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노래 (茶歌) 外

2014. 3. 11. 21:23차 이야기

 

 

 

 

 

      

다조(茶俎)  / 서긍 (徐兢)

    토산차(고려의)의 맛은 쓰고 떫어서 입에 넣을 수가 없다. 오직 중국의 납차(臘茶)와 용봉사단(龍鳳賜團)을 귀하게 여기는 데 <송나라에서> 증여품으로 오는 것 외에 상인들이 무역해다가 판매하는 것이 있어 근래에 와서는 차마시기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다구(茶具)도 더욱 발달해서 금화오잔(金花烏盞) 비색소구(翡色小구) , 은화로(銀爐) , 탕정(湯鼎 )등 모두가 중국의 제도를 모방해서 만들었다.  무릇 연회가 있으면 뜰에서 차를 달이는데 잔은 은으로 만든 뚜껑으로 덮고 차를 내어올 때에는 천천히 걸어서 내어온다.  그리고 접대하는 이가 " 차가 고루 돌아간 다음에 드십시오." 한다.  그래서 언제나 식은 차를 마시게 된다.  관(館)에 붉은 탁자을 두고 그 안에 다구(茶具)를 진열해 놓고 붉은 사(紗)로 만든 보자기를 덮는다.  하루에 세번씩 차를 공양하고 차에 이어 더운 물을 내어 오는데 고려 사람들은 이것을 약이라고 한다.  그들은 사신이 차를 다 마시는 것을 보면 기뻐하고 혹 다 마시지 않으면 자기를 업신여긴다고 생각하고 불쾌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언제나 억지로라도 차를 다 마시게 된다.

 

 

해제

   고려도경(高麗圖經)은 선화(宣和) 5년(1123년)에 서긍(徐兢)이 중국의 사신으로 고려에 와서 약  1개월간 개경(開京)에 머무르면서 그 동안에 견문한 것을 모아 가지고 귀국하여 저술한 책이다.

   서긍은 송 휘종(徽宗)때 사람으로 자는 명숙(明叔)이오 이름은 긍(兢)이다.  어려서 부터 재질이 뛰어나 18세에 대학(大學)에 들어갔고, 산수(山水)와 신물화(神物畵)에 능하였으며 전자(篆字)에도 통하였다고 한다.

   서긍은 고려에 머물면서 송나라와 다른 점을 모아 저술한 책이 바로 고려도경이다.  이 책 권32, 기명(器皿)조에 보면 고려의 차생활을 상세히 소개한 다조(茶俎)항이 나온다.  이 구절이 고려시대 차생활을 규명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차 민요(1)

 

백설 덮인 상상봉에

싹을 내는 차나무는

강풍에도 겁이 없다.

곡우 때는 땅김 나고

우수 경칩 봄 기운에

강남 제비 봄 소식이

이내 품에 알려왔오

한잎 두잎 따는 손이

임의 생각 잃을까요.

 

 

해제

이 민요는 경남 하동군 화계골 홍계동에 흩어져 사는 어느 화전민(火田民) 할머니로 부터 채집한 것이다.

 

 

 

 

차 민요(2)

저기 저 장벼락에

찻잎 따는 저 처녀야.

아득한 산과 들에

야색(夜色)이 깔렸는데,

조알같이 많은 날에

또 와서 따아 갔소.

석양이 깃들어도

찻잎이 보이느냐,

게잡는 관솔불이

눈물 위에 비치는데

산 귀신 잠이 깨고

새 짐승 집 찾는다.

 

 

해제

전남 벌교 지방에서 불리위 지던 민요이다.

 

 

 

 

차 민요(3)

 

초엽 따서 상전께 주고

중엽 따서 부모께 주고

말엽 따서 남편께 주고

늙은 잎은 차약 찧어

봉지 봉지 담아 두고

우리 아이 배 아플 때

차약 먹여 병 고치고

무럭 무럭 자라나서

경상 감사 되어 주소.

 

 

해제

경남 함양군 마천지방에서 채집 됨

 

 

 

 

차 민요(4)

무름댐이 처녀는

문배 장사로 나간다.

우두(牛頭)의 처녀는

참배 장사로 나가다.

동내구동(東內九洞) 처녀는

차약(茶藥) 장사로 나간다.

마동(馬洞)의 처녀는

옹기 장사로 나간다.

산청 금랑 처녀는

공단 장사로 나간다.

뽕밭골 처녀는

명주 장사로 나간다.

옹달샘집 처녀는

막걸리 장사로 나간다.

 

 

해제

경남 산청군 삼장면 지방의 고령토 광산의 농민들 사이에서 불려진 민요이다.

 

 

 

 

차 농요

잘못 먹어 보챈 애기

작설 먹여 잠을 재고

큰아기가 몸살나면

작설 먹여 놀게 하고

엄살 많은 시애비는

작설 올려 효도하고

시샘 많은 시어머니

꿀을 드려 달래 놓고

혼자 사는 청산이는

밤 늦도록 작설 먹고

근심 없이 잠을 잔다.

바람 바람 봄 바람아

작설 낳게 불지 마라

이슬 먹는 작설 낳게

한잎 두잎 따서 모아

인적 기도 멀리 한날

앞 뒤 당산 산신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바람 할매 비나이다.

 

이 차농요는 1959년 3월 전남 구례군 화엄사 근처의 차잎을 따서 말려 파는 농가댁 별명 작설때기 할매(73세)로 부터 채집 농경 풍속에 2월달이면 바람이 내려온다 하여 바람맞이를 하기 위하여 청수를 길어와서 장독대에 올려 놓고 그해 농사와 가정의 편안을 빌면서 바람을 올린다.  이때 빌어 주는 기도문과 흡사하다.

