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추산 송천 들꽃다회 - 넷(完)

2014. 7. 29. 01:43들꽃다회







       노추산 송천 들꽃다회 - 넷(完)


                 / 20140717~20 목~일요일, 맑음, 맑음, 흐림&소나기, 맑음




   ******* 산에 자주 다니시는 분들은 노추산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여겨지나

              여러분들께서 노추산에 대한 위치를 물어오셔서 아래에 전자망 파도타기에서 낚은

              소개글과 등반안내지도 중 대표적인 것을 간추려 올렸습니다.          ******* 



              


     노추산 소개글


     강원도 정선군 북면과 강릉시 왕산면의 경계에 솟은 노추산(1,322m)은 강원도 산골 중에서도 산골 깊숙이 자리한 산으로 조상의 얼이 배여 있는 유서 깊은 산이기도 하다. 즉 신라시대에는 의상(義湘)대사가 노추산에 입산수도하면서 화엄종을 이룩하였으며, 그 후 저 유명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 태어난 설총(薛聰)이 노추산에 들어와서 수도하면서 이두(吏讀)를 창안하였고, 그리고 그는 공자와 맹자를 기리기 위해 공자의 조국인 노(魯)나라와 맹자의 고향인 추(鄒)나라의 이름을 따서 노추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율곡(栗谷)이이 역시 노추산에 입산하여 학문과 심신을 단련하여 후에 구도장원(九度壯元)을 이룩하였다. 노추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 발왕산(1,458), 서쪽으로 가리왕산(1,560m), 동쪽으로는 석병산(1,055m)등 1천m급 준봉들이 펼쳐져 있으며,수많은 바위덩이로 쌓아올린 석총을 연상하게 하는 노추산은 거대한 육산인 가리왕산, 둥그스름한 억새의 산인 민둥산과 함께 정선을 대표하는 3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노추산 정상(1,322m)은 아리랑봉(1,342m) 보다 조금 낮지만 여러 가지 지형적인 조건에 따라 정상의 구실을 하고 있다. 마치 주흘산 정상이 영봉보다 조금 낮지만 주봉이 되어 있는 것과 같다.

 

     노추산은 대기리에서 조고봉(1,189m 일명 작은 노추산)이나 늘막골 구절리에서 사달골이나 대성사를 거쳐 오르는 네 가지 코스가 있다.이중 구절리에서 산판길을 따라 대성사(현재 조주선원)∼ 이성대∼ 정상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이산의 들머리인 구절리(九切里)라는 지명은 마을 앞 송천의 냇물이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굽이쳐 흐르고, 아우라지삼거리에서 구절리에 이르기까지 길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곳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에는 무장공비들이 이 구절리에 숨어들어 13명이 구절리에서 사살되었을 정도로 첩첩산중이다. 그래서 철길이고, 도로가 모두 구절리에서 끝나므로 육지의 끝이라 하기도 한다. 노추산은 정선의 두위봉(1,465.8m)처럼 과거 대단위 석탄 산지였던 곳이어서 석탄산업이 흥성하던 1960~ 70년대에는 구절리에 500여 세대 3,000여명의 인구가 붐볐으나 지금은 석탄합리화조치로 폐광이 되고, 주민도 격감하여 400여명에 불과한 한적한 마을로 전락하였다. 이제는 탄광이 있었던 시절의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이 정돈된 산골마을로 변모해 고랭지 채소와 감자, 옥수수 등의 농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레일바이크가 개발되면서 이 깊은 산골에 카페가 들어서는 등 색다른 관광 붐이 조성되고 있다.

 

