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17. 13:42ㆍ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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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 주련의 이해>를 옮겼습니다. 분량이 많아 다섯으로 나누었습니다.
이 조사를 하신 분들이 세심하게 힘들여 만드신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혹 자료를 가져가시는 분은 출처(문화재청)를 반드시 밝히시고 훼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궁궐 주련의 이해
문화재청
머 리 말
고궁이나 사찰 등은 물론이고 서원이나 일부 전통 사대부 가옥들을 보면 건물 전면의 중앙에는 현판이 걸려 있고 기둥에는 보기 좋은 필체로 판각한 한문 글귀가 걸려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글씨는 거의가 대구로 짝을 이루는 두 구절, 즉 연구(聯句)를 나란히 배열한 것이다. 기둥에 붙인 연구(聯句)라는 의미에서 이것을 ‘주련(柱聯)’이라고 한다.
주련의 내용은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되는 것, 수복강녕(壽福康寧)을 기원하는 것,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것 등 다양하다. 또 때로는 건물에 특정한 의미를 간직한 이름을 붙이고 거기에 어울리는 내용의 주련을 걸어서 자신이 건물을 지은 목적과 건물의 용도, 건물을 중심으로 한 삶의 의미를 넓고 깊게 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쓰이는 글귀는 옛날부터 전하는 시문을 많이 이용하는데, 때로는 새롭게 창작한 것을 새겨 넣기도 한다. 주련의 글씨는 선대(先代)의 유명 서가(書家)나 당대의 명필들이 쓴 것을 새겨서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우리 선인들은 이러한 주련을 개인의 집이나 누정(樓亭), 사찰, 궁궐 등 생활 공간의 곳곳에 걸어 놓아 수시로 보고 감상하면서 인격 수양에 힘쓰고 멋과 운치를 누렸다. 전국 곳곳의 고택이나 유적지, 사찰, 궁궐 등에 널려 있는 주련은 선인들이 일상 속에서 멋과 운치를 누리고 수양에 힘쓴 생활문화의 자취이다.
특히 궁궐에는 여러 건물에 주련이 걸려 있는데, 오랫동안 전문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여 대련(對聯)으로 되어 있는 주련들이 짝이 바뀐 것이 많고 일부는 한 짝이 분실된 것도 있어 찬란한 궁궐 문화에 비해 매우 아쉬운 점이었으며, 중국이나 일본 등 한자 문화권의 안목 있는 이들이 볼 때에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는 형편이 었다. 이에 금번에 문화재청에서 주련의 보존과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심도 있는 조사 연구를 수행하게 한 것은 늦은 감이 있으나 대단히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 다.
한자로 된 문화유산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인구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고건축물의 주련을 해석하고 정리하는 것은 전통 문화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중요한 사업이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궁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도를 더 한층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 한다.
2006년 12월
문화재청장 귀하
이 보고서를 ?고궁 주련 학술조사 연구용역?의 최종보고서로 제출합니다.
2006년 12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책임자 철학과 교수 이광호
목 차
머리말
원색화보
Ⅰ. 연구의 개요 ······························································3
1. 연구의 목적 ·································································· 3
2. 연구의 대상 ·································································· 4
3. 연구의 진행 ·································································· 5
4. 자문회의 및 중간보고 회의 ················································ 7
Ⅱ. 주련의 이해 ·····························································11
1. 주련의 의미 ································································· 11
2. 주련의 역사 ································································· 11
3. 주련의 배열 ································································· 12
Ⅲ. 궁궐별 주련 조사 내용 ············································· 13
▣ 경복궁(景福宮) ··································································15
1. 근정전(勤政殿) 월랑(月廊) ····················································15
2. 함화당(咸和堂) ··································································21
3. 향원정(香遠亭) ··································································31
4. 집옥재(集玉齋) ··································································34
▣ 창덕궁(昌德宮) ································································· 38
1. 부용정(芙蓉亭) ································································ 38
2. 연경당(演慶堂) ································································ 43
3. 선향재(善香齋) ································································ 59
4. 농수정(濃繡亭) ································································ 65
5. 애련정(愛蓮亭) ······························································· 69
6. 승재정(勝哉亭) ································································ 73
7. 폄우사(?愚?) ································································ 76
8. 존덕정(尊德亭) ································································ 79
9. 관람정(觀纜亭) ································································ 83
10. 청심정(淸心亭) ······························································· 86
11. 취한정(翠寒亭) ······························································· 89
12. 소요정(逍遙亭) ······························································· 94
13. 태극정(太極亭) ······························································· 97
14. 청의정(淸?亭) ·······························································100
15. 낙선재(樂善齋) ······························································ 103
16. 한정당(閒靜堂) ·······························································112
- 한정당 장지문 ····························································119
17. 서향각(書香閣) ······························································ 122
▣ 덕수궁 ·········································································· 128
1. 석어당(昔御堂) ······························································· 128
2. 준명당(浚明堂) ······························································· 130
3. 즉조당(卽?堂) ······························································· 132
<附>
중화전(中和殿) ··································································135
Ⅳ. 결론 ···································································· 153
<참고문헌> ······································································· 154
<주련 색인>········································································155
I . 연구의 개요
1. 연구의 목적
주련(柱聯)은 기둥 또는 벽에 써 붙이거나 걸어 놓는 연구(聯句)를 가리킨다. 잘 안 쓰이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영련(楹聯)이라고도 한다. 연구(聯句)란 대구(對句)가 되는 시문(詩文)의 구절, 즉 대련(對聯)을 뜻한다. 흔히 한시의 구절이 쓰이기 때문에 5언이나 7언이 보편적이지만 가끔씩은 4언, 6언, 8언 등도 쓰여 그 형식이 일정한 것은 아니다.
주련의 내용은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되는 것, 수복강녕(壽福康寧)을 기원하는 것,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것 등 다양하다. 여기에 쓰이는 글귀는 옛날부터 전하는 시문을 많이 이용하는데, 때로는 새롭게 창작한 것을 새겨 넣기도 한다. 주련의 글씨는 선대(先代)의 유명 서가(書家)나 당대의 명필들이 쓴 것 을 새겨서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우리 선인들은 이러한 주련을 개인의 집이나 누정(樓亭), 사찰, 궁궐 등 생활 공간의 곳곳에 걸어 놓아 수시로 보고 감상하면서 인격 수양에 힘쓰고 멋과 운치를 누렸다. 전국 곳곳의 고택이나 유적지, 사찰, 고궁 등에 널려 있는 주련은 선인들이 일상 속에서 멋과 운치를 누리고 수양에 힘쓴 생활문화 의 자취이다. 이러한 문화 유산이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한글 전용의 여파로 아무런 의미도 발휘하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문화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주련들을 언젠가는 집대성하여 정리하고 이를 해설해서 후손들에게 넘겨줘야 하겠지만, 이는 단기간에 적은 인력으로 수행하기에는 벅차므로 실행 가능한 범위부터 착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 런 의미에서 문화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고궁의 주련부터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가 될 것이다.
