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夷)” - 이이제이(以夷制夷) / pluskorea times 기사
2019. 2. 3. 19:52ㆍ우리 역사 바로알기
위대한 “이(夷)” - 이이제이(以夷制夷)
[시론]'이이제이'의 올바른 의미를 제대로 모르거나 오인하지 말아야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 적(賊)을 이용하여 적(賊)을 물리친다?...등 지금도 사람들의 말속에 흔히 인용(引用)되고 있는, 이 사자성어(四字成語)의 참 뜻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오랜 옛날...
이런 가운데, 시공(時空)의 한 축(軸)인 공간(空間)으로서의 사방팔방(四方八方)과 중심된 東西南北의 네 방위(方位) 또는 그 지역(地域)에 따른 지역적 특이(特異) 기운(氣運)의 모습들 즉, 그 곳의 특징(特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의미(意味)의 글자들도 만들어 지게 되었다. 헌데, 그러한 글자들 가운데,.. 이(夷), 융(戎), 만(蠻), 적(狄), 강(羌)... 등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가 다 “오랑캐” 라는 뜻으로 하나가 되는 특이(特異)한 현상을 보이니, 이것은 매우 예외적(例外的)인 일이었다. 그것은 글자 제작(製作)의 원칙, 즉 최소화(最小化), 간편화(簡便化)의 원칙이 무시(無視)된 예(例)가 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의미(意味)의 전달은 가능한 한(限) 최소한(最小限)의 글자로서 많은 뜻을 표현(表現)하고자 하는 것이 본래 인간(人間)들의 기본적 심리이고 글 제작자(製作者)들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하나의 글자로 한가지 또는 다수(多數)의 뜻을 표현함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즉. 예(例)로, 눈은 설(雪), 밤은 야(夜). 비는 우(雨), 집은 가(家),..등 어떤 하나의 의미를 가진 글자는 대부분 한가지이며 그러므로 하나의 글자는 최소 한가지이거나 아니면 그 이상의 여러 뜻을 표현함이 또한 상례(常例)인 것이다. 이렇듯 한가지의 뜻을 전하기 위해 여러개의 글자를 만들지는 않는 것이 기본된 원리(原理)이거늘, 어찌하여 오랑캐라는 글자는 한가지 뜻을 표현하기에 두개도 세 개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글자를 만들었단 말인가? 이점에 대하여 종래의 부정적(否定的)이고 폄하적(貶下的) 해석(解釋)을 극히 제한적(制限的) 해석(解釋)을 벗어나 가능(可能)한 긍정적(肯定的) 측면을 중심하며 그 진실된 의미(意味)를 찾아보고자 한다. 의문(疑問)점 등을 다시 생각해 보면.... 먼 옛날, 상상고(上上古)의 때, 인류가 신성(神聖)한 문명(文明)을 가지고 살던 시절,.. 세상은 뛰어난 신인(神人), 철인(哲人)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기나 긴 역사(歷史)의 시간 중에 어는 한 때의 시점을 중심하여 매우 번성하였던 시기를 살펴보면 그 때는 크게 나누어 삼황씨(三皇=天皇氏, 地皇氏, 人皇氏)라는 분들이 긴 시간 동안 세상의 운영과 흐름을 담당하였다. 그 시절에 세상민(世上民)들은 구이(九夷=九民)로 또 구주(九州)의 지역등으로 형성되었었고 어느 때에는 육십사민(六十四民), 또 십이국(十二國) 등으로도 구분지어지게 된다. 한참의 후(後)에,.. 이러한 무리들 중 동방(東方)쪽에 자리하였던 가장 중심이 되었던 부류(朝鮮)들은 지도(指導)를 하던 층(層)이 크게 호랑이족과 곰족의 두 부류로 양분(兩分)되어 지는데 대부분의 호족(虎族)과 일부의 웅족(熊族)이 세상 경영(政治)의 논의(論議)와 결정(決定) 집단에서 가장 웃어른(長)이라 할 수 있는 핵심들이 되었으며 그런 이들 가운데서도 또한 가장 뛰어난 사람(대체로 호족)이 그 무리 속의 장자(長者) 역할을 하였다. 