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상과 한민족을 위한 참된 통일의 길 外

2019. 8. 18. 11:16우리 역사 바로알기


민족사상과 한민족을 위한 참된 통일의 길| 우리철학 아카데미

유토피아 | 조회 790 |추천 0 | 2018.05.19. 04:39



민족사상과 한민족을 위한 참된 통일의 길


                                         신철균

 
목      차

Ⅰ. 서    언

Ⅱ. 우리의 민족사항

    1. 태고사(太古史)시대에서의 개벽, 신시(神市) 재천(齋)

    2. 상고사(上古史) 시대의 우리 민족사상

   1) 천부경 造化   2) 삼일신고    3) 참전계경

      4) 홍익인간  5) 선도(仙道)사상  6) 풍류도  

      7) 원효의 화쟁(和諍)사상    8) 동학사상   9) 충(忠) 효(孝)사상

      10) 선비정신  11) 한국의 무속(巫俗) 

      12)천지인(天地人) 우주 포용의 ‘한’ 사상

Ⅲ. 한민족을 위한 참된 통일의 길

    1. 홍익화백(弘益和白)

      1) 화백의 개념 2) 신라의 화백제도  3) 환단화백

    2. 홍익화백제

      1) 홍익화백제와 평화적 통일

      2) 홍익화백제도  3) 홍익화백제 통일

    3. 「홍익화백통일론」의 기대효과

      1) 남․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의 입장

      2) 우리민족의 입장

    4. 홍익사회

Ⅳ. 결    론

 
 

Ⅰ. 서    언 

     나라를 잃는 것은 일부를 잃는 것이요. 역사와 문화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다원화 되어가는 추세다.  국제정치는 아직도 미국주도하의 단일-다극화체제(Uni-multipolar system)로 가고 있으나 2030-50년내에 중국, 인도의 강국등장 조짐도 예견되는 경향이 있어 주목되는 바다.

    문명비평가인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교수는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라는 저서에서 “이제 세계 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는 문명”이라고 했다.

     기술문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IT(Information Technology - 정보기술) → BT(Bio Technology - 생태기술)→NT(Nano Technology - 극미기술)→LLEI (Life Longing Engineering Technology - 생명연장공학기술)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여기서 마지막 LLET는 필자가 새롭게 붙여본 명칭인데 의학, 공학자의 생명연장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장기 생명발달유지(100세-150세 등)로 또는 그 이상 장수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여기서 LLET(생명장기연장공학기술) 현상을 종교에서는 다른 세계로 보고 있다는 예견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군 홍익인간이념의 심원한 근원에 연루된 민족 종교중에는 생명의 연장, 그 시기는 바로 “후천세계(後天世界), 신선(神仙)세계”가 온다는 전망을 예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헌팅턴의 문명충돌"을 말했는데 그것은 필자가 왜 지적하는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 강국인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근본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 원동력은 중국의 대중화(大中華)주의 (Great Sino Centrisim)가 역사적으로 면면이 잠재되어 와서 민족무의식(National Unconsciousness)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속에서 내재되어 일어난 고함(高喊)이었다.

  이것은 중국의 문화, 문명으로서의 대중화주의와 사상의 우위성을 세계에 다시 고양(高揚)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00년전 백범(白凡) 김구 선생의 말씀을 이 세미나에서 상기시키고저 한다. 백범선생은 우리 대한민국은 앞으로 「文化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세계 속에 문화중심국가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것은 앞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홍익인간이념의 개방적 세계화가 이룩될 때 인류의 평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광복 63년 건국 60년인 올해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 한민족은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회복 찾아야 한다.  9,200여년전 12개의 환국(BC1197-3897)이 있었으며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가 되는 광대한 지역에 그 12나라가 차지하고 있었음이 실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남북한은 쌍방이 모두 기존 이데올로기의 재검토와 잘못된 체재의 허점을 청산하고 우리민족의 정통사상(正統思想)에 입각한 바르고 참된 통일의 길을 찾아야 한다.


  북한의 공산주의와 남한의 민주주의는

  - 그 시행과정에서 모두 한(‘恨’)이 맺히고 있다.

    <p>    弘益人間정신은 그 어느 누구도 답답하고 섭섭하지 않게 하고(모든 의견을 하나로 모아 화평과 안정을 가져오게 하고)  </p>

  - 나와 천지인(天․地․人)사이에서 크게 돕는 길을 찾아

  - 공정하지 않음이 없고

  - 어느 하나 어둡고 악의점이 없이

    <p>  - 세상 만물의 본성을 존중하여 합리적으로 다스리는 것이다.</p>

  본 과제는 먼저 민족사상을 고찰한 다음<홍익화백제> 통일이 참된 통일의 길임을 연구과제로 제시해 두는 바다.

  끝으로 본 연구과제는 박상림<민족통일촉진회 회장>박사와 공동연구과제로서 弘益和白制통일의 미래 투시(投視)방향이 같음 밝혀둔다. 
 

Ⅱ. 우리 민족사상 

1. 太古史시대의 개벽(開闢), 신시(神市), 제천(祭天) 

   학계(學界)에서 그동안 단군이래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상고사(上古史)로 규정해왔다

   일봉(日漨) 곽춘근(郭春根) 황궁천제단 기념사업회 이사장1)은 단군이전 역사를 태고사(太古史)로 정의(定義)하고 태고사학(太古史學)으로 정립하였다. 1600여 년 전 신라 박재상 충신이 편찬한 역사기록지인 <부도지>는, 이조(李朝) 역사 임금들이 삼성(三聖祖)로 모시던 환인 환웅 단군의 역사와 함께 우리 겨레의 시조가 황궁천제님이었음을 밝혔다. 다시말하면 우리의 태고사(太古史) 황궁씨-유인씨-환웅씨-임검씨(단군)로 계승된 역사라는 점이다.


    태고역사를 전하는데 있어 신라의 박재상의 부도지(符都誌)환단고기(桓檀古記)를 보면 환국시대 3301년과 신시(新市)시대 1505년과 고조선 단군시대 2006년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언급했다.

  놀라운 것은 김영돈 원로 역사학자환국(桓國)이 7만2천 년 전에 건국되어 12개국 환국나라가 연합국가로서 6만5천 년간 이어져 내려 왔다는 것이다.2)

  이는 분명히 확증되고 있는 것은 안경전 저 개벽실제상황(2005년)을 보면3), 다음 12나라가 분명히 실증되어 기대되어 있다. 그 12나라는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 객현한국, 고모객국, 수밀이국, 매구여국, 사남여국, 선비국이다(객현한국, 구모객국, 사남여국,,,등은 위치미상)4).

  더욱 놀라운 것은『삼성기』를 보면 “타내류산 아래엔 환인씨(桓仁氏)의 나라가 있었으니 천해(지금의 북해)의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그 땅의 넓이는 엄청나게도 남북5만리, 동서가 2만리인데, 모두 환국이라 한다”5)고 하였다.

  환국은 실존국가다. 인류운명사의 원류(原流)가 되는 국가인 환국에 대해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보면 석유환국(昔有桓國), “옛 적에 한국이 있었다.”고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언제 누가 말한 말인가. 

우선 삼국유사 고조선 기록부터 살펴보자.

 

(三國遺事)        석유한국

                  昔有桓國 

                  한웅- 솔도삼천 강어 태백

                  桓雄- 率徒三千 降於 太柏 

                  산정 신단수하 위지 신시

                  山頂 神檀樹下 謂之 新市 

신화설의 번역은

昔有桓國 : 신화설은 桓國의 國을 因으로 변조하고 庶子桓雄과 연결한다.

              “옛날에 桓因의 庶子桓雄이 있어…” 

       ※ 國을 因으로 날조한 이유

          ① 桓國을 國으로 번역하면 나라를 인정하게 되어 조선사가 일본기원 2600년 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② 桓國庶子하면 桓國나라에 서자가 있다는 것으로 桓國과 庶子가  연결되지 않는다. 즉 庶子의 번역이 난처하다. 이리하여  桓國을 桓因으로 변조하고 桓因을 서자로 묶어 桓因을 마치 인명인 듯이 하여 桓因의 庶子로 번역하게 된다.   

그런데 실은 이 桓因은 인명이 아니라 桓國을 영도한 관직인 것이다6). 이와 같이 桓國을 桓因으로 칭한 자는 일제식민사학자 이마나시류였다.

 

  오늘날 神檀樹를 신단 나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문맥을 검토하지 않고 흐리멍덩하게 일제가 날조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神檀樹는 神檀을 樹(立) 세우다로 풀이해야 할 낱말이다.  

  홍익인간이란 말은 삼국유사의 위 기록, 환웅이 옛 한국(桓國)에서 태백으로 내려올 때 옛 한국(桓國)의 영도지인 桓因=桓仁이 한웅에게 가이 홍인인간(可以 弘益人間)으로 내리신 말씀이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5899(=1565+4334)년 전이다. 桓因(한인)의 이름으로 다시 말하면 환웅-거발한(居發桓)이 무리 3천을 이끌고 옛 한국(桓國)을 떠나 태백(太柏)으로 내려올 때 옛 한국(桓國) 영도자인 한인-안파견(安巴堅)거발한 한웅에게 내리신 말씀이 弘益人間이다.  
 

※ 옛 한국: 삼국유사 고조선에 기록된 昔有桓國(옛날에 한국이란 나라가 있었다)을 말한다. 

  이 한국(桓國)은 12나라가 연합한 나라이고 각각의 나라 이름은 따로 있다. 이들 나라는 지금으로부터 7만2천여 년 전에 건국하여 6만6천여 년 간 이어져 왔다고 한다.  

  우리의 원류는 삼국유사의 석유한국이고 기원은 한웅이 옛 한국에서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에 내려와 신시배달국을 개전한 때를 기원으로 하게 된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5천8백여 년 전이고 떠나온 모국 나라이름이 한국(桓國) 이었다. 이 한국(桓國)과 오늘의 한국(韓國)의 소리이름이 같이 함으로써 이를 구별하기 위해 옛 한국으로 이름한 것이다.

  7만 2천여 년 전 桓國[12국 연합] 이래 고조선 21대 蘇台王까지 임금[천황, 왕]을 추대[和白制]해왔으나 22대 色弗婁王이 改官制로 고쳐 近朝鮮[이씨왕조] 시대까지 왕을 세습[봉건제]으로 이어져 왔다. 근래 8천2백여 년 전  桓國후기의 洪山文化중국 遼河유역에서 유물 등이 발견됨에 따라 한국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5개국 考古학자들은 實史로 인정하고 현재 東北三省 몽골지역 바이칼 호 주변에서 遺跡發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학학술원]7)

  태고사시대를 정리함에 있어 다시한번 밝히는 바는 天符계승이 黃宮->有因->桓因->桓雄->檀君으로 계승전개되어 왔다는 것인데, 이것을 기록한 부도지 제10장 전문을 여기에 소개해 둔다.


   [제 10장]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미혹함을 풀며 복본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천지의 도를 닦고 실천(修證 수증)하는 일에 근면하라고 일렀다. 곧 첫째 아들 有仁(유인)씨에게 명하여 인간세상의 일을 밝히게 하고, 둘째와 셋째 아들에게 모든 洲를 돌아다니게(巡行 순행)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천산에 들어가 돌이 되어(化石화석)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간세상의 어리석음을 남김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쟁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天符三印(천부삼인)을 이어 받으니, 이것이 곧 天地本音(천지본음)의 상(象)으로,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유인씨가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환인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재앙을 없애는 굿을 전수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간세상의 이치를 증거하는(證理 증리)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이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이 거의 편안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하늘의 도를 닦아 실천하는(修證 수증) 3천년 동안 그 공력을 거의 다 썼기 때문이었다.  
 


2. 상고사시대의 우리민족사상 


1) 천부경(天符經: 造化사상)

 

  한민족의 시원적 근원의 뿌리는 천부경이다. 천부경은 천•지•인 삼재(三才)에 부합되는 경이라 한다. 천부경은 잉태하는 새 생명은 인위적인 계획과 무관하게 창조되는 것이니, 조화에 해당한다. 천부경은 천지만물사(天地萬物事)의 생장쇠멸(生長衰滅)의 우주섭리를 81자로 요약 계시한 한민족의 천경(天經)이다.

  천부경은 신라 말의 고운 최치원 선생묘향산에서 발견하고 다시 한자 천부경으로 번역 재조명하였다.

  천부경은 자존적이며 자율적인 창조성을 가진 우주가 대생명력에 의해 존재하고 운행되고 있는 원리, 즉 대자연의 생성과 존재 및 운행의 원리나 이치를 숫자 31자와 한자 50자, 도합 81자로 함축하여 나타낸, 우주적 진리요, 천리인 경이며, 동시에 소우주적 존재인 사람의 도리와 인생의 노정을 설명한 것이다. 결국 천부경을 공보하고 배우는 목적은 바로 인간생활 속에서 인간의 자아발견과 자아완성인 성통공완(性通功完) 있다 하겠다.8) 
 

천부경의 81자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 2005년 말에 105세로 작고하신 학술원 회원 최태영 박사, 학술원 회원 이항령 박사를 위시하여 필자 신철균 박사, 단군학회 회원들을 조직 19960년대-2000년까지 40여년 가까이 적지않은 세월을 홍익이념을 바탕으로 한 통일 강연을 해왔음. 


(1) 문단별 분석 및 의미     
 

一始無始 一析三極無盡本: 모든 것은 하나에서 시작되니 그 하나는 시작이 없고, 하나가 나뉘어 셋이 되지만 그 다함이 없는 근본은 그대로이다. 

天一一地一二 人一三: 셋 중 하늘이 첫 번째로 나온 하나고, 땅이 두 번째로 나온 하나이며, 사람이 세 번째로 나온 하나다.  

一積十鋸無매 化三: 하나가 모여 열이 되고, 우주의 기틀이 갖추어 지되, 모두 셋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하늘이 둘을 얻어 셋이 되고, 땅은 둘을 얻어 셋이 되고, 사람이 둘을 얻어 셋이 된다. 

大三合六生七八九運: 크게 합하여 여섯이 되고 여섯이 일곱과 여덟을 만들며, 아홉에서 순환한다.  

運三四成環五七一: 셋과 넷이 어울려 고리를 만들고, 다섯과 일곱이 어울려 일체가 된다.  

妙洐萬往萬來 用變不動本: 만물이 이와 같은 질서속에 오묘히 오고가며 온갖 모양과 쓰임을 지어내지만 그  근본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 본 마음은 태양과 같아서 오직 빛을 향하니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있어 셋이 일체를 이룬다.  

一終無終一; 모든 것이 하나로 끝나되, 그 하나는 끝이 없다.  
 

(2) 주제별 분류 및 의미9) 

<2>-1  시동훈(始動訓): 이는 이 광대무변하고 신기 망측한 대 우주와 대우주내의 모든 현상에 대한 천리를 밝힌 가운데 그 시발이 되는 생명력, 이른바 역학원리인 정극이동(靜極而動)에서의 동이 시작되는 그 천리를 깨우쳐 놓은 것이다. 이는 천부경 81자 가운데 제일 첫 구절이 이에 속한다.  

  一始無始 一析三極 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鋸 無圓化三을 말한다. 

: 태초에 대우주 생선의 시작은 하나의 생명력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시작의 때는 알 수 없다. 대우주는 태초에 하나의 생명력으로부터 세 근원으로 나뉘어졌으나, 그 하나의 생명력은 없어지거나 다 소모됨이 없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력에서 나누어진 세 근원이란, 첫째는 우주인 하늘(天)이요, 둘째는 대우주 속의 땅(地)이요, 셋째는 하늘(天)과 땅(地) 가운데 사람과 만물이다. 세 근원인 하늘과 땅과 사람이 생성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하나에서부터 시작하여 둘, 셋 또는 두 단계, 세 단계로 쌓이고 높아져서 다섯이 되고 일곱이 되고 열이 되는, 또는 다섯 단계, 일곱 단계, 열 단계로 점차 쌓이고 높아져서, 완성(10)이 되도록 쌓이고 커져서, 완성(10수) 단계로 차원을 달리하는 물리적 변화를 일으켜, 어떤 틀이나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각양각색의 천태만상인 대우주로 완성되는 것이다.  

  <2>-2 조화훈(造化訓): 이것은 그러한 시동이 어떠한 조화를 펼치고 있는가에 관하여 깨우쳐 놓은 것이다: 즉  

天二三 地二三 仁二三 大三合六 生七八九를 말한다. 

  <풀이> 완성된 한울과 땅과 사람과 만물은 음(-)과 양(+), 내성과 외형, 주제와 대상의 상대성을 이루고 있으며, 그 존재양상은 삼수를 근본으로 하는 삼상(三相: 삼원색, 삼신, 머리 몸통 사지 등)으로 존재한다. 한울과 땅과 사람의 음과 양인 2수가 합하여 만물만상의 구분수인 6수가 이루어졌으며, 이 근본 6수에서 7수(눈 둘, 코 구멍 둘, 귀 둘, 입 하나)인 얼굴의 칠성(七星)과 7호 제신력(諸神曆), 북두칠성과 8수 9수(9규)와 대우주를 형성하였다.  

