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4. 00:16ㆍ우리 이웃의 역사
중국의 옛과 오늘 (1)
중국[中國]의 옛과 오늘
제 1화
인류역사에서의 유사기록有史記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기원 3-4,000년 전으로 본다.
중국대륙 황하黃河 유역은 세계 4대 문명 중 동양문명의 발상지역이다.
이 대하大河는 대륙 깊숙한 청해성 준령 峻嶺 계곡에서 시작하여 감숙성 섬서성 하북성 하남성을 거쳐 산동성 동북쪽 끝 삼각주三角洲 에 이르러 발해만 ㅡ 황해로 흘러가는 4,000여km 의 방대尨大 한 강이다. 발해 는 황해 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하다. 우리나라 인천영역 상공에서 멀리 내려다 본 발해 전 면적의 3분의 1 정도가 누ㅡ런 황녹색으로 물들여져 있다. 황하가 길고 긴 유역을 휩쓸고 내려와 발해로 유입된 모습은 고공 비행하는 전투기 조종사라야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고 느낄수 있다. 이 강은 수천 만년에 걸쳐 형성된 횡토층이 주기적인 몬순의 강우와 홍수에 의해 광활한 농작재배가능지역으로 형성되었으며 황하 문명의 근원지로 조성된 것이다.
산동성의 성도省都 제남은—산동반도의 안쪽 중북부에 있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60여km 에 태산泰:山 이 우뚝 솟아있다.
태산은 중국[한족] 토속 신앙의 원천이 되는 영산靈山이다. 중국의 5대 명산 중에서 으뜸으로 일컷는다. 그곳 산록 주민들이 전하는 구전口傳에 의하면 태산 정상에 옥황상제 玉皇上帝를 뫼시고 3 황제皇帝 가 제일 앞줄에 서고 이어서 5제帝 가 뒤따르며 그 다음이 옥항-모후母后 가 계시고 성인聖人이 따라가고 이어 아성亞聖 등 이 자리하고 다음이 군자-현인-그리고 비로서 일반 대중들의 차례가 되어 뒤따라 영산에 올라가 제천 제사를 올릴수 있다고 전해진다.
[1989년 최초 산동성 방문시]—현지주민의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태산 산록에 위치한 공자의 탄생지인 곡부曲阜를 중심으로 노자, 맹자, 그리고 훨씬 후대에 등장하는 사마천 등의 인물들이 배출된 곳이며 고대 중국 역사의 핵심이 되는 춘추,전국시대 등의 중심지역이 산동성, 하북성, 하남성 과 섬서성 일대이다. 태산 정상[1747m] 에 올라 “옥황정”에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고 주변 정경과 정상까지 올라온 경로를 회상하면서 우리나라 전래의 오랜 토속신앙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고대 농촌이 집단부족으로 형성된 1930~40년대 까지만 해도 농가들의 뒷마당 장독대 옆에 칠성당을 마련하여 옥황상제와 삼신할머니를 뫼시고 정한수를 떠놓고 할머니, 어머니들이 가족의 강녕과 농사풍년, 부락의 평온을 간절히 빌었던 전통풍습이 이곳 태산의 옥황상제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보며, 역설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1950년 6.25 전쟁의 대전란으로 우리나라의 과거 토속적 풍습이 급격하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1949년 10월을 기점으로 중국은 지난 6,000년 역사에 새로운 통일국가로 등장했다. 한족과 이민족이 방대한 대륙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하여오다가 모택동 주석이 북경 자금성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전세계에 선포함으로서 이 나라 역사의 굴곡을 일단 멈추게 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중공] 이라는 국명 중에 –화華-는 6,000여년전 신화시대에서 시작된 하夏-나라 또는 은殷-나라를 하화 夏華 라고 통칭하여 전해온 것에서 비롯된다. 화는 지구의 중심이며 모든 존재의 으뜸이라는 사상을 내포한 “한문화(漢文化) 기원으로 사회주의 이념의 중국 공산주의체제로 등장했음에도, 화=중화사상이 엄존한다. 중국인의 자긍심自矜心은 가히 역사적이다.