현재 고궁의 주련들은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서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게 마멸된 부분도 있고 순서가 뒤바뀐 것도 있으며 일부는 대(對)가 되는 문구의 주련이 소실되어 없어진 것도 있다. 또 상당수는 초서(草書)로 되어 있어 웬만큼 한문 해독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에 어려운 점도 있다. 이에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 주련들을 종합적으로 조사, 연구해서 그 뜻을 풀이하고 순서를 바로잡으며 훼손된 부분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나마 복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체계적인 문화재 관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본 연구의 주 목적이다.
아울러서 이들 주련에 대한 해설을 고궁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옛 궁중 문화를 보다 심도 깊게 이해시키고 선인들의 풍류스런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 이를 통해 현대인들의 정서를 함양하는데도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가적인 목적이다.
2. 연구의 대상
본 궁궐 주련 조사 연구의 직접 대상은 현재 고궁에 남아 있는 주련 전체가 된다. 현재 파악된 바로는 경복궁 42개, 창덕궁 181개(한정당 내 장지문 포함), 덕수궁 9개이다.
덕수궁 중화전(中和殿) 내 기둥 위에 종이에 쓰여 붙어 있는 시문들은 훼손이 심한 부분이 많아 정식으로 연구 조사 대상에 포함하지는 않았으나, 그 자체로 문화재로서의 일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번 기회에 판독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해설하여 부록으로 붙였다.
3. 연구의 진행
가. 연구 일정
나. 연구의 진행
본 연구 조사의 대상이 되는 주련은 궁궐 내의 주요 건물들의 기둥이나 벽에 붙어 있는 것들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풍화작용으로 마멸되어 부분적으로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운 곳도 있고 순서가 뒤바뀐 것도 있으며 의미상 연결 내용으로 보아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누락된 것도 있다. 순서가 바뀌거나 누락된 것은 아마도 건물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떼어내 따로 보관했다가 다시 붙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상황으로 추정된다.
본 조사 연구에서는 일차적으로 현존하는 주련의 글자를 정확하게 판독하여 시문의 뜻을 해설하였다. 이를 위해 초서로 된 주련은 탈초를 하고 마멸 되어 알아보기 힘든 것은 관련 시문의 전고 등을 통하여 최대한 밝혀내었다. 또 해당 시문의 작자를 찾아 밝히고 전고가 있는 경우에 이를 명시하였다.
주련에 간혹 필사자가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낙관까지 새겨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는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어려우나 판독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밝혀내었다. 특히 마모가 심해서 알아보기 어려운 것과 주련을 보수 하는 과정에서 글씨를 잘못 덧칠하여 원형을 훼손한 것이 상당수 있는데, 건탁(乾拓) 등의 방법을 통하여 내용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순서가 바뀐 것을 바로잡고 누락된 부분이 있을 경우 이를 적시 하였다. 순서가 바뀐 것이 워낙 많아서 원래의 위치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현재의 위치를 대강의 기준으로 하여 짝이 바뀐 것들을 바로잡고 일련 번호를 붙였다. 앞으로 짝을 맞춰 다시 배열을 할 경우 이 번호가 하나의 준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순서가 잘못되었을지라도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각 건물의 평면도상에 현 위치를 표시하였다. 평면도상의 번호는 본문에서 해설한 주련의 번호를 가리킨다.
이러한 연구 작업을 위하여 모든 經典類, 唐詩·宋詩 등 각종 시선집, 佩文韻府·淵鑑類涵·事文類聚 등 공구서, 王朝實錄·宮闕志 등 조선조 문헌들을 참 고 자료로 하여 연구에 만전을 기하였다.
1차 자문 회의 후 문화재 전문위원인 이정섭 선생님이 1990년에 조사 보고를 한 ?昌德宮 柱聯 調査 報告書?를 입수하여 내용을 보완함으로써 보다 충실한 조사 연구가 되었다.
또 연구 과정에서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各宮柱聯調書』라는 연구 보고서를 발굴하여 참고하였다. 이 보고서는 舊皇室財産事務總局에서 1957년에 만든 것으로 내제(內題)는 ‘各宮殿亭의 柱聯’으로 되어 있다. 현재보다는 훨씬 많은 주련이 있었으나 그 당시도 이미 상당수는 짝을 잃었으며 순서도 뒤바뀐 것이 많다. 또 초서의 해독도 여러 군데 오류가 많아 정확도가 떨어진다.
다. 관계자 명단
본 고궁 주련 학술조사에 참여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다.
1) 시행청 : 문화재청
? 문 화 재 청 장 : 유홍준
? 문화재청차장 : 이성원
? 문화유산국장 : 김창준
? 궁능관리과장 : 김종수
? 건 축 사 무 관 : 박왕희
? 감 독 관 : 장재혁
2) 자문위원
? 송준호(前연세대학교 교수, 한문학)
? 이정섭(문화재청 예능민속실 문화재 전문위원)
3) 연구 수행자
? 연구책임자
이광호(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 연구원
김영봉(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정호훈(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김채식(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연구원)
? 연구보조원
謝秀梅(연세대학교 대학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
권동연(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전병수(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4. 자문회의 및 중간보고 회의
가. 제1차 자문회의
1) 일시: 12월 5일
2) 장소: 문화재청 궁능관리과 회의실
3) 자문위원: 송준호, 이정섭
4) 자문 내용
? 근정전 월랑의 주련이 원래부터 현재의 위치에 있었는지 의문이다.
? 근정전 월랑의 ‘立愛敦親敎民以睦(입애돈친 교민이목)’에서 敎는 使의 뜻.
? ‘列卿尙書落花底春酒 王孫公子芳樹下淸歌’는 다른 주련들과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다.
? ‘恬嬉是戒文武俱全’에서 恬嬉는 ‘文恬武嬉’에서 유래한 것이다.
? ‘春秋門近地是淸要’에서 春秋門은 春秋館의 문일 가능성이 있다.
? ‘樂意相關禽對語’에서 樂意相關과 禽對語는 인과관계로 풀어야 할 것이다.
? 흐트러진 주련의 위치를 어떻게 재배열할 것인가.
? 없어진 주련의 복원 문제.
나. 제2차 자문회의
1) 일시: 12월 15일
2) 장소: 문화재청 궁능관리과 회의실
3) 자문위원: 송준호, 이정섭
4) 자문 내용
? 경복궁 함화당의 ‘渭北先殷尊酒懷(위북선은준주회)’에서 ‘殷’자의 판독 문제.
? 경복궁 함화당의 ‘閒眠東閣修花史(한면동각수화사) 偶坐南池注水經(우좌남지주수경)’에서 동각(東閣)은 두보의 ‘東閣宮梅動詩興’이라는 구절과 연관. 南池는 유종원이 잔치를 하던 곳의 지명.
? 경복궁 함화당의 '樂意相關禽對語'에서 關의 뜻풀이 문제-의성어보다는 동사로 풀이.
? 집옥재의 주련은 옥의 오덕(五德)과 연관하여 풀이해야 할 것.
? 창덕궁 농수정의 '春秋風日長精神'에서 '春秋'는 단순히 '봄 가을'의 뜻이라기보다는 '춘추필법'의 뜻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 창덕궁 취한정의 '華燈錯出暎朱塵'에서 '朱塵'은 임금 행차의 붉은 장막이란 뜻.
