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화랑세기

2019. 9. 30. 18:54우리 역사 바로알기






   최근들어 mbc 사극 선덕여왕으로 인해서 다시 <화랑세기>가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문학작품으론는 아예 대놓고 이드라마는 선덕여왕이 주인공이 아닌 화랑들이 주인공이다.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목도 선덕여왕이 아닌 <미실>이나 <화랑>이  되어야 할것 같지만 <팜므파탈>적인 삶을 살아간 <미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에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공중파 현실에서 용납되지 않을 겁니다. 



(mbc 선덕여왕)

 

   어찌되었던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이들 서적 중에서 단연 재미 있는 것은 화랑세기 입니다. <삼국사기>의 헛점을 교묘히 파고 들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화랑세기를 박창화김대문 <화랑세기>를 필사한 것이 아니고 박창화 자신이 창작한 소설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삼국사기와는 전혀 동떨어진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며, 유교적 관점에서나 현재의 성윤리적 관점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내용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조금 드려다 보면 삼국사기 또한 신라의 유교적 관점이나 현재의 관점으로는 성문란을 알 수가 있습니다. 김부식 스스로도 신라의 근친혼에 대해서 무자비하게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김부식은 김부식의 관점에서와 유교적 또는 당시 고려시대를 고려하여 집필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옛 고 역사서들이 난삽하여 삭제한 부분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하니 삼국사기를 읽는 동안 왜? 이상하다.. 라는 의문부호를 계속해서 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고려시대까지 남아 있는 서적이 없을 수도 있으나.. 삼국사절요<조선 성종>때인 1400년 중반까지 남아있던 자료조차도 첨삭을 가한 것이 삼국사기에는 없던 부분이 삼국사절요를 보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의문시 되었던 부분이 삼국사절요를 보면 해결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삼국시대중기인 400~700년사이의 기록을 채워주고 있는 것은 화랑세기임에는 분명합니다.

   고고학적인 결과물로 써도 화랑세기가 삼국사기를 편찬한 고려시대 보다는 삼국시대의 신라의 상황을 더 명확하게 밝혀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화랑세기 내에서도 스스로 동모제와 결혼하고 동부제와 결혼하는 풍습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개혁세력이라고 할까요.

화랑세기를 보기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동사강목 등 만을 보았을 때 왜? 라는 의문이 들었던 내용이 많았었는데 화랑세기를 보면서 그 의문이 깨끗히 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만약, 박창화의 개인 창작품이라면 박창화는 역대의 어느 소설가 보다도 잘 쓴 소설이 되어 노벨 문학상 감이며 역사서를 단지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등 몇몇의 서적을 통해서 작성했다면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학자보다도 대단한 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MBC의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전 sbs에서 진행하였던 황당무개 환타지 역사드라마 <연개소문>을 보면 김유신과 김춘추, 김흠순, 김문희, 김보희의 관계를 설정해서 보여주었는데 황당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미실이 등장하고 천관녀가 등장하는 것을 보았을 때, 작가는 최소한 화랑세기까지도 참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연개소문이 등장할 곳이 어느 구석에도 없음을 알 수 있고 김유신이 9살도 안되서 전쟁에 참여시키는 황당개그는 없었을 겁니다. 역사란 씨줄과 날줄처럼 얼키고 설켜서 어느 한쪽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어긋나고 사람으로 하여금 의문부호를 띄우게 된다는 겁니다. 아닌 사람들도 더러 많이 있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김법민의 탄생에 관한 비화

   김유신과 김춘추, 김문희, 김보희를 보면 이전 기록으로는 김유신이 김춘추와 김문희/김보희와 엮어주는 장면이 나오고 김문희가 임신을 하는데도 김춘추가 뻐팅기자 경주 한복판에 김문희를 매달아 불을 지르자 선덕여왕이 이를 보고 김춘추를 꾸짖고 김문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장면이 나오고 김문희가 임신한 것이 김법민(문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역사 기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삼국사기, 삼국유사만을 보고 그대로 믿었을 겁니다. 좀더 깊이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김유신의 나이와 김춘추의 나이, 김춘추의 죽은 딸 고타소를 보았을 때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김유신/김춘추/김문희/선덕여왕의 관계를 아주 심플하게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아닌 진평왕 시기 선덕공주가 해결해 주었다. 라고 그 시기는 김유신(31), 김춘추(23세)가 625년 살 때 일이며, 김보희 또한 김춘추에게 후비로 갔으며, 김춘추에게는 당시 결혼한 처자가 있었고 자식까지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품석에게 시집간 고타소가 이가 642년 죽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전에는 고타소 까지 문희의 자식으로 쳤었는데 화랑세기는 고타소는 김춘추의 이전 부인한테서 난 자식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김법민은 625년생입니다. 이때는 진평왕(재위:579~632)이니 당연히 선덕여왕 때가 아닌 덕만(선덕)공주 때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말하지 못했는데 화랑세기는 당당히 선덕여왕때라고? 무슨 소리 선덕(덕만)이 공주일 때 엮어준 거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또한 김유신자신의 조카(지소부인)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했고 자식을 두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얽키고 섥킨 실타래 같은 것을 단숨에 해결해 주고 있으니 화랑세기야 말로 역사서로 치면 대단한 것이고, 창작소설로 치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대단히 치밀한 역사소설이 되는 겁니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소설로 해결을 해주었으니 말입니다.

 

위의 예는 세발의 피입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빨려들어가는 무언가가 있고, 파고 들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니 말입니다. 김대문이 작성한 화랑세기라고 해도 그 관점은 김대문의 시각과 당시의 기록을 작성한 사람의 주관과 관념세계가 투영이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화랑세기의 필사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989년의 축약본과 1995년 발견된 모본사이인데도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축약본을 보면 의도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이 모본에서 뺀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주절이 주절이 하는 이유는 한곳이나 한쪽편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그안에 매몰되면 보일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주절거린 관계로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마지막 한 단락을 쓰기 위해서 되먹지 않게 역사서들을 들이 밀었습니다.

 

 

 


(크릭하시면 큰화면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선덕여왕을 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수 있도록 화랑의 체계도를 올립니다.



출처: https://dreamlive.tistory.com/664?category=408939 [갓쉰동 꿈꾸는 것은 산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