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1. 17:39ㆍ美學 이야기
일본 무로마치(室町)시대 셋슈(雪舟)의 산수도(山水圖) 그림과 글씨의 내용 해독
2015. 9. 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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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효고(兵庫)현 고세츠미술관(香雪美術館)에 소장되어 있는 일본 무로마치(室町)시대인 15세기의 전설적인 작가 셋슈(雪舟)의 산수도입니다.
이 그림의 상단에는 당시 조선초기 관료였던 이손(李孫) 과 박형문(朴衡文) 이 쓴 찬시가 적혀 있어 당시 조선과 일본의 문인들이 상호 교류한 중요한 증거가 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고세츠미술관(香雪美術館)의 설명과 해석]
山水図 李孫・朴衡文賛
Landscape view of the Word of Rison and Bokukobun has entered. 雪舟 Sesshu
重要文化財, 紙本墨画淡彩, 一幅 , 88.3×45.6cm, 兵庫 香雪美術館
中央に突兀した山を描き、前景に巨岩を配し、水辺には一般の舟と釣竿をかつぐ漁人が、稲妻形の道に向かって歩を運ぶ。
중앙에 높이 솟아서 우뚝한 산을 그리고 전경(前景)에는 큰 바위를 배치하였고 수변에는 평범한 배와 낚시대를 멘 어부가 번개 모양의 길을 향해 걷고 있다.
この山水画形式は、かつての周文様山水図を継承していると言えるかもしれないが、岩組に量感を添える配置、墨色の使い方、鋭い松の表出法、遠景にのみ楼閣を描き、人物と曲折する道、巨岩だけで前・中景を処理する方法などは、雪舟独自の画様である。
이 산수화 형식은 예전의 주문(周文) 형식의 산수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바위에 중량감을 더한 배치, 먹색의 사용, 날카로운 소나무의 표출, 원경에만 누각을 그리고 인물과 구부러진 길, 큰 바위 만으로 전경과 중경을 처리한 방법 등은
셋슈(雪舟)의 독자적인 화법이다.
いわばこの画様は室町期を通じての山水画様式の典型であって、よく古様を踏まえながら、雪舟囚固有の迫力ある筆法を駆使していると言えよう。
말하자면 이 화법은 무로마치 시대 전체 산수화 양식의 전형이며, 고전양식에 입각하여 곧잘 셋슈 고유의 박력있는 필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それに、上部の賛者は朝鮮時代の政府要人であるから、外交上の面からも、当時の日本国を代表する画様を描き与えたものと考えられる。
게다가 상단의 찬시자는 조선시대의 정부 요인이기 때문에 외교면에서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그림양식을 그려 준 것으로 생각된다.
賛者の李孫 、朴衡文の両人は、李朝から派遣された国使で、文明十ー年(1479)日本国通事に随行してきたが、しばらく大内氏の許に滞在していた。
제찬자인 이손, 박형문 두 사람은 조선으로부터 파견된 사절인데, 1479년 일본국 통역사로 따라 왔지만 잠시 오우치(大内) 씨의 허락으로 머물러 있었다.
その折雪舟にも山口で逢い、作画を所望し、賛を書したものであろう。
그때 셋슈와도 야마구치에서 만났고 그림을 원하고 찬시를 쓴 것이다.
雪舟六十歳前後の作画状態がわかると共に、当時の日韓関係を物語る、重要資料とも言える。
셋슈 60세 전후의 작품상황을 알 수 있으면서 당시 한일관계를 말해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いわば外交辞令的な意味が含まれていて、その朝鮮国使接待の意味も含まれていたのである。
말하자면 외교 의전으로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조선국사의 접대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さらにその背後には、大内氏と朝鮮との大きな外交上の役割を持っていたのてあった。
또한 배후에는 오우치씨와 조선과의 큰 외교상의 역할을 갖고 있던 것이었다.
李朝の国賓が賛を加えたほどてあるから、この図と、これに類した図が二点あり、一方には 我が国の周防国の国守か著名僧が賛を賦し、他方は李朝国使が賛を加えというように、相互に賛を賦し交換したものと思われる。
조선의 국빈이 찬시를 더한 것으로는 이 그림과 이에 준한 그림이 두 점 있는데, 하나는 우리나라 스오국(周防国)의 국수(国守)인 저명한 승려가 찬시를 붙였고 다른 하나는 조선국 사신이 찬시를 추가하는 것처럼 상호 찬시를 붙여 교환한 것으로 보인다.