  <2>-3 중축훈(中軸訓): 이는 앞에서 논한 조화를 이루게 하는 중심이 되는 축이 있는데, 그 축에 관하여 깨우쳐 놓은 것이다. 즉 運三四成 環五七 一妙洐 萬往萬來 用變不動本을 말한다.

 

하늘(天과) 땅(地)이 조화 운행하여 3개월씩 4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루고, 오행(水木火土金)과 7요(曜-日月火水木金土)가 고리가 되어 한 해를 이루 듯 돌고 도는 원과 같이 운행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생명력은 신료하게 화학적 또는 물리적 변화 등, 만 번 가고 한 번 오는 쓰임의 변화가 있을지라도, 그 근본인 생명력과 그 근본의 이치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2>-4 인성훈(人性訓): 이는 대우주의 조화에 의하여 생성된 생명에는 제각기 성품이라는 소위 천리부명(天理賦命)이 있다는 것인바, 그 가우데 사람이 이른바 만물지수(萬物之秀)인 까닭에 人자로서 대표하여 깨우쳐 놓은 것이다. 즉 

  本心本太昻名人中天地一을 말한다.  

  <풀이> 마음의 근본인 사람의 타고난 성품과 목숨(生命)과 감정은 태초의 근본인 건양으로 밝게 비치어 나타나면 비로소 사람을 중심으로 하늘(天)과 땅(地)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2>-5 순환훈(循環訓 ): 이렇게 하나 된 대우주와 대우주 내의 일체현상의 운행원리는, 그가 진행하다가 단절되는 것의 이른바 유한한 것이 아니고, 원운동으로서의 무한속성의 발전적 연속게임을 깨우쳐 놓은 것이다. 즉 

一始卽一終而 一終卽一始로서, 一終無終一을 말한다.  

  <풀이> 태초에 하나의 생명력으로부터 시작된 대우주 생성의 시작을 알 수 없듯이, 대우주의 존재와 운행의 끝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원(圓)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듯이 대우주의 존재와 운행의 생명력도 그 끝은 곧바로 새로운 시작의 원으로 연결되듯이 무한히 연속되는 생명력인 것이다.

  무한한 대우주, 늘 변함없는 하늘, 그 가운데 땅도 사람도 하늘도 끝이 없이 영원히 영존하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2) 삼일신고(三一神誥, 교화(敎化))10) 

삼일신고는 하나님의 가르침을서 총366자를 천훈(天訓), 신훈(神訓), 천궁훈(天宮訓), 진리훈(眞理訓), 世界訓), 眞理訓) 등 5훈으로 분류한 홍인정신의 핵심 교화경이다.

  첫째, 천훈은 하늘의 가르침이니, 하늘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에 올바른 답변이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의 개념을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다.

  둘째, 신훈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니, 큰 덕• 큰지혜• 큰 능력으로 무수한 세계를 창조, 주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뇌에 강림한 신자(神子)를 통하여 절묘하게 친견하시는 견성의 원리를 밝히고 있다.

  셋째, 천궁훈은 하나님 궁전의 가르침이니, 만선(萬善), 만덕(萬德)의 계단 문호로서 모든 영철(靈哲)이 호위하는 큰 길상 광명의 곳이며, 성통공완자의 길이 쾌락을 누리는 곳임을 밝히고 있다.

  넷째, 세계혼은 우주의 생성과정 등의 가르침이니, 지구를 하나의 둥근 구슬에다 비교하여, 태양계에 속해 있는 별과 같은 존재임과, 우주의 구성 상태를 밝히고 있으며, 일세계사자(태양신)가 7백 세계를 통할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다섯째, 진리훈은 인간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진리의 가르침이니, 사람이 만물과 달리 성명(性命精) 삼진(三眞)을 받았으나 심기신(心氣身) 삼망(三妄)에 뿌리를 박음으로 인하여 선악 청탁 후박으로 섞여져 있다. 중생은 생(生)•장(長)• 초(肖)•병(病)•몰(沒)의 고통에 떨어지니, 철인(哲人)은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으로 한결같이 수행하여 망령됨을 돌이켜 대신기(大神機)를 발휘하여 성통공완할 수 있는 이치를 밝혀주고 있다.   

3) 참전계경(參佺戒經, 치화(治化))11) 

  참전계경은 전(佺)에 참여하여 계(戒)를 받는 경(經)이라는 뜻이며 또한 치화경(治化經)이라 하니 이는 지치(至治), 즉 이상적인 통치를 목표로 한 최고의 치화지침서이다.

  참전계경 366사(事)는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범(凡)주(主)인간(人間)삼백(三百)육십(六十)여(餘)사(事) 재세이화(在世理化), 즉 모든 인간의 360여 사리를 위주로 하여 현재 세상을 진리하하라 한 데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홍익이념은 홍익인간 외에 재세이화(在世理化)•이화세계(理化世界)도 포함되었음을 알아야 하며, 참전계경 366 사가 상고(上古)로부터 있었던 것을 고구려 초기 을파소 국상에 의하여 재조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을파소 선생이 일찍이 백운산에 들어가 지성으로 수도 끝에 신선(佺)의 협조를 받아, 4천여 년 전부터 전해오다가 국운쇠퇴와 더불어 자취를 감추게 된 참전계경 366사를 재조명하여, 상고시대 이후 홍익문화를 다시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12)

  그러나 삼신신앙의 우리 민족이 대삼합육(大三合六)에 의하면 천존(天尊至尊): 1, 2, 3, 4, 5, 6 시대를 거쳐, 21세기 인존: 7, 8, 9시대에 결실하게 된 것은 하늘의 계획이라고 한다. 따라서 현대의 정보문화시대에 원시반본(源始返本)으로 소도삼경(蘇塗三經)은 인류의 생활지침이 될 것으로 믿는다.

  참전계경은 팔리훈(八理訓)이라고도 하니 이는 성(誠)•신(信)•애(愛) 제(濟)•화(禍)•복(福)•보(報)•응(應) 등 팔리(八理)로 분류하고 있음이며, 다시 45절에 366사로서 세분하고 있어, 삼일신고와 같이 1년 366일, 인체 366혈(穴), 366골(骨)과 일치하고 있으니, 천지인의 창조원리에 부합한 경이라는 데서, 타 경전에서는 볼 수 없는 진리경임을 알 수 있다.

  참전계경은 편의상 장•절•사로 표시하여 8장 45절 366사로 분류하였으나, 원문은 8리를 각각 달리 표시하여 8리를 각각 달리 표시하여 8리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으니,  

1리 誠은 6體 46用에 합54事

2리 信은 5團 35部에 합 41事

3리 愛는 6範 43圍에 합 50事

4리 濟는 4規 32模에 합 37事

5리 禍는 6條 42目에 합 49事

6리 禍는 6門 45戶에 합 52事

7리 報는 6階 30級에 합 37事

8리 應은 6果 39形에 합 46事로 분류되고 있다.  

  이는 현대국가의 법령과도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治化經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듯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리가 여기에 완전히 구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홍익하고 만물을 제도함이 참전계경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4) 홍익인간 

  홍익인간 이념은 인류의 이념이다. 홍익인간하면 국조 단군조선 이념으로, 우리 한국인  그리고 외국인들은 홍익인간 이념이 우리민족 고유사상으로 보고 있다.

  홍익인간이란 말은 언제부터 나왔나? 삼국유사의 위 기록 한웅이 옛 한국에서  태백으로 내려올 때 옛 한국(桓國)의 영도자인 桓因=桓仁 桓雄에게 내리신 말씀이다.

  이 때가 지금으로부터 5899(=1555+4334)년 전이다. 桓因(한인)의 이름으로 한웅 거발한(居發桓)이 무리 3천을 이끌고 옛 한국(桓國)을 떠나 태백(太柏)으로으로 내려올 때 옛 한국 영도자인 한인=안펴견이 거발한 한웅에게 내리신 말씀이 弘益人間13)이다.

  弘益人間의 중요점은,

   〇. 一神降衷(일신강충): 하나님(一神)은 강충(降衷), 한 가운데(진중-眞中)에 내려와 계                시어 기울어짐-공평하지 않음-이 없고

   〇. 性通光明(성통광명): 만물의 본성은 밝게 빛나며

   〇. 在世理化: 세상 만상은 理性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이 인간사가 弘益人間이다. 이 홍익인간을 본으로 해서 경천숭조(敬天崇祖) 애인(愛人)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홍익인간은 다음과 같이 만물과 사이를 두고 크게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사는 인간이다. 그 大(크기)는 三大 - 三弘이요

  천 - 현무: 심오하고 고요하나 크다

  지 - 축장: 모으고 거두어 크며

  인 - 지능: 깨달음과 재능이 크다

그 道(길)는 三圓이며

  天 - 普圓: 넓은 원이고

  地 - 效圓: 본받을 원이며

  인 - 擇圓: 가리는 원이다.

그 사(事)는 三途

  天 眞一 無僞: 오직 참되고 거짓을 하지 않고

  地 動一  無怠: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人 協一  無違: 사람은 서로 어울려 다투지 않고 어기지 않는다.

  3태극화백정부(三太極和白政府)는 홍익인간 이념을 홍익삼도(弘益三途)로 수행한다.

弘益三途:

   三途   忌三

  天 眞一 無僞: 오직 참되고 거짓을 하지 않고

  地 動一 無怠: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人 協一 無違: 사람은 서로 어울려 다투지 않고 어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홍익인간의 경천(敬天( 숭조(崇祖) 애인(愛人)이 실천에 옮겨지도록, 동기부여를 하게 된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다수가결제로 퇴폐된 민주주의가아니라, 오로지 인류가 공감하고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간소한 홍익3도의 위 3율법으로 운영하여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남북통일의 길을 연다.14)

 

  2) 인간의 활동범위는 天地人과 사이를 두고 이루어짐으로써 홍익인간사상을 ‘천지인사상’이라 한다. 

  3) 天地人  -  도는 普(넓고), 效(본받고), 擇(가리는) - 圓으로 함으로써 홍익인간사상을 일명 ‘원사상’이라고도 한다.  

  4) 홍익인간은 하나(一)의 상으로 ‘하나(一)님사상’이다.

  天事 眞一: 하늘은 (一)오직 참되고

  地事 動一: 땅은 (一)오직 부지런하며

  人事 協一: 사람은 (一)오직 어울려야 한다.

  이상 종합하면,

홍익인간의 호칭을 弘益人間=天地人思想=圓思想=하나님 사상이며, 홍익인간하지 않음이 없고, 어느 하나 어둡고 악의적임이 없이, 세상만물의 본성을 존중하여 합리적으로 다스리는 인간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홍익인간이념은 “삶” 즉 인류의 본능을 말한다. 인류의 본능이란 “삶”의 보건으로 남을 헤함이 없이 우주 속에서 서로가 영원토록 공존공생하려는 氣  機  質  形 의 작용이다.

  요약하면, 천지인 스스로가 공존하는 질형(質形)과 공존하려는 기기(氣機)의 운영으로 삼신일체의 하나님사상 즉 원사상으로 태고로부터 전수된 우리의 전통이념이다.

  참되어 거짓이 없고, 부지런항 게으름이 없으며, 서로는 어울려 어김을 없이 하여, 모두를 “一”자로 하는 1신(一神): 하나님 사상으로 집적하여, 서로는 다툼이 없는 어울림으로, 서로 크게 도와 중의일귀(衆議一歸) 위화백(爲和白)하여 모든 의견을 하나로 귀착하게 하는 화백이념으로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름하여 홍익인간이념이고, 그 사(事)를 홍익화백이라 한다.15)  

<한민족 집단 무의식> 

끝으로 독일의 심리학자이며 정신의학자인 칼융은 한국민족의 집단무의식에 대해 언급한 것이 주목된다. 칼 융에 의하면, “홍익인간사상은 한국 민족의 집단무의식이다. 홍익인간사상은 한국 민족의 무의식과 의식세계의 깊은 곳, 그리고 유전인자 속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홍익인간사상은 한국 민족의 역사적 삶의 양식이자 선조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켜오고 쌓아온 고귀한 체험이며 공동체적 삶의 양식이다. 한국 민족은 면면히 흐르고 있는 홍익의 전통과 문화속에서 지역, 종교, 계급을 초월하여 커다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홍익인간사상은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영구히 민족과 더불어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다.”16) 이는 우리 민족에게 대단히 잠재적인 힘을 실어 주는 말이다.  

5) 선도사상(仙道思想)

 

  신라말기 학자인 최치원은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에서 유• 불• 선의 종교와 사상을 모두 포용, 화를 이끌어가는 근원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묘향산에서 처음으로 한자로된 천부경(天符經) 81字를 발견하였는데 그가 유• 불• 선 3교를 수용 이를 선도사상(仙道思想)으로 화합 포용하는 것임을 이미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사상에 관해 여러 문헌에 선(仙), 선인(仙人), 신선(神仙) 등으로 표현을 다르게 했지만 사상적 •종교적•문화적인 면을 모두 포괄한 삼신사상을 소도에서 가르킨 것을 선도라고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선도는 중국으로부터 유• 불• 도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존재한 우리 고유의 사상이었으며, 바로 한국사상의 원형이라할 수 있다.

  특히 한국선도의 으뜸 경전인 『천부경』에는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명쾌한 통찰로서 ‘삼원조화론(三元造化論)’사상이 담겨져 있다. ‘삼원조화론’은 존재의 세 가지 차원으로서의 ‘天•地•人삼원, 곧 현상의 차원(地, 질료), 현상을 존재하게 한 본질의 차원(天, 정보), 주인 된 자리에서 본질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를 연결시키고 주재하는 주체의 차원(人, 氣에너지)을 제시, 이 세 가지가 어울려 돌아가는 작용을 이해하게 하며, 그 셋이 본래 나뉠 수 없는 하나임을 깨닫게 한다(이승헌(2002), 」「단학」, 한문화. 53쪽)

    즉, 『천부경』의 ‘三’은 우주의 존재원리가 형상계의 구성원리로 나타나는 개념이며, 우주와 인간의 근본을 깨우치는 선도의 핵심사상이라고 말하고,『천부경』에서 ‘一 ’은 우주 만물의 근원적 본체라는 측면에서는 體요, ‘三’은 현상계의 생성과 구성 및 변화라는 작용을 담당하는 用이라 할 수 있다. 이 때의 ‘三’은 『천부경』의 문장 흐름상 바로 ‘天地人’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천’은 만물의 성품을 통하게 하는 원리를 뜻한다고 할 수 있고, ‘지’는 만물의 생명을 알게 하는 본체라 할 수 있으며, ‘인’은 만물의 정기를 보전하는 주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선도사상은 오랜 시대의 격간을 뛰어 넘어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한국선도의 생명력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력 및 통찰된 인식 내용을 현실화해내는 강력한 실천성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6) 풍류도사상(風流徒思想)17) 

  고운 최지원의 낙랑비서문에 의하면 “나라에 현묘한 다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자세한 것은 선사(仙史)에 적혀 있는데, 실로 삼교(三敎)를 포함하고 민중을 교화한다. 가정에서는 효를 하고 국가에는 충을 하는 것은 공자의 유교와 같고, 무위의 일을 하고 불언의 교를 행하는 것은 노자의 도교 또는 선교(仙敎)와 같고, 제약을 하지 않고 제선을 하라는 것은 석가의 불교와 같다”고 하였다.18)

홍익인간이념이 외래사상인 유•불•도교와 만나게 될 때 여기에는 풍류도라는 조화사상을 낳게 하였다. 최치원은 한국 고유의 주체사상을 현묘하다고 하고 그것을 풍류도라고 했다. 그 풍류도의 주된 내용을 3교를 포함하는 것과 군생을 접화(接化)하는 것이라고 하고, 3교를 포함한 구체적인 실증으로 풍류도와 충효사상은 유교와 같고 풍류도의 무위사상은 도교와 같고 풍류도의 봉선(奉善)사상은 불교와 같다고 했다.

  풍류도는 화랑도라고 하는데, 이는 홍익사상에 연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누가 창시한 것도 아니고, 계절풍적 풍토에 연유하는 농경생활에서 자연히 우러난 홍익사상의 발전적 형태이다.

  풍류도의 원류인 홍익사상은 웬일일지 백제나 고구려에서는 그 전통이 유지되지 못하고, 외래사상에 흡수되지 못한 것 같으며 유독 신라에서만 외래사상을 잘 소화시켜 홍익사상을 풍류도로 발전시켰다. 우리는 신라의 그러한 문화적 자주성을 불교의 수용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신라에서는 불교수용에 있어서 고유사상의저항이 심했고,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서야 불교가 정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차돈의 순교는 불교사뿐 아니라 한국의 고유사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차돈의 순교로 말미암아 불교나 고유사상은 각각 더 한층 발전의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홍익사상을 풍류도로 승화시켜 폭넓은 민족문화를 헝성시켰다. 여기에 불교와 풍류도 사이에는 협력적 관계가 성립되어 다 같이 공존하면서 다 같이 발전했다.