 

 

 

 

청자그릇 농요

 

남해 바다 봄 바람이

월출산록 봄을 짓고

철랑이는 물떼들이

사당골(沙堂)을 꼭꼭 메워

청자실을 저 배들은

어디 서로 몰려 왔노

청자 곰실 푸른 청자

흠터 없이 구워 졌소

너남 없이 싸아 가소

월출 차잎 닮았소다

송 청자색 닮았도다

떡차색을 달?コ六?

중국 나라 황제님요

조선 나라 임금님요

사기쟁이 알아주소

이내 정성 다 받쳐서

짓고 굽고 다 하였소

이 좋다고 하여 주소

우리 낭군 솜씨로세.

 

이 차농요(청자 그릇 농요)는 1960년 6월 전남 능가사, 다산초당, 청자도요지 답사 중 흙일하는 할머님(77세)으로 부터 채집.

 

지리산선사(영원조사)

어떤 스님이 묻기를

" 어떠한 것이 화상의 가풍인가요? " 

영원조사가 답하기를

" 유리잔 안의 물이요, 칼을 들고 소리치며 달린다."

스님이 묻기를

" 홍연히 손님이 왔을 때에는 어떻게 대접합니까? "

조사가 답하기를

" 석잔의 차를 마신 후에 방안의 향기로다. " 

 

 

해제

영원조사는 지리산 영원사(靈源寺)에 사시던 스님인데 이 분의 행장은 자세히 알길이 없다.  다만 오래도록 지리산에 계셨기 때문에 지리산선사 또는 영원조사라고 부른다.  여느 날 한 스님이 찾아 가서 선문답을 나누었는데, 이 일이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

 

 

 

산중사 휴정서산

 

산사람이 남으로 가니

백운산이며 두류산(頭流山)이요.

산사람이 북으로 가니

묘향산과 풍악산이네.

한 사미는 차를 달여오고

한 사미는 누더기를 빨아주네.

신선의 병속에 든 하늘과 땅도 아니요

신승(神僧)의 손안에 든 인물도 아니네.

옛날의 소학사 나를 동림(東林)으로 찾아 주었고,

이처사는 나와 죽원(竹院)에서 이야기 하였네.

소학사와 이처사 전에는 천백세 오지 않았거니,

소학사와 이처사 후에도 천백세 오지 않았네.

아 청산수(靑山수)와 백운자(白雲子)가 아니더면

내 누구와 더불어 세상을 벗어나 친교(親交)를 할꼬.

 

註.

神 : 한나라 비장방(費長房)이 여남시(汝南市)에 살면서 누상(樓上)에서 본즉 가게에서 약을 파는 한 노인이 해가 저물자 매일 병속으로 들어갔다.  이상히 여겨 그에게 간청하여 함께 병 속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속에 신선의 세계가 있었다 한다.

東林 : 소학사가 東林寺에 禪師을 찾아 도(道)를 물었다.

竹院 : 당나라 이섭(李涉)의 시에 " 죽원에서 지내다가 중을 만나 이야기 하였다. " 라는 글귀가 있다.

 

 

상박좌상 휴정서산

- 한 봉지의 차와 쌍죽지(雙竹枝)를 주심에 감사함 -

 

   귀하신 글월을 엎드려 받자옵고 겸하여 운유(雲유)와 옥지(玉枝)를 받자오니 이 두가지는 갈증을 그치고 병든 몸을 붙드는 것이라 물건은 각각 감사함을 말할수 없습니다.  또 학슬(鶴膝)과 용각(龍角)은 청려(靑黎)와 적등(赤藤)의 유가 아닙니다.  그 서리 같은 지조(志操)는 늠름(凜凜)하여 영상(令相)의 기풍을 생각케 하고 그 쇠 같은 절개는 갱갱(??)하여 영상(令相)의 풍채를 생각하게 합니다.  물과 산으로 해서 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나 이것으로써 항상 좌우를 떠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푸른 이끼의 미끄러운 길과 높은 봉우리에서는 더욱 잠깐도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냇가를 함부로 다니는데 험한 길에서 변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명상께서는 이 산인에게 이 물건으로써 잊지 못할 자료를 주었고 이 산인도 영상께 이로써 살아 있는 동안 잊지못할 연분 맺게 됨을 흐믓하게 여깁니다.  잘 살피시기를 바라나이다.

 

註.

鶴膝, 龍角, 靑藜, 赤藤 : 모두 지팡이를 가리키는 말임. 학슬은 학의 다리 모양으로 미끈한 대나무 지팡이 이며, 용각은 대나무 뿌리의 모양을 표현한 말로 이도 또한 대나무의 뿌리로 부터 시작한 대나무 지팡이를 말함.  대나무 지팡이는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나 청려나 등나무에 기름을 먹여 빨갛게 된 지팡이 보다 낫다는 뜻.

 

 

격다(擊茶)

박대륜(大輪) 스님과 차를 마실때의 일이었다.

대륜스님이 혜암스님에게,

" 차 맛이 어떠시오? "

혜암스님이,

" 앞산에서 숯 굽는 맛이라."