    노추산은 산 곳곳에 너덜지대가 산재하여 있기에 '이성의 석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암위에서나 너덜지대의 경치가 빼어나고 조망이 뛰어나며 겨울에는 눈이 쌓인 풍경이 일품이어서 겨울 산행지로도 손꼽히는 산이다.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준봉들이 도열해 있고 옥계앞바다가 훤하게 내려보인다. 이성대 사당은 50년 전 강릉사람 박남현씨가 이곳이 설총과 율곡이 수학했던 곳임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노추산 부근에는 율곡과 관련된 지명이 몇 개 남아 있다. '율목치'(밤나무고개)라든가,'동초밭'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밤나무재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북면 구절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율곡이 노추산에 와서 공부할 때 이 고개에 밤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고, 동초는 송천계곡 대기리 논에서 나는 미나리처럼 생긴 풀로서 율곡이 이 나물을 뜯어다 먹은 것으로 전해오는데 다른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그리고 노추산 산행 들머리의 하나인 종량동에서 송천을 따라 북쪽으로 2km 정도 더 올라가면 지금도 동초밭이란 지명이 살아 있다. 이 산의 서쪽 계곡을 이루는 수계(水系)는 대관령 부근에서 발원하며 송천계곡으로 흘러들며. 노추산을 감싸고 도는 송천계곡에는 괴리, 어름치, 꺽지, 메기 등이 많이 잡히며 수달도 서식하고 있고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노추산 등산로는 크게 보아 종량동 코스(종량동 - 서릉 - 정상), 사자목 코스 (이성대 - 샘터 - 사자목), 그리고 법보선원(구.대승사) - 이성대 간의 절골 코스가 있다. 과거엔 이중 절골 코스와 사자목 코스를 연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얼마 전 종량동 코스가 완전히 정비되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절골 코스의 출발점은 구절본동과 종량동 사이의 작은 마을인 절골이며, 구절교를 지나 1km 정도 송천을 따라 북상하면 절골 입구가 나타난다. 절골 길로 접어 들어 1.5km쯤 올라가면 법보선원(조주선원)이 나오며, 조주선원 옆의 광산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폐광터에 이른다. 도로는 이 폐광터 밑에서 끝나고, 도로 끝의 공터에 선 전봇대 옆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소로로 들어서서 10분쯤 올라가면 계곡이 두 가닥으로 나뉘는 곳에 다다른다. 이성대는 이중 오른쪽 계곡으로 난 길을 택해야 한다. 물줄기 바로 옆을 따라 길이 이어지며, 나중에는 급경사의 좁은 협곡을 따르게 된다. 겨울에는 얼음이 끼어 곳곳에 미끄로운 빙판이 져 있기 쉬우므로 아이젠은 필수다. 숨이 턱에 닿는 협곡 길을 오르다가 해발 1,050m 정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작은 너덜을 가로지르는데, 여기서는 족적이 희미해지므로 유의한다. 이 작은 너덜에 뒤이어서 계단길이 나타나며, 이 급경사 돌계단길을 따라 30분쯤 오르면 이성대다. 이성대에서 사자목 하산길은 동쪽, 이성대를 떠나 너덜지대를 두 군데 가로지르면 거목들이 선 부드러운 사면으로 길이 이어진다. 중간의 샘터를 지나 지능선으로 접어들어서 이윽고 임도로 내려서기까지 길은 시골아낙처럼 순하다. 이후 다소 지루한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면 조주선원 갈림길목인 사자목이 나온다. 사자목에서 구불구불한 임도를 따라 1시간쯤 걸으면 양지마을 도로변이다.



                                       - 다음 블로그 <건셀> -건강한 셀프...... 산사랑님의 글 중에서






       노추산 등산지도


       • 강원도 정선군 북면 구절리,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노추산(魯鄒山 1,322m)은 심신산골의 산이지만 설총,율곡등 위인의 혼이 서린 명산이다. 수많은 바위덩이로 쌓아올린 석총을 연상케 하는 산으로 가리왕산, 민둥산과 함께 정선을 대표하는 3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노추산이라는 이름도 설총이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의 맹자를 기려 지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정상 밑에는 두 성인을 기리는 이성대라는 수도처가 자리하여 산악인의 휴식처도 겸하고 있다. 산 곳곳에 너덜지대가 산재하여 있기에 '이성의 석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암위에서나 너덜지대의 경치가 빼어나고 조망이 뛰어나며 겨울에는 눈이 쌓인 풍경이 일품이어서 겨울 산행지로도 손꼽히는 산이다.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준봉들이 도열해 있고 옥계앞바다가 훤하게 내려보인다 . 이성대 사당은 50년 전 강릉사람 박남현씨가 이곳이 설총과 율곡이 수학했던 곳임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노추산 부근에는 율곡과 관련된 지명이 몇개 남아 있다. '율목치'(밤나무고개)라든가,'동초밭'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밤나무재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북면 구절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다. 율곡이 노추산에 와서 공부할 때 이 고개에 밤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노추산을 감싸고 도는 송천계곡에는 괴리 어름치 꺽지 메기 등이 많이 잡히며 수달도 서식하고 있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절골 코스


    출발점은 구절본동과 종량동 사이의 작은 마을인 절골이다. 절골 길로 접어 들어 1.5km쯤 올라가면 법도선원이 나오며, 법도선원 옆의 광산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폐광터에 이른다. 도로는 이 폐광터 밑에서 끝나고, 도로 끝의 공터에 선 전봇대 옆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소로로 들어서서 10분쯤 올라가면 계곡이 두 가닥으로 나뉘는 곳에 다다른다.

    이성대는 이중 오른쪽 계곡으로 난 길을 택해야 한다. 물줄기 바로 옆을 따라 길이 이어지며, 나중에는 급경사의 좁은 협곡을 따르게 된다. 협곡 길을 오르다가 해발 1,050m 정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작은 너덜을 가로지르는데, 여기서는 족적이 희미해지므로 유의한다.

    이 작은 너덜에 뒤이어서 계단길이 나타나며, 이 급경사 돌계단길을 따라 30분쯤 오르면 이성대다. 이성대는 아래층은 작은 방 3개로 꾸며져 있고, 2층은 설총과 율곡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40~50년쯤 전 강릉의 박남현이란 사람이 설총, 율곡이 수학한 곳임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으로, 수행자들이 늘 기거한다. 집 옆에는 샘이 있다.