  풍류도에는 유교적인 충효사상과 도교적인 무위사상과 그리고 불교적인 권선사상이 다 포하모디어 있는 것 외에 유불도교와는 또 다른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풍류도에 관한 자세한 기록인 선사가 지금 전해지지 않아서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풍류도가 단순하게 유불도 3교를 종합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최대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신라의 풍류도도 이와 비슷하다. 유불도교를 다 포함하면서도 그것의 종합에 그치지 않ㄹ고 좀더 높은 차원에서 그것들을 다 살릴 수 있는 별개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당시 유교나 불교, 도교의 총본산지인 당나라에서 최치원이 신라에 돌아와서 신라의 풍류도를 높이 평가한 것을 보면, 풍류도는 편협한 것이 아니고 보편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아쉬운 것이 바로 보편성이요, 조화성이요, 관용성이다. 풍류도에 나타난 위대한 포용성은 바로 홍익이념의 신라적 발전형태이다.

  위의 글에서 보면 풍류도가 후기신라시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유불선의 요지를 뽑아 엮은 것이나 유불선이라는 이파리들이 모여 한 송이 꽃이 되는 풍류도가 되었다 하겠다. 그러므로 삼교의 내용을 단순히 인용이나 조립, 나열이 아닌 새로운 완성된 별개의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성립된다. 이런 모습이 바로 한국인의 사유이며, 홍익이념의 화(和)를 바탕으로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외부세계의 이질적 문화를 흡수 포용하는 민족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런 풍류도가 비록 그 이름은 달리 했을 뿐, 고려와 조선을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 오다가 19세기에 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민중에게 제시된 것이 유불선을 표방한 동학(動學)의 출현이 아닌가 한다.  
 

7) 원(元)효(曉)의 화쟁(和諍)사상19) 

  원효(617~686)는 삼국통일에 있어 사상사적 시각에서 우리에게 삼국통일의 거시적 비젼을 보여 주었다. 오늘의 남북통일도 현실의 이질화된 모든 포장을 뜯어보리고, 알몸으로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눈물겨운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분열된 사회에서 통일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 원효가 보여준 사상적 틀 작업은 통일가로서의 그의 비젼을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 통일을 눈 앞에 둔 우리에게는 원효가 제시한 전체에 대한 통찰의 길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저서에서는 3국이 분열에서 통합을 모색하는 통일 전.후기에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산 원효 사상과 삶을 통해 오늘 이 땅에서 남북의 이질화된 모순성 해결에 통일이념 사상의 하나로서 원효의 화쟁사상을 살펴 본다.

  신라가 백제(660)와 고구려(668)을 항복시킬 무렵 가장 깊은 수련과 풍성한 저작활동을 한 원효는 여러 왕대에 걸치는 삶의 역정 동안 제도권의 안팎을 넘나들며 모순과 가식으로 가득 찬 기성 정치권과 사상계에 중대한 인식전환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즉 아상(我相)과 아집으로 뭉쳐 있는 인간들에게 인간의 진정한 해탈과 자유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많은 저서를 통해 이론적으로 밝혔을 뿐만 아니라,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일심(一心)과 화쟁(和諍)과 무애(無碍)로 표현되는 일관된 삶의 모습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마음의 세계로서의 일심과 마음의 통일방법으로서의 화쟁, 그리고 자유인의 몸짓으로서의 무애를 통해 시대와 민족과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 넘은 보편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원효의 화쟁사상은 이 보편적 인간이해위에서 비롯된 인간의 조화, 통일로서의 일심의 개념을 통해서 정립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원효가 시종일관 강조하여 보여주고 있는 일심은 바로 이 통합과 분열, 사랑과 미움, 동포와 원수 등의 상대적 대립을 회동하는 따뜻한 마음이며 넓은 마음이다. 갈라진 국토와 찢어진 민심, 분열된 정서를 화해하는 넉넉한 마음이 바로 일심이다. 전쟁이 주는 비참함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핵심적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니 참혹한 전쟁을 멈출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인가? 원효는 그것을 일심, 즉 ‘한 마음’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원효의  화쟁은 바로 이 일심의 구체적 표현이며, 실험방법이다. 나아가 원효의 무애는 일심과 화쟁의 실천적 모습이었다.

  원효는 한 생각을 돌이킴으로써 눈 앞에 벌어진 세계의 모든 차별성을 극복한 것이다. 즉 구체적인 사태와 추상적인 원리가 어떠한 인식 전환에 의해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진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의해 벌어지는 세계의 다양한 모습은 마음의 조절을 통해 하나의 과녁으로 겨냥될 수 있다고 원효는 말한다. 다시 말해서 상대적 2분(二分)을 넘어서는 어떠한 통합의 논리로서 제기된 화쟁법은 바로 일심(一心 )과 일미(一味)와 일각(一覺)으로 회귀를 전제로 한 원효의 탁절(卓絶)한 선교(善巧)방편이었다.

  그는 앞 시대의 뭇 인연들을 종합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한국 사상사의 서막을 연 인물이며, 한국사상사의 서두를 화려하게 장식한 거인이다. 그는 신라의 삼국통일 전•후기에 살면서 통일 이후의 민족적 연대감을 이념적으로 떠받친 사상가이며, 몸소 통일작업에 참가한 ‘신라 사람’이었다.  

  (1) 원효의 화쟁, 일심의 통일관

 

  원효가 보여준 비전은 곧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 그는 어떻게 인간을 이해해야 되며, 벌거숭이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를 몸소 보여 주었으며,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을 돌이킴에 의해 중생과 부처가 만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일심(一心)은 바로 귀족과 인민이 만나고, 중생과 부처가 만나는 핵심고리였다. 그러면 어떻게 만날 것인가? 그 방법론이 바로 화쟁이다. 화쟁은 다양한 주장 이쟁(異諍)을 다 감싸 안는, 다양성 중의 통일성이다. ‘나는 옳고 너는 그릇되었다(我是他非, 自讚毁也)’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한 처방전을 내려 줌으로써 모두가 옳고 모두가 그릇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애는 바로 이러한 일심과 화쟁의 구체적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무애는 일심과 화쟁위에서 솟아 나오는 삶의 모습이다(‘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모두가 옳고 모두가 그릇될 수 있다’는 말은 누구하나 섭섭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홍익이념과 연계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원효가 보여준 화쟁, 일심의 통일관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이해 위에서 성립될 수 있었다.

  이렇게 원효의 一心화쟁사상을 깊이 생각해 볼때,

  첫째 마음의 일심, 넉넉한 마음의 여유와 융화를 갖는 자세이며,

  둘째 조화는 뭇 주장(異諍)을 화해시키는 원리이다. 일미(一味)는 같은(同)과 다름(異), 세움(立)과 깨트림(破) 등의 상대적 이분(二分)을 넘어서 다양한 주장(異諍)의 초점을 한 곳으로 귀일시키는 것이다.

  셋째 원효의 삶은 무애의 실천을 통해 질적 승화를 도모했다. 그는 일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 一心화합에 의한 통일

  원효의 통일사상(哲學)은 보편적 인간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떠한 생각의 이해 위에서 성립될 수 있었다. 그 핵은 바로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1심(一心) 즉 중생심이었다.

  3국의 통일은 바로 이 일심(一心)의 고리를 통해 감싸 안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일심은 따뜻한 마음이여, 넉넉한 마음이듯이 3국 인민들에 대한 ‘따뜻함’과 ‘넉넉함’이 바로 국토를 통일하고 민족을 통일하는 motive임을 역설하였다. 화쟁은 일심이 실현방법이며, 무애는 일심을 지닌 삶의 구체적인 실천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이질화된 남과 북의 다양성 중의 조화와 통일성을 지향하는 우리의 미래 지향적 노력이어야 하겠다. 그것은 곧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연기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통찰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원효가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전체적 통일에 의한 화합과 일심, 즉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 위에서 펼쳐지는 넉넉한 마음, 따뜻한 마음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하는 하나의 건강성 회복의 촉구이다.

  한반도의 분열상도 우리들이 잘 챙기어 간수함, 이 1심(一心)의 통찰 위에서만이 극복이 가능하다 하겠다. 남•북 문제를 대립으로 파악하지 않고, 우리들은 ‘본래부터 하나요’, ‘한 바탕’이요,  ‘한 뿌리’라는 연기적 통찰 위에서 자신의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할 때, 비로소 一心이 ‘넉넉한 바다’ 속에서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통일은 영토적 통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갈라진 온갖 마음들을 한줄기 마음의 통일로 묶어 세우는 작업에서부터 전개되어야 함을, 우리는 선각자 원효로부터 배울 수 있다.  
 

8) 동학사상(東學思想)  

(1) ‘인내천(人乃天)’과 한의 ‘대아(大我)’정신

  수운 최제우(崔濟愚, 1824~1864)의 동학은 그때까지 정신계를 지배했던 유불도(선)이 효험이 다한 것을 깨닫고 유•불•도를 비판, 유•불•선 3교인 동학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 동학은 그후 ‘인내천’사상으로 발전되었다.20) 동학은 유•불•선이 내포된 우리 민족의 주체적 고유사상으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최초이 민족종교의 태동이었다는 점에 그 위대성이 있다. 이제 ‘한’사상이 동학사상에 연계된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수운 선생의 안목에는 유•불•도는 이제 그 효험이 다한 것으로 보였다. 수운 선생은 유•불•도 3교를 비판하기를 유교는 명목과 형식에 구애되어 아직 현묘한 데에까지 도달하지 못하였고, 불교는 적멸(열반, 해탈)에 빠져 현실이 인간가 상윤을 저버렸으며, 또한 도, 즉 선은 자연만을 부르짖어 치평(治平)의 방법을 결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그때까지 우리의 정신적 지주로 군림하던 사상계에 대한 준엄한 반성이었다. 수운 선생은 유교는 종교성이 약하고, 불교는 윤리성이 약하고, 선교는 정치성이 약하다는 것이며, 동학은 이러한 면들을 모두 살렸다는 것이다.21)

  이 점이 바로 동학이 가지는 ‘한’의 포용적 대아정신을 뜻한다. 유•불•산 3교의 합일치, 이는 ‘한’의 대아정신과 연결된다. 사살상 수운 선생은 오륜오상(五倫五常)22)을 세워, 어짐에 머물고 옳음을 행하여 마음을 바로 하고 뜻을 정성되게 하여 몸을 닦되 세상에 그것을 미치게 하자는 것은 유교에서 취한 것이며, 자비와 평등을 근본 뜻으로 삼고 자기를 버려서라도 세상을 구하겠다는 기원의 마음은 불교에서 취한 것이며, 일체의 영리와 명분을 버리고 무욕과 청정으로 심심을 연마하여 끝내 영원하겠다는 희망은 道敎(仙)에서 취한 것이나, 이 3도(三道)를 깊이 살펴보면 그 진리가 다른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 天道의 틀 안, 즉 ‘한’속에 있다.

  그런데 이 비판의 표적과 그 장점을 취한 것을 종합해보면, 우리의 고유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인, 한울님의 밝음에 대한 동경, 현세에서 영생을 기리는 마음, 따라서 윤리적 정치적으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었던 것은 우리 민족 고유사상인바23), 이는 곧 옛 한국 한인(桓仁)께서 그 한웅(桓雄)을 통해 檀君에게 전수한 홍익인간에서 연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운 선생은 자기가 받은 도를 형용하여 ‘무극의 도’, ‘무궁무궁한 도’ 또는 ‘무극대도’라고 하였다.24) 또 동경대전연집 좌잠을 보면 “우리 도는 넓으면서 간략하니 많은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별로 다른 도리가 없고, 정성(誠)과 공경(敬과 믿음(信의) 세 글자뿐이니라, 이 속에서 공부를 힘써 하여, 진리를 통달한 뒤에는 저절로 알게 되리니……25)”라고 지적하고 있다.

  혜월 선생은 “무릇 천지는 모두 신적인 것으로 모두 일기의 조화요 천지만물은 시천주(侍天主) 아닌 것이 없다.”26)고 했다. 따라서 범신론적 성격을 때게 된다. 일기란 성리학에서 우주의 근원적 존재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은 다 1기(一氣)에서 나오고 또 일기로 돌아가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성리학의 일기는 형이상학적 본체를 말한 것으로 종교적 의미는 희박하다. 그런데 혜월선생에 있어 일기는 바로 한울님이므로 기회로 나타나는 만물이 모두 숭고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27)

  동경대전연집의 포덕문을 보면 “저 먼 한 옛적부터 봄과 가을이 서로 갈아들며 춘하추동 사계절이 성하고 쇠함이 변하지도 아니하고, 바뀌지도 아니하니 이 또한 한울님 조화의 자취가 온 천하에 밝게 드러난 것이로되 ……”28)라 하여 모든 만물이 1기(一氣)의 조화, 바로 한울님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들은 비와 이슬의 혜택을 알지 못하고 무위이화(無爲而化)로만 알았더라”29) 라고 지적하고 있다.

  손의암(孫義庵)선생도 천•지•인 삼재가 모두 일기의 조화30)라고 말했다. 또한 같은 동경대전의 논학문에서도 “음과 양이 서로 고루어 비록 백천 만물이 그 속에서 나오지마는 오직 사람이 가장 신령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3재(三才)의 이치를 정하고 오행의 수를 내었으니……한울은 오행의 벼리(근본)가 되고 땅은 오행이 바탕이 되고 사람은 오행의 기운이 되었으니  천•지•인 3才의 수를 여기에서 볼 수 있느니라.”31)

  이와 같이 혜월선생과 의암 선생은 천지인 3才가 곧 일기의 조화요 일기의조화가 곧 한울님이라 하여 무궁한 ‘한’의 대도를 말해주고 있다. 앞서 동경대전연의에서 “……유독히 사람이 가장 신령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한울림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다.(日天心 卽人心則)”32) 사람이 곧 한울림이요, 한울이 곧 사람이다. 사람 밖에 한울 없고 한울 밖에 사람없다(천도교서 제2편)는 것이 참진리이다. “사람을 섬기되 하늘을 섬기듯 하라(事人如天).” 이와 같이 인내천주의(人乃天主義)는 인간중심의 의지적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의암은 “자기의 마음으로 스스로에 절하는(自心自拜) 교체로 한울의 진정한(眞素的) 뜻을 세웠다.”고 말하여, 한울님을 아주 사람 속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우리 민족이 의지와 우월감을 드높였던 것이다.

  인내천은 바로 이러한 주체적 긍지의 구호다. 혜월 선생의 고귀한 자존사상은 한울님을 떠난 인간이나, 인간을 떠난 한울님은 있을 수 없다. 한울님과 인간 나아가서 만물이 합일한 상태 이것이 ‘한’의 원융의 정신이다.

  결론적으로 동학은  유•불•도 삼교의 포용발전, 天地人 三才의 일기조화, 무극대도, 誠敬信, 인내천 사상은 무궁한 天地人 조화와 원융의 ‘한’의 대도, ‘한’의 대아정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동학은 내외도전에 대한 민족자각 평등운동에 있어서 볼 때 ①민족의 평등원칙, ②민주주의 의식에의 발전, ‘③한’의 저변의 홍익인간적 심성의 발로로서 사회에 표출될 것이다.  

(2) 동학의 민권사상

  수운 최제우가 개혁의 대사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국제적 외압에서 오는 민족적 위기감, 부패, 신분적 가슴앓이, 이교도(천주학)에 대한 전통문화의 침윤, 그리고 도덕적 타락 등이다. 그는 이러한 모습들이 서로 하늘처럼 사랑함으로써(侍天主)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민중의 계몽에 헌신했다.

  이에 동학의 민권사상을 요약하면,

  첫째,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각성: 사람답게 살고 대접받고 싶은 충동에 그 뿌리를 두고, 동학의 종지인 ‘시천주’는 손병희에 이르러 ‘인내천’으로 발전되고, 이는 ‘사인여천’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절대군주체제하에서 매몰된 개인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자각이며 한국적 휴머니즘의 정화이다.

  둘째, 민본사상: 유교에 민본사상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하향적(up down)의미로서의 시혜였지, 밑으로부터(bottom up) 인민의 권익을 주장한 일을 없었다. 그들은 절대왕조에 대한 충성만이 시민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비하하여 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전봉준이 갑오년 4월 기포 때에, “……팔로(八路)가 어육(魚肉)되고 만민이 도탄에 들었다. 수재(守宰)의 탐학에 백성이 어찌 곤궁치 아니하리, ……우리 등이 비록 재야의 유민이나 군토(君土)를 먹고 군의(君衣)를 입고 사는지라 어찌 참아 국가의 멸망을 앉아서 보겠느냐”33)라고 외치신바 있다.