? 창덕궁 취한정의 '借與摩宵鶴數群'에서 '차여'는 빌려주다는 뜻으로 풀이할 것.
? 기타 용어 문제.
II . 주련의 이해
1. 주련의 의미
주련(柱聯)은 시문(詩文)의 구절을 널빤지에 새겨서 기둥에 붙여 놓는 장식물을 가리킨다. 한 구절만 독립적으로 붙이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반드시 두 구, 즉 한 연(聯)을 짝으로 하여 나란히 걸어 놓기 때문에 ‘기둥에 붙이는 연구(聯句)’라는 의미에서 ‘주련(柱聯)’이라고 일컫는다. ‘기둥 영(楹)’자를 써서 ‘영련(楹聯)’ 이라고도 하는데 ‘주련’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널리 쓰인다.
중국에서는 ‘대련(對聯)’이라는 용어도 같은 의미로 쓰고 있으나 이는 적절한 용어라고 보기 어렵다. 대련은 원래 한시(漢詩)에서 대구를 이루는 연(聯)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로는, 주련이 대구를 이루는 것이 보편적이 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며 대구가 되지 않는 구절, 즉 산구(散句)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시는 규칙상 율시(律詩)의 경우 3·4구인 함련(?聯)과 5·6구인 경련(頸聯)이 반드시 대구를 이루어야 한다. 물론 이는 기본 원칙이 그러한 것이며 변칙으로 1·2구도 대를 이룰 수 있고, 대구의 규칙과 무관한 절구(絶句)에서도 작가의 취향에 따라 대구를 구사할 수 있다. 율시에서는 이 대구를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에 따라 시의 가치가 좌우되는 수가 많기 때문에 시인들은 특히 대구의 구사에 많은 공력을 들였 다. 뛰어난 대구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이를 늘 감상하려는 의도에서 판에 새겨 기둥에 걸어 놓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2. 주련의 역사
주련의 풍습은 중국의 오대(五代) 시대에 시작되어 명(明)·청(淸) 시대에 성행하였으며, 그 후로는 한자 문화권의 일상 생활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주련의 유래는 ‘도부(桃符)’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찍이 진(秦)·한(漢) 이전 시대에 중국의 민간에서는 한 해를 보내면서 도부(桃符)를 걸어 놓는 풍습이 있었다. 이 도부는 정월에 복숭아 나무 판자에다 전설 속의 귀신인 ‘신도(神?)’와 ‘울루(鬱壘)1)’의 형상을 그려서 문의 좌우에 걸어 놓고 잡귀를 쫓아내는 의식으로 삼은 것인데, 뒤이어 그림 대신 그 이름을 써서 붙였다고 한다. 귀신은 복숭아 나무를 무서워한다고 믿어서 악귀를 쫓는 효험이 있다고 보았다.
1) 욱루(郁壘)라고도 한다.
이러한 풍습이 면면히 이어져서 오대 시대에 들어서는 시문의 연구(聯句)를 복숭아나무판에 새겨서 걸어 놓기에 이르렀다. 특히 봄이 시작되는 새해에 복을 비는 소망을 담아 이런 문구를 걸었기 때문에 ‘춘련(春聯)’이라고도 불렀으며, 이는 지금도 입춘이 되면 대문에 ‘立春大吉, 建陽多慶’ 등의 문구를 써 붙여 놓는 풍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흔히 춘첩자(春帖字)라고 한다. 오대 시대 후촉(後蜀:西蜀)의 임금인 맹창(孟昶)이 도부에다 ‘新年納余慶,嘉節號長春’이라고 쓴 것이 중국에서 춘련의 시초로 알려져 있으며 그후 송대(宋代)에 문인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춘련’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명명된 것은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으로부터였 다. 그가 남경(南京:金陵)에 도읍을 정한 후 제야(除夜)에 갑자기 명령을 내려 모든 공경(公卿), 사대부, 서민의 집 문에 춘련을 붙이게 했다. 그리고는 미복(微服)을 하고 대궐 밖으로 나가 둘러보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이후로 명대(明代)에는 도부 대신 종이에 글을 써 붙이는 춘련(春聯)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청나라에 들어서는 더욱 성행하였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주변의 한자 문화권 나라에도 널리 전파되었다.
3. 주련의 배열
주련의 배열은 짝이 되는 두 구를 우와 좌로 배치하기도 하고, 한편의 절구(絶句)를 우에서 좌로 배치하기도 하며, 규모가 큰 건물의 경우 우에서 좌로 기둥 전체에 배치하기도 한다. 즉 일반적으로 한문을 기록하는 순서처럼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어가도록 배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다각형으로 되어 있거나 2열 구조 등 좀 더 복합적인 형태를 가진 건물일 경우에는 이런 원칙이 적용되기 어렵다. 이런 경우의 배열 순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체적인 원칙은 역시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즉 시계 방향으로 배열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본 보고서에 실린 주련도 거의가 다 이러한 순서를 따랐다.
그런데 예외적인 경우가 보인다. 창덕궁(昌德宮) 연경당(演慶堂)의 경우는 건물 구조가 독특하여 주련을 이러한 순서로 배치하지 않고 있다. 연경당은 동서로 두 개의 공간이 나누어지는데, 좁은 문으로 통하기는 하지만 두 공간이 거의 막혀 있는 형태여서 시계방향으로의 동선(動線)이 확보되지 않는다. 현재의 구조로는 동쪽 의 공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동선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연경당의 주련은 일관되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가도록 걸려 있으며 본 보고서에서도 이 순서를 따랐다.
III . 궁궐별 주련 조사 내용
경복궁(景福宮)
1. 근정전(勤政殿) 월랑(月廊)
【연혁】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인 1395년(태조 4)에 처음 지었으며1) 정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867년(고종 4)에 다시 지었는데, 처음 있던 건물에 비해 많이 변형되었다.
행각의 동쪽에 융문루(隆文樓)가 있고, 서쪽에 융무루(隆武樓)가 있다. ‘勤政’은 ‘정치를 부지런히 함’을 의미하며 정도전(鄭道傳)이 이름을 지었다. 정도전은 치세가 이루어지려면 정사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 경전의 표현을 빌려 작명하였다.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勤政門)의 동쪽 행각에 주련이 걸려 있다.
1) 『太祖實錄』 권8, 태조 4년 10월 7일(丁酉),
“命判三司事鄭道傳, 名新宮諸殿. 道傳撰名. 幷書所撰之義以進. 新宮曰景福. 燕寢曰康寧殿. 東小寢曰延生殿. 西小寢曰慶成殿., 燕寢之南曰思政殿. 又其南曰勤政殿. 東樓曰隆文. 西樓曰隆武., 殿門曰勤政. 午門曰正門”.
<근정전 월랑 전경>
(1) 주련 사진
(2) 주련 해석
(1) (2)
① 立愛敦親 敎民以睦(입애돈친 교민이목)
사랑을 확립하고 친족끼리 돈독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을 화목하게 하고,
② 好學樂善 爲世所宗(호학낙선 위세소종)
배움을 좋아하고 선을 즐김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받드는 바가 된다.
