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출가]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한 보디삿따였을 때 나 역시 생·로·병·사·슬픔·번뇌에 묶여 있으면서 똑 같은 생·로·병·사·슬픔·번뇌에 묶임을 구하였다 그러나 나에게 ‘나는 왜 생·로·병·사·슬픔·번뇌에 묶여 있으면서 똑 같은 생·로·병·사에 묶임을 구하는가?’ 라는 의심이 일어났다. ‘비록 나는 지금 생·로·병·사·슬픔·번뇌에 묶여 있지만, 이것들의 재난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 생·로· 병·사·슬픔·번뇌가 없는 최상의 안온인 열반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아직 젊었을 때, 젊음의 축복이 주어진 인생의 한창때에 검은 머리의 젊은이는, [아들의 출가를] 원치 않는 부모 님의 눈물을 흘리며 울었지만, 나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출가하였다.
스승 알라라 깔라마
이와 같이 출가를 하여 나는 바람직한 것을 찾아서 숭고한 평화의 최상의 경지를 찾아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서 이렇 게 말하였다. “깔라마시여, 나는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 가르침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오래지 않아 스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빠르게 그 가르침을 성취하였다. 단지 암송이나 복창(반복함)의 가르침에 관하여 말하면 나는 지혜와 확신을 가지고 말 할 수 있게 되었고, 장로들의 이론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알고 나는 본다’고 선언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알라라 깔라마는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가르침을 성취하였다고 단지 믿음만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그는 가 르침을 알고 본다.’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서 물었다. “깔라마시여, 어떤 면에서 그대는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가르침을 성취하였다고 단언하십니까” 이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대하여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기를,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신심과, 정진, 마음챙김, 집중, 그리고 지혜가 있다. 그러니 나도 알라라 깔라마가 단언하는 그와 같은 경지를 얻도록 노력해 보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수행하였다.
오래지 않아 매우 빨리 나는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가르침을 성취하였다,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서 물었다. “깔라마시여, 그대가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가르침을 성취하였다고 단언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까?” “바로 그것이오, 벗이여.” “깔라마시여, 나도 또한 지혜로 깨달아 가르침을 성취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유익함이오, 벗이여, 청정한 삶에서 존자님과 같은 동료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유익함 이오. 내가 지혜로 스스로 깨달은 경지를 그대도 똑같이 깨달았소. 또 그대가 지혜로 스스로 깨달은 경지를 내가 똑같 이 깨달았소. 내가 성취한 가르침을 그대가 성취하였고, 그대가 성취한 가르침을 내가 성취하였소.
그대가 아는 가르침 을 내가 알고 내가 아는 가르침을 그대가 알게 되었소. 그러니 벗이여, 나와 함께 이 공동체를 이끌어가면 어떻겠소?” 이와 같이 나의 스승인 알라라 깔라마는 자신의 제자인 나를 그와 대등한 지위에 놓았고 최고의 존경을 표하였다. 그러 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가르침을 깨어있음, 욕막의 소멸, [번뇌의] 소멸, 평화, 지혜, 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지 못하고 오직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머문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 가르침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떠났다.
스승 웃다까 라마뿟따
나는 계속 바람직한 것을 찾아서, 숭고한 평화와 경지를 찾으면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웃다까 라마뿟따여, 나는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기를 원하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 가르침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오래지 않아 스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빠르게 그 가르침을 성취하였다. 단지 암송이나 복창(반복함)의 가르침에 관하여 말하면 나는 지혜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장로들의 이론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알고본다”고 선언하였고 다른 사람들 도 그렇게 인정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가르침을 성취하였다고 단지 믿음만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그는 가르침을 알고 본다.’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가서 물었다. “라마시여, 어떤 면에서 그대는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가르침을 성취하였다고 단언하십니까?” 이에 웃다까 라무뿟따는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대하여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기를,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심신과, 정진, 마음챙김, 집중, 그리고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 또 한 심신과, 정진, 마음챙김, 집중, 그리고 지혜가 있다. 그러니 나도 그와 같은 경지를 얻도록 노력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수행하였다.
오래지 않아 나는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담마를 성취하였다. 나는 웃따까 라마뿟따에게 가서 물었따. “라마시여, 그대가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가르침을 성취하였다고 단언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까?” “바로 그것이오. 벗이여.” “존자여, 나도 또한 지혜로 깨달아 가르침을 성취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유익함이오. 벗이여, 청정한 삶에서 존자님과 같은 동료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유익함 이오. 라마가 지혜로 스스로 깨달은 경지를 그대도 똑같이 깨달았소. 또 그대가 지혜로 스스로 깨달은 경지를 라마가 똑같이 깨달았소.
그대가 아는 가르침을 라마가 알고, 라마가 아는 가르침을 그대가 알게 되었소. 그러니 벗이여, 그대 가 이 공동체를 이끌어가면 어떻겠소?” 이렇게 청정한 삶의 동료인 웃다까 라무뿟따는 나를 스승의 지위에 놓았고 최고의 존경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가르침은 깨어있음, 욕망의 소멸, 번뇌의 소멸, 평화, 지혜, 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지 못하고 오직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머문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 가르침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떠났다.
홀로 수행하다, 깨달음을 성취하다
나는 계속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리고 숭고한 평화의 최상의 경지를 찾으면서 마가다국을 행각하면서 마침내 우루 웰라 근처 세나니 마을에 도착하였다. 거기에서 나는 마음에 드는 적합한 곳을 발견하였다. 그곳은 훌륭한 숲이 있고 쾌적하고 완만한 강둑이 있는 맑은 물이 흘러가는 강이 있고 가까이에 탁발할 수 있는 곳이 있는 그런 훌륭한 곳이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정말 이곳이야말로 정진하려고 결단한 사람의 정진을 도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바로 정진하기에 합당한 곳이다.’ 그래서 나는 생·로·병·사·슬픔·번뇌에 묶여있지만, 그 재난을 알기 때문에 그 묶임에서 벗어나고자 생·로·병·사·슬픔·번 뇌가 없는 최상의 안온, 열반을 성취하였다. 그때 나에게 ‘나의 해탈은 움직일 수 없이 견고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다.’라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