  셋째, 계급타파의 사상: 조선조 후기의 최대의 사회적 모순은 곧 지나친 사회계급의 형성이었으며, 수운이 이러한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사회개혁의 방편으로 동학을 창도하였다. 동학의 교리에서는 인류의 재해는 계급에 있는 것이요, 경제적 계급의 차별에 있는 것이므로, 계급차별이 없고 이해가 일치하면 인간의 행복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된다.34) 

  넷째, 여성의 지위각성: 유교의남존여비 관념은 한국사회의 균형있는 발전을 저해하였으며, 여성 특유의 능력으로 개바로딜 수 있는 분야가 외면되었다. 수운은 한 종교의 교주로서 노비를 며느리로 삼았으며, “집안사람을 한울같이 존경하라, 며느리를 사랑하라, 노예를 자식같이 사랑하라,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한울님이 노하시는라”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이 동학의민권사상이란 당시 민중의 가슴속에 맺힌 피압박 계급의 항변을 요약한 것이었다.

 

(3) 결론 

  동학은 그때 까지 정신계를 지배했던 유•불•도의 효험이 다한 것을 깨닫고 이 3교를 비판, 유•불•도 3교를 포용, 발전시켰으며, 그 후 인내천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최초의 민족종교의 태동이었다는 점에 그 위대성이 있다. 유•불•도 3교의 합일치, 이는 ‘한’의 대아정신과 연계되며, 유•불•도 3교가 모두 천도의 틀안, 즉 ‘한’속에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사상적 측면에서

  ① 민권사상을 요약하면, 첫째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각성, 둘째 민본사상, 셋째 계급타파의 사상, 넷째 여성의 지위향상을 각성시켯다.

  ②정치사상면에서, 한국민족주의의 정수는 중화주의에서 탈피하였다.

  특히 민권사상은 오늘날 북한의 인권탄압의 비참함을 생각할 때, 남북통일을 위한 화해이전에, 특히 미국의 북한인권 탄압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UN의 북한인권 탄압에 각성을 촉구한 것은 크게 평가되어야 할 일이다. 
 

9) 충(忠) 효(孝) 사상 

  한단고기의 충효는 구서지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35)

  효우가:효는 가정에,

  충우국: 충은 나라에,

   효는 어버이가 자식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도 같이 가정에 효하여야 하고, 충은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충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홍익인간의 충효사상은 상하계층을 두고,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공동목표를 정해 충효하여야 한다는 개념이다.  

(1) 충효사상(忠孝思想)36) 

  충은 하늘이 참사랑으로 빛을 은혜로 베푸시고, 땅이 보은으로 만물을 생육하시니, 우리 인간에게 축복을 주사, 사람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만물을 소유하게 하고 누리게 하신다. 따라서 나를 낳아주신 하나님과 어버이에게 효로 충을 다함으로써 나와 우리 후손에게 더 마낳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수수적 계승형 윤회의 원리를 터득하고 그 원리를 바탕으로 되돌림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베푸는 삶이며 충을 이루는 것이며 신의로써 지키며 자기 몸과 마음을 다하는 삶이 忠된 것이라고 하였다.  

① 충(忠)은 중정(中正)한 것 

  충경(忠經) 제1편에 충이란 중정한 것이니 지극히 공평하고 무사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충은 중정한 것으로 곧고 바르게 하여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② 충(忠)은 진기지위충(盡己之爲忠) 

  충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의(義)를 위한 삶이라 하겠으며, 자기의 유익을 버리고 남을 위하여 베푸는 삶, 즉 나를 낳아 주신 부모와 내 조상과 가족을 있게 한 인류사회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다. 곧 처지에 따라 공경심을 다 바치는 것이다.

 

③ 충(忠)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 

  사사로움이 없이 오직 나라를 위하여 마음을 하나로 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 충의 근본됨이다. 충경에 惟精惟一 위국(爲國之本이라 하였으니 오직 조국을 생각하고 조국과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④충(忠)은 신(信)으로 이룬다 

  사람이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하며, 항상 공의로워야 믿음이 성립되는 것이며, 믿음이 있을 때 따르는 것으로서 군(君)이 먼저 믿음이 있을 때 신하(臣下)가 충성을 다하게 된다고 하였다. 충과 신은 불가분의 관계로 신뢰를 통하여 충이 형성됨을 알 수 있다.  

(2) 효(孝)사상37) 

효의 유래는 멀리 한국(桓國)시대(BC 7199~3899)의 오훈(五訓)에서 찾아볼 수 있어 우리 민족이 효사상을 얼마나 중요시하여 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국(桓國)시대의 효의 다섯 가지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그 첫째는 성실하여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둘째는 부지런하여 게으리지 않을 것이다.

  셋째는 효도하여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넷째는 깨끗하고 의로워 음란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는 겸손하고 온화하여 다투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은 생활윤리규범을 정하고 그 중 세 번째로 효를 제시하고 있으므로 효사상은 우리 민족사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소도경전본훈 제5에 3륜9서가 있어 세가지 윤리 중 그 첫 번째가 부모와 자식간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9서중 첫째ㅑ가 효로소 (힘써 집에서 효도하라) 효를 첫 번째 규범으로 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고조선시대(BC 2333~256)에 개국이념을 홍익인간으로 하고 홍익육덕과 양생칠목이화(養生七木理化)와 홍익5정과 홍익3강 및 홍익8조금법을 제정하여 인간의 사명인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였으니, 모든 행실의 근본을 효로 삼고 있으며 효행이 인간의 기본도리임을 말하여주고 있었다.

  효는 덕(德道)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며 부모와 자식간에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 즉 천은이 있는 것이므로 인륜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효도는 백가지 행실의 근본이라 하였고 모든 선의 원초라고 하여 친만행실의 기초로 삼았다.

  효도란 하늘의 밝은 것을 본받고 땅의 옳은 것을 좇아서 천경지의를 본받아 천하를 순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38)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담고 있는 효의 개념은 무엇보다도 부모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마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효는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과 성실한 마음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도리와 주어진 자기 직무에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인간을 말한다. 또한 내 부모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정신을 기반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늘을 공경하는 정신이다. 이러한 효사상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진정한 공동체 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효도의 실천에 힘써야 하겠다.  
 

10) 선비정신39) 

(1) 선비의 어원과 성립과정 

  선비에 대하여 순수한 우리말로 표기한 것은 조선의 창업을 찬양하기 위하여 만든 『용비어천가』(1445)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선비는 ‘션비’로 기술하고 한자로는 유생 또는 유로 쓰고 있다. 또한 고구려에 선비제도가 있었으며, 선비는 나라에서 봉급을 받고 학문과 무예를 닦아 전쟁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신라 진흥왕 때의 국선(國仙)화랑의 제도 역시 고구려의 선비를 모방한 것이었다. 이러한 선인(仙人)은 우리의 고유한 무사도이며, 우리 민족이 넑과 정신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볼 때, 선비라는 용어의 어원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으며 우리의 고유사상이 담긴 말이라는 점에서 유추하여 볼 수 있다. 또한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자의 전래와 함께 유교문화의 수용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일찍부터 유교사상과 깊은 관계가 있음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선비와 관계된 사인(士人)이나 어진 선비를 뜻하는 현사(賢士) 등의 명칭은 이미 삼국 이래에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라는 처사(處士)등의 용어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고려 예종이나 인종 때에는 사류(士類), 사풍(士風) 등의 집단적 의미의 용어로 보아 이때에는 선비들의 무리도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당시의 선비는 아직 성리학이 전래되기 이전이므로 경학(經學)을 숭상하기는 하였으나 거의가 문장을 숭상하는 문사들이 중심이었다. 고려 말 안향에 의해 주자학이 전래된 이후 여러 대유(大儒)가 배출되면서부터 문사(文士)에서 탈퇴하여 유사(儒士)로 전화되었다. 유(儒)와 사(士)는 같은 유학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儒)는 사(士)보다 넓은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유교의 경전에서는 선비를 직접 칭할때는 사(士)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2) 조선의 선비정신

 

  위에서 논의 한 바와 같이 선비라는 용어의 연원은 불명하나 사용되었다. 우리의 고유사상이 담긴 말이며 일찍부터 고유사상가 깊은 관계가 있음도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비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지만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이미 벼슬에 나아간 사람까지도 선비라고 일컬었으며, 선비의 기준을 인격과 도덕적 실천성에 두고 있었다.

  17세기 이후 선비들은 지방에서 최선을 다하여 교화사업과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담당하였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선비문화는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에는 벼슬에 나아간 사람과 선비를 구분하여 고위관료에 대하여서는 선비라 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은 무조건 벼슬에 나아가기를 배척한 것은 아니다.

  율곡 이이(1536~1584)는 선비유형을 벼슬에 나갈 경우와 살림에 처할 경우로 분류하였으나 선비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소중한 것은 재질이나 학문보다도 인품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비는 끊임없이 학문을 통하여 인격함양에 힘써야 헸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도(道)를 실천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인도(人道)를 말한다. 선비의 직분은 개인적인 도덕성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현실에 인도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올바르게 구현하기 위해서 선비는 무엇보다도 강인한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즉 도학(道學)에 대한 깊은 믿음과 함께 도학을 실현하려는 역사적 사명의식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선비를 지사(志士)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선비는 인도의 실현을 위해서 현실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즉 자기의 역량과 시세를 올바르게 살펴서 자신의 출처와 진퇴를 결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선비들은 학문과 덕성을 갖춘 하나의 인격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의 선비정신은 고결한 인격을 바탕으로 예절과 지조있는 행동을 하며, 올바른 현실인식과 강인한 의지를 갖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사외에 정도(定道)를 구현하는 정신이다. 

(3) 현대사회와 선비정신 

  인간은 개인적 존재이자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 현대사회의 가치관은 공동체로서의 사회보다는 개체로서의 개인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은 인권의 신장과 자유의 확대를 촉진시키고 개성의 신자오가 자아실현의 기회를 확대하였다. 그러나 책임의식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자유는 맹목적인 방임주의로 흐르게 되고 공동체 의식을 면한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내닫고 있으며, 건전성과 균형성을 상실한 자유는 집단적 이기주의와 맹목적 투쟁주의로 전락하였다.

  인간은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를 갖고 있는 존재이다. 서구의 근대적 합리주의가 모든 존재를 사실적으로 접근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는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위한 자연의 개발이 아니라 인간의 무한한 물욕을 충족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행된 자연의 파괴현상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은 이제 한계상황에 이르러 인간의 생존자체마저 위협하고 있다.

  전통사회의 선비는 현대사회의 지성인이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선비를 도를 실천하는 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는 인도(人道)를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인도(人道)정신과 정의의 의리정신을 말한다. 그러므로 선비는 어떤 경우라도 이 진리와 정도에 대한 강한 신념과 확고한 의지를 갖고 실천하려 하였다.

  도덕성의 함양과 실천에 힘쓰는 선비정신은 물질적 이욕에 타락하지 않는 청렴결백한 인품이나 인격을 배양할 수 있다. 또한 정의구현을 위한 강인한 선비정신은 민족정기로 승화되어 나라가 위급할 때,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민족의 수많은 충의열사는 이러한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권력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구현하려는 선비정신은 현대사회의 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자극과 반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산업화 과정에서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도덕성의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진단되느니 한국의 현대사회에서 선비정신의 본질이 새롭게 보충되어야 하겠다.  

11) 한국의 무교(巫敎)40) 

  샤머니즘의 전형적인 것은 시베리아의 퉁그수족 사이에서 찾을 수 있으나 오늘날 북방의전형적 샤머니즘의 무의형태를 볼 수 있는 곳은 한국이 세계의 유일한 곳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여기에 한국 무교 연구가 지닌 현대적 의의가 잇다.  

(1) 한국무교의 특성 

  한국 무교는 고대의 신화와 제례로부터 현대의 무속에 이르기까지 일관해서 한국문화사 속을 흘러온 역사의 종교현상이다. 그 특징으로

  첫째, 외래종교문화와 혼합되어, 제차, 제법 등이 복잡하게 발전되었으며, 특히 무가가 풍부하게 발전되었으나, 무교의 기본구조에는 변화없이, 외래종교문화의 영향은 단순히 종교적 표상을 풍부하게 장식하였을 뿐이다.

  둘째, 무교의 외형적 특징은 가무로써 신을 섬기는데 있다. 고대인의 천제에 음주가무가 이루어졌고, 오늘의 무제인 굿 역시 음주가무로서 진행된다. 가무는 교령(交靈)의 한 기술이며, 교령의 목적은 신령의 영령을 빌려 재액을 물리치고 축복을 초래코자 함에 있다. 무교란 실로 가무(歌舞賽神)하여 제재초복하려는 주술적 종교현상이라 하겠다.

  셋째, 무교의 종교적 구조는 부정을 매개로 새로운 세계와 안정을 창조함에 있다. 세속의 부정을 매개로 사람들은 원시적 신화적 세계로 퇴행한다. 거기에서 인간은 자유로이 신령과 고제하여 새로운 창조를 꿈꾸게 된다. 신화적 세계로 환원하기 위해서는 현실세계가 부정되어야 하며, 곧 죽음이 요청된다. 이 죽음의 기술을 무교는 음주가무에서 터득했다.

  넷째, 한국무교의 문화적 표상과 형태에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①교령과정에서 한국무당은 신령을 불러 내린다. 일본도 같다.

  ②한국의 굿은 가무(歌舞娛神)과 공수41)를 받는데 있다.

  ③적극적인 축복기원에 굿의 중심이 있으며, 민중의 오락을 동반한다.  

(2) 무교와 민중의 생활문화 

  무교란 노래와 춤으로써 하늘과 땅, 신령과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어 새로운 생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원초적 종교현상이다. 한국의 기층 생활문화인 세시풍속의 기본요소는 천신신앙과 지신신앙, 그리고 가무새신이라 하겠다. 천신은 산신으로, 지신은 농신으로, 가무는 농악으로 표현된다. 여기에 한국 민중의 생활철학과 생활문화의 기초가 있으며, 문화현상과 관련하여 산신문화, 곡신문화, 농악문화가 있다. 

  산신문화: 한국문화는 신화시대부터 천신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모든 신화는 하느님의 아들이 산과 숲에 강림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생황의 변동이 있을 때엔 무엇보다도 먼저 천제를 드렸다. 1년을 두고 절기를 따라 시시때때로 하느님에게 감사하며 축복을 비는 제사가 계속된다. 그리고 그 중심은 강림한 천신으로서의 산신이요, 조상이 묻힌 신의 신으로서의 산신이다. 산신은 단순히 수호와 축복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생산을 또한 관장하는 농신이며, 생산신을 뜻하기도 한다.

  곡신문화: 곡신신앙은 곧 생명령에 대한 신앙이며, 보다 풍부한 삶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부귀와 장수에 대한 축원이며, 그 중에서도 핵심이 장수이다. 이러한 수복을 주관하는 신이 곧 곡신이요, 그를 모신 것이 신단지이다. 한국문화가 또한 곡신문화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농악문화: 정초의 각종놀이와 동(洞)제나 지신밟기들은 농악을 동반한다. 농번기의 공동작업도 두레나 품앗이로 바로 농악대의 조직과 결부된 ‘농악작업’이다. 우리는 1년 내내 농악과 더불어 제를 지내고 농사를 지으며 놀이를 하는 농악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노래하며 노동하는 농민의 생활문화, 노래와 춤으로써 제지내는 민중의 생활예술, 이것의 한국의 농악문화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인의 생활철학과 무교문화의 기초가 있다.  

13) 天•地•人 우주포용의 ‘한(桓)’사상 

  천부경의 연원인 ‘한’사상의 뿌리는 옛 한국의 환인이 환웅에게 계시(啓示)내린 홍익인간에서 나온 것으로서 아마도 지구상에서 존재의 근원을 ‘한’이라는 한 글자로 표현한 집단은 없을 것이다. 한단고기에 보면,

  “‘한’은 전일(全一)이며 광명(光明)이다. 전일은 삼신의 지혜와 능력이라 하고, 광명을 삼신의 참된 덕이라고 하니, 곧 우주만물을 하나로 포용하고 있다. 또한 ‘한’은 ‘전일(全一)’과 ‘광명(光明)’이며 우주만물에 앞서는 것으로 이해했다. ‘한’은 우리 민족 믿음의 근원이요, 삶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태양은 광명이 만나는 곳이며 삼신이 계시는 곳으로 인간은 빛을 얻음으로써 농사를 짓고 스스로 교화된다.42)

  天•地•人 합일, 조화, 통일 등을 의미하고 있는 ‘한’의 여러 뜻43)을 살펴볼 때, ‘한’은 크다, 하늘이다. 하나다, 으뜸이다, 바름(正)이다, 길다. 전체, 밝음 등 무한대의 최선과 근원적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우주 삼라만상의 근본적 실재를 ‘一’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한’을 의미한 것이다. ‘一’은 순환하여 그치지 않는다. 이 같은 ‘一’은 가장 크고 가장 미세하여 그것은 바깥도 안도 없으며,, 앞도 뒤도 없는 것으로서 모든 만물의 근본적 실재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一’은 산술학에서 말하는 숫자의 ‘一’이 아니며, 그것을 초월한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여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한의 의미의 크기를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의 ‘一’은 만물생성의 근본적 실재가 된다고 했다.

