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0. 13:20ㆍ글씨쓰기
<남쪽 말 북쪽 말> 이대성(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아래 문장은 무슨 뜻일까?
아주 짧은 어구이지만 그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어떻게 띄어 쓰느냐에 따라 일곱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① 오늘밤 나무사 온다.(今夜 羅武士 來) ② 오늘밤 나무 사 온다.(今夜 買木 來) ③ 오늘밤 나 무 사 온다.(今夜 我 買大根 來) ④ 오늘 밤나무 사 온다.(今日 買栗木 來) ⑤ 오늘 밤 나무 사 온다.(今日 買栗與木 來) ⑥ 오, 늘 밤나무 사 온다.(噫, 常 買栗木 來) ⑦ 오, 늘 밤 나무 사 온다.(噫, 常 買栗與木 來)1) 조금 억지스러운 점도 없지 않지만, 띄어쓰기의 필요성을 아주 잘 보여 주는 예라 할 만하다. 아주 짧은 문장도 어떻게 띄어 쓰느냐에 따라 그 뜻이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전달될 수 있으므로 글쓰기에서 띄어쓰기는 매우 중요하다. 같은 사회 안에서도 이러할진대 서로 떨어져 살아온 남북이 글로 생각을 주고받는 경우라면 띄어쓰기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의 띄어쓰기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한다. 통일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하나둘씩 다듬어 나가야 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부터는 남과 북의 띄어쓰기 규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요즘엔 북녘에서 나온 저작물을 예전에 비해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언뜻 보아도 남녘의 띄어쓰기2)와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남녘에서는 북녘에 비해 잘게 띄어 쓰는 편이다.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쓴다는 원칙은 남북이 같지만, “우리 스스로”와 같이 남녘에서는 띄어 쓰는 것을 북녘에서는 “우리스스로”와 같이 붙여 쓰는 일이 많다. 북녘에서는 “먹을것이 없다”, “가고있다”처럼 의존명사나 보조용언을 앞말에 붙여 쓰는데, 이 또한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남녘의 표기법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이처럼 남북의 띄어쓰기는 작지 않은 차이를 드러내는바, 남북의 띄어쓰기 규범을 비교하여 둘의 차이를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남녘의 띄어쓰기 규범은 <한글맞춤법>의 일부로 비교적 간략하게 실려 있는 반면, 북녘의 띄어쓰기 규범은 <조선말맞춤법>과는 별도로 세워져 있으며 그 내용이 매우 많아서, 남북의 띄어쓰기 규범을 조항별로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좀 더 포괄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남녘의 규정을 먼저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북녘의 세부 조항들을 함께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띄어쓰기의 일반 원칙과 의존명사의 띄어쓰기를 주로 다룬다.
단어는 일정한 뜻을 지니면서 문장 안에서 독립적으로 쓰일 수 있는 언어 단위이다. ‘최소자립형식’을 단어라 하는 이들도 있다.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든, 자립성과 독립성을 지닌 최소의 단위인 것만은 분명하므로 이를 기준으로 띄어 쓰기로 한 것은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것이 오히려 말뜻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때가 있다. 위 조항이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쓴다.”가 아니고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인 것은 예외적으로 각 단어를 붙여 쓰는 경우도 있음을 밝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어별로 띄어 쓴다는 원칙은 남북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예외가 있음을 명시적으로 기술한 점이 다른데, 앞으로 살펴볼 내용은 바로 붙여 쓰도록 규정된 이 ‘특수한 어휘 부류들’이다.
남북 모두 조사는 앞말에 붙여 쓰도록 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같은 내용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다. ‘품사(品詞)’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단어의 부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어사전에서 어떤 말이 ‘명사’니 ‘동사’니 표시되어 있으면 이는 곧 한 단어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이런 품사의 종류가 남녘에서는 모두 9개이다.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부사, 관형사, 감탄사, 조사’가 그것이다. 즉, 남녘에서는 ‘조사’를 단어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쓴다’는 원칙을 따르면 ‘꽃 이, 꽃 마저’와 같이 띄어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조사는 여느 단어와는 달리 자립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띄어 쓰는 것은 일반 언중들의 언어 의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조사는 단어이지만 예외적으로 붙여 쓴다는 조항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남녘의 <한글맞춤법 제41항>의 취지이다. 한편, 북녘에서는 조사와 어미를 아울러 ‘토’라고 한다.