【풀이】
군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사랑, 화목, 배움, 선을 내세워 이것이 참다운 정치의 요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3) (4)
③ 序昭六親 殷道隆盛(서소육친 은도융성)
질서가 육친(六親)2)에 밝으니 은나라의 도가 융성하고,
④ 德推九睦 治堯??(덕추구목 치요협화)
덕이 구족(九族)3)에 미치니 요임금의 정치가 화목하도다.
【풀이】
임금으로서 정치의 요체는 친족이 화목하게 하도록 만드는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친족이 질서가 있고 친해야 나라가 융성하고 정치가 잘 이루어져 화목한 세상이 된다는 말이다.
구목(九睦)은 구족과 친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이 뜻은 『주례(周5)』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에서 설명하는 육행(六行)의 하나인 ‘목(睦)’에 대한 옛 주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현(鄭玄)은 “목은 구족과 친하게 지내다는 뜻이다(睦, 親於九族)”고 풀었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의 “克明俊德, 以親九族, 九族旣睦, 平章百姓, 百姓昭明, 協和萬邦, 於變時雍.(능히 큰 덕을 밝혀 구족을 친히 하시니 구족6이 이미 화목하거늘, 백성을 고루 밝히시니 백성이 덕을 밝히며, 만방을 합하여 고르게 하시니 일반 백성들이 아! 변하여 이에 화하였도다.)”에 대한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서는 “能使九族敦睦, 百姓顯明, 萬邦和睦.(능히 구족으로 하여금 돈독하고 화목하게 하니 백성들이 밝게 드러나고 만방이 화목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은 ‘協’과 같은 자이고 ‘?’는 ‘和’의 옛 글자이다.
【참고】
1957년에 舊皇室財産事務總局에서 조사한 『각궁주련조서(各宮柱聯調書)』4)에는 두 짝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2) 육친(六親): 육척(六戚)이라고도 하며 부?모?형?제?처?자를 이른다.
3) 구족(九族):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보통 본인을 중심으로 하여 9대에 걸친 직계(直系)친족을 말한다. 즉, 고조부 모(高祖父母)·증조부모(曾祖父母)·조부모·부모·본인·아들·손자·증손·현손(玄孫)의 9대에 걸친 친족이다. <『서경 (書經)』 ?요전(堯典)?, “克明俊德, 以親九族”에 대한 채침(蔡沈)의 주석>.
4) 장서각 소장. 內題는 ‘各宮殿亭의 柱聯’이다.
(5) (6)
⑤ 列卿尙書 落花底春酒(열경상서 낙화저춘주)
구경(九卿)5)과 상서(尙書)들은 떨어지는 꽃 아래에서 봄 술을 마시고,
⑥ 王孫公子 芳樹下淸歌(왕손공자 방수하청가)
왕손과 공자들은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서 청아한 노래를 부르도다.
【풀이】
여러 고관들과 귀족의 자제들이 아름다운 봄 경치를 즐기며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는 단순히 풍류를 즐긴다는 것이 아니고 그만큼 나라가 태평하여 근심 걱정이 없음을 나타낸다.
열경(列卿)은 구경(九卿)과 같은 말이며 왕손(王孫)과 공자(公子)는 왕자와 귀족의 자제를 가리킨다.
뒤 구절은 당나라 유희이(劉希夷)의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6) 중 “公子王孫芳樹下, 淸歌妙舞落花前”을 응용한 표현으로 보인다.
5) 구경(九卿): 아홉 사람의 대신(大臣). 시대별로 명칭이 달랐으나 후대에는 주로 3공(三公) 버금가는 고관들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6) 이 시는 『고문진보(古文眞寶)』등 일부 문헌에는 송지문(宋之問)의 ?유소사(有所思)?라는 작품으로 실려 있다.
(7) (8)
⑦ ?禦宗邦 維城維翰(한어종방 유성유한)
나라를 막고 지키는 것은 성(城)과 중신(重臣)이며,
⑧ 夾介王室 之屛之藩(협개왕실 지병지번)
왕실을 감싸 보호하는 것은 병(屛)과 번(藩)이로다.
【풀이】
튼튼한 성과 믿음직한 주석지신(柱石之臣)이 나라를 지키는 요체이며, 주변의 제후국들이 천자의 나라를 외곽에서 잘 모시고 돕는다는 뜻이다.
‘한(翰)’은 ‘간(?)’의 뜻으로 쓰였으며 여기서는 국가의 기둥이 되는 주석지신(柱石之臣)·동량지신(棟樑之臣)을 뜻한다. 병(屛:병풍)과 번(藩;울타리)은 병풍과 울타리처럼 천자국을 보호하는 주변의 여러 제후국을 가리킨다.
『시경(詩經)』의 ?대아(大雅)·판(板)? 편에서 “价人維藩, 大師維垣, 大邦維屛, 大宗維翰, 懷德維寧, 宗子維城, 無?城壞, 無獨斯畏.(덕이 큰 사람은 나라의 울타리이며, 많은 무리는 나라의 담장이며, 강한 제후국은 나라의 병풍이며, 강한 종족은 나라의 기둥이며, 덕을 품은 자는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며, 왕실 종친은 나라의 성이니, 성이 무너지게 하지 말아서 혼자되어 두려워하게 하지 말라.)”라고 한 구절을 응용한 표현이다.
이 작품은 범백(凡伯)이 여왕(?王)을 풍자한 시로 알려져 있다.
인용한 구절에서 앞에 든 여섯 가지는 모두 군주가 믿고서 편안할 수 있는 것인데 덕이 그 근본임을 말한다고 하였다.
(9) (10)
⑨ 休戚與同 忠愛?篤(휴척여동 충애미독)
기쁨과 슬픔을 더불어 함께하면 충성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돈독해지며,
⑩ 恬嬉是戒 文武俱全(염희시계 문무구전)
편하게 놀고 즐기는 것을 경계하면 문(文)과 무(武)가 두루 온전해진다.
【풀이】
임금과 신하가 국가를 올바로 경영하는데 갖추어야 할 덕목을 설명하였다.
‘휴척(休戚)’은 ‘휴척(休慽)’과 같으며 ‘기쁜 일과 슬픈 일’이라는 뜻이고, ‘미(?)’ 는 ‘더욱’이라는 뜻이다.
‘염희(恬嬉)’는 ‘편하게 놀고 즐긴다’는 뜻이다.
출전은 한유(韓愈)의 ?평회서비(平淮西碑)?이며 ‘文恬武嬉’로 쓰여서 ‘재상이나 장수들이 문인으로서 편안히 지내고 무인으로서 즐기기만 하였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7)
7) 唐 韓愈 『平淮西碑』. “相臣將臣, 文恬武嬉, 習熟見聞, 以爲當然.”
(11) (12)
⑪ 天漢殿高 孰不欽敬(천한전고 숙불흠경)
천한전(天漢殿) 드높으니 그 누가 공경하지 않으리요.
⑫ 春秋門近 地是淸要(춘추문근 지시청요)
춘추문(春秋門) 가까우니 청요(淸要)8)의 자리로다.