  ‘한’이란 말은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로서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뜻을 가진 ‘한’의 어원에 대한 학설을 문헌상으로 종합하여 정리한 학자들도 많으며, ‘한’사상은 무한히 광범하면서도 너무나도 심오한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시대나 지역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다소 다를 뿐만 아니라 믿음의 대상에 따라서도 rm 개념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사상이 “밝다, 크다, 희다, 제일 높은 자, 우두머리라는 한이요, 다양하다는 한으로서, 한(韓), 한(汗), 한(漢), 탄(TAN), 칸(KHAN), 하나, 전체적 한, 하나님”44) 등을 압축해서 볼 수 있는바, 이는 우리 민족의 태양숭배사상과 삼신오제본기에 “대시(大始)에 위, 아래, 사방은 일찍이 아직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다가, 옛 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빛이 있어 밝더라”고 한 ‘밝다’에서 나왔다.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지닌 것은 역시 삼신오제본기와 천부경의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의 일(一)에서 왔으며, ‘크다, 밝다, 희다’고 한 것도 우리 민족의 우주관과 신관에 따라 옛날 우리 민족을 ‘배달민족’ 또 그들의 국가를 배달국, 한국으로 이름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대전(大田)을 ‘한밭’이라고 별칭하는데, 가장 큰 밭을 ‘한밭’이라고 하여, 가장 밝은 낮 시간을 ‘한낮’이라고 하는 것처럼, ‘한’은 크고 밝다는 뜻에서 연유했으며, 밝다와 희다와의 연관성은 밝은 대낮을 ‘백주(白晝)’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요 ‘배달겨레’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한’의 어원이 비록 우리 민족에서부터 기원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생겨날 당시에는 우리 민족이 여러 민족으로 갈라지기 전의 ‘한’이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세계 공통성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사상은 우리 민족의 사상인 동시에 전 세계 인류를 포용하는 홍익인간사상과 같은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45) 

(2) ‘한’사상의 뿌리(弘益人間)와 ‘한’ 문화권 

  ‘한사상’: 인류 12개 나라를 하나로 한 옛 한국사상(오늘의 UN과 같은 사상). ‘일사상(一思想)’: 모두를 하나로 하는 사상을 뜻한다. ‘한’의 대아정신46)에서 분파된 교리가 유불도 3교라 할 수 있다. 분파되었다는 것은 삼국유사 고조선 기록에 의한 ‘가이 홍익인간……솔도……삼천의 후예(可以 弘益人間 ……率徒……三千)’에서 탄생된 홍익인간 전수족을 말한다. 따라서 모든 종교가 홍익인간에서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해 볼 때 홍익인간 정신은 ①하늘과 땅의 의미를 인간 유익을 위한 가치체계로서 융화시키는 영생주의, 민본주의, 인간존엄주의를 바타응로 하고 있고, ②이것을 바탕으로 하는 유일하고, 높은 ‘한’의 민족사의 정통성은 바로 우리 고유의 독창적 문화의식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세계문화의식과 연류되는 보편적 문화가치를 시사학 있는 것이다.

  ‘한’ 문화권의 뿌리는 곧 홍익인간에서 유래되었다. 세계문화권 형성에 있어 H듁먀느(헤브라이 사람들: 유태사람들의 유태주의)인 신본주의(Theo-centralism)와 Hellenism(헬라스 사람들: 그리스사람)인 인본주의(Humanism)가 있는데, 이를 종합한 근원적 문화권을 바로 필자는 동방의 ‘한’문화권으로서 이를 Hanism이라고 말하고 싶다.47)고 했다. 이 점에서 ‘한이즘’은 유불선 3교를 이미 포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문화권은 세계문화의 근원지이다. ‘한’문화권은 곧 동방의 문화권이며, 동방의 문화권은 동이의 후예인 한민족의 문화권이다. 여기서 ‘한’문화는 단순히 ‘한’이 아니고, 자기 속에 유불선 등 동양문화의 정수를 담고 조화시켰던 동양문화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동이문화권의 유일한 주체는 우리 한민족이다. 이같이 한민족이 주체가 되어 쌓고 있어 온 동이문화의 유구한 성격이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등의 영원성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은 동이문화 그 자체의 본질 때문이다.  동이문화의 지주국 한민족운 자기(민족)이라는 주체가 나아가서 인류라는 전체와 만나며 전체는 하나(一)가 되어 그것은 언제나 온(全  또는 大 )을 이룬다. 이것은 개체와 전체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한’의 대아개념이며, 한민족이 지탱해 온 ‘한’문화권은 언제나 주체와 세계성이 동화되기를 바란다. 이 점에서 ‘한’의 사상은 인류평화사상, 세계보편성을 내포하고 있다.  

(3) ‘한’은 평화의 실천사상 

  ‘한’은 곧 평화사상이며 평화의 실천사상이다. 한민족은 지금 5천 년 이상을 살아가고 있는 민족이다. 우리는 남의 나라를 한번도 침략한 역사가 없었으며, 신린 우호주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걸어온 역사의 길은 어느 민족보다도 어려웠다. 우리 민족은 평화홍익인간 전수족으로 평화선호민족이기에 다툼을 기피하였다. 그러나 역사상 이민족의 침략만도 천여 회에 달하고, 홍익인간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 온 국민이 함께 전면 전쟁 형식으로 막아야 했던 커다란 민족적 고난만도 근 백회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도 한민족은 살아남았다. 17세기에 침략해왔던 만주족은 지상에서 거의 사라졌고, 13세기 우리를 괴롭혔던 몽고족은 그 절반도 살아남지 못했는데도 한민족은 지금 살아있다. 그 저력은 무엇인가?

  여기서 본질적으로 한민족에게 추구되고 형성되어 온 평화의 저력이 발견된다. 그것은 무수한 전쟁 속에서도 평화를 받들고 살아온 한민족으로 요약된다. 고구려 영양왕 23년(612) 수의 30만 대군과 싸우면서 을지문덕 장군은 다음과 같은 화평의 시를 적장 우중문에게 보냈다.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소, 이제 전쟁에서 그대 공이 높으니 족함을 알고 그만두기 바란다……”(삼국사기 본전 중에서)

  이같이 침략해 온 적장에게까지 ‘지족원지운(知足願址云)’을 종용했을 때 그것은 곧 전쟁을 끝내기를 바란다는 평화의 염원에서였다. 이는 상대방에게도 만족을 주는 화평의 상호관계에서 이루려는 협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평화사상은 상대가 그 뜻을 몰라 끝까지 따르지 않을 때 이를 공격하여 좌절시키는(생존자는 겨우 2천 여명) 적극적 평화 실천력으로 나왔던 것이다.48)

  따라서 ‘한’사상은 평화의 실천 주체사상이다. 평화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동.서양은 근원적으로 상치된 배경과 사유를 보이고 있다. 서양은 평화에 대한 인식을 전쟁과 갈등 면에서 보지만 동양은 우주, 자연, 천지인의 조화인식에서 사유한다. 세계사에서 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난 지역이 구라파이고, 따라서 서구는 평화인식을 전쟁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없다. 전쟁은 갈등의 한 형태이며, 집단적 존재에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평화에 대한 서구의 인식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도 사실은 그의 집필동기가 수세기에 걸친 유럽에서의 전쟁의 참화를 의식한데서 전쟁의 원인을 없애고자 나온 이상론이었다. 서양은 전쟁, 침략, 투쟁지향의 역사였으며, 싸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한다는 전승공취(戰勝攻取)의 잔악성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평화사상의 위대성은 서구인의 전쟁관 이전에 이미 천지인 조화사상에 바탕을 둔 사유라는 점에 있다. 서구는 평화에 대한 인식을 전쟁, 투쟁, 갈등 등 대립적 요인에서 보기 시작했지만, 한국은 조화관, 포용성에 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살펴볼 때, 한민족의 민족사적 정통성은 우리 민족의 얼인 홍익인간의 뿌리인 ‘한’의 민족사관이 주맥이며, 이러한 ‘한’사상은 평화의 실천사상에서 찾아야 한다.  

(4) ‘한’민족이 유념할 사항 

  상술한 봐와 같이 우리의 ‘한’사상은 옛 한국 한인이 환웅에게 당부한 가이 홍익인간49)의 정신이 단군조선에 이어져, 경전, 숭조, 애인을 실현함으로써 홍익인간의 얼을 심었다. 만민만사가 하나이기에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평등을 상징하는, 이 홍익인간이 지니고 있는 ‘얼’이야말로 그것은 비단 우리 배달민족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인류와 국가의 최고의 이념이며 지상의 목적이라 하겠다. 천부경의 홍익인간의 뿌리로서 내재되어 있는 ‘한’사상은 천지인 우주를 포용, 하나로 융화시키는 진수임을 알아야 한다.  

Ⅲ. 한민족을 위한 참된 통일의 길 

1. 홍익화백(弘益和白)50)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60여년을 넘기면서 이질화된 민족분열의 존재양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우리는 끈질긴 ‘민족화합’의 길을 살아가야 한다. 이와 같은 존이구동(存異求同)의 시대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정립하고,51) 통일을 찾는 길에서 다수가결제 민주주의를 넘기 위해, 민주주의의 모순극복을 위한, 21세기 홍익화백제 창안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을 얻기 위해,52) 한단화백의 진의(眞意)를 알고자 화백의 개념, 시라화백제도, 및  한단화백을 살펴보면서, ‘현대형홍익화백제’ 창안방안으로서 홍익인간화백회(弘益人間和白會) 창설의 타당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1). 화백의 개념

   남․북이 분단 된지 60여년 남․북 정권차원(政權次元)에서 합의노력은 있는 것처럼 보이나, 겨레가 갈망하는 화합(和合)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서로 다른 개념의 이념은 융합(融合)되지 않는다는 역사의 증명이기도 하다. 현존 사상과 주의는 일방적인 주관으로 양극대립이 점철되고 있어 합의통일인 평화통일의 구상은 실현 불가능한 이론들이다.

   오직 평화통일의 길은 외래사조가 아니라 우리 것 모두를 하나로 하는 일신(一神) ― 하나님 사상 ― 홍익인간 이념에 귀의(歸依)하여 피를 보지 않고 남․북이 통일하는 길을 찾아야 하겠다. 이제 우리가 갈망하는 통일은 피를 보는 통일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으로 이루어지며, 남과 북이 함께 승자가 되는 통일을 만들어야 하겠다. 우리는 미련 없이 외래사조를 떠나, 우리의 정통이념― 모두를 하나로 하여 다툼이 없는 홍익화백53) 정신으로 남북통일의 길을 열어야 하겠다.

   이에 화백제의 개념부터 약술해 본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있어 아주 헛갈린다. 이들에 대해 확실한 판별이 되었으면 실수 하겠는가 만은 그렇지 못함으로 해서 종종 실수를 한다.

    一人異則罷하는 新羅和白과

    衆議一歸하는 桓檀和白으로 두 和白이 있다.

  위 화백(和白)들은 글자로는 동일하나 그 속뜻은 판이하게 다르다. 

   신라화백은 어떤 안건을 만장일치로 채택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안건이 아무리 긴급하고 좋아도 한 사람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채택되지 않아 시행할 수 없어 지장을 유발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한단화백(桓檀和白)은 어떤 안건의 시행방법을 의논하여 좋은 방법을 마련, 안건을 시행하자는 시행방법을 강구하는 회의제도를 말한다. 따라서 안건의 시행방책을 강구하기 위해 이견이 일귀(一歸)하기까지 수 시간, 수 일이 걸려도 찾아내야 한다는 회의제도를 말한다.

※ 사욕(私慾)은 회의토론에서 스스로 도태되고 공욕(公欲)에 치중한다.  

2). 신라의 화백제도               

    사전에 의하면, 신라시대의 화백제도는 처음에는 육촌(六村)의 사람들이 모여 나랏일을 의논하던 일이, 뒤에 귀족이나 벼슬아치들의 군신(君臣)회의로 되었다고 한다.  

   화백(和白)이란 모두 다(和) 말한다(白)란 말이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 각자가 자기의 의사를 충분하게 개진하여 뜻을 밝힌다는 뜻이다. 곧 언로를 충분하게 보장하여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언로의 자유와 보장을 뜻하는 말이다.

  국가의 최고 책임자인 왕(王)이 국사(國事)를 행하는데 있어서 그 생각을 중의(衆議)에 물어서 만장일치의 합의를 보아야만 결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왕의 생각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은 무효가 되었다.

  그러나 신라화백의 특징은 국가에 중대사건이 있어야 개최된다는 것, 회의의 참석자는 보통 국민이 아니고 백관(百官)이라는 것, 또 여기서 한 사람의 반대가 있어도 회의의 결정을 갖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상정된 안건의 결정과정을 논하는 것으로, 한사람이라도 이의가 있으면 아무리 좋은 안건이라도 채택되지 않아 진행할 수 없다는 모순이 있다. 따라서 신라화백은 안건의 도출과 적용의 결정과정에서 모든 민의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衆議一歸 爲和白할 수 있는 원리에는 미흡하였으므로, 역시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는다는 一無憾且怫異者원리에 미치지 못하였다 하겠다.   

3) 한단화백 

   和白에 대해 사전은 신라시대의 화백제도로 一人異則罷(한 사람이라도 의견을 달리하면 그 안건을 채택하지 않음)로 전하고 있고, 桓檀古記의 和白은 衆議一歸 爲和白(여러 의견을 하나로 모아 일치된 의견을 찾는다는 것)으로 안건의 도출과 적용의 결정과정에서 모든 민의의 일치과정을 찾아간다는 것으로, 안건채택주의가 아니라 안건에 대한 시행방침을 강구하는데 있어 이견이 있다하더라도, 안건의 진행방법과 요령을 도출하여 衆議를 一歸(모든 의견을 모아감)한다는 회의방식을 한단화백제라 말할 수가 있겠다. 이와 같은 뜻에서 상고(上古)사회에서의 한단화백의 참뜻에 충실하면서 오늘날 21세기에 부합되는 ‘홍익화백제도’를 남 ‧ 북의 학자들이 함께 창안하여야 하겠다. 

   시원적 화백: 한단시대에는 인간 즉, 백성을 크게(弘) 돕(益)는 정신으로 인간사가 운영되었음을(三國遺事 古朝鮮에서 可以 弘益人間함을)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다. 즉, 홍익인간 이념은 상고시대 인류의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다.

     衆議一歸 爲和白54)

     一無憾且 怫異者55)

  그 옛날 상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현재에도 문명이 오염되지 않은 오지(奧地) 부족의 생활상을 보고 태고 인류의 인간사를 상상해 보며, 한단고기 기록도 비교해 보면서, 그 때 상황을 간추려 보면,

  ㄱ. (無怨逆之患): 원한-원수를 사는 일을 하지 않는다.

  ㄴ. (親疎無別): 친하고 친하지 않음을 가리지 않는다.

  ㄷ. (上下平等): 위아래 등급이 없다.

  ㄹ. (男女平權): 남녀의 권리는 같다.

  ㅁ. (老少分役): 일은 적성에 알맞게 나누어 한다. 이리하여 一無憾且 怫異者: 한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여, 어기는 사람이 없이 한다.

   이는 태고시대의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떤 모임을 가졌을 때,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일이 생기면 모든 의견을 수렴하여 바름과 그름을 골라, 바르지 못하여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는 의견은 모두 버리고, 서로가 기쁘게 같이 할 수 있는 의견만을 모아 화백(和白)56)하는 일이다(衆議一歸 爲和白).

   오늘 날 다수 가결제인 민주주의 방식은 소수를 소외시켜 불편과 불안을 조장하고 있으나, 한단화백은 모든 지혜를 동원하고 탐색하여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는 참을 찾아내어야 한다는 회의제도이다. 즉 和白이란 용어는 같다하더라도 신라화백은 一人異則罷로 어떤 안건을 결정할 때, 한사람이라도 그 안건에 반대하면 그 안건을 채택하지 않는다는 ‘안건 채택방식’이고, 한단화백은 衆議一歸 爲和白으로 ‘그 안건의 시행방법을 하나로 마련하자는 것’으로, 안건의 도출과 시행방책을 결의하는 회의방식으로 그의 내용이 다르다. 즉 태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서로 어울려 和白하여 서로가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는 생활을 하였다.  

<한단화백의 참뜻>

    ‘돈과 권세’에 대한 아집(我執)은 화백을 저해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돈과 권세에 대한 아집을 버릴 수 있는가? 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아집하지 않은 인간사에서 ‘화백’이 이루어진다57).

