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황과 연주

2013. 8. 29. 09:10율려 이야기

 

 

 

      

생황과 연주
 
생황은 고구려, 백제 시대 때부터 널리 사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서기 725년에 만들어진 상원사의 종에 이 악기의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박으로 만든 통속에 대나무 관을 나란히 꽃고, 대나무 관의 아랫쪽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으며

박통에 나 있는 취구에 입김을 불어 넣거나 들이마시면서 소리를 냅니다.

구멍을 열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을 내는 이 악기는 음빛깔이 밝고 아름다우며 병주(2중주),소규모 합주에 쓰입니다.  특히 단소와의 2중주는 '생소병주'라  하며 조화를 잘 이루어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문헌에는 '생'으로도 기록되어 있습니 다
 
 한국 전통 관악기 중에서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화음악기입니다.

화음이라기보다는 한번에 여러개 소리를 낼 수있는 악기라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백제에 생황이 있었고  생황을 포부(匏部)에 넣는 이유는 입김을 불어 넣는 통을 옛날에는 박통을 썼기 때문이며, 지금은 그것을 나무로 만든다 합니다..

 박통 속에 죽관(竹管)을 나란히 꽂은 것입니다. 죽관의 아래쪽 외면에 있는 구멍을 막으면 소리가 나고, 열면 소리가 안납니다.


대나무관의 숫자에 따라 36황, 23황, 19황, 17황, 12황 등 그 종류가 많은데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것은 12율(律) 4청성(淸聲)을 갖춘 17황이 있습니다.
박통으로 만든 울림통 속에 17개의 대나무 관을 꽂고 박통 옆 취구에 숨을 불어 넣으면 죽관(竹管) 아래에 붙인 금속성의 황(簧)이 울리면서 하모니카와 같이 여러 음을 동시에 낼 수 있는 악기이다(입김을 불어 넣거나 들어 마셔 소리를 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

박통 옆에 지공을 막아 음정을 만드는 생황은 여러 개 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떠는 음이나 흘러내리는 음 등을 표현할 수는 없어서 현재 독주악기로는 쓰이지 않고 단소나 양금과의 병주 또는 세악합주에 쓰입니다..

 

 

생황

                              

 

 

 

 

                       혜원 신윤복의 '선유도(船遊圖)'

선미의 여인이 생황을 불고 있습니다.

 

 
 

 

       혜원 심윤복의 연당의 여인

여인이 생황을 들고 연당에서 연꽃을 바라본다.

연꽃의 취하여 생황을 연주 할것이다.

 

 

 

 

 

   김홍도의「송하취생도」

 

    소나무 아래 소년 신선이 앉아 생황을 부는 장면인 김홍도의 많은 걸작들 중의 대표작인 「송하취생도」이다. 당나라 시인인 나업의 「제생」이란 글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제생」에서 나업은 생황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중국 주나라의 태자로 태어났으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산수山水에만 뜻이 있었던 그는 나이 열다섯 살에 도사를 만나 생황을 배웠다. 그 다음 해 왕자진은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는 데 왕자진은 생황을 연주하며 눈같이 흰 학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김홍도가 「송하취생도」로 나타냈다. 힘찬 기백이 보이는 소나무의 그림과 금방이라도 생황을 불며 일어서 그림속에서 빠져 나올 것 같은 소년의 모습이 생동적이다. 생황가락의 신비로움과 맑음을 볼 수 있는 글과 그에 대한 그림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생황가락이 들려온다.

 


 

 

    김홍도의 월하취생


단원 김홍도의 월하취생(月下吹笙)이다. 풀어 말하면, ‘달빛아래 생황을 불다’란 뜻. 올봄 두 번의 간송미술관 걸음 중에 내 맘을 붙든 그림이다. 흰 족자, 벼루와 먹 그리고 붓 두 자루 뒹구는 방 한가운데 파초를 깔고서 생황을 부는 가녀린 서생. 젊었던 날의 김홍도의 자화상일까

 

 

좋은 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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