【풀이】
드높은 전각이 있는 궁궐의 위엄 있는 모습과 청환직(淸宦職)의 중요한 관리들을 칭송한 표현이다.
천한전(天漢殿)은 임금의 상징으로 쓰였으며,9) 춘추문(春秋門)은 청요직의 신하들이 근무하는 곳에 가까이 있는 궁문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10)
8) 청요직(淸要職): 지위가 높고 중요한 벼슬. 조선시대에는 특히 청환(淸宦)과 요직(要職)을 가리킨다. 청환은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만 시키던 벼슬로, 규장각·홍문관·예문관 등의 벼슬이다. 지위와 봉록은 낮으나 뒤에 고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이다.
9) 천한전(天漢殿)은 중국에는 용례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고종 때 문헌에 비로소 보이는데, 종친부(宗親”) 안에 있던 전각 이름이며 1865년(고종 2)에 철종의 어용(御容)을 봉안하였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제1권, 경도(京都)>. 여기서는 실제의 전각 이름이라기보다는 임금이 거처하는 전각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
10) 춘추문(春秋門) 역시 문헌상에서 찾을 수 없어 실재한 문으로 보기 어렵다. ‘춘추관(春秋館)의 문’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청요직’에 비추어 보면 춘추관으로 한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13)
⑬ 完矣美矣 公子謂善居(완의미의 공자위선거)
완전하고 아름다움은 공자(公子) 형(荊)의 훌륭한 살림살이를 얘기하는 것이라네.
【풀이】
위(衛)나라 공자(公子) 형(荊)이 거처를 잘 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의 “子謂衛公子荊, ‘善居室, 始有曰苟合矣, 少有曰苟完矣, “有曰苟美矣’.(공자께서 위나라 공자 형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집에 거처하기를 잘 하였도다. 처음에 살림을 하게 되어서는 그런대로 모아졌다고 하였고, 조금 살림을 갖추어서는 그런대로 완비되었다고 하였고, 부유하게 갖추어서는 그런대로 아름답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라는 구절을 응용한 표현이다.
이는 위나라 공자 형이 욕심이 없고 소박한 생활을 지향한 점을 칭찬하여 당시 권문세가들의 탐욕과 사치를 경계하고자 한 말이다. 이 주련에서는 나머지 한 짝이 분실되어서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참고】
나머지 주련들이 모두 대련(對聯)으로 되어 있는데 이 구절만 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3) 현재의 주련 배열
日華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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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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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함화당(咸和堂)
【연혁】
집경당과 함께 흥복전(興福殿)에 예속된 건물이다. 흥복전은 왕의 후궁들이 살던 공간인 빈궁(嬪宮)이다. 궁궐 내 여성 관리인 내명부(內命’)에 적절한 소임을 주고 독립된 건물 채인 각 전(殿)에 배속시키는 본부 역할을 했으며, 외국 사신을 만나는 편전으로도 활용됐다.
함화당은 집경당(緝敬堂)의 서쪽에 있으면서 서로 내부에서 왕래할 수 있게 구조된 복도삼간으로 이어져 있다. 예전에는 복도 남쪽에 샛담이 있고 계명문(啓明門)이라는 일문(日門)과 영춘문(迎春門)이라는 월문(月門)이 있었다. 영지문(迎祉門)?창무문(彰武門) 등 여러 일각 대문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고 현재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함화당 전경>
(1) 주련 사진
(2) 주련 해석
(1)
① 可釣可?盤谷序(가조가경반곡서)
낚시질할 만하고 밭갈이할 만하니 반곡서(盤谷序)11)이고,
【풀이】
은거하며 유유자적하는 은자의 자족적인 생활을 그린 구절이다. 탈세속의 공간에서 자족하는 모습을 노래하였다.
원나라의 양공원(楊公遠)이 지은 ?初夏旅中五首?12) 중 제5수에 나오는 구절을 따온 것인데, 짝이 되는 뒷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참고】
분실된 뒷 구절은 다음과 같다.
◎ 堪詩堪畵輞川圖(감시감화망천도)
시 지을 만하고 그림 그릴 만하니 망천도(輞川圖)13)라네.
낙선재(樂善齋)에 같은 문구의 주련이 짝이 갖추어져 걸려 있다.
11) 반곡서(盤谷序): 당나라 한유(韓愈)의 ?이원이 반곡으로 돌아감을 전송하는 글(送李愿歸盤谷序)?을 가리킨다. 이원(李愿)이 반곡에 은거해 살면서 세상의 명리에 초월하여 홀로 유유자적하겠다는 취지를 말하자 한유가 이에 대해 찬동하였다. 한유(韓愈),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
“釣於水鮮可食”, “盤之中, 維子之宮. 盤之土, 可以稼. 盤之泉, 可濯可沿. 盤之阻, 誰爭子所?”
12) 楊公遠, ?初夏旅中五首?, “(第五)每憶吾廬隱者居 天然景物足淸娛 樹林陰?鶯求友 簾幕深沈燕引雛 可釣可耕盤谷序 堪詩堪?輞川圖 何當歸去北?臥 能勝羲皇以上無”
13) 망천도(輞川圖) : 왕유가 자신의 별장이 있는 망천(輞川)의 풍경을 그린 그림. 왕유는 이곳에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유유자적하였다 한다. 송나라 소식(蘇軾)이 이에 대해 “詩中有?, ?中有詩.”라고 평하였다.
(2)
② 雲裏帝城雙鳳闕(운리제성쌍봉궐)
구름 속 도성에는 한 쌍의 봉궐(鳳闕)14)이요,
【풀이】
도성 안의 구름 속에 우뚝 솟아 있는 궁궐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奉和聖製從蓬萊向興慶閣道中留春雨中春望之作應制?15)에서 따온 구절인 데 짝이 되는 뒷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참고】
분실된 뒤 구절은 다음과 같다.
◎ 雨中春樹萬人家(우중춘수만인가)
빗속의 봄 숲에는 수많은 인가로다.
창덕궁(昌德宮)의 연경당(演慶堂)과 한정당(閒靜堂)에도 같은 문구의 주련이 짝이 갖추어져 걸려 있다.
14) 봉궐(鳳闕): 궁궐의 문 또는 궁궐을 이르는 말. 중국 한나라 때에 궁궐의 문 위에 구리로 만든 봉황을 장식한
15) 王維,, ?奉和聖製從蓬萊向興慶閣道中留春雨中春望之作應制?. “渭水自?秦甸曲 ?山舊繞漢宮斜 ?輿?出仙門柳閣道遙看上苑花 雲裏帝城雙鳳闕 雨中春樹萬人家 爲乘陽氣行時! 不是宸遊重物華”
(3)
③ 能招過客飮文字(능초과객음문자)
과객을 불러 시문을 음미할 만하고,
【풀이】
혼자 조용히 은거하면서 손님이 찾아오면 문장을 논하기도 하면서 산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고 사는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송나라 때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왕안석이 지은 장편 고시 ?화왕미지등고재삼수(和王微之登高齋三首)?16) 가운데 제 1수의 한 구절인데 짝이 되는 뒷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참고】
분실된 뒤 구절은 다음과 같다.