   예로서, 무인도에 흑, 백, 황-인종이 사는 난파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중에는 노약자도 있고 난파 중 외상(外傷)을 입은 부상자도 있다. 다행이 이들 난민 중에 외상약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예기치 못한 자기의 부상을 뒤로하고 부상자의 치료에 열중한다. 저녁이 되니 추워져 모닥불을 피운다. 물론 모닥불 나무는 건전한 사람들에 의해 모아온 땔감이다. 그렇다 하여 땔감을 구해오지 못한 노약자들에게 불을 쪼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이곳은 “돈과 권력”이 없는 곳이요, 또한 흑, 백, 황-인종의 구별도 없고, 자기만이라는 사리(私利)에 집착도 하지 않는 곳이다. 다만 본능적으로 삶을 공유하여 공존공생의 인간본능인 화백의식 만이 작동할 뿐이다.

   이 난파민의 무인도 생활의 연상은 우리로 하여금, 지구촌은 영원히 인종, 종교, 자국민을 위한다는 구실로 살상을 계속 할 수만은 없게 한다58).

  오늘날 국제간에는 상업이 성행하고 있으며, 특히 ‘핵무기’ 출현 이후에는 Kant의 언급과 같이 세계는 도덕적 동기에서가 아니라, 이욕타산의 관점에서 고상한 평화목적을 달성하려고 서로 연합하여 전쟁을 막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이욕타산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수준 높은 사회의 지성인으로서 도덕적 행위가 동기부여 되는 사회제도를 창안하여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눈앞의 가시적 리(利)를 넘어 긴 안목에서 인류공생과 번영을 위한 리(利)를 생각하여야 한다. 

   올바른 정치목표는 부정(不正)을 없이하고 청렴하게 민생을 안정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광복 60년사는 남․북으로 양분되고 민생을 불안케 하는 정사(政事)로 점철되어 왔다. 정사의 불안은 민생의 불안으로 이어져 민족정기 홍익화백정신마저 소실되고 있다. 홍익인간은 크게 도움을 주고받는 인간사로서 성통광명(性通光明)하게 재세이화(在世理化)하여야 한다. 국가권력은 민족이 화합할 수 있는 화백이념 정립에 힘써 남북통일에 바탕이 되고 나아가 지구촌 평화에 이바지하는 기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본서에서 분단 이후의 남‧북한, 세계사상의 흐름, 특히 한민족의 정통사상을 연구하면서, 남․북한 정치체제의 모순극복 대안으로서,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는 ‘참’을 찾아내어야 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따라서 모든 민의를 하나로 추출하는 방식으로서, 홍익화백제를 정설(定說)로 하는 이유는, 오늘의 남․북의 정치체제가 남․북이 서로 가장 발전된 정치방식인 것처럼 각기 말하고 있으나, 고대화백제도의 발전이 아니라, 화백제도의 진의에서 탈선한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의 가면을 쓰고 우리 선조들이 이룩했던 화백제도를 소멸시켰으므로, 그 고대화백제도의 참뜻에 맞고 발전적이며 21세기 현실에 부합되는 ‘홍익화백제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홍익인간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홍익화백제는 지금까지의 양대 이데올로기(자본주의, 공산주의)의 대립과 오늘의 제사상과 이념의 다중적 혼돈을 극복하는 길이 된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남․북 평화통일과 인류의 평화는 ‘발전적 원시반본(源始返本)인 홍익화백제’에 의해서만이 이룩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우리의 고대한단화백이 오늘 우리의 정치사상의 지향점을 비추어 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당면한 문제의 실천적 작업을 위한 이론도 시대의 역사성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는 과거의 누적된 필연적 표현이기 때문에 오늘날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은 역사적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론과 현실사이에는 언제나 역사(歷史)라고 하는 교량이 있었다. 과거의 모든 사상들도 그 당시에는 희미하여 분명치 않았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젠가는 분명히 밝혀져 그가 내포한 사상이 진가를 발휘하였음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필자가 지금 논의하는 홍익화백제이론도 언젠가는 현실정치사회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아 그 빛을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  
 

2.홍익화백제   

1) 홍익화백제와 평화적 통일

  우리민족의 삶에 있어 홍익인간이라는 참된 가치와 진수(眞髓)만큼 포괄적인 의미규정도 드물 것이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단순히 철학적 가치를 넘어, 우리 현실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교육 등 모든 분야에 나타나는 궁극적 가치덕목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적 국시(國是)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59) 즉, 홍익인간은 우리의 얼이다. 그러나 그 원천을 찾아보면 인류조상의 말씀으로 “서로는 다투지 말고 어울려 평화롭게 상호간에 크게 돕고 살라”는 옛 한국 한인(桓仁)께서 한웅(桓雄)에게 “가이 홍익인간(可以 弘益人間)”으로 하신 말씀이다.60) 숨겨진 인류 태초이념인 홍익인간이 바로 세계인이 갈망하는 정신적 기호(嗜好)이념이며,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어진 조상의 깊은 뜻이다.

   우리 조상은 모든 의견을 화백(和白)으로 수렴하여 한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았다는 인간사61)로 석유한국(昔有桓國)에서 단군조선까지 이어져, 단군조선의 정치이념으로 동방의 역사를 세계에 알린 찬란한 역사기록을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과, 「한단고기」에 남겼다. 이와 같은 평화사상을 우리는 다가오는 조국의 통일에서부터 그 적용방안을 찾아야한다.

    인류역사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고 성취한 민주공화체제는 개개인의 인권존중에 크게 기여한 정치체제이나,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의견을 도외시하는 모순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기해 민주주의의 결함을 시정, 보완한 화백방안을 찾아야 하겠다. 

   우리는 남 ‧ 북통일이라는 정치체제 개혁의 절호의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필요성을 새로운 제도창출의 발아기(發芽期)로 만들도록 하여야 하겠음으로, 이 기회를 우리민족은 홍익인간 본관족 답게 힘을 모아 국민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하나로 추출할 수 있는 ‘홍익인간하는 틀: 통일헌법’을 창안하여야 하겠다. 그 착안점은 홍익인간 3도(三途)에서 홍익인간 하는 지름길을 찾아, 경천, 숭조, 애인이 실천에 옮겨지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통일헌법을 제정하면서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여야 하겠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다방면에서 도전을 받고는 있으나, 지금까지의 정치발전에 기여한 자유민주주의의 원동력인 공리적(功利的) 관점도 무시할 수 없으며, 이제 그 수명을 다 해가고 있는 정당(政黨)의 기능대체 방안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하겠다. 

2) 홍익화백제도 

   위에서 한단화백의 참뜻을 탐색하고, 홍익화백의 모형을 구상해 보았다.  모든 민의를 한데 모으면서,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해하지 않으면서 모든 국민이 화합하여 부강하고 세계평화에 향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모범적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홍익화백제도’ 창안을 제시한다.

   주권자가 직접 권력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조직적 기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홍익화백제도에 따르는 홍익인간화백회 기구이며, 주권자가 직접 주권행사를 할 수 있는 공식기구이다.  헌법 제1조 제2항의 실천기구로서 제2조에 홍익인간화백회 기구를 설치해야 법통(法統)이 순리대로 계승된다. 예를 들어 제2조에 “모든 국민이 주권을 확인하고 행사할 수 있는 상향식 조직체계로서 홍익인간화백회 기구를 설치한다. 이 기구의 조직과 운영은 법률로 따로 정한다.”라는 조항을 합헌적으로 설치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리를 헌법에 만들어야 홍익화백제도 즉, 참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정당정치체제하에서는 국회의원이 당수와 당의 공천으로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하다 하더라도 표결을 위한 거수기 역할을 하거나, 개인의사와 실력은 당리, 당략 앞에 무색해 지거나, 묵살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옳고 정의로운 주장이나 발언도 주저하게 되며, 선거구민들의 해결사나 중개인이 되어 온갖 청탁에 시달리는 가운데 귀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홍익화백주의정치에서는 국회의원 및 그 외의 선출된 모든 공직자들은 주어진 임무와 책임이 오로지 자신을 뽑아 준 주민을 위한 것임은 물론, 그 순간부터 전 국민의 대표자이므로 국가적 견지에서 어는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정당성이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권(利權)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며 정직, 진실, 정의에 입각한 소신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홍익인간화백회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될 뿐이다62) 

3) 홍익화백제 통일 

(1) 통일이념 

  우리 민족사상은 천지인(天地人) 삼신일체(三神一體)사상이며, 이에 수반되는 홍익인간이념에 따른 통일방안이「3태극 화백통일론」이다.  또한 우리민족 고유의 사상인 선도(仙道)는 조화와 화합의 사상이다.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들 간의 조화와 화합,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조화와 화합, 나아가 우주와 인간의 조화와 화합을 추구하는 사상이 우리 조상의 철학63)이다.  3태극으로 상징되는 삼수문화는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아서 하나로 돌아가는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하는 것과, 셋에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체(体)로 하고, 하나에서 셋으로 돌아가는 것을 용(用)으로 삼는 3․1기체(三一其体), 1․3기용(一三其用), 3수문화(三數文化)의 고유한 논리가 있다. 삼수문화의 세계관에 대한 삼태극사상(3太極思想)의 원리는 삼신(三神)사상의 뿌리가 조명되고 있다.64)

   우리민족의 뿌리사상인 “하나님의 이름은 옛 한국시대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고 서로가 도와가며 하나같이 살았다는 생활이념, 즉 “모두를 하나로 같이 어울리다”의 이념에서 유래된 우리 신(神)의 이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一神)은 단지 신(神)의 이름뿐 만 아니라 다툼이 없는 하나로 하기 위한 이념이며, 하나님(一神)은 造化(창조하여 만드는 재주), 敎化(가르치는 재주), 治化(다스리는 재주)의 세 작용을 한 몸에 지니시기에 3신1체(三神一體)이시고, 그 징표를 3태극으로 나타 낸 것이다. 또한 “홍익인간(弘益人間)하는 사람(人)은 나와 天地人 사이(間)에서 크게(弘-大) 돕는(益) 길(道)을 찾아 실천에 옮기는 인간사(人間事)를 말한다.  

   이에 통일이념인 홍익인간을 요약해 보면,

   (1) 홍익인간은 단지 낱말인 단어가 아니고, 바로 우리와 같이 활동하는 인간65)사이다. 홍익인간은 만물과 사이를 두고 크게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사는 인간사이다.

  그 大(크기)는 三大 - 三弘이요

     天 - 玄黙:심오하고 고요하나 크다

     地 - 蓄藏:모으고 거두어 크며

     人 - 知能:깨달음과 재능이 크다

  그 道(길)는 三圓이며

     天 - 普圓:넓은 원이고

     地 - 效圓:본받을 원이며

     人 - 擇圓:가리는 원이다

  그 事(일)는 三途

      天 眞一  無僞:오직 참되고 거짓을 하지 않고

      地 勤一  無怠: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人 協一  無違:사람은 서로 어울려 다투지 않고 어기지 않는다.

   3태극화백정부(三太極和白政府)는 홍익인간 이념을 弘益三途로 수행한다. 弘益三途:

   三道    忌三

  天 眞一  無違: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참되어 거짓을 하지 않으며,

  地 勤一  無怠:땅의 氣를 본받아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人 協一  無違:사람은 서로 어울려 어기는 일을 없이한다.     

  그리하여 홍익인간의 경천(敬天) 숭조(崇祖) 애인(愛人)이 실천에 옮겨지도록, 동기부여를 하게 된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다수가결제로 퇴폐된 민주주의가 아니라, 오로지 인류가 공감하고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간소한 홍익3도의 위 3율법으로 운영하여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남북통일의 길을 연다.  

  (2) 인간의 활동범위는 천지인과 사이를 두고 이루어짐으로써 홍익인간사상을 천지인사상이라고 한다.  

  (3) 천지인 - 도(道)는 普(넓고), 效(본받고), 擇(가리는) - 원(圓)으로 함으로써 홍익인간사상을 일명 ‘원사상’이라고도 한다.  

  (4) 홍익인간은 하나(一)의 상으로 하나(一)님 사상이다.

        天事 眞一:하늘은 (一)오직 참되고,

        地事 勤一:땅은 (一)오직 부지런하며,

        人事 協一:사람은 (一)오직 어울려야 한다.

  이상 종합하면, 弘益人間 = 天地人思想 = 圓思想 = 하나님 사상이며, 홍익인간 하는 사람(人)은 나와 天地人 사이(間)에서 크게(弘-大) 돕는 길(道) 

을 찾아, 공정하지 않음이 없고, 어느 하나 어둡고 악의적임이 없이, 세상 만물의 본성을 존중하여 합리적으로 다스리는 인간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홍익인간이념은 “삶” 즉 인류의 본능을 말한다. 인류의 본능이란 “삶”의 보전으로 남을 해함이 없이 우주 속에서 서로가 영원토록 공존공생하려는 氣 機 形 質의 작용이다66)

   요약하면, 천지인 스스로가 공존하는 질형(質形)과 공존하려는 기기(氣機)의 운영으로 삼신일체의 하나님사상 즉 원사상으로 太古로부터 전수된 우리의 정통이념(正統理念)이다.

   참되어 거짓이 없고, 부지런하여 게으름이 없으며, 서로는 어울려 어김을 없이 하여, 모두를 “一”로 하는 일신(一神): 하나님사상으로 집적하여, 서로는 다툼이 없는 어울림으로, 서로 크게 도와 衆議一歸 爲和白하여, 모든 意見을 하나로 귀착하는 화백이념(和白理念)으로 삶을 영위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름하여 홍익인간이념이고, 그사(事)를 홍익화백이라한다

이와 같은 홍익인간이념에 따르는 3태극 화백정부의 이념적 결론을 본 저서의 결론에서 서술하기로 한다. 

(2) 통일의 진행

  6․15선언으로 남․북이 교류․협력단계에 진입했으며, 화해․협력은 이미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다음 단계인 국가연합단계 진입에 있어 연합․연방제 논의가 있으나, 연합․연방의 절충논의는 합리성을 지닐 수 없다.67)  다만 연합단계 진입이라면 남  북의 학계 간에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시화 되어가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다음 단계인 3태극화백체제 단계68) 진입이 문제이기에 이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이 확립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북한의 개방과  개혁정책도 가속화될 것이며, 조국의 통일위업도 촉진될 것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소견을 요약해 본다.

   지금까지의 남  북의 통일정책과 그 방안은 통일실현 가능성이 어려움을 확인하고, 새로운 통일관을 정립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새로운 통일방안은 우리의 민족사상에서 찾아야 하며, 그 옛날 석유한국(昔有桓國) 한인(桓仁)이 한웅(桓雄)에게 하신 말씀 ━ 홍익인간(弘益人間)하라: 싸우지 말고 서로 도와가며 살라! ━ 을 명심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핵전쟁을 야기할 수 있었던 미․소 대립이 해소된 것은 외교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의 개방(Glasnost)과 개혁(perestroika)정책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찾아온 소련의 붕괴 때문이었으며, 또한 이분위기가 동구 공산권의 개방 개혁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독일의 통일도 동․서독의 정부 간 접촉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동독의 경제적 저성장과 내부적 혼란으로 야기된 동독인민의 서독을 향한 기대감 등이 발동한 때문이었다.

   우리의 통일 역시 남․북한의 정부 간 접촉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 할 수는 없다. 우리의 통일정책은 국가적으로 전 국민에 대한 우리 민족사상의 뿌리인 홍익이념 탐구이며, 그 진행은 홍익인간이념과 홍익화백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학계를 비롯하여 모든 지식층이 홍익인간이념과 홍익화백정신을 깨닫게 될 때, 남․남 갈등은 해소될 것이며, 이와 같은 분위기가 北에 전파․확산되어, 진정한 화해분위기 속에 조국의 통일은 자연스럽게 찾아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비핵․개방․3000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북한의 사회, 정치, 경제체제가 민족적 차원에서 동질화되는 가운데 남과 북이 각기 자기체면을 세워가면서 함께 통일의 길을 찾아가는 우리만의 ‘한국방식 통일의 길’을 찾아야 하겠다. 그리하여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미국이 시켜주었으나 통일만은 우리민족 스스로 찾는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남북은 이제 자주적 통일방안으로서 홍익화백제에 의한 통일을 찾아야 하겠으므로 남북의 학자들은 홍익화백제에 대한 총체적 연구가 기본이 되어야 하며, 그 연구기관으로서 ‘남북 統一대학원 대학’ 창립을 구상해 봄직하다. 민족정신(ethos)의 공동 탐구와 민족의 정통사상에 입각하여 통일의 길을 찾고자 하는 명분에는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거절사유를 잦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남․북의 학계가 홍익화백제 통일헌법을 연구, 남․북 당국이 합의한 후 제정입헌과정을 거치면서 3태극화백통일이 완성된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남․북 우리내부에 있으며, 그 해결책도 역시 우리 남․북의 내적 모순의 극복에 있다.