    이성대에서 사자목 하산길은 동쪽, 이성대를 떠나 너덜겅을 두군데 가로지르면 거목들이 선 부드러운 사면으로 길이 이어진다. 중간의 샘터를 지나 지능선으로 접어들어서 이윽고 임도로 내려서기까지 길은 시골아낙처럼 순하다. 이후 다소 지루한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면 법도선원 갈림길목인 사자목이 나온다. 사자목에서 구불구불한 임도를 따라 1시간쯤 걸으면 양지마을 도로변이다.




종량동 코스


   계곡에 난 돌투성이 옛광산길로 시작된다. 정선군에서 등산로를 개설하며 안내판도 곳곳에 설치해 두었다. 반듯하게 칸을 지어 다듬어 놓은 폐광산의 검은색 비탈 오른쪽에 능선으로 붙는 길을 새로이 개설했다. 노추산 서릉상의 955m봉 동쪽 안부로 길을 이어두었다. 종량동 입구를 출발, 이곳까지 1시간 30분쯤 걸린다.

    노란 리번이 달린 능선길에는 아름드리 노송들이 묵묵히 서 있다. 검은 바위 능선지대부터 풍광은 점입가경이 된다. 양쪽이 급경사인 암릉 바로 위, 혹은 암릉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조심스레 우회도 하면서 2시간쯤 걸으면 좁고 주변에 잡목에 가려진 1,335m봉 정상에 다다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30분쯤 가면 나오는 1,342m봉 정상의 헬기장을 지나 동쪽 약 200m 지점에서는 조심한다. 앞이 갑자기 절벽으로 끊어지면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절벽 끝에서 30m쯤 되돌아서서 왼쪽 아래 계곡쪽으로 푹 꺼지듯 하며 우회로가 나 있다. 이후 순한 능선을 따라 500m쯤 곧장 가면 이윽고 노추산 정상 직전의 사거리 길목이다. 정상은 이곳에서 약 100m 거리다.

    노추산 정상은 헬기장이 닦여 있으며 노추산이라고 쓴 문짝만한 강철판이 서 있다. 멀리 동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훌륭한 곳이다. 하산은 다시 사거리 길목으로 돌아와 남쪽의 이성대로 내려가도록 한다. 300m쯤 급비탈 길을 내려가면 삼거리 길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서쪽)으로 30m만 가면 이성대다. 

    종량동 코스로 하산은 쉽지가않다. 아직 족적이 희미한 곳이 여러 군데이고 내리막 능선은 갈래가 많아서 자칫 절벽길로 잘못 나설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절골 하산 코스는 위험하다. 워낙 급경사여서 실족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절골이나 종량동코스로 올라 완경사의 사자목 코스로 하산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걷는 거리를 짧게 잡고 싶다면 법도선원까지 차량으로 올라 절골 - 사자목 코스를 이으면 되지만, 법도선원까지 오르는 옛광산길은 요철이 심하여 사륜구동차라도 올라가기 쉽지않다.

    • 아우라지가 있는 마을인 정선군 북면 소재지 여량리로 접어드는 긴 다리인 여량1교 직전의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8km정도 북상하면 구절리에 이른다 .구절역앞을 지나 1km 더가면 도로 오른쪽에 "절골 입구 다락가든"이란 민박집과 음식점을 겸하는 집에서 30m 정도 지나서 우측 골목이 노추산의 산행의 시작점이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이 개울 옆을 따라 작은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임도가 갈려져 나간다. 이 임도로 들어선다.





※ 산행코스


• 작은 늘막골→장구목→1280봉→사달산→큰늘막골(약 3시간)
• 중동→사달산→노추산→신선대→대성사→절골(10.5km 약 4시간)

• 절골입구→대성사→능선마루→샘터→너덜지대→이성대→노추산→1342봉→노추산 정상→964봉→대성사(8.5km, 약 3~4시간)
• 절골→대성사→사자목→노추산→사달산→노추산→신선대→대성사→절골(약 4시간)
• 대기리→임도→배나드리능선→동봉→헬기장→조고봉↔헬기장→안부헬기장→늘막골 등산로→임도갈림길→주능선 삼거리→노추산↔삼거리→안부→사달산→삼거리→헬기장(1173봉)→안부→1078.2봉(삼각점)→새목재(임도)→995.6봉 분기봉→좌측능선후 우측 급사면능선→능선갈림길→동우리재 임도→능선분기봉→안부→전위봉→덕우산→사면길→임도→고냉지밭→팬션→시멘트도로→고단1리(17㎞, 약 9시간 30분)




※ 교통정보


• 서울→영동고속도로→새말I.C(국도42호)→안흥→평창→정선(3시간)
• 서울→중앙고속도로→제천→영월삼거리→미탄→정선(3시간 20분)
• 대구→중앙고속도로→영주→제천→영월삼거리→미탄→정선(4시간 30분) 
• 부산→경주→울진→동해→정선(5시간50분)
• 영동고속도로 진부IC→진부→59번 국도→나전에서 우회전→42번 국도 삼척방향→9.1km→여량→8번 군도→7.8km→구절리



                                    - 다음 티스토리 <아름다운 산하 > 꿈꾸는 멍충이님의 글 중에서 




















왜가리 배설물이 그린 바위 위에 그림








좀비비추








난티나무







까치고사리








씨앗들이 강물에 떠내려 와서 

바위 위 이끼에서 발아하여 새싹이 자람.