2010년도 EXPO가 상해에서 개최되었다. 북한 김정일이가 최초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주룽지 총리의 안내를 받아 상해 포동지역을 돌아보면서 동양의 진주탑을 위시한 현대화된 도시 모습에 이것은 천지를 개벽해 놓았다고 탄성을 질렀다는 그곳에서 동남쪽 일각에 여의도가 들어서고도 남을만한 땅에 EXPO 전시장이 마련되었다. 중앙 전면에 중국관이 자리를 잡았다. 이 건물은 종횡 149m 높이 69m 로 전시공간 7000평ㅡ 이집트의 대형 피라미트의 상층부를 싹 짤라내고 꺼구로 세워놓은 듯한 양상을 주는 구조물인데 전체건물을 붉은색으로 채색했다. 안내인의 설명으로는 고궁홍 古宮紅이라 했다. 우리나라 새누리당이 출범하면서 택한 홍적색과 흡사하다.
이 거대한 중국관의 의의를 설명하기를
[1] 동방지관 東邦之冠 --동양의 으뜸이며
[2] 정중중화 鼎盛中華--세계의 중심으로 번성하며,
[3]천하양창 天下糧蒼 --풍부한 식량을 생산하고
[4] 당연백성 當然百姓-- 국민들은 당연이 흡족하다,.
EU 와 일본을 밀어 내고 G-2 로 등극하고 있는 중국의 위풍과 중화사상이 담겨있는 중국[인] 다운 표현이라 생각했다. 2년후 우리나라 여수에서 치루어진 전시회도 해양자원의 개발활용과 미래세계의 Green화에 초점을 두고 훌륭하게 개최되었지만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중국을 넘지 못한 것 같다.
중국은 역시 한漢 나라가 한문화의 정착기였다. 한 나라의 전성기 [전한-후한—380년] 이후에 유명한 삼국시대 [위 오 촉]와 5호 16국 시대를 거쳐 우리나라 고대사에 크게 부상하는 수隋나라가 등장한다. 이어 당唐나라가 중원대륙에 강대하고 찬란한 국가로 부상하여 번창했다. 약 300년을 유지한 당나라는 국토를 방대하게 확충했을 뿐아니라 정치문화적으로도 가히 세계의 중심국으로 우뚝 섰다. 유명한 “무후 측천황후 武候 側天皇后”라는 여황제도 등장 하지만 - 그녀는 근세 청나라 서태후 이상으로 정치력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약화시킨 현종 玄宗에 이르러 급기야 당나라도 쇠진한다.
이 무렵 한반도는 북에 고구려 서남부에 백제 동남부에 신라가 병립하여 독자적 문물과 전통성을 가지고 각각 통치하고 있었다. 당나라의 국력신장이 한반도로 확장하면서, 라당 羅唐의 연합세력이 크게 작용하여 백제가 소멸되고 고구려도 또한 멸망했다. 중원대륙에서 길게 남쪽으로 뻣어나온 금수강산 아름다운 강토가 비로서 하나의 통일국가로 탄생하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 631넌 군림했던 고구려가 패망한 후에 거의 같은 지역에 새로이 등장한 나라가 발해 渤海 왕국이다. 이 발해왕국은 막강한 당나라와 대립하여 무려 200년간 항쟁한 역사는 깊이 조명해야 할 큰 과제라 본다. 이어서 송나라가 혼란에 빠진 중국 중원을 수습하고 당나라 당시와 같은 찬란한 국력과 문화를 되찾게 되기에는 70여 년의 세월을 지나야 했다 . 그 후 금金을 거쳐 징기스칸이 이민족異民族 임에도 불구하고 전 국토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전세계에 당당하게 국위를 떨쳤다. 이 원나라는 고려를 오랜 세월동안 실질적으로 지배한 나라로 기록된다. 원나라와 고려와의 어려웠던 양국관계는 제3화에서 다시 언급하게 된다.
중국 대륙 역사상 당나라, 원나라에 이어 찬란한 왕조로 등장한나라가 명 明 나라다. 명 왕조는 조선왕조와 거의 같은 시기에 건국되었고 우리나라와 오랫동안 선린우호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병존했다..
조선 왕조는 이 시기에 크게 번창하여 유교 문화국으로서의 국가정체가 확연이 부각되고 양반제도가 정착되었다. 505년간 왕조가 순조롭게 유지가능했던 것은 중국 중원에 명나라 왕조의 안정과 고도의 정치문화가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명왕조에 이어 청왕조가 등장하는 초기, 조선왕조는 대혼란에 휩싸이고 결국엔 병자호란을 겪게 된다. 조선왕조의 중국정책이 대전환하게 된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세계 강대국으로 군림하면서 당시에 역대 황제들이 하늘의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올렸던 곳이, 태산 정상의 옥황상제 사당과 곡부의 상제당, 그리고 자금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천단 天壇에서 거행했다. 천단의 사제단 내부에 3황과 화타의 신위神位를 봉안奉安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989년도 1월-중국 최초 방문시] 그 후 내부를 수리하여서 인지 금년 4월에 본 것은 20여년 전의 모습은 아니였다.
