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와 <우리시 2월호>에서 / 김창집의 "오름이야기" 중에서

2013. 9. 12. 08:20

 

 

 

 

 

      

 

     봄비와 함께 ‘우리詩’ 2월호가 배달되었다. 임보 시인이 권두시론 ‘신춘문예 유감’으로 시작하여 ‘이달의 우리시단’에는 박희진 ‘1932 정원사 헤세’, 김석규 ‘겨울이 온다’, 윤용선 ‘크로키’, 이기철 ‘삼월처럼 분주하고 싶다’, 김진광 ‘MRI 촬영장에서’. 박영희 ‘괜찮다, 괜찮아’, 성선경 ‘백양사 돌단풍’, 송계헌 ‘눈물 한 채’, 김영호 ‘적막’, 신현락 ‘중세의 편지’, 송문헌 ‘아침햇살에 뼈대를 드러내다’, 정숙 ‘소금 간 맞추다’, 조연호 ‘빈맥頻脈의 나날’, 박강남 ‘삼남에 눈 내리는 날’, 조성심 ‘창 너머 빈자리’ 외 각각 1편씩을 실었다.


     신작소시집은 홍해리 ‘정情’외 6편을 싣고 손현숙의 해설 ‘목련나무 환하게 꽃등 켤 때’를 덧붙였다. 고성만의 ‘『우리詩』가 선정한 좋은 시’에는 나호열 ‘타인의 슬픔·1’, 조성국 ‘웃음 부의賻儀’, 유홍준 ‘몸무게를 다는 방법’, 김경성 ‘나무의 유적’, 문신 ‘빗방울 꽃’을,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는 이민화의 ‘뿌리의 힘’을,  우리詩 월평은 황정산 교수가 ‘사랑하라 희망 없이’를 올렸다.


     신작 특집으로는 고성만 ‘여러움’, 송영희 ‘라라라 봄비’, 권정일 ‘무당벌레’, 남유정 ‘데린 큐유’, 박원혜 ‘언덕 위의 풍차’, 최석우 ‘해동’, 고경숙 ‘사랑’, 박호영 ‘황변만년란’, 고영 ‘물끄러미 칸나꽃’, 안시아 ‘12월’, 이문연 ‘바람神’, 이성웅 ‘고사목에 핀 꽃’, 박승류 ‘진술서’, 이미상 ‘오이도행 블루넥타이’, 유리아 ‘풍선 부는 여자’, 황연진 ‘운명을 찍다’ 외 각각 1편씩을 올렸고, 영미시 산책은 백정국 교수의 번역으로 테오도레 뢰트케(Theodore Roethke)의 ‘암흑의 시간에(In a Dark Time)’를 실었다.  

 


 

 

♧ 고별 - 황도제


당신의 자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봅니다.

가만히 손도 잡아 봅니다. 사랑이 따스하군요.

당신도 내 손을 잡는군요.

처음 만나던 날의 떨림이군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떠나는 인사임을

어깨에서 앞가슴으로 흐르는 흐느낌

자신의 탓이라고 혼절하는 장면 눈에 보이는군요.

어린놈도 함께 우는군요. 용서해 주세요.

변명과 이유는 구차스러워 접습니다.

이제 고별입니다

그동안 함께 살아온 인사치레로 조금만 우세요.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는 세상 떠나갑니다.

 

 


 

 

 

 

♧ 나는 진정한 강물의 소리를 모르겠네 - 김진광


나는 너를 보내놓고

다시 너를 기다린다.

네가 나를 불렀을 때 돌아보지 않다가

네가 보이지 않는 강 굽잇길을 돌아선 다음

몇 걸음 되돌아가며 강울음소리로 너를 가만히 불러보았다.

너도 나처럼 강 굽잇길 돌아 나를 그렇게 불러 보았을까.

우리가 함께 걷던 길 따라 강물은 오늘도 바다로 흘러가는데

흐르는 강물은 울고 있는지 노래를 부르는지

그것이 슬픔인지 아름다음인지 추억인지

나는 이따금 흘러가는 강물을 보듯 너를 생각하며

아직도 나는 진정한 강물의 깊은 소리를 모르겠네.

나는 흐르는 강물처럼 너를 바다로 보내놓고

바다로 가는 길목 강가 갈대로 바람에 서걱서걱 울며

이미 바다가 된지도 모를 아직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린다

 

 

 

 

 

 

 

 

♧ 황태의 꿈 - 홍해리洪海里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눈물도 씻어버렸다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샌 나의 꿈

갈갈이 찢어져 날아가리라

말라가는 몸속에서

난바다 먼 파돗소리 한 켜 한 켜 사라지고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 타인의 슬픔 1 - 나호열


문득 의자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의자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으므로

제 풀에 주저앉았음이 틀림이 없다

견고했던 그 의자는 거듭된 눌림에도

고통의 내색을 보인 적이 없으나

스스로 몸과 마음을 결합했던 못을 뱉어내버린 것이다

이미 구부러지고 끝이 뭉툭해진 생각은 쓸모가 없다

다시 의자는 제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태어날 때도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슬픔을 너무 오래 배웠던 탓이다

 

 

 


 

 

 

 

♧ 나무의 유적 - 김경성


얼마나 더 많은 바람을 품어야 닿을 수 있을까

몸 열어 가지 키우는 나무,

그 나뭇가지 부러진 곳에 빛의 파문이 일고 말았다

둥근 기억의 무늬가 새겨지고 말았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어서

끌고 가야만 하는 것

옹이 진 자리,

남아있는 흔적으로 물결무늬를 키우고


온몸이 흔들리도록 가지 내밀어

제 몸에 물결무늬를 새겨넣는

나무의 심장을 뚫고

빛이 들어간다

가지가 뻗어나갔던

옹이가 있었던

자리의 무늬는, 지나간 시간이 축적되어있는

나무의 유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무늬의 틈새로 가지가 터진다, 잎 터진다, 꽃 터진다

제 속에 유적을 품은 저 나무가 뜨겁다

나무가 빚어내는 그늘

에 들어앉은 후 나는 비로소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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