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3. 00:11ㆍ들꽃다회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밀교의 세계
밀교란 불교의 비교(秘敎)를 가리키는 말로서 비밀불교라고도 한다. 인도에서는 비밀승(秘密僧) 또는 금강대승(金剛大僧)이라 불렀다가 진언승(眞言僧)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명칭이 다양한 까닭은 그만큼 밀교의 전개과정이 복잡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밀교는 다신교적, 힌두교적인 요소가 불교에 유입되면서 나타난 불교종파라 할 수 있는데, 불교에서는 처음에는 이들 재래신앙을 외도(外道)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다가 나중에 체계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7세기에 이르면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차례로 출현하여 이를 양 축으로 하는 밀교가 완성을 보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밀교는 대승불교의 발전사에서 마지막에 나타난 사상체계로서 이론적으로는 화엄경에서 전개한 장대한 '비로자나불의 장엄한 법계' 구도를 확대 발전시켜 가다가 요가적인 명상체계로 변형되어 나타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고도로 발전된 상징주의적인 형상성과 신비주의의 극치로 나타나는 밀교는 기존의 대승적 사상을 명상적인 초월의식으로 중층화시킴으로써 강렬한 우주적 입체감과 색채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 내면에 신, 불, 우주라 하는 장엄한 초월적 존재를 직접 파악하여 일체화하는 과정으로 얘기될 수 있는데, 밀교에서는 그 일체화 과정을 성(聖)과 속(俗)의 일치를 위한 비밀스런 의례 행위로 발전시켰다. 만다라나 주문, 인상(印相)과 같이 시각적인 또는 청각적인 의례형식을 고도로 발전시켜 세속의 현실을 철저히 우주적인 전망과 일치시켰던 것이다.
밀교가 중국에 전래된 것은 「대일경」이나 「금강정경」보다 먼저 성립하여 유행하던 초기 밀교계통 경전이 번역되면서부터였다. 320년경 동진 원제 때 최초로 전래된 뒤, 「대공작왕신주경」이나 「관정경」 등이 차례로 번역되어 유포되었다. 밀교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대일경」은 천축 구법을 떠났던 무행(無行)이 일찍이 입수했던 것인데, 그가 북인도에서 객사하는 바람에 책만 중국으로 보내져 장안의 화엄사에 보관되어 있다가 당 현종 개원 13년(725) 인도 승려 선무외(善無畏)가 찾아내어 번역했다. 이어서 「금강정경」이 당나라가 한창 혼란에 빠져 있던 현종 말기인 753년에 불공(不空)에 의해 번역되어 유포됨으로써, 밀교의 주요 경전은 모두 중국에 전래되었다.
이 밀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은 7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신라 구법승 안홍(安弘)이 진평왕 27년(605)에 수나라에서 귀국하면서 밀교를 전했다. 그 뒤 명랑(明郞)은 선덕여왕대에 중국 유학을 가서 밀교를 배우고 돌아와 자기 집을 금광사(金光寺)로 고쳐서 밀교신앙을 펴나갔다. 곧이어 혜통(惠通)이 당 유학길에 올라 밀교를 체계적으로 배워 문무왕 5년에 귀국, 새로운 밀교신앙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문무왕 10년(670), 함께 고구려를 무너뜨렸던 중국 당나라가 이번에는 거꾸로 신라를 치려고 뱃길로 군대를 보내어 침공하자, 명랑은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에 임시로 비단을 둘러 사천왕사를 짓고 풀로 오방신상(五方神像)을 만들어 밀교 승려 12인과 함께 문두루(文豆婁) 비법을 행하여 군선들을 침몰시킴으로써 나라를 지켰다고 한다. 문두루 비법은 「관정경」에서 설해진 것으로 재난이 닥쳤을 때, 오방신상을 만들어 비법을 행하면 신불의 도움으로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호국적인 관심과 결합하여 밀교운동은 많은 발전을 보여 고려대에 이르면 명랑법사를 개조로 하는 신인종(神印宗)이 형성되었고, 혜통법사를 개조로 하는 총지종(摠持宗)도 성립되었다.
고려시대까지 번성한 밀교는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선교통합정책과 승유억불 정책에 따라 폐종되었다. 그렇지만 통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우리 불교의 흐름에 따라 밀교는 일반 신앙이나 의식법요에 수용되어 여전히 그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우리나라께서 밀교는 조직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전래된 「대일경」이나 「금강정경」을 토대로 밀교적인 사상의 흐름이 발전되었고 그에 따라 밀교적인 의례와 건축, 만다라 등이 개화되었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밀교는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실천적인 의식에 치중하여 전개되었고 정토신앙이나 화엄신앙 속에 수용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밀교가 다른 나라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화려한 세계관을 우리나라에서 창출하지 못했던 것은, 그 기반이 되는 문화적 정서가 안 맞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도의 상징주의적 감수성과 신비주의적 감각을 기초로 건축되는 밀교는, 점점 강해져가는 유교의 영향력이 빚어내는 보수주의적인 현실주의 정서에서 제대로 수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대승불교의 사상적 발전과정에서 밀교가 중요한 한 귀결점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사상적 논거나 역사성을 이해해두는 것은 중요하다. 여기서는 팔만대장경에도 중요 경전으로서 실려 있고, 밀교의 양부대경(兩部大經)으로서 두 축을 이루고 있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대일경
[ 大日經 ]
「대일경」은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의 별칭으로서 7세기 중엽에 성립한 것으로 보인다. 전7권 36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제7권에 해당하는 제32품인 '공양차법중진언행학처품'부터 마지막 제36품인 '진언사업품'은 「대일경」을 번역한 선무외삼장(637~735)이 나중에 덧붙인 것으로 본경과 별개의 것이다.
