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31. 03:56ㆍ율려 이야기
우리 춤의 최고 경지는 병신춤 박 흥주(굿연구소 소장)
(중략)
이번에는 춤 이야기를 할 참이다. 우리의 몸짓과 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고, 어떤 원리에 의해 이뤄지고 있나를 가늠하려고 말이다. 이 화두도 무세중 선생이 주셨다. 두 번째 만남에선가
**무세중 : 37년생. 우리 전통사상과 민중예술을 바탕으로하는 1세대 전위행위 예술가이자 교수,극단대표, 논문 및 저서 다수
“우리 춤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추는 춤이 무엇인 줄 알아?”
갑자기 대답을 잃었다. 그 분이 원래 대학원에서 춤을 전공하셨고 석사학위 논문이 춤에 대한 것임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나온 질문은 아닐 것이고… 질문의 요지는 ‘최고 경지의 춤’이라는 뜻일텐데 그렇다면 승무나 살풀이가 아니란 말인가? 떠 보시려는 것인지 진짜 승무나 살풀이가 아니란 말인지…
그분의 입에서 뜻밖의 답이 나왔다.
“병신춤이야. 병신춤은 승무나 살풀이 마스터하고 추는 춤이야”
그 말을 들을 때 머리를 치는 무엇이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이애주 선생이 언젠가 공옥진선생의 병신춤에 대해 평한 말이 순간 스쳐가기도 했다.
(중략)
사회적으로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던 하인들이 양반들의 허위의식과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해 병신춤으로 통렬하게 비판하였으며, 그 순간만은 오히려 양반보다 더 높은 정신적인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병신춤의 이런 비판의식과 풍자정신은 탈춤에서 극명하게 표출된다. 강령탈춤의 경우 양반이 병신으로 설정되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철저히 무능하고, 허위에 찬 인물로 설정되어 말뚝이에게 갖은 조롱을 당하기 일쑤인 탈춤의 양반들이 병신으로 설정되기도 한다는 것은 2중의 비판이자 조롱이다.
광대나 기방인들에게서도 병신춤은 발견된다. 광대나 기방인들도 하인이나 다를 바 없는 천인들이었다. 높은 재주와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계급이라는 굴레가 만들어내는 아픔과 한이 어쩌면 더 깊고 컸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어두운 생활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모여 병신춤을 추며 슬픔을 달래거나, 잔칫집에 초대되어 재주를 보이는 도중에 병신춤을 춰 흥을 돋우면서도 양반들을 희롱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병신춤은 생명력을 최대한 발현시킬 수 없는 신체적 장애나 사회적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춤이다. 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병신춤을 출 경우 단순히 흥미본위로 흉내를 냈을 때는 감흥을 깊이 주기 어렵다. 사회적인 불평등과 장애를 극복하려는 몸짓과 메시지가 담겨있거나, 허위와 거짓을 꼬집어낼 수 있는 풍자감각이 묻어나오거나, 정상인들에게도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을 뿜어냈을 때 병신춤은 추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병신춤은 생태적으로 그런 기운을 갖고 출발하며, 이를 정상인들이 병신의 흉내를 내면서 춤을 출 경우에는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할 조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인과 장애인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어야만 한다. 병신춤은 태생 자체가 살림이며 생기를 북돋는 춤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정상인이 병신춤을 췄을 때 장애인이 그 춤을 보고 분노를 느끼고 거부반응을 보였다면 이는 분명 흥미위주로 장애를 조롱하였음이 분명하고, 장애인들도 흥을 느끼고 더불어 신명을 공유하게 된다면 그것은 장애인이 직접 추는 병신춤이나 같은 수준이라고 평가해도 될 것이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정상인들이 추는 병신춤을 진짜 장애인들이 봤을 때 감흥을 주지 못하면 그것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테크닉이 좋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전문 춤꾼이 궁극적으로 정복해야할 춤은 무엇일까. 우선 사지 멀쩡한 춤꾼이 한 사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쏟는 기운과 공력보다 몇 배의 기운과 공력을 필요로 하는 춤사위가 있다면 그것을 정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어떤 춤을 표출하기 위해서 온갖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질시와 모멸, 그리고 불평등을 나름대로 극복하지 않고서는 표현 불가능한 춤이 있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구체적인 행동과 그 기운이 춤사위에 담겨있지 않을 땐 결코 감흥을 줄 수 없는 춤이 있다면 이를 정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아가 그 춤이 그 춤을 추는 춤꾼 자신이나 여유있게 그 춤을 감상하는 정상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천한 장애인에게도 직접 생기를 주고 삶의 희열을 줄 수 있는 춤이 있다면 도전장을 던져야 최고의 춤꾼, 최고의 춤이라고 인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출처: 여민락
<공옥진>
공옥진은 1931년 광주에서 판소리의 명창 공대일 씨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징용을 막기 위해 5백원에 팔려가야 했던 어린시절은 유랑극단 생활과 일본으로 건너가 춤을 배우면서 고생하는 생활로 이러졌다. 그러나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열일곱이 되던 해부터 여러 명창 대회에 나가 1등을 차지해 명성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놀림거리가 되었던 벙어리 남동생과 17세에 한스런 세상에서 눈을 감았던 꼽추 조카, 낳은 지 3개월 막내 잃은 첫아들과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 그의 삶은 굽이굽이 곡절도 많았다.
한때 승려가 되어 참선에 매진하기도 했지만 끝끝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함꼐 녹여내 우리의 신명으로 풀어내는 독특한 춤의 세계를 일궈내었다.
<1996년 인터뷰 中>
"한을 품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한도 풀어줄 수 없어요. 설운 사람들의 아픔을 제대로 표현하자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혼이 내려야 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즐거울 때가 언제일 것 같소. 무대 위에서 갈채를 받을 때가 아니요. 고생으로 번 돈을 장애인들한테 나눠줄 때요. 그럴 때면 오장이 다 흐뭇허요."
"내 춤이 병신춤으로 알려져 한때 장애인들이 화를 많이 냈었소. 하지만 내 춤은 익살과 해학이 담긴 나의 넋두리요. 또 그 속에는 모질게도 굴곡지며 살아오는 동안 쌓인 나의 한이 절절이 녹아있는 것이죠. 다 썩어 문드러진 내 오장육부가 그 춤에 있는 거요."
"난 어디든지 갈라요. 내 춤을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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