제 2 화 --중국 옛과 오늘
다시 고대로 돌아가 보충 이야기를 해야겠다. 고대중국의 다섯 황제의 첫째분이 [황제黃帝 인데 이 사람이 황하의 범람을 성공적으로 다스리기 시작하고 나라를 세워 그 이름을 하夏—후에 은殷으로 개명하게 된다. 그 이후 요제 순제 우제 계제로 선위禪位 되었다. 그 이전의 3황은 신화 대의 인물들이다. [1]-수인燧人은 인류최초로 “불”을 만들어 음식을 익혀먹는 것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활용법을 가르치고 .{2}- 부의伏㩘는 숭천崇天과 조상에 대한 제사봉정과 인간상호간의 교제와 도리 및 가축의 사육법등을, {3}- 신농神農 은 농사 경작법과 약초의 판별 조제 등을 계도啓導한 것으로 전해진다.
“은”나라에서 시작되는 고대 중국은 “상” “주” “한” 등의 국가들로 이어져 황하 유역의 한정된 지역을 통치하였다. 그 후 춘추, 전국시대를 거쳐 13세기에 한족이 아닌 몽고족이 침탈하게 된다. 이들에 의해 세계 최강국으로 국위를 빛낸 나라가 원나라다 [1206년].
이시기에 서방 뭘리 이타리아-베네치아 상단의 일원으로 아버지를 따라 실크-로드 대상의 한사람으로 입국한 17세의 “마르크 폴로” 가 등장한다. 이사람 폴로의 구전口傳 기록으로 남긴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1295년]” 이 동서양 교류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폴로는 원나라에 와서 장장 20여년 거주하였고, 지방의 수장직을 비롯하여 중앙에서도 꽤 높은 벼슬을 했다. 폴로의 기록은 당시 막강 군주국인 원나라를 중심으로 한 변방의 많은 국가들의 조공朝貢 교역과 인물 문화교류 등 새롭고 경이로운 국제 질서의 흐름과 특히 동양 각국사절들과의 교분 등으로 그들한테서 획득한 많은 자료를 자세하게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양세력으로 융성하게 된 서구라파의 패권국인 스페인 “이사베라” 여왕의 치세治世 당시에 “콜럼버스” 가 등장한다. 콜럼버스는 계란을 세웠고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을 몸으로 실천한 사럄으로 이사베라 여왕의 원대한 야망과 의기투합하여 대양大洋의 세계를 획기적으로 개척하게 된다. 그의 손에 폴로의 견문록이 있었고 이 사람이 찾고져 했던 첫번째 나라는 동쪽 먼 땅 어느 곳에 황금의 나라로 소개된 Cipan-gu—Japon- 이였다고 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막대한 비용으로 준비된 대해大海용 선박이였다고는 하나 당시에 해도海圖 같은 것도 전혀 없는 시절에 대항해大航海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과 간간이 일어나는 선상 반란 등 많은 고초를 극복하고 4번에 걸친 대장정 항해를 해냈다. 콜럼버스의 항해 결과는 당초 예상과 전혀 달랐다. 처음에 당도한 곳인 동인도 제도를 발견하게 되고 이어 카리브해역의 많은 섬들, 그리고 중남미 대륙을 발견한다. 그는 그간의 실적을 총정리하여 이사벨여왕에게 헌정했다. 카리브 해역의 많은 섬나라들과 남미 전역을 스페인이 통치하게 된 연유가 된다. 북미 대륙의 발견은 한참 후에 이루어졌다. 오늘날 세계지도의 대강과 세계해양世界海洋 항로航路 와 각 이질異質 문화권을 연결하게한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시발점이 13세기말 원나라-중국- 에서 태동된 사실에 주목하면서 중근대 中近代를 거쳐 20-21세기의 격변 激變을 넘어 오늘 현대의 국제질서와 국제간 역학관계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이 EU 와 일본을 제치고 G-2 의 위상을 갖게된 것을 새삼 되새겨보게 한다.