「대일경」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 부분은 초품인 '입진언주심품'으로서 진언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총괄적인 교설이며, 두 번째 부분은 제2품부터 제31품까지로서 구체적인 진언과 밀인(密印) 그리고 그 구체적인 수행을 통한 진언구세(眞言求世)의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학자들은 맨 앞의 '주심품'이야말로 반야사상에서 출발하여 화엄에 이르는 대승불교 사상의 발전 과정이 마지막으로 대단원을 내리는 결과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주심품' 말미에 가서 진언문으로 들어갈 때, 후기 불교는 돌이킬 수 없는 밀교의 세계로 전개되어 가는 것이다.
마음의 장, 주심품
「대일경」은 「화엄경」이 장엄하게 펼쳐놓은 보살도의 보현행(普賢行)을 충실하게 받아들이면서, 화엄세계의 중심에 자리한 비로자나 부처님과 우리 중생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시작한다.
(1) 보리심 정화를 위한 험난한 여정 끝에 본 신비의 세계
「화엄경」에서 보면,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의 가르침(十信)을 지팡이로 삼아 구도의 길을 떠나서는 드디어 제53번째 선지식인 미륵보살이 거주하는 엄정 장대루관, 곧 비로자나장엄장광대루각에 도달한다. 미륵보살은 '지치고 게으른 마음 없이' 끊임없이 정진하면서 많은 선지식을 구하여 드디어 자신에게 당도한 선재동자의 훌륭한 공덕을 찬탄하면서, 선재동자가 사람의 몸으로 모든 부처님과 문수보살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보리심, 곧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리심은 곧 이 모든 부처님의 종자이니, 능히 모든 부처님의 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2) 160가지 마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영원보편한 진실의 세계를 이 보잘것없는 현존재로 수용하면서 현재의 찰나적인 생을 영위해야 하는가 하는 실천적인 물음에 직면하여 「대일경」 '주심품'은 독특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실히 두루 알아야 할' 자기의 마음(自心)을 160가지 세간심(世間心)으로 규정하고, 그 마음이 일어남을 삼구에 따라 극복함으로써 법신비로자나의 장엄이 가득한 만다라로서의 세계를 현현시키는 일이다.
160가지 마음은 탐욕심으로부터 수생심(受生心)에 이르는 60가지만 나열되어 있고 나머지 100가지는 생략되어 있다. 여기에는 번뇌와 관련된 마음부터 각종 착한 마음, 상인(商人)의 마음도 있으며, 아수라심, 용심, 인간심도 있고 나아가 개의 마음, 고양이의 마음, 쥐의 마음도 있고 나아가 물의 마음, 연못의 마음, 집의 마음, 목판의 마음 같은 무생물의 마음까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보통의 의미와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탐욕심'을 '주심품'은 '탐착(貪著)을 가진 이가 법에 의지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탐욕이 아니라, 어떤 대상에 일정한 형식과 실질을 갖추고 있는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서의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은 찰나간에도 160가지의 형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보살도를 수행하는 대승불자로서 비로자나의 진실 세계를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중생에 대한 자비 실천으로서의 160가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주심품'은 지적한다. 이 세간의 160가지 마음이야말로 비로자나세계의 질료인(質料因)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대일경」 '주심품'은 대승불교적인 사상체계를 명료히 극대화시키고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것은 밀교로 건너가는 빛나는 황혼의 수사학 같은 것으로서, 같은 '주심품'에 포함되어 있는 '십연생구(十緣生句)'같은 밀교적인 논리로 가는 진언문(眞言門)이었던 것이다. 이후 31품까지 「대일경」은 깨달음의 즉자적인 경지로서의 심상(心像)을 시각화, 청각화시키는 만다라적인 내용으로 전개되고 만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일경 [大日經]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2007.6.10, 도서출판 들녘)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금강정경
[ 金剛頂經 ]
「금강정경」은 광본과 약본이 있다. 광본은 십만 송 18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전해오는 것은 약본뿐으로, 몇 가지 역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불공(不供)삼장이 번역한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대교왕경」 3권으로, 광본 18회 가운데 1회 4품 중 제1품만을 번역한 것으로서 「초회금강정경」으로 불리기도 한다. 1회 4품을 전부 번역한 시호(施護)삼장의 「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삼매교왕경」 30권과 금강지(金剛智)삼장이 번역한 「금강정유가중략출염송경」 4권은 광본 가운데 중요 부분만 발췌 번역한 것이다.