 

 

 

 

아암선사걸명소   (을축년 겨울 강진에 있을 때 다산이 지었다)

 

 

    여인(旅人)이 요사이 차를 탐식(貪食)하고, 겸하여 약(藥)으로도 충당합니다.  독서 중의 묘한 버릇은 완전히 육우(陸羽)의 다경삼편(茶經三篇)을 통달하고 병중에도 웅잠(雄簪)처럼 드디어 노동(盧同)의 칠완(七椀)을 다 마셨습니다.  비록 정척기(精瘠氣)가 침범하였으나 기모경(?母?)의 말은 잊지 아니하고, 웅파반(웅破瘢)은 녹여도 마침내 이찬황(李贊皇)의 버릇은 있었습니다.  아침 햇볕이 처음 일어나 뜬구름이 갠 하늘에 효효(??) 할 때와 낮잠을 처음 깨었을 때에 밝은 달이 푸른 난간에 이이(離離) 할 때에 이르러 작은 구슬과 눈발같은 탕수로 산등(山등)에서 자순(紫筍)의 향기를 맡았고, 활화(活火)로 신천(新泉)의 물을 끓이는 데 들에서 백토(白兎)의 맛을 보았다.  화자(花瓷)와 홍옥(紅玉)의 화려함은 비록 로공(潞公)이 무색했고, 돌솥에 푸른 연기가 담소(澹素)한 것은 거의 한비자(韓非子)와 같았다.  해안(蟹眼)과 어안(魚眼)은 옛 사람이 좋아 하기를 깊이 했고 용단(龍團)과 봉단(鳳團)은 궁중에서 보배스레 나눠 줌을 이미 다했다.  이에 채신(采薪)의 병이 있어 걸명(乞茗)의 정을 편다.  내가 듣건데 고해(苦海)의  좋은 양식은 시주의 보시가 가장 중하고 명산(名山)의 차는 초단(艸團)의 으뜸을 가만히 보낸다고 하였다.  마땅이 내가 목 마르게 바라는 것을 생각해서 은혜 베풀기를 아끼지 마시요.

 

註.

陸羽 : 茶경經의 저자이다.

노동 : 茶歌의 저자로써 號는 玉川子이다.

기母경 :

李贊皇 :이덕무  \를 말한다.  유명한 茶人이며 0 0 의 물을 길어다 차를 달여 마셨다.

: 상서로운 물건의 맛이다.

: 의 을 말한다.  仁宗때 에 급제하여 同中書門下平事에 이르러 國公에 했다.  將相을 五十年이나 지냈으며 92세에 卒했다.  시호는 忠烈이요 이 있다.

 

해제

걸명소(乞茗疏)는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강진에 유배를 와서 살 때 아암 혜장 선사에게 차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소문이다.

다산선생이 신유년(1801)에 천주교 박해로 옥사를 당해 혁은 흑산도 자신은 강진으로 유배를 왔다.  그러던 어느날(1805년 가을) 만덕산 백련사로 아암 혜장(惠藏) 선사를 찾아가 초대면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알게되어 혜장선사를 다산선생을 강진읍 뒤 우두봉(牛頭峰) 아래에 있는 고성사(高聲寺)로 옮겨 살게 해드렸다.  그리고 차도 가르켜 드렸다.  이와같이 인연을 맺어 알게 된 혜장선사께 차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글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 글이 다산선생이 처음 차를 알게된 후로 최초로 쓴 차에 대한 글이다.

 

 

 

남다(병서)

 

   남다(南茶)는 호남과 영남에서 생산되는 차이다.  초의선사가 그곳에서 운유(雲유) 하면서 다산(茶山:丁若鏞)과 추사(秋史:金正喜)와 문자로 교유했는데 경인년(庚寅:1830) 겨울에 서울을 방문 했을 때 손수 만든 차 한포를 예물로 이산중(李山中)이 얻어서 나에게 주었다.  차는 관인(官人)의 금루옥대(金縷玉帶)와 같다.  나 또한 그러하다.  맑은 자리에서 한잔 마시고 장편시 20운(韻)을 지어 선사께 보내니 혜안(慧眼)으로 바로 잡고 겸하여 화답시를 구합니다.

 

옛날에 차를 마시던 사람은 신선되어 올라 갔고,

하계에서는 잘못 되어도 맑고 어진 사람은 될 수 있네.

쌍정(雙井) 차나 일주(日注)차는 세상에서 이미 멀어졌고,

우전(雨前)차나 홍곡(紅穀)차는 지금도 이름이 전하네.

꽃 무늬청자 찻잔만 보배롭다고 좋아하지 말라.

참다운 맛은 중국에서 이미 경험 하였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는 더욱 좋으니,

차의 싹이 처음 나오니 향기롭고 아름답구나.

옛적에는 중국차가 좋다하고 이제는 우리나라 차가 좋으니,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찮은 꽃이나 풀도 제각기 족보가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가 차가 먼저있는 것을 알았느냐.

신라때 상인이 당나라에 들어 갔을 때,

찻씨를 가지고 창해(滄海) 만리를 배타고 건너 왔네.

강진 해남은 중국 호남 복건성과 같은 적지이니,

한 번 가서 찻씨를 내 버리듯 던져 놓으니(남쪽의 바닷가 산에 차가 많이 있는데 강진 해남이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있다.)

꽃 피는 봄과 잎 지는 가을이 한가로이 지나니

하일없이 청산에 일 천년이 지나 갔네.

울창한 차나무의 기이한 향이 오랜만에 세상에 나타나니,

봄이면 바구니 들고 차를 따는 인연이 생겼네.

하늘나라 월궁에서 작은 용단 봉단차를 만드니,

만드는 방법은 거칠어도 맛은 좋구나.

초의노사(草衣老士)의 옛 정업(淨業)은

좋은 차 달여 놓고 참선에 드네.

남은 일이란 한묵(翰墨)으로 고요히 즐기는 것,

한 때 이름 난 선비들이 모여 들었네.