금강송의 반영(反影)










나무야, 나무야! 


                  /   박예분




너무 슬퍼하지마!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렴,

 

뒷목 따갑게
햇살 내리쬐는 여름날
누군가
네 그늘에 앉아
한숨 쉬어간 적 없었니?



 

박예분의 책(동시) 읽는 라디오 / 여성시대


                                                                                       


전주mbc 여성시대 <다시 듣기>
  http://jmbc.co.kr/2008/radio/?body=woman_vod&left=woman_sub




 

2003년 〈아동문예〉에와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한 저자는 전북아동문학상과 아르코 문예창작기금을 수상했으며, 

학교와 도서관·문학관 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동시집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 〈엄마의 지갑에는〉, 

동화 〈이야기 할머니〉 〈삼족오를 타고 고구려로〉, 

역사 논픽션 〈뿔난 바다〉 〈박예분 선생님의 글쓰기 교실〉 

글 잘 쓰는 반딧불이〉 , 그림책 〈검꼬의 똥침〉 등을 냈다.



 
 

‘지리산 피아골에 아기 고래가 엄마를 기다린대요. 

아기 고래는 어떻게 깊은 산골까지 가게 된 걸까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던 땅, 피아골. 

아동문학가 박예분 씨(50)가 역사의 굴곡을 견뎌내며 한이 서린 피아골에서 

아기 고래가 상상 속에서나마 엄마·아빠를 만나고, 

푸른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길 바라는 내용의 

동화 〈피아골 아기 고래〉를 냈다(꿈꾸는 꼬리연). 

저자는 이 동화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프고 슬픈 마음이 

기다림이라는 또 다른 희망이 되길 바라며 따뜻한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다. 

“2년 전 여름, 지리산 피아골 입구 낮은 계곡에 고래를 닮은 바위들을 만났습니다. 

지리산은 원래 넓은 바다였는데, 육지와 호수, 바다로 번갈아 바뀌다가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서 우리나라 땅이 모두 육지로 드러날 때, 

가장 높이 우뚝 솟았다고 전해집니다. 


피아골 아기 고래는 그때의 지각변동 때 

정말로 엄마 아빠를 잃고 바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 전북일보 기사 중에서 발췌











송천(松川)에 빠진 노추산 서북능과 구름 한 조각......













여울의 물그림자.....







돌단풍에 일찍 놀러온 가을빛......







달뿌리풀의 물그림자.....







망중한에서 얻은 소득.....


"  백로야 ! 왜가리야 !!   미안해 !!!   ........ "

























































      내리는 비는 그대를 기억하라 합니다 /윤영초

      비가 오는 날은 빗줄기 바라보며 그대 가슴을 적시는 안부를 묻고 내 가슴에 젖어드는 그리움도 비를 맞고 서 있는 나무들도 쏟아지는 빗소리를 온몸으로 듣습니다 우리는 빗속에 갇혀 있듯이 그치지 않는 빗소리를 들으며 창 밖에 내리는 비에 하염없이 젖어듭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슬퍼하는 것처럼 대신 비는 울어 주기라도 하듯 기다림도 그리움도 비가 되어 내립니다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한 생애를 지워도 좋을 만큼 사랑했던 순간을 되새김하는 행복했던 얼굴로 다가와 그대는 기억하라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대는 내게 지금처럼 변함없이 더 많이 사랑하자 합니다 Paramithi Hehasmemo / Anna Vissi
 



















♠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 

                      /   윤영초 


비가 내리면 
네가 누구냐고 묻듯이 
빗물이 똑똑 내린다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 
나목에 흐르는 숨소리 섞여 
하염없이 젖어든다



나무들이 비를 맞는 모습이 
그리움으로 스며들고 
아침에 다가오는 흔들리는 감성 
빗물에 적셔오는 너의 모습을 
각인하듯 가슴에 담아도 
빗물에 우리는 무너진다



그리움이 숨어든 찻잔에 
빗물이 내리고 
따스했던 너와의 기억들이 
커피잔 속에 담겨와 찰랑거린다


빗물 속에 숨어든 그리움은 
하릴없이 너를 기다리겠지 
비가 내리는 소리 
너의 목소리처럼 
그대 모습도 종일 흐르겠지 



 






















메마른 가슴에 서정의 바람을 일으키는 시인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황 갑 윤

 



   윤영초 시인은 각박한 세상에 사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가슴에 촉촉한 

이슬처럼 낭만과 서정을 불러일으키는 시편들을 쓰고 있다. 

   누구나 가을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고 붉게 물든 낙엽이 뒹구는 

거리에서 텅 빈 가슴이 될 때, 혹은 그리움에 가슴 저릴 때 윤영초 시인의 

시편들을 들여다보면 열렬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실연의 서걱대는 

아픔과 마주하게 되리라. 사랑이라는 주제는 삶과 문학과 예술 속에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리 많이 노래해도 지나침이 없는 테마가 

아닐 런지. 