※ 賛(さん)とは、東洋画において、主に鑑賞者によって作品に書き加えられ、書作品また文芸作品として、もとの作品の一部とみなされる。
찬시는 동양화에서 주로 감상자에 의해 작품에 글을 쓰서 더해져 글씨의 작품 또한 문학 작품으로 원래 작품의 일부로 간주된다.
[제화시의 원문과 해석]
[이손(李孫)의 시(詩)]
靑山疊疊水重重(청산첩첩수중중) 청산은 첩첩이고 물은 많고 깊은데
萬里來同棐几中(만리래동비궤중) 만리에서 와 함께 비자나무 책상 가운데 있네.
不用區區飛杖錫(불용구구비장석) 구차하게 지고가는 지팡이 사용할 필요 있을까?
臥遊奇勝飽無窮(와유기승포무궁) 누워서 즐기는 기이한 경치가 속이 찬 게 다함이 없네.
* 棐几 (비궤) : 비자나무로 만든 책상
* 不用 (불용) : ① …할 필요가 없다 ② 쓰지 않다 ③ 필요 없다
* 區區 (구구) : ① 보잘것없다 ② 저 ③ 소인
[박형문(朴衡文)의 찬(贊)]
淋滿光氣出 장마가 가득한데 빛 기운이 나오니
自毫素峯峦競秀 저절로 붓과 종이로 봉우리와 뫼가 서로 빼어남을 다투고,
滄波消渺石傾而稜木老而 큰 물결 사라져 아득하니 돌이 기울었고 모서리 나무는 늙었는데
陰谷有紫芝澗饒笑林 그늘진 계곡에는 영지가 있으니 산골물이 넉넉하여 숲이 웃음 짓네.
仁智之資樂此外無 인(仁)과 지(智)를 주는 즐거움 이것 이 외는 없어
衡茅亘虛來東海 누추한 집이 연결되어 살아 동해에서 오니
隅油具微痕炾去淸然 모퉁이에 기름을 갖추고 작은 흔적을 밝게 빛내니 가서 분명히 그리될 것이다 .
般題黃辭況乏黃徫 즐기며 지은 늙은이 말이 보내기 부족하네.
* 毫素(호소) : 호저(毫楮). 붓과 종이.
* 紫芝(자지) : ‘灵芝’와 비슷한 검은 버섯. 영지
* 衡茅(형모) : 누추한 집
[퍼온 자료 : 유홍준]
셋슈(雪舟·1420~1507)는 일본의 화성(畵聖)이라고 불리는 무로마치(室町)시대 수묵화의 완성자이다.
그는 초년엔 스승인 슈분(周文)에게 조선풍 산수화를 배웠고, 중년엔 명나라에 들어가 여러 화풍을 익힌 다음 노년엔 전형적인 일본 실경산수로 돌아섰다.
그런데 그의 말년 '산수도' (사진) 중에는 조선의 이손(李蓀)과 박형문(朴衡文)의 제시(題詩)가 들어 있어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써준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에 간 사실도 없고 이손의 제시 중에는 '만리길 건너와 비자나무 책상 위에 있네'라는 구절이 있어 미스터리처럼 되었다.
이 수수께끼는 근래에 셋슈가 오나이(大內) 휘하에 있는 야마구치(山口) 에 있을 때 오나이의 사신 중 누군가가 이 작품을 조선에 갖고 와 찬시를 받아간 것이라는 유력한 학설로 풀리게 되었다.( 村井章介, '한시(漢詩)와 외교' )
당시 오나이와 쇼군(將軍 ) 가에서는 거의 해마다 조선에 사절을 보내 1475년부터 1491년 사이만 10 번이나 된다.
그런데 이 기간에 이손은 김해부사, 박형문은 창원부사로 있었던 때가 있다.
일본에서 떠난 배가 조선에 입항한 항구는 진해 웅천(熊川) 이었고 웅천에서 김해까지는 15리, 창원까지는 25리다.
그렇다면 1485년 아니면 1487년의 사신 중 한 명이 가져온 것으로 된다.
그림을 보면 셋슈 초년의 조선 산수화풍에서 벗어난 전형적인 일본풍의 산수화다.
셋슈는 자신의 일본화된 그림을 조선에선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했던 모양이다.
마치 우리 현대미술에서 김환기와 이응로가 파리화단에서 평가받고 싶어 프랑스로 갔던 그런 심정이 있었을 것이다.
셋슈 시대에 조선은 그런 문화적 위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문인들은 이 이국적인 산수화에 대해 직접적인 화평 대신 그림에 어울리는 시를 읊어주는 겸양의 미덕을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이 작품은 15세기 동아시아 문화 지형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셋슈 도요(雪舟 等楊 , 1420년~1506년)
일본 오에이(応永 )27년(1420년) ~ 永正 3년8월 8일(1506년)까지 무로마치 시대에 활동한 수묵화·선승. ‘雪舟’는 호(号) 이고 이름은 等楊(とうよう) 이라고 칭했다.