눈 맞으며 가사(袈裟) 걸친 스님 천리 밖에서 오고,

법도에 맞춰 아름답게 만들은 둥그런 옥같은 단다(團茶)

친구가 나에게 보내 준 차는 구슬과 짝 하겠네,

풀러서 멧돌에 가니 차 가루가 날리네.

나의 차 마시는 버릇에 수액(水厄)이 있음인가,

뼈속에 맺힌 오랜 나쁜 한기가 말끔히 가시네.

밥은 삼분(三分)쯤 먹고 차는 칠분(七分)을 마시니,

법가(法家)에서 생강과 후추를 먹는 것은 가련한 일이다.

석달 동안 빈 찻잔만 들고 있다가,

누어서 찻물 끓는 소리만 들어도 군침이 도네.

오늘 아침에 한잔 들어 장과 위를 씻었고,

방안에 푸른 기운의 운무가 가득히 어리는 구나.

이제는 복사꽃이 늙어 시드는 것도 번거로우니,

부끄럽구나 국제(菊?)가 없어 낙천(樂天)에게 술도 못 권하네.

경인년 11월 15일에 금령(錦?) 박영보가 손을 씻고 화운합니다.

 

해제

 

남다병서(南茶幷序)는 금령(錦?) 박영보(朴永輔) 선생이 경인년(1830) 11월 15일에 초의선사의 차를 선물 받고서 장편시 20운(韻)을 지어 선사께 보낸 것이다.  서문에 이르기를 " 혜안으로 바로 잡고 화답해 주십시요? " 라고 하였다.

 

 

다가(茶歌)    범해각안

책을 펴 놓고 오래 앉아 있으니 정신이 흐려지고,

차 마시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니 견디기 어렵구나.

꽃이 샘갓에 피니 물 맛이 따뜻하고 달콤하여,

물 주전자 가지고 화로 품고 물을 끓이네.

일 이 삼비()에 맑은 향기가 뜨고,

사 오 육잔()을 마시니 땀방울이 맑아 지네.

육우(육우)의 다경(茶?)은 이제야 비로소 깨달겠고,

노동()의 다가(茶歌)는 그 대체만을 알겠네.

보림사(寶林寺)의 작설(작舌)차는 관청(管청)에 받쳤고,

화개동(花開洞)의 진품은 궁궐에 공납했네.

함평 무안의 토산품은 남방의 기물이요.

강진 해남에서 만든 차는 북경까지 알려졌네.

마음의 누는 일시에 다 달아서 없어지고,

개운한 정신은 맑고 밝아서 반나절을 더하네.

졸음과 싸워 물리치니 눈앞이 환해지고,

소화가 잘 되고 가슴이 휜히 열렸네.

번뇌가 없어지는 것을 일찍이 경험 했었고,

한기 가시고 독도 푸는 것은 또한 확실한 일.

공자님 묘에도 차를 올린바 있었고,

부처님 전에도 정성스레 공양을 했네.

무등산 작설은 그 어짐을 이미 시험했고,

백양사 작설(작舌)차도 신기함을 알았네.

덕용산의 용봉단다(龍鳳團茶)는 세상에 알려졌고,

월출산에서 나는 차도 세상에서 믿고있고,

초의 스님 살던 옛터(일지암)는 이미 빈터만 남았고,

리봉(?峯) 스님 계신 곳은 지금도 편안 하구나.

차 만드는 일은 법도에 맞춰 조화를 이루었고,

보관()도 옛법에 의해 암자에 저장했네.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고 남파스님 방법을 따랐고,

많고 적음을 사양하지 않고 영호스님의 뜻을 따랐네.

세속를 보니 차 좋아 하는 사람들 많아,

당송(唐宋) 양대의 성현들에게 떨어지지 않네.

선종(禪宗)의 유풍은 조주 종심선사의 화두요,

참다운 맛은 제산(薺山)스님이 먼저 얻어 보았네.

만일암에서 달 밝은 밤에 공부 하다가,

차 끓이기 위해 화로 불을 대롱으로 부네.

좋은 상자와 큰 낫을 가지고 설날을 가려서,

성학스님이 물을 길면서 태연 스님을 부르네.

만가지 병과 천가지 수심이 모두 가씨니,

내 성품대로 맡겨 소요하니 부처와 같구나.

알맞게 물을 끓이고 다보를 기록하고 송(頌)을 논하는 동안,

한 개 별이 새벽에 한없는 하늘 갓을 지나가네.

어찌하여

기이하고 좋은 서적을 나에게 전해 주는가.

 

 

해제

    다가(茶歌)는 두륜산 대흥사 만일암(挽日庵)에서 범해각안스님이 노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다가 말고는 아직까지 발견이 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중국에는 노동(盧同)의 다가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범해의 다가가 있는 셈이다. 내용은 우리나라 각지방의 차를 예찬한 것이 특징이랄 수 있으며 차의 효능 효과도 말하고 있다.  또 제다법, 저장법, 음다법에 이르기 까지 상세히 논하고 있다.

 

 

 

다약설(茶藥設)    범해각안

   백약이 비록 좋다고 하나 알지 못하면 쓰지 못하고, 백가지 병으로 고생을 하지만 구제하지 못하면 살아나지 못하니라.  구제치 않아 살아나지 못할 때에는 구제하여 살릴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고, 알지 못해서 쓰지 못하는 가운데는 알아서 사용하는 묘방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느끼지 않으면 하늘이 응하여 약을 내려 병을 없게 함이 어찌 가능하리요. 