일부 호족(虎族)과 나머지 대부분의 웅족(熊族)들은 그런 이들을 보좌하면서 함께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들은 천하(天下)의 일을 논의(論議)하고 도모(圖謀)하여 중요한 지침(指針)및 결정(決定)들을 내리고 이는 곧 세상 각 곳에 퍼져있는 모든 무리(國家)들의 시행지침(施行指針)으로 전달되었다. 그런 우두머리들이 깊은 지혜(智慧)의 대화로서 세상을 논의하던 조선의 뜰을 조정(朝庭, 朝廷)이라 하였고, 이는 점차 시간이 지난 후에 국가의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국가(國家)의 최고회의기관(最高會議機關)과 같은 의미(意味) 등으로 변하며 세상에 자리하기에 이른다. 당시의 조선(朝鮮)은 국가(國家) 위의 국가(國家)로서 하늘을 대신하고 있었으며 그 지역적 위치는 대체로 산세(山勢)가 수려하고 골(谷)이 깊은 곳 등, 평지(平地)보다는 구릉(丘陵)이 많은 곳에 자리하며 항상 자연(自然)과 하나가 되어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조선의 특이한 모습과 의미 때문에 이후로 높고(高) 귀(貴)한 신분(身分)이나 세력(勢力), 권력(權力), 부서(府署)등의 표현에 조선(朝鮮)을 의미(意味)하는 “조(朝)”라는 글자가 많이 포함되어 생성되기도 하였다. 좌조문도(座朝聞/問道), 조선의 뜰 (朝廷/庭)에 앉아 세상의 흐름(弓, 乙 ), 운행(運行, 道, 智慧)을 묻고 답한다는 이야기, 림고행즉(林皐幸卽) 숲이 있고 언덕이 높은 곳, 즉 산간(山間) 속에 사는 것이 참 행복(幸福)이라는 말 등등 조선(朝鮮)을 기리고 동경(憧憬)하며 높여 부르는 말들이 나오게 된 연유(緣由)이기도 하고... 다시, 오랑캐라는 말을 살펴보면, 오랑캐는 그 발음상 “호랑개”의 변음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인데, 호랑개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즉 호족(虎族)이 인간 무리들의 중심 역할을 하던 시절 그런 호족(虎族)의 지파와 그 경계(境界)되는 지역(地域)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호(虎)족들은 오랜세월 세계의 곳곳 특히 사방(四方)의 축(軸)에서 각 지역의 무리들을 이끌던 중심 무리였는데 점차 웅(熊)족으로 힘의 근원이 넘어간 후, 서서히 사라져 갔다. 하여(何如),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는 “옛날 일” “뒤바뀐 세상” 이라는 의미들의 묘(妙)한 옛날 표현들이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그 흔적(痕迹)들이 거의 사라져, 뚜렷한 모습을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우나, 아직도 우리의 생활사 몇몇 곳에 유형무형(有形無形)의 형태로서 조금씩 남겨져 있으니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옛 호족(虎族)들이 다스렸던 곳 중의 하나인 현재의 중국 남부지역엔, 인류사(人類史)의 한갈래 뿌리를 형성하였던 삼묘족(三苗族)의 후손격, 묘족(苗族)들이 실제로 아직 살고 있기도 하다. (현재까지도 그들의 생활방식이나 모습은 예전의 우리네의 것과 너무도 많이 닮아있다.) *참고* : 그 옛날 선인(仙人)들의 뛰어난 가르침과 정신(精神), 신통력?(神通力) 등을 후세(後世)에 되살리고자, 나름대로 높은 뜻을 지니고 따르는 일단의 무리가 약 600여년 전에 일본(日本)의 남쪽 바닷가 지역에서, 한사람의 어부(漁夫) - 후(後)에 일연(日蓮?)이란 스님?-에 의해 한 종파로서 창시됐다. 현데, 우리의 불교와도 매우 유사한 종교인 그것은 창시자 스스로가 신본존(新本尊)이라 하며 이전의 아주 오랜 옛날에 원래의 구본존(舊本尊)-(일부에선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이라고도 하며 단수가 아닌 복수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존재했었다는 신화적 이야기를 말하기도 하는데 이(夷)족의 옛 역사와 어떤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약(約), 600 여년 전(前)의 시기는 천손족(天孫族) 고려(高麗)가 중국대륙에서의 역할을 마무리하며 그 중 마지막으로 일단의 핵심세력들이 중심 터전을 한반도(韓半島)로 옮겨와 후조선(後朝鮮=李氏朝鮮)을 건국하게 되고 다른 한 부류는 일본으로 건너간 시기이기도 하다. 