일본 수묵화의 완성자로서 화법을 슈뷴(周文)에게서 배웠다.
備中(빗추)에서 태어나 교토 相国寺에서 수행한 후 大内氏(오우치씨) 의 비호아래 周防(스오) 로 옮겨갔다.
이후 遣明船(명나라 사신배) 에 동승하여 중국(명나라)에 가서 그로부터 중국의 화법을 배웠다.
현존하는 작품의 대부분은 중국 스타일의 수묵 산수화이지만, 초상화 제작과 화조화도 잘했다고 전한다.
송·원의 고전과 명나라 절파화풍을 흡수하면서, 각지를 여행하고 写生(사생)에 노력해 중국화의 직접적인 모방에서 벗어나 일본의 독자적인 수묵화풍을 확립했다.
이후 일본화단에 끼친 영향은 크다.또한 현존하는 작품 중 6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일본 회화사에서 특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 화조도 병풍 등 「伝雪舟筆」이라고 하는 작품이 많고 진필인지 여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라지는 작품도 많다.
대표작은「四季山水図(山水長巻)」「秋冬山水図」「天橋立図」「破墨山水図」「慧可断臂図」등이 있으며 제자는 秋月(에아키즈키), 宗淵 , 等春들이다.
박형문(朴衡文, 1421~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규보(奎甫)이고 호는 이예당(二藝堂)이다.
박형문은 1469년(예종 원년)에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475년 부여현감이 되었으며 이해에 알성문과에 장원을 하여 임천군수로 승차하였다.
이후 육진어사(六鎭御使), 지평(持平), 장령(掌令), 종부시정(宗簿侍正), 진주목사, 창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1488년(성종 19년) 창원부사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여 더 이상 관직에 나아가지않고 향촌에서 후학 교욱에 힘썼다.
박형문은 문장이 출중하여 그의 문명(文名)이 구중(九重) 에 알려졌다 한다.
그러나 그의 외아들인 언범(彦範)이 일찍 사망하여 유고가 관리되지 못하고 산실되었으며 현재는 몇몇 시(詩)와 간찰(簡札)만이 소수로 전하고 있다.
이손[李蓀, 1439년(세종 21) ~ 1520년(중종15)]
1459년(세조 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학문은 물론 활쏘기·말타기를 잘 하여 왕명으로 선전관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정랑·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을 역임하고 김해부사와 판교(判校)를 거쳤다.
1492년 장례원판결사, 이어 충청도·함경도절도사, 충청도·황해도·전라도관찰사, 부제학·우부승지를 지냈다.
1504년(연산군 10) 한성부좌윤·우윤, 이조·예조참판을 거쳐, 형조·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 3등으로 한산군(漢山君) 에 봉하여지고, 우참찬으로 승진하였다.
1508년 좌참찬 재임시 재덕(才德)이 없고 늙음을 핑계로 치사(致仕)를 요청하였으나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그대로 유임되었다.
그 뒤 우찬성·좌찬성을 역임하고 1512년 일본의 화호(和好)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1513년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에 진봉되고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만년에는 영의정 유순(柳洵), 판서 안침(安琛) 등 남학(南學)의 친우들과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어 서로 왕래하며 즐겼다. 시호는 호간(胡簡)이다.
[느낀 점]
일본 무로마치 시대인 15세기 후기 활동한 셋슈(雪舟)는 당초 그의 스승인 슈뷴(周文)에게서 조선화풍의 화법을 배웠는데, 그의 중년시기 견명선을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하규(夏珪), 이당(李唐)의 남종화법을 연구한 후 다시 돌아와서는 일본 고유의 특색을 지닌 화법을 창안한 인물인데, 이 그림은 아마도 중국을 다녀온 후 새로운 화법으로 제작된 자신의 그림을 이웃 나라인 조선의 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알고자 통신사 인편으로 이 그림을 보내 제화글을 쓰도록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은 우람한 바위를 나타내기 위해 강렬한 부벽준을 사용하였으며 하규(夏珪) 의 그림에서 흔히 보이는 꺾어진 소나무 가지 등은 이곽화풍(李郭畵風)을 기본으로 하는 슈뷴(周文)의 그림과는 분명히 다른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일본은 이 셋슈의 그림을 통해 일본적인 산수화풍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중국 남종화의 일본화 된 그림에 조선의 학자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즐거운 느낌을 감상으로 적고 있어 아주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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