    해방 이후 남  북이 체험한 정당정치체제로 인한 지역 간 또는 남  북 간의 갈등과 원한을 해소하고, 국력의 낭비를 막고 슬기롭게 통일을 완성하는 방안이다. 즉, 정당정치체제를 벗어나서 홍익화백체제로 가는데, 남․북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황 및 지정학적 여건을 고려하여 주변국들과의 협력 하에 남과 북의 중간 완충지대에 홍익화백제도의 실험지역(화백정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남  북한과 화백정부를 연합하는 3태극화백체제69)를 이루어, 그 체제 내에서 왕래하면서 서서히 남  북 간 정치체제의 대립요소와 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해 가면서, 화백정부에서 적용하여 실험하는 홍익화백제도가 자연스럽게 남과 북에 전파되어 완전통일에 이르는 방안이다. 이는 1민족, 1국가, 3체제, 3지역정부인 3태극화백체제가 1민족, 1국가, 1체제, 3지역정부인 3태극화백체제로 우선 전환하는 통일방안이라 정의(定義)할 수 있다.70)

   누구에게도 통일은 자연스럽고 살상이 없는 좋은 방법으로 되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도(道)를 이루는 것과 같다. 어려운 것 같지만 의외로 쉬울 수 있으며, 수많은 방황과 고난을 겪고 난 뒤에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이 이루려는 주체들의 독선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참’이 보이지가 않으며, 서로를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상징적이라도 통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3태극화백체제에 따르는, ‘민족공동체 정부’(남․북 공동체정부: 화백정부)를 우선 公布하는 것이다.

   통일정부(화백정부)의 대통령은 우선 민족대표단을 뽑고, 여기서 정신적 지주를 뽑는 것부터 시작한다. 정신적 지주는 남  북한 모두 부담 없이 선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조직은 우선 남  북한정부가 협의하여, 먼저 각 부처를 관장하는 통일의 새로운 입법  행정  사법부를 만들고, 국제적으로 상징되고 한민족을 대표하는 남  북한 공동의 대통령직도 만들어, 한민족을 대표하는 외교권을 3태국 화백정부가 행사하며, 군사통합은 서서히 진행시켜간다.71)  남  북한 정부들은 3태극 화백정부의 인물들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뽑아야 하며, 기본적으로 민족사상인 홍익화백이념에 밝은 사람이 우선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화백정부가 발족하면, 해외 및 남  북의 학자들이 주동적으로 연구, 제정한 홍익화백제도에 따른 국가운영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제도를 발전시켜, 자연스럽게 남과 북에 파급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제도의 세계적 감시와 전파를 위해 세계 속에 이번 반기문(潘基汶) 유엔사무총장의 등장은 홍익화백제를 인식시켜, 그 뜻을 이해시키는데 가장 유력한 기회를 마련하였다고 보며 나아가 UN기구의 유치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 화백정부가 자리 잡을 지역적 가상(假想)을 해본다면, 현재 남과 북의 경계지역인 개성, 파주, 또는 철원 중에서 수도를 정할 수도 있고, 영토는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관할하며, 남  북 사람들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경제특구, 산업단지, 관광단지 등을 곳곳에 설치하면, 남  북한 사람들이 가까워지고 생각이 흡사해 지면서 홍익화백제도를 확산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남  북이 정직한 마음으로 자기체제의 단점을 시인하고 그 시정책을 함께 논의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쌓인 불신을 씻어버리고 민족의 정통사상인 홍익인간이념을 깊이 연구할 때가 왔다. 우리의 정통사상 “하나:一은 모두가 하나 되니 다투고 싸우고 하는 대상이 없는 하나:一”의 깊은 뜻을 되새기며, 남  북이 가릴 것 없이 정직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통일조국의 국가상을 정립하고, 통일과정을 슬기롭게 진행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하겠다.  

   산업화 사회로의 진입 시기에 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해, 일본에 침략당하고, 해방 후 미  소 대립과정에서 남  북으로 갈려,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그 어느 민족보다도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남  북으로 분단 고착화된 이후에도, 60여년이 넘도록 다툼을 계속해 왔음은 홍익인간을 민족의 ‘얼’로 하고 있는 우리로서, 실로 민족적 수치라 하겠다.

   한반도 통일의 국제적 여건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남  북의 한 민족은 한 배에 탄 전우이다. 운명을 같이하게 되어있는 한 식구끼리 가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흉금을 털어놓고 정직한 마음으로 남과 북이 함께 통일된 국가상을 정립하고 통일 후의 한 살림을 구상해 보자. 그리하여 오늘의 정당정치 체제의 모순을 시정하고, 우리민족의 정통사상에서 나올 수 있는 새로운 홍익화백제도(弘益和白制度)를 창안하여 조국의 통일위업 달성에 보람 있게 적용함이 우리가 할 일이다.         

3.「홍익화백통일론」의 기대효과 

1) 남 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의 입장 

   북한: 한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과 협력을 위한 동반자로서의 역할이 있는 반면, 개혁 개방으로 야기될 후유증과 부작용을 이용해 북한의 주권을 빼앗을 수 있는 잠재적 역할이 숨겨져 있음을 시사해 준다. 이 같은 결론은 북한의 주권을 빼앗지 않겠다는 보장이 없으며, 북한 위정자들이 과감하게 개방과 개혁을 선택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3태극 화백통일방안은 북한체제에 대한 확실한 보장임과 동시에, 북한 집권층의 안전을 보장한다. 우선 체제위협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사라지고, 또한 북한군 대부분을 단계적으로 경제건설의 산업역군으로 투입할 수 있어 북한경제건설에 유효하게 된다. 북한의 개방에 따르는 체제붕괴의 위험을 막아 주면서 군사비 부담에서의 해방과, 민간경제 건설을 활발하게 하여, 북한주민의 민생고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통일방안은 모래땅 속으로 숨어드는 물처럼 남  북에 파급되어 사회체제의 개선, 발전에 전혀 무리가 없다. 

   남한: 가장 선진화된 민주주의 정치체제인 홍익화백제도가 현재의 정당정치체제와 마찰 없이 부드럽게 이루어진다. 홍익화백제도의 이념이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정통사상에서 창안된 제도이며, 또한 현행헌법 제1조 제2항에 명시된 국민주권 행사를 이제야 제대로 행사하게 되므로, 불이 붙기 시작하면 무서운 가속도가 붙어, 완전통일 기간이 급속히 당겨지게 될 것이다.  3태극 화백통일은 우선 한국인의 긍지를 높여 주며, 홍익화백제도에 따른 정치체제와 새로운 사회적 가치관이 무척 마음에 들게 된다. 도덕적 행위가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고, 자기만 잘하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된다.

   특히 이 논의가 시작되면, 통일정책 논의에서 남  남 갈등이 해소될 것이며, 그 결과는 자연히 북한에도 전파되어 남  북 학계간의 ‘홍익인간의 틀(통일헌법)’ 창안구상 분위기가 조성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변국: 통일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주변국의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나 3태극 화백통일 만은 예외이며, 주변국에게도 안보․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이 통일논의가 가시화되면 한반도에 전운(戰雲)이 사라지는 안도감과 화백정부에서 실험중인 화백제도가 흥미로울 것이며, 이 체제가 여하히 정치발전과 인류평화에 기여 하는가 함을 찾게 된다. 손해가 따르면 저항이 있고, 이익이 따르면 저항이 친화력으로 바뀌는 것은 인지상정의 원리이다. 3태극 화백통일은 동북아의 안보보류를 쌓아주고, 핵(核)문제를 잠재우고, 또한 주변국은 우리의 홍익화백정치원리에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2) 우리 민족의 입장 

(1) 조화로운 자유민주 평화통일 

    한반도 통일논의에서 남  북의 접경지역 완충지대에 화백정부를 만들고, 이곳에 남․북이 함께 창안한 현대형 홍익화백제도를 적용, 실험함으로써 현행의 남과 북의 정치체제와의 마찰을 피한다. 이 정치체제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전체적으로 집약할 수 있는 민주기구인 홍익인간화백회를 창설 운용하며, 모든 국민이 국가에 책임지는 주인의식을 키울 수 있다. 통일회담이나 흥정이 필요 없는 완전한 통일이며, 통일조국 전체가 설계되어 있어 그 설계대로 통일과업을 진행시켜 나가면 된다.  

   7  4공동성명(1972)과 남  북 기본합의서(1991) 또는 6  15선언(2000) 정신에 따라 낮은 단계 연방제든 국가연합제든 통일회담이 열렸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의 통일회담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 소요된다. 그 이유는 통일방안 자체보다도 쌍방 간에는 불신의 골이 깊고, 또한 통일된 조국의 국가상과 그의 실현을 위한 설계도가 없으므로, 지금까지의 남  북 협상의 예로 보아 밀고 당기고 시간만 허비할 것이다. 그리고 통일이 된다 해도 연합제 또는 연방제로 영원한 평행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3태극 화백통일론은 우리민족의 정통사상인 천지인 3태극원리와 홍익인간이념에 따르는 정치  경제  문화  윤리적인 면을 비롯하여, 통일조국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청사진이 말단 반(班)의 ‘기초 홍인회’ 조직까지 다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현 남․북한정부의 통일방안의 큰 차이를 3태극 화백통일에 따르는 3태극 화백체제로 포용한다. 

   이렇게 되면 통일회담의 필요성 대신, 3태극과 홍익화백제도에 대한 전 국민적 교양사업이 국가적 차원에서 대두된다. 그 위에 남  북이 뜻을 모아 3태극화백통일에 대한 합의서명을 하고, 현대형 홍익화백제도를 창안하여 적용실행하면 된다. 이와 같은 통일회담 무용성은 21세기 창조적「3태극 화백제 통일론」의 보다 큰 간접효과라 하겠다.  

   (2) 부패방지 

    정부의 운영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다. 어느 정권이나 부패추방을 부르짖지 않은 정권은 없으나, 부패는 제거되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심화되어 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일까? 공직사회의 부패를 척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부패는 사적(私的)이익을 위해 공적권한을 악용하는 행위이다. 그것이 심해지면 도둑이 도둑 잡는 나라가 된다. 이제 세계적으로도 도당정치(盜黨政治: Kleptocracy)는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적인 시류(時流)이다. 기존사회의 틀 속에서 모든 제도를 고쳐가면서 부패 없는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많은 시간(時間)과 희생이 요구되나,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정화(淨化)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다. 모든 정치의 틀과 사회적 규범을 부패가 생길 수 없도록 만들어 그에 맞추어 살도록 하면 된다.

   정당정치의 산물인 ‘정치자금’ 또는 ‘비자금’이라는 말은 없어지게 되며, 무리들의 사유물인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제도도 없어지게 된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사주(社主) 또는 경영층에 대한 노동자의 인권 및 생존권보호를 위해 생긴 ‘노조’의 기능은 홍익인간화백회가 대행케 되며, 별도 ’노조‘의 존재 필요성이 사라지며, ‘노조’에 의한 대규모의 파업이 없는 산업의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기업의 부담이 없어지게 되므로, 기업은 보다 더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게 되며, 특히 수출상품에 있어 국제적 가격경쟁력이 향상된다.

   새로운 정치체제에서는 그 사람이 한 평생 사회에 기여한 실적과 인품(人品)의 평가에 합격한 사람만이 홍익인간화백회의 평가에 따라 인생(人生)의 방향이 결정된다. 따라서 직업정치인이라는 말은 없어지며, 모든 분야에서 성실하고 모범이 되는 자(者)만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따라서 국회의원인 경우, 자기가 살아온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국정에 반영할 인생의 마무리 기회이므로 무언가 사회에 기여함을 보람으로 생각하고 의원직에 임할 것이며, 국회의원들은 아마 급여도 원치 않을 것이다.

   홍익화백체제에 따른 생활은 지난 60여 년 동안, 전통사상의 소외와 윤리감각이 퇴색된 도덕적 해이를 바꾸어 놓을 것이며 한민족의 자질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하여 수준 높은 자율사회를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며, 범죄의 뿌리가 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4. 홍익사회 

1). 사회성(社會性) 

   삼국유사에 보면 “한웅(桓雄)이 자주 천하를 생각하고 인간세계를 탐구하였는데, 한인(桓仁)이 그 뜻을 알고 아래를 보니, 삼위(三危) 태백(太伯)이 홍익인간 할 만한 곳이라, 한울(桓雄)을 여기에 내리보내서 세상을 이치로 다스리게 했다”72) 고 했는데, 수의천하(數意天下),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이념은 지상천국의 평화적 건설이념이다.

   홍익인간이념은 사익(私益)과 공익(公益)을 모두 크게 돕는 이념이다.

오늘날 사익을 위주로 하는 개인주의적 사상과 공익을 위주로 하는 전체주의적 사상이 대립되어 그것이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개인주의에 있어서는 사익을 위주로 하는 나머지 자유에만 치중하여 전체의 공익과 평등을 해치는 경우가 있고, 전체주의에 있어서는 공익을 위주로 하는 나머지 평등에만 치중하여 개인의 사익과 자유를 해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홍익(弘益)이라는 이념은 개인과 전체를 다 포용하고 있다.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생활양식은 경쟁이요, 전체주의적 평등주의적 생활양식은 투쟁이다. 종교적으로 전자는 다신론(多神論)이요 후자는 일신론(一神論)이다. 경쟁적 사회에서는 다원적(多元的) 경쟁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자가 최후에 살아남는다. 투쟁적 사회에서는 일원적(一元的)인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정복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각 민족은 대개 그 역사적 출발점에 있어서 그 민족의 생활원리를 나타내는 건국신화를 가지는데 그 유형은 투쟁형이나 경쟁형이 많다. 투쟁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말살하려는 것이오, 경쟁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나 이에 대한 자기의 우위(優位)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건국신화는 투쟁형도 아니고 경쟁형도 아니며 협동형이다. 투쟁형과 경쟁형의 차이는 전자가 상대방을 말살해 버리는데 반해, 후자는 상대방을 말살해 버리는 것이 아니고, 그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기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쟁과 협동의 차이는 무엇인가?

  경쟁이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임에 반하여, 협동은 상대방의 장점을 활용하여 피차간에 다 같이 이익을 보고자 함에 있다.

   오늘날 세계는 평화공존시대(平和共存時代)라고 하는데 이는 인류가 오랫동안의 투쟁상태에서 벗어나 경쟁상태로 들어간 것을 말하나, 그러한 경쟁상태가 다시는 국제적 투쟁인 전쟁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인류의 장래가 평화스러울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 이유는 경쟁의 방법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경쟁이 오래 계속되면 인류는 각 민족의 약점만 노출되어 드디어는 문명(文明) 그 자체가 퇴화(退化)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평화를 이룩하여 더 높은 문명을 창조하려면 피차가 서로 장점을 활용하여 상대방과 같이 살고자 하여야 하고, 그리되면 인류는 피차간에 장점만이 발달되어 서로가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고 새로운 위대한 문명을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협동의 원리요 홍익의 이념이다. 인류의 평화는 협동과 화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투쟁이나 경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73)

   한웅(桓雄)의 건국이념에 있어서는 협동과 화합의 이념을 인간의 본성에 유래시켰는데 홍익인간 3도(三途)의 완성으로 실현코자 하였다.

   단군왕검의 정신은 동방적 농경사회의 생활이념인 평화성을 협동성으로 승화(昇華)시켰고 그것을 홍익인간 삼도(三途)이념으로 완성, 경천․숭조․애인의 정신으로 승화시켰다.

   홍익인간은 우리의 얼이다. 숨겨진 인류의 태초이념인 홍익인간이 바로 세계인이 갈망하는 정신적 기호(嗜好)이념이며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어진 우리조상의 깊은 뜻이다. 이제 이와 같은 이념을 현실사회에서 실현시키기 위한 정도(正道)와 화합의 길을 찾아야 하겠다.

  그리하여 일제(日帝)에서 해방 후 60년이 넘도록 남․북이 상이한 사회체제 하에서 서로 이질화된 우리민족이 어색함이 없이, 이해하고 포용하여 홍익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홍익인간하는 틀(홍익 통일국가 헌법)’을 창안하여 홍익화백사회를 건설 발전시켜, 남과 북이 다 함께 승리자가 되어, 조국의 통일은 물론 전 세계가 우리민족의 홍익화백제를 본받도록 향도적(嚮導的)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겠다.  
 

Ⅳ. 결론 

본 필자는 위와 같이 고찰하고 박상림 박사와 같이 다음과 같은 공동결론을 가져 왓다.