즉, 고려(高麗)는 건국(建國) 초기(初期)부터 도가(道家)적 예언(豫言)과 믿음(信仰)에 따라 먼 미래의 어두운 시기(暗黑期=物質時代)를 철저히 대비하였는데 그 가장 큰 한가지가 바로 중심터전을 한반도(韓半島)와 그 인근(隣近)으로 이전키로 한 것이었다. 막중(莫重)하고도 은밀(隱密)한 이 작업은 고려의 시조(始祖)인 태조(太祖) 왕건(王建)때부터 시작되어 거의 고려말기(高麗末期) 때에 이르러 마무리 되었고, 14세기말 이성계(李成桂) 때에 와서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 일부의 보정(補整)과 수정(修整)작업등도 거치면서 완전 매듭지어졌다. 지도층(指導層)의 중심이 되었던 팔성(八姓) 귀족(貴族)들 마저도 대다수가 모두 한반도로 넘어오게 된다. 특히 이들은 그때의 정신(精神)과 대의(大義)를 잊지않고 간직하기 위하여 얼마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김포(金浦)에 모여 제(祭)를 지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민족(民族) 구성원 상당수와 민족 고유정신(固有精神)의 큰 이동(移動)으로 중국지역과 한반도에 적지않은 혼동(混同)이 생겼고 이는 후(後)에 몇가지 좋지않은 부정적(否定的) 영향(影響)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것들은 크게 첫째로, 두고 온 고향(故鄕), 조상(祖上)들이 살던 곳, 큰집등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表現)과 분위기(雰圍氣)로서 이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 본토(本土)에 대한 막연한 모화사상(慕華思想) 및 사대주의(事大主義) 등으로 확산 변형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로, 중국 본토(本土), 큰집에 남아 있는 자가 장자(長者)요 적자(嫡子)라는 생각을 불러 그 곳을 차지했던 몇몇 나라들의 오만(傲慢)과 착각(錯覺)의 행태를 부르기도 하였다. 셋째로 본토(本土)에서의 찬란(燦爛)했던 옛 역사와 새로이 시작한 한반도사(韓半島史)를 단절시켜 얼마되지 않는 작고 초라한 근원(根源)을 가진 천미(賤微)의 역사(歷史)로 탈바꿈 시키려던 지난 날 일제(日帝)의 역사왜곡(歷史歪曲) 작업등에 매우 유리(有利)한 소재(素材)로 악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넷째로 수많은 우리나라의 지명(地名)들이 중국에서도 똑 같이 찾아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들을 오늘날까지 존재하게 하여 지명(地名)에 대한 원조(元祖) 논란을 부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부정적 측면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옛 역사를 찾는데 긍정적 효과를 주기도 한다. 다섯째, 지금 한창 팽창주의(膨脹主義)와 우월감(優越感) 등 좋지 못한 사고(思考)와 착각(錯覺)에 빠져있는 현(現) 중국 지도층(指導層,支那人)이 그러한 놀라운 옛 사실(事實) 및 그들의 자존심(自尊心)에 더 큰 충격을 안겨 줄 만한 역사의 큰 흔적(痕迹)들을 덮거나 뒤 바꾸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대대적인 옛 지명 바꾸기 작업, 탐원공정, 동북공정,...)등을 하게 하기도 하였다.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오랑캐라는 의미가, 더 이상 종래의 고려말(高麗末) 이(李)씨 조선(朝鮮) 초기의 여진족(女眞族)등을 낮춰 부르는 "미개인(未開人), 야만인(野蠻人), 열등인종(劣等人種)"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고 본다. 