 

   내가 임자년 가을에 대흥사 남암에 있을 때 이질로 사지가 쇠잔하여 삼시때를 잊고 보름이 되었다.  스스로 알기를 그로써 나는 반듯이 죽으리라.  하루는 사형 무위(無爲)스님이 찾아 왔다.  친히 오셔서 시중을 드는데 함께 참선하던 아우 부인(富仁)스님도 따라와 시중을 들었다.  머리를 들어 좌우를 보니 삼태성(三台星)이 나누어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반듯이 살 것이다.  잠시 후 형이 말하기를 내가 냉차(冷茶)로써 어머니를 구했었다 자못 위태로울 때는 급히 차를 달여 쓰면 된다.  아우(부인)가 말하기를 내가 차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어찌 어렵겠습니까?  말씀과 같이 차를 끓여서 사용하니 한잔을 마시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두잔째는 정신이 상쾌하여지고 서너잔 째에는 온 전신에 땀이 흐르고 맑은 바람이 뼈속에서 불고 쾌연(快然)하더라.  이제 비로소 병있는 자와 같더니 이윽고 점차로 음식을 먹고 나날이 좋아져서 곧 6월달에 이르러서는 어머님의 기제사에 참석코자 70리 밖에 있는 본가에 갔다

이때가 함풍(咸豊) 2년(1852) 임자 7월 26일이다.  들은(이 소식을) 사람들은 놀라고 본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면 탄복하였다.

 

   차는 땅에 있고 사람은(목숨) 하늘에 있으니 천지가 응하여 약을 주었다.

형이 병이 낫을 때 아우가 있어 형제의 정(情)을 느끼게 하니 어찌 신이한 효과가 이와 같지 않으리오.  형은 차로써 어머니를 구하고 아우는 차로써 효제(孝悌)의 도리를 다 했구나.  마음이 상해 병이 심히 무거움을 모르면 어찌 알리요 반듯이 죽는다는 것을 정(情)이 심히 두터웁지 않으면 어찌 알리요 반듯이 살수 있다는 것을, 알만하다 그 평생의 정분을 이와같이 기록하여 보이니 이후에는 구제할수 있는 도리가 있음을 알고 구제하지 못 한다고 하지 말라.

 

 

 

옥보대(玉寶臺) 아래 다풍(茶風)이 크게 무너지다.  석전영호선사

    다경(茶經)에 말하기를 차는 남쪽에서 나는 아름다운 나무이다.  나무는 과로(瓜蘆)와 같고, 잎사귀는 치자(梔子)와 같고, 꽃은 흰장미와 같고, 꽃술은 황금과 같다.  가을철에 꽃이 피며 청향이 은연하다.  열매는 병려(병櫚)와 같고 줄기는 정향(丁香)과 같고 뿌리는 호도(胡桃)와 같다.  당나라 책 은일전(隱逸傳)에 이르기를 숙종(肅宗) 상원(上元) 년간에 육우(陸羽)가 있어자는 홍점(鴻漸)이라 하며 학문이 깊고 차를 즐기어 다경(茶經) 삼편을 저술했다.  말하기를 차의 근원 제법, 기구등 모두 갖추어 천하 사람들에게 차마시기를 알게 하였다.  다경에 이르기를 차에는 구난(九難)이 있으니 첫째는 차를 만드는 법이(製茶)고 둘째는 차를 감별하는 것이고(監別) 셋째는 차끓이는 그릇이고(), 네째는 불을 다르는 것이고(火) 다섯째는 단차(團茶)를 굽는 일이고() 일곱째는 단차를 가루로 만드는 일이고(未) 여덟째는 차를 끓이는 일이고() 아흡째는 마시는 일이다().  흐린날 차를 따고 밤에 볶는 것은 차 만드는 법이 아니고, 냄새를 맡거나 입맛을 보아 감별하는 것은 감별이 아니며, 비린내나는 찻잔이나 노린내 나는 솥은 그릇이 아니며, 진이 나는 나무나 부엌에서 쓰던 숯은 불(연효)이 아니다.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여울물과 고여있는 물은 물<찻물>이 아니며, 단다의 거죽만 익고, 속은 생것으로 되면 구운 것이 아니며, 푸른 가루나 티끌이 바람에 날리는 것은 가루 내는 것이 아니며, 서툰 솜씨로 마구 다루거나 휘젖는 것은 달이는 것이 아니며 여름에는 마시고 겨울에는 폐지하는 것은 차 마시는 것이 아니다.

만보전서(萬寶全書)에 이르기를 차에는 진향(眞香)이 있고, 난향(蘭香)이 있고, 청향(淸香)이 있고, 순향(純香)이 있다.  겉과 속이 똑 같은 것을 순향이라고 하고 익지도 않고 타지도 않은 것을 청향이라고 하고, 불 기운이 균일한 것을 난향이라고 하고 비오기 전에 신령스러움을 간직한 것을 진향이라고 하는데 이를 사향(四香)이라고 한다.  초의선사의 동다송에 이르기를 구난 사항이 있는데 현묘하게 다루어야 한다.  어떻게 가르치리요 옥부대 아래에서 좌선하는 무리들을 자주(自註)에 이르기를 지리산 화개동의 차밭 사오십리가 다 돌자갈밭이다.  화개동의 위에 옥보대가 있고, 대 아래에 칠불선원(七佛禪院)이 있는데, 이곳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이 항상 늦게 늙은 찻잎을 따서 햇볕에 말리고 솥에 넣어 달이기를 마치 나물국 끓이 듯 하니 매우 탁하고 빛깔이 붉다.  맛은 심히 쓰고 떫으므로 내가 항상 말하기를 천하에 좋은 차를 속된 솜씨로 버려 놓았다고 했다.  동다송에 그 개요를 말하였는데, 지리산은 차의 사지인데 오직 화개동만 산의 서남쪽으로 수백리 땅에 차가 나지 않는 곳이 없다.  악양면(岳陽面) 화개면(花開面) 와용면(臥龍面) 등이 비록 남녘 오랑캐가 사는 농촌이지만 차를 끓여 아침 저녁으로 식사후에 늘 마시지 않는 집이 없다.  이곳 사람들은 탕약(湯藥)으로 알고 겨울에 감기가 걸렸을 때 땀을 내는 약으로 사용한다.  소위 다풍이 크게 무너진 것이다.  어찌 다법(茶法)을 논하리요.  석생(石生: :내가)이 스님(초의)의 말이 정당한 것을 알고 있는데, 차가 많이 나지만 방초(芳草)와는 다르지 않다.  무릇 수선화는 꽃중에는 신품(神品)이다.  서울의 운률을 아는 사람들은 이를 보배롭게 중히 여겼다.  그런데 저 제주도의 산중 밭이나 물가 언덕에는 수선화가 많이 자생한다.  그러므로 돌아 올 때는 새벽같이 침입하여 호미로 매는 폐단이 있다고 완당 김정희가 수선화부(水仙花賦)에서 말했다.

