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8. 04:11ㆍ美學 이야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늑대를 타고 달아난 여인/김승희
입력 2019.03.08. 03:36
설거지가 끝나지 않은 역사 말고.
믿을 수 없는 높이까지 내가 올라갔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넝마 한 벌-하늘과 설거지감-산하, 환멸만큼 정숙한 칼이 또 있을까.
하얀 늑대를 타고 달리는 여인을 본 적 있다.
"내가 무명일 때 50만원 100만원의 계약금을 받은 출판사들이 있습니다. 그 출판사들에 원고를 준 뒤 대표님의 출판사와 계약하겠습니다." 여인은 늑대를 타고 돌아갔다.
[서울신문]
늑대를 타고 달아난 여인 / 김승희
나는 새로운 것이 보고 싶었다
설거지가 끝나지 않은 역사 말고. 정말 새로운 것, 설거지감 냄새가 묻지 않은 그런 새로운 것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구마구 올라갔다
투명 유리 엘리베이터 창 아래로
하늘이 마구마구 내려갔다
믿을 수 없는 높이까지 내가 올라갔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넝마 한 벌-하늘과 설거지감-산하, 환멸만큼 정숙한 칼이 또 있을까. 있음을 무자비하게 잘라 버리니까.
아아, 난 새로운 것을 보려면
그 믿을 수 없는 높이의 옥상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뛰-어-내-려?
뛰-어-내-려!
-
하얀 늑대를 타고 달리는 여인을 본 적 있다. 갑부인 출판사의 대표가 여인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소설을 우리 출판사에서 내고 싶습니다. 필요한 액수를 적으세요. 대표가 백지 수표를 앞에 놓았다. 모두 침묵했다. 잠시 후 여인이 말했다. “내가 무명일 때 50만원 100만원의 계약금을 받은 출판사들이 있습니다. 그 출판사들에 원고를 준 뒤 대표님의 출판사와 계약하겠습니다.” 여인은 늑대를 타고 돌아갔다. 멋있었다. 출판사의 주간이 사전에 내게 일러 준 계약금은 2억이었다. 25년의 세월이 지났다. 영혼의 늑대를 타고 다니던 푸르른 시절의 그 소설가가 그립다.
곽재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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