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사진으로 본 우리 철도사(1)
그래서 사냥꾼으로 변장까지 하면서 미리 측량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결국 일본은 고종 황제를 겁박해 1898년 경부선 철도 건설권과 영업권을 독점하게 됩니다.
이 사진과 이에 얽힌 얘기들은 최근에 발간된 '신한국철도사'(7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협회와 한국철도문화재단이 펴낸 이 책은 우리나라 철도사를 최신 트랜드까지 모두 모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흔히 보기 힘든 귀중한 사진 자료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협회 등의 협조를 받아 사진을 통해 우리 철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우선 1890년대부터 6·25전쟁 이전까지를 살펴보고, 이어서 2회는 6·25전쟁부터 철도 재건과 발전의 순간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경인선, 경부선 건설 일본이 독점
러·일 전쟁 중에도 공사를 강행한 일본은 1905년 1월 1일 영등포~초량 구간에서 운수 영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곤 그해 5월 남대문정거장과 초량역에서 대규모 개통식<사진 4>도 개최했습니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고려해 1904년 2월 일본군 산하의 철도대대와 공병 5개 대대를 주력으로 임시군용철도관부를 설치하고는 3월 우리나라에 상륙해 경의선 건설(사진 5>을 시작했는데요. 경부선, 경의선 모두 전쟁 물자와 인력의 신속한 수송이 우선 목적이었던 셈입니다.
1900년 한강철교 개통으로 남대문역<사진 6>이 영업을 시작했는데요. 이 역이 바로 지금의 서울역입니다. 당시에는 목조로 지어진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보입니다.
1905년 경부선 개통 당시 영등포역<사진 7>입니다. 자세히 보면 태극기도 눈에 띕니다.
1909년에는 한국통감부가 주도해 순종황제의 서북지방 수행을 시행했다고 하는데요. 정주역(평안북도) <사진 8>에서 수염을 기른 관리들이 도열해 있는 뒤로 '뎡쥬'라고 쓰인 한글 간판이 이채롭습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첫 다리이자 철교인 한강철교<사진 9>는 1900년 처음 개통했습니다. 광복 전까지 한강철교는 모두 3개의 다리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1909년 12월 19일에는 부산진과 동래온천장 구간을 오가는 사설 철도<사진 14>가 개통했다고 합니다. 규모가 꽤 작아 마치 놀이동산에서 운영하는 미니 열차를 연상케 합니다.
일제 강점기, 철도의 모습들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선전을 위해 1915년 '시정 5년기념 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열기로 하면서 이에 참가할 내외국인이 머물게 할 목적으로 1914년 조선철도호텔<사진 16>을 완공했다고 합니다.
1911년 개통된 압록강 철교<사진 17>는 큰 배기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 상판 일부가 90도로 회전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기록입니다.
지금의 구 서울역인 경성역<사진 19>은 1925년 준공됐습니다. 이름도 남대문역에서 경성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철도가 연결되는 곳은 명소로 각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경인선으로 연결되는 월미도해수욕장<사진 20>은 이미 제법 큰 위락시설을 갖춘 모습입니다. 또 경원선으로 이어지는 원산해수욕장<사진 21> 역시 피서객으로 붐비는 모습인데요.
일제의 철도국은 아예 철도를 이용한 수익사업에도 나섰습니다. 그래서 온양온천<사진 22>을 개발해 운영했고, 외금강에도 여관<사진 23>을 지어 직영했다고 합니다.
당시 경부선 열차는 등급에 따라 객실의 차이가 확연했다고 하는데요. 일등석<사진 24>은 좌석이 넓고 편했으며 천장에 선풍기가 달려 있고, 침대차도 있었습니다.
반면 삼등석<사진 25>은 딱딱한 나무좌석이어서 장시간 여행에는 상당히 불편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당시 열차에는 식당칸<사진 26>이 있었으며, 총독부에서 직접 전망차<사진 27>를 운용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경성~부산 사이를 특급 아카쓰키<사진 28>가 오갔는데요. 1등 전망차 내부<사진29>만 봐도 당시 상류층이 이용하던 열차임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유명 관광지였던 금강산을 오가던 전철<사진 30>로 시발역은 철원역이었다고 합니다.
호남선 이리역<사진 34>은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고는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식의 외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리역은 현재는 익산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철도 12년 계획에 따라 동해북부선 공사<사진 35>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듯합니다.
광복 직후 조선해방자호 개통
광복은 됐지만, 당시 철도 시설이나 차량은 모두 일제강점기 것 그대로였는데요. 그래서 '조선해방자호' 열차가 특히 의미가 깊습니다. 광복 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파시형 기관차인 '해방자 1호'가 객차 10량을 끄는 것으로 편성해서 서울~부산 사이를 9시 30여분 만에 주파했다고 합니다.
1946년 5월 20일 첫 운행을 앞두고 시운전을 위해 용산역을 출발하는 해방자호의 모습<사진 38>과 조선해방자호의 개통을 기념하는 성대한 축하식<사진 39>이 사진에 담겼습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