 

   또 산창(山窓)에 길에 자란 대나무를 애호하지 않는이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대나무가 없어 사람으로 하여금 속되게 한다.  소장공(蘇長公)을 보면 문호주(文湖州)에게 준 시에 한천의 긴 대나무는 쑥대 같이 흔해도 일찌기 큰 도끼 맞는 것 죽순만은 면했네.  헤아려 청빈한 태수직을 겨우 얻어서 재상의 천이랑 밭은 가슴속에 있네.  호주로 하여금 크게 웃게 하였으니 책장에 가득한 죽순을 꾸짖는다.  그곳 대나무는 많아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형초세시기에 이르기를 형산의 사람들은 옥을 까치에게 던진다 하였다.

 

   공자가 이르기를 기린은 성인을 위해서 난다고 하였는데, 노애공(魯哀公)께서 서쪽을 순행하실 때 기린을 잡았는데 공자가 춘추를 집필하다가 획린(獲麟)에 이르러 붓을 놓았다.  급기야 창려가 획린해도(獲麟解道)를 찬했는데 기린은 신령스럽고 소소(昭昭)하여 성인과 같다.  반드시 알리라 기린의 과보가 상서롭지 아니하다는 것이 아님을 그러나 지금은 아비주(阿非洲)의 사슴 중에는 기린을 닮은 것이 매우 많아서 곰과 돼지 개와 양이 서로 다르지 않아 진짜와 같다.  누가 능히 판단 하리요.  다풍이 크게 무너진 후에 덧붙여 논하니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해제

    석전영호선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 조사리에서 경오년(1870) 8월 18일에 태어났다.  19살에 위봉사(威鳳寺)의 금산화상(錦山和尙)께 의지해서 출가 하였다.  그후 전국의 명찰을 다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는데 이 글은 아마도 지리산을 종주하는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서 지은 글이 아닌가 싶다.  옥보대는 칠불선원 위에 있다.  이곳에 차나무가 많이 있었고 또 칠불암의 스님들이 차를 즐겨 마셨는데 그 법도가 자못 그릇쳐 있는 것을 보고 다풍(茶風)이 크게 무너졌음을 한탄하는 글이다.  지리산 화개동은 우리나라 차산지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인데, 인근 주민들이 차를 마시는 풍속은 탕약(湯藥) 정도로 알고 있으니 다법(茶法)을 논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농정신편    안종수편

    차는 잎파리가 아름답다 일찍 딴 것을 다(茶)라 하고 늦게 딴 것을 명(茗)이라고 한다.  차를 딸 때 아직 잎이 펴지지 않은 것은 만다(挽茶:분말차)를 만들어 점다(點茶)에 쓰고 잎이 이미 펴진 것은 전다(煎茶:잎파리차)로 쓴다.  또 우전다(雨前茶) 우후다(雨後茶)라는 이름이 있는데 곡우(穀雨) 날 전과후에 딴 것을 말한다.

   청명(淸明) 전에 딴 것은 상품이다. 

무릇 일찍 딴 것을 상품 늦은 것은 하품이다.  그러므로 늙은 차와 늦은 차는 그 잎파리가 크게 펴진 하품이다. 

 

   또 수간다(水竿茶) 추차(추茶)의 이름이 있는데 수간다는 우수(雨水) 때에 딴 차이고 추색다(추色茶)는 즉 곡우전의 차이다.

대개 색깔이 선명하고 아름답고 싹이 섬세하고 작은 차는 상품으로서 일찍 딴 것은 귀중하게 여긴다.  토질의 성품이 지나지치게 따뜻하면 향기가 매우 강렬하고 그 맛이 아름답지 못하다.  지나치게 한랭하면 그 맛은 비록 후덕하나 향기는 심히 좋지 못하다.  오직 정묘하게 배양하면 상품을 얻을수 있는데 퇴비와 인분이 가장 좋다.  차의 성품은 산의 북쪽 나무 그늘이나 북풍이 상쾌하게 부는 곳을 좋아 한다.  그리고 가장 싫어 하는 것은 습기가 늪처럼 넘치는 곳이다.  9월하순경 늙은 차나무의 열매가 껍질이 막 벗어지려고 할 때 따서 종자로 하다.  거둔 것은 꺼적가마니에 포장해서 습기가 있는 땅에 매장하고 그 위에는 풀무더기로 덮어서 한기가 스미지 못하도록 한다.  따뜻한 물이나 쌀 뜨물을 때때로 주면 정월하순 춘분(春分) 때에는 종자의 배꼽에서 싹이 나온다.  그러나 옮겨 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모종을 한다. 