   윤시인의 시편들에선 가슴이 홍조로 물드는 가을 서정의 진수가 

느껴진다고 하겠다.




아득히 먼 곳에서

그대가 손짓하는데

내 눈은 젖었고

우리 사이에는

짙푸른 바다가 출렁입니다


청명한 날 그리도 가깝더니

안개 낀 아침엔

향긋한 체취도

온화한 미소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동안

수많은 물길들이 열리고

붉은 심장 같은 융단을 따라

나는 당신께로 걸어갑니다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만

가득하던 내 뜨락에

어느새 햇살 한줌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대 사는 섬으로]전문



    사람은 모두가 하나의 섬이 아닐까.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들 사이에는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 속에 사랑이라는 소통의 길을 통해 외로움을 지우며 따뜻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비단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계층간, 세대간, 

도농(都農)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단절된 부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윤시인은 이 시편을 통해  붉은 융단 같은 소통의 길을 

통해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며 화합하는 삶을 살길 바라는 것이다.




언제나 높은 창공을

꿈꾸는 당신에게

나는 키 높은 나무가 되어줄게요

내 잔가지를 타고 올라가

힘차게 날개짓 하면

멀리 날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아요

당신이 만들어 놓은 둥지에는

생명의 싹이 트고 있어요

언제나 이 자리에 서서 

멋진 당신을 기다릴게요

가을이 오면

노랗고 빨간 날개를 달고

나도 높이 솟아올라

바람타고 하늘을 날아요

함께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요


                - [나무와 새] 전문


   요즘 시대에는 희생과 기다림이라는 미덕은 좀체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IMF 등의 국가 경제 위기를 겪으며 가족해체라는 사회문제가 많이 일어났다. 

힘들어도 서로 희생하고 기다릴 줄 아는 심성이 없어서 일까. 

   이 시에서는 윤시인은 높이 나는 새를 위해 기꺼이 나무가 되겠노라고 한다. 

자신을 딛고 올라가 날아오르는 새를 한자리에서 기다리는 나무의 아름다운 

희생이 가슴에 진한 울림을 준다. 또한 가을 날 낙엽으로 떨어질 때, 

즉 삶이 다하는 날 함께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자는 소망을 통해 죽음이 오기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변하기 쉬운 사랑의 본질에 대해 

체념하듯 공감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일편단심의 사랑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칭송받을 덕목이 아닐까.



함께 했던 시간은 지나갔어도

같이 걷던 길거리며

찻집 그리고 흐르던 음악은

그 모습 그대로 세월을 견디고 있다


사랑한다고 해서

같은 곳을 향해야만 했을까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픔은 없었을까


봄 햇살의 너를 생각하며

차가운 비수의 너를 지운다

딱딱한 껍질로 무장한 그 속에서

피 흘리는 상처를 보았다


먼 훗날 찬바람 부는

다만 그리워해야만 하는 자리에 서서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너의 뜨락 잎새를 흔들까나

차가운 빗줄기 되어

너의 창가에 흐를까나

   

      -[사랑이 지나고 나면]전문


   그렇게도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어찌 그것이 뜻대로만 될 것인가. 

설레고 풋풋하던 사랑도 세월이 가면 변질되고 오해들이 쌓이거나 

또 다른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이별을 맞게 된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틀에 맞추려하거나 구속하려 들기 

때문에 이별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에서 윤시인은 사랑이 지나고 난 

뒤의 추억속의 풍경들 속에서 이별의 이유를 되짚어보면서 실연의 아픔을 

느끼고 있다. 또한 먼 훗날 그리움으로 남게 될 사랑의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한 줄기 바람이나 빗줄기가 되어 추억을 그리는 마음이야말로 이별을 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절절한 감정일 것이다.




한번만 입술을 달라고

그 붉은 입술에 닿기만 하겠다고

졸라대던 살가운 바람이

무심한 바람이 되었나


뚝뚝 떨어진다

하염없이 눈물처럼 스러져

담장 밑은 핏빛으로 물들고

서러운 무덤이 되었다


한갓 지나간 일이 되었다고

고혹적인 자태에

싱그런 향기,

날카롭던 가시조차 잊을 수 있을까


해마다 유월이면

탐스런 입술 위로

이슬 송골송골 맺히던 그 새벽이

붉디붉은 사랑으로 피어난다


              -[6월 장미 지던 날]전문




    아름다운 장미가 꽃봉오리에서 활짝 피었다가 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그것은 모든 생명에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순환의 과정인 것이다. 

꽃은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사람의 일생을 통해 본다면 청춘에 해당될 것이다. 

세월에 의해 늙어가고 추해져 가고 생명이 다해 스러진다. 

그러나 죽음이 어찌 끝이라 할 수 있을까. 