첫째, 통일Korea의 정치이념 기조로 『홍익화백제』실현

   인류의 역사는 정치적으로는 인격의 보장을 위한 인권운동이며, 경제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소득과 재산의 소유보장을 확인받는 치자(治者)와 국민간의 투쟁의 역사였다. 역사상 인격의 보장을 위한 인권운동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여 온 제도는 자유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Korea의 사상적 기반도 이에서 더 이탈할 수 없으므로 자유민주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한 정치구조 속에서, 생존을 위한 국민의 행동원리를 경쟁적 시장조직에 두는 경제이념을 그 제도적 기반으로 함으로써 만이 우리 민족의 행복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의 진행과정을 보면, 시대에 따라 정치․경제문제의 인식과 그 해결방법은 달랐으나, 일국(一國)의 경제를 치자가 권력으로 통제하느냐 아니면 국민의 자유로운 활동에 방임해 두었느냐의 정책적 과정이 엿보인다. 경제체제를 정부의 계획 하에 운영하느냐 아니면 최소한의 간섭으로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운영하느냐의 선택의 문제에서 벗어나, 통일 후에 가져야 할 경제이념과 정책은 점유모순을 내포하며 분배정의에 역행하는 독점자본의 존재를 부정해야 한다. 소비와 생산의 자유로운 활동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민의 재산과 소득에 제한을 가하고, 생산의욕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리추구 행위를 조정해야 한다. 사회적 안정이 자리를 잡으면 국민적 합의에 의해 경제운용에 계획성을 도입하면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부드럽게 하고, 현행 남․북의 모순 많은 정치제도를 21세기에 부합되는 진일보한 정치체제로 발전시키기 위한 통일의 방법을  홍익화백제에서 찾았다.  

둘째, ‘홍익인간화백회’로 통일기초 실현

   남․북통일 문제에서 민족공동체를 바탕으로 정치통합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남한에 비해, 북한은 근 20년 전에 사라진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주장하면서,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맞서 남․북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기 위한 명분으로 ‘민족공조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민족의 앞날에 커다란 위해요소이므로, 우리는 지금까지의 대북통일정책과 그 실현방안으로는 통일실현의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통일관을 정립해야 할 시점에 왔다. 통일방안의 착안점은 우리 민족의 뿌리사상을 깊이 연구하여 실현 가능성 있는 조국통일의 방향을 찾아야 하겠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통일문제에서 항상 객(客)으로 취급되었던 국민이 이제 주인(主人)으로 나서 ‘통일주권’ 곧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감시 및 자기결정권을 갖도록 할 시점에 왔다고 본다. 

   국가적 공동체에서 민주국가의 고민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회개개인의 이해관계를 하나로 만들기 어렵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6,000년 전의 배달국 및 단군조선시대에 이미 衆議一歸 爲和白하여 一無憾且 怫異者할 수 있는 합리적 민주정치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정당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정당에 대한 국민의 외면과 더불어 국민의 표를 의식해야 할 정당은 이제 민주주의의 주동자(promotor)로서의 수명을 다 해가고 있는 현실에서 지금까지의 정당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조직기구를 창안해야 할 때가 왔다.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뿌리사상에서 창출되는 홍익인간의 틀이고, 이 틀에서 도출되는 ‘홍익인간화백회’이다. 삼국유사 고조선 편과 한단고기를 통해 홍익인간이념을 우리는 전수하게 되었다.  이로써 만물과 사이를 두고 크게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사는 인간사의 뜻의 표현인 홍익인간에 의한 홍익화백주의 체제의 틀만이 한민족이 도약할 수 있는 정치의 틀이라고 확신한다.

   최대다수의 국민에게 보다 많은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통일한국의 정치체제는 ‘홍익인간화백회’ 조직을 통한 대의민주제, 즉 ‘홍익화백제도’이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저서는 한마디로 홍익화백제를 지향한 천․지․인 3태극 화백통일 방안을 제시코자 하여 집필되었다. 이와 같은 평화적 통일방안은 오늘 우리의 양단된 국토와 양분된 민족, 따라서 양극화로 대립된 의식을 동질화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해서 얻은 결론이다.  

셋째, 3태극 홍익화백제 실현으로 통일완성

   지난 날 우리는 산업화사회로의 전환시기에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나라의 주권까지 빼앗겼으며, 또한 2차 대전 직후의 탈 식민사회로의 이행시기에는 민족분단의 쓰라린 역사를 경험했다. 역사를 반성하고 남․북이 뜻을 모아 이루어야 할 21세기형 창조적 홍익화백주의 3태극 통일방안 실현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가), 우리의 통일조국의 사상적 기반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적 형태인 홍익화백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한 정치구조 속에서 인민의 생존을 위한 경제적 행동원리를 시장경제조직에 두는 경제이념을 기반으로 한다.    

   (나), 지금까지의 남․북의 통일정책과 그 방안은 통일실현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통일관(統一觀)을 정립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본다. 새로운 통일방안은 우리의 민족사상에서 찾아야 하며, 그 옛날 상제(上帝) 한인(桓仁) 할아버지께서 한웅(桓雄) 할아버지에게 하신―홍익인간하라: 싸우지 말고 서로 도와가며 살라―는 평화이념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 수반되는 통일정책은 오직 국가적 차원에서 전 국민에 대한 교육 및 교양사업으로서의 민족사상 탐구과제가 되어야하며, 우리 국민이 홍익인간이념과 홍익화백정신을 파악하게 될 때, 남․남 갈등은 해소될 것이며, 나아가 남과 북의 통일은 자연스럽게 찾아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 해방 이후 남․북이 체험한 정당체제로 인한 지역간 또는 남․북간의 갈등과 원한을 해소하고, 국력의 낭비를 막으며 슬기롭게 통일을 완성하는 방안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약술하면, ① 3태극화백통일방안: 북한의 계획경제에 따르는 전체주의체제와, 남한의 시장경제에 따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와의 슬기로운 통합을 위해, 국가연합 단계를 지나면서 해외 및 남․북의 학자들이 현대형 홍익화백제도를 창안하여, 남과 북의 중간 완충지대에 이 제도의 실험지역으로서 화백정부를 만들어, 남․북한과 화백정부를 연합하는 3태극 화백체제(1민족, 1국가, 3체제, 3지역정부)를 만든다. 그리하여 이 체제 내에서 국민들이 왕래하면서, 남․북한 정치체제의 대립요소와 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하면서 1민족, 1국가, 1체제, 3지역정부로 우선 이행하는 방안이다. ② 홍익화백제도: 국가의 일꾼을 홍익인간화백회가 공천한 사람들에게 해당지역 사람들이 선거로 결정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홍익인간화백회 조직을 衆議一歸 爲和白 一無憾且 怫異者원리가 이루어지도록 조직하여야 한다.

   (라), 통일은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역사가 증명하듯이 민족이 갈라져 3세대가 지나면 영구분단 된다. 영구분단 되면 나라와 민족의 반(半)을 양측이 서로 잃어, 더욱 약소민족이 되고, 그 반쪽이 안보를 지금까지도 그러하지만 앞으로도 위태롭게 하는 씨가 된다. 주변국들은 이한제한(以韓制韓)하기 위해 이렇게 되기를 원하고 있다. 다행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심이 많은 이 시기에, 우리 민족은 안일하게 평화체제 구축에 만족하지 말고, 평화적 통일방안74)을 확실하게 세워, 이 기회를 한반도 통일로 연계시키는 방안을 진지하게 살피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홍익화백제도에 따른 홍익인간 이념이 인류평화의 인자(因子)이며, 절대적 인류애(人類愛)의 힘으로 부각되고, 다가오는 미래 평화의 수단과 잣대로서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토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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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사상과 한민족을 위한 참된 통일의 길

2018.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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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식

다른 표기 언어 祭天儀式


요약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
천제

태백산 천제단에서 봉행되고 있는 천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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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대한 숭배는 많은 민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하늘이 불접근성·무한성·영원성·창조성으로 신성(神聖)이 존재하는 곳 또는 신 자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천신에 대한 신앙은 보편적으로 존재했는데, 그 신이 우주를 창조했고 땅의 풍요를 보증했다고 믿었다. 천신은 세계창조를 끝마친 뒤 세상 일에서 떠나고, 고조선의 환인(桓因)처럼 아들이나 손자를 통해 인간들을 직접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광명신(光明神)·일신(日神)·월신(月神) 또는 바람·비·번개·천둥·운석(隕石)·무지개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베리아와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은 대개 천신을 주신(主神)으로 생각해 제천의식을 치렀다.

알타이족의 천신은 칸(Khan)이라고 불렀는데, 보편적 주권자로 이 신의 명령은 존중되었다. 그러나 이 신은 직접 통치하지 않고 지상에 신의 대리인 칸을 보내 통치했다고 한다.

고대 중국(天)은 천상에 있다고 상상한 최고의 신이다. 은(殷)나라의 갑골문에 보이는 '제'(帝)는 후에 천(天)으로 불린 신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갑골문의 제는 비를 내리고 한해(旱害)를 일으키는 등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또 이 제는 왕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쳐 왕이 외국을 정벌할 때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때에는 제에게 물어 승인을 얻어야 했다. 때로 제는 왕에게 재해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왕은 제의 의지에 따라 그 흥망이 결정되는 것으로 여겨져 후에 '천명사상'(天命思想)으로 이념화되었다. 황제는 지상 전체 인민의 의지인 천제의 명을 받아 천자로서 지상을 지배했으므로 천제(天祭)를 지내는 것은 그의 의무이자 특권이었다.

그 제사는 원구(圓丘)·남교(南郊)·명당(明堂) 등에서 치러졌다.

우리 민족의 천신신앙과 제천의식은 고조선부터 조선말까지 우리의 정신에 흐르는 중요한 물줄기이며, 민족문화를 구성하는 주춧돌 성격을 지녔다. 우리나라에서 천신은 고대부터 지고신(至高神)으로서의 위치를 가졌으며, 지금도 무슨 일이 있으면 하늘(또는 하느님)을 찾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천의식은 고대에는 부족사회의 전통에 따라 전승되다가 점차 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국가의례로서 자리잡았다. 그러나 국가의례로서의 제천의식도 각 시대의 역사적 조건에 따라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고조선의 단군신화는 천신이 내려와 인간을 다스리는 건국신화의 형태를 보이는데, 여기서 천신이 내려온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의 신시(神市)는 천신이 정사를 보는 도읍이자 천신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는 제단으로 파악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부여는 영고(迎鼓)라 하여 은정월(殷正月:12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올렸으며 고구려의 제천의식은 10월에 올리며 동맹(東盟)이라 불렀고, 동예는 10월에 무천제(舞天祭)를 지냈다. 특히 부여는 군사(軍事)가 있을 때에도 제사를 지내 소의 발굽뼈로 점을 쳐서 길흉을 가렸다고 한다. 또 삼한에서는 천군이라는 전문 사제를 두어 제천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들 제천의식은 나라 전체의 큰 행사로 음주가무(飮酒歌舞)가 곁들여지는 성대한 행사였는데, 일종의 추수감사제와 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러한 음주가무의 축제는 민족 공동체의 생활문화로서 오늘날까지 광범위하게 계승되고 있다.

우리 민족은 하늘뿐만 아니라 일월성신(日月星辰)·풍운뇌우(風雲雷雨)·산천악해독(山川嶽海瀆)·조상선현(祖上先賢) 등에도 제사를 올렸다. 그러나 많은 신 가운데 천신을 제일 우위에 두는 유일지고(唯一至高)의 천신신앙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와 같이 고조선 건국신화의 환인·환웅(桓雄)·단군(檀君)의 성격이나, 부여에서 군사가 있을 때 제천하며 점을 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천신이 인간사를 좌우하는 지고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 같다.

또 환웅이 인간세상을 다스리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올 때 바람신·비신 등을 데리고 왔다는 것으로 보아 천신은 농업신과 관계가 있으며, 고대 제천의식의 성격은 농제적(農祭的)인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성격은 그후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어, 가뭄이 들거나 흉년이 들 때 국가적으로 제천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고대의 제천의식은 국중대회(國中大會)로서 부족이나 국가 전체의 중요한 의식이었고, 사회 성원들에게 공동체의식을 심어주는 기능을 했다.

고구려에서는 동맹 외에도 3월 3일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을 하고 잡은 동물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유리왕과 산상왕대에 교제(郊祭)에 쓸 희생인 돼지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데, 이러한 사실에서 고구려 초기에 희생을 바치는 제천의례를 정기적으로 거행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에서는 대단(大壇) 또는 남단(南壇)을 쌓고 왕이 천지(天地)와 오제신(五帝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신라에서는 〈삼국사기〉에 시조묘와 신궁(神宮) 및 산천에 제사를 지낸 기록이 나타나지만 제천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에는 일신과 월신이 있었는데, 이 신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뒤 갑자기 일광·월광이 사라지고 천지가 어두워져 이를 되살리기 위해 제천의식을 거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온 천신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그에 대한 제사를 지냈을 것으로 보아 신라에도 제천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외에 가야에도 구체적으로 제천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시조인 수로왕 신화에 가야인들의 하늘숭배사상·노래·춤·주술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제천의식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고대의 건국신화는 그 시조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다스렸다는 천신사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이전의 전통사상과 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특히 전통적인 천신은 불교의 천신인 제석천(帝釋天)과 비슷하게 여겨져 이후 불교의식에서도 제석천 등의 천신에 관한 의식이 고려시대까지 빈번하게 거행되었다.

고려의 제천의식은 중국의 한대를 거쳐 당·송대에 정비된 의례를 도입함으로써 매우 세련된 의례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원구단(圓丘壇)에서의 제천행사가 성종 때부터 행해져 오제(五帝)와 호천상제(昊天上帝)에 대한 제사가 행해졌다. 고려시대의 국가적인 제사의 종류는 크게 원구단에서 제천하는 것, 사직에서 봄·가을로 제사하는 것, 태조와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원구단에서 왕이 초봄에 천제를 드리는 것은 기곡제(祈穀祭)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예기〉에 의하면, 천자만이 제천의식을 행할 수 있고 제후는 경내(境內)의 산천에만 제사할 수 있었다. 고려가 천자의 예에 따라 제천을 행한 것은 고대 사회 이후의 고유한 제천전통과 중국에 대한 자주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단군숭배의식이 활발하게 일어나 황해도 구월산에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삼성사(三聖祠)를 세우고 제사드렸다. 또 염주(鹽州:지금의 연백) 동쪽에 있는 전성(氈城)은 옛날에 제천하던 단(壇)으로 전해지며,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도 단군신앙과 연결되어 제천의례가 거행되었다.

특히 마니산의 참성단은 초제(醮祭)를 드림으로써 단군신앙과 도교신앙이 결합된 제단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성리학이 정착된 조선 초기에는 〈예기〉의 규정에 따른 제천의식폐지론이 대두했다. 즉 조선이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표방하여 중화적 천하관을 받아들임에 따라 조선을 제후국(諸侯國)으로 자처하는 입장에서는 천자의 의례인 원구의 제천의례를 행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므로 원구를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천의례가 우리의 역사적 전통으로 기곡(祈穀)·기우(祈雨) 등 백성의 삶과 직결된 의례임을 알고 우리의 자주권을 강조하여 원구제도와 의례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태조 때부터 세종 때까지 원구제도와 제천의례의 폐지에 대한 찬반론이 활발하게 제기되었다. 세종 때 〈오례의〉를 완성하면서 원구를 폐지하고 제천의례를 중단했으나, 세조는 의례의 제도와 절차에 대한 상세한 고증을 거쳐 다시 제천의례를 거행했다.

세조의 제천의례는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뒤 자신의 왕위 정당성의 명분을 강화하기 위한 의례적 실천이라는 정치적인 의미를 많이 띠고 있다. 따라서 자세한 고증 뒤에 원구단의 제천의례를 성대하고 규모있게 회복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뒤 사림파의 정계진출과 함께 제천의례는 급격히 쇠퇴하여 실질적으로 소멸했다.

국가의례로서 제천의례가 다시 실시된 것은 1897년(고종 34)으로 자주적인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광무개혁을 실시하면서 대한제국이 수립되었다.

그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례로서 제천의례를 실시했다. 이때 제천의식을 행하기 위해 원구단을 서울 소공동 남별궁터에 쌓았는데, 1913년 총독부가 황궁우(皇穹宇)만 남겨두고 원구단을 헐어낸 뒤 철도 호텔(지금의 조선 호텔)을 지음으로써 제천의례가 중단되었다. 국가의례로서의 제천의식은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변화했으나, 민간에서는 계속 그 뿌리를 간직해왔다.

그러므로 조선 후기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자 이를 되찾기 위한 종교적 염원으로서 환인·환웅·단군 등의 3신을 모시고 제천의식을 행하는 대종교(大倧敎)가 조직되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원초적인 신앙인 무속(巫俗)에서도 천신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당들이 섬기는 신들을 보면, 천신·천왕신(天王神)·천신대감신(天神大監神)·제석신(帝釋神) 등은 천신계통의 신으로서 무신(巫神) 가운데 최고신이었다.

현재에는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하여 국경일로 정하고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과 강원도 태백산의 천제단 등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 국가의 태평과 국민의 안정, 민족의 무궁함을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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