면에 각각 수양버들을 대담하게 그려넣어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꽃무늬참외모양병 (靑磁象嵌蓮花文甁)

바탕에 백토를 상감기법으로 넣고 그 부분을 제외한 전면에 철 성분이 다량 함유된 유약을 발라 구워낸 병이다. 철 성분으로 인해 유색은 흑갈색을 띤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가마터에서 이와같은 자기 조각이 출토 되었다.

 

 

모란갈대무늬매병  (白磁象嵌牡丹柳盧文梅甁) 보물345호

백자에 청자 대토를 상감하여 넓은면을 만들고 다시 그 면에 자토와 백토를 상감하는 기법을 사용한것은 이 매병이 유일하다. 청자와 백자의 특징을 적절히 혼합하여 만든 독특한 예 이다.

 

 

모란무늬판  (靑磁象嵌銅彩牡丹文板)

정확한 용도를 알수없는 장식용 판으로 전체적인 무늬가 매우 화려하다. 사각판은 크게둘로 나누어 무늬를 장식했다. 중앙에는 모란꽃을 부각시켜 붉은색의 구리성분 안료를 부분적으로 칠했다.

 

 

새대나무매화무늬판 (靑磁象嵌梅鳥竹文板)

고려 12 ~ 13 세기

 

 

연례색이새겨진구름학무늬대접 (靑磁宴札色銘靑磁象嵌雲鶴文大蝶)

입술부분이 밖으로 벌어지면서 전체적 으로그릇의 양감이 줄어들고 있는 대접이다. 이것은 고려 후기에 새롭게 나타나는 경향으로 이후에 만들어지는 분청사기 대접의 원형이 되도 있다.그릇 안쪽에 연례색 이 흑상감 되었는데 이것은 고려왕실 연회를 담당하던 임시관청의 명칭이다.

 

 

 

               구름용무늬병 (靑磁象嵌銅彩雲龍文甁)          구름용무늬큰접시 (靑磁象嵌雲龍文盤)

고려 14세기

 

 

                      을유사온서가새겨진버드나무무늬매병 (靑磁乙酉司瑥署銘靑磁象嵌柳蘆文梅甁)

입술부분이 깨진 매병이다. 어깨에는 뾰족한 연판문이 몸통에는 버드나무가 상감되었다. 버드나무 무늬 사이로 "을유사온서" (乙酉司瑥署)라는 명문이 흑상감 되었는데 사온서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술을 빚어 공급하던 일을 담당했던 관청명 이다. 몸통에 새겨진 관청 이름으로 보아 술을 담았던 매병으로 생각된다.

 

 

가사가새겨진국화무늬접시                                                                                    임신이새겨진구름학무늬대접

                                   

 

                                                       구름학모란넝쿨무늬합 (靑磁象嵌雲鶴牡丹唐草文盒)

                                                                                                                                                           고려 13세기

 

 

봉황무늬꽃모양대접 (靑磁象嵌雲鳳文花形大接)

봉황과 용은 일반인이 사용할수 없는 신분을 상징하는 무늬로 고급 청자에 장식되었다. 13세기 청자에 표현된 봉황무늬는  양날개를 활짝 뒤로 젖힌채 날아가는 모습이다, 대체로 구름이나 연꽃넝쿨무늬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

 

 

집사람무늬항아리 (靑磁瓦居人物文扁壺)

고려가 중국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되면서 고려청자의 제작도 원나라 도자기의 영향을 받았다. 이 항아리처럼 12세기 청자가 보여주던 여백의 아름다움은 줄어들고 여러가지 소재를 한면에 복잡하게 구성하는 경향을 볼수 있다.

 

 

 

 

명종지릉출토품 (靑磁明宗智陵出土品)

명종 (1170 ~ 1197) 은 고려 제 19대 임금이며 능호는 지릉 이다. 현재 개성시 장풍군 지릉리에 위치한다.

 

 

  

물고기무늬매병 (靑磁象嵌魚文梅甁)  보물347호

고려말 조선초에 만들어진 매병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기형은 고려말 상감청자에 보다 가깝지만 무늬를 표현하는데 인화 기법의 비중이 높아졌고 탁했던 유약이 향상되어 비교적 밝은 회청색으로 바? 점이 두드러진다.

 

 

    

구름용무늬항아리 (靑磁象嵌印花雲龍文壺)  국보259호

당당한 양감과 풍만함이 돋보이는 이항아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새롭게 만들어졌다. 인화기법과 상감기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분청사기의 활기차고 건강한 미감이 잘드러나고 있다.
 

고려 도자기 vs 일본 도자기~!!

 

왼쪽 우리나라도자기 오른쪽 일본도자기 같은시대의 도자기들입니다.
울조상님들의 빼어난 예술감각을 그대로 잘 배운듯하네요.
출처 : With you
글쓴이 : 이연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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