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학》2010. 7월호 -박옥위-그리움의 원형으로서 ‘우물’

2015. 7. 12. 22:30

 

 

 

 

 

       《현대시학》2010. 7월호 -박옥위-그리움의 원형으로서 ‘우물’ 내가 쓴 평론

2010.06.3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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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2010. 7월호

 

 

 

 

 

 

 

 

 

그리움의 원형으로서 ‘우물’

 

 

 

 

 

 

 

 

이 송 희

 

 

 

 

 

 

 

 

 

그리운 우물

 

 

 

 

 

 

 

 

박옥위

 

 

 

 

 

 

 

산과 산 사이의 경계는 안개가 가린다, 못 잊을 기억들이 산인 듯 애워싸도

시간의 차창 밖으로 날아가는 새가 있다

 

아득한 경계 사이에 그리운 우물 있다. 아직도 날 풍뎅이 수풀 속을 헤매는 날,

한 번씩 물 긷는 소리 첨버덩 들려온다

 

켜켜이 자란 초록은 첩첩이 깊어 있어, 시정(市政)에 잡힌 생각이 먼지 같다 싶다가도,

풀냄새 안고 돌아와 나는 또 여자가 되고

 

수묵 담채 진경으로 새 한 마리 돌아온다, 어둠살 지기 전에 날아 앉는 새떼들,

그리움 그 사이 깊어진 우물 하나 찾고 있다

 

- (?서정과 현실?, 2010, 상반기호)

 

 

 

그리움의 원형으로서 ‘우물’

 

 

 

 

 

 

 

 

이 송 희

 

 

 

 

 

 

 

 

   오랜 기억의 숲, 길과 길이 만나는 동네 한가운데 우물 하나가 있다. 이 산과 저 산의 경계선을 가리고, 마치 이 산과 저 산이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안개의 위력은 현실과 비현실, 이성과 감성을 순식간에 섞어 버리는 속성을 지닌다. 여기, 그 아득한 경계를 가로지르며 화자에게 추억을 물어 나르는 한 마리 새가 있다. 여기서 새는 추억을 물어다 주는 메신저로 표상된다. 하늘로 상징되는, 영적인 능력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인간 공동체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역할, 영적인 세계와의 연결, 의사소통을 하는 전달자로서의 새를 등장시킴으로써 시인은 과거를 현재로 끌어온다. 시인은 새를 통해 추억의 상징이며, 그리움의 원형인 과거의 ‘우물’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자연으로서의 ‘물’은 바다, 강, 샘, 우물, 비 등과 같은 다양한 모습과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모성과 생명성, 정화와 재생의 의미를 드러낸다. 그 중에서도 ‘우물’은 우리 생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끊임없는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던 ‘우물’은 상수도가 개발되기 전까지 일상생활의 필요한 물을 공급해주는 주된 식수원이었다. 집안에 우물이 있으면 집안이 대길한다거나, 우물물이 도도하게 넘쳐흐르면 집안이 번성하고 손이 많으며 좋은 인연과 부를 얻게 된다거나, 자신의 몸이 우물에 비쳐지면, 관직을 얻게 된다는 해몽의 방식들은 우물의 존재가 얼마나 신비스럽고 절대적이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이러한 우물에 대한 친분은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 “우물안의 개구리”등과 같은 여러 가지 우물에 관한 속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주몽 신화 같은 고대신화와 설화, 무속과 민간신앙 속에서도 ‘물’은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여성적 생명력과 정화력, 풍요 등의 상징물로 작용기도 하였다. 현대의 문학작품은 어떠한가. 우물 바닥에 누워 있는 시체, '엘레강스'의 독백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그녀들을 만나고 재생하는 공간으로 우물을 그렸다. 정호승의 시 「우물」 역시 과거를 환기하는 장치로서의 ‘우물’이, 오정희의 소설 ?옛우물?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도구로서의 ‘우물’이, 윤동주의 「자화상」에서는 현실에 번민하는 자신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는 상징물로서 ‘우물’이 등장했다. 이 외에도 ‘우물’을 비롯한 ‘물’의 상징은 여러 문학 공간에서 구체화된 의미를 드러내며, 인간 생활 깊숙이 터를 잡았다.

 

   이렇듯 ‘우물’은 자연의 물을 사람살이의 관계 속으로 끌어온 문화적 산물로, 오랫동안 우리 삶을 지켜 왔다. 인간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우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공동체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의 경계가 생겨나고, 같은 우물을 사용하는 가구들끼리 소공동체가 형성되어 이웃들 간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공동체의 원리가 사라지고 점점 개인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의 공간 속에서 ‘우물’은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리운 풍경일 뿐이다. 박옥위 시인은 이제 그리움의 원형이 된 ‘우물’의 상징을 메신저인 새를 통해 불러들이고, 풀냄새를 맡는 감각적 행위로 느낀다.

 

   “한 번씩 물 긷는 소리”가 첨버덩 들려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듣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다. “물 긷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과거이며, 그 소리를 듣는 화자는 현재에 있다. 이 작품에서 ‘우물’은 추억의 상징이며, 그리움의 원형으로 시인의 기층에 자리하고 있다. 날 풍뎅이가 살아 있는 수풀의 이미지는 “아직도”라는 부사어의 존재 속에서 예전에도 있었고 여전히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숲의 배경을 보여준다. 초록은 과거로부터 자란 것이다. 시정(市政)에 사로잡힌 생각이 부질없다가도 숲에서의 풀냄새를 맡으면 또 여자가 되는 화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셋째 수는 마지막 수와 함께 이 시의 주제를 단단하게 받쳐준다.