위의 사전 풀이에서 보듯, 북녘에서는 조사는 체언에 붙고, 어미는 어간에 붙는다는 점에서 다를 뿐, 본질적으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기 위해 어근에 덧붙는 요소라는 점에서는 같으므로 ‘토’로 묶어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북녘에서 조사, 즉 ‘체언에 붙는 토’를 붙여 쓰는 것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점에서 남녘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명사 가운데 문장에서 반드시 수식어가 필요한 명사를 의존명사라 한다. ‘것이 힘이다, 수 있다, 만큼 먹어라’와 같은 문장이 성립할 수 없는 까닭은 ‘것, 수, 만큼’ 따위가 의존명사인데 그 앞에 수식어가 없기 때문이다. 의존명사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앞말에 붙여 쓰는 이가 많다. 게다가 1음절로 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언뜻 보기에는 조사나 어미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많은 것도 잘못 붙여 쓰는 일이 많은 이유이다. 그러나 명사로 다루어지는 이상 한 단어로 보아 띄어 쓰도록 한 것이 <한글맞춤법>의 취지이다. 또한 조사와 형태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의존명사들이 몇 있는데, 이럴 때에는 띄어쓰기가 그 둘을 구분하는 데 효과적이다.
위의 예는 붙여 쓰는 접미사 ‘-들’은 그것이 붙은 말이 복수임을 나타내지만, 띄어 쓰는 의존명사 ‘들’은 두 개 이상의 사물을 열거하는 구조에서 ‘그런 따위’의 뜻을 나타낸다. 만약 ‘쌀, 보리, 콩, 조, 기장들을’이라고 쓰게 되면, ‘기장’만 복수가 되는 셈이니 ‘들’을 어떻게 띄어 쓰느냐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여 <한글맞춤법>에서는 의존명사를 띄어 쓰도록 한 것이다.
북녘에서는 의존명사를 불완전명사라 하는데, 위 조항을 보면 대체로 붙여 쓰는 것이 원칙임을 알 수 있다. ‘의존명사’와 ‘불완전명사’에 대한 사전 풀이를 보면 어째서 남에서는 띄어 쓰고, 북에서는 붙여 쓰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위 풀이를 보면, ‘의존명사’는 명사의 일반적인 특성을 갖추었으되 ‘자립명사’와 달리 다른 말 아래에 기대어 쓰여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용어이지만, ‘불완전명사’는 명사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명사의 일반적인 특성을 갖추지 못하여 부족한 점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즉, 남북이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띄어쓰기에도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 조항에서 예시된 말들은 불완전명사와 뒤붙이(또는 뒤붙이적 단어)가 섞여 있다.4) 북녘에서야 어차피 붙여 쓰니까 상관이 없지만, 남녘에서는 전자는 띄고 후자는 붙이므로 이 둘은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위 조항에서 보인 예들을 남녘의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띄어 써야 할 것과 붙여 써야 할 것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이런 차이들 하나하나가 앞으로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해 가면서 통일해야 할 것들이다.
위 조항에서 예시된 명사들은 1음절어가 대부분이고 의존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붙여 쓰도록 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말대사전>에서도 명사로 명시해 놓은 것마저 붙여 쓰도록 한 것은 너무 과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시간이나 공간을 나타내는 한자어 명사들, 예를 들면 ‘내, 외, 전, 후, 시, 상, 중, 하’ 등도 붙여 쓰도록 규정한 것과 보조를 맞춘 것으로 보이나, ‘안, 밖, 앞, 뒤, 위, 가운데, 아래’ 등은 한자어들과는 달리 자립적으로 쓰이는 예가 빈번하다. 그만큼 자립성이 높기 때문에 <조선말대사전>에서도 명사로-불완전명사가 아닌-분류해 놓은 것이다. 자립성이 없는 말을 붙여 쓰는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면 고유어 명사들은 띄어 쓰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자립성 여부를 떠나서 한자어건 고유어건 ‘시간이나 공간을 나타내는 말’은 붙여 쓴다는 의미적 기준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사는곳’은 붙이면서 ‘사는 지역’, ‘사는 동’, ‘사는 땅’, ‘사는 집’은 띄어 쓰는 것도 또한 설명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더라도 일관성이 떨어지는 규정이라 하겠다.
