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악녀들(4) - 문정왕후(1501~1565)/ 조선조 중종의 계비

2014. 1. 7. 15:56우리 이웃의 역사

 

 

                                                                                                                                                                       월간 DEN 2009. 8월호에서

 

 

      

세기의 악녀들 -Ⅳ, 문정왕후(1501~1565)


( 歷史工夫 )


인종 독살설의 의혹 문정왕후(1501~1565)


    중종 10년,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고 세상을 뜨자 2년 만에 그 뒤를 이을 계비로 간택된 이가 문정왕후이다.
사대부들의 표적이 되어 비난을 받았으며 인종 독살설에 휩싸이게 된다.

 

 

1. 동궁에 불을 지른 쥐

 

   문정왕후는 열일곱에 왕비로 책봉된 후 17년 만에야 꿈에도 바라던 아들을 낳는다.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이 태어났을 때 세자(인종)의 나이는 스무살이었다. 누구도 경원대군이 세자를 누르고 왕위를 이어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의 나이차였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노리며 세자를 핍박했다. 어느 날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에 불이 나 세자와 세자빈이 죽을 뻔 한 일이 있었다. 이를 '작서(灼鼠)의 변(變)'이라고 하는데, 문정왕후가 쥐꼬리에 불을 붙여 동궁에 들여보내 불이 났다는 뜻이다. 문정왕후가 그만큼 세자의 지위를 위태롭게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소문이다. 중종은 세자도 사랑했지만 문정왕후도 총애했기에 문정왕후를 감싸안으며 방화사건을 궁녀의 실수로 마무리지었다.

 

 

2. 독이 든 과자를 먹은 인종


   중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종은 온화하고 주관이 뚜렷한 임금이었다. 그는 세자 시절부터 자신을 박해했을지라도 문정왕후를 깎듯이 어머니로 모셨다.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참판의 자리에 앉혔지만, 인종에게 돌아온 것은 섭섭하다는 불만과 위협 뿐이었다. 이에 인종은 더운 햇볕이 내리 쪼이는 바닥에 엎드려 문정왕후의 화를 달랬다. 이런 일들은 중종의 장례로 몸이 쇠약해진 인종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몸이 편치 않았지만 문정왕후로부터 주다례(晝茶禮)와 대비전 문안을 쉬어도 좋다는 명을 받지 못한 인종은 어김없이 대비전을 찾아가 문정왕후와 다과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인종은 심한 이질 증세를 보였고 병은 점차 위중해졌다. 비위 손상이 원인이었는데, 비장과 위는 음식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기로 독극물을 섭취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인종은 재위 여덟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주다례의 과자로 독살됐다는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3. 여왕 행세하며 아들을 괴롭히다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했을 당시의 나이는 열두 살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문정왕후가 대리청정을 하게 되는데 이 섭정 기간은 옥사의 연속이었다. 여왕 노릇을 하던 문정왕후였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 있는데, 더 이상 자신의 핏줄에게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것이다. 문정왕후의 유일한 손자이자 명종의 외아들인 순회세자가 열세 살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문정왕후는 명종 재위 20년에 사망하는데, 이를 두고 <명종실록>에서는 '종사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정왕후가 명종에게 "내가 아니면 네가 어떻게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으랴"하며 횡포를 부려 명조가 심열증(心熱症)을 얻었다면서 문정왕후를 사직의 죄인으로 적고 있다. 이 소문이 사실이었는지 명종도 문정왕후가 사망한 지 2년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