꽃이 지고 다시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장미가 피어나듯 

우리의 죽음 또한 다른 생명들로 이어질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이 시에서 윤시인은 꽃은 졌지만 그 고혹의 자태와 향기 그리고 

가시조차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 인생의 과정도 향기롭고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이별의 마지막 선물은

지울 수 없는 추억들

안개처럼 흐릿하다 불현듯

가슴을 밝히는 빛이다


바람이 지난 자리마다

꽃들이 피어나고

사랑이 끝난 자리엔 추억이 빛난다


무정한 당신은 남이 되어 떠나며

어찌 내게 남은 추억마저

돌려 달라 하십니까


그리 할 수는 없습니다

잊을 수 없어 돌에 새긴다 해도

그대는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추억은

망각의 강을 건널 때까지

영원한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


      -[망각의 강을 건널 때까지]전문


    이제는 추억을 떠올릴 나이가 된 것일까. 

살아온 날들이 더해갈 수록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추억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힘들 때마다 가슴을 밝히는 빛은 지난날의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시에서 윤시인은 바람이 지난 자리에 꽃

들이 피어나고 사랑이 끝난 자리엔 추억이 빛난다고 말하고 있다. 

추억의 소중함을 아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리고 망각의 강을 건널 때까지 즉 죽는 그날까지 추억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의지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지난 윤영초 시인에게서 아직도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시편들을 통해 드러난 사랑과 그리움을 소녀처럼 가슴 속에 

꼭꼭 묻어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인 [우리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자]가 세상에 

상재되었다. 이 시집이 시를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기를 소망하며  윤영초 시인의 

문운을 빌며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




- 한국문학인협회 자료 중에서






















은판나비








   



 

나비를 읽는 법

              /박지웅




나비는 꽃이 쓴 글씨

꽃이 꽃에게 보내는 쪽지

나풀나풀 떨어지는 듯 떠오르는

아슬한 탈선의 필적

저 활자는 단 한 줄인데

나는 번번이 놓쳐버려

처음부터 읽고 다시 읽고

나비를 정독하다, 문득

문법 밖에서 율동하는 필체

나비는 아름다운 비문임을 깨닫는다

울퉁불퉁하게 때로는 결 없이

다듬다가 공중에서 지워지는 글씨

나비를 천천히 펴서 읽고 접을 때

수줍게 돋는 푸른 동사들

나비는 꽃이 읽는 글씨

육필의 경치를 기웃거릴 때

바람이 훔쳐가는 글씨



- 박지웅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문학동네 2012년 12월

 



   
 

나비는 꽃이 쓴 글씨라고 시인은 읽는다. 아니 쓴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시인은 얼마나 많은 말들을 닦고 지우고 쓰고 또 삼키고 토해내기를 수도 없이 했을 것인지. 그렇게 뭉툭해지는 펜 끝을 바라보다 팔랑팔랑 피어나는 활자들이 꽃과 꽃이 주고받는 쪽지라니. 천생 시인은 시인이다. 봄볕 따뜻한 키 작은 뒷산을 걸을 때면 나비가 길을 앞서 따라나선다. 봄으로 길을 안내해 주기라도 하듯, 조붓한 산길을 소리도 없이 이쪽으로 팔랑, 저쪽으로 팔랑 거리다 호젓이 날아가 사라져버리는 산책길이면 시 한 편 마음 가득하게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비를 놓쳐버린 시인은 처음부터 읽고 다시 읽으며 정독한다. 정독하는 그 사이가 산책하는 길과 다르지 않으리. 따뜻한 햇살 팔랑이며 사라져버린 나비를 좇아 잃어버린 길을 찾아가 본다. /이명희 시인



- 경기신문 기사 중에서





















































 

돌배나무


/손수진(2006년 가을호) 


 

언제부터 있었을까 저 사내

길게 누운 그림자 젖어있네

지난 밤 그 여자 악을 쓰며 울고 간 뒤

빈 벽에 기대어 눈물같은 소주로 병나발 불던

삐걱거리던 밤도 가고,

 

얼마나 아팠으면

제 가슴 살점 뜯어내어

길바닥에 흩뿌리고 저토록 몸부림을 쳤던걸까

팔이 부러졌네,떨어진 푸른 살점 바람이 쓸고 가네

버틸 수 없는 한계에서,사랑을 놓고 쓸어지네

 

땅에서 한번도 발을 빼본 적 없는 돌배같은 사내가

배꽃같이 웃던 색시 하나 얻어 겨우 한 철을 살더니

그 여자, 배꽃 같이 흰 살결 가진 그 여자가

천한 종자는 싫다며, 발에 흙 뭍히고 사는 것은 더욱 싫다며

셀비어 처럼 붉은 입술 옴죽거리며 앙칼지게 쏘아 붙이고 간 다음날

평생 흙에서 발 한번 빼본 적 없는 그 사내가

스스로 빼낸 흙 뭍은 발 가지런히 모로 세우고

 

그림자처럼 누워 있네
















나무는 간다 


/ (이영광)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

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

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 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 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

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

렸다

 

 

 

** 이영광: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제도리길 끝자락에 있는 송천가의 스님암굴로 내려가는 철계단


- 이곳에서 10여년간 면벽수도를 하시던 스님께서

이제는 돌집을 지으셔서 홀로 공부하고 계신다.








암벽 중간에 있는 암굴 앞에서 내려다 본 송천...