◎ 山水又足供歡?(산수우족공환해)
산수는 또 기쁜 웃음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네.
16) 宋, 王安石, 『臨川文集』 卷6, ?和王微之登高齋三首?중 제1수.
“寒雲沈屯白日埋 河漢蕩坼天如? 衡門兼旬限泥? ?聽?木鳴相? 蕭辰忽掃纖?盡 北嶺初出?嵬嵬 微之新詩動我目 爛若火齊金盤堆 想?諸彦眺平野 高論??秦以來 ?船淋浪始快意 忽憶歸雲胡爲哉 念君少壯輟游衍 發揮春秋名玉杯 書成不得斷國論 但此空語傳八垓 登臨興罷因感觸 更欲遠引追宗雷 君知“
貴亦何有 ?譽未足償譏排 風豪雨?費調? 坐使髮背爲?台 留賓往往夜?半 雖有?俎無由開 江南佳麗非一日 ?乃故園名池臺 能招過客飮文字 山水又足供歡? 剩留官屋貯酒母 取醉不竭當如淮”
*臺 : (基 - 土 + 至)
(4) (5)
④ 閒眠東閣修花史(한면동각수화사)
한가로이 동각에서 잠자며 화사(花史)17)를 수정하고,
⑤ 偶坐南池注水經(우좌남지주수경)
우연히 남지에 앉아 수경(水經)18)에 주석을 하네.
【풀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은자의 모습을 그린 구절이다.
동각(東閣)은 양(梁) 나라 하손(何遜)이 동각(東閣)을 개방하고 문인(門人)을 초빙하여 매화를 감상했던 고사에서 따온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揚州”라는 구절이 있다.19)
『추구(推句)』에는 “西亭江上月, 東閣雪中梅" 라는 작자 미상의 구절이 실려 있다.
‘남지(南池)’는 중국의 호남성(湖南省) 영릉현(零陵縣)에 있는 지명으로 유종원(柳宗元)이 여기서 잔치를 하였다. 유종원이 지은 『陪崔使君遊宴南池序』라는 글이 있다.
【참고】
왼쪽에 필사자를 나타내는 ‘鐵保’라는 글이 적혀 있고, 아래에는 ‘又字鐵卿’이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철보(鐵保, 1752~1824)는 호가 매암(梅庵)20), 자가 야정(冶亭)으로 만주(滿洲) 출신의 청나라 서예가이며 당대의 명가인 유용(劉墉), 옹방강(翁方綱) 등과 명성이 나란하였다.
『유청재전집(惟淸齋全集)』·『백산시개(白山詩介)』·『회상제금집(淮上題襟集)』과 ?유청재첩(惟淸齋帖)?·?예림소중(藝林所重)?이 전하고 있다. 박제가(朴齊家)와 교유하여 자주 서신을 왕래하였으며, 박제가는 연작 ?회인시(懷人詩)?에서 세 차례나 그에 대해 읊었다.21)
17) 화사(花史): 화훼(花卉)에 관하여 기록한 책.
18) 수경(水經): 3세기경에 이루어진 작자불명의 책으로, 하천의 발원지·경류지(經流地)·합류지 또는 입해지(入海地) 등을 간단히 기록해 놓았다. 일설에는 한나라의 상흠(桑欽), 또는 진(晉)나라의 곽박(郭璞)이 지었다고 한다. 북위(北魏) 때의 학자 역도원(?道元)이 주석을 가한 『수경주(水經注)』가 유명하다.
19) 『杜少陵詩集』 卷9, ?和裵迪登蜀州東亭 送客逢早梅 相憶見寄?.
20) 『中文大辭典』에는 자(字)가 매암이라고 하였으나 잘못인 듯하다.
21) 朴齊家, 『貞?閣集』, 初集 ?戱倣王漁洋歲暮懷人六十首幷小序? 중 ?鐵虛閒堂保?, 三集 ?懷人詩?蔣心餘? 중 ?鐵冶亭保?, 四集 ?續懷人詩十八首? 중 ?鐵冶亭保?.
(6) (7)
⑥ 平生所學爲何事(평생소학위하사)
평생에 배운 바는 무슨 일을 위함인가?
⑦ 後世有人知此心(후세유인지차심)
후세에 뉘 있어서 이 마음을 알아주리.
【풀이】
평생 동안 공부한 경륜이 지금 쓰이지 못한 한탄과 함께 후세에는 알아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위안을 가져보는 내용이다.
송나라 시인 육유(陸游)의 문집 『검남시고(劍南詩?)』에 실려 있는?서창독작(西?獨酌)?22)의 한 구절이다.
22) 宋, 陸游, 『劍南詩?』, ?西?獨酌?. “却掃衡門歲月深 殘骸況復病交侵 平生所學爲何事 後世有人知此心 水落枯萍?破塊 霜高丹葉照?林 一樽濁酒西?下 安得無功與共斟”
(8) (9)
⑧ 妙書鴻戱秋江水(묘서홍희추강수)
절묘한 글씨는 가을 강물에서 기러기가 희롱하는 듯하고,
⑨ 好句風行曉苑花(호구풍행효원화)
아름다운 시 구절은 새벽 화원에 바람이 지나가는 듯하네.
【풀이】
절묘한 글씨의 품격을 가을 강물에서 기러기가 유유하게 헤엄치며 노니는 것에 비유하고, 아름다운 시 구절을 새벽 화원의 꽃을 스치며 부는 바람에 비유하였다.
원(元) 나라 시인 유선(劉詵)의 『계은시집(桂隱詩集)』에 실린 ?화장한영견수(和張漢英見壽)?23) 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23) 元, 劉詵, 『桂隱詩集』 ?1, ?和張漢英見壽?.
“吾里文章小晏家 才情欲學賈長沙 妙書鴻?秋江水 佳句風行曉苑花 “
貴未來歌?角 畸窮相對賦煎茶 芳年京國蜚騰近 預想春車墮馬?”
(10) (11)
⑩ 瓦當文延年益壽(와당문연년익수)
와당에는 ‘연년익수(延年益壽)’24)라고 씌어 있고
⑪ 銅盤銘富貴吉祥(동반명부귀길상)
동반에는 ‘부귀길상(“富貴吉祥)’25)이라고 새겨졌네.
【풀이】
기와에는 장수하라는 뜻의 글을 장식하였고, 구리 쟁반에는 부귀와 복을 누리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는 뜻이다.
【참고】
왼쪽에 필사자를 나타내는 ‘趙光’이라는 글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 ‘蓉舫’이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조광(趙光: 1797~1865)은 청나라 운남(雲南) 곤명(昆明) 출신으로 자는 용방(蓉舫), 호는 퇴암(退庵), 시호는 문각(文恪)이다. 1820(가경25)년 진사가 되어 벼슬이 형부상서에 이르렀다. 시문을 잘 하였고, 동기창(董其昌)의 서법
에 능하였다.
낙선재에도 같은 주련이 있다.
24) 연년익수(延年益壽): 수명을 늘려 더욱 오래 살라는 뜻이다.
25) 부귀길상(“貴吉祥): 부귀와 좋은 복을 누리라는 뜻이다.