중국대륙의 동쪽 현 동북 3성 전역과 한반도 북부 일원에 강력한 나라였던 고구려는 막강한 수, 당 나라 와 맞대결 전투에서 여러번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의 구국 영웅들은 연개소문, 강감찬, 양만춘 장군 등으로 대표된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게양된 대첩 그림들이 이 역사들을 잘 말하여준다. 그러나 이 막강했던 고구려나라가 내부 문무세력간의 알력과 권력 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게 되고 주변 신흥국들의 침공에 의해 소멸했다.
백제도 또한 라당연합군의 공세에 의해 멸망했다. 중국대륙 동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금수강산 한반도에 신라가 유일한 통일 국가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 무렵 고구려의 유민과 일부 만주족이 결속하여 과거 고구려가 통치했던 전 지역과 현 연해주 일대를 총괄하는 새로히 등장한 나라가 발해渤海다. 당나라 후기인 “측천무후”가 통치하던 때에 등장한 이 왕국은 당당하게 당나라에 대항한 세력국가로 초대 대조영 대왕에 이어 제2대 무왕으로 이어지고 “진震”이라는 나라이름으로 시발한 이후 국명을 발해로 개명한다. 이후 15대왕 대연선왕에 이르기까지 장장 200년간 융성했던 왕조이었으나 중국 북방지역에서 일어난 신흥국 요나라遼의 태조에 의해 멸망했다. 중국은 1990년대에 이르러 소위 “동북공정”을 본격화하면서 역사상 엄연했던 고구려국을 그들 당나라의 속국으로 격하하고 한변방으로 편입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그 고구려의 후속국인 “발해’에 대해서는 유적지 조차도 밀봉상태로 두고 침묵하고 있음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우리 역사학회가 분발하여야 할 일이며 추후 남북통일이 달성되는 날 서둘러 정리해야 할 후손들의 과제다..
중국 역사상 이민족異民族에 의하여 통치된 경우가 여러 번 등장한다. 그러한 역사중에 족적을 크게 남긴 기록으로 “테무진” 이 등장하여 ‘원”나라를 건국한 몽고족이 으뜸이다.
테무진에 이어 제2대 태종 때에 세계적 대국으로 등장했다. 원나라는 막강한 무력으로 한반도의 ‘고려”를 속국으로 지배한다. 고려는 무려 40여년을 그들의 통치하에 조공국가로 전락했다. 이씨 조선조 말기 주권국가-대한제국- 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기간보다 긴 세월이었다. 원의 강점지배에 항거하는 고려군의 항몽군이 강화에서 서해안 도서를 경유하여 제주도로 건너가 항몽산성-항파두리성을 구축하고 수년간 결사항쟁했으나 몽고/고려 연합군에 의해 해체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제주시 외곽에 그 유적지가 복원되어 잘 유지되고 있다.
원의 4대황제 세조[쿠빌라이]는 왜국을 원의 세력권에 편입하고져 고려국을 전초기지화 함은 물론 인적 물적역량을 국력이 바닥이 날 정도까지 동원한다. 그 여파로 고려의 국가재정이 한계에 다달아 나라 전체가 황폐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한때 광화도에 궁궐을 유지해야할 절박한 세월을 지낼 수 밖에 없는 때가 있었다.] 쿠빌라이는 2번에 걸쳐 왜국정벌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현해탄의 격랑과 침공시기 선택의 판단 미숙으로 ‘고려ㅡ원”나라 연합군은 대패했다. 일본은 두번에 걸친 전쟁의 승리를 신이 건국한 나라이기 때문에 하늘이 지켜준 것이고 그 당시의 태풍/격랑을 “신풍/가미가제神風 ”이 국토를 수호해 준 것으로 현대 교과서에 수록하고 있다.
일본을 “왜’로 우리나라를 “동이족’으로 호칭한 기록들은 오랜 옛날 주나라에서 진나라, 한나라 시대에 이미 등장한다. 중국 대륙에 명실상부한 한족[漢族]으로 등장한 최초의 통일국가가 진秦이다. 진시황은 제후봉건제도의 타파, 계량제도의 표준화, 농경과 문물운송을 위한 운하개척과 외부 침략봉쇄를 위한 만리장성 축성, 그리고 주변 각국으로 하여금 조공/교류 제도의 정착 등을 제도화한 황제의 으뜸으로 시황제로 칭송되고 있다.