암굴 앞 절벽에 나있는 철계단


십여년간 이 암굴에서 면벽수도하시던 스님의

당부 말씀으로 암굴내부를 공개하지 못하는 점을 혜량바랍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다방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시며, 

무주상(無住相)의

보현행(普賢行)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나 

혹시라도 스님의 뜻에 어긋날까 저어하여 

상세한 소개말씀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져 합니다.









수중 바위섬에 있는 흰색 석영맥 무늬......


- 마음을 비취볼 수 있는 마음거울인 명경대(明鏡臺)는 도처에 있다.

이 또한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마음가는 대로  거울을 만들면 된다."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사방팔방에다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위하여


                                          

                                                                /    신경림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리

불어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리

잎들 더러 썩고 떨어지는 어둠 속에서

가지들 휘고 꺾이는 비바람 속에서

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손을 타고 흐르는 숨죽인 흐느낌이

어둠과 비바람까지도 삭여서 
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키운다면

너희 왜 모르랴 밝는 날 어깨와 가슴에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라는 걸

산바람 바닷바람보다도 짓궂은 이웃들의

비웃음과 발길질이 더 아프고 서러워

산비알과 바위너설에서 목 움츠린 나무들아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지어 설 나무들아





잘 자란 금강송 숲 ......







마을 어르신들의 경작지






마타리







숲의 노래( 숲의 誦歌)


              步         虛





춤추는 나무들을 보고 


바람이 거세짐을 멀리서 본다.


나뭇잎에서 모여 굵어져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에서


속진(俗塵)의 작은 알갱이들이 씻어짐을 본다.





솔바람 소리는 관음(觀音)임을 유리창 너머로 본다.


거센 바람에 나부끼다 제자리를 찾은 


나뭇가지에서 대세지(大勢至)의 지혜가


무상(無上)의 힘으로 중생들을 깨우침을 본다.





어차피 석가와 예수가 불이문(不二門)임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어차피 시작이 이복 형제간인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오늘도 삶의 터전을 찾아 천이(遷移)하고 있음을 숲이 가르쳐 주다.




여태껏 동양과 서양이 사해일가(四海一家)임을 모르고 지내온 것은


소통과 교류가 없어서라기 보다 


식물군천이(植物群遷移)와 같은 생존경쟁임을 알고나서


송무백열(松茂栢悅)이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을 숲이 가르쳐 준다.




소부(巢夫)가 맑은 윗물로 소를 몰아가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소가 더렵혀짐을 막기 위해이서고,


산새가 집을 짓기에 한 가지(一枝)만 소용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이 송천(松川)가 금강송 숲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다.







******* 송무백열(松茂栢悅) :



                            중국 송나라 때의 오매(五迈)의 시에서 취한 구절로 

                   소나무 무성하면 잣나무 기뻐한다는 으로, 

                      잘되는 것을 기뻐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송무백열(松茂柏悅)  지혜, 교훈, 한문 /  

2012/09/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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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백열(松茂柏悅)  

2011/05/11 00:10

송무백열(松茂柏悅)

서한(西漢) 시기 문인 육기(陸機)가 쓴 탄서부(嘆逝賦)에서 유래한다.

 

信松茂而柏悅(신송무이백열) :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嗟芝焚而蕙嘆(차지분이혜탄) : 지초가 불에 타면 혜초가 탄식하네

 

벗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데서

송무백열과 지분혜탄(芝焚蕙嘆)의 성어가 나왔다.

 

與隣爲善(여린위선) : 이웃과 선하게 지내고

以隣爲伴(이린위반) : 이웃과 동반자로 지낸다.

 

한나라 때 왕길(王吉)은 강직하고 학문도 뛰어난 인물입니다.

다산 정약용이 젊은 시절 병조참의로 있을 때 정조의 명령으로 지은

왕길석고사(王吉釋故事)라는 장편시는 바로 왕길의 일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이 왕길(王吉)에게는 공우(貢禹)라고 하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길이 익주라는 곳의 지방관인 자사벼슬로 부임하게 되자 공우가 자기 갓의 먼지를 털었습니다.

갓의 먼지를 터는 것은 이제 곧 자신도 벼슬길에 오르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과연 왕길의 추천으로 공우는 벼슬에 천거되어

간의대부라고 하는 요직에 있으면서 나라의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이러자 세상에서는 왕양재위 공공탄관(王陽在位 貢公彈冠) 이라는 말이 있게 되었습니다.

왕양이 벼슬에 있으니 공공이 갓을 턴다는 말입니다.

 

왕양은 왕길을 가리키고 공공은 공우를 가리킵니다.

왕길이 자리에 있자 공우가 갓의 먼지를 턴다는 이야기는

인격과 학문을 갖춘 훌륭한 인물들은 서로 이끌고 도와 준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되었습니다.

 

松茂栢悅(송무백열)의 한자적 의미

 

혼자서만은 살 수 없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가까운 이웃은 때에 따라 앙숙이 되기도 하지만, 멀리 사는 친척보다 낫다고 했다.

