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학을 타는 그림 「승학신선도(乘鶴神仙圖)」/ 대한신보 기사

2019. 3. 11. 13:22美學 이야기



神仙의 전설

신선이 학을 타는 그림 「승학신선도(乘鶴神仙圖)」

신선이 학을 타는 그림 「승학신선도(乘鶴神仙圖)」
박병역기자 2018-06-06 (수) 23:06  


신선이 학을 타는 그림 「승학신선도(乘鶴神仙圖)」



   우리나라의 학 그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6세기 후반 무렵 축조된 구려 고분벽화(<그림 1>)에 남겨져 있다. 고분벽화의 그림들은 무덤 주인공이 죽은 뒤에 도달할 내세를 주로 보여주고 있는데, 6세기의 고분벽화는 불교 사상의 영향이 강한 5세기 것과 차이가 있다. 즉, 신선 신앙을 바탕으로 죽은 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승선(昇仙)의 내세관이 뚜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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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승학신선도」(화면 오른쪽 위), 집안오회분 4호묘 널발 천장고임 벽화, 중국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 우산촌 우산하고분군 소재, 6세기 후반

   4호묘의 널방 천장 그림들을 살펴보면, 복희(伏羲)1) 모양의 해신, 여와(女媧)2) 모양의 달신, 신농(神農)3)을 비롯한 수신(燧神 : 대장장이 신), 제륜신(製輪神 : 수레바퀴 신), 마석신(磨石神 : 맷돌 신) 등과, 각종 상서로운 짐승이나 신조(神鳥)를 타고 하늘을 나는 천인 및 기악천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신선이 학을 탄 「승학신선도」(<그림 1>)가 그려져 이상향인 신선의 세계 즉, 선계(仙界)를 나타내고 있다.

   일찍이 중국 철학서인 『회남자(淮南子)』“학은 천년을 살아 그 노님을 다하고(鶴壽千歲)”란 구절이 전하며, 『상학경기(相鶴經記)』라는 책에서는 “학은 날개 달린 동물의 우두머리이며, 선인(仙人)의 탈 것이다(蓋羽族之宗長 仙人之騏驥也)”라 하였다.

흑백의 조화와 고고한 자태에서 비롯한 학의 생태는 신선 사상과 연결되면서 승천, 초월, 장수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신선도에 등장하는 학은 천년을 사는 선학(仙鶴)이자 신선의 천리마로 그를 선계로 이끌어 주는 신비의 동물이다.

조선 시대 「신선도」와 「방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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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여설헌,「신선도」, 18세기경, 국립진주박물관

   현재 전하는 학 그림을 보면, 조선 시대인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도교 및 유교 사상을 반영한 소나무와 학 그림[송학도]이 다수이며, 그림 형식으로는 신선과 학 그림[신선도], 신선이 학을 놓아 주는 그림[방학도], 불로장생의 학 그림[장생도], 매화와 학 그림[매학도], 두 마리 학 그림[쌍학도], 한 마리 학 그림[단학도], 그리고 무리 지은 학 그림[군학도] 등으로 구분된다.

   조선 시대 학 그림들은 우선 승천·초월·장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먼저 여설헌의 작품인 「신선도」(<그림 2>)를 보면, 신선 두 명이 각각 학을 타고 선계를 날고 있다. 화면 아래쪽의 선계는 장생의 상징물들인 소나무·바위·물·산으로 표현되는데, <그림 3>에서는 대나무·바위·물로 나타나 있다. 이를 배경으로 학을 놓아 주는 ‘방학(放鶴)’을 통해서 신선의 초월적 경지를 보여주게 된다.

특히 두 그림의 학들은 백색의 몸체가 목과 깃털 끝의 흑색과 대비되어 탈속의 고고한 경지를 나타내는데, 이 그림에서는 단정학(丹頂鶴 : 두루미 머리의 붉은 반점으로 불리는 이름)으로 표현되어 붉은 색인 양색(陽色)을 강조함으로써 상서로운 의미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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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림 3> 이징, 「방학도」, 17세기경, 고려대박물관
(오른쪽) <그림 4> 傳 조지운, 「송학도」, 17세기경, 국립중앙박물관

   또한 「송학도」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학의 간결하고 우아한 자태와 같은 생태적 속성은, 옛사람들로 하여금 유교적 가치에 합당한 인품을 갖춘 존재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가령 <그림 4>는 단정학이 소나무 위에 홀로 서 있는 ‘학립(鶴立 : 학처럼 쪽 곧게 선 태도나 모양)’으로 실리에 흔들리지 않는 선비의 의연함을 나타내는 한편, 관직을 향한 입신출세4)의 뜻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학문에 매진해야할 선비로서의 명분적 도리와 함께, 현실적으로는 과거에 합격하여 세상에 가문과 자신의 이름을 높여야만 했던 조선 후기의 양반 문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옛 고사와 학 그림