즉 그것은, 본래 오히려 인류사에 뛰어났던 호족(虎族=支配層)들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또한 이(夷)를 함께 동반하는 네개의 글자는 그 지배세력들이 각기 분담해 다스리던 동서남북(東西南北) 지역 각각의 무리들에 대한 독특한 성향(性向)들을 보다 상세히 구별(區別)하여 표현(表現)하고자 만든 글자였음도 알아야 한다. 즉, 호족(虎族,= 夷)이 중심이 되어 다스리던 곳 아홉 지역 중... 동쪽의 지역은 이(夷), 서쪽의 지역은 융(戎), 남쪽의 지역은 만(蠻), 북쪽의 지역은 적(狄)으로서 표현했다. 하여,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 되는 것이니, 사방(四方)의 네 지역 모두, 호(虎)족의 무리가 다스림의 주축(主軸)이었음은 동일하나 빛(陽)과 땅(陰)의 기운의 비중편차(比重偏差)에 따른 지역적 특성은 서로 구별(區別)됨이 있었기에 그러한 특징(特徵)들을 표현하다 보니 그렇게 여러 가지 글자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夷)와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 이(夷)족 모두는 인류사에 있어 매우 특출한 무리들로서 특히나 음양조화(陰陽調和)의 기운(氣運)을 운용(運用)함에 매우 뛰어났으니 그들을 상대(相對)하려고 할 경우, 여타의 다른 족속(族屬)의 힘이나 지혜(智慧)로는 가히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시에 그들에게 대항(對抗)하거나 맞서고자 한다면 그들과 유사한 성질(性質)과 기운(氣運)을 가진 다른 존재들, 즉 타(他) 지역의 또다른 이(夷)들의 도움을 받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바꾸어 말해보면 "천손족(天孫族)은 오직 또 다른 천손족(天孫族)에 의해서만이 상대(相對)되거나 제어(制御)될 수 있지 기타의 세상 어느 족속들도 그들을 감당키는 어려웠다" 는 특이한 상황(狀況)의 말이 되는 것이다. 특(特)히나, 그 가운데서도 당시 가장 뛰어난 문명(文明)을 가지고 있었던 동(東)쪽의 이(夷)족은, 다른 여타(餘他)의 민족들 및 심지어는 유사한 힘을 가진 다른 이(夷)족들 조차도 감히 다루기가 어려웠었다. 그들은 바로 하늘문을 열고(開天) 무형(無形)의 하늘 상(象)을 현상계(現象界)의 세상에 유형화(有形化) 시켜 낸 진정한 하늘의 자손들(天孫)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편파(偏跛)되고 왜곡(歪曲)된 못난이 역사교육(歷史敎育)을 받은 오늘날의 현대(現代)적 후손(後孫)들에게 매우 놀랍고도 받아들이기 쉽지않은 고무적(鼓舞的) 사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비록 운(運)이 좋아서 한때 이(夷)족의 일부를 손에 넣은 기타의 무리가 나타났을 지라도 만일, 또다른 이(夷)족 등에 맞서 대항하거나 싸우려 한다면, 그들로서는 여전히 상대하기 매우 어려웠으니, 이미 자기 편안에 들어와 있는 다른 이(夷)족들을 온 힘을 다해 설득(說得)하고 회유(懷柔)하여 그들을 앞장 세워야만 했었고 그러한 상태의 현실들이 오랜 세월의 시간을 지나는 속에서 그렇듯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묘한 공식(公式, 絶對法則) 같은 것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족(夷族)은 이족(夷族)으로서 만이 제어될 수 있다는... 이러한 법칙... 즉, "이(夷)로써만이 이(夷)를 맞설수 있다"는 공식이 가장 잘 이용되었던 시기는 바로 삼국시대(三國時代) 말기(末期)이다. 개천(開天)을 하였던 천자국(天子國) 고조선(古朝鮮)의 멸망 후, 세상에 나타났던 극한 혼돈(混沌)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가 거의 끝나고, 음(陰)적인 세력들이 주축을 이루며 세상(世上)의 판도가 다시 재편되어가던 시기... 