 

   붉고 검은 흙 모래 돌 땅을 막론하고 깊이 두자, 넓이가 두자 여섯, 일곱치로 땅을 파서 기와를 그 밑에 깔고 기름진 흙 20톤,  참깨묵 8말, 마른 멸치가루 8말, 쌀겨 8말을 흙과 섞어서 메꾼다.  차싹 30여 알씩을 줄지어서 나누어 심는 데 매 도랑은 석자 대여섯치 씩을 서로 떼어 놓는다.  오줌재 약간과 흙을 섞어서 한치 가량 덮고 또 쌀겨를 세치쯤 덮는다.

 

   새, 까치, 꿩, 솔개의 성미가 차 종자를 좋아하니 장대를 세워 새 그물을 쳐서 막는 것이 좋다.  때때로 쌀 뜨물이나 혹은 장류수(長流水:물 뿌리개)를 주되 그 해와 이듬해에는 내버려 둔다.  삼년째 이른 봄에는 뿌리 주변의 흙을 호미질하여 덩어리지지 않도록 하고 똥물을 대어 준다.  무릇 차나무는 키가 작고 옆으로 넓게 퍼진 것을 귀하게 여기므로 가장 긴 가지는 잘라 버린다.  가뭄을 타는 기름진 논에 차를 심으면 능히 상품을 만들 수 있다.  무릇 차를 기르는 사람은 잡초를 제거하는 데 힘쓰고 뿌리 근처를 깊게 갈고 겨울에는 마구간 두엄과 혹은 인분 마분(馬糞)을 주며 마른 잎과 거미줄을 거둬준다.  겨울에는 뿌리 근처에 퇴비를 묻어 주고 춘분 때에는 물을 충분히 대어 주면 색깔이 곱고 향기로우며 맛 또한 매우 좋다.  구월하순에는 대나무로 시렁을 만들고 그 위에 꺼적을 덮어 서리와 눈을 엄히 방비한다.  겨울에 덮지 못해서 추위를 맞으면 상품 차도 변하여 하품이 된다.  잎을 따기 30일 전에 색부분(色附糞:찻잎 비료)이라는 수분(水糞:물비료)을 주면 그 효과는 매우 좋다.  묵은 나무에서 반듯이 상품차가 나며 이 삼십년 이하의 나무는 겨울 동안 숙분(熟糞:잘 썩은 분)을 만들어 뿌리 근처에 짙게 많이 주고 흙을 덮는다.  2월8일에 또 이와같이 북돋아 주면 차의 맛은 좋아진다.

 

차 만드는 법

 

만다(挽茶)의 제법

   증제(蒸製)와 자제(煮製)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증제는 새잎의 극히 어린 것으로만 만들고 자제는 새잎이 조금 살찐 것으로 만든다.

증제법은 큰 가마솥에 물을 6분쯤 허락하게 붓고 짚으로 솥 입에 둥그렇게 둘러 그 위에 시루를 얹어 놓고 찻 잎을 시루 속에 넣는다.  너무 강한 불로 때면 끓는 물의 뜨거운 기운이 위로 올라와 찻 잎이 모두 오그라 들므로 젖가락에 달라 붙는 정도로 하며 지나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찐 찻잎을 대나무 발에 옮겨 식힌 뒤 조금 있다가 강한 불로 홍상(烘箱:불을 넣어 차를 말리는 기구. 홍상은 두꺼운 종이 두장을 풀로 붙인 상자이다.  화로의 깊이는 한자 여덟치 밑 바닥에 재를 서너치 깔고 그 위에 숯불을 너댓치 얹는다.  볏짚을 덮어 태워서 완만한 불기운이 대나무 발에 베푼다.  화로 위에는 홍상을 놓고 발에는 찻잎을 펴 널어 놓고 홍상 속에는 한겹을 펴 놓는다.)에서 불에 쬐어 말린다.  두 갈래의 죽비(竹비:차를 젓는 기구 죽비는 길이가 한자 두치 그 반을 구불려서 여섯치로 하고 그 끝에 노끈으로 엮어 넓게 벌린다.)로 가볍게 저어 잎이 찌져서 어지럽게 남는 일이 없도록 하고 습기가 없어진 정도로 하여 약한 불(文火)로 말리는 홍상(약한 불로 말리는 홍상은 손을 대면 미열을 느낀다.  강한 불(火)로 말리는 홍상은 오래될수록 그 열기를 감당하지 못한다)에 옮긴다.  또 죽비로 저어서 따뜻한 기운이 없어지면 얼레미로 쳐 내려서 갑을(甲乙)을 정하는데 가장 가는 것을 상품으로 열돈 중을 한 봉지로 한다.  그 다음 것도 각기 차이가 있다.

 

자제법(煮製法)은 대광주리에 반량을 담아 가마솥의 끓는 물속에 넣고 대젓가락으로 저어서 찻잎이 대젓가락에 늘러 붙는 정도가 되면 맑은 물에 옮겨서 식힌다.  잠간 건조 시킨 후에 홍상에 넣어 적당한 불 기운으로 배건 하는데(배건 방법은 증제법과 동일하다)다만 증제에는 나쁜 것을 제거하는 방법이 있는데 찻잎이 지나치게 크면 몇가지 나쁜 점이 있다.  만약에 맛이 쓰고 떫으면 끓는 물에다 석회즙(石灰汁)을 조금 섞고 또 향기가 좋지 않으면 이른 벼의 볏짚 잿물을 섞고 또 색깔이 나쁜 것은 귤 껍질과 잿물을 섞으면 푸른 색이 살아난다.  모름지기 차를 만드는 탕수가 아주 뜨겁지 않으면 색깔이 추하고 맛 역시 아름답지 않다.