   앞서 말한 이상과 현실의 이중성이란 딜레마의 해법으로 조선 후기의 양반들은 ‘은일(隱逸)’을 택했다. 즉, 세상을 등지고 은일하는 것은 염세가 아니라, 향후 입신양명하기 위한 처세인 동시에, 입신한 자들 역시 이를 내세워 자신의 입지를 보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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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그림 5> 「청계도인」, 18세기, 이화여대박물관
 (오른쪽) <그림 6> 조세걸,「고산방학도」, 17세기, 이화여대박물관

   이와 관련한 대표적 고사로는  ‘제갈량 고사(諸葛亮故事)5)‘임화정 고사(林和靖故事)’6)가 있다.  먼저 중인 화가 이방운(1761∼?)의 「청계도인(淸溪道人)」(<그림 5>)은 ‘제갈량 고사’를 그린 것인데, 화면 중앙의 인물이 제갈량이고 그 앞에 홀로 서 있는 단정학은 청아한 생활을 하는 제갈량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조세걸(1635∼?)이 ‘임화정 고사’를 내용으로 그린 「고산방학도 (孤山放鶴圖)」(<그림 6>)를 보면, 매화 고목 아래 신선풍의 임화정이 시동과 함께 앉아 있고, 이들을 바라보는 듯 고개를 꺾고 날고 있는 ‘방학’을 통해서 탈속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학무리가 해·소나무·파도·불로초·바위를 배경으로 한 「군학서상도(群鶴瑞祥圖)」(<그림 7>)는 어떤 의미를 나타낸 그림일까. 이 그림은 ‘길상적 동일발음’ 법칙을 따르고 있다. 즉, 학과 해는 희서(喜瑞)로 기쁘고 상서로움을 뜻하며, 파도는 조수(潮水) ‘潮(chao)’와 같은 ‘朝(chao)’로서 조정(朝廷)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이 그림은 길상 관념을 반영하여, ‘조정에 나아가는 기쁨을 오래도록 누리길 축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덧붙여 화면 중앙 아래를 보면, 군학 중에서 유독 한 마리가 누런 빛깔의 황학(黃鶴)7)이고, 마치 양쪽의 백학(白鶴) 무리가 이것을 향해 모여들듯 표현되어 있다. 보통 백학이 일반적이라 한다면, 황학은 학의 무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인 ‘군계일학(群鷄一鶴)’, 즉 최상의 관직에 오른 자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일품대부를 상징하는 학이 파도치는 바다, 즉 밀물(潮) 앞(當)에 서 있는 「일품당조도 (一品當朝圖)」는 ‘당대의 조정에서 벼슬이 일품까지 오르다’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학의 색채, 한 마리와 무리의 대비, 승학·방학·학립 등의 자태에 따라 학 그림은 여러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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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군학서상도」(부분),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1) 고대 중국신화에 나오는 삼황(三皇: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황제 헌원씨)의 첫머리에 꼽히는 전설적 제왕으로, 뱀의 몸을 가지고 기원전 29세기에 신처럼 태어났다고 한다.
2) 중국 신화에 나오는 중매쟁이들의 수호 여신이다. 복희의 아내(또는 누이)로 중매인의 규범과 결혼의 규범을 세우는 데 이바지했고, 남녀 사이의 올바른 행실을 규정했다.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지만 몸은 뱀 또는 물고기로 묘사된다.
3) 삼황 중 두 번째 제왕으로 정식 이름은 염제(炎帝)이다. 기원전 28세기에 인신우두(人身牛頭)의 형상을 하고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마차와 쟁기를 만들었으며 소를 길들이고 말에게 멍에를 씌웠다. 또한 백성들에게 불로써 토지를 깨끗하게 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중국을 확고한 농경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4) 학은 새들 중의 일품(一品: 조선시대 벼슬중 가장 높은 품계)으로 관직을 의미하며, 소나무는 진시황 고사와 관련한 대부(大夫: 4품 이상에 붙이는 호칭)로서, 송학은 ‘일품대부(一品大夫)’ 즉, 높은 관직의 등용 및 출세를 의미하게 된다.

5) 제갈량이 남양땅 신야(新野)에 은거하며 천하경륜의 포부를 길렀다는 고사를 표현한 그림이다. 



6) 북송대 항주 서호변에 살았던 임화정이 ‘매처학자’(梅妻鶴子: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는 일화이다.
7) 학은 보통 백학을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학에도 흑·백·황·청의 네 종류가 있으며, 그 중에 흑색을 띤 학은 신화상의 나이에 이를 정도로 가장 오래 산다고 한다. 청학은 백학이 천년을 살면 된다고 하여 신성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