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 02:36ㆍ차 이야기
2. 신라의 다도(茶道)
1) 공양물로 정착된 차
이 땅에 불교와 차가 차례로 전래된 이후, 차는 불교문화와 자연스럽게 불가분의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차는 승려들이 심신을 닦는 수행방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에게 오리는 주된 공양물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신라시대의 불, 보살상을 비롯한 탑, 부도, 조사영정 등에는 차를 공양하는 예법을 형상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유물은 오늘날까지 다수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緣起祖師) 가 세운 구례 화엄사(華嚴寺)의 사자좌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들 수 있다. 이 탑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기단 각 모퉁이에 기둥처럼 세워 놓았는데, 사자들에 에워싸인 중앙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공양을 오리는 듯한 모습의 승려상이 있다. 이는 효심이 깊었던 연기스님이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차를 올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전하는데, 연기스님이 세상을 떠난 후 약 100년 뒤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스님을 기리어 석탑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지리산에 화엄사가 창건된 무렵부터 차를 올리는 습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조사영전(祖師靈前)에서 행하는 영다례를 비롯하여, 부도탑에 부도다례와 추석, 설날에 조상다례 등을 행하고 있다.
차공양을 올리는 뚜렷한 형상이 새겨진 예로는 751년 (경덕왕 10)에 조성된 경주 석굴암을 꼽을 수 있다. 석굴암 주벽에 새겨진 상 가운데 오른손으로 조그마한 찻잔을 받쳐 든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은 차공양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다. 같은 시기인 경덕왕 무렵은 차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 충담(忠談)스님이 매년 3월과 9월이면 남산에 올라 삼화령(三和嶺)의 미륵세존에게 차를 올린일, 경덕왕에게 차를 대접하고 「안민가」를 지어준 기록 등이 전한다.
이 외에도 보개산 각연사(覺淵寺)의 석조비로자나불상(石造毘盧遮那佛像:보물 제433호)의 광배(光背)에는 아홉 구의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는데, 정중앙에 있는 화불은 찻잔을 들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매화산 청량사의 석조석가여래좌상(石造釋迦如來坐像:보물 제265호)은 석굴암의 불상유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9세기의 작품으로, 불상이 자리한 대좌(臺座)의 중대석에는 세 보살이 각기 정면과 좌우에서 차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새겨놓았다. 또한 7세기 초의 충주 가금면 봉황리에는 보살상들이 미륵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군상(群像)을 이루고 있는데, 한편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불상과 그 오른쪽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불상을 향해 차를 올리는 보살상이 있다. 924년(경애왕 1)에 세운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智增大師寂照塔碑: 보물 제138호) 기단부의 차공양상 등에 이르기까지, 통일신라시대의 차공양상은 다양한 불교미술 작품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차를 부처님 전에 올리는 헌다의식(獻茶儀式)은 이른 시기부터 정착된 것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차는 불교 육법공양물(향,등,차,꽃,과일,쌀)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 다음 카페 <선다향> 인연법(泥蓮華) 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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