 

켜켜이 자란 초록은 첩첩이 깊어 있어, 시정(市政)에 잡힌 생각이 먼지 같다 싶다가도,

풀냄새 안고 돌아와 나는 또 여자가 되고

 

수묵 담채 진경으로 새 한 마리 돌아온다, 어둠살 지기 전에 날아 앉는 새떼들,

그리움 그 사이 깊어진 우물 하나 찾고 있다

 

 

   시적 화자의 정체성은 풀벌레 냄새를 맡을 때 발견된다. 여기서 맡은 풀냄새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화자의 아련한 기억 속 우물이 있던 그곳으로 향한다. 과거의 우물가에는 우물물을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 정신이 깃들어 있고, 마을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물을 퍼 주었던 아름다운 여인들의 손길이 묻어 있으며, 넓은 모성으로 동네 어린이들을 제 자식처럼 껴안아주던 온기가 남아 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우물을 공유했던 마을 사람들을 따뜻하게 껴안아주던 모성을 그리움의 원형인 ‘우물’의 상징으로 표출한다.

 

   “풀냄새 안고 돌아”온 화자가 “나는 또 여자가 되고”라고 말하는 대목은 과거의 우물 속에서 모든 사람을 껴안았던 모성의 이미지를 체감한 화자의 심정을 반영한다. 일상에 사로잡혀 살다가도 풀냄새를 통해 자신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적화자는 “켜켜이”와 “첩첩이”라는 부사어의 결합을 통해 메마른 세상에서 더 깊어진 우물의 바닥과 깊은 그리움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속에 가라앉은 기억들로 하여금 화자를 더욱 그리움에 젖게 했으리라. 시인이 그리움의 원형으로서 ‘우물’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는 부분은 마지막 수 “깊어진 우물 하나 찾고 있다”는 대목이다.

 

   우물을 공유하며 작은 공동체를 형성했던 과거에는 우물물 사용에 대한 규칙이나 금기 사항 역시 공동체의 원리에 따라야 했다. 주로 식수나 농업 보조용수로 사용되었던 우물물은 마을의 공동재산이었다는 이유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졌다. 나라에서도 엄격한 관리를 했다는 점에서 볼 때,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풍속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배어있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심지어는 공동체의 규율을 어길 시 우물물 사용 정지라는 처분이 내려지기도 했을 정도다. 또한 우물의 보수나 청소를 할 때 참여하지 않으면 범칙금을 내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우물’은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뜻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공동체적 운명을 같이했던 ‘우물’의 상징을 끌어와서 그 자리에 현재의 공간에서 우물을 찾는 존재를 그려 넣음으로써 이제는 기억 너머에 있는, 우물 속에 깃든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물줄기를 들여다보게 한다. 현대는 지극히 개인화되어 있다. 주변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눈앞의 것만을 챙기기에 분주하다. 이러한 분주함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우물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작가의 의도를 찾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박옥위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전략이 아닐까.

 

 

   첫 수에서 “시간의 차창 밖으로 날아”간 새는 그리움 그 사이를 가로질러 “수묵 담채 진경으로” 다시 돌아온다. “시간의 차창”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표상한다. 새는 그 사이를 넘나드는 상징물로 이 작품에서는 시적 화자에게 ‘추억’을 물어다 주는 존재이다. 마지막 수에서 날아갔던 새가 돌아오자 화자는 현재의 공간에서 과거의 우물을 찾는다. 모두를 껴안아 주었던 따스한 모성으로서의 여성성을 찾는 것이다. 시적 화자의 정체성은 현대의 여성이 과거의 모성을 회복하는데서 얻어진다.

 

   추억의 우물을 들여다봐야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음을,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음을 시인은 ‘그리운 우물’의 상징과 비유를 통해 형상화한다. ‘물’의 상징이 자아내는 출산이나 폐경, 자궁의 이미지와 연결된 여성의 생명성을 다루면서 일반적인 상징에 매료되는 상상에서 벗어나 ‘우물’을 통해 공동체적 삶이 존재했던 과거의 삶과 개인주의에 물든 오늘의 삶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과거를 반추하게 하는 의도가 돋보인다. 다수의 여성들이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던 우물가, 생활을 위해 물을 퍼 올렸던 우물가의 풍경은 모성의 이미지로서의 여성성을 대변하며, 잃어버린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상징적 장치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렇듯 시인은 첫 수에서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표상하는 “시간의 차창” 너머로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과거를 연결하고, “한 번씩 물 긷는 소리 첨버덩 들려”오는 것을 감지하는 표현을 통해 과거를 그리워하는 심경을 환기한다. “풀 냄새 안고 돌아와 나는 또 여자가” 된다는 진술과 “새 한 마리 돌아온다”는 진술은 현재로 돌아온 화자의 모습을 환기하며, “그리움 그 사이 깊어진 우물 하나 찾고 있”는 존재를 부각시킨다. 자신 밖에 모르는 현대사회의 메마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해관계로 인식하기 쉽다. 시인은 그리움의 원형인 ‘우물’의 상징을 통해 개인화된 사회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모성의 이미지로서 여성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화자의 존재를 신화적 이미지와 감각적 비유로 드러내면서, 사물과 인간,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 시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