(12)
⑫ 誰憐?筆才名重(수련화필재명중)
그림과 글씨로 재주와 명성 높음을 누가 어여삐 여기리요.
【풀이】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으나 알아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참고】
출전 미상이며 대구(對句)가 되는 글이 없어 한 짝은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13)
⑬ 巖前倚杖看雲起(암전의장간운기)
바위 앞에 지팡이 짚고 구름 이는 모습 바라보다,
【풀이】
산속에 은거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모습을 표현한 구절이다.
원나라 시인 조문회(曹文晦)의 문집인 『신산집(新山集)』에 실려 있는 ?성수산휴서(聖壽山休暑)?26)의 한 구절이다. 짝이 되는 뒤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참고】
분실된 뒤 구절은 다음과 같다.
◎ 松下橫?待鶴歸(송하횡금대학귀)
솔 아래서 거문고 끼고 학이 돌아오길 기다리네.
26) 庶吉士顧嗣立編, 『元詩選二集』卷19, 曹文晦, 『新山集』 ?聖壽山休暑?.
“桐柏山西暑氣微 碧蘿凉吹透?衣 巖前倚杖看雲起 松下??待鶴歸 白眼看人多變態 ?雲得路有危機 下方風浪休回首 深閉柴門到夕暉”
(14)
⑭ 轉覺林泉興味長(전각임천흥미장)
산림 속 흥미가 길어짐을 더욱 느끼리.
【풀이】
아래 ‘참고’에 소개한 분실된 앞 구절과 연관지어 해석해 보면, 스님이 선물해 준 부채를 들고 아름다운 숲속으로 들어가면 산림 속의 흥취가 점점 길어짐을 더욱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송(宋) 나라 시인 채양(蔡襄)의 문집인 『단명집(端明集)』에 실려 있는 시 ?장주백련승종요견유지선 매선각서일수(?州白蓮僧宗要見遺紙扇, 每扇各書一首)?의 제9수 중 한 구절이다.27)
짝이 되는 앞 구절은 분실되었다.
【참고】
분실된 앞 구절은 다음과 같다.
◎ 直應携去林泉好(직응휴거임천호)
(부채를) 받아들고 아름다운 산천으로 가게 되면,
27) 宋, 蔡襄, 『端明集』, ??州白蓮僧宗要見遺紙扇每扇各書一首?.
“不掩歌脣向?堂 不須名筆作花房 直應?去林泉好 轉覺林泉興味長”
(15)
⑮ 渭北先殷尊酒懷(위북선은준주회)
위수 북쪽의 옛 은나라, 술잔을 그리워하네.
【풀이】
자세한 의미와 출전 등을 알 수 없다. 대구가 되는 글이 없어 한 짝이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先殷’의 뜻은 미상이며 ‘尊(준)’은 ‘樽(준)’과 통용된 글자이다.
【참고】
杜甫의 ?春日憶李白?시 “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尊酒, 重與細論文”을 응용한 표현인 듯하다.
(16) (17)
? 養竹不除當路筍(양죽불제당로순)
대 기르기 좋아하여 길에 자란 죽순도 베지 않고,
? 愛松留得?門枝(애송유득애문지)
솔을 사랑해 문 가린 가지도 남겨 두었네.
【풀이】
자연을 사랑하여 인위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 천연스런 삶을 읊은 구절이다.
당나라 스님 貫休의 ?山居詩二十四首?28) 중 제8수의 함련(?聯)에서 따온 구절이다.
【참고】
창덕궁 선향재(善香齋)에도 같은 주련이 있다.
28) 貫休, ?山居詩二十四首?. “心心心不住希夷 石屋???髮垂 養竹不除當路筍 愛松留得?人枝 焚香開卷霞生?捲箔冥心月在池 多少故人頭盡白 不知今日又何之”
(18)
? 樂意相關禽對語(낙의상관금대어)
즐거운 뜻 서로 관계하여 새들은 마주하여 지저귀고,
【풀이】
즐거운 마음을 나누는 듯이 서로 마주 대해 지저귀는 새들의 모습을 노래하였다.
석연년(石延年)의 시 ?金鄕張氏園亭?29)에서 따온 구절이다. 짝이 되는 뒤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참고】
분실된 뒤 구절은 다음과 같다.
◎ 生香不斷樹交花(생향불단수교화)
향기 풍겨 끊이지 않으니 나무에는 꽃이 흐드러지네.
창덕궁 연경당에도 같은 내용의 주련이 짝이 갖추어져 걸려 있다.
29) 石延年, ?金鄕張氏園亭?. “亭館連城敵謝家 四時園色?明霞 窓迎西渭封侯竹 地接東陵隱士家
樂意相關禽對語 生香不斷樹交花 縱遊會約無留事 醉待參?月落斜”
(3) 현재의 주련 배열
3. 향원정(香遠亭)
【연혁】
함화당 뒤쪽의 연못인 향원지(香遠池)의 가운데 섬에 있는 정자이다. 언제 만들어 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록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887년(고종 24)으로, 이해 ‘향원정’을 제술(製述)의 주제로 삼아 유생들의 전강(殿講)을 실시하였다. ‘香遠’ 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으로, 북송대 학자 주돈이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의
‘향기가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진다(香遠益淸)’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향원정 전경>
(1) 주련 사진
(2) 주련 해석
(1)
① 玉池龍躍舞(옥지용약무)
아름다운 연못에 용이 뛰쳐 오르며 춤춘다.
【풀이】
옥지(玉池)는 신선이 사는 곳의 연못을 뜻한다. 남조(南朝) 시대 양(梁)나라 강엄(江淹)의 ?효혜강언지(效?康言志)? 시에 “朝食琅?實, 夕飮玉池津”이라는 구절이있다.
【참고】
출전은 미상이며, 대구가 되는 구절이 없어 한 짝이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2) (3)
② 千山華月逈(천산화월형)
천산에는 빛나는 달이 멀리까지 비추고
③ 萬里衆星明(만리중성명)
만리에는 뭇 별들이 밝게 빛나네.
【풀이】
온 산에는 하늘 높이 뜬 달이 밝게 비추어주고, 먼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묘사하였다.
【참고】
필사자를 나타내는 ‘?’이란 글자가 있어 중국 북송(北宋)의 미불(米?)의 글씨임을 알 수 있다.
미불은 자는 원장(元章), 호는 남궁(南宮)·해악(海岳)으로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 출신이다. 관직은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에 이르렀고 궁정의 서화박사(書畵博士)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규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기행(奇行)이 심했다. 수묵화뿐만 아니라 문장·서(書)·시(詩)·고미술 일반에 대하여도 조예가 깊었고, 소동파(蘇東坡)·황정견(黃庭堅) 등과 친교가 있었다.
(4) (5)
④ 崑?雲霞積(곤랑운하적)
곤륜산 꼭대기에는 구름 노을 쌓였고,
⑤ 蓬壺日月長(봉호일월장)
신선 사는 봉래에는 세월이 길도다.