‘말, 근, 두름, 켤레, 개, 채’ 등과 같이 수효나 분량 따위의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를 보통 ‘단위성 의존명사’라 한다. 이런 말들도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쓰는 것이 맞다. 그런데 단위성 의존명사는 반드시 수를 나타내는 말 뒤에 쓰이기 때문에, 숫자와 어울리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숫자와 함께 쓸 때 띄어 쓰게 되면 가독성(可讀性), 즉 읽는 데 오히려 능률이 떨어질 염려가 있다. 원고지에 쓸 때를 가정해 보면 ‘?□?’보다 ‘??’이 훨씬 읽기가 편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글과 숫자는 글자 자체로 분명히 구분되므로 둘을 붙여 쓰더라도 의미 해석에 혼란을 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단위성 의존명사 앞에 숫자를 쓸 때에는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 것이다.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에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한 것도 가독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두 시 삼십 분 오 초’와 같이 띄어 쓰는 것은 일반 언중들의 언어 감각에도 어울리지 않고 잘 읽히지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숫자와 어울려 쓰이지 않거나 순서를 나타내지 않는 경우에는 반드시 띄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열 개’, ‘10개’는 맞지만 ‘열개’는 틀리므로 주의해야 한다.
남녘에서는 경우에 따라 단위성 의존명사를 앞말과 띄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는 데 반해, 북녘에서는 항상 붙여 쓰도록 하였다. 이는 <조선말규범집 띄여쓰기> 체제하에서는 그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는 표기법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의존명사 및 그에 준하는 요소들은 대체로 붙여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붙임]에서 완전명사인 ‘성상, 세월, 나이, 평생, 고개’ 따위의 말들도 붙여 쓰도록 한 것은 특이하다. 주로 나이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이는 것들인데, 당장 위에서 예시된 ‘20여성상’만 놓고 보더라도 ‘20여성 상’으로 잘못 읽힐 가능성이 있음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역시 단어는 가능하면 띄어 쓰는 것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의미 해석의 혼동을 줄이려고 띄어 쓰는 것인데, 띄어쓰기 규범이 오히려 의미 해석의 혼동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두 말을 잇는 ‘겸(兼)’과 ‘대(對)’는 의존명사(불완전명사)이고 ‘내지(乃至)’와 ‘및’은 부사이다. 이런 말들을 띄어 쓰는 데에는 남북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부분도 다른 조항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의존명사나 부사는 모두 독립한 단어이므로 <한글맞춤법>에서 띄어 쓰도록 규정한 것은 일관된 처리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북녘에서는 불완전명사를 붙여 쓰는 것이 원칙이므로 이 경우에 한해 띄어 쓰도록 규정한 것은 일관성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다른 불완전명사들과 달리 ‘겸, 대’ 같은 말은 앞뒤에 오는 말에 똑같이 영향을 미치는데 앞말에 붙여 쓰게 되면 한쪽으로 기울게 되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띄어 쓰도록 한 것으로 해석된다. 열거할 때 쓰는 ‘등, 등속, 따위’와 같은 말들의 띄어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앞에 열거된 말들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가장 뒤에 오는 말에 붙여 쓰게 되면 바로 그 말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되어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 띄어 쓰도록 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의존명사(또는 불완전명사)를 중심으로 남북의 띄어쓰기 규범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를 통해 남녘의 ‘의존명사 띄어쓰기’는 단어별로 띄어 쓴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하면서 의존명사 특유의 쓰임을 고려하여 일부 예외를 인정한 반면, 북녘의 ‘불완전명사 띄여쓰기’는 불완전명사 특유의 불완전성을 고려하여 비록 단어일지라도 앞말에 붙여 쓰는 원칙을 세우고 일부 특수한 부류에 한해서 띄어 쓰는 것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이 예는 <국어학개론>(이익섭․장소원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42쪽에 실린 것을 인용한 것이다. 2) 북녘에서는 ‘띄여쓰기’로 쓴다. 3) 중국어와 같은 언어를 형태상으로 분류할 때에 단음절언어라 하고 국어, 영어, 독일어 같은 말은 한 단어가 여러 음절로 된 것이 많기 때문에 다음절언어라 부른다. 그런데 로마자는 다음절언어의 단어를 철자하기에 편하도록 되어 있는 데 반해, 한글은 음절마다 한 덩어리가 되도록 글자 모양이 되어 있기 때문에 로마자와 달리 글을 쓸 때에 띄어쓰기가 좀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굴절어인 인구어는 명사나 동사가 자체적으로 꼴을 바꾸므로 조사나 어미의 띄어쓰기가 그리 혼란스럽지 않으나 첨가어인 한국어는 명사나 용언에 조사나 어미가 덧붙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띄어쓰기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4) 북녘의 ‘뒤붙이’는 남녘의 ‘접미사’와 비슷한 개념이다. |
- 네이버 블로그 < 마이콜의 우리말 세상> 마이콜 님의 글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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