그 어지러운 틈을 타 땅(土=地)의 주인(主人)이 됨을 자처하고 나선 땅 나라 즉, 당(唐)나라는 강성해져가는 음(陰) 기운(氣運)에 편승, 그들의 매우 약하고 별스럽지 않은 못난이 군대를 가지고도 어부지리(漁父之利)격으로 큰 힘도 들이지 않은 채 빠른 성장을 해가며, 주변의 여러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급기야는 자신의 상국(上國)격인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까지 끊임없이 넘보다 부족한 주군(主君)을 가져 잠시 정신줄을 놓은 다른 이(夷, 新羅)의 변절과 기타,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 자체의 내분등에 힘입어 잠깐이나마 중원을 대부분 장악하여 대국(大國)을 이루기도 하였던 것이다. 즉, 당시에 강성했던 대국(大國) 백제(百濟)를 공격함에는 백제의 지나친 여유로움과 너그러움 그리고 같은 이(夷)족인 신라(新羅)의 힘을 빌어서 하였던 것이고, 고구려(高句麗)를 치는 데에도 역시 신라(新羅)의 힘과 패(敗)한 백제(百濟)의 뛰어난 장수(將帥)및 투항자들 그리고, 고구려(高句麗)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어쩔 수없이 반기를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던 고구려 내부의 핵심 지도세력들(연개소문(淵蓋蘇文)의 동생, 자식들과 그 외 이해상충 세력들)의 복합적 힘을 빌어 싸움다운 싸움도 없이 거저 주웠던 것이다. 즉, 이 모두가 다름아닌 같은 이(夷)족들을 이용해서 하였기에 가능 했던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는 30만 아니라 100만 대군으로 밀고 달려들어도 결코 이룰 수 없었던 불가능이었던 것이다. 또, 당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토번(현재의 티벳)과 돌궐등 기타의 주변 세력들을 제압해 나감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군대가 아닌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및 기타지역의 이(夷)족 장수와 군대를 이용하여서 제어할 수가 있었으니 당(唐)은 때, 시운(時運)을 잘 만났던 것, 흔한 말로 운(運)이 좋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빈약한 당군(唐軍)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不可能)했던 일들이었으니, 당시 이(夷)족들이 보기에 당(唐)나라 군대가 얼마나 시시하고 보잘것 없었으면, 지금까지도 형편없는 오합지졸의 군대, 허접스런 군대를 보면 “당(唐)나라 군대(軍隊) 아니냐”하는 비웃음을 주겠는가. 세상(世上)의 역사(歷史)와 사실(事實)들이 그러하니, 이제는 앞으로는 더이상 이러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올바른 의미를 제대로 모르거나 오인하고서 “야만인을 이용해 야만인을 제거한다” 라든지 또는 “적을 이용하여 적을 없앤다 (이런 경우 이적제적(以賊制賊)이 더 타당할 것이고..)” 식의 열등적(劣等的)이고 자학적(自謔的) 못난이 해석을 하지 않도록 하고, 옛 시절에 하늘문을 열고(開天) 세상을 일으킨 “위대한 이(夷)”를 바로 알아 그렇게 뛰어났던 하늘사람들의 후손(천손(天孫)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행(行)을 하도록 노력하며,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세상을 인류사(人類史)의 또다른 빛나는 시기로 이끌어 나가는 당당한 주체(主體)요 중심(中心)이 되도록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잃어버린 우리의 참된 정신(精神)을 회복하고 굳세게 일으켜 세움에 온 힘을 쏟으며 정진(精進)해가는 희망찬 후손들의 밝은 모습을 그려 보며 글을 마친다. [본지 한빛 임록단 고문은 민족의 미래와 번영을 위해 선을 행하고 정진하고 계시는 분이다.]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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