지난 6월 말 박근혜 대통령의 시안西安 방문은 삼성전자의 70억$ 투자진출의 상징성도 있지만 오늘날 중국의 원뿌리가 시안으로, 한족의 최초 통일국가 진나라의 수도이며 그곳이 현 14억 중국의 문물역사 정치의 원천일 뿐 아니라,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정신적 고향임을 감안할 때 우리 대통령의 행보가 중국인 정서에 크게 투영되었다고 생각한다.
向日山依盡 黃河入海流 欲求千里目 更上一層耬ㅡㅡㅡ 중국 국보급인 이족자는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물한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작품이다. 이 사람은 대중의 인기도가 대단했던 것으로 그의 작품이 발표됨과 동시에 전국에 널리 보급되고 애창되었다고 한다. 이 시에 함축된 뜻은 양국관계의 현실에서 이어지는 후세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자는 시진핑 주석의 정치/철학과 박근혜 대통령의 미래 지향적 철학이 교감하여 맞아 떨어진 값지고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제 3 화--중국 옛과 오늘
제2화에서 원나라에 대한 언급을 한 바 있지만 중국 역사상 이민족이 “한족”의 나라/국가”를 완전히 정복하고,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200내지 300백 여년을 성공적으로 통치했음은 경이로운 일이다[ 수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그러나 그 지배한 종족의 뿌리인 그들 고유의 문화는 ‘한문화” 에 흡수되고 지배했던 이 민족의 문물은 흔적없이 소멸되어 중화문화화된 사실을 깊이 음미해 볼 일이다. 그 해답은 인류문명 발상의 근원이 황해지역의 농경문화와 한문자의 발달이 뿌리깊게 정착한 결과로 생각되어 문화의 깊은 역사적 의미와 문화보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라 본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위구르족 지역과 티벳, 신강성 등에서의 많은 소수 민족들이 독립운동이나 자치권 요구 운동을 전개하고 있음은 역사의 아이로니라 여겨진다.
중국문자ㅡ한자/중문/한문은 ㅡ현 하북성 동남동쪽 ‘은 허” 에서 발굴된 고대문자가 그 뿌리임이 정설이다. 대략 BC 4000년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거북등에 새겨진 흔적/문자가 소위 갑골문자甲骨文字/상형문자로 알려져 있다. 이 문자를 근간으로 역사의 발전과 정치발전에 따라 오늘의 한자문으로 자리가 잡혔다. 동양권에서는 중국, 한국 ,일본’이 상용문자常用文字로 오랜 세월 유지하여 왔다. 은나라는 6000천년 전 신화시대의 국가로 구전 역사였었던 나라가 이 갑골문자의 발굴로 기록역사의 장르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지역이 그 당시 동이족의 생활 근거지 -단군조선/기자조선- 이였기 때문에 한때는 동이족이 하늘상제에게 제천 행사시 만들어 썼던 문자일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문자의 발전과정은 [1]갑골문자-[2]금[金] 문자- [3] 예서隸書 문자-[[4]해서偕書 문자로 이어젔다. 현재는 간자 簡子 한문으로 획수가 많이 간소화된 문자로 자리잡았다. 우리 같은70ㅡ 80세 대 연령층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새로운 문자가 된 것이다. 1800년전의 고사인 삼국지三國志는 오늘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꾸준히 읽혀지는 중국의 고전소설이다. 제갈량을 국사로 두고 관운장과 장비를 장수로 거느린 촉蜀[후한] 나라의 유비劉備와 위 魏 나라를 세워 황제를 칭한 조조 曹操와 장강[양자강] 남쪽에 세력을 가진 오 나라의 손권 孫權 과의 3개국 세력 패쟁 覇爭을 다룬 대 로망 역사소설이다. 적벽 전투와 제갈공명의 마지막 전투에 임하면서 남긴 “출사표’ 등 그리고 수허전, 서유기 등에 이어 후대에 와서 펄벅 여사의 “대지” 이후 에드가 스노우 의 “붉은 별” 등에 이어 최근에는 역대 왕조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일본 현대작가 들에 의해 역작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근간 현대 중국을 무대로 한 정글 만리 [조정래 작]가 오늘 현재 중국 사회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다룬 역작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독을 권유한다ㅡ 제 3화 긑,.
http://www.kaoms.or.kr/Board01/view.asp?page=1&key=558&ref1=558
ㅡ 다음 블로그 < 凡淸 金東皓> 님의 글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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