【풀이】
향원정이 있는 섬을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으로 비유하여 선계처럼 세월이 가는 줄 모른다는 것과 경치가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봉호(蓬壺)’는 봉래산(蓬萊山)의 별칭이다. 이 산은 동해 가운데 있으며 신선이 사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생긴 모양이 병같이 생겼으므로, 이와 같이 불렸다.
‘곤랑(崑?)’은 곤륜산 꼭대기에 있다는 봉우리인 낭풍전(?風?)을 이른다. 신선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역시 필사자를 나타내는 ‘?’이란 글자가 있어 미불의 글씨임을 알 수 있다. 짝을 잃은 ①번도 같은 필체임을 보아 이 향원정의 글씨는 모두 미불의 작품이다.
(3) 현재의 주련 배열
4. 집옥재(集玉齋)
【연혁】
향원정 뒤쪽에 있는 건물이다. 1881년(고종 18)에 함녕전(咸寧殿)의 북별당(北別堂)으로 지었으며,30) 1891년(고종 28)에 보현당(普賢堂) 뒤쪽으로 이건(移建)하였다.31)
정면의 여섯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30)『日省錄』 고종 18년(1881) 9월 24일(癸丑), “營建所, 以咸寧殿北別堂堂號, 及集玉齋上樑文製述官?書寫官?懸板書寫官差出, 啓. 咸寧殿北別堂堂號集玉齋, 集玉齋上樑文製述官上護軍金炳始, 書寫官大護軍金元植, 懸板書寫官直提學金永壽”.
31)『高宗實錄』 권28, 고종 28년 7월 13일(乙亥), “命寶賢堂改建, 集玉齊移建, !重建所擧行”.
<집옥재 전경>
(1) 주련 사진
(2) 주련 해석
(1) (2)
① 灑潤含膏 雲氣多壽 (쇄윤함고 운기다수)
촉촉이 젖어 기름지니 운기(雲氣)는 장수하게 해주고,
② 稱物納照 鏡心彌光 (칭물납조 경심미광)
만나는 사물마다 비추어주니 거울은 더욱 밝도다.
【풀이】
집옥재의 이름 중에서 ‘옥(玉)’의 ‘온윤(溫潤)’한 덕목을 설명한 것이다. 촉촉이 비를 내리는 구름처럼 임금께서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사물을 비추는 거울처럼 임금 또한 사리를 밝게 판단하여 정치를 잘 하라는 염원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운기다수(雲氣多壽)는 구름 기운이 사람을 장수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는 말로,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 ?광지(廣知)?편에, “山氣多男, 澤氣多女, 水氣多?, 風氣多聾, 木氣多?, 石氣多力, 阻險氣多?, 暑氣多殘, 雲氣多壽, 谷氣多痺, 丘氣多?, 衍氣多仁, 陵氣多貪.”라고 하였다.
칭물납조(稱物納照)는 모든 사물들이 고루 햇빛을 받는다는 의미로, 육기(陸機)의 ?연연주오십수(演連珠五十首)?(『文選』)에 “靈輝朝?, 稱物納照.”라고 되어 있다.
【참고】
왼쪽에 필사자인 ‘王杰(왕걸)’이라는 이름과 ‘王偉人印(왕위인인)’이란 사각의 음각도장이 새겨져 있다.
왕걸(王杰: 1725~1805)은 청나라 섬서(陝西) 한성(韓城) 출신으로 자는 위인(偉人), 호는 성원(惺園)?보순(?淳)?외당(畏堂),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1761(건륭26)년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이 동각태학사(東閣太學士)에 이르렀다. 조맹부의 서법에 능하였고 소해(小楷)를 잘 썼다.
(3) (4)
③ 玉樹?? 雲煙煥采 (옥수능소 운연환채)
아름다운 나무가 하늘에 솟으니 안개구름 찬란히 빛나고,
④ 寶花留硏 筆墨生香 (보화류연 필묵생향)
귀한 꽃이 벼룻가에 머무니 필묵(筆墨)에 향기가 나도다!
【풀이】
집옥재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안에 귀한 서화작품과 문방구들이 소장되어 있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옥수(玉樹)는 진귀한 보석으로 만든 나무, 또는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뛰어난 인재를 비유하기도 한다.
능소(??)는 하늘에까지 솟는 것을 의미하며 능소화나무를 가리키기도 한다.
보화(寶華)는 귀중한 꽃을 의미하며 혹 모란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참고】
왼쪽에 ‘張國華(장국화)’라고 적혀 있고 아래에 사각의 도장이 찍혀 있으나 정확한 판독이 어려워 누구인지는 미상이다.
(5) (6)
⑤ 西山朝來 致有爽氣 (서산조래 치유상기)
서산에 아침이 되니 상쾌한 기운이 이르고,
⑥ 太華夜碧 人聞淸鐘 (태화야벽 인문청종)
태화산(太華山)32)에 밤 깊으니 맑은 종소리를 듣도다!
【풀이】
집옥재의 맑고 깨끗한 분위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앞 구절은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자신의 근무를 태만을 지적하는 환충(桓?)에게 대답한 구절이다. 자신은 벼슬에 뜻이 없이 속세를 훌쩍 초월하였음을 은유한 구절이다.33)
아래 구절은 당나라 사공도(司空圖)34)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에서 뽑은 것으로, ‘고고(高古)’라는 풍격을 설명한 내용이다.35)
【참고】
왼쪽에 필사자인 ‘翁方綱(옹방강)’이라는 이름과 ‘담계(覃谿)’라는 사각 도장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색깔이 칠해져 있지 않아, 세심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은 청나라 대흥(大興: 북경) 출신으로 자는 정삼(正三),호는 담계(覃溪)이다. 1752(건륭17)년 진사가 되어 벼슬이 내각학사(內閣學士)에 올랐다. 시문(詩文)에 능하였고, 고증(考證)?금석(金石)?서법(書法)에 정통하였다.
김정희(金正喜)를 비롯한 조선의 문인들과 많은 교유를 하여 조선의 청조학 수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32) 태화산(太華山): 오악의 하나. 섬서성(陝西省) 화음현(華陰縣)의 남쪽에 있으며 화산(華山)이라고도 부름.
33) 『晉書』, ?列傳 第五十?, <王徽之>, “?嘗謂徽之曰 卿在”日久, 比當相料理. 徽之初不酬答, 直高視, 以手版?頰云, 西山朝來, 致有爽氣耳.”
34) 사공도(司空圖) : 837~908. 당나라 시인?시론가. 자는 표성(表聖). 산서성(山西省) 하중우향(河中虞鄕) 출신. 869년 진사(進士)에 급제, 벼슬이 지제고(知制誥)에 이르렀다. 그의 시는 기품이 있어 만당의 으뜸으로 꼽혔다. 『사공표성문집(司空表聖文集)』10권과 시집 5권이 전해지고 있다. 또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은 시의 의경(意境)을 24품(品)으로 나누어 상징적으로 해설하여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5) 司空圖, ?二十四詩品?, ?高古?, “畸人乘眞, 手把芙蓉, 汎彼浩劫, ?然空縱, 月出東斗, 好風相從, 太華夜碧, 人聞淸鐘, 虛佇神素, 脫然畦封, 黃唐在獨, 落落玄宗.”
(3) 현재의 주련 배열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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