 

소나무 松(송)의 구성은 나무의 가지와 줄기 그리고 뿌리를 상형한 나무 목(木)과 공변될 공(公)으로 이루어졌다. 公(공)은 ‘나누다’ ‘가르다’가 본뜻인 八(팔)과 사사로울 사(?)로 되어있지만 갑골문에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입 구(口)로 새겨져 있어 본뜻은 ‘입가에 진 주름살’을 그려낸 것이었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인문적인 해석이 더해져 사람의 수(口)대로 뭔가를 나누니(八) ‘공변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松(송)의 전체적인 의미는 버릴 것 하나 없이 공변(公)되게 쓰이는 나무(木)라는 데서 ‘소나무’를 뜻하게 되었다.

우거질 茂(무)의 구성은 두 포기의 풀을 상현한 풀 초(艸)의 간략형인 초(?)와 다섯째 천간 무(戊)로 이루어졌다. 戊(무)는 부족 내의 큰 의식을 치를 때 그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장식용으로 활용했던 ‘도끼’나 ‘칼’ 모양의 무기를 말한다. 이에 따라 茂(무)는 낫이나 칼(戊)로 베어주어야 할 만큼 무성하게 자란 풀(?)이라는 데서 ‘우거지다’ ‘무성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잣나무 栢(백)은 나무 모양을 본뜬 나무 목(木)과 일백 백(百)으로 이루어졌다. 百(백)은 한 일(一)과 흰 백(白)으로 짜여 있다. 一(일)은 지사글자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白(백)은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과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서는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된 것 같다. 따라서 栢(백)은 수많은(百) 열매를 맺는 나무(木)라는 데서 ‘잣나무’나 ‘측백나무’를 뜻하게 되었다.

기쁠 悅(열)의 구성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믿은 심장을 상형한 마음 심(心)의 간략형인 심(?)과 빛날 태(兌)로 이루어졌다. 兌(태)는 여덟 팔(八)과 형 형(兄)로 구성되었다. 입(口)을 강조한 사람(?)인 형은 아우를 말로써 타이르거나 또는 형제를 대표해 조상신(示)에게 축문을 아뢰는 사람(兄)이다(祝). 그런데 여기서 兌(태)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말하며 웃을 때 입(口)가에 지는 주름(八)을 나타낸 것으로, 특히 신에게 간절히 소원한 기도가 통했을 때 기뻐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따라서 悅(열)의 전체적인 의미는 마음(?)으로 간절히 소망했던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입가에 주름을 지으며 환하게 웃는(兌) 데서 ‘기쁘다’ ‘즐거워하다’의 뜻이 생겨났다.

 

松茂栢悅이란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지만, 진정 이웃이 잘되어야 더불어 나도 잘 될 수 있음을 가슴에 새긴다.

-   네이버 블로그 < 남도사랑 > 남도사랑 님의 글 중에서  전재.........







산박하와 마타리(노란 꽃)








큰뱀무








나흘을 지낸 숙소의 벽 장식....






喜而歌曰

我生世兮風波惡如 志乎養生捨汝而何求

我携爾飮爾從我游 花朝月暮樂且無睪夂 

傍有天君懼然戒曰

生者死之本死者生之根

單治內而外凋嵇著論而蹈艱

曷若泛虛舟於智水樹嘉穀於仁山

神動氣而入妙 樂不圖而自至

是亦吾心之茶 又何必求乎彼也


 

  기뻐서 노래하기를, 내가 세상에 나니 풍파는 모질고, 

양생에 뜻을 두니 너를 버리고 무엇을 구하랴. 

나는 너를 지니고 너를 마시면서 거리낌이 없으며, 

나는 꽃 피는 아침과 달뜨는 밤에 노닐기를 좋아하고 

또한 싫어하지 않노라.


  곁에 천제가 있어 두려워하면서 경계하여 이르기를, 

삶은 죽음의 근본이요, 죽음은 삶의 뿌리이니, 

단순히 마음만 다스리고 육체를 소홀하면 

혜강이 양생론을 짓고 실천하기 어려웠으니, 

찌 빈 배를 지혜로운 사람이 좋아하는 물에 띄우고, 

맛 좋은 곡식을 어진 사람이 좋아하는 산(仁者樂山)에 

심는 것과 같으리오. 


   영혼이 마음을 움직여서 신묘한 즐거움에 드는 것이 

의도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게 되니, 

이 또한 내 마음의 차요, 또 하필 저것에서만 구하리오. 


                  - 한재 이목의 다부병서(寒齋 李穆  茶 賦 幷 書) 중에서






  ******* 이번 노추산 들꽃다회에서 틈틈히 모닥불에서 달인 차와


          등산용 휘발유 버너에서 끓인물로 차를 우려 마셨으나,


          어쩌다 보니 찻자리를 찍은 사진들은 한장도 없다.



              한재 이목(寒齋 李穆)선생님의 <다부(茶賦)>의 마지막 구절인


          내 마음의 차라는 뜻의 오심지차(吾心之茶)의 경지를 알지는 못하나 


         그 "내 마음의 차" 라는 구절을 안으로 되새기며 글을 마친다.


          

             장황스러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