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1. 20:46ㆍ美學 이야기
일본 15세기 무로마치(室町)시대 분세이(文成)의 방우도(放牛圖) 그림과 글씨의 내용 해독
2015. 9. 14. 10:41
https://blog.naver.com/kalsanja/220480774185
일본 교토국립박물관(京都國立博物館) 에 소장되어 있는 일본 15세기 무로마치(室町) 시대 선승(禪僧) 분세이(文成)의 그림으로서 그림의 상단에는 신덴 세이하(心田清播) 등 세 사람의 동료 선승의 제화시가 적혀 있습니다.
○ 크기 : 가로36.4cm, 세로66.6cm
[퍼온 자료 : 중국불교협회 전희스님]
넓은 호수가에 평화롭게 서있는 집들, 그 옆의 버드나무는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고 가까이에는 소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참으로 한가로운 광경이다. 소는 평화의 상징에 대한 의미도 있기 때문에 이 그림에는 평화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찬문을 쓴 난에 소겐(南江宗沅 , 1387~1463) 은 가와치(河內 )와 이즈미(和泉)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환속승으로, 다이토쿠지(大徳寺) 절의 잇큐 소쥰(一休宗純)과 이 그림의 또 다른 찬문을 쓴 고세이 류하(江西龍派), 신덴 세이하(心田清播) 등의 겐닌지(建仁寺) 절의 승려들과도 교류가 있었다.
또 난에의 찬문 끝부분에 ‘분세이 외사우도(文成外史牛図)’라고 있어 본 그림은 분세이(文成)라는 선승에 의해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분세이 스님에 대해서는 다른 자료에서 보면 나이가 들어 난에를 따랐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지만 그의 생몰연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 外史 는 선승의 서기직의 일
本圖描寫寬廣的湖面以及立於岸邊的小小家屋 。
其旁的柳樹彷佛隨著從山中吹來的涼風而略略擺動,前景的牛只悠閒的吃著草,呈現一種安穩而閒散的光景 。
牛只又帶有象徵和平的意味,因此也可以認為畫家藉由本圖寄託了對和平的深切渴望 。
畫中題贊的人之一南江宗(1387~1463)是還俗僧,活動於河內與和泉一地,與大德寺的一休宗純以及江西龍派的心田清播等建仁寺僧
亦有往來。
根據南江宗畫贊的最後題有“文成外史牛圖”,可知本圖乃是被稱為文成的禪僧之作(所謂的外史是指禪僧的書記職 )。
關於文成隻知他是長年跟隨南江宗的人物 ,但是有關其生卒年與經歷等,目前一無所知 。
[제화시의 원문과 해석]
[○庵叟贊]
陽坡草膩暖煙凝(양파초니난연응) 볕드는 언덕 풀은 기름진데 따뜻한 연기 엉기니
放犢無人拽鼻繩(방독무인예비승) 놓아 둔 송아지에 사람은 없이 코가 끈에 끌리네.
寄語三家深樹鴻(기어삼가심수홍) 깊은 숲은 크다고 세 집에 전해다오.
退欄分羊着殘僧(퇴란분양착잔승) 난간을 분간해서 물러난 쇠잔해진 중이 양을 붙잡네.
○庵叟
* 寄語 (기어) : ① 말을 전하다 ② 안부를 전하다 ③ 담은 전언 .
* 三家村(삼가촌) : 인구가 적고 궁벽한 마을 ② 한촌 ③ 등척·오함·요말사 등 정치적 비판 집단 .
* 殘僧 (잔승) : 늙어서 쇠잔해진 중 .
[心田清播賛]
谿上茅茨柳日遲(계상모자류일지) 시냇물 위로 띠를 잇는 버드나무 핀 날은 더딘데
懶牛眠食草離離(나우면식초이리) 게으른 소는 쉬면서 무성한 풀을 먹네.
何人爲畵升平象(하인위화승평상) 누구를 위해 평화로운 모습을 그렸나?
勝似桃林放牧時(승사도림방목시) 경치는 도원 숲에 방목하던 때를 닮았네.
聽雨叟淸播題(청우수청파제) 빗소리를 듣는 늙은이 세이하가 짓다.
* 離離 (이리) : 여럿의 구별( 區別 ) 이 또렷한 모양(模樣)
* 升平 (승평) : 나라가 태평함.
[南江宗沅贊]
不欄外叱自由耳(불란외질자유이) 난간 밖에서 소리치지 마라 자유롭게 듣고 있으니
暖日郊白過草染(난일교백과초염) 따뜻한 날 들판은 깨끗한데 풀이 물들어 가네.
○○○深山中陶(○○○심산중도)
宰○曾將斯畵獻(재○증장사화헌)
皇宸(황신) 황궁에서
文成外史牛圖庚午秋 洹菴題 문성외사 우도 경오년 가을 洹菴이 짓다 .
[느낀 점]
13세기에서 16세기까지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는 이러한 우도(牛圖)를 많이 그렸는데, 소는 유교(儒敎)에서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불교(佛敎)적으로는 깨달음을 그리고 도교(道敎)에서는 노자(老子)의 화신으로서 신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5세기 일본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집권층은 무사(武士)들이었고 글을 배우고 익혀 조선의 사대부와 같은 문인학자의 역할은 선승(禪僧) 이라 일컫는 승려들이 담당하고 있으면서 집권자인 막부(幕府)의 측근으로 발탁되어 주요한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그림은 그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권력자에 의해 선택되어 조정에 있기보다는 자연으로 돌아가 본연의 깨달음을 위한 수양을 희망하며 집권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세 개의 제화시 중 마지막 난에 소겐(南江宗沅) 의 한시 마지막 두 구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여 글자 해독을 할 수 없으므로 좀 더 내공을 쌓을 때 까지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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