 

전다제법(煎茶製法)은 웃잎과 아랫잎을 나누어 자제법과 같이 맑은 물에 식혀서 띠풀 자리에 펴 널어 햇볕에 말린다.  습기가 없어지면 홍상에 넣어 강한 불로 배건한다.  거친 가루는 체로쳐 내어 이것을 상품의 전다로 한다.  또 그중에서 하품은 잿물을 섞은 뜨거운 탕수에 삶아 갈 자리에 펴 널어서 말린다.  매 육십전 만큼을 봉해 한포대로 한다.

 

당다제법(唐茶製法)은 만다(挽茶) 제법과 차이가 없다.  다만 부뚜막 모양이 앞은 낮고 뒤는 높으나, 넓적한 솥을 안치하고 약한 불로 솥 안에 생찻잎을 넣어 볶는다.  손으로 저으면 찻잎이 오그라 드는데 연약한 정도로 하여 왕골 자리에 옮겨 잎이 부서지지 않도록 서서히 부드럽게 비벼 준다.  또 솥에 넣어서 이와같이 일곱 여덟 번 한다.  이미 부스러질 만큼 말랐으면 너댓번으로 그쳐도 무방하다.  이는 약한불로 여러번 볶았기 때문에 그 맛은 삼품이 된다.

 

   또한 산다(山茶:동백) 다매(茶梅:애기동백) 구기(拘杞) 오가피(五加皮) 뽕() 닥()등을 삶아서 차를 만드는데 흉황(凶荒)과 굶주린 사람을 구제한다.

높은 산 큰 재 궁벽한 골짜기 중에 높은 곳은 차를 심기에 가장 알맞다.

차라고 하는 것은 안개와 이슬을 많이 받을수록 그 맛이 좋아진다.  심은 땅의 성질이 기름지면 차나무는 더욱 장대하고 그 잎은 두껍고 크다.

차는 천연생(야생차)이 지극히 좋은데 높은 산이나 위험한 재에 있어 따기가 용이하지 않다 이것을 암다(巖茶)의 종류라고 이름한다.

 

   찻잎은 의당 이른 새벽 이슬이 올랐을 때 따야 하며 안개와 이슬의 인온한 기운을 머금는다.  땅의 기운이 위로 올라 올때는 그 잎에 정화(精화)가 충익(充익)하므로 맛이 짙고 향기가 아름답다.

찻잎을 잘 살펴 그 반은 말리고 반은 펴진(즉 일창일기) 것으로 잎의 등에 흰털이 나 있고 잎의 안쪽 색깔은 푸른 구슬빛과 같은 것이 최고로 좋다.  반은 말리고 반은 펴진 것을 딴 것은 혈기 왕성한 청장년에 비유 된다.

찻잎은 세 번 발아가 되는데 처음은 곡우 때이고 둘째는 황매 때이고 세 번은 볏꽃 필때이다.  다만 처음 딸 때 지나치게 따면 안된다.  두 번째 발아에 지장을 줄까 두렵다.  두 번째 역시 이를 본받는다.

 

 

녹차 만드는 법

    쇠솥에 불 기운을 약하게 해서 찻잎을 두었다가 손으로 저으면서 연하게 볶는다.  때로 가려내고 비벼서 대략 한덩어리가 되면 다른 솥에 옮긴다.  다른 솥 역시 미열(微熱)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이미 한 덩어리가 된 잎은 손으로 들어 펴서 또 비빈다.  잎이 말려지면 다시 먼저번의 솥으로 옮겨 가려내 비빈다.  이렇게 해서 잎이 다 건조되면 이것을 모다(募茶)라고 한다.  크고 작은 얼레미 열 두 개를 준비하여 처음 것은 체로 쳐 그 가지와 줄기를 골라내고 다음 것은 이호체로 체쳐 내어 그 체에 남은 차는 가장 큰 체의 그릇에 넣어 둔다.  이를 두사모다(頭篩毛茶))라고 한다.  삼호체 이하는 모두 차례로 바꾸어 옮긴다.  이미 12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매 등급마다 풍차(風車)에 넣어 바람이 통하도록 한 후 십분 선별하여 가마 솥에 넣어 볶는다

첫 번째 볶음을 마광(磨光)이라고 하고 두 번째 볶음을 작색(作色)이라고 하며 세 번째 볶음을 복화(覆火)라고 한다.  그 빛깔이 가지런 하지 않으면 상자에 포장하여 내다가 팔아 버린다.

 

 

해제(解題)

   이 책은 기정(起정) 안종수(安宗洙)가 1881년에 신사유람단의 일원이 되어 일본에 갔다가 돌아올 때 일본에서 농서(農書) 약간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약 5개월 걸려 편찬하여 펴낸 책이다.  편자 안종수는 조선 말기의 문신(文臣)으로 신진문물을 받아 들이는데 공이 큰 사람이다.  그러나 갑신정변 당신 개화당의 일당으로 몰려 충청도 해미현(海美縣)으로 귀양갔다.

   이 책은 개화기에 새로운 농업진흥책의 일환으로 활용 되었으며 차에 대한 항목은 우리나라의 전총적인 방법이 아닌 일본식의 제다 방법과 재배법이라고 할수 있다.



                           - 네이버 블로그 < 炫爐의 블로그 > 마운틴 님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