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부흥운동(4)

2015. 5. 5. 10:16우리 역사 바로알기

 

 

 

고구려 부흥운동(4) | 역사에 관하여

 

대연림 2014.12.04 17:50

 

 

      

 

1. 고구려 영토에서의 부흥 운동


   고구려를 되살리려는 부흥운동은 고구려의 옛 땅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당나라는 고간 등을 보내, 고구려 부흥군을 진압하게 하였다. 고간, 이근행 등이 이끄는 당군은 안시성, 백수산, 호로하 등에서 고구려 부흥군과 치열하게 격돌했다.


   고구려 부흥군의 강렬한 저항으로 당의 고구려 지배 정책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676년 안동도호부를 요양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힘만으로 고구려 부흥운동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당은 다른 방법을 도모해야 했다. 당 고종이 생각한 것은 고구려의 마지막 태왕 보장왕이었다.


 

 

2. 보장왕의 부흥 운동


   의봉(儀鳳) 2년(서기 677) 정축 봄 2월, 항복한 우리의 임금을 요동주도독(遼東州都督)으로 삼고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하였다. 그리고 그를 요동으로 돌려보내 남은 백성들을 수습하여 안정시키게 하였다. 이때, 동방 사람으로서 이전부터 여러 주에 살고 있던 자들을 모두 임금과 함께 돌아가게 하였다. 안동도호부를 신성으로 옮겨 통치하게 하였다. 임금은 요동에 도착하여 배반을 도모하고자 몰래 말갈과 내통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


 

    677년 2월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은 요동주 도독 조선왕이 되어 다시 고구려 땅으로 돌아왔다. 보장왕을 보낸 당 고종의 의도는 고구려인들의 부흥운동을 잠재우려는 것이었다. 당 고종은 보장왕이 그러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보장왕의 생각은 달랐다. 700년 사직의 마지막을 담당해야 했던 보장왕은 이대로 고구려가 끝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망한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피를 흘리는 고구려 백성들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죄책감을 느꼈다. 고구려의 태왕으로서 자신이 좀더 현명했고, 용기가 있었다면 자신의 백성들이 저리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보장왕은 비밀리에 고구려 부흥운동에 나섰다. 한때 고구려의 백성이었던 말갈을 통해 각지에서 항전하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결했다. 보장왕은 당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보장왕의 움직임은 당에게 적발되고 말았다. 당은 681년 보장왕을 소환했다. 당 고종은 보장왕에게 분노했지만, 보장왕은 당당했다. 당 고종은 보장왕을 공주 지방으로 유배 보냈고, 그곳에서 보장왕은 682년 세상을 떠났다.


   보장왕은 세상을 떠났지만 당은 고구려 왕족을 통해 고구려 지역을 안정시키겠다는 노선을 바꾸지는 않았다. 687년 보장왕의 증손자 덕무를 안동도독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당은 요동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토번, 돌궐등의 공세로 당은 요동방면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고, 덕무는 독자적 길을 걸었다. 이른바 소고구려를 세운 것이다. 소고구려의 존재는 818년 까지 확인이 되며 이후 발해 선왕에 의해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3. 보장왕에 대한 단상


   왕조 국가에서 군주는 최고 결정권자이며, 국가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존재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은 이런 말을 했다.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라는 자리다.

 

      그렇다. 군주는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 군주에게 망국은 백성들 앞에서 자결을 해도 다할 수 없는 큰 죄이다.


   우리 역사에서 망국에 임했을때, 망국을 막지 못한 책임을 어떻게든 갚으려고 몸부림 쳤던 군주는 얼마나 될까?. 그것도 외세에게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과 순종이 주권이 강탈된 그 순간 나를 죽이라고 외쳤다거나, 일제 강점기때 독립운동에 앞장섰다는 기록을 나는 듣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보장왕은 기억될 만하다. 그는 망국이라는 그것도 외세에게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백성들과 함께 하려 했으니 말이다.


고구려 고토에서 벌어진 고구려 부흥운동은 발해가 어떤 조건에서 탄생했는가를 보여준다. 발해가 태어나기 전 고구려의 고토는 당의 지배하에 있지 않았다. 고구려 유민들은 치열하게 당과 싸웠고, 발해는 그런 환경 속에서 탄생했다.

 

ㅡ 다음 블로그 <연림잡필>  대연림 님의 글 중에서 전재 ......

http://blog.daum.net/daeyunrim/7020073

 

 

 

 

'우리 역사 바로알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왕 대조영  (0) 2015.05.05
발해의 건국   (0) 2015.05.05
고구려 부흥운동(3)  (0) 2015.05.05
고구려 부흥운동(2)  (0) 2015.05.05
고구려 부흥운동(1)  (0) 2015.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