보살행에서 진언 암송으로
「대일경」의 배경이 된 장소인 '금강법계궁'은 「금강정경」에서 첫 장의 무대로서 '색구경천왕궁(色究竟天王宮)'으로 나온다. 장엄한 이 선정세계에 일체의 여래들이 거주하는데, 법신비로자나는 '모든 여래들의 완전한 집합체'로서 두루 어디에서나 항상 존재하는 실체로 잠재해 있다.
2장이 되면 비로나자는 장소를 바꾸어, 우리 인간이 사는 지상의 세계인 섬부주(贍部州)의 니련선하 가에 있는 가야촌(伽耶村) 보리수 아래로 이동한다. 곧, 법신비로자나가 보신비로자나로서 석가라는 현존재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3아승기겁의 험난한 보살행을 완성하여 성도 직전의 상태에 있는 석가, 곧 일체의성취보살(一切義成就菩薩)은 '보리도장'에 앉아서 '무동삼매(無動三昧)'에 들어가 있다. 색구경천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모든 여래'들은 석가에게 현신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그를 깨운다.
"……선남자여, 그대는 온갖 난행(難行)을 견디고 있지만 그대는 모든 여래의 진실을 모르고 있으니, 어떻게 무상정등각을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이 여래들의 말, 석가를 깨운 이 물음이야말로 대승불교에서 밀교로 전환하는 중대한 지점이다. 왜냐하면 중생과 함께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깨달음의 세계를 열어간다는 대승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대승불교의 '난행주의'를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논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3아승기겁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치열한 보리심으로 자비의 실천을 행한다 하더라도 '모든 여래의 진실'을 모르면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모든 여래의 진실'을 알 수만 있다면 보살행을 통해 복덕을 짓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성불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밀교의 체계는 바로 이 논리를 바탕으로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석가는 '모든 여래'의 이 물음에 무동삼매에서 깨어나, 어떻게 하여야 그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하여 모든 여래들은 이른바 '5상성신관(五相成身觀)'을 설하는데, 여기에서 제시된 내용이 바로 유가(瑜伽)의 논리, 탄트라적인 상징의 논리다. 그 가운데 하나를 들면 이렇다.
"……도달하라, 선남자여. 자기의 마음을 따로따로 관찰하는 삼매에 의해, 그 본성 위에 성립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진언을 마음 내키는 횟수만큼 암송함으로써……,
옴 칫타프라티베담 카로미."
('나는 마음에 통달한다'는 뜻의 진언)
「금강정경」은 「대일경」에서 제시된 '160가지 마음'에다 요가적인 삼매를 더하여, 「대일경」에서 궁극의 것으로 제시한 '자기의 마음을 여실히 두루 아는 것(如實知自心)'을 진언의 암송으로 성취한다는 공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타자인 중생에 대하여 자비로움으로 이롭게 하는, 나아가 이러한 이롭게 하는 행위를 무한히 축적하여 자기 인식을 심화시키는 대승보살의 행위가, 진언을 암송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밀교 행위로 대체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일체의성취보살, 즉 석가는 '모든 여래'가 가르쳐준 이러한 효력을 가진 진언을 암송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두루 여실히 알게 되었다고 「금강정경」은 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앎의 결과, 그의 내적 변화 또는 이에 조응하는 실제세계의 변화가 상징적인 그림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말한다.
"……나는 교시를 받았나니, 존귀한 여래들이여, 나는 내 자신의 심장에 둥근 달이 있음을 본다."
이렇게 하여 5상성신관은 처음에는 일체의 여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진리의 인식 방법을, 두 번째는 그 방법에 따라 대치하는 진언을, 세 번째는 그 결과 진리의 인식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심상의 체험을 단계적으로 정립함으로써 이 세 요소를 축으로 밀교적 교의를 완성하게 된다. 일체의성취보살은 5상 성신관을 그대로 음미, 수용함으로써 부처님의 모습 그대로, 동시에 그 속에서 금강계 전체의 모든 형상을 간직한 상징체계의 중심으로서 비로소 성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밀교가 주장하는 바, 가장 쉬운 방식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다. 굳이 험난한 보살행을 실천하지 않아도, 단지 명상 속에서 진언을 외기만 하면 그대로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밀교는 더 이상 대승불교로서의 면모를 상실하고 다만 절대자에게 귀일하는 명상만을 강조하는 독특한 종교로 변질되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강정경 [金剛頂經]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2007.6.10, 도서출판 들녘)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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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영담, 진현종, 2007.6.10, 도서출판 들녘 표제어 전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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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밀교의 